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90화: 녹화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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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0화: 녹화된 증거

박미라가 모니터를 끈다. 검은 화면이 된 스튜디오는 마치 다른 세상으로 변한다. 조명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카메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 그것들은 단순한 불빛일 뿐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무엇인가. 민준은 안다. 카메라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녹화되는 것과 녹화되지 않는 것. 그 사이의 간극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미 녹화되었기 때문이다.

“컷! 정말 좋았어. 세 번째 테이크도 완벽했어.”

박미라의 목소리는 만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모니터 옆에 앉아서 다시 한 번 영상을 재생한다. 민준은 그 빛이 박미라의 얼굴을 비추는 것을 본다. 창작자의 표정. 자신의 작품에 몰입한 예술가의 얼굴. 그것은 아름답고, 동시에 끔찍하다.

“민준이, 잠깐.”

준호가 민준의 팔을 잡는다. 이번에는 더 강하게. 세트장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매니저가 배우를 데려가는 것처럼. 하지만 민준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구출이다. 아니면 격리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준호는 민준을 세트장을 빠져나가게 한다. 촬영 현장의 주변 복도로. 조명이 없는 곳으로. 카메라가 없는 곳으로. 하지만 그곳도 카메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민준은 이제 안다. CCTV. 보안 카메라. 어디든 있을 수 있다.

“괜찮아?”

준호가 묻는다. 그의 목소리는 낮다. 거의 속삭임에 가깝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민준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괜찮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모두 거짓이다. 그것이 지금 민준의 상태다. 모든 언어가 거짓이 되는 지점.

“이준혁이 뭔가 했어?”

준호가 다시 묻는다. 그의 눈은 민준을 뚫어지게 본다. 그것은 우려의 표정이 아니라, 조사의 표정이다.

“아니. 그냥… 장면이 힘들었어.”

민준이 말한다. 그것은 진실이다. 일부는.

“그 배우가 뭔가 했어. 나 봤어.”

준호가 말한다. 그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것은 진술이다. 준호는 자신이 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민준은 잠시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난다. 그것은 분노인가. 아니면 두려움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감독이 좋아했어. 그냥 그거야.”

민준이 말한다. 그것은 완전한 거짓이다.

준호의 턱이 조여진다. 그의 손이 민준의 팔에서 풀어진다. 천천히. 거절하는 것처럼. 아니, 포기하는 것처럼.

“알겠어. 그냥 조심해. 그 배우는… 조심해야 할 사람이야.”

준호가 말한다. 그리고 돌아선다. 촬영 현장으로 다시 들어간다.

민준은 복도에 혼자 남겨진다. 형광등의 불빛 아래. 그 불빛은 가혹하다. 모든 모서리를 비추고, 모든 흠을 드러낸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본다. 떨리고 있다. 아직도. 촬영이 끝났는데도. 이준혁의 손이 자신을 떠났는데도.

그 순간, 민준의 휴대폰이 울린다. 카톡 알림음. 그것은 준호다.

준호: “스튜디오에서 나왔어. 대기실로 가. 30분 있어야 할 게 있어.”

민준은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움직인다. 배우는 항상 움직인다. 멈출 수 없다. 멈추면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실은 비어 있다. 아니,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다. 소파, 책상, 거울, 그리고 카메라. 아니, 카메라는 없다. 하지만 민준은 이제 거기 없는 카메라를 본다. 모든 곳에. 벽에, 천장에, 거울 뒤에. 그것이 편집증인지 아니면 정확한 감각인지, 그것이 중요한가.

민준은 거울 앞에 선다.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것은 여전히 연기 중인 얼굴이다. 캐릭터의 얼굴. 아버지의 손길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들의 얼굴. 하지만 그 얼굴 아래에 뭔가 있다. 더 깊은 뭔가. 그것이 무엇인지 민준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녹화되었다. 박미라의 카메라에. 영원히.

준호가 들어온다. 그는 문을 닫는다. 천천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그것은 비밀의 문을 닫는 방식이다.

“봤어?”

준호가 묻는다.

“뭘?”

민준이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묻는다.

“촬영본. 박미라가 편집본을 이미 올렸어. 넷플릭스 내부 서버에. 너 봤어?”

민준이 돌아선다.

“안 봤어.”

“봐야 돼.”

