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84화: 침묵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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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4화: 침묵의 무게

준호의 손가락이 민준의 셔츠 소매를 잡았다. 가볍지만 확실한 움직임. 마치 자신이 지금 말하는 것이 너무 위험해서, 물리적으로 민준을 자신의 곁에 묶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절박함으로.

“저 배우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야 해. 이준혁. 기억해.”

준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것이 침착함의 증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목소리가 낮을수록, 그 사람이 담고 있는 감정은 더 깊다는 것을 민준은 알고 있었다. 마치 깊은 물이 표면에는 고요하지만, 그 아래로는 강한 해류가 흐르는 것처럼.

“네. 이준혁.”

민준이 반복했다. 이름을 입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바뀐 것 같은 느낌. 마치 그 이름이 이제 단순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어떤 경고의 신호가 된 것처럼.

“그 배우는 지난 2년 동안 최소 세 명의 신인 배우들과 ‘문제’가 있었어. 모두 여자 배우들이었고, 모두 회사의 압박 때문에 입을 다물었어. 합의금을 받거나, 아니면 그냥 조용히 사라졌어. 어떤 식으로든.”

준호가 말했다. 그의 눈은 주차장의 어두운 쪽을 향해 있었다. 마치 거기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민준의 뇌가 이 정보를 처리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빨랐다. 너무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가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은 것처럼.

“그런데 넌 남자잖아.”

준호가 계속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상한 음색이 있었다. 안도인가, 아니면 자책인가.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그래서 뭐예요? 접촉이 없었다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불확실했다. 왜냐하면 그 접촉은 명확하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이 자신의 얼굴에 닿았고, 눈물을 닦았고, 온기가 전해졌고, 그리고… 뭔가 더 있었나?

“접촉은 있었어. 하지만 그것이 뭐냐가 문제야.”

준호가 마침내 민준을 직시했다. 그의 눈빛에는 뭔가 깨진 것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지금 말해야 할 것들이 자신의 내부를 손상시키고 있는 것처럼.

“박미라 PD가 뭐라고 했어?”

“좋다고 했어요. 그 장면이 진짜 같다고. 그리고…”

민준이 말을 멈췄다. 박미라의 그 질문이 떠올랐다. ‘이 순간에 뭘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것들. 손의 온기. 통제 불가능함. 진정한 누군가.

“그리고?”

준호가 재촉했다.

“그리고 손의 온기를 느꼈냐고 물었어요. 그게 연기인지 물었어요.”

민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준호는 들었다. 준호는 항상 민준의 가장 작은 말들도 들었다.

준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숨에는 뭔가 무거운 것이 실려 있었다. 마치 자신의 폐에 묵은 것들을 모두 꺼내는 것처럼.

“박미라는 좋은 감독이야. 정말 좋은 감독. 그래서 더 위험해.”

“위험하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녀는 배우들이 뭘 하는지, 왜 하는지 본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못 봐도, 그녀는 봐. 그리고 지금 그녀가 본 것은… 너와 이준혁 사이의 뭔가가 연기를 넘어섰다는 거야.”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가볍지만 확실한 떨림.

“그게 나쁜 건가요?”

“보통은 좋은 거야. 배우들이 바라는 게 그거니까.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 폭발. 진정성.”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방금 좋다고 말한 것이 실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하지만 그 배우 이준혁이라는 놈이… 그걸 악용할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이미 악용해온 거고. 박미라가 뭘 봤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봤으라는 보장은 없어. 배우들이 뭔가 ‘더’를 느끼면, 그걸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 수 있는 놈들이 있다는 거야.”

민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잡아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의 온기. 박미라의 질문. 이준혁의 눈.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읽혀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저 배우가 뭐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넌 절대로, 절대로 그걸 다시 허락하면 안 된다는 거.”

준호의 목소리는 명령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은 거친 명령이 아니었다. 오히려 울음이 섞인 명령.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지켜주려고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형, 근데… 그 배우가 나한테 뭘 했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처럼 들렸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도움을 청하는 어린아이처럼.

준호는 한 발 물러섰다. 마치 민준의 질문 자체가 물리적인 힘으로 작용한 것처럼. 그는 주차장의 벽에 등을 기댔다. 오래된 콘크리트 벽. 그 벽에는 기계식 주차장의 오일 얼룩이 묻어 있었다.

“아직은… 뭘 했다고 말할 수 없어.”

준호가 말했다.

“뭐예요?”

“그 배우는 지금 촬영 중이고,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 프로젝트야. 만약 내가 너한테 뭘 말하고, 그 말이 누군가에게 전해지면… 너도, 나도, 그리고 이 드라마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어. 그래서 지금은 말할 수 없어. 하지만 너는 알아야 해. 그 배우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뭔지.”

