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9화: 폭발의 언어
“좋다고? 너는 모르는 거구나.”
준호가 손을 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멈추라는 신호처럼. 하지만 그 손은 멈추지 않았다. 떨리고 있었다. 아메리카노의 수증기가 그의 손가락 사이를 통과했다.
“뭘 모르는데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카페 무인의 자동 결제 시스템이 울리는 신호음보다도 작았다. 뒤의 테이블에서는 누군가가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준호의 떨리는 손만큼 현실 같지 않았다.
“폭발이 뭔지 모르는 거야.”
준호가 커피를 들었다. 천천히. 마치 그 행동 자체가 중요한 말을 하는 것처럼. 입술에 닿기 전에 멈췄다.
“폭발이요?”
“배우의 폭발. 그건 좋은 게 아니야.”
준호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냥 들고만 있었다. 마치 방패처럼. 또는 자신을 숨기기 위한 벽처럼.
“형은 지금 뭘 말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 모서리를 누르고 있었다. 하얀색 테이블. 강남역 근처의 이 자동화된 카페의 그 흰 테이블. 그 위에 검은색 손가락이 누르고 있었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처럼.
준호는 마침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테이블과 부딪칠 때 나는 소리. 그 소리는 작지만 명확했다. 도자기와 목재의 마찰음. 끝났다는 신호. 또는 시작됐다는 신호.
“촬영장에서 넌 뭘 했어?”
“배우로서 연기했어요.”
“그 이상을.”
“그 이상?”
민준이 물었다.
“넌 촬영 중에 울었어. 아니, 울려고 했어. 눈물이 나올 뻔했어. 그리고 박미라는 그걸 봤어. 그리고 ‘좋다’고 했어. 그건 뭘 의미하는 줄 알아?”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호의 얼굴을 봤을 뿐이다. 34세의 배우.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마치 그가 지난 10년을 하루 동안 살아낸 것처럼.
“그건 넌 더 이상 배우가 아니라 인물이 됐다는 뜻이야. 캐릭터가 아니라, 진정한 누군가. 그리고 진정한 누군가는 위험해. 왜냐하면 진정한 누군가는 통제할 수 없으니까.”
준호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마치 자신이 이 말을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해야 했던 것처럼.
“그럼 뭘 하라는 거예요?”
“뭘 할지는 넌 모를 거야. 넌 지금도 모르고 있으니까.”
준호는 자신의 양손을 다시 펼쳤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 손을 응시했다. 마치 그 손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이 손들이 뭘 한 줄 알아? 이 손들은 배우의 손이야. 8년 동안 배우의 손이었어. 그리고 배우의 손은 항상 뭔가를 잡으려고 해. 캐릭터의 감정을 잡거나, 시나리오를 잡거나, 또는…”
준호가 말을 멈췄다.
“또는?”
민준이 물었다.
“또는 다른 누군가를 잡으려고 해. 그리고 내가 촬영장에서 넌 손을 잡은 건, 네가 폭발하는 걸 멈추려고 한 거야.”
“저는 폭발하지 않았는데요.”
“아직. 아직 폭발하지 않았어. 하지만 너는 곧 할 거야. 그리고 그때 내가 옆에 있으려고 했던 거야.”
준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이 되어 있었다. 카페의 자동 시스템이 또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있었다. 터치, 결제, 음료 준비.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배경 속에서 준호의 말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너무나 육체적이었다.
“그럼 지금은요?”
민준이 물었다.
“지금은 내가 넌 놓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
준호가 말했다.
카페의 음악이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재즈 같은 것이 흘러나왔는데, 이제는 아이돌 그룹의 곡이었다. 너무나 명랑하고, 너무나 인공적인 곡. 가사는 “우리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내용이었다. 그 곡은 아이러니하게 들렸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 곡을 이 순간에 틀어놓은 것처럼.
민준은 자신의 커피를 집어 들었다. 이미 식고 있었다. 따뜻함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식어가는 것처럼. 준호의 관심도, 자신의 용기도, 이 잠깐의 고백도.
“형, 나는 뭘 해야 돼요?”
“넌 그냥 네 일을 해. 촬영을 해. 박미라의 지시를 따라. 그리고 폭발할 때까지 기다려.”
“폭발하면?”
“폭발하면 다시 시작할 거야. 그때까지 나는 여기 있을 거고.”
준호가 손을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떨리지 않았다. 마치 뭔가를 결정한 이후처럼. 결정된 손. 움직임이 없는 손. 하지만 그 손에는 여전히 무언가의 무게가 있었다.
카페의 창을 통해 강남의 오후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택시들이 경적을 울리고, 건설 장비가 음음음 소리를 낸다. 서울의 일상적인 소음들. 그 모든 것이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이 카페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언제쯤이요?”
