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91화: 증거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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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1화: 증거의 무게

준호가 휴대폰을 민준의 손에 집어넣는다. 화면에는 편집본이 떠 있다. 촬영 현장에서 찍은 영상이 아니라, 이미 색보정과 사운드 디자인이 입혀진 컷. 박미라의 작업이다. 그녀는 빠르다.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촬영 중간중간 편집본을 완성해간다. 마치 자신의 비전을 즉시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화면 속의 민준은 여전히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이 다가온다. 세 번째 테이크. 가장 좋은 테이크라고 박미라가 말했던 그것.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것은 분명히 공포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무언가 다르다. 그것은 욕망이기도 하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그 양가적인 감정이, 민준의 눈과 입가에 완벽하게 기록되어 있다.

“감독이 이거 좋아해?”

민준이 묻는다. 그의 목소리는 낮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야. 이미 세 명의 제작 담당자한테 보냈어. 평가는 ‘완벽함’이야.”

준호가 말한다. 그는 민준의 뒤에 서 있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은 어둡다.

민준은 화면을 더 크게 확대한다. 자신의 얼굴의 세부까지. 눈의 각도, 입술의 미세한 떨림, 광대뼈 아래의 그림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감정의 모든 층이. 민준은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른다. 이것은 그의 연기인가. 아니면 그의 자백인가.

“문제가 뭐야?”

민준이 묻는다.

“문제는… 이제 이 영상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거야.”

준호가 말한다. 그는 문을 잠근다. 아직 잠기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듯이.

“극장에? 넷플릭스에?”

민준이 묻는다.

“그것도 있지. 하지만 지금 더 문제인 건…”

준호가 잠시 말을 끊는다. 그의 얼굴은 무언가를 결정하는 중이다. 말할 것인가. 말하지 않을 것인가. 그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다.

“뭐?”

민준이 다시 묻는다. 그의 눈은 여전히 화면 위에 있다. 자신의 얼굴 위에.

“이 영상 속의 넌… 정말 좋은 배우처럼 보여. 거의 완벽하게 좋은 배우처럼. 그런데 그게 문제야. 완벽하면, 사람들은 궁금해진다. 저 배우의 실제 모습이 뭘까. 저 깊이는 어디서 나왔을까. 저 감정은 진짜일까, 연기일까.”

준호가 말한다.

“그게 왜 문제야?”

민준이 묻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위험하다는 것을. 주목은 위험이다. 주목은 조명이다. 조명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림자는 모든 비밀을 드러낸다.

“이준혁이 봤을 거야. 이 편집본.”

준호가 말한다.

민준의 손이 얼어붙는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가락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민준이 묻는다.

“박미라가 보냈을 거야. 아니면 제작사에서. 주요 배우들은 항상 자신들의 장면을 본다. 감독의 비전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이준혁은… 이준혁은 그냥 단순한 배우가 아니야.”

준호가 말한다.

“뭐라는 거야?”

민준이 화면을 끈다. 자신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너 이준혁이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

준호가 묻는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는다. 준호의 표정만 본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 그것은 두려움이다. 하지만 두려움의 종류가 다르다. 민준을 걱정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두려움. 무언가를 드러내야만 하는 두려움.

“이준혁은 배우가 아니야. 그냥 배우면 이 정도까진 아니야. 그 사람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제작사의 누군가와 깊은 관계가 있어. 그게 배우 관계인지, 아니면 다른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박미라의 선택이 아니었어. 누군가가 캐스팅했어.”

준호가 말한다.

“그러면?”

민준이 묻는다.

“그러면 넌 지금 누군가의 소유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캐릭터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그 배우 앞에서 너의 가장 취약한 순간을 연기하고 있어. 그리고 그게 영상에 남았어. 그 취약함이. 그 거부감이. 그 거의 공포에 가까운 표정이.”

