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1화: 손가락의 기억
박미라는 모니터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조명에 반쯤 잠겼고, 반쯤은 밝혀 있었다. 마치 그녀 자신도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세트 위에서는 여전히 이준혁의 손이 민준의 얼굴에 닿아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좋아요.”
박미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중얼거리는 수준이었다.
“정말 좋아요.”
이준혁이 손을 뺐다. 천천히. 마치 그 손이 뭔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처럼. 민준은 손이 떠나간 자리에 남겨진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일어나도 괜찮습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준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민준을 향한 것이었다.
민준은 천천히 일어났다. 이번에는 움직임이 훨씬 더 조심스러웠다. 마치 자신이 깨지기 쉬운 것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세트의 바닥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의 등에는 스티로폼 매트의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박미라는 여전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움직였다. 재생, 일시정지, 다시 재생. 마치 그 몇 초의 장면을 반복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민준 배우, 여기 와보세요.”
박미라가 손을 들었다. 민준을 부르는 손짓이었다. 명령이 아니라 초대였다. 마치 자신이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민준은 걸어갔다. 세트를 빠져나와 조명 뒤쪽으로. 박미라의 옆에 섰다. 그녀는 키가 작았다. 민준과 비교하면 거의 반 정도의 높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무언가는 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관찰의 힘이었다.
화면에는 민준의 얼굴이 크게 보이고 있었다. 눈을 감은 상태. 그리고 눈물. 화면의 해상도 때문에 그 눈물은 마치 보석처럼 보였다. 빛을 반사하며 흐르는 보석.
“이걸 봤어요?”
박미라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의 의미는 불명확했다. 네, 봤다는 뜻인지, 네,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인지.
“이 순간에 뭘 생각했어요?”
박미라가 화면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눈물이 흐르는 그 지점을 가리켰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호의 말들이 떠올랐다. 폭발. 통제 불가능. 진정한 누군가. 하지만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연기가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뭔가를 떠올렸어요. 그게 뭔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게 뭔지는 중요해요.”
박미라가 화면을 껐다. 검은 화면. 그 위에 그들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박미라와 민준. 한 쌍의 그림자.
“당신은 지금 배우 같지 않아요.”
박미라가 말했다.
“그럼 뭐 같아요?”
민준이 물었다.
“사람 같아요. 진짜 사람. 그리고 그게 무섭거든요. 왜냐하면 배우는 통제할 수 있지만, 사람은 통제할 수 없으니까.”
박미라가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전의 장면이 다시 재생되었다. 이준혁의 손이 민준의 얼굴에 닿고, 눈물을 닦고, 손이 떠나가는 그 모든 과정이 다시 펼쳐졌다.
“이 손의 온기를 느꼈어요?”
박미라가 물었다.
“네.”
“그게 연기였어요?”
민준은 침묵했다. 그것은 대답이었다.
“알았어요.”
박미라가 화면을 껐다. 이번에는 다시 켜지 않았다.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길,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가볍지만 확실한 떨림. 마치 무언가를 놓쳤을 때의 그 떨림. 또는 무언가를 잡으려고 했을 때의 떨림.
라커룸의 문을 열었을 때, 준호는 그곳에 없었다. 대신 따뜻한 커피 냄새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아메리카노. 준호가 놓고 간 것일 것이다.
민준은 커피를 들었다. 여전히 따뜻했다. 이것은 얼마 전에 놓여진 것이라는 뜻이었다. 준호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커피를 사와서 여기에 놓고 간 것이다. 마치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또는 자신이 여기에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 알림음. 준호였다.
“촬영 잘했어. 박미라가 너 좋아한대. 나중에 얘기하자.”
민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라커룸의 거울을 봤다. 그 안에는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여전히 촬영 메이크업이 되어 있었다. 아이라인이 조금 번져 있었고, 파운데이션이 떨어진 부분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 뒤에, 민준은 뭔가 다른 것을 봤다. 그것이 뭔지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그는 거울에 손을 댔다. 유리는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차가운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위로가 되었다.
