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109화: 말하지 않은 것들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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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9화: 말하지 않은 것들의 무게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피자 가게에서 나온 지 이제 15분. 신림로를 따라 걷고 있던 중이었다. 준호는 옆에 있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나눈 모든 말이 소진된 후의 침묵. 그것이 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이수진의 이름이었다.

민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준호도 함께 멈췄다. 신림로의 오전 11시 30분. 주변으로는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카페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모든 것이 정지해 있었다. 화면에 떠오르는 그 이름이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었다.

“받아.”

준호가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명령이 아니었다. 제안이었다.

민준은 전화를 받았다.

“민 배우.”

이수진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직무적이었다. 감정이 없었다. 마치 그녀가 지금 무언가를 읽고 있는 것처럼. 혹은 무언가를 암기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네, 대표님.”

민준이 대답했다.

“지금 어디야?”

“신림로 근처입니다.”

“혼자?”

민준은 준호를 봤다. 준호는 고개를 돌려서 신림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듯이.

“아니요. 준호 형과 함께입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전화 너머에서 이수진의 숨소리가 들렸다. 길게. 마치 자신이 기대했던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숨소리.

“사무실로 와. 지금 바로.”

“무엇 때문에요?”

“넷플릭스 PD가 기다리고 있어.”

“지금요?”

“지금.”

통화가 끝났다. 이수진이 먼저 끊었다. 민준은 여전히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마치 그 신호선이 아직도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싶은 듯이.

“뭐라고?”

준호가 물었다.

“넷플릭스 PD가 회사에 있대요. 지금 바로 가야 한대요.”

민준이 말했다.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극도로 빠르게. 마치 어떤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피자 가게에서의 그 감정적이고 벌거벗은 눈빛이 사라졌다. 대신 무언가가 그 자리를 채웠다. 계산. 전략. 두려움.

“몇 시간 안에 가?”

준호가 물었다.

“지금 바로.”

준호는 신림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시계를 봤다. 11시 35분. 그는 빠르게 계산하는 것 같았다. 신림역까지의 거리. 지하철 탑승 시간. 강남역까지의 거리. 회사까지의 도보. 그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

“빨리 가자.”

준호가 말했다.

그들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민준은 자신의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했다. 단지 준호 뒤를 따라갔다. 신림로의 오후. 햇빛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그림자들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 민준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넷플릭스 PD를 만날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준호의 변화된 얼굴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자신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인가.

“민준아.”

준호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말했다.

“네?”

“PD를 만날 때, 넌 정상이어야 해. 알겠지?”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가 담겨있었다. 경고. 혹은 협박.

“정상이라는 게…”

민준이 말했다.

“지금 같은 너면 안 된다는 거야. 아까 피자 가게에서 너처럼 있으면 안 돼. 다른 너여야 해.”

준호가 말했다.

“다른 나요?”

민준이 되물었다.

“배우 민준이. 자신감 있는 민준이. 준비된 민준이. 그런 민준이.”

준호가 지하철 플랫폼에 도착했다. 그리고 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이 극도로 진지했다.

“형이 아까 말했잖아요. 형이 거짓을 유지할 에너지가 없다고. 그럼 지금 형은 뭘…”

민준이 말했다.

“지금 형은 에너지를 모으고 있는 거야.”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볍지만 확실한 무게. 그것은 애정이었을까, 아니면 통제였을까.

“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알겠지?”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그 손의 무게를 느꼈다. 어제 밤 자신의 가슴팍에 얹혔던 그 손. 그리고 지금 자신의 어깨에 얹혀있는 그 손. 두 손의 무게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어제의 손은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했던 손이었고, 지금의 손은 어딘가에 남겨두려고 하는 손이었다.

“알겠어요.”

민준이 말했다.

지하철 열차가 들어왔다. 민준과 준호는 타올랐다. 오전의 지하철. 사람들이 많았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거짓을 들고 가고 있는 사람들. 민준은 그 사람들 속에 서 있으면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다른 나. 배우 민준이. 자신감 있는 민준이.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생각했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 평범한 얼굴. 극도로 평범한 얼굴. 그 얼굴이 지금 어떤 표정을 가져야 할까.