준호가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진다. 마치 누군가가 들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민준은 거울을 본다. 자신의 얼굴을. 준호의 얼굴. 대기실의 형광등. 그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다. 현실과 반사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넌 혹시… 이준혁이 뭔가 했다고 생각해?”

준호가 묻는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이다.

“했어. 손이 더 깊숙하게 닿으려고 했어. 두 번째 테이크보다 세 번째에. 더 깊게.”

민준이 말한다. 그것은 그가 준호에게 처음으로 말하는 진실이다.

준호의 얼굴이 경직된다. 거울 속의 얼굴이 마치 동상처럼. 그 경직된 표정이 다시 풀어진다. 천천히. 마치 자신을 제어하는 중인 것처럼.

“그 손을 피했어?”

준호가 묻는다.

“영상에 남겨졌어. 그걸 피하는 게 장면의 일부가 됐어. 감독이 그걸 원했어. 그래서 좋다고 했어. 통제 불능의 감정. 저항. 하지만 동시에 끌려가는 약함.”

민준이 말한다.

준호는 침묵한다. 그 침묵은 길다. 거울 속에서, 민준은 준호의 생각을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읽을 수 없다. 준호의 얼굴은 무언가를 숨기는 데 완벽하게 훈련되어 있다.

“그걸 밖으로 낼 거야.”

준호가 결국 말한다.

“뭘?”

민준이 묻는다.

“이 영상. 그리고 너.”

준호가 말한다.

“어떻게?”

민준이 묻는다.

“그 영상이 이미 퍼지고 있어. 박미라가 보낸 게 아니라, 누군가가 스틸컷을 올렸어. SNS에. 인스타그램, 틱톡. ‘곧 공개될 한국 최고의 신작 드라마. 이 신인 배우 봤어?’ 이런 식으로.”

준호가 말한다.

민준의 심장이 떨어진다. 아니, 이미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명시적으로 표현된다. 물리적인 감각으로. 가슴 속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

“누가?”

민준이 묻는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아. 이미 시작됐어. 그리고 한 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어. 네 얼굴이 이제 주인 없는 상품이 돼버렸어.”

준호가 말한다.

“그래도 극장에서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있지 않아?”

민준이 묻는다. 그것은 희망이다. 약한 희망.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시간? 넌 지금 다시 촬영해야 해. 내일부터. 시간이 없어. 그리고 넌 벗어날 수도 없어. 계약이 있거든.”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계약을 생각한다. 그 계약. 3년 전에 서명한 그것. 당시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어쨌든 배우 일을 하려면 어떤 계약이든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 계약은 족쇄처럼 느껴진다. 목에 감겨 있는 줄처럼.

“그럼 이제 뭐 하는 거야?”

민준이 묻는다.

“넌 그냥 계속 해. 촬영을 계속 해. 그리고 이 악화를 지켜봐. 그 영상이 어디까지 갈 건지. 누가 봤을 건지. 그리고… 이준혁이 뭘 할 건지.”

준호가 말한다.

“이준혁이?”

민준이 묻는다.

“그 사람은 단순한 배우가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그 사람은 누군가의… 말하자면, 손이야. 그리고 그 손은 원래 너 같은 배우를 움직이는 데 능숙해.”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다.

“날 해칠 거라는 거야?”

민준이 직접 묻는다.

“해칠 수도, 안 칠 수도 있어. 그건 그 사람의 기분이야. 그리고 너가 얼마나 잘 움직이는지에 따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거울을 본다. 다시. 자신의 얼굴을. 그 얼굴은 여전히 아버지의 손길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영원히. 영상이 남아 있는 한, 그 거부감은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너는 왜 날 지켜주려고 해?”

민준이 갑자기 묻는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질문과는 다르다. 그것은 준호에 관한 질문이다.

준호가 침묵한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이 변한다. 여러 번. 마치 여러 개의 표정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분노. 슬픔. 그리고 무언가 더. 그것은 민준이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다.

