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3화: 그물의 중심
민준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의 얼굴과 준호의 얼굴이 겹쳐있는 그 반사상 속에서. 형광등이 만드는 흰 빛이 모든 것을 균등하게 드러냈다. 숨김이 없는 공간. 그런데 지금 민준이 느끼는 것은 숨김이 가득한 공간의 폐쇄감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은…”
준호가 끝내려던 문장을 민준이 완성했다.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돌아다닐 거야.”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다른 종류였다. 이전의 침묵은 폭발 직전의 고요함이었다면, 지금의 침묵은 폭발 이후의 잔해 속 고요함이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민준의 말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박미라가 편집본을 보냈다고 했어. 제작사에. 주요 배우들에게.”
민준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거울을 통해 준호를 바라보지 않고, 직접 준호의 눈을 마주쳤다.
“응.”
준호가 한 글자로 대답했다.
“그럼 이준혁이 그걸 봤다는 거고…”
“응.”
“그리고 그 영상 속에서 나는…”
민준이 말을 멈췄다. 자신이 그 영상 속에서 어떻게 보였는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아도 준호는 알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민준 자신도 봤으니까.
공포. 거절. 욕망. 모순.
그 모든 것이 한 프레임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누군가의 손 안에 있었다. 이준혁의 손. 박미라의 손. 투자자의 손. 그리고 그 손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거미줄처럼. 그리고 민준은 그 거미줄의 한 부분이었다. 아니, 먹이였다.
“넌 왜 지금 말해주는 거야?”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한 발 물러섰다. 그의 몸이 거울의 반사상에서 빠져나갔다. 이제 민준의 얼굴만 남았다. 혼자. 완전히 혼자.
“왜냐하면 너는 알아야 하니까. 그리고 너는 지금부터 선택을 해야 하니까.”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평탄해졌다. 배우로서의 평탄함.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 숙련된 음성.
“무슨 선택?”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선택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선택의 환상이었다.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길이 같은 곳으로 향하는 그런 선택.
“계속할 거야, 아니면 그만둘 거야.”
준호가 말했다. 마치 그것이 가장 간단한 질문인 것처럼.
“그만둔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
민준이 물었다.
“영상은 이미 나갔어. 박미라의 클라우드에. 제작사의 서버에. 그리고 아마 더 많은 곳에. 넌 그걸 지울 수 없어.”
준호가 답했다.
“그럼 계속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
민준이 다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중얼거리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넌 그 시스템 안에서 어떤 종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드라마가 성공하면 넌 유명해진다. 유명해지면 너의 이미지가 고정된다. 고정되면 사람들은 너를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너를 함부로 다룰 수 없어.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자신들도 피해를 입으니까.”
준호가 설명했다.
민준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것이 얼마나 황당한 논리인지. 자신을 팔아서 자신을 보호한다는 논리. 거기에 복종해야 자유로워진다는 논리. 그것은 악순환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것은 악순환이 아니라 순환 자체가 없었다. 그것은 그냥 아래로 내려가는 나선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만둔다면?”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모든 대답이었다.
“폐기되겠네. 나는 폐기될 거야. 계약 위반이라고 해서.”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응.”
준호가 한 글자로 답했다.
민준은 거울을 떠나 대기실의 소파에 앉았다. 준호가 앉아있던 그 자리에. 소파의 가죽이 여전히 따뜻했다. 다른 사람의 체온. 또 다른 갇힌 사람의 체온.
“넌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민준이 물었다.
“처음부터.”
준호가 답했다.
“처음부터? 캐스팅할 때?”
“응.”
“그럼 넌 왜 나한테 이 역할을 하라고 했어?”
민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은 거의 외침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외침은 대기실의 좁은 공간에서 흡수되어, 메아리 없이 사라졌다.
준호는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손이 의자의 등받이를 잡았다. 마치 자신을 지탱할 뭔가가 필요한 것처럼.
“왜냐하면 다른 배우를 이 자리에 보낼 수 없었으니까.”
준호가 말했다.
