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1화: 어둠 속의 호출
준호의 팔이 느슨해졌을 때, 민준은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떨리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목에서 발끝까지. 내부의 어떤 기계가 고장 난 것처럼, 통제 불능의 진동이 그의 몸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손이 민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마치 악기를 다루듯. 현을 진정시키듯.
“차에 타자.”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다시 침착했다. 뭔가를 결정한 사람의 침착함.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안 사람의 목소리.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준호의 얼굴이 주차장의 형광등 아래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45세에 가까워진 남자의 얼굴. 눈 아래의 주머니. 이마의 주름.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강렬한 것은 그의 눈이었다. 검은 눈동자가 고정되어 있었다. 민준을 향해. 다른 곳을 보지 않고.
“어디로 가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집.”
준호가 대답했다.
“형 집?”
“너의 집.”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꿨다. 민준의 심장이 다시 한 번 수축했다. 자신의 반지하 원룸으로 가는 것. 천장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그곳으로. 자신이 4년간 살아온 그 공간으로. 그곳에 준호를 데려가는 것.
준호는 민준의 표정 변화를 읽었다. 그는 항상 그랬다. 거의 초능력처럼 민준의 생각을 읽어냈다.
“너는 자신의 공간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게 무섭지?”
준호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거짓이 없었다.
“왜?”
“그러면 내가 사라질 수 없으니까요.”
민준이 말했다. 그 문장이 나온 후, 그는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그의 얼굴을 붉혔다.
준호는 웃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이 민준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양쪽 볼을 모두 감싸는 방식으로. 엄마가 아이를 다루듯.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이. 그것보다 더 신중하게.
“넌 사라지지 않는다.”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마지막 문장인 것처럼, 그는 민준을 차로 인도했다.
조수석에 앉자, 민준은 차 내부를 자세히 보았다. 처음으로. 이전에는 준호의 목소리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시보드 위의 작은 인형. 파란 토끼. 그리고 CD 케이스. 20년 전 영화 OST들. 준호의 취향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
준호가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조용하게 울렸다. 그리고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너는 내가 왜 너를 계속 지켜봤는지 알고 싶어?”
준호가 차를 운전하면서 물었다. 신호대기선에서. 빨간 신호가 그들을 멈춰세웠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너에게서 봤어. 나이에 맞지 않는 어떤 것. 순수함? 아니지. 그게 아니라… 절망이 있어도 항복하지 않는 그런 것.”
준호가 말했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차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너를 처음 봤을 때 어쨌든 떨어질 배우라고 생각했어. 조연으로 살다가, 결국 포기할 사람이라고. 하지만 넌… 넌 다르게 떨어졌어. 마치 떨어지는 것 자체가 연기의 일부인 것처럼.”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봤다. 조수석 의자 위에 놓인 손.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저는 그냥… 살았을 뿐이에요.”
민준이 말했다.
“그래. 넌 그냥 살았어.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야.”
준호가 대답했다.
서울의 밤은 빠르게 흘러갔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신분당선을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민준의 반지하 원룸이 있는 신림동 방향으로. 거리가 진행될수록, 건물들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더 낡아졌다. 더 오래되었다. 마치 과거로 가는 것처럼.
“여기가 맞아?”
준호가 물었다. 민준의 골목 앞에서.
“네.”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차를 천천히 골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 골목에는 큰 차가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준호는 마치 이 공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조종했다. 사이드 미러를 조절하고. 각도를 계산하고. 차의 폭을 극한으로 압축했다.
“몇 번 와봤어?”
민준이 물었다.
“많이.”
준호가 대답했다.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차가 멈췄을 때, 민준의 원룸 입구가 보였다. 작은 계단. 그 아래 반지하 창. 그 창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침대. 준호는 차를 끄고, 아무 말 없이 내렸다. 민준도 따라 내렸다.
밤의 신림동은 조용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이미 잠들어 있었다. 다만 편의점 불빛과 몇몇 pc방의 파란 불빛만 깨어있었다. 이곳은 서울이 자는 동안 깨어있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수험생들. 무직자들. 새벽까지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배우.
“저는 이 집이 자존심 상해요.”
민준이 말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왜?”
준호가 물었다. 뒤에서 따라오면서.
“형은 이런 곳에서 살지 않잖아요. 형이 보는 게…”
민준이 말했지만, 문을 열기 전에 멈춰 섰다.
“내가 본 게 뭐라고 생각해?”