“왜냐하면… 넌 아직도 모르거든. 이 세계가 뭔지. 그리고 난 이미 알아. 오래 전부터. 그래서… 그냥 조금 더 늦게 알아도 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너처럼.”

준호가 말한다.

“뭘 알아?”

민준이 묻는다.

“넌 지금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그게 맞아. 넌 지금 아버지의 아들을 연기하고 있어. 하지만 동시에, 넌 실제로 누군가의 아들처럼 행동하고 있어. 그리고 그 둘의 차이가… 이 업계에서는 없어. 연기가 현실이 돼. 현실이 연기가 돼. 그리고 넌 그 사이에서 살아가야 해. 영원히.”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그 말을 이해한다. 부분적으로는. 하지만 완전히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현실과 영화를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카메라가 꺼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호의 말은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카메라가 꺼져도, 영상은 남는다. 그리고 그 영상이 현실이 된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민준이 묻는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촬영하고, 그 영상이 어디로 가는지 봐. 그리고 누가 너를 어떻게 대하는지 봐. 그게 곧 알려줄 거야. 이 세계의 규칙을.”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휴대폰을 다시 켜본다. SNS를 확인한다. 준호가 말했던 것이 맞다. 이미 여러 계정에서 스틸컷이 올라와 있다. 민준의 얼굴. 아버지의 손. 그 장면. 몇 시간 전의 일이 벌써 수천 개의 좋아요를 받고 있다. 댓글은 더 많다.

“이 신인 배우 누구야?” “진짜 미쳤다. 연기 뭐하는 거야?” “이 배우 앞으로 조심해서 봐야겠다” “저 얼굴 어디서 봤는데?” “누가 이 배우에 대해 알아?”

댓글들이 민준을 찾아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아직 없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있다. 그리고 얼굴이 있으면, 이름은 곧 따라온다.

“봤어?”

준호가 묻는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연민에 가깝다.

“응.”

민준이 대답한다.

“그럼 이제 알았지.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모두가 너를 보고 있어. 그리고 너는 그들을 피할 수 없어. 이제부터는 넌 공개적인 물건이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거울을 본다. 다시. 마지막으로. 그 거울 속의 얼굴은 여전히 아버지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거부는 프라이빗하지 않다. 그것은 공공의 것이다. 모두의 것이다.

“그리고 넌… 그걸 좋아해야 해. 아니면 적어도 견딜 수 있어야 해. 왜냐하면 이제 뒤로 돌아갈 길이 없거든.”

준호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그 말이 끝나자, 대기실의 형광등이 깜빡인다. 한 번. 그것은 정전이 아니다. 그냥 전구가 늙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을 다르게 본다. 그것을 신호로 본다.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신호. 그리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다는 신호.

“다시 촬영장으로 가야 해. 다음 씬이 기다리고 있어.”

준호가 말한다. 그는 문을 연다. 복도의 불빛이 들어온다.

“기다려.”

민준이 말한다.

준호가 멈춘다. 돌아본다.

“이준혁이… 내가 싫어하면 뭐해?”

민준이 묻는다.

“그건… 상관없어. 그 사람은 그냥 계속 다가올 거야. 너의 거부감이 뭐든 상관없이. 왜냐하면 그게 그 사람의 역할이거든. 너를 괴롭히는 것. 아버지로서 괴롭히는 것. 그리고 그 괴로움이 화면에 아름답게 담기면, 그것은 예술이 돼. 그것이 이 세계의 규칙이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손을 본다. 자신의 손. 여전히 떨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이 자신의 것인지, 카메라 앞의 캐릭터의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제 가자.”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일어난다. 거울을 한 번 더 본다. 그 거울 속의 얼굴은 이제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보인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민준은 단지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민준의 휴대폰이 또 울린다. 카톡. 모르는 번호다. 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너 잘했어. 정말 잘했어. 다음 씬에서 또 봐. 그때는 더 깊게 해봐. 약속해.”