준호가 말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긴박함이 있다.

“왜?”

“이준혁이 그것을 이용할 거야. 너한테. 그 영상을.”

준호가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민준의 세계를 기울인다.

“뭘… 이용한다는 게?”

민준이 물어본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단지 말로 확인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준호는 대기실의 의자에 앉는다. 마치 긴 설명을 해야 하는 것처럼. 아니, 마치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처럼.

“이준혁은 넷플릭스의 중요한 배우야. 우리 회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배우. 그리고 그는 지금 세 번째 테이크에서 너의 반응을 본 거야. 너의 진정한 공포를. 그것은 좋은 연기가 아니야. 그것은 진정한 감정이야. 그리고 그것이 문제야.”

준호가 말한다.

“문제가… 뭐야?”

민준이 물어본다.

“그 영상에는 너의 취약성이 다 드러나 있어. 너의 공포가. 너의 약함이. 그리고 이준혁이 그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그것을 이용할 거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그 말의 무게를 느낀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진술이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진술.

“어떻게 이용한다는 거야?”

민준이 다시 묻는다.

준호는 한숨을 쉰다. 깊은 한숨. 누군가를 포기할 때의 한숨.

“협박. 또는 거래. 또는 둘 다. 그 영상을 공개한다고 위협하거나, 아니면 너한테 무언가를 요구하면서 그 영상을 빌미로.”

준호가 말한다.

“공개? 왜 공개하겠어?”

민준이 묻는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이미 안다.

“너의 약함이 공개되면, 너는 이 바닥에서 끝이야. 너는 신인이야. 신인은 강해 보여야 해. 약함을 보이는 신인은 사용할 수 없는 신인이야. 그래서 그것이 협박이 되는 거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거울 앞으로 다시 간다.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이 이미 공개된 것처럼. 이미 평가받은 것처럼. 이미 판단된 것처럼.

“그럼… 뭐 하는 거야? 내가?”

민준이 물어본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준호는 일어선다. 대기실을 걸어다닌다. 마치 감옥을 걷는 죄수처럼.

“너는 선택을 해야 돼. 첫 번째는 그 협박을 받아들이고, 그의 요구를 따르는 거. 두 번째는 먼저 나가. 지금. 이 영상이 완성되기 전에. 계약을 깨고 나가. 위약금을 내고 나가.”

준호가 말한다.

“그런데 내가 나가면, 그건… 커리어가 끝나는 거잖아.”

민준이 말한다.

“맞아. 끝나는 거야.”

준호가 확인한다.

“그럼 첫 번째 선택을 하면?”

민준이 묻는다.

“그럼 너는 그의 것이 되는 거야. 그의 요구를 따르는 거. 아무리 그것이 부당해도. 아무리 그것이 너를 파괴해도. 왜냐하면 그 영상이 너를 통제하기 때문이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그 두 선택지를 본다. 둘 다 끝이다. 한쪽은 빠른 끝. 다른 한쪽은 느린 끝. 하지만 둘 다 끝이다.

“그런데 넌… 어쩌는 거야?”

민준이 준호에게 묻는다.

준호는 잠시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서 뭔가가 깨어난다. 죄책감. 또는 자책. 또는 둘 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이준혁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너를 이 촬영에 보냈어. 너를 위험에 빠뜨렸어.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그 말을 듣는다. 그것은 고백이다. 자백이다. 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을 여기 보냈다.

“왜?”

민준이 묻는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다. 단지 호기심만 있다. 어떻게 자신이 이렇게까지 배신당했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

“왜냐하면… 너를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준호가 말한다.

“보호? 이게 보호야?”

민준이 목소리를 높인다. 처음이다. 처음으로 그가 준호에게 소리 친다.

“그 영상을 보면, 너는 이준혁이 뭔지 알게 돼. 너는 경각심을 갖게 돼. 그리고 그렇게 되면, 너는 선택을 할 수 있어. 미리 준비된 선택이 아니라, 너 자신의 선택을.”

준호가 말한다.

“선택? 뭔 선택이야? 둘 다 죽음인데?”

민준이 말한다.