저녁 5시 45분. 촬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알림이 왔다. 내일은 촬영이 없다. 이틀의 휴식이 있을 것이다. 민준은 그것을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휴식이 무엇인지 몰랐다. 휴식은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인데,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라커룸에서 나왔을 때, 복도의 한쪽 끝에 준호가 서 있었다. 그는 민준을 보자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느렸다. 마치 자신이 민준 곁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듯이.
“박미라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준호가 물었다.
“그냥… 좋다고 했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거 다야?”
“그거 다예요.”
민준이 말했다.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댔다. 그 손은 촬영장에서 느꼈던 그 손이 아니었다. 준호의 손이었다. 따뜻하고, 무겁고, 확실한 손.
“넌 계속 이 일을 할 거야?”
준호가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모르겠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정직한 대답이군.”
준호가 말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민준의 어깨 위에 있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촬영 세트의 엘리베이터는 크고, 거울로 가득했다. 그것은 배우들이 자신을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그것이 고통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지 마.”
준호가 말했다.
“왜요?”
“지금은 시간이 아니야. 지금 너는 자신을 봐선 안 돼.”
민준은 거울을 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숫자를 세었다. 1층. 2층. 3층. 마치 제78화의 카페에서 먼지를 센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지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
“나랑 밥 먹을래?”
준호가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도착했을 때.
“지금요?”
“지금.”
준호가 대답했다.
“네. 좋아요.”
민준이 말했다.
그들이 간 곳은 편의점이었다. 대형 촬영장 근처의 편의점. 그곳은 배우들로 가득했다. 촬영이 끝난 배우들, 촬영을 준비하는 배우들, 그리고 촬영 중인 배우들이 몰려 있었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집어 들고,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돈을 내고, 떠나가는 것.
준호와 민준은 줄을 섰다. 그들 앞에는 여자 배우가 있었다. 민준은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주연 배우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저 한 명의 손님이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집고 있는 평범한 손님.
“이거요.”
준호가 말했다. 민준에게 가리킨 것은 계란 김밥이었다.
“네?”
민준이 물었다.
“이거 먹어 봤어?”
“아뇨.”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계란 김밥을 집었다. 그리고 민준에게 건넸다. 민준은 그것을 받았다. 편의점 플라스틱 용기. 그 안에는 노란 계란이 밥을 감싸고 있었다. 매우 단순한 형태의 음식이었다.
“집어.”
준호가 말했다. 민준을 카운터로 밀어냈다.
그들은 계산을 했다. 계란 김밥 두 개. 커피 한 잔. 총 6,500원. 민준은 돈을 냈다.
편의점 밖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플라스틱 테이블. 그 위에는 누군가의 음식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다. 준호는 손수건을 꺼내서 테이블을 닦았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마치 그것이 중요한 일인 것처럼.
그들은 앉았다. 밤 7시 정도였다. 해는 이미 졌다. 서울의 하늘은 짙은 보라색이었다.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보라색.
“박미라 같은 PD는 드물어.”
준호가 말했다. 계란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떤 점이요?”
민준이 물었다. 그도 계란 김밥을 먹고 있었다. 계란의 맛이 담백했다. 그 담백함이 좋았다.
“배우를 사람으로 본다는 점. 대부분의 PD는 배우를 도구로 본다. 그런데 박미라는 다르다. 그 사람은 배우 안에 있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준호가 김밥의 한 입을 깨물었다.
“그게 좋은 건가요?”
민준이 물었다.
“좋을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다. 그건 배우에 따라 달라진다.”
준호가 대답했다.
“나는요?”
“넌 위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넌 아직도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
준호가 민준을 봤다. 그의 눈은 여전히 어딘가 멀리 있었다.
“형은 뭘 원해요?”
민준이 물었다.
“나? 나는 이미 뭘 원하는지 안다. 그리고 그걸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나는 위험하지 않다. 그냥 슬픈 거일 뿐.”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란 김밥을 계속 먹었다. 계란의 부드러움이 입 안에서 녹아갔다.
