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82화: 커피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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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2화: 커피의 온도

라커룸을 나온 민준은 계단을 내려갔다. 촬영장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계단. 그곳은 배우들이 세트 이동을 할 때 쓰는 통로였다. 형광등이 일렬로 켜져 있었고, 벽면에는 촬영 스케줄표와 안전 공지사항이 붙어 있었다. “추락 주의”, “화기 취급 조심”, “비상구 확인”.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모든 위험을 나열해놓은 것처럼.

민준의 발걸음은 느렸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그의 몸은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손에는 여전히 준호가 놓고 간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종이컵의 온도가 그의 손가락에 전해지고 있었다. 따뜻함. 하지만 그 따뜻함도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식어간다. 커피도, 사람의 손도, 그리고 약속도.

지하 2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촬영이 끝난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세트를 정리하거나 다음 씬의 준비에 들어가 있었다. 민준은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 복도는 마치 미로처럼 느껴졌다. 왼쪽으로 꺾이고, 오른쪽으로 꺾이고, 또다시 왼쪽으로. 마치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도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그 순간, 누군가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민준은 눈을 들었다. 박미라였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집중한 상태였다. 마치 세상에 자신과 화면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아, 민준이.”

박미라가 말했다. 그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PD님.”

민준이 인사했다.

박미라는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민준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나갈 때, 그녀의 손이 민준의 팔에 닿았다. 짧은 접촉. 하지만 의도가 있는 접촉. 마치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라는 신호처럼.

“나중에 얘기해요.”

박미라가 뒤에서 말했다. 그녀는 이미 복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민준은 계속 걸었다. 커피는 이제 따뜻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저 액체였다. 어떤 온도도 아닌 액체. 마치 자신도 그런 상태인 것 같았다. 뜨거운 감정도, 차가운 계산도 아닌, 그저 존재하는 무언가.

휴게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한 명의 스태프만 있었다. 조명팀의 누군가였을 것이다. 그는 자판기 앞에 서 있었고, 캔 음료를 구매하고 있었다. 딸깍. 캔이 떨어지는 소리. 민준은 자신의 커피를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그곳을 쓰지 않는 구석진 의자. 창문이 없는 벽 앞의 그 의자.

핸드폰이 울렸다. 신호음이 아니라, 전화였다. 화면에는 “준호”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냥 울리는 것을 들었다. 울음소리는 계속되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멈췄다. 상대가 전화를 끊은 것이었다.

몇 초 뒤, 문자가 왔다.

“현장에서 나와. 시간이 좀 남지?”

민준은 문자를 읽었다. 읽기만 했다. 대답하지는 않았다.

휴게실의 형광등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오래된 형광등의 특유한 음성이었다. 마치 뭔가가 계속 울고 있는 것처럼. 또는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도 그 신호를 받지 않았다.

조명팀의 사람이 떠났다. 캔을 들고. 그는 민준을 보지 않았다. 마치 민준이 거기 없는 것처럼.

혼자 남겨진 휴게실에서,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촬영 때문인지, 아니면 준호의 문자 때문인지, 또는 박미라의 그 짧은 접촉 때문인지.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문자였다.

“민준이, 지금 너한테 뭔가를 말해야 할 것 같아. 근데 현장에서는 못 할 말이 있어. 나와.”

민준은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뭔가를 말해야 할 것 같아.” 그 표현은 불완전했다. 준호는 보통 더 명확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문자에는 어떤 불안이 있었다. 마치 자신도 자신이 뭘 말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민준은 일어났다. 커피는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더 이상 따뜻하지 않은 커피. 그것은 조금 시간이 더 지나면 완전히 차가워질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버릴 것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민준이 아닌, 이 휴게실을 청소하는 누군가가.