민준은 침묵했다. 그의 입은 다물어져 있었지만, 뇌는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세 명의 신인 배우. 합의금. 조용히 사라짐. 그리고 이제 자신. 손의 온기. 박미라의 질문.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 그럼 지금 뭘 해야 해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주차장의 어두운 쪽을 다시 봤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촬영장 스태프인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자신들의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준호는 빠르게 민준에게 가까워졌다. 마치 그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듯이.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거의 입술 만으로 말하는 정도였다.

“아무도 모르는 척해. 촬영은 계속해. 하지만 저 배우와는 최소한의 상호작용만 해. 그리고 만약 뭔가… 부적절한 게 다시 일어나면, 즉시 말해.”

“부적절한 게 뭐예요?”

“너가 불편함을 느끼는 모든 것. 시선도, 접촉도, 말도. 너의 경계선이 뭔지 정확하게 알아. 그리고 그것을 지켜.”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스태프가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 젊은 여성이었다. 아마도 제작부일 것 같았다. 그녀는 민준과 준호를 보고 인사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보지 않았다.

준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치 그들이 정말로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의 손의 힘은 매우 강했다. 마치 자신이 민준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힘으로.

“촬영은 몇 시에 끝나?”

준호가 평범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홉 시쯤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도 평범했다. 하지만 그의 뇌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럼 그 다음에 만나자. 카페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어디예요?”

“정해서 문자로 보낼게.”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의 손은 민준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민준은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촬영을 위해. 하지만 그의 몸은 그곳에 있었지만, 뇌는 다른 곳에 있었다. 손의 온기. 박미라의 질문. 이준혁의 눈. 그리고 준호의 경고. 모든 것이 섞여 있었고, 모든 것이 무거웠다.

촬영장에 들어갔을 때, 박미라는 여전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눈이 민준을 찾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눈빛에는 뭔가가 있었다. 이해? 동정? 아니면 경고?

이준혁은 세트 위에서 스태프들과 웃고 있었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매력적으로. 마치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또는 자신이 한 모든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민준은 그 장면을 봤다. 그 장면을 정확하게 봤다. 처음으로 이준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보는 것. 준호가 말한 그 배우. 세 명의 신인 배우. 합의금. 그리고 이제 자신.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순수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은 촬영이 끝나기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 민준은 화장실에 갔다.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는 뭔가 변한 것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몇 시간 만에 몇 살을 더 먹은 것처럼. 눈은 더 어두웠고, 입술은 더 창백했고, 얼굴 전체는 마치 누군가가 색을 빼간 것처럼 보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건물 뒤 주차장. 9시 30분. 혼자 와. 아무도 모르게.”

그 문자를 읽고, 민준은 화장실 싱크대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도자기. 하지만 그것도 따뜻해질 것이었다. 모든 것이 따뜻해진다. 또는 식어간다. 그것이 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촬영은 9시 정확히 끝났다. 박미라가 “좋아요”라고 말했을 때,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준혁은 민준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다시 그 손의 온기를 전하며.

민준은 그 손을 빠르게 뺐다. 처음으로. 그리고 이준혁의 얼굴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놀람? 아니면 무언가 더 어두운 감정?

민준은 라커룸에 가지 않았다. 대신 바로 건물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9시 25분. 5분 일찍. 하지만 준호는 이미 거기 있었다. 차 옆에 서서, 민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대면했을 때, 준호의 첫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너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

그것은 약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이 현실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준호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차 안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진정한 대화를 나누었다. 손의 온기가 아니라, 진정한 두려움과 진정한 보호에 대한 대화를.

밤 10시 30분. 주차장의 가로등 아래에서, 두 남자는 침묵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유된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무거운 것이었다.

# 준호의 경고

## 제1부: 섞임과 무게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공기 속의 먼지와 조명의 열기, 스태프들의 목소리와 카메라의 기계음, 그리고 민준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까지. 촬영장의 모든 요소가 하나의 탁한 음향으로 뭉쳐져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거웠다. 마치 수심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 압력이 가해져 있었다.

민준은 세트 입구에서 한 발자국을 뗐다. 운동화의 밑창이 콘크리트와 마찰하며 내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어제는 이 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는데, 오늘은 마치 누군가의 발자국이 그를 따라오는 것처럼 들렸다. 목 뒤로 소름이 돋았다.