발신인은 없다. 하지만 민준은 안다. 그것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메시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초대다. 더 깊은 곳으로의. 그리고 민준은 그 초대를 거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그리고 카메라는 영원히 돌아간다.


END OF CHAPTER 91

# 제91장 확장판: 거울 속의 타인

## 1부: 대기실의 침묵

대기실의 공기는 답답했다. 마치 누군가 이 좁은 공간에서 모든 산소를 빨아들인 것처럼. 민준은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얼굴인지는 더 이상 확실하지 않았다.

거울 속의 이미지는 창백했다. 조명이 너무 밝아서일까, 아니면 그가 정말로 그렇게 창백한 걸까. 민준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뺨을 톡톡 쳐봤다. 피부는 차갑고 딱딱했다. 마치 왁스 인형의 뺨을 누르는 것 같은 느낌. 그는 눈을 깜빡였다. 거울 속의 눈도 깜빡였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다.

“응.”

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거울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준호가 대기실로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슬리퍼를 신은, 느슨한 발걸음. 준호는 촬영 감독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전체 상황을 조종하는 사람이었다. 민준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거울을 오래 봤네.”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마치 아이를 달래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하지만 민준은 그 부드러움 뒤에 숨겨진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신은 날 이용하고 있어요.”

민준이 거울에 비친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손도 떨리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손가락까지 떨렸다.

“이용? 그건 좋은 표현이군.”

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즐거운 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냉소적인 웃음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농담을 했을 때, 그 사람의 의도를 이미 알아챈 사람이 하는 웃음.

“넌 뭘 원했어? 여기서. 이 촬영장에서.”

민준이 물었다. 이제 그는 거울에서 돌아섰다. 준호를 직접 바라봤다. 준호는 대기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커피 잔이 들려 있었다. 스타벅스 커피. 그 향기가 대기실의 답답한 공기를 조금 덮고 있었다.

“넌 뭘 원했나?”

준호가 되물었다. 그는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그 다음 또 한 모금. 마치 민준의 질문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민준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도 자신이 뭘 원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화면에 자신을 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인식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제… 이제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원했던 그것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기 때문이다.

“넌 평범한 걸 원하지 않았어. 내가 맞지?”

준호가 계속 말했다. 그는 커피를 내려놓고, 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검은색이었다. 깊고 어두운 검은색. 마치 그 안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처럼.

“평범한 삶이 아니라, 특별한 삶을 원했어. 모두가 너를 알기를 원했어. 너의 이름을 입에 담기를 원했어. 너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기를 원했어.”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준호의 말이 맞았다. 그것이 가장 화나는 부분이었다. 준호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 마치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본 것처럼.

“응.”

민준이 대답했다. 그것이 유일한 답이었다.

준호가 일어섰다. 그는 대기실을 천천히 걸었다. 한 발. 또 한 발. 그의 발걸음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민준이었다.

“그럼 이제 알았지.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모두가 너를 보고 있어. 그리고 너는 그들을 피할 수 없어. 이제부터는 넌 공개적인 물건이야.”

준호가 민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편안함이 아니라 압박감을 주었다. 마치 쇠사슬이 팔목을 조이는 것처럼.

민준은 다시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자신과 준호의 모습이 함께 비쳤다. 마치 부자(父子)처럼. 혹은 사냥꾼과 먹이처럼. 그 구분이 점점 불분명해지고 있었다.

## 2부: 거울의 진실

거울 속의 얼굴은 여전히 무언가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를 거부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거부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거부는 이제 프라이빗하지 않았다. 그것은 공공의 것이었다. 모두의 것이었다.

“그리고 넌… 그걸 좋아해야 해. 아니면 적어도 견딜 수 있어야 해. 왜냐하면 이제 뒤로 돌아갈 길이 없거든.”

준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민준의 어깨 위에 있었다. 그 손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마치 산이 민준의 어깨 위에 올라오는 것처럼.

