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103화: 침묵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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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3화: 침묵의 무게

침대 위의 준호를 바라보며, 민준은 자신의 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할지를 몰랐다. 들어오는 쪽인가, 아니면 나가는 쪽인가. 이 공간이 그렇게까지 작았던 적은 없었다. 4년을 여기서 살아오면서, 그 좁음에 적응했고, 그것을 고향처럼 여기기까지 했는데, 준호가 앉은 지금 이 6평의 방은 관계의 무게로 압축되고 있었다.

준호는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의 목이 뒤로 젖혀 있었고, 곰팡이 지도가 그의 검은 눈동자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꽉 다물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깨져버릴까봐.

“형…”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작았다.

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의 눈이 민준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눈빛에는 뭔가가 흐르고 있었다. 눈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 극도의 자제력으로 눌러내려는 감정의 물결.

“넌 이렇게 살고 있었어?”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것이 더 강렬했다. 낮은 목소리가 때론 큰 목소리보다 더 깊이 박혔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다. 준호는 이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4년?”

“네.”

“혼자?”

“네.”

준호가 일어섰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의 무릎이 책상의 모서리에 닿았다. 이 공간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좁았다. 어른 남자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준호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반지하의 작은 창. 그 창으로는 지표면의 발들이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 바지 끝자락. 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공간의 거주자는 세상의 일부만 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처럼.

“넌 여기서 꿈을 봤어?”

준호가 창문을 통해 거리의 발들을 보며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어떤 꿈?”

“주연을 하는 꿈이요. 무대 위에서 빛을 받는 꿈.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꿈.”

민준이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의 음성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음성인 것처럼 들렸다. 마치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준호가 돌아섰다. 그리고 민준의 얼굴을 정확히 바라봤다. 눈에서 눈으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향하는 그런 시선.

“그 꿈은 여기서 자라났어? 이 천장 아래에서?”

“모르겠어요.”

민준이 말했다.

“아니면 여기 갇혀서 자라난 거야?”

준호가 다시 물었다. 그의 질문은 온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폭력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정확했다.

민준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자신이 4년간 해왔던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반지하에서 천장의 곰팡이를 보면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악몽 속에 있는 건지를 구분하려고 했던 그 질문.

준호는 창밖을 다시 봤다. 그리고 한 손을 창문의 프레임에 얹었다. 차갑고 금속성의 감촉이 그의 손가락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회상의 톤을 띠고 있었다.

“뭘요?”

“너는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것. 이 공간에서. 이 삶에서. 그리고 그것은 단지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

준호가 창밖의 발들을 계속 보며 말했다.

“그게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영혼의 이동.”

준호가 대답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민준의 가슴에 뭔가가 꽉 차올랐다. 숨이 차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양손으로 쥐어짜는 것처럼. 준호의 말이 자신의 몸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형은 어떻게 나갔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아주 작았다. 거의 숨결의 수준이었다.

준호가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손을 자신의 가슴팍에 얹었다.

“여기서. 여기서 나갔어.”

준호가 말했다.

“가슴에서?”

“마음이 깨어날 때까지 계속 싸웠어. 내 마음이 나를 인정할 때까지. 내가 살아볼 자격이 있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준호가 이제 다시 민준을 바라봤다.

“넌 아직도 싸우고 있어?”

“네.”

민준이 대답했다.

“지금?”

“네. 지금도.”

민준이 반복했다.

준호는 조용히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 웃음이 그의 입 모서리에서 떨렸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삼켰다. 마치 약처럼.

“좋아.”

준호가 말했다.

“좋다고요?”

민준이 물었다.

“싸우고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뜻이야.”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 준호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이번에는 민준의 손을 끌어당겨서, 자신 옆에 앉히며.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이 6평의 공간. 천장의 곰팡이가 여전히 지도를 그리고 있는 이 공간에서.

“여기서 자주 왔어?”

민준이 물었다. 준호의 어깨가 자신의 어깨와 거의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응. 정기적으로.”

준호가 대답했다.

“내가 모르고?”

“응.”

“왜요?”

민준이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자신의 공간을 방문했다는 것. 그것이 침해인지 보호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준호는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그의 호흡만 들렸다. 그리고 밖에서 지나가는 차의 엔진음. 그리고 위층의 누군가가 물을 받는 소리. 이 반지하가 얼마나 많은 음성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민준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던 공간도, 사실은 많은 음성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너를 지키고 싶었어.”

준호가 마침내 말했다.

“지킨다고요?”

민준이 반복했다.

“응. 이 공간 안에서. 이 공간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너무 빨리 나가지 않도록.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나가지 않도록.”

준호가 설명했다.

“저는 준비가 됐어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음성에는 확신이 있었다. 또는 그것을 연기하고 있었다. 자신도 구분할 수 없었다.

“아직 아니야.”