“너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느껴?”
준호가 물었다.
“지금이요?”
민준이 물었다.
“지금. 이 시간. 이 장소. 이 음식.”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아요. 편해요.”
“그게 전부야?”
준호가 물었다.
“네. 그게 전부예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준호가 말했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계속 먹었다. 편의점 음식. 그것이 진짜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먹었다.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내일은 쉬는 거야?”
준호가 물었다. 거의 다 먹고 남은 계란 김밥의 끝부분을 집으며.
“네. 이틀 쉬어요.”
민준이 말했다.
“뭐 할 거야?”
“몰라요. 쉬겠죠.”
민준이 대답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어딘가 가. 영화를 봐. 또는 산에 가. 그리고 너는 지금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줘.”
준호가 말했다.
“뭘 놓치고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걸 알면, 더 이상 놓치는 게 아니야.”
준호가 대답했다.
계란 김밥은 끝났다. 두 개 모두. 그들은 일어났다. 편의점 쓰레기통에 용기를 버렸다. 쓰레기통은 가득했다. 오늘 하루 동안 쌓인 쓰레기들. 모두가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버린다.
“고마워요, 형.”
민준이 말했다. 그들이 편의점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뭘.”
준호가 대답했다.
“촬영장에서 손잡아 줘서. 그리고 지금도.”
민준이 말했다.
준호는 민준의 어깨에 다시 손을 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그 손을 놔주면 민준이 어딘가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넌 혼자가 아니야.”
준호가 말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또는 경고였다. 그 두 가지 모두였다.
밤 10시 23분. 민준의 반지하 아파트. 천장의 곰팡이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민준은 침대에 누웠다.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그 손가락들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에는 준호의 메시지가 있었다.
“내일 전화해. 그리고 뭔가 먹고 자. 밥 꼭.”
민준은 대답을 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 천장을 봤다. 거기에는 여전히 금이 가 있었다. 처음 봤던 그 금과 같은 금. 또는 더 깊어진 금. 시간이 흐르면서 금이 더 깊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더 깊게 보게 되는 것일까?
그의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공중에서. 마치 누군가의 얼굴을 만지는 것처럼. 이준혁의 손이 자신의 얼굴에 닿았을 때처럼. 또는 준호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닿았을 때처럼.
손가락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민준이 알게 된 것이었다. 피부는 기억한다. 온기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영원히 남는다.
밤 11시 15분. 민준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박미라가 말했던 것들. 준호가 말했던 것들. 그리고 자신이 말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것도 하나의 진실이었다.
# 확장된 화
## 1부: 편의점의 오후
오후 3시 47분. 편의점의 계산대 근처였다. 형광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깜빡, 깜빡.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민준은 계란 김밥을 물고 있었다. 입안에서 계란의 부드러운 식감과 밥의 따뜻함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위로였다. 가장 간단한 형태의 위로.
준호가 민준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의 계란 김밥은 이미 반쯤 사라졌다. 그는 천천히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서둘러 끝내는 사람이었다. 마치 시간이 항상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편의점의 공기는 차가웠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했다. 민준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자신의 팔을 비비며 따뜻함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에서 오는 따뜻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부에서 와야 하는 것이었다. 내부에서 솟아나는 그런 따뜻함.
“뭐 할 거야?”
준호가 갑자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날씨에 대해 묻는 것처럼.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걱정이었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 포장된 깊은 걱정.
“몰라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냥 쉬겠죠.”
민준이 덧붙였다. 계란 김밥을 한 입 더 물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말하기 싫을 때의 좋은 핑계였다. 입이 바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준호는 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뭔가 있었다. 동정? 아니면 이해? 민준은 그것을 정확히 읽을 수 없었다. 감정의 언어는 너무 복잡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어딘가 가.”
준호가 말했다. 이번에는 명령에 가까웠다.