촬영장을 빠져나가는 길은 많았다. 정문으로 나가는 길도 있었고, 뒷문으로 나가는 길도 있었고, 지하 주차장을 통해 나가는 길도 있었다. 민준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장 사람이 적은 길이었다. 그리고 준호는 보통 그곳에 차를 세워놓았다. 검은색 제네시스. 34세의 배우가 가질 수 있는 자동차. 그것은 그의 성공의 상징이었다. 또는 그의 족쇄였다.

지하 주차장의 조명은 촬영장보다 더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밝기를 낮춰놓은 것처럼. 주차된 차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검은색, 흰색, 은색. 모두 비슷한 모양이었다. 마치 자동차들도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준호의 차가 보였다. 검은색 제네시스. 그 차 옆에는 준호가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민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 줄 알았어.”

준호가 말했다.

“형, 뭐가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민준에게 탈 것을 손짓했다. 말 없이. 마치 자신이 지금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차에 탔다. 조수석. 그곳은 여전히 촬영장의 조명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마치 세상이 끝난 곳처럼.

준호는 차를 시동했다. 엔진음이 울렸다. 낮지만 강력한 음성. 그리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램프를 따라 올라갔다. 마치 어떤 깊은 곳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박미라가 뭔가 말했어?”

준호가 물었다. 그의 눈은 앞을 보고 있었다. 거울에 비춘 백뷰미러. 뒤에서 따라오는 차가 있는지 확인하는 듯한 시선.

“아뇨. 그냥 촬영이 끝났다고.”

민준이 대답했다.

“정말?”

“네.”

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안도의 한숨이었다. 또는 실망의 한숨이었다. 구분하기 어려웠다.

차는 강남 거리로 나왔다. 오후 4시 반이 넘은 시간. 퇴근 시간이 막 시작되는 때였다. 거리는 차로 가득 찼다. 모두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또는 어딘가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여기 머물지 않았다. 마치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뭔가를 놓쳤어.”

준호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선언이었다.

“뭘요?”

민준이 물었다.

“너. 그리고 박미라. 그리고 이 모든 게.”

준호는 신호등을 잠시 멈추며 기다렸다. 빨간 신호. 그의 손가락이 핸들을 두드렸다. 규칙적인 리듬. 마치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형이 뭘 놓쳤다는 거예요?”

“너가 더 이상 배우가 아니라는 거.”

준호가 말했다.

“뭐라고요?”

“촬영장에서 본 거. 너의 눈물. 그건 연기가 아니었어. 그리고 내가 해야 했던 일은 너를 멈추는 게 아니라, 너를 놓아주는 거였어.”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 뭘 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지금? 지금은 너를 어디로든 데려가는 거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준호는 차를 강남역 방향으로 돌렸다. 그곳은 차가 더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야 했다. 마치 이미 결정된 운명인 것처럼.

“형, 저는 뭘 해야 돼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넌 그냥 숨을 쉬어. 그리고 생각해. 너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배우가 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그게 다른 거예요?”

“응. 완전히 다른 거야. 배우는 역할을 연기하는 거지만, 사람은 자신을 살아가는 거거든.”

차는 계속 움직였다. 강남역을 향해. 오후의 햇빛이 앞 유리창에 반사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신호가 아니라, 단지 빛이었다.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가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들도, 결국은 단지 반사된 빛일 뿐.

민준은 앞을 봤다. 강남역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기는 그가 처음 오디션을 본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준호와 함께.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을 안고.

“형.”

민준이 말했다.

“응.”

“저는 뭐가 되고 싶어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를 강남역 입구에 세웠다. 빨간 불 구간이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세웠다. 마치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건 넌 알아야 해. 내가 아니라, 넌. 그리고 넌 아직 모르고 있어. 하지만 알게 될 거야. 촬영장에서. 또는 어딘가에서. 아니면 이 차 안에서.”

준호는 민준을 봤다. 처음으로. 그의 눈은 민준의 눈과 만났다.

“그때까지 내가 옆에 있을게.”

그 말은 약속이었다. 또는 협박이었다.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마치 자신이 받아들일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강남역 입구의 신호등은 계속 빨간색이었다. 차들이 그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경적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하지만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이제 내려.”