준호가 대답했다.

“어떻게 알아요?”

“내가 알아. 내 경험으로. 너는 아직도 자신을 지탱하는 것과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의 차이를 모르고 있어.”

준호가 말했다.

그 말이 정확하게 민준의 심장에 박혔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민준은 정말로 그 차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견디고 있는 것이 강인함인지 아니면 자기기만인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럼 언제 나갈 수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침대의 헤드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봤다. 곰팡이 지도를 바라봤다. 마치 그 지도가 어디론가 가는 길을 나타내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건 너가 정하는 거야. 내가 아니라.”

준호가 대답했다.

“형은 뭘 했어요? 언제?”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민준은 자신의 질문이 너무 깊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느꼈다. 준호에게는 어떤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그런 상처.

하지만 준호가 침묵을 깨는 것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나는 뛰었어. 달아났어. 모든 걸 버리고.”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매우 낮았다.

“모든 걸?”

민준이 물었다.

“집도. 학교도. 처음으로 사귀던 사람도.”

준호가 나열했다.

“그리고?”

민준이 다시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후회하고 있어. 매일 후회하고 있어.”

준호가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민준은 자신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준호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준호는 항상 강한 사람이었다. 보호자이자 안내자인 그런 사람.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럼 저는?”

민준이 물었다.

“너는 달아나지 마. 대신 걸어가. 천천히. 정확하게.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서.”

준호가 대답했다.

“형은 뒤를 돌아봐요?”

“매일.”

준호가 확인했다.

민준은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지표면의 발들. 무언가 신발을 신은 발. 슬리퍼를 신은 발. 맨발.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 반지하 방의 위에서. 그 발들의 주인들은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공간에서. 이 침묵 속에서.

“언제 나가야 해요?”

민준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내일 아침.”

준호가 대답했다.

“어디로?”

“세트장. 영화 촬영. 드디어 시작이야.”

준호가 말했다.

민준의 심장이 다시 한 번 빨라졌다. 영화 촬영. 그것은 무엇인가를 의미했다. 변화. 무언가 새로운 것의 시작. 그리고 그것이 두려웠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자신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민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정확히 견봉 부분에.

“너는 이미 하고 있어.”

준호가 말했다.

“뭘요?”

민준이 물었다.

“살아가고 있어. 그것이 가장 어려운 연기야.”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밤 11시 47분. 화면에는 알 수 없는 번호가 떠 있었다. 국번 02. 서울 번호. 하지만 저장되지 않은 번호.

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으라는 의미였다.

민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의 목소리. 낮고 차분한 목소리.

“민준이? 나다. 이수진이야.”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CEO 이수진.

민준의 피는 역류했다. 밤 11시 47분에 CEO가 전화를 거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특히 개인 휴대폰으로.

“네, 대표님. 무슨…”

“내일 세트에 나와.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30분 정도.”

이수진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혼자 와.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아.”

이수진이 덧붙였다.

“네, 알겠습니다.”

민준이 반복했다.

그리고 통화는 끝났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다시. 계속. 끝나지 않고.

준호가 민준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뭐라고 했어?”

“내일 촬영 전에 대표님을 만나야 해요.”

민준이 말했다.

“혼자?”

“네.”

민준이 확인했다.

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의 손이 민준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뭔가 문제가 있어?”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창밖을 다시 봤다. 지표면의 발들. 그 발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조심해.”

준호가 말했다.

“뭘 조심해야 해요?”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답해.”

준호가 말했다.

“형도 모르세요?”

민준이 물었다.

“난 그 사람의 전략이 뭔지 알 수 없어. 그건 내 영역이 아니야.”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민준은 깨달았다. 준호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이 강한 배우, 이 보호자도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내일 아침, 그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민준은 천장의 곰팡이를 다시 봤다. 갈색 점들의 지도. 그 지도가 이제는 길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딘가로 가는 길. 하지만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더 깊은 어둠으로 가는 길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밤은 계속 흘러갔다. 준호는 침대에서 자지 않았다. 대신 책상에 앉아서 밤새 민준을 지켜봤다. 마치 파수꾼처럼. 그리고 민준은 그것을 느꼈지만, 말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미 말해진 것 같았다. 침묵 속에서. 이 6평의 공간에서. 천장의 곰팡이 지도 아래에서.

새벽 5시. 준호가 민준을 깨웠다. 손으로 어깨를 꼬독꼬독 두드려서. 마치 어린 아이를 일으키듯.

“가야 해.”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눈을 떴다. 그리고 처음으로 밤새 자신이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호의 존재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았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반지하를 떠났다. 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하지만 동쪽 하늘이 약간 밝아오고 있었다. 새로운 날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세트장에서, 민준은 CEO 이수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촬영 시작 30분 전. 그녀는 어떤 방에 있었고, 민준은 복도에 서 있었다. 준호는 더 이상 그의 옆에 없었다.