지하철 안의 형광등. 그것이 모든 승객들을 밝혀주고 있었다. 민준도 그 빛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준호도. 준호는 민준의 옆에 서 있으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터널 속의 어둠을 향해. 마치 그곳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형.”

민준이 조용하게 말했다.

“뭐?”

준호가 대답했다.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으면서.

“아까 피자 가게에서 형이 말했던 것들. 그게 진짜 형의 마음이에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지하철이 강남역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고, 터널 밖의 세상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민준아.”

준호가 마침내 말했다.

“중요하지 않다고요?”

민준이 되물었다.

“넌 지금 그 PD를 만날 거고, 넌 다른 너로 변해야 할 거고, 그 과정에서 넌 누가 진짜 너인지를 잃어버릴 거야. 그렇게 되면 거짓이 뭔지, 진짜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게 돼.”

준호가 말했다.

“형은 지금 뭘 말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형은 지금 너한테 조언을 하고 있는 거야. 배우로서의 조언.”

준호가 이제 민준을 바라봤다.

“배우로서의 조언이요?”

민준이 되물었다.

“배우는 거짓을 진실처럼 보여주는 사람이야. 그게 배우의 일이야. 하지만 그 거짓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진짜가 되는 거야. 그리고 그때는 배우는 자신이 뭐하는 건지 모르는 상태가 되는 거지.”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봤다. 지하철의 손잡이를 집고 있는 손. 그 손의 떨림. 아니, 떨리지 않는 손. 굳혀있는 손.

강남역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11시 52분이었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까지는 도보로 8분. 민준과 준호는 빠르게 걸었다. 강남의 오후. 햇빛이 건물들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림자들은 건물 사이에 고여있었다.

더스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12시 정각이었다. 정확히. 마치 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민준아.”

준호가 건물 앞에서 말했다.

“네?”

“넌 지금부터 배우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민준의 어깨를 밀었다. 가볍게. 건물 입구 쪽으로.

민준은 그 밀침을 받으면서,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느꼈다. 건물 입구로. 엘리베이터로. 이수진의 사무실로. 그리고 그곳에는 넷플릭스 PD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PD는 자신이 어떤 배우인지를 평가할 것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가볍게. 마치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가져야 하는지를 확인하려는 듯이. 하지만 거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얼굴을 상상해야 했다. 그 평범한 얼굴. 극도로 평범한 얼굴. 그 얼굴이 지금 어떻게 변해야 할까.

건물 입구에서 준호는 멈췄다. 그는 민준을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여기까지야.”

준호가 말했다.

“형은 안 올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배우는 혼자 무대에 서야 해. 형은 뒤에 있을 거야. 항상.”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지금 정말로 혼자인 것을 느꼈다. 신림로의 피자 가게에서 나온 이후로, 자신이 계속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계속 혼자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건물 입구 앞에서, 그 혼자임이 극도로 명확해졌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 때, 시간은 12시 3분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봤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속에서. 그 평범한 얼굴. 극도로 평범한 얼굴. 하지만 지금 그 얼굴에는 뭔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자신감.

아니,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를 자신감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에서는 그 둘의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둘 다 같은 표정으로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시간은 12시 5분이었다. 이수진의 사무실은 한 층 아래였다. 아니, 위였다. 민준은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가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복도. 그 복도는 길었다. 극도로 길었다. 마치 자신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자신을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의 손. 그 손이 여전히 자신의 어깨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수진의 사무실 문이 보였다. 그 문 너머로 누군가가 있었다. 이수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 아마도 넷플릭스 PD일 것이었다.

민준은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극도로 미세한 떨림이었지만, 그것이 명확했다.

“들어와.”

이수진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준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변했다. 얼굴. 목소리. 걸음. 모든 것이.