“영화를 봐. 또는 산에 가. 그리고…”
그는 잠깐 멈췄다. 민준을 다시 바라봤다.
“너는 지금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줘.”
그의 말은 천천히 떨어졌다. 마치 돌멩이가 물에 빠지는 것처럼. 파문을 일으키며.
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진지함 자체였다. 그리고 그 진지함 뒤에는 뭔가 더 있었다. 슬픔일까? 아니면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된 어떤 경험?
“뭘 놓치고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호기심은 순수했다. 아이 같은 호기심.
준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슬픈 미소였다.
“그걸 알면, 더 이상 놓치는 게 아니야.”
그가 대답했다.
민준은 그 말을 생각해 봤다. 그것은 역설이었다. 알면 알 수 없다는 모순. 그리고 그 모순 속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 있었다. 준호는 왜 항상 이런 말들을 했을까? 마치 삶의 모든 것을 이미 경험한 사람처럼.
편의점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깜빡, 깜빡. 그 리듬은 계속됐다.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 세상의 일부인 것처럼.
“계란 김밥 하나 더?”
준호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들은 계산대로 갔다.
## 2부: 이별의 순간
계란 김밥은 끝났다. 두 개 모두. 민준의 입가에는 밥이 조금 묻어 있었다. 준호가 그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이 날씬한 몸, 이 피곤한 얼굴에서 나온 가장 따뜻한 웃음.
그들은 일어났다. 다리를 쭉 펴며. 오래 앉아 있던 몸은 뻣뻣했다. 준호는 신음을 내뱉으며 허리를 구부렸다.
“나이 먹는 게 느껴져.”
그가 중얼거렸다.
편의점 쓰레기통으로 갔다. 그것은 일회용 용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흰색, 검은색, 투명한 용기들. 모두가 같은 형태, 같은 크기.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이게 우리의 하루야.”
민준이 생각했다. 음식을 먹고, 버리고, 다시 먹고, 다시 버리고. 끝없는 순환.
용기를 버렸다. 쓰레기통은 가득했다. 오늘 하루 동안 쌓인 쓰레기들. 사람들의 욕망이 모여 있었다. 배고픔의 흔적들. 그리고 그 흔적들은 내일 어딘가로 옮겨질 것이었다. 땅속으로, 또는 불속으로.
“모두가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버린다.”
민준이 조용히 말했다.
“그렇지.”
준호가 대답했다.
편의점 주차장으로 나갔다. 햇빛이 강했다. 오후의 햇빛은 무자비했다. 민준의 눈이 부셨다. 그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세상이 보였다. 분절된, 조각난 세상.
“고마워요, 형.”
민준이 말했다. 그들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뭘.”
준호가 대답했다. 그의 말투는 무뚝뚝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성의 표현이었다.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준호의 방식이었다.
“촬영장에서 손잡아 줘서. 그리고 지금도.”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사가 가득했다. 그것은 단순한 감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감사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떨어뜨리지 않아 줘서에 대한 감사.
준호는 민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느렸다. 그 감사가 얼마나 깊은지를. 그 감사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준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댔다. 다시. 이번에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손가락들이 민준의 천을 꽉 쥐었다. 마치 자신이 그 손을 놔주면 민준이 어딘가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마치 이 세상이 민준을 빨아들일 것 같은 느낌이.
“넌 혼자가 아니야.”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또는 경고였다. 그 두 가지 모두였다. 둘 다이면서도 둘 다가 아닌 것. 그것은 단순한 말 이상의 무언가였다. 그것은 맹세였다.
민준은 그 손의 무게를 느꼈다. 온기를 느꼈다. 그리고 알았다.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는 것을.
## 3부: 밤, 혼자
밤 10시 23분. 민준의 반지하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세상과의 거리를 느꼈다. 지표면 아래. 창문 위로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다리뿐이었다. 누군가의 검은 구두, 누군가의 하얀 운동화. 세상은 그렇게 단편적으로 보였다.