준호가 물었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열쇠를 들었다. 이 열쇠는 빨간색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용해온 색. 수백 번 삽입했다가 빼냈다. 열었다가 잠갔다. 금속의 끝부분이 닳아서 광택이 없었다.
문이 열렸다.
반지하 원룸의 냄새가 나왔다. 곰팡이 냄새. 오래된 침구류의 냄새.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누군가 살아가고 있다는 냄새. 준호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불을 켜도 돼?”
민준이 물었다.
“응.”
준호가 대답했다.
민준은 손을 뻗어 벽의 스위치를 찾았다. 형광등이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밝혀졌다. 불안정한 밝음. 마치 이 방이 자신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방이 드러났다. 약 10평. 침대. 책상. 옷장. 그리고 천장 위의 곰팡이 자국. 형태가 이상했다. 마치 어떤 지도처럼. 혹은 어떤 생물처럼. 민준은 오래 그것을 봤다.
“넌 이 천장을 봐?”
준호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매일?”
“네.”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준호는 그 천장을 보았다. 오래 봤다. 마치 거기에 뭔가 쓰여있는 것처럼. 코드처럼. 메시지처럼.
“넌 여기서 뭘 생각해?”
준호가 물었다.
“죽음.”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매일?”
“예.”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가 민준을 바라봤다. 그 눈이 다시 고정되었다. 다른 곳을 보지 않고. 민준의 눈과 만날 때까지.
“그리고 넌 살았어.”
준호가 말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게 뭔지 알아?”
준호가 물었다.
“뭔데요?”
민준이 물었다.
“그게 배우가 되는 거야. 죽음을 매일 본다. 하지만 살아. 그리고 그 경험을 캐릭터에 준다. 그럼 캐릭터가 진짜처럼 보여.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는 것처럼.”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약을 먹는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이. 주사처럼.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형은 뭘 본 거예요? 매일?”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침대에 앉았다. 민준의 침대 위에. 침대가 그의 무게로 인해 내려앉았다.
“나는 실패를 봤어. 매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나는 2번 주인공이야. 영원히 2번. 그리고 그걸 알았을 때… 나는 그 사실에 죽었어. 하지만 여전히 일어나. 계속 연기를 해. 왜냐하면 다른 길이 없으니까. 아니지. 다른 이유가 있어.”
준호가 멈췄다.
“뭔데요?”
민준이 물었다.
“너 때문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온 후, 오랜 침묵이 흘렀다. 민준은 서 있었다. 여전히. 문 근처에. 준호를 바라보면서. 이 남자가 자신의 침대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형은 왜 저를 필요로 하나요?”
민준이 물었다.
“왜냐하면 넌 아직 희망이 있으니까.”
준호가 대답했다.
“저도 형처럼 2번이 될 수 있어요.”
민준이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1번이 될 수도 있고, 2번이 될 수도 있고, 끝내 떨어질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모든 결과 앞에서, 넌 여전히 서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게…”
준호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그게 영원한 거야. 캐릭터가 죽어도, 배우는 남아. 배우가 떨어져도, 그 사람은 남아. 그게 진짜 배우가 되는 거야. 항상 남는 사람.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사람.”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반지하 원룸을 다시 보았다. 곰팡이 천장. 낡은 침구.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삶이었다. 4년. 혹은 그 이상. 이 공간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기억되기를 꿈꾸면서.
“형이 저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민준이 물었다.
“응.”
준호가 대답했다.
“영원히?”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일어섰다. 침대에서. 민준에게 가까워졌다. 한 걸음. 두 걸음. 거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의 손이 민준의 뺨에 닿았다. 따뜻한 손. 그 온기가 민준의 피부를 녹였다.
“영원히.”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벨소리가 아닌 진동. 계속되는 진동. 누군가가 전화를 거는 것. 밤 11시 47분.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걸까. 민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봤다.
발신자: 박미라
그 이름이 화면에 표시되었을 때, 민준과 준호 둘 다 움직였다. 준호는 손을 내렸다. 민준은 전화를 받기 위해 몸을 굳혔다.
“받아.”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감독님.”
민준이 말했다.
“민준이, 지금 어디야?”
박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평상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긴급한 것 같았다. 뭔가 결정적인 것 같았다.
“네, 집에…”
민준이 시작했다.
“내일 아침 9시에 세트장으로 와. 중요한 미팅이 있어. 그리고 혼자 와.”
박미라가 말했다.
“네, 감독님. 무슨 일인데요?”
민준이 물었다.