그는 이제 민준이 아니었다. 그는 배우였다. 다른 누군가였다. 그리고 그 다른 누군가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를 자신감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무실 안의 두 사람은 그 차이를 보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그의 표정만 봤다. 그리고 그 표정이 자신감으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민준이 말했다. 아니, 그것은 민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배우 민준의 목소리였다. 낮고, 정확하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였다.

이수진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만족의 웃음이었다. 마치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웃음이었다.

“이분이 넷플릭스 PD야. 김 PD.”

이수진이 말했다.

김 PD는 민준을 자세히 봤다. 마치 그가 지금 무언가를 평가하고 있는 것처럼. 아니, 그는 정확히 뭔가를 평가하고 있었다. 민준이라는 배우를. 그의 외형. 그의 목소리. 그의 표현. 모든 것을.

“민 배우, 안녕하세요.”

김 PD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아래로는 뭔가가 있었다. 계산. 전략. 통제.

“안녕하세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 배우의 목소리였다.

“네가 지난번 넷플릭스 오디션을 봤지?”

김 PD가 물었다.

“네. 감사합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때 뭘 느꼈어?”

김 PD가 물었다.

민준은 그 질문에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해야 했다. 아니,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배우로서.

“그 씬이 제 마음을 많이 흔들었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어떻게?”

김 PD가 다시 물었다.

“아버지와의 관계. 그것이…”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가기 전에,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좋았다. 그것이 더 진짜 같았다.

“아버지와의 관계.”

김 PD가 반복했다.

“네. 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이수진이 민준을 봤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극도로 미세한 흔들림이었지만, 민준은 그것을 봤다.

“오디션 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어. 이번엔?”

김 PD가 물었다.

“지금은 더 준비되었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무엇을 위해?”

김 PD가 물었다.

민준은 그 질문을 받으면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위해 준비되었는지를 생각했다. 배역을 위해? 아니면 거짓을 위해? 아니면 자신을 잃어버리기 위해?

“배역을 위해. 캐릭터를 위해. 그리고 그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민준이 말했다.

김 PD가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만족의 웃음이었다.

“좋아. 이 배역은 네가 주인공이 아닐 거야. 주인공은 다른 배우가 할 거고, 넌 그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할 거야.”

김 PD가 말했다.

민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 역할.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역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 배우의 목소리였다. 어딘가로 떨리고 있었지만, 외면적으로는 자신감 있게 들렸다.

“촬영은 2주 후에 시작될 거야. 준비 기간은 2주. 충분해?”

김 PD가 물었다.

“충분합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좋아. 그럼 계약 조건은 이수진이 설명할 거고, 넌 스크립트를 받아. 읽어보고, 다음 주에 스크린 테스트가 있을 거야. 그때 너의 준비도를 보겠어.”

김 PD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김 PD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민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악수였다.

민준도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극도로 안정적이었다. 마치 그것이 다른 손인 것처럼.

“화이팅.”

김 PD가 말했다. 한국식 응원이었다.

“감사합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김 PD가 나갔다. 사무실에는 이제 민준과 이수진만 남았다.

“잘했어.”

이수진이 말했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민준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이제 뭐 할 거야?”

이수진이 물었다.

“스크립트를 읽어야 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래. 그리고…”

이수진이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민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게. 극도로 깊게. 마치 그녀가 지금 자신의 어딘가를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민준이 물었다.

“너는 지금 뭘 하고 싶어?”

이수진이 물었다. 그것은 준호가 피자 가게에서 물었던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배역을 잘하고 싶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것 말고.”

이수진이 말했다.

민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배역을 하고 싶은 것인가. 거짓을 유지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은 것인가.

“스크립트를 받아.”

이수진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책상 위의 파일을 집었다.

민준은 그 파일을 받았다. 그것은 매우 무거웠다. 종이의 무게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의 무게였다. 아버지 역할의 무게였다. 거짓의 무게였다.

사무실을 나올 때, 시간은 12시 35분이었다. 복도를 따라 걸어갈 때, 민준의 손은 파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준은 다시 자신의 얼굴을 봤다. 거울 속에서. 그 평범한 얼굴. 극도로 평범한 얼굴. 하지만 지금 그 얼굴에는 뭔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명확했다.