민준은 손을 펼쳤다. 자신의 손. 그것은 떨리고 있었다. 아니, 떨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이 자신의 손을 조종하는 것처럼. 줄에 묶인 인형의 팔 같은. 그 느낌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민준은 더 이상 기억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끝나자, 대기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그것은 정전이 아니었다. 그냥 전구가 늙은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을 다르게 봤다. 그것을 신호로 봤다.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신호. 그리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다는 신호.

그 깜빡임 속에서, 민준은 자신의 삶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해봤다. 그것은 이 촬영장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훨씬 전부터였다. 아마도 그가 처음 연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부터였을 수도 있다. 혹은 그보다 더 전부터였을 수도 있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다시 촬영장으로 가야 해. 다음 씬이 기다리고 있어.”

준호가 말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복도의 불빛이 들어왔다. 그 불빛은 밝고 차가웠다. 마치 수술실의 불빛 같은. 혹은 심문실의 불빛 같은.

“기다려.”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마치 자신도 자신의 목소리를 믿지 않는 것처럼.

준호가 멈췄다. 돌아봤다. 그의 눈은 여전히 그 깊고 어두운 검은색이었다.

“이준혁이… 내가 싫어하면 뭐해?”

민준이 물었다. 이준혁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민준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배우였다. 그는 60대의 노배우였다. 많은 상을 받았던 배우였다. 그리고 지금 민준을 괴롭히고 있는 배우였다.

“그건… 상관없어.”

준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차가웠다. 마치 얼음이 녹는 소리 같은.

“그 사람은 그냥 계속 다가올 거야. 너의 거부감이 뭐든 상관없이. 왜냐하면 그게 그 사람의 역할이거든. 너를 괴롭히는 것. 아버지로서 괴롭히는 것. 그리고 그 괴로움이 화면에 아름답게 담기면, 그것은 예술이 돼. 그것이 이 세계의 규칙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는 마치 철학자처럼 말했다. 마치 자신이 우주의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 3부: 손의 떨림

민준은 손을 봤다. 자신의 손.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이 자신의 것인지, 카메라 앞의 캐릭터의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손가락이 떨리는 이유는 뭘까.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분노 때문일까. 혹은 흥분 때문일까. 민준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감정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배우이고, 누군가가 자신을 조종하는 것처럼.

그 생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민준은 모르겠다. 하지만 준호가 다시 말했을 때, 민준은 마치 깊은 물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 가자.”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일어섰다. 거울을 한 번 더 봤다. 그 거울 속의 얼굴은 이제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민준은 단지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혹은 인식하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 거부도 끝났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 앞에서 누구로 보이는가였다. 그것뿐이었다.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복도는 길었다. 마치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는 밝은 빛이 있었다. 촬영장의 조명. 카메라. 그리고 이준혁 배우.

## 4부: 메시지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 화면을 켜 봤을 때, 민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너 잘했어. 정말 잘했어. 다음 씬에서 또 봐. 그때는 더 깊게 해봐. 약속해.”

발신인은 없었다. 하지만 민준은 안다. 그것이 누구인지. 아마도 준호일 수도 있고, 이준혁일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메시지의 의미였다.

그것은 위협이 아니었다. 그것은 초대였다. 더 깊은 곳으로의. 자신의 영혼의 더 깊은 곳으로의. 그리고 이 영화 세계의 더 깊은 곳으로의.

민준은 그 초대를 거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그리고 카메라는 영원히 돌아간다. 그것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복도를 걸으면서, 민준은 자신이 누군가의 손 위에 있는 인형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생각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끔찍한 깨달음이었다.

그는 더 이상 민준이 아니었다. 그는 카메라 앞의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영원히 고통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세계의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촬영장의 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민준은 그 문 앞에 멈췄다. 문을 열기 전에, 그는 한 번 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자신의 것인지, 캐릭터의 것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둘 다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준은 문을 열었다.

카메라의 불빛이 그를 찾아왔다.

**제91장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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