“내일 봐서 알아. 자야 해. 내일이 길 거야.”
박미라가 말했고, 전화는 끝났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준호를 다시 봤다. 준호는 창문을 보고 있었다. 반지하 창. 밤의 신림동. 거리의 불빛. 그곳을 보고 있었다.
“형, 뭘 생각하고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내가 실패한 거 같아.”
준호가 말했다.
“뭘 실패했어요?”
민준이 물었다.
“너를 지키는 것. 이 업계에서. 이 모든 것에서.”
준호가 말했다.
“형은 실패하지 않았어요.”
민준이 말했다.
“내일이 길 거야, 라고 했어. 박미라가.”
준호가 말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건 좋은 신호일 수도 있고, 나쁜 신호일 수도 있어. 배우는 그 사이에서만 산다. 좋은 신호와 나쁜 신호의 사이에서. 그리고 그 불확실성이 우리를 죽인다. 천천히.”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천장을 다시 봤다. 곰팡이 자국. 형태 없는 지도. 그 위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내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형, 내일 같이 있어 주실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약속할 수 없어.”
준호가 대답했다.
“왜요?”
민준이 물었다.
“왜냐하면 넌 혼자 가야 하니까. 네 다리로. 네 목소리로. 네 얼굴로. 아무도 그걸 도와줄 수 없어. 그게 배우가 되는 거야.”
준호가 말했다.
“그러면 형은 뭘 해요?”
민준이 물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릴 거야. 아침까지. 그리고 넌 세트장에서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여기 있을 거야.”
준호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온 후, 민준은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가 침대에 누웠다. 침대 위에. 민준의 침대 위에. 그리고 민준은 차가운 바닥에 앉았다. 등을 벽에 기대고. 준호를 바라보면서. 이 남자가 자신을 위해 밤을 새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밖에서 신림동의 밤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편의점의 불빛. pc방의 음성. 누군가의 발자국. 누군가의 웃음. 누군가의 울음.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로, 내일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민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2시 13분. 8시간 47분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길었다. 그것은 짧았다. 그것은 그냥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그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아직 몰랐다.
# 밤의 신림동, 그리고 기다림
휴대폰 화면이 꺼졌다. 어두운 액정 위에 자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민준은 그 검은 화면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식은 화면에서 떨어지면서 작은 정전기음이 났다. 마치 누군가 한숨을 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어둠이 깔렸다.
그 어둠 속에서, 준호의 모습이 다시 선명해졌다. 형은 창문을 보고 있었다. 반지하 창. 아스팔트 위쪽으로 보이는 신림동의 거리. 가로등 불빛이 창유리에 반사되어 노란색 테두리를 만들고 있었다. 형의 얼굴은 그 불빛에 반으로 잠겨 있었다. 절반은 보이고, 절반은 어둠 속에 있었다.
민준은 형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형의 눈빛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창밖의 거리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너머의 무언가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그 눈빛을 추적할 수 없었다. 마치 형의 생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형, 뭘 생각하고 있어요?”
민준의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좁은 반지하 방 안에서는 꽤 크게 들렸다. 침대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형이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준호는 창문에서 눈을 돌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돌아서는 데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것처럼. 그의 눈이 민준을 향했다. 그 눈 안에는 무언가 깊고 검은 것이 들어있었다. 후회? 피로? 아니면 더 무거운 무언가?
“내가 실패한 거 같아.”
준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중얼거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각 음절이 선명했다. 절연된 방 안에서 그 말은 돌처럼 떨어졌다.
“뭘 실패했어요?”
민준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형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깊은 주름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너를 지키는 것.”
준호가 말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창문으로 돌아갔다.
“이 업계에서. 이 모든 것에서.”
형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민준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형이 자신의 무게를 짓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혼자.
“형은 실패하지 않았어요.”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형의 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형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신림동의 밤을 보고 있었다. 거리의 불빛들. PC방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푸른빛. 어딘가의 편의점 간판. 그 모든 것들이 형의 눈에 비쳤지만, 형은 그것들을 보지 않고 있었다.
“내일이 길 거야, 라고 했어. 박미라가.”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마치 중얼거림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는 형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형의 어깨. 형의 목. 형의 단발머리. 형의 모든 것이 무거워 보였다.
“그건 좋은 신호일 수도 있고, 나쁜 신호일 수도 있어.”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마치 이 말을 여러 번 중얼거려본 것처럼, 이미 다듬어진 문장처럼 들렸다.