“뭐라는 거야?”
민준이 물었다.
“이 역할은 원래… 나한테 제안된 거였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마치 자신의 고백을 아무도 들으면 안 되는 것처럼.
민준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34세의 배우. 아니, 더 이상 배우가 아닌 무언가. 그는 준호의 얼굴에서 어떤 종류의 감정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준호의 얼굴은 완전히 통제되어 있었다. 배우로서의 완벽한 통제.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민준은 이제 이해했다.
“원래 이 드라마의 남주는… 나였어. 아버지 역이 아니라, 그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역. 그게 원래 제안이었어.”
준호가 계속했다.
“그런데?”
민준이 물었다.
“그런데 박미라가 내 대신 너를 원했어. 처음엔 이해가 안 갔어. 왜 이렇게 경력이 적은 배우를 원하는지. 하지만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어. 너는 거기에 노출되어 있으니까. 너는 이미 그 시스템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준호가 잠시 멈췄다.
“넌 나와는 다르게, 거부할 수 없으니까.”
그 문장이 떨어졌을 때, 민준은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아니, 멈추지 않았다. 더 빠르게 뛰었다. 마치 갇힌 새처럼. 폐쇄된 공간 안에서.
“박미라가 날 원했어? 직접?”
민준이 물었다.
“직접은 아니지. 하지만 그 원함의 결과물이야. 투자자가 박미라에게 요청했어. 박미라는 그 요청에 따라 나를 빼고 너를 넣었어. 그리고 이준혁이 그걸 실행했어.”
준호가 설명했다.
“왜? 나한테 뭔가 있어?”
민준이 물었다.
“너한테는 뭔가가 없는 게 있어.”
준호가 답했다.
그 말의 의미를 민준은 몇 초 동안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해했을 때, 그는 자신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느꼈다. 혈액이 모두 얼굴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너한테는 뭔가가 없는 게 있어.
즉, 민준은 힘이 없었다. 배경이 없었다. 보호자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준은 완벽한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완벽한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그들이 원했던 것이었다.
“그럼 지금 넌 뭐야? 나한테?”
민준이 준호를 바라봤다.
“나는…”
준호가 말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마치 뭔가가 내부에서 부서지는 것처럼.
“나는 넌 보호하려고 했던 배우야. 하지만 동시에 넌 희생시키는 배우야. 그것이 나의 모순이야. 그리고 그것이 내가 견디기 가장 힘든 부분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민준은 다시 거울 쪽을 봤다. 거울에는 이제 두 개의 얼굴이 보였다. 하나는 27세의 배우. 하나는 34세의 배우. 아니, 두 명 모두 배우가 아니었다. 두 명 모두 피해자였다. 다만 피해의 형태가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넌 이제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해.”
준호가 계속했다.
“첫 번째는 촬영을 계속하는 거야. 그러면 넌 드라마의 일부가 되고, 드라마가 성공하면 넌 어떤 형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감금이야. 넌 그 성공의 틀 안에 갇히게 될 거야.”
준호가 설명했다.
“두 번째는?”
민준이 물었다.
“두 번째는 촬영을 거부하고, 계약을 위반하는 거야. 그러면 넌 자유로워질 거야. 하지만 동시에 폐기될 거야. 이 업계에서 넌 끝날 거야.”
준호가 답했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들이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아무리 이해해도, 아무리 인정해도, 그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외에는 없어?”
민준이 물었다.
“있어. 세 번째가 있어.”
준호가 말했다.
“뭐?”
민준이 물었다.
“넌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선택하지 않는 거야. 그러면…”
준호가 잠시 멈췄다.
“그러면?”
“그러면 모든 게 계속 진행될 거야. 넌 촬영할 거야. 넌 영상에 남을 거야. 그리고 넌 점점 더 깊어져. 그 시스템 안에. 그 거미줄 안에. 그리고 어느 순간, 넌 자신이 거미줄의 일부인지, 아니면 먹이인지도 모르게 될 거야.”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대기실의 시계를 봤다. 그것은 오후 5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대기실에 있었는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의미 있는 진행을 멈춘 듯했다. 이것은 대기실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밀실이었다. 그리고 그 밀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 열린 문 밖에도 같은 밀실이 있었다.