민준이 물었다.
“뭐가?”
“폭발이.”
준호는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는 깨진 거울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슬픔이 있었다.
“너는 아직도 모르는 거구나. 폭발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거야. 그게 폭발이야.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것. 그게 폭발이야.”
민준은 커피를 마셨다. 식은 커피. 쓴맛이 혀에 닿았다. 하지만 그 쓴맛도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물 속에 잠긴 것처럼.
그들은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전과 달랐다. 이전의 침묵은 함께하는 침묵이었다면, 지금의 침묵은 분리되는 침묵이었다. 두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각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준호는 손목시계를 봤다. 오후 5시 04분. 그의 얼굴이 시계의 불빛에 의해 밝혀졌다. 아, 디지털 시계였다.
“우리 가야 한다.”
준호가 말했다.
“어디요?”
“촬영장. 점심시간이 끝났어.”
민준은 준호를 봤다. 아직도 그의 눈이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입술은 다시 단단해져 있었다. 마치 배우가 무대로 나가기 전에 하는 것처럼.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캐릭터를 입고, 나가는 것처럼.
“형, 뭐 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뭐라고 했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배우를 하고 있지. 너와 대화하는 배우를.”
준호가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에 끌려가면서 소리를 냈다. 카페 무인의 조용함을 깨뜨리는 소리였다. 뒤의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하던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민준도 일어났다. 준호를 따라갔다. 마치 자신이 선택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그들은 카페를 나왔다. 강남역 근처의 거리로. 오후 5시 07분. 햇빛이 조금 낮아져 있었다. 빌딩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자신들을 따라오는 것처럼.
차로 돌아가는 길에, 준호는 갑자기 멈췄다.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민준아.”
“네?”
“박미라는 지금 뭘 하고 있을 것 같아?”
민준은 생각했다. 촬영장. 점심시간. 배우들은 아마 도시락을 먹고 있을 것이다. 또는 라인을 외우고 있을 것이다. 또는 휴대폰을 보고 있을 것이다.
“모르겠어요.”
“박미라는 지금 너를 생각하고 있어. 그 촬영 이후로 계속. 그리고 준비하고 있어.”
“뭘 준비하는데요?”
“너의 다음 씬을. 너와 함께 일할 때 너를 어떻게 다룰지. 너를 어떻게 폭발시킬지.”
준호가 다시 걸어갔다. 민준도 따라갔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골목을 통과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그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또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차에 들어앉은 후, 준호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냥 핸들을 들었다. 양손으로. 그리고 자신의 이마를 그것에 기대었다.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형…”
민준이 말하려 했다.
“조용해. 그냥 조용해.”
준호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들은 차 안에서 10분을 그렇게 있었다. 시동이 꺼진 차 안. 밖의 소리들만 들려왔다. 다른 차들의 엔진음, 사람들의 발걸음, 매장의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모든 것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멈춰 있었다.
마침내, 준호가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울렸다. 검은색 K5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넌 기억해야 할 게 하나 있어.”
준호가 말했다. 운전을 하면서.
“뭐요?”
“폭발 이후에는 모든 게 다르다는 것.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때 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창밖을 봤다. 서울이 흘러가고 있었다. 강남의 거리들. 오피스 빌딩들. 카페와 레스토랑들. 모든 것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무한한 루프처럼.
하지만 민준의 내면에는 뭔가 변하고 있었다. 준호의 말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그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주문처럼. 또는 저주처럼.
촬영장이 보였다. 거대한 천막들. 조명들. 카메라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전쟁터처럼. 또는 기다리는 입을 벌린 괴물처럼.
준호가 차를 세웠다. 주차장의 같은 자리. 몇 시간 전에 떠났던 자리.
“들어가자.”
준호가 말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들은 차를 나왔다. 촬영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준의 걸음이 달랐다. 마치 자신이 다른 누군가가 되어 있는 것처럼. 또는 자신이 누군가 다른 것으로 변하고 있는 것처럼.
박미라 PD가 그들을 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친절한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냥꾼의 웃음이었다. 먹이를 발견한 사냥꾼의 웃음.
“좋아. 다시 시작하자. 이번에는 다르게 해봐.”
박미라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을 봤다.
“넌 지금부터 울어야 해. 진짜로.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그 순간, 민준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준호가 말한 폭발. 그것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더 이상 배우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시작하는 것이었다.
민준은 깊게 숨을 마셨다. 촬영장의 공기. 조명의 열. 카메라의 렌즈.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씬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준호가 말한 대로. 박미라가 원한 대로. 자신이 모르던 방식으로.
울음이 나왔다. 진짜로. 연기가 아니라.
그리고 그것이 폭발의 시작이었다.
오후 5시 32분. 촬영장. 테이크 7.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모든 것이 동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의 세계는 이미 깨져 있었다.