“배우는 그 사이에서만 산다. 좋은 신호와 나쁜 신호의 사이에서. 그리고 그 불확실성이 우리를 죽인다. 천천히.”
준호의 말이 공중에 떠올랐다. 민준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몸 전체로. 가슴으로. 배로. 팔다리로.
민준의 눈이 천장으로 향했다. 천장의 곰팡이 자국들. 까만 얼룩들. 그것들이 마치 지도처럼 보였다. 어디로 가는 길을 나타내는 지도. 하지만 그 지도는 형태가 없었다. 방향이 없었다. 목적지가 없었다. 그냥 검은 얼룩들이 천장 전체에 퍼져있을 뿐이었다.
그 천장 위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시침이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매초마다, 매분마다, 매시간마다.
“형, 내일 같이 있어 주실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민준은 인식했다. 그것을 숨기려고 했지만, 숨길 수 없었다.
“약속할 수 없어.”
준호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마치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왜요?”
민준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왜냐하면 넌 혼자 가야 하니까. 네 다리로. 네 목소리로. 네 얼굴로.”
준호가 돌아서 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가 민준의 눈동자와 만났다. 그 안에는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사랑? 두려움? 아니면 그 둘을 합친 것?
“아무도 그걸 도와줄 수 없어. 그게 배우가 되는 거야.”
준호의 말이 마무리되었다. 마치 판결처럼. 마치 운명처럼.
“그러면 형은 뭘 해요?”
민준이 물었다. 이제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나는 여기서 기다릴 거야. 아침까지.”
준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안에는 무언가 단단한 것이 들어있었다. 결연함. 약속. 맹세.
“그리고 넌 세트장에서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여기 있을 거야.”
준호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 위에. 민준의 침대 위에. 그의 몸이 매트리스를 눌렀다. 스프링이 신음을 내었다. 마치 고통 속에서 나오는 신음처럼.
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있었다. 등을 벽에 기대고. 찬 벽이 등을 통해 척추를 차갑게 식혔다. 그는 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 위의 형. 눈을 감은 형. 숨을 쉬고 있는 형.
이 남자가 자신을 위해 밤을 새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갈 길을 지켜보기 위해. 아침이 올 때까지.
밖에서 신림동의 밤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편의점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누군가가 들어가고, 누군가가 나왔다. PC방에서 음성이 들렸다. 게임 효과음. 누군가의 웃음. 누군가의 욕설. 누군가의 발자국이 아스팔트를 두드렸다. 누군가의 웃음이 밤 공기를 가르고 올라왔다. 누군가의 울음이 어딘가 모를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로, 내일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검은 밤 너머에서. 천천히, 착실하게, 멈추지 않고.
민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켰다. 밝은 빛이 눈을 때렸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2시 13분.
8시간 47분이 남아있었다.
민준은 그 숫자를 들여다봤다. 그것은 길었다. 정말 길었다. 오늘 하루가 며칠처럼 느껴진 것처럼, 이 8시간 47분도 그럴 것 같았다. 그것은 산처럼 높았다. 그것을 올라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짧았다. 정말 짧았다. 아침은 금방 올 것이다. 태양은 금방 떠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형은 일어날 것이고, 민준은 나가야 할 것이고, 세상은 계속 돌아갈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냥 시간이었다. 흐르는 시간. 멈추지 않는 시간. 시간은 항상 같은 속도로 흐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냥 흐른다. 흘러간다. 지나간다.
민준은 휴대폰을 다시 내려놨다. 화면이 꺼졌다. 다시 어둠이 깔렸다.
그 어둠 속에서, 침대 위의 형이 보였다. 눈을 감은 형. 하지만 자고 있지 않은 형. 귀를 쫑긋 세운 형. 민준의 숨을 듣고 있는 형. 민준을 지키고 있는 형.
그리고 민준은 생각했다. 이 밤이 끝나면 무엇이 올 것인가. 성공? 실패? 아니면 그 사이의 회색?
그는 아직 몰랐다.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밤이 끝나면, 그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것.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영원히.
시간이 흘렀다. 한 분. 두 분. 다섯 분.
창밖의 신림동은 여전히 깨어있었다. 그곳은 밤이 되어도 절대 잠들지 않는 곳이었다. 꿈꾸는 자들이 모여있는 곳. 실패한 자들이 다시 일어서려는 곳. 성공을 꿈꾸며 밤새 공부하는 자들의 거리.
민준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제는.
그리고 형도 그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밤새. 아침까지. 그리고 계속.
밤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