“넌 뭘 해?”
민준이 준호에게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민준의 옆에 앉았다. 소파 위에. 그들의 어깨가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이.
“나는… 계속 진행할 거야. 나는 이미 너무 깊어. 나는 이미 그 시스템의 일부야. 그리고 나는 이제 나 자신을 꺼낼 수 없어. 그래서 나는 너를 도와줄 거야. 어떤 선택을 하든지.”
준호가 말했다.
“어떻게?”
민준이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할 거야. 왜냐하면 넌 내가 유일하게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 자신은 못 보호해도, 너는 할 수 있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야.”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준호의 손을 봤다. 그것도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묘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준호가 다시 말했다.
“뭐?”
민준이 물었다.
“넌 지금 당장 나가야 해. 촬영장에서. 박미라가 너를 찾을 거야. 너의 반응을 보기 위해. 너의 영상을 봤을 때의 반응을.”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일어섰다. 그의 다리가 이제 다시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지탱은 불안정했다. 마치 모래 위에 서 있는 것처럼.
“그리고 넌 뭐라고 말할 거야? 박미라한테?”
민준이 물었다.
“그냥… 좋다고. 영상이 좋다고. 그리고 넌 더 잘할 수 있다고. 그리고 다음 촬영에서 더 좋은 것을 보여주겠다고.”
준호가 답했다.
민준은 대기실의 문 앞에 섰다. 그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닫혀 있지 않았다. 단지 민준이 그것을 닫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준호…”
민준이 준호의 이름을 불렀다.
“응?”
준호가 답했다.
“이게 맞는 건가?”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하지 않음이 모든 대답이었다.
민준은 대기실을 나갔다. 촬영장으로. 다시. 또 다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준은 자신이 이미 그 거미줄의 중심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자신이 먹이인지 아니면 거미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박미라는 모니터 앞에서 민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 있었다. 편집본의 재생 버튼 위에.
“민준이.”
그녀가 말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영상 봤어?”
그녀가 물었다.
“아니요.”
민준이 거짓말했다.
박미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미소였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 깊은 것. 무언가 위험한 것.
“그럼 이제 봐.”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 위에서, 민준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것은 여전히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거절로. 욕망으로. 그 모든 모순으로.
“이게 넌 거야?”
박미라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정말?”
박미라가 다시 물었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하지 않음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박미라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다음 촬영은 이틀 뒤야. 준비해.”
그녀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었지만,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이미 그 거미줄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도 점점 잊고 있었다.
촬영장을 나간 후, 민준은 자신의 반지하 원룸으로 돌아갔다. 천장의 곰팡이 자국들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것들은 자라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민준은 침대에 누웠다. 슬리핑백 위에. 그리고 그 밤, 그는 꿈을 꾸지 않았다. 아니, 꿈을 꾸었지만,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 중에 하나는 확실했다. 민준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12,847자
# 닫힌 문, 열린 함정
## 1부: 인식의 순간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닫혀 있지 않았다. 민준이가 그것을 닫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마치 자기 암시처럼, 혹은 자기기만처럼.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민준은 촬영장의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얇은 쿠션이 그의 몸무게로 눌려 내려갔고, 소파 틈새에서는 오래된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그는 손가락을 꼬았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손끝이 차가웠다. 아니, 손가락만이 아니었다. 팔도, 다리도, 심지어 가슴도 차가웠다. 그것은 에어컨 때문만은 아니었다.
“준호…”
민준이 옆에 앉아 있는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목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응?”
준호가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의 표정은 무관심해 보였다. 아니,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습관적이었다. 이런 질문들을 수백 번 받아왔던 사람의 표정.
“이게 맞는 건가?”
민준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준호는 여전히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났다. 10초. 20초. 그 침묵이 점점 무거워졌다. 준호의 입술이 움직였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했다. 마치 말을 하려고 했다가 자신을 제지하는 것처럼.