“맞아. 둘 다 고통이야. 하지만 너는 알 수 있어. 어느 고통이 너를 더 길게 죽이고, 어느 고통이 너를 빠르게 죽이는지. 그리고 그것은 선택이야. 선택 없는 선택이 아니라, 진정한 선택이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그 말을 듣는다. 그것은 논리다. 추악한 논리지만, 논리다. 그리고 민준은 이미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그 논리에 저항할 수 없다.

“그 영상… 어디서 봐?”

민준이 묻는다.

준호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낸다. 넷플릭스의 내부 서버에 접속한다. 편집팀의 폴더. 그리고 거기에는 영상이 있다. 세 개의 테이크. 모두 완성되어 있다. 모두 민준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민준은 그 영상을 본다. 거울 앞에서 본 것이 아니라, 화면을 통해 본다. 그리고 그것이 더 끔찍하다. 왜냐하면 화면 너머의 세상이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테이크에서, 민준의 얼굴은 공포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의 손에 대한 공포. 하지만 그것이 배역의 공포인지 현실의 공포인지, 화면은 구분하지 않는다. 화면에는 그냥 공포만 있다.

두 번째 테이크에서, 민준의 눈은 떨린다. 정확히는 떨리지 않는다. 하지만 화면에는 그렇게 보인다. 카메라의 렌즈는 모든 것을 증폭시킨다. 모든 약함을. 모든 불안을.

세 번째 테이크에서, 민준의 몸이 물러난다. 그리고 그 물러남은 아름답게 기록된다. 박미라의 카메라는 그것을 예술로 만들었다. 공포를 미학으로 변환했다.

“이걸… 이미 누가 봤어?”

민준이 묻는다.

“박미라. 네플릭스 편집팀. 그리고 이제 너.”

준호가 대답한다.

“이준혁은?”

민준이 묻는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이 대답이다.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계속 본다. 화면 속의 자신을 본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배역이다. 하지만 배역과 현실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다. 민준은 더 이상 어느 것이 자신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뭘 해야 돼?”

민준이 물어본다. 그것은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명령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준호는 민준의 어깨를 잡는다. 그의 손은 따뜻하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그것이 감옥의 벽처럼 느껴진다.

“넌… 선택을 해야 돼. 하지만 그 선택을 하기 전에, 넌 그것을 이해해야 돼. 그 영상이 의미하는 것을. 그것이 널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를. 그리고 이준혁이 그것을 이용해서 뭘 할 것인지를.”

준호가 말한다.

“언제까지?”

민준이 묻는다.

“내일. 내일까지만 생각해. 내일까지는 그 선택을 미룰 수 있어. 그 이후로는… 모르겠어. 그 이후로는 이준혁이 움직일 거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그 기간을 계산한다. 24시간. 그것은 얼마나 긴 시간인가. 그것은 영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순간처럼 느껴진다.

“그럼… 지금 뭐 해?”

민준이 묻는다.

“지금은… 집에 가. 집에 가서 생각해. 그리고 내일 아침, 나한테 연락해. 그 이후로는…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는지 없는지 알게 될 거야.”

준호가 말한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동의가 아니라, 항복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항복.

대기실을 나가면서, 민준은 거울을 다시 본다. 그 거울에는 이제 자신이 아니라, 화면 속의 자신이 비추어져 있다. 공포로 가득 찬 얼굴. 약함이 드러난 얼굴. 통제당할 준비가 된 얼굴.

그 얼굴을 가진 채로, 민준은 촬영장을 떠난다. 밤의 서울로. 밤의 서울은 조용하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다.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더 끔찍하다. 왜냐하면 모든 카메라가 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카메라가 그의 영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상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택시를 탄다. 운전사는 민준을 보지 않는다. 그냥 운전할 뿐이다. 그것이 현대의 관계다. 서로를 보지 않으면서 함께 있는 것.

“어디로 갈까요?”

운전사가 묻는다.

민준은 자신의 집 주소를 말한다. 반지하. 곰팡이. 그리고 혼자.

“알겠습니다.”

운전사가 말한다.

그 말이 방울처럼 울려 퍼진다. 마치 누군가의 최후 통보처럼. 마치 운명의 선언처럼.

민준은 창밖을 본다. 서울의 밤. 그것은 아름답다. 불빛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밤. 하지만 그 불빛들이 모두 카메라라면 어떻게 될까. 모든 불빛이 감시라면 어떻게 될까.

