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80화: 폭발 이후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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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0화: 폭발 이후의 침묵

민준이 눈을 떴을 때, 천장에는 금이 가 있었다. 아파트의 천장이 아니었다. 촬영 세트의 천장. 배우들이 누워서 촬영하는 장면에 쓰이는 천장이었다. 그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등이 냉한 스티로폼 매트에 닿아 있었고, 그 위에 무언가 따뜻한 손이 있었다.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

박미라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컷.”

한 단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멈췄다. 세트의 조명이 꺼지지는 않았지만, 카메라가 멈췄다. 배우가 일어났다. 그 배우는 서른 살 정도의 남자였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는 얼굴. 민준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준혁. 그는 일어나면서 민준의 가슴에서 손을 뺐다.

민준은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었다.

“민준 배우, 일어나세요.”

박미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제75화에서 촬영장에서 들었던 그 톤. 칭찬도 아니고 지적도 아닌, 무언가 더 정교한 것. 마치 자신이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의 그 톤.

민준은 일어났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엘보우로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 무릎을 꿇고,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그 과정에서 그의 시선은 계속 박미라를 향했다.

“좋습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그녀는 화면을 들고 있었다. 모니터링 화면. 방금 촬영한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화면 위를 천천히 훑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한 번 더 할까요?”

그녀가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민준에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또는 누군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하는 질문.

“네, PD님. 준비됐습니다.”

이준혁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활발했다. 마치 방금 촬영한 장면이 없었던 것처럼. 또는 그것이 단순한 일이었던 것처럼.

민준도 준비되었다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입은 열렸지만, 소리가 없었다. 마치 자신의 성대가 제거된 것처럼. 또는 자신이 말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민준 배우?”

박미라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그 질문이 명확하게 민준을 향했다.

“네, 준비됐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다시 위치로 돌아갔다. 이준혁이 먼저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민준이 그의 옆에 누웠다. 이번에는 그들이 서로 마주보는 위치였다. 얼굴과 얼굴이 가까웠다. 거의 키스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 하지만 그들의 눈은 만나지 않았다.

“액션.”

박미라의 목소리. 그것이 신호였다.

이준혁이 입을 열었다. 대사가 시작되었다. “넌 왜 내 곁을 떠날 수 없는 거야?” 그것은 남편 역할의 대사였다. 아내에게 묻는 대사. 마치 진심으로 궁금한 것처럼.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연기였다. 모든 것이 연기였다.

민준은 자신의 대사를 말해야 했다. “나도… 모르겠어.” 단순한 대사. 하지만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눈물이 필요했다. 또는 눈물을 흉내 내는 얼굴이 필요했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터졌다. 그것이 뭔지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터졌다. 마치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또는 무언가가 깨지는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이 연기였는지 현실이었는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중요했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것이 흘렀고, 그것이 존재했다. 뜨거운 물방울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겠어.”

민준이 말했다. 이번에는 다른 톤으로. 깨진 톤. 부서진 톤.

이준혁의 손이 민준의 얼굴에 닿았다. 그의 손가락이 민준의 눈물을 닦았다. 부드럽게. 마치 실제로 그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그 손의 온기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현실인지 연기인지 알 수 없었다.

“컷.”

박미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준혁의 손이 여전히 민준의 얼굴에 있었다. 아무도 그것을 빼지 않았다. 마치 그들이 여기서 영원히 있을 것처럼.

몇 초가 지났다. 또는 몇 분이.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좋습니다.”

박미라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이준혁이 그의 손을 천천히 빼냈다. 그리고 일어났다. 민준도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동작은 로봇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조종하는 것처럼.

“점심시간입니다. 한 시간 뒤에 다시 만나요.”

박미라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화면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세트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명 기사들, 음향 기사들, 스태프들. 모두가 점심을 준비하러 움직였다. 하지만 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이준혁이 민준에게 다가왔다.

“잘했어요.”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진심 어린 목소리.

“감사합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아, 근데 너무 몰입했어. 진짜로. 처음 보는 배우가 저 정도면 대박인데. 어디서 배웠어?”

이준혁이 물었다.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디서 배웠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터진 것이었다.