준호가 말했다.

“어디로요?”

“역 안으로. 그리고 시간을 가져. 너 자신과 대면할 시간을. 거울을 봐. 거울을 보고,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봐. 배우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민준은 차에서 내렸다. 강남역의 입구 계단. 그곳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 찼다. 퇴근 시간. 모두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민준은 역 안으로 들어갔다. 자동문이 열렸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나왔다.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처럼.

강남역의 화장실은 지하 1층에 있었다. 민준은 거기로 향했다. 그곳은 밤에도 밝은 조명이 있는 곳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거기에 빛을 가득 채워놓은 것처럼.

거울 앞에 섰을 때, 민준은 자신을 봤다. 174센티미터의 평범한 청년. 밝은 갈색 눈. 검은 머리. 그리고 눈물의 흔적. 촬영장에서 흘렸던 눈물이 여전히 그의 뺨에 남아 있었다. 마치 그것이 증거인 것처럼. 그것이 무언가 일어났다는 증거.

그는 거울을 바라봤다. 오래 바라봤다. 마치 거기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하지만 거울에는 자신만 있었다. 하나의 얼굴. 하나의 눈. 하나의 사람.

“난 뭐가 되고 싶은 거야?”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하지만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반사했을 뿐이었다. 마치 자신도 그 질문을 모르는 것처럼.

민준은 손을 들었다. 거울 앞에서. 그리고 거울을 만졌다. 찬 유리. 거울 속의 손과 자신의 손이 만났다. 하지만 그것은 접촉이 아니었다. 단지 분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외로운 것이었다.

강남역의 지하 1층 화장실에서, 시간은 오후 4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여전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었다. 배우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그 답을 찾을 때까지.

밖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지나갔다. 역무원, 여행객, 출근자, 퇴근자.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여전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목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또는 목표를 찾기 위해.

그의 손가락이 거울에 글자를 썼다. 손가락이 유리에 닿으면서 나는 미세한 소리. 그것은 글자였다. 아니, 단어였다.

“사람.”

그렇게 쓰고 나서, 그는 손을 내렸다. 거울은 여전히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반사 위에는 “사람”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주는 약속인 것처럼.


12,387자

# 거울 앞의 시간

## 첫 번째 부분: 신호등 앞에서

입구의 신호등은 계속 빨간색이었다.

준호의 택시는 강남역 입구 교차로에 멈춰 있었다. 빨간불이 켜진 지 이미 30초가 넘었다. 민준은 창밖으로 흐르는 서울의 오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적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그 뒤에 세 번, 네 번. 택시 뒤에 줄을 선 차들이 그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들의 분노와 초조함이 경적음에 담겨 있었다. 준호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의 양손은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고, 손가락들이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미쳤나? 빨간불 때문에 가만히 있다고.”

준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지만,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차 안은 에어컨 때문에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민준의 피부에 스며들었다. 목은 따뜻했지만, 팔은 차가웠다. 신체의 온도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이 현재의 그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경적음이 또 울렸다. 이번에는 더 길고 더 고음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들어서 보았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촬영장에서의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그 장면에서 그는 누군가의 딸을 죽인 역할을 했다. 배우로서의 민준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민준이 그 역할을 했었다. 감정 기억법(Method Acting)이라고 불리는 그 기법이 그를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그의 눈가는 여전히 축축했다. 촬영장에서 흘렸던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었다. 분장사가 파운데이션을 덧바르려고 했지만, 눈물은 계속 흘러나왔다. 감독은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했지만, 민준은 충분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부족했다.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리고 지금, 택시 안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준호는 거울을 통해 민준의 얼굴을 보았다. 운전자 역시 배우였다. 그는 이 젊은 배우를 여러 번 봤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그는 이 청년이 뛰어난 배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배우의 얼굴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혼란의 얼굴이었다. 영혼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준호는 숨을 내쉬었다. 깊고 길게.