“…”
준호는 결국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답하지 않음이 모든 대답이었다.
민준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준호의 침묵, 그의 눈동자의 움직임, 그의 어깨가 약간 솟아오르는 것, 그 모든 것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는 메시지.
민준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마치 매우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것처럼. 그의 다리가 떨렸다. 신경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 2부: 다시, 또 다시
“촬영 준비됐어?”
PD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렸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대답할 수 없었다. 목구멍에 뭔가 막혀 있는 것 같았다.
대기실을 나간 그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복도는 길었다.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마치 무한히 이어지는 터널 같았다. 벽의 포스터들이 그의 얼굴을 따라왔다. 이전 프로젝트의 배우들의 얼굴. 그들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도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 그들도 이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던 사람들.
촬영장은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큰 카메라들, 조명 장비들, 각종 소품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다. 스태프들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도 민준을 쳐다보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고민, 그의 공포, 그의 내적 갈등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게 맞나?’
민준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돈이 필요했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하지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민준은 자신이 이미 그 거미줄의 중심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첫 계약서에 서명했을 때? 아니면 처음 박미라를 만났을 때? 혹은 더 이전,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리고 그 중심에서, 민준은 더 이상 자신이 먹이인지 거미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 3부: 박미라의 미소
모니터 앞에는 박미라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마치 그것이 그녀의 단골 자리인 것처럼. 그녀의 손가락은 마우스 위에 있었다. 편집본의 재생 버튼 위에. 그 손가락은 피부색이 좋았다. 매니큐어도 깔끔했다. 그렇지만 그 손가락에는 뭔가 냉정함이 묻어 있었다.
“민준이.”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부르는 것처럼. 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는 강제성이 숨어 있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영상 봤어?”
박미라가 물었다. 그녀의 눈이 민준을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
민준은 이미 영상을 봤다. 두 번이나. 첫 번째는 우연히, 준호의 노트북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두 번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얼굴이 정말 그런지 확인하기 위해.
“아니요.”
민준이 거짓말했다.
박미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아름다운 미소였다. 정말로. 만약 그 미소 뒤에 다른 감정이 없었다면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 깊은 것. 무언가 위험한 것. 그것은 마치 물 위의 잔잔한 표면 아래에 숨겨진 깊은 계곡 같은 것이었다.
“그럼 이제 봐.”
박미라가 말했다. 그리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이 밝아졌다.
그 안에는 민준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민준이 아니었다. 아니, 민준이 맞았다. 생김새는 같았다. 하지만 표정이 달랐다. 눈이 달랐다. 그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 다른 감정도 섞여 있었다. 거절. 욕망. 부끄러움. 쾌감. 그 모든 모순되는 감정들이 한 얼굴에 뒤섞여 있었다.
‘그것이 나인가?’
민준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맞았다. 코의 형태, 입술의 모양, 이마의 주름까지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거울을 보았을 때, 거울 속의 자신이 자신과 다른 표정을 지었을 때의 그런 느낌. 낯설음. 불편함. 두려움.
“이게 넌 거야?”
박미라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목소리는 자동으로 나왔다. 뇌의 지시 없이.
“정말?”
박미라가 다시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스러운 톤이 섞여 있었다. 마치 자신의 대답이 거짓임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묻는 것처럼.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하지 않음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박미라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더 깊어진 미소였다.
“좋아. 그럼 다음 촬영은 이틀 뒤야. 준비해.”
그녀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었지만, 동시에 듣지 않는 척했다. 그의 귀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의 뇌는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두 개로 분열된 것처럼.
‘이틀 뒤?’
그는 이미 그 거미줄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도 점점 잊고 있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움직일수록 더 깊게 얽혀드는 그런 느낌.
## 4부: 반지하의 밤
촬영장을 나간 후, 민준은 자신의 반지하 원룸으로 돌아갔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거리를 걸으면서,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피했다. 거울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피했다. 가게의 유리창, 지나가는 차의 윈도, 수로의 물 표면까지.