“모르겠어요.”

민준이 말했다.

“음, 뭐든 좋습니다. 점심 먹고 또 만나요.”

이준혁이 손을 들었다. 마치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가버렸다.

민준은 혼자 남겨졌다. 세트의 가장자리에. 조명이 꺼지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신호였던 것처럼.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메시지.

“밥 먹어.”

단 세 글자. 하지만 그것이 명령처럼 들렸다.

민준은 세트를 나갔다. 촬영장의 건물 복도를 걸었다. 회색 벽, 형광등, 누군가의 말소리.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멀리 있었다. 마치 자신이 물 속에 있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앞에서 준호를 만났다.

그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두 잔.

“들어.”

준호가 한 잔을 내밀었다.

“뭐해요?”

민준이 물었다.

“먹으라고 했잖아.”

“아, 감사합니다.”

민준이 커피를 받았다. 따뜻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그들은 들어갔다.

“잘했어?”

준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박미라가 뭐라고 했어?”

“좋다고…”

“그럼 잘한 거야.”

준호가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있었다. 1층으로. 지하 1층으로. 지하 2층으로. 마치 깊이로 들어가는 것처럼.

“형, 저 왜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민준이 말했다.

“연기했으니까.”

준호가 말했다.

“아니,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뭔가 터졌어요. 촬영 중에.”

민준이 말했다.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카페에서처럼. 아니, 더 강하게.

“좋은 거야. 그게.”

준호가 말했다.

“좋은 거예요?”

“폭발했다는 거니까. 넌 폭발했어.”

“그럼 이제 뭐해요?”

“이제는… 견뎌야 해.”

준호가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에 멈췄다. 문이 열렸다. 그곳은 촬영장의 카페테리아였다. 작은 공간. 테이블 몇 개. 그리고 사람들. 다양한 배우들, 스태프들, 그리고 다른 누군가들.

그들은 들어갔다.

민준은 밥을 먹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입 속으로 들어온 것, 씹는 것, 삼키는 것. 모든 것이 기계적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준호는 민준을 바라봤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만 말했다.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밥을 다 먹고, 그들은 다시 위로 올라갔다.

오후 1시 47분.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씬이었다. 침실 씬이 아닌, 거실 씬. 부부가 싸우는 장면. 민준은 남편이 아니라 아들 역할이었다. 그의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보는 역할.

“액션.”

박미라의 목소리.

이준혁과 배우 이름을 모르는 여배우가 싸웠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욕설이 나왔다. 손짓이 커졌다. 마치 실제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그것도 연기였다. 모든 것이 연기였다.

민준은 그들을 바라봐야 했다. 아들로서. 두려움으로. 슬픔으로.

하지만 민준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감정이 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것을 꺼낸 것처럼.

“컷.”

박미라가 말했다.

“민준 배우, 뭔가 빠진 거 있지 않아?”

박미라가 물었다.

“죄송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넌 이미 폭발했어. 그럼 이제는 재를 남겨야 해. 폭발 후의 재. 넌 비었어. 너무 비었어.”

박미라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다시.”

박미라가 말했다.

그들은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민준은 무언가를 시도했다. 슬픔을 연기했다. 두려움을 연기했다. 하지만 그것도 틀렸다.

“컷. 또 틀렸어. 다시.”

또 다시.

또 다시.

그것이 다섯 번 반복되었다. 여섯 번. 일곱 번.

그 정도가 되었을 때, 민준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뭘 하려고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폭발한 자신 이후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

여덟 번째.

“액션.”

이번에는 민준은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냥 있기로 했다. 그냥 봤다. 그들이 싸우는 것을.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분노를 봤다. 하지만 자신은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마치 자신이 거기 있지 않은 것처럼. 또는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 것처럼.

“컷.”

박미라가 말했다.

침묵이 있었다.

“좋습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그 단어. 그 두 단어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촬영이 끝났다. 오후 5시 12분.

민준은 탈의실로 갔다. 그곳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촬영 복장에서 자신의 옷으로. 검은색 후드티. 회색 바지. 자신의 신발. 하지만 그것들도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준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 가?”