“이제 내려.”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령이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동정심도 담겨 있었다. 그는 이런 젊은 배우들을 여러 번 봤다. 그들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무너진다. 역할 속에 빠져서, 현실과 역할의 경계를 잃고서.

“어디로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약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역 안으로. 그리고 시간을 가져. 너 자신과 대면할 시간을. 거울을 봐. 거울을 보고,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봐. 배우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준호가 말했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차를 움직이지 않았다. 뒤의 차들이 또다시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준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거울 속의 이 젊은 배우의 눈을 보고 있었다.

## 두 번째 부분: 역 안으로

민준은 차에서 내렸다.

강남역의 입구 계단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후 4시 40분경, 퇴근 시간의 한복판이었다. 모두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집으로, 약속 장소로, 저녁 약속으로.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민준은 역 안으로 들어갔다.

자동문이 열렸다. 그 순간,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공기의 온도가 갑자기 떨어졌다. 피부가 그것을 즉시 감지했다.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표면의 세계에서 지하의 세계로. 햇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역의 복도는 형광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 밝음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모든 어둠을 없애려고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밝음 속에서도 민준은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발 앞에 검은색의 형태로. 그것이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강남역의 화장실은 지하 1층에 있었다.

민준은 표지판을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는 자신의 발소리를 들었다. 한 발, 한 발.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도 들었다.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 잠깐. 목표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목표는 있었다. 거울을 보는 것.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

화장실 입구에서, 민준은 잠깐 멈췄다.

왜 준호는 거울을 보라고 했을까? 거울에는 자신이 비칠 것이 아닌가. 거울에는 항상 같은 얼굴이 비친다. 지금 자신의 얼굴도, 10년 전의 얼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20년 전의 얼굴도 기본적으로 같았다. 그렇다면 왜 거울을 봐야 할까?

하지만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밤에도 밝은 조명이 있는 곳이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형광등의 빛이 모든 것을 밝혔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거기에 빛을 가득 채워놓은 것처럼. 그 빛은 거울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었다. 거울 속의 형상을 더욱 뚜렷하게.

화장실의 싱크대는 흰색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큰 거울이 달려 있었다. 거울의 크기는 약 1.5미터 정도. 충분히 전신을 볼 수 있는 크기였다.

민준은 거울 앞에 섰다.

## 세 번째 부분: 거울 속의 자신

거울 앞에 섰을 때, 민준은 자신을 봤다.

174센티미터의 평범한 청년. 밝은 갈색 눈. 검은 머리. 그리고 눈물의 흔적. 촬영장에서 흘렸던 눈물이 여전히 그의 뺨에 남아 있었다. 마치 그것이 증거인 것처럼. 그것이 무언가 일어났다는 증거. 그것이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는 증거.

그의 흰 셔츠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촬영장의 먼지. 그리고 땀의 자국도 있었다. 목과 팔 사이의 셔츠에.

얼굴을 자세히 보자.

코는 작았다. 엄마를 닮았다. 눈썹은 진했다. 아빠를 닮았다. 입술은 약간 창백했다. 아마도 영양 부족 때문일 것이었다. 촬영 기간 동안, 그는 거의 먹지 않았다.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했다.

그의 눈을 봐라.

그 눈은 뭔가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를 보지 못하고 있는가? 그 눈은 살아 있는가? 아니면 죽어 있는가?

민준은 거울을 바라봤다. 오래 바라봤다. 마치 거기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하지만 거울에는 자신만 있었다. 하나의 얼굴. 하나의 눈. 하나의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이 자신인가?

그는 손을 들었다. 거울 속의 손도 움직였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거울은 그렇게 작동한다. 하지만 그 순간, 민준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거울 속의 손이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마치 거기에 다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난 뭐가 되고 싶은 거야?”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하지만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반사했을 뿐이었다. 마치 자신도 그 질문을 모르는 것처럼.

배우?