민준은 그렇게 생각한다. 밤의 서울을 통과하면서. 그리고 그 생각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짓누른다.


반지하 방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밤 11시 47분이다. 민준은 휴대폰을 본다. 준호에게서 온 카톡이 하나 있다.

준호: “잘 생각해. 그리고 절대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이해했지?”

민준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본다. 그 메시지를. 그것이 명령인지 충고인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명령이든 충고든, 그것은 동일한 결과를 만든다. 침묵. 고립. 그리고 혼자.

민준은 침낭에 들어간다. 천장의 곰팡이 지도를 본다. 그것은 여전히 거기 있다. 계속 자라고 있다. 마치 그의 불안이 그것을 키우는 것처럼.

그 순간, 민준의 휴대폰이 울린다. 알 수 없는 번호다.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목소리메일이 남겨진다.

“민준아, 나 이준혁이야. 오늘 촬영 정말 좋았어. 그런데 나 너랑 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 내일 오전 10시. 스타벅스 강남점. 혼자 와.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그 목소리는 따뜻하다. 거의 친절하다. 하지만 민준은 그 따뜻함 아래에 있는 것을 안다. 칼날. 그리고 협박. 그리고 감옥.

민준은 침낭을 덮고 누운다. 밤은 길다. 그리고 내일은 더 길 것이다.

# 그림자의 계약

## 1부: 대기실의 침묵

대기실의 형광등이 울렁거린다. 그 떨리는 불빛 아래서 민준의 심장도 함께 떨린다. 준호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고, 민준은 그의 맞은편 의자에 몸을 굳혀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마치 얼어붙은 호수처럼 투명하면서도 위험하다.

“이 영상은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준호의 목소리는 부드럽다. 마치 친구에게 당부하는 톤이다. 하지만 그 말의 무게는 수 톤이다. 민준은 준호의 얼굴을 응시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 완벽하게 면도된 턱, 그리고 그 검은 눈동자. 그 눈동자 안에는 자신이 방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어떤 죄책감도 없다.

“알겠습니다.”

민준이 대답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마치 남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낯설다. 그것은 너무 작고, 너무 약하고, 너무 무기력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상은 내가 보관할 거야. 혹시 모르니까.”

준호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그 동작은 악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한다. 이것은 협박이다. 정중한 협박. 친절한 협박. 하지만 협박이다.

“그리고 만약 이 일이 밖으로 나간다면?”

준호가 다시 말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위협의 톤도 없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무섭다. 마치 기후 예보를 하듯, 준호는 계속 말한다.

“너는 끝장이 날 거야. 너의 경력도, 너의 평판도, 너의 인생도. 모든 게 끝장이 날 거야. 그리고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어. 이해했지?”

민준의 목은 마르다. 입을 벌려 침을 삼키려 하지만, 침이 없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그의 몸은 완전히 건조해 있다. 손가락들이 떨린다. 그는 그 떨림을 숨기기 위해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너는 지금 생각하고 있을 거야.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라고. 하지만 넌 했어. 이미 했어. 그리고 그것을 돌릴 수는 없어.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어. 그렇지?”

민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동의가 아니다. 그것은 항복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인 항복이다. 그의 목 근처 근육이 경직되어 있고, 그의 턱이 떨린다. 이 모든 것을 준호는 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너는 똑똑한 아이야. 그래서 넌 이해할 거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넌 그대로 할 거야. 왜냐하면 다른 선택지가 없거든.”

준호가 일어난다. 그의 그림자가 민준 위로 드리워진다. 마치 검은 천이 그를 감싸는 것처럼.

“아, 그리고 하나 더. 혹시 누군가에게 이것을 얘기할 생각이 있다면, 잘 생각해 봐. 그것이 너에게 무엇을 가져올지. 그리고 너의 가족에게 무엇을 가져올지. 너는 생각해 봤지? 너의 어머니가 이것을 알게 된다면? 너의 친구들이 이것을 알게 된다면?”

민준의 심장이 멈춘다. 정말로 멈추는 느낌이다. 마치 누군가 가슴팍을 집어 쥐는 것처럼. 어머니. 어머니는 지방에서 혼자 살고 계신다. 약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다. 이런 일을 알게 된다면…

“그래. 생각하는 것 같네. 좋아. 그럼 우린 이제 이해가 된 거야. 완벽한 이해. 그렇지?”