준호가 물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들은 차에 탔다. 준호의 차. 검은색 아반떼. 항상 깨끗한 차. 준호는 항상 자신의 것을 정결하게 유지했다. 마치 그것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 것처럼.

“뭐 하고 싶어?”

준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밥?”

“아뇨.”

“커피?”

“아뇨.”

“그럼?”

“그냥… 운전만 해 주세요.”

민준이 말했다.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운전했다. 강남역 방향. 테헤란로. 논현로. 신사로. 강남의 거리들. 모두 같은 거리. 모두 같은 불빛. 모두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

그들은 한 시간을 운전했다. 말하지 않고.

오후 6시 47분. 준호는 차를 세웠다. 어딘가 공터. 한강 근처. 그곳에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연인들, 가족들, 그리고 혼자인 사람들.

“내려.”

준호가 말했다.

그들은 내렸다. 한강의 바람이 불었다. 가을 바람. 차가운 바람.

“넌 지금 뭐 생각해?”

준호가 물었다.

“저는… 제 폭발이 뭐였는지 몰라요.”

민준이 말했다.

“그건 넌 모를 거야. 배우는 자신의 폭발을 절대 모르니까. 그건 항상 다른 누군가가 본다.”

준호가 말했다.

“그럼 형은 뭘 봤어요?”

“넌 자신을 놨어. 완전히.”

준호가 말했다.

“자신을 놨다는 게?”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방어, 자신의 가면, 자신의 거짓. 모든 것을 내려놨어. 그리고 그 아래에는 진짜 누군가가 있었어.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준호가 물었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눈물이 또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눈물이었다. 연기의 눈물이 아니라, 현실의 눈물. 자신의 눈물.

“형…”

민준이 말했다.

“뭐?”

“저… 뭐하는 거예요? 이게 다 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강한 손. 따뜻한 손.

“넌 배우가 되고 있어.”

준호가 말했다.

“배우가 되는 게 이래요?”

“그래. 이래.”

준호가 말했다.

그들은 한강을 바라봤다. 물이 흘렀다. 계속 흘렀다. 멈추지 않고.

“형, 저…”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알 수 없는 번호.

민준은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 드라마의 연출을 담당하고 있는 박미라입니다.”

박미라의 목소리. 하지만 이것은 촬영장의 박미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 더 인간적인 목소리.

“네, 안녕하세요.”

민준이 말했다.

“당신이 오늘 촬영한 것을 봤습니다. 정확히는, 당신이 폭발한 것을 봤습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네?”

“우리는 당신의 역할을 늘리고 싶습니다. 아들 역할에서 조연으로. 아니, 거의 주연 급으로.”

박미라가 말했다.

민준의 손이 떨렸다. 준호가 그것을 봤다.

“정말요?”

민준이 물었다.

“정말입니다. 당신은 뭔가 다른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과는 다른. 그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카메라에 담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더 자주 보고 싶습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내일 우리 회사로 오세요. 계약 논의를 하고 싶습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통화가 끝났다.

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민준을 바라봤다.

“뭐라고 했어?”

준호가 물었다.

“역할을 늘린대요. 조연으로.”

민준이 말했다.

준호의 얼굴에 뭔가가 흘렀다. 눈물이었다. 그의 눈에서.

“형?”

“미안해. 난…”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대신, 그는 민준을 안았다. 강하게. 마치 자신이 민준을 놓으면 사라져 버릴 것처럼.

“형, 뭐하는 거예요?”

“축하해. 정말 축하해.”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의 떨리는 등을.

한강의 물이 계속 흘렀다.

오후 7시 3분.

그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그것이 뭔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했다. 자신의 안에. 깊숙이.

그것은 폭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이후의 것이었다. 폭발 이후의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이 누군가가 되고 있었다.

마침내. 드디어.

그는 배우가 되고 있었다.

# 폭발 이후의 침묵

## 1부: 전화의 울림

오후 6시 47분.