촬영장에 들어갔을 때, 박미라는 여전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감독의 눈은 화면에 박혀 있었고, 그 시뻘건 얼굴에는 집중력의 주름이 깊이 팬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박미라의 눈이 민준을 찾았다. 정확하게, 의도적으로, 마치 미리 계획된 것처럼.

그것은 짧은 순간이었다. 1초, 아니 0.5초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뭔가가 있었다. 뭔가 복잡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해? 동정? 경고? 아니면 그 모든 것을 한데 섞어놓은 어떤 감정?

민준은 자신의 눈을 재빨리 돌렸다.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그 시선을 더 이상 받아낼 수 없었다.

“민준, 대기 위치로 가줄 수 있어?” 보조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목구멍에 뭔가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세트 위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준혁의 웃음소리였다.

## 제2부: 가짜의 자연스러움

이준혁은 세트 위에서 스태프들과 웃고 있었다. 스탠드인 두 명, 스탠드인 카메라 감독, 그리고 몇몇 조명팀 직원들. 그들 모두가 그 배우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아, 어제 그 씬 정말 재밌었어. 이준형이, 아니 이준혁이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어?” 조명팀의 한 사람이 말했다. 다른 스태프들이 웃으며 동의했다.

이준혁의 웃음은 자연스러웠다. 편안했다. 매력적이었다. 마치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또는 자신이 한 모든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스탠드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손가락. 그 손. 어제 밤 민준의 얼굴을 쓰다듬던 바로 그 손.

민준은 무대 뒤에서 그 장면을 봤다. 정확하게 봤다. 호흡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하고, 마치 범죄 현장을 조사하는 형사처럼 모든 세부 사항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가 바뀌었다.

민준은 처음으로 이준혁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는 여전히 이준혁을 보고 있었지만,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보고 있었다. 준호가 말한 그 배우. 세 명의 신인 배우. 그들의 조용한 눈물. 합의금을 받을 때의 그들의 손가락이 떨리는 모습. 그리고 이제 자신.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있었다.

민준의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었다. 흥분 때문도 아니었고, 설렘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순수한, 원초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촬영이 끝나기까지, 아니 이 건물을 떠나기까지, 아니 자신이 숨을 쉬는 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 제3부: 거울 속의 변화

촬영 중간 쉬는 시간이 왔다. 정확히 30분의 휴식 시간. 박미라가 “15분만 더 기다려. 그 다음 신을 다시 셋업할 거야”라고 말했고, 스태프들이 흩어졌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러 갔고, 누군가는 핸드폰을 들었다. 이준혁은 여전히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

민준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아무도 그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 않았다.

화장실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그곳은 조용했다. 차갑고, 고요하고,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느껴졌다.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는 뭔가 변한 것이 있었다. 하루 사이에 뭔가가 변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몇 시간 만에 몇 살을 더 먹은 것처럼 보였다. 눈은 더 어두웠다. 어제의 눈이 아니었다. 어제는 아직도 희망의 불빛이 있었던 눈이었다면, 오늘의 눈은 그 불빛이 꺼져 있었다. 검은 연못.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

입술은 더 창백했다. 어제는 긴장으로 인해 약간의 혈색이 있었지만, 오늘은 마치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흰색이었다. 그 입술이 움직일 수 있을까? 말을 할 수 있을까? 비명을 지를 수 있을까?

얼굴 전체는 마치 누군가가 색을 빼간 것처럼 보였다. 흑백 필름처럼. 생명력이 빠져나간 마네킹처럼.

“이게 나야?” 그가 중얼거렸다. 거울 속의 얼굴이 입을 떼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움직임이 반영된 것일 뿐이었다.

찬 수도꼭지를 돌렸다. 물이 흘러내렸다. 손을 씻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냥…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움직임이 필요했다. 정적이 자신을 삼킬 것만 같았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흘러내렸다. 차갑고, 깨끗하고, 무해했다. 모두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물처럼 흘러내릴 수 있으면.

그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봤을 때 심장이 멈췄다. “준호”라는 이름. 그 이름만 봐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준호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왜 지금 전화를 하는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몇 초 후 문자가 들어왔다.

“건물 뒤 주차장. 9시 30분. 혼자 와. 아무도 모르게.”

민준의 손이 떨렸다. 핸드폰이 거의 떨어질 뻔했다.

그 문자를 읽고, 민준은 화장실 싱크대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도자기. 하지만 손의 온기가 빠르게 그것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따뜻해진다. 또는 식어간다. 그것이 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온도가 변하고, 모든 것이 결국 균형을 찾는다.

그렇다면 이 상황도 언젠가는 끝날까?

## 제4부: 마지막 악수

촬영은 9시 정확히 끝났다.