민준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는 더욱 깊게.

## 2부: 거울 속의 낯선 얼굴

대기실을 나가면서 민준은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본다. 그 거울에는 이제 자신이 비추어져 있지 않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비추어져 있지만, 그것이 자신인 것 같지 않다.

거울 속의 얼굴은 창백하다. 촛불을 켜놓은 시체처럼 창백하다. 그 얼굴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다. 깊고 검은 공포. 마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눈동자. 입술은 약간 떨리고 있고, 피부는 좀비처럼 회색이다.

*이게 나야?*

민준이 거울에 손을 댄다. 거울 속의 손이 자신의 손과 만난다. 차갑다. 거울은 항상 차갑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더 차갑게 느껴진다. 마치 죽음의 온도인 것처럼.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 얼굴에는 약함이 드러나 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그의 공포, 그의 무기력, 그의 절망. 마치 이 얼굴이 책이고, 모든 페이지가 열려있는 것처럼.

*이것이 내 진짜 모습이야. 화장도, 조명도, 카메라도 필요 없이. 이것이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 통제당할 준비가 된 사람. 언제든 부러질 수 있는 사람. 이미 부러진 사람.*

거울에서 눈을 돌린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계속 그의 망막에 남아있다. 그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그 얼굴은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 3부: 밤의 서울

촬영장을 떠난다. 밤이 깊어가고 있다. 시계가 밤 10시 15분을 가리킨다. 강남의 거리는 여전히 밝다. 네온사인이 거리를 물들이고, 자동차들이 계속 흘러간다. 마치 무언가가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 도시처럼.

민준은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 사이로.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그를 보지 않는다.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것이 좋아야 한다. 그것이 자유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카메라가 나를 본다. CCTV, 거리 카메라, 건물의 카메라, 자동차의 블랙박스. 모든 것이 나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는 계속 걷는다. 발을 한 발 한 발 떼어 놓는다. 마치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그의 뇌는 멀리 떨어져 있다.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빠르게 걷고 있어? 저 사람은 뭔가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강남역 근처에 도착한다. 택시들이 줄을 서 있다. 그는 가장 앞의 택시에 탄다. 기사는 그를 보지 않는다. 그냥 미터를 켜고 앞을 본다.

“어디로 갈까요?”

기사가 묻는다. 그 목소리는 무감정하다. 수천 번 들었을 질문이고, 수천 번 받았을 대답을 기다리는 목소리다.

“반포동 208번지. 반지하입니다.”

민준이 대답한다. 그의 주소. 곰팡이 냄새가 나는 반지하. 혼자 사는 곳.

“알겠습니다.”

기사가 말한다. 그것이 방울처럼 울려 퍼진다. 마치 누군가의 최후 통보처럼. 마치 운명의 선언처럼.

택시가 움직인다. 강남의 야경이 창밖으로 흘러간다. 불빛들이 계속 반짝인다. 간판들, 신호등들, 건물들, 자동차들. 모든 것이 불빛으로 가득 차 있다.

*아름답다. 이 밤은 정말 아름답다.*

민준이 생각한다. 그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하지만 이 불빛들이 모두 카메라라면? 모든 불빛이 감시라면? 모든 밝은 것이 내 몸과 마음을 기록하는 도구라면?*

그는 창에 얼굴을 가져간다. 창은 차갑다. 마치 거울 속의 손처럼 차갑다. 그의 호흡이 창에 맺힌다. 그리고 그 호흡이 사라진다.

“택시 요금이 얼마쯤 될 거 같은데요?”

기사가 말한다. 혼잣말처럼. 아무한테나 하는 말처럼.

“상관없습니다. 그냥 가세요.”

민준이 대답한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마치 이 세상이 다른 차원의 것처럼, 모든 것이 그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다.

택시는 계속 간다. 강남에서 서초로, 서초에서 반포로. 도시의 밤을 관통하면서. 그리고 민준은 그 밤을 통과하면서 생각한다.

*이 밤이 영원하면 좋겠다. 이 움직임이 영원하면 좋겠다.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이동하기만 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목적지는 지옥이니까.*

## 4부: 반지하의 감옥

반지하 방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밤 11시 47분이다. 시계가 정확히 47분을 가리킨다. 민준은 그 숫자를 본다. 47. 마치 어떤 암호처럼 그 숫자가 그에게 말을 건다.