한강 공원의 벤치 위에서 민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화면에는 여전히 박미라 감독의 이름이 떠 있었다. 아직 울리지 않은 전화. 그러나 올 거라는 것을 민준은 알고 있었다. 촬영장에서의 그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해보니 손가락 끝이 찬 기운으로 저려온다. 마치 한강의 물이 직접 손목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형, 뭐 해요?”

준호가 물었다. 민준의 옆에 앉은 준호의 목소리는 밝았다. 하지만 그것은 억지스러운 밝음이었다. 형을 위로하려는, 그러나 자신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그런 밝음.

“아무것도 아니야.”

민준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거짓으로 가득했다. 준호는 이미 형의 신경이 휴대폰에 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한강의 흐름을 바라봤다.

저녁 햇살이 물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거울을 깨뜨린 것처럼. 그 파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민준은 그 춤을 따라가다가 준호의 어깨를 봤다.

형은 뭘까. 준호가 생각했을 것이다. 형은 정말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그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울음은 작았지만, 민준에게는 세상이 흔들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화면을 봤다. ‘박미라’라는 이름 위로 작은 사진이 떠 있었다. 감독의 얼굴. 그 얼굴은 촬영장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촬영장에서 박미라는 항상 심각했다. 그녀의 눈은 언제나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무언가를 재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진 속의 얼굴은 부드러웠다.

민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박미라입니다.”

감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촬영장의 박미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 더 인간적인 목소리.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외투를 벗겨낸 것처럼, 그 아래에 있던 따뜻한 사람이 드러나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마치 큰 소리로 말하면 이 모든 것이 깨어질까봐.

준호가 민준을 쳐다봤다. 형의 얼굴 근육이 모두 긴장해 있었다. 준호는 숨을 참았다.

“당신이 오늘 촬영한 것을 봤습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정확히는, 당신이 폭발한 것을 봤습니다.”

그 말 속에는 판단이 없었다. 다만 관찰이 있었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것처럼.

민준의 심장이 멈췄다.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오후 2시 정도였을 때. 그 씬. 아버지 역할을 하는 배우와의 대사 중. 감정이 갑자기 밀려온 그 순간. 그는 스스로도 놀라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마치 자신의 몸이 다른 누군가의 몸이 되어 버린 것처럼.

그 몸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박미라가 계속했다.

“네?”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떨림이 있었다. 준호가 그것을 들었다. 준호의 눈이 더 크게 떠졌다.

“우리는 당신의 역할을 늘리고 싶습니다.”

박미라가 천천히 말했다. 마치 각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듯이.

“아들 역할에서 조연으로. 아니, 거의 주연 급으로.”

## 2부: 침묵의 무게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민준은 호흡을 하는 것을 잊었다. 그의 폐가 공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고 싶다는 것처럼.

“정말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아이처럼 들렸다. 놀라움으로 가득 찬, 그리고 두려움으로도 가득 찬 아이의 목소리.

“정말입니다.”

박미라가 말했다.

“당신은 뭔가 다른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과는 다른. 그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카메라에 담깁니다. 누구는 연기를 해야만 배우가 되지만, 당신은… 당신은 그냥 존재하면 그것이 배우입니다.”

민준은 박미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준호가 그 떨림을 봤다. 준호의 눈에서도 뭔가가 맺혔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더 자주 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아마도 그 이후에도.”

박미라가 계속했다.

“우리 제작팀이 당신의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민준은 한강을 봤다. 저녁 햇살이 더욱 붉어지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그 광경은 아름다웠고, 동시에 현실 같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떨림이 가득했다.

“내일 우리 회사로 오세요. 계약 논의를 하고 싶습니다. 상세한 역할 변경사항도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스케줄도 조정해야 하고요.”

박미라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민준이 반복했다. 그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박미라가 말했고, 통화는 끝났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렸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형?”

준호가 물었다.

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민준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이 만났다.

“역할을 늘린대요. 조연으로.”

민준이 말했다. 그 단어들이 입에서 나올 때, 그는 여전히 그것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거의 주연 급으로.”

준호가 되풀이했다. 그의 목소리는 믿음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네.”

민준이 말했다.

그 순간, 준호의 얼굴에 뭔가가 흘렀다.

눈물이었다.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준호는 얼굴을 돌렸다. 마치 형에게 그것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형?”