건물 밖에서 준호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신림로가 아니라, 더스타 건물 앞에서. 민준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어때?”

준호가 물었다.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주었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그것은 미묘한 변화였다. 기쁨과 공포가 섞인 표정. 마치 자신이 예상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아버지 역할이야?”

준호가 되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2주 준비 기간이?”

준호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민준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마치 그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평가하려는 듯이. 그리고 그 평가가 끝난 후, 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했어.”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민준은 그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자신도 이제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림로의 오후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햇빛이 점점 낮아지고 있었고, 그림자들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과 준호는 그 길어지는 그림자 속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민준의 손에는 여전히 스크립트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스크립트 안에는 아버지 역할이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역할.

하지만 민준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제 배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배우는 거짓을 진실처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제109화 끝 — 12,847자)

# 제109화: 선택의 무게

## 1부: 사무실 안의 침묵

사무실의 공기는 차갑고 정적했다. 이수진의 책상 앞에 앉은 민준은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오후의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 빛마저도 차갑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민준의 내면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이수진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깊었고, 그 안에는 뭔가를 판단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민준은 자신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를 문지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긴장. 그것이 지금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민준.”

이수진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다.

“당신은 배우로서 무엇을 원하세요?”

민준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생각해본 적이 있었지만, 그 대답을 찾지 못했었다. 성공? 명성? 그것들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아버지를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자신이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저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공허하게 들렸다. 자신의 귀에도 그렇게 들렸다. 이수진은 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짜 대답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배우?”

이수진이 되물었다.

“네. 자신의 역할을 진심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요.”

민준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신 있게.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거짓말이 아니라 불완전한 진실이었다.

이수진은 그의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실망의 한숨이 아니었다. 마치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대답을 다시 확인하는 한숨이었다.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주겠습니다.”

이수진이 말했다. 그 말은 갑자기 나온 것처럼 들렸지만, 민준은 그것이 오랜 고민의 결과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버지 역할?’

민준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것은 엑스트라 역할이 아니었다.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 드라마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그것은 민준이 지금까지 맡았던 어떤 역할보다도 무거웠다.

“아버지 역할이요?”

민준이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당신은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수진이 말했다.

그 말은 마치 칼처럼 민준의 가슴을 꿰뚫었다. 자신의 아버지. 그것은 민준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 되려고 했다. 마치 운명이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처럼.

“2주의 준비 기간을 드리겠습니다.”

이수진이 계속했다.

“2주?”

민준이 물었다.

“촬영은 그 다음주부터 시작됩니다. 당신이 그 시간 안에 역할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수진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마치 그녀가 이미 민준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그녀가 이미 민준의 미래를 본 것처럼.

민준은 그 확신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은 책임이었다. 자신을 믿어준 사람에 대한 책임. 자신의 역할을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마주해야 한다는 책임.

‘거짓을 하고 싶은 것인가? 거짓을 유지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은 것인가?’

민준의 내면에서 그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자신은 이미 거짓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거짓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어딘가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 2부: 무게의 정체

“스크립트를 받아.”

이수진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파일을 집었다. 그 파일은 두꺼웠다. 많은 장의 종이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민준은 그 파일을 받았다. 손가락이 파일의 모서리를 접했을 때, 그는 그것의 무게를 느꼈다.

‘매우 무겁다.’

그것은 종이의 무게만이 아니었다. 민준은 그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의 무게였다. 아버지 역할의 무게였다. 거짓의 무게였다.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의 무게였다.

파일을 들고 일어나면서 민준은 이수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미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마치 이 만남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이. 마치 민준은 이제 자신의 결정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이.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이수진은 고개를 들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것은 축하의 손짓이 아니었다. 그것은 출발의 손짓이었다. 마치 그녀가 민준을 어딘가로 보내려는 것처럼.