문을 열었다. 그 냄새가 그를 맞이했다. 반지하의 냄새. 습기와 곰팡이의 냄새. 그것은 집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포기의 냄새였다.
천장의 곰팡이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민준이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했든 상관없다는 듯이. 곰팡이는 그저 자라고 또 자랐다. 검은색으로. 조용히.
민준은 침대에 누웠다. 신발을 벗지 않은 채. 그냥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그 손가락들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미세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 미세한 떨림. 신체의 언어. 마음이 몸으로 표현되는 방식.
그는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 펼쳤다 오므렸다. 반복했다. 마치 그 움직임이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처럼.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에는 준호의 메시지가 있었다.
“내일 전화해. 그리고 뭔가 먹고 자. 밥 꼭.”
그 메시지를 읽으며 민준의 눈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신체의 한 가지 방식이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 감정을 내보내지 않는 것.
민준은 대답을 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전부.
그리고 다시 누웠다. 천장을 봤다. 거기에는 여전히 금이 가 있었다. 천장의 금. 그것은 이 건물의 나이를 말하고 있었다. 이 건물의 피로를 말하고 있었다.
“처음 봤던 그 금과 같은 금일까? 아니면 더 깊어진 금일까?”
민준이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금이 더 깊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더 깊게 보게 되는 것일까? 이 두 가지는 사실 같은 것이 아닐까? 시간이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가 인식을 바꾸고, 인식의 변화가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같은 것이다. 모두 같은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공중에서. 마치 누군가의 얼굴을 만지는 것처럼. 이준혁의 손이 자신의 얼굴에 닿았을 때처럼. 또는 준호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닿았을 때처럼.
손은 기억한다. 민준은 알았다. 손은 망각을 거부한다.
“손가락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민준이 알게 된 것이었다. 피부는 기억한다. 온기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영원히 남는다.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그 기억은 피부 속에 남아 있다. 세포 속에. DNA 속에.
밤 11시 15분. 민준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박미라가 말했던 것들. 그 말들은 무엇이었나? 민준은 그것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기억했다. 그 감정의 무게는 기억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박미라가 말했던 것 같았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모든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민준의 머릿속에서. 마치 합창처럼.
그리고 준호가 말했던 것들. 그것들은 더 선명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그 말이 계속 울렸다. 귓가에서. 마음에서.
그리고 자신이 말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 그것들이 가장 큰 음성이었다. 말하지 않은 것들의 목소리. 억압된 감정의 비명. 그것들이 가장 크게 들렸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가?”
민준이 다시 생각했다. 준호의 말을 다시 생각했다.
“그걸 알면, 더 이상 놓치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자신은 계속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신은 계속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자신은 계속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뜻인가?
민준은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잃음과 찾음. 그것들은 정말 다른 것인가?
## 4부: 깊은 밤
밤 11시 47분. 민준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제 그는 잠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또 다른 착각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자신의 감각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민준이 자신에게 말했다. 마치 제3자의 시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그가 덧붙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것도 하나의 진실이었다.”
천장의 곰팡이를 다시 봤다. 그것이 자신에게 말해 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말했다. 계속 있어라. 계속 자라라. 계속 존재하라. 비록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을지라도. 비록 모두가 너를 없애고 싶어 할지라도. 계속 있어라.
“곰팡이는 나보다 강하다.”
민준이 생각했다.
“곰팡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은? 자신은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할 것인가?
민준은 그 답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일이 올 것이었다. 그리고 내일 준호는 전화할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준호에게 말할 것이었다.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단순했다. 생존. 먹고, 자고, 일어나고, 다시 먹는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밤 자정. 민준은 마침내 잠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꿈 속에서도 계속될 것이었다.
준호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었다. 가장 깊은, 가장 진정한 진실.
그리고 민준은 알았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자신이 놓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자신은 준호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했다.
천장의 곰팡이는 계속 자랐다. 검은색으로. 조용히. 무한히.
하지만 내일, 태양이 떠오를 것이었다. 비록 창문은 낮아서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할지라도, 태양은 떠오를 것이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