원룸에 들어섰을 때, 그곳은 여전히 어두웠다.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의 운명. 그는 조명을 켰다. 형광등이 깜박거렸다. 수명이 거의 다 된 형광등. 빛이 온전하지 않았다.
천장의 곰팡이 자국들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것들은 이전보다 더 커 보였다. 마치 자라고 있는 것처럼. 아니,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 매주 조금씩. 하지만 너무 천천히 변하기 때문에, 매일 봐도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확연했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행동했다. 자리를 차지하고, 확장하고, 번식하고. 언젠가는 이 방 전체를 점령할 것처럼.
민준은 침대에 누웠다. 슬리핑백 위에.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이 방에서, 위층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신발을 신은 발이 바닥을 밟는 소리. 그것은 마치 자신의 가슴을 밟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밤, 민준은 꿈을 꾸지 않았다.
아니, 꿈을 꾸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수면 중에도 그의 뇌는 쉬지 않고 있었다. 계속해서 같은 생각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돈이 필요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되돌릴 수 있는가?’
‘이틀 뒤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질문들 사이사이로, 박미라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모니터 위의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낯선 얼굴. 그 감정으로 뒤엉킨 얼굴.
새벽 3시경, 민준은 깼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천장을 바라봤다. 곰팡이 자국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것들은 보였다. 마치 자체로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 5부: 받아들임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준호에게 전화를 했다.
“뭐해?”
“집에 있어.”
“만날 수 있어?”
짧은 침묵.
“됐어. 이미 계약한 거고, 돌리기도 어려워.”
준호의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그게 맞는 건가?”
민준이 같은 질문을 또 던졌다.
“그게 중요한가? 이미 들어간 거고, 나가는 것도 쉽지 않고, 결국 뭘 하든 후회할 거야. 그렇다면 차라리…”
준호는 말을 마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하지 않은 부분이 가장 명확했다. 차라리 계속 나아가는 것이 낫다는 뜻. 적어도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의 일들이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
“…응.”
민준이 대답했다.
그 날 오후, 민준은 짐을 쌌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다음 촬영을 위한 준비였다. 검은 옷. 무표정한 표정. 그 모든 것들을 준비했다.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전사처럼.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그 이틀 동안 민준은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커피만 마셨다. 검은 커피. 쓴 맛이 혀를 마비시켰다. 마치 그 쓴 맛이 자신의 모든 감정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세 번째 날 아침, 민준은 다시 촬영장으로 갔다.
박미라는 역시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좋은 아침.”
그녀가 말했다.
“…아침입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 날의 촬영은 이전과 달랐다. 더 복잡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여했다. 더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박미라의 요구사항도 더 구체적이고 까다로워졌다.
“좀 더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숨기지 마. 드러내. 그 모든 혼란을 드러내.”
그녀의 지시가 계속되었다.
민준은 지시에 따랐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공포를, 욕망을, 부끄러움을, 그 모든 것을. 카메라 앞에서.
촬영이 끝났을 때, 민준은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6부: 깨달음과 받아들임
그 중에 하나는 확실했다.
민준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미줄 속에 갇힌 나방처럼, 민준은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었다. 거미는 이미 자신의 먹이를 완전히 감싸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민준은 더 이상 그것에 저항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항했다. 손가락을 꼬았다 펼쳤다를 반복했고, 밤새 천장을 노려봤고, 준호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던졌다.
하지만 저항은 지쳤다. 저항은 피로했다. 저항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차라리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차라리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것도 자기기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자기기만이 이제 생존의 도구였다. 그것이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박미라는 계속 일감을 주었다.
다음 프로젝트. 그 다음 프로젝트. 또 그 다음 프로젝트.
민준은 모든 일감을 받았다. 거부하지 않았다. 더 이상 거부할 힘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문이 처음부터 닫혀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이 그것을 닫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는 것을.
문은 열려 있었다. 항상 열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열려 있는 문으로 나갈 힘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더 무서운 일일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