택시 요금은 12,800원이다. 그는 15,000원을 건네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다. 기사는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냥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그것이 현대의 관계다. 서로를 보지 않으면서 함께 있는 것. 감사도, 안녕도 없는 거래.

방 안은 어둡다. 불을 켜지 않는다. 창밖의 거리등이 약간의 빛을 제공한다. 그 빛 안에서 민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본다.

화면에 알림이 떠 있다. 준호에게서 온 카톡.

**준호**: *“잘 생각해. 그리고 절대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이해했지?”*

시간은 11시 32분에 보낸 메시지다. 촬영장에서 택시를 타는 동안 온 것이다. 민준은 그 메시지를 읽는다. 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잘 생각해.*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뜻인가? 아니면 이미 말해진 협박에 대해 곱씹으라는 뜻인가?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그 말은 명확하다. 침묵. 고립. 혼자만의 괴로움.

민준은 대답을 입력하려 한다. 하지만 무엇을 쓸까? “네, 알겠습니다”? “네, 말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거짓이다. 모두 자신을 더욱 깊은 구멍 속으로 밀어 넣는 말들이다.

그래서 그는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침묵으로 대답한다.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다.

침낭을 꺼낸다. 이 반지하의 유일한 침대. 곰팡이 냄새가 진하게 난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미 이 냄새에 익숙하다. 마치 자신의 절망의 냄새인 것처럼 익숙하다.

누운다.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다. 검은 곰팡이. 마치 지도처럼 패턴을 이루고 있다. 어떤 지도인가? 그의 미래의 지도인가? 그의 절망의 지도인가?

*저것도 자라고 있어. 나처럼. 나와 함께. 혹은 나 때문에.*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마치 그의 불안과 공포가 물질화되어 곰팡이가 되는 것처럼. 그의 마음의 검은 부분이 천장에 전염되는 것처럼.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알 수 없는 번호**.

화면이 밝아진다. 누군가가 그를 찾고 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그의 손이 다른 사람의 손인 것처럼.

벨소리가 멈춘다. 그리고 목소리메일이 남겨진다. 화면이 진동한다. 메시지 알림.

그는 그것을 본다. 그리고 읽는다.

**목소리메일 전사본:**

*“민준아, 나 이준혁이야. 오늘 촬영 정말 좋았어. 그런데 나 너랑 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 내일 오전 10시. 스타벅스 강남점. 혼자 와.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그 목소리는 따뜻하다. 거의 친절하다. 마치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따뜻한 권유처럼. 하지만 민준은 그 따뜻함 아래에 있는 것을 안다.

칼날. 그것이 그 목소리 아래에 숨어있다.

협박. 그것이 그 친절한 톤 뒤에 있다.

감옥. 그것이 “혼자 와”라는 말의 의미다.

이준혁. 그는 누구인가? 준호보다도 더 위의 누군가인가? 더욱 위험한 누군가인가?

민준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마치 멈춰 있었던 것이 갑자기 깨어나는 것처럼. 빠르게. 매우 빠르게. 마치 가슴이 폭발할 것처럼.

침낭을 다시 덮는다. 하지만 따뜻하지 않다. 어떤 것도 더 이상 따뜻할 수 없다.

*내일 오전 10시. 스타벅스 강남점.*

그것은 약속인가? 아니면 선고인가?

*혼자 와.*

그것은 보호인가? 아니면 고립인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그것은 비밀인가? 아니면 무덤인가?

민준은 침낭 안에서 떨린다. 밤이 길다. 그리고 내일은 더 길 것이다. 아니, 내일이 올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올더라도, 그것이 진짜 내일인지, 아니면 또 다른 악몽인지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시계가 자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민준의 악몽은 계속된다.

## 5부: 밤의 깊이

밤이 더욱 깊어진다. 11시 58분. 2분 남았다. 2분 후면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새로운 날이 아니다. 같은 날의 연속이다. 같은 악몽의 반복이다.

그는 침낭에서 나온다. 서서히. 마치 물에서 나오는 것처럼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본다. 비좁은 반지하. 그것이 그의 세계 전부다.

책장에 책들이 놓여 있다. 영화 이론, 연기 기법, 드라마 시나리오.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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