민준이 물었다.

“미안해. 난…”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의 목이 메어 있었다. 감정이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몇 달간 형을 지켜본 것. 그 모든 시간. 형이 거울 앞에서 연기 동작을 반복했던 밤들. 형이 대사를 중얼거렸던 아침들. 그리고 자신도 함께 응원했던 촬영장 밖에서의 그 모든 순간들.

대신, 준호는 민준을 안았다.

강하게. 마치 자신이 민준을 놓으면 형이 사라져 버릴 것처럼.

“형, 뭐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그저 물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준호의 눈물을 받아내려는 시도였다.

“축하해. 정말 축하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울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민준은 준호의 등을 두드렸다. 그의 떨리는 등을. 형과 동생. 한 명은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떨림이고, 한 명은 그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던 마음이 터져나오는 떨림이었다.

## 3부: 한강의 흐름

한강의 물이 계속 흘렀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흐름이었다.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이 변하든, 한강은 계속 흘렀다. 수백 년을 같은 방식으로 흘렀고, 아마도 수백 년을 더 같은 방식으로 흘 것이었다.

오후 7시 3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든 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축하와 눈물도, 희망과 두려움도.

민준은 준호를 놓으려고 했지만, 준호는 아직 형을 안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있었다. 말 없이. 단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그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그것이 뭔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했다. 자신의 안에. 깊숙이.

그것은 역할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약도 아니었다.

그것은 박미라 감독의 칭찬도 아니었다.

“형, 이제 놨어도 돼요.”

준호가 말했다.

“응.”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준호는 여전히 형을 안고 있었다.

“정말로.”

“알았어.”

민준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신경 쓰인 웃음이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정말로 터져나왔을 때, 민준도 눈물이 흘렀다.

그는 자신이 왜 우는지 몰랐다. 행복해서인가? 안도해서인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가?

아마도 그 모든 것이었을 것이다.

준호가 마침내 형을 놨다. 두 사람은 한강을 다시 바라봤다.

“형이 배우가 되고 있어요.”

준호가 말했다. 마치 중얼거리듯이.

“아직 아니야. 아직 계약도 안 했고.”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의 안에서 뭔가가 이미 변하고 있었다. 마치 그 폭발의 순간이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아니에요. 형은 이미 배우예요.”

준호가 말했다.

“그게 무슨…”

“촬영장에서 형을 봤어요. 형이 폭발했을 때. 그때 형은 이미 배우였어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그 배우로.”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의 눈은 여전히 축축했지만, 그 안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폭발이 아니었다는 것을 민준은 이제 알았다.

그것은 그 이후의 것이었다.

폭발 이후의 침묵.

그 침묵.

촬영이 끝난 후, 세트장이 조용해졌을 때. 박미라 감독이 그를 바라봤을 때. 그 침묵 속에서 무언가가 변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마음에 불을 켠 것처럼.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이 누군가가 되고 있었다.

“내일 뭐 할 거예요?”

준호가 물었다.

“회사에 가서 계약 논의를 할 거야.”

민준이 말했다.

“그 다음에는요?”

준호가 물었다.

민준은 생각했다. 그 다음? 촬영이 계속될 것이다. 더 많은 장면들. 더 많은 역할. 그리고 아마도 다른 영화도. 다른 감독도. 다른 세계도.

“모르겠어. 하지만 뭔가 기대돼.”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오후 7시 5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한강처럼 멈추지 않는 흐름.

마침내.

드디어.

그는 배우가 되고 있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몇 달의 준비와 노력과, 그리고 그 폭발의 순간과, 그리고 이 침묵의 순간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림이 이제 멈췄다. 대신 그 손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준호의 손이 형의 손을 잡고 있었다.

“형, 우리 집에 가서 엄마한테 얘기할까요?”

준호가 물었다.

“응. 그래야겠지.”

민준이 말했다.

두 사람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한강 공원의 저녁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가로등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별들을 지상에 하나씩 내려놓는 것처럼.

그들이 공원을 떠나가는 모습을 한강은 계속 흘러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그것이 꿈이었다.

그것이 배우가 되어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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