## 3부: 복도를 걷는 남자

사무실을 나올 때, 시간은 정확히 12시 35분이었다. 민준은 시계를 봤다. 오후의 햇빛이 복도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그것이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걸어갈 때, 민준의 손은 파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왜 떨리지?’

민준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신경이 손까지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두려움의 신호였다.

복도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배우들, 매니저들, 제작진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성공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자신들의 거짓이 진실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나도 저들처럼 걸어가야 한다.’

민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걸음을 다시 정렬했다. 손의 떨림을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얼굴을 정리했다. 마치 자신이 이미 배우인 것처럼. 마치 거짓이 자신의 본성인 것처럼.

엘리베이터가 복도의 끝에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자신도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 4부: 거울 속의 자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민준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거울 벽을 봤다.

그곳에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 극도로 평범한 얼굴. 특별한 것이 없는 얼굴. 수백, 수천의 배우 지망생 중에서 구분되지 않는 얼굴.

‘이 얼굴로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한다.’

민준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얼굴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주 미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것은 무엇일까?

두려움? 아니다. 두려움은 이미 깊숙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결정? 아마도. 자신이 이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어떤 것.

하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변화였다. 자신이 배우가 되어가고 있다는 변화. 자신의 거짓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변화. 그리고 그 변화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변화.

“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준호의 목소리였다.

## 5부: 기다림의 무게

건물 밖에서 준호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신림로가 아니라, 더스타 건물 앞에서. 민준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준호의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천진난만한 기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기대였다. 마치 자신이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있는 것처럼.

“어때?”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빨랐다. 마치 자신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것처럼.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주었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고 했다.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그것은 미묘한 변화였다. 눈이 커졌고, 입가가 올라갔다. 기쁨과 공포가 섞인 표정. 마치 자신이 예상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기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에 대한 공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 역할이야?”

준호가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믿음이 가지 않는 듯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2주 준비 기간이?”

준호가 물었다. 마치 그것이 모든 것의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네.”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민준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마치 그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평가하려는 듯이. 그리고 그 평가가 끝난 후, 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했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를 민준은 알 수 없었다.

‘정말 축하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에 대해 안도하는 것일까?’

민준은 준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준호도 이제 배우인 것처럼. 마치 준호도 거짓을 진실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고마워.”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민준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제 더 이상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준호의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왜냐하면 자신도 이제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6부: 길어지는 그림자

신림로의 오후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햇빛이 점점 낮아지고 있었고, 그림자들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건물들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의 그림자도 그것에 따라 길어지고 있었다.

민준과 준호는 그 길어지는 그림자 속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말없이. 그저 함께 걷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마치 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스크립트는 언제부터 읽어?”

준호가 물었다.

“오늘부터요.”

민준이 대답했다.

“어려울 것 같아?”

준호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준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자신이 이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정말로 알 수 없었다.

준호는 그의 대답에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조롱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감의 웃음이었다. 마치 자신도 그런 감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민준의 손에는 여전히 스크립트가 들려있었다. 파일은 무거웠고, 그것을 들고 걸어가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미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스크립트 안에는 아버지 역할이 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역할. 자신이 피하고 싶었던 그 역할.’

민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 7부: 두려움의 끝

하지만 민준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거짓이었다. 두려워했다. 엄청나게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제 배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배우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었다. 배우는 자신의 두려움을 용기처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배우는 거짓을 진실처럼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민준은 이제 그런 배우가 되어야 했다.

“2주 안에 할 수 있어?”

준호가 다시 물었다.

“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 거짓이 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민준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배우의 거짓은 반복하면 진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신림로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계속 지나가고 있었고, 저녁은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배우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민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배우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민준은 그 생각을 받아들였다. 완전히. 전부. 자신의 모든 것을 포함해서.

“고마워, 준호.”

민준이 말했다.

“뭐가?”

준호가 물었다.

“믿어줘서.”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민준의 어깨를 다시 한 번 쳤다.

“넌 잘해낼 거야. 나는 그걸 알고 있어.”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왜냐하면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녁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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