박미라가 “좋아요, 다 끝났어. 고마워, 모두. 내일 또 봐요”라고 말했을 때,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스튜디오의 공기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었다. 하지만 민준의 가슴 속은 여전히 무거웠다. 더 무거워졌을 수도 있었다.

이준혁이 민준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그 항상의 미소가 있었다. 그 미소. 그것은 도구였다. 무기였다. 그것이 민준의 모든 저항을 무너뜨린 도구였다.

“민준아, 오늘 씬 정말 좋았어. 너의 표정이 정말 살아 있었어.” 이준혁이 말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 손. 그 손이 민준의 손을 잡았을 때, 온기가 전해졌다.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마치 모든 것이 정상인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민준의 손가락 위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것은 악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혹은 위협이었다.

민준은 그 손을 빠르게 뺐다. 처음으로. 그 순간까지 그는 항상 그 손의 온기에 순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준호의 말들이 그의 뇌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준혁의 얼굴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놀람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무언가 더 어두운 감정이었다. 마치 놀람 뒤에 숨어 있는 무언가. 분노? 위협? 아니면 그 이상의 것?

“뭐야? 피곤해?” 이준혁이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제의 웃음과 달랐다. 그것은 얼음이었다.

“응… 좀.” 민준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림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 그럼 푹 쉬어. 내일도 있으니까.” 이준혁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 제5부: 주차장의 대면

민준은 라커룸에 가지 않았다. 의상 담당자들과 대화할 기력이 없었다. 누군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귀를 막았다. 대신 바로 건물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복도를 빠르게 걸어갔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이 자신을 따라오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건물의 뒷문을 밀고 나갔을 때, 서울의 밤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따뜻했다. 9월의 밤은 아직도 따뜻했다. 하지만 민준은 추워 보였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9시 25분. 5분 일찍. 하지만 준호는 이미 거기 있었다.

어두운 주차장의 한구석에서, 준호는 자신의 차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몸짓은 명확했다. 기다리는 자세. 경계하는 자세. 그리고 뭔가를 보호하려는 자세.

“준호…” 민준이 다가가며 말했다.

준호가 돌아봤다. 그의 눈이 민준을 찾았고, 그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분노? 동정? 아니, 그것은 두 감정의 혼합이었다. 동정하는 분노. 또는 분노하는 동정.

“들어와.” 준호가 말했다.

차의 뒷문을 열었다. 민준이 들어갔다. 준호도 뒤에 들어갔다. 차의 문이 닫혔다. 외부와의 모든 소리가 차단되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대면했을 때, 준호의 첫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너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

그것은 약속이 아니었다. 약속은 확실함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이 말에는 불확실함이 있었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간절한 바람. 하지만 현실이 될 수 없을 수도 있는 바람.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이 물을 맺기 시작했다.

“이준혁이가 너에게 뭘 했어?” 준호가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 모르겠어.” 민준이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몰랐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

“너를 봤어. 어제와 달라. 뭔가가 바뀌었어.” 준호가 말했다.

“응.” 민준이 대답했다. 그 한 글자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준호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이준혁의 손과 달랐다. 따뜻함이 아니라 안정감을 주는 손이었다. 보호의 손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준호가 물었다.

민준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준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너무 작아 보였다. 이 상황의 무게에 비해.

## 제6부: 침묵의 무게

밤 10시 30분. 주차장의 가로등 아래에서, 두 남자는 침묵했다.

차 안에서의 대화는 1시간을 넘었다. 준호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이준혁에 대한 정보. 그의 과거. 그의 패턴. 그리고 민준이 어떻게 그 패턴의 일부가 되고 있는지.

“그 배우들… 이준혁이 어떻게 그들을 설득했는지 알아?” 준호가 말했다. “처음엔 친절했어. 정말 친절했어. 마치 멘토처럼.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는 그들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어.”

“어떻게?” 민준이 물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영상. 몰래 찍은 영상들. 그리고 그것을 삭제하려면… 그들이 해야 할 것들이 있었어.”

민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나도…?”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준호가 말을 끝내지 않았다. 말을 끝낼 필요가 없었다.

이제 그들은 침묵했다.

차 밖에서는 가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불완전한 빛. 밝음과 어둠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마치 이 상황처럼.

그 침묵은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공유된 무언가였다. 두 사람 사이의 이해. 그리고 무력함.

“너 어디로 가고 싶어?” 준호가 갑자기 물었다.

민준은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내가 널 데려다줄 수 있어. 어디든. 아무도 모르게.” 준호가 말했다.

“그럼 넌 어떻게 돼?”

“상관없어.”

“상관있어.”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준호를 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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