이수진의 문이 열렸다.

“들어와.”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은 문을 통과했다. 또 다른 세계로. 또 다른 선택지로. 그 이후의 모든 것이 변할 그 순간으로.

# 새벽의 선택

## 제1부: 불안의 밤

“뭐라고 했어?”

준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희미한 야경 불빛이 그의 윤곽을 강조했다. 마포대교의 야경이 반지하 방의 작은 창으로 들어와 그의 얼굴을 파랗게 물들였다.

민준은 침을 삼켰다. 목이 건조했다. 아침부터 대사 연습을 하다가 저녁까지 쭉 하다 보니 목이 쉬어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준호 형이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일 촬영 전에 대표님을 만나야 해요.”

민준이 천천히 말했다. 목소리를 최대한 차분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뭔가 큰 문제인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내일 촬영 전에? 촬영 시간 전에?”

준호가 다시 묻자,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촬영이 오전 10시 시작이라고 했는데, 이수진 대표님이 9시에 세트장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민준의 말이 끝나자 준호는 창밖으로 돌아섰다. 창밖에는 밤거리를 서둘러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만 보였다. 반지하 방의 창 높이가 정확히 무릎에서 발목 사이 정도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와 신발, 때로는 끌려가는 짐들만 보였다. 그 발들이 끊임없이 흘러갔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느리게, 하지만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준호는 민준의 어깨에 얹었던 손을 천천히 떨어뜨렸다. 그 손이 내려가면서 공기 중에 남겨진 온기가 사라졌다.

“혼자?”

준호가 여전히 창밖을 보며 물었다.

“네.”

민준이 확인했다.

그 순간, 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영화에서 보던 그런 표정이 아니라, 진짜 불안감과 의심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의 턱 근육이 바짝 긴장되었고, 눈빛이 변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마치 창밖의 사람들에게 뭔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처럼.

“뭔가 문제가 있어요?”

민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준호가 이런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을.

준호는 한참을 더 창밖을 바라봤다. 밤거리의 발들이 계속 지나갔다.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 명품 브랜드의 운동화, 닳아빠진 구두, 무거운 부츠… 수많은 발들이 수많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각각의 발은 각각의 인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준호의 눈에는 그 모든 발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향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모르겠어.”

준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의 날카로움과는 달랐다. 오히려 피곤해 보였다. 밤을 지새운 사람의 목소리처럼.

“하지만 조심해.”

“뭘 조심해야 해요?”

민준이 다시 물었다. 그는 한 발 다가서고 싶었지만, 뭔가가 그를 멈췄다. 준호가 풍기는 이 불안감이, 이 거리감이 그를 정지시켰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답해.”

준호가 드디어 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창밖의 야경으로 물들어 있었다. 파란색. 차갑고, 깊고, 헤아릴 수 없는 파란색.

“정확하게?”

민준이 반복했다.

“응. 그 사람의 전략을 모르면, 그 사람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모르면, 넌 그 방에서 틀린 답을 할 거야. 그리고 한 번 틀린 답을 하면…”

준호는 말을 멈췄다.

“형도 모르세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이 있었다.

“난 그 사람의 전략이 뭔지 알 수 없어. 그건 내 영역이 아니야. 난 배우고, 넌 배우야.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뭔가 다른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어.”

준호가 말했다. 그의 손이 다시 민준의 어깨를 찾았다. 하지만 이제 그 손은 보호자의 손이라기보다 경고하는 손처럼 느껴졌다.

민준은 그 순간 깨달았다. 준호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이 강한 배우, 이 보호자, 이 형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내일 아침, 그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민준의 가슴에 납덩이처럼 떨어졌다.

민준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반지하 방의 천장에는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가지각색의 갈색 점들이 마치 옛날 지도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 점들은 어떤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그려진 도로처럼. 그 도로들이 이루는 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달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더 깊은 어둠으로 가는 길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형, 저 점들 봤어요?”

민준이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곰팡이지.”

준호가 대답했다.

“근데 뭔가… 지도 같지 않아요? 길 같은…”

“그것도 그렇고, 그냥 곰팡이야. 이 방은 습도가 높아서…”

준호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는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 제2부: 밤의 파수꾼

밤은 계속 흘러갔다. 11시, 12시, 1시… 시간은 숫자일 뿐이었다.

민준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자지 못했다. 천장의 곰팡이 점들을 세어봤다. 하나, 둘, 셋… 어느 순간부터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점들이 자꾸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준호는 침대에서 자지 않았다. 대신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 화면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준호가 화면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준호의 시선은 민준 쪽으로 향해 있었다. 마치 파수꾼처럼. 밤새 누군가를 지켜보는 파수꾼처럼.

“형… 자야 해요.”

민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응.”

준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내일 촬영 있어요. 형도 촬영 있잖아요.”