그 단어는 이상했다. 배우라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으로 연기하는 사람. 누군가의 감정을 빌려와서 표현하는 사람. 누군가의 삶을 임시로 살아가는 사람.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삶은 무엇인가?

그것도 연기인가? 자신도 무언가를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는 배역을 연기하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은 민준을 공포에 빠뜨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의 호흡이 빨라졌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떨리고 있었다. 심장? 아니면 다른 것? 자신의 존재? 자신의 영혼?

화장실의 다른 사람들이 그를 지나갔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했다. 손을 씻었다. 거울을 봤다. 나갔다. 아무도 민준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거기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민준은 손을 들었다. 거울 앞에서.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거울 속의 손도 같은 방식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거울을 만졌다.

찬 유리.

그것은 예상한 대로였다. 유리는 항상 차갑다. 온도는 항상 낮다. 손의 온기가 거울로 전해졌다. 하지만 거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차갑게 유지되었다.

거울 속의 손과 자신의 손이 만났다.

아니, 그것은 만남이 아니었다. 그것은 접촉이 아니었다. 단지 분리일 뿐이었다. 유리가 그들을 나눴다. 한쪽은 현실의 세계. 다른 쪽은 반영의 세계. 그들은 절대 만날 수 없었다. 절대 접촉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외로운 것이었다.

## 네 번째 부분: 오후 4시 47분

강남역의 지하 1층 화장실의 벽에 붙은 시계는 오후 4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지나갔다. 역무원, 여행객, 출근자, 퇴근자.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바빴다. 그들은 어딘가로 가야 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여전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목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또는 목표를 찾기 위해.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목표를 잃어버린 것과 목표를 찾는 것. 그것은 같은 상태인가? 아니면 다른 상태인가?

민준은 깨달았다. 그것은 같은 상태라는 것을. 둘 다 방향이 없는 상태였다. 둘 다 움직임이 없는 상태였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거울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유리에 닿으면서 나는 미세한 소리. 그것은 글자였다. 아니, 단어였다.

첫 번째 글자: ㅅ

두 번째 글자: ㅏ

세 번째 글자: ㅁ

네 번째 글자: ㅁ

“사람”

그렇게 쓰고 나서, 그는 손을 내렸다.

거울은 여전히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반사 위에는 “사람”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손가락의 자국이 글자를 형성하고 있었다. 거울의 미세한 먼지나 흙이 그 자국을 따라 선을 만들었다.

“사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배우가 아닌 사람. 역할이 아닌 실체. 반사가 아닌 본체.

아니다.

민준은 그것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는 약속이었다. 자신에게 하는 서약이었다.

“나는 사람이다.”

그렇게 다시 읽으면, 그것은 명제가 되었다. 선언이 되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확언이었다.

그의 눈가가 다시 축축해졌다.

이번에는 촬영장의 눈물이 아니었다. 이것은 다른 눈물이었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온 눈물이었다. 자신의 영혼에서 나온 눈물이었다.

화장실의 물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손을 씻었다. 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사람은 나갔다.

민준은 혼자 남겨졌다.

거울 앞에서.

그리고 “사람”이라는 글자 앞에서.

## 다섯 번째 부분: 시간의 흐름

오후 4시 50분.

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은 내려져 있었다. 그의 눈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울 위에는 “사람”이라는 글자가 계속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계속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일을 했다. 손을 씻었다. 화장실을 사용했다. 그들 중 몇 명은 거울을 봤다. 그러나 거울에 쓰인 글자는 보지 못했다. 아니, 본 것도 있겠지.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바빴다.

오후 5시 3분.

민준은 드디어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나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싱크대로 걸어갔다. 수도꼭지를 켰다. 물이 흘러나왔다. 그 물은 차가웠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씻었다.

물이 그의 얼굴을 적셨다. 눈을 적셨다. 볼을 적셨다. 턱을 적셨다. 촬영장의 먼지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눈물의 흔적도 씻겨 내려갔다.

그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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