“응.”

“그럼 좀 자세요.”

“넌?”

준호가 물었다.

“저? 저도… 잘 거예요.”

민준이 거짓말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 밤을 자면서 넘길 수 없다는 것을. 내일을 앞두고.

준호는 한 번 더 민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 거짓말을 받아들인다는 듯이. 아니면, 그 거짓말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라며.

“내일 그 방에 들어가기 전에 기억해. 모든 게 의도가 있다는 거. 그 사람이 하는 말, 그 사람이 하는 행동, 그 사람의 침묵… 모든 게.”

준호가 말했다.

“그러면… 형은 뭘 해요?”

“난 복도에 있을 거야.”

“그렇게까지…”

“그건 내 일이야.”

준호가 차갑게 말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밤 2시. 밤 3시. 밤 4시.

이 시간대는 마치 다른 세상의 시간 같았다. 낮이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사이의 어딘가. 사람들이 꿈꾸는 시간. 또는 악몽을 꾸는 시간.

민준은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잠이 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도 깊은 수면. 준호의 존재 때문일 것 같았다. 파수꾼이 지켜주고 있다는 그 느낌이, 그 확신이, 민준의 몸을 이완시켰을 것이다.

## 제3부: 새벽의 각성

새벽 5시.

민준의 어깨가 톡톡톡 두드려졌다. 부드럽지만 확실한 터치. 마치 어린 아이를 깨우듯 하는 그 터치는 준호의 손이었다.

민준의 눈이 떠졌다. 천장의 곰팡이가 가장 먼저 보였다. 이제는 그 점들이 낯설지 않았다. 그 점들이 자신의 밤을 지켜줬으니까.

“가야 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밤 동안의 무거움을 떨쳐낸 것처럼 맑아 있었다.

민준은 천천히 일어났다. 몸이 묵직했다. 마치 물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밤새 정말로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반지하를 떠났다. 계단을 올라갔다. 콘크리트 계단의 각 스텝이 발밑에서 차갑게 느껴졌다. 그 찬 감각이 민준을 완전히 깨웠다.

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하지만 동쪽 하늘이 약간 밝아오고 있었다. 검은색에서 남색으로, 남색에서 진한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새로운 날이 오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이, 멈출 수 없이.

“형.”

민준이 준호를 바라봤다.

“응.”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준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그 손은 경고의 손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손처럼 느껴졌다.

“넌 할 수 있어.”

그것이 준호가 한 말의 전부였다.

## 제4부: 세트장

세트장은 한국의 대형 드라마 제작사가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창동에 위치한 그곳은 마치 영화 속 도시처럼 설계되어 있었다. 거리가 있고, 카페가 있고, 사무실 건물들이 있었다. 모두 가짜였지만, 모두 진짜처럼 보였다.

민준과 준호는 오전 8시에 도착했다. 촬영은 10시 시작이었다. 2시간의 버팀목이 있었다.

준호는 자신의 메이크업 트레일러로 들어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형, 화이팅!”

민준이 외쳤다.

“응. 넌 더 화이팅.”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민준은 혼자 남겨졌다. 세트장의 복도에서. 아직 촬영팀들이 모두 모이지 않은 이른 시간에. 그는 이수진 대표가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야 했다.

그 사무실은 세트장의 한 구석에 있었다. 진짜 건물처럼 지어진 가짜 사무실. 민준은 그 건물 앞에 섰다. 시계를 봤다. 8시 40분. 아직 20분이 남아 있었다.

20분. 그것은 길었다.

민준은 사무실 앞에서 마음을 정했다. 그는 집중했다. 준호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답해.’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9시. 정각.

민준은 문을 두드렸다. 톡톡톡. 세 번의 신중한 노크.

“들어와.”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이수진 대표의 목소리였다.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였지만, 그 목소리에는 나이를 초월한 무언가가 있었다. 권력. 경험. 그리고 어떤 깊은 계산.

문이 열렸다.

민준은 문을 통과했다.

또 다른 세계로. 또 다른 선택지로. 그 이후의 모든 것이 변할 그 순간으로.

사무실의 문이 닫혔다.

준호는 여전히 복도에 있었다. 메이크업을 받은 얼굴로, 촬영 의상을 입은 채로. 마치 파수꾼처럼. 하지만 이제 그가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곳의 천장에는 곰팡이가 없었다. 대신 수많은 조명이 있었다. 영화의 빛들. 그것들이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준호는 그 빛 아래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저 문 너머에서, 민준은 자신의 밤을 건너온 그 용기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옳은 말이기를 바라며.

이것이 시작이었다. 배우 민준이 거대한 드라마 속에 진입하는 순간. 그리고 그의 옆에서 지켜보는 형, 준호. 둘 다 알고 있었다. 이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질지, 나쁜 방향으로 달라질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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