# 폭발의 시작
## 1부: 움직임
엔진음이 울렸다.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준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준호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서울의 오후 햇빛이 앞유리를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민준의 눈썹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손가락들이 무의식적으로 바지 무릎을 두드리고 있었다.
“넌 기억해야 할 게 하나 있어.”
준호의 목소리가 엔진음 위로 떨어졌다. 그의 눈은 도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앞차의 브레이크 라이트를 따라가며 천천히 차선을 바꿨다. 서툴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수십 년을 운전해온 사람의 능숙함이었다.
“뭐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마치 질문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인 듯이.
준호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윈도우 가장자리에 놓았다. 그의 손가락은 리듬을 타고 있었다. 무언가 오래된 노래를 기억하는 것처럼.
“폭발 이후에는 모든 게 다르다는 것.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준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마치 이 말을 수백 번 연습해온 사람처럼.
“그리고 그때 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을 응시했다.
서울이 흘러가고 있었다. 강남의 거리들이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갔다. 유리잔처럼 투명한 외벽을 가진 오피스 빌딩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카페와 레스토랑들, 편의점과 옷가게들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었다.
모두가 똑같았다. 모두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마치 무한한 루프처럼. 마치 누군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또 누르고 또 누르는 것처럼.
민준의 손가락이 계속 두드렸다. 톡톡톡. 톡톡톡.
그의 내면에서는 뭔가가 변하고 있었다. 준호의 말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문장들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있었다.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그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주문처럼. 또는 저주처럼. 또는 둘 다인 것처럼.
민준은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차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 보였다. 통풍구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그의 팔에 닿았다. 차갑고 일정한 바람. 온도가 정확히 조절된 바람. 하지만 그것이 그를 시원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저기 봐.”
준호가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촬영장이 보였다.
거대한 천막들이 주차장을 덮고 있었다.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줄무늬가 있는 거대한 구조물들. 그 아래로 조명 스탠드들이 비스듬히 서 있었다. 수십 개의 조명. 수백 개의 전선. 카메라 크레인이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전쟁터처럼. 또는 기다리는 입을 벌린 거대한 괴물처럼.
민준은 그것을 보며 목이 말랐다. 침을 삼켰다. 하지만 입은 여전히 마른 채였다.
## 2부: 귀환
차가 주차장에 진입했다.
바퀴가 아스팔트를 그리며 돌았다. 소리가 났다. 삐익. 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준호는 정확하게 몇 시간 전에 떠났던 같은 자리에 차를 세웠다. 그 자리. 같은 자리.
민준은 대시보드 위의 시계를 봤다. 14시 23분. 약 2시간 반 전.
“들어가자.”
준호가 말했다. 그의 손이 시동을 껐다. 엔진이 멈췄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문이 열렸다. 밖의 공기가 들어왔다. 그것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서울의 초가을 공기. 햇빛에 데워진 공기. 그 속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났다. 아스팔트, 휘발유, 그리고 더운 공기.
그들은 차를 나왔다.
민준의 발이 땅을 디뎠다. 그의 몸이 이제 비로소 사람처럼 느껴졌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온 뒤, 다시 세상의 일부가 된 느낌.
그들은 촬영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준의 걸음이 달랐다. 전과 같은 걸음이 아니었다.
그의 보폭이 더 짧았다. 그의 어깨가 조금 더 안쪽으로 굽어 있었다. 마치 자신을 최대한 작게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능한 한 적은 공간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다른 누군가가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는 자신이 누군가 다른 것으로 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그의 피부 표면에 소름이 돋았다. 햇빛에도 불구하고.
천막 아래로 들어섰다. 그 순간 온도가 떨어졌다.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덮었다.
박미라 PD가 그들을 봤다.
그녀는 카메라와 모니터 사이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친절한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뭔가를 보는 사냥꾼의 웃음이었다. 먹이를 발견한 사냥꾼의 웃음.
“좋아. 다시 시작하자.”
박미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마치 그녀가 지난 2시간 반 동안 자신의 에너지를 재충전한 것처럼.
“이번에는 다르게 해봐.”
그녀가 걸어왔다. 민준을 향해. 그녀의 발걸음이 났다. 부츠의 딱딱거리는 소리. 계획적인 걸음. 목표를 향한 걸음.
“넌 지금부터 울어야 해.”
그녀가 민준의 앞에 섰다. 그의 눈높이보다 약간 위에서 그를 내려다봤다.
“진짜로.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그 순간.
민준의 세상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카메라 스탠드는 여전히 제 자리에 있었고, 조명들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의 인식 속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준호가 말한 폭발. 그것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더 이상 배우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박미라의 눈이 그를 뚫어지라 봤다. 그 눈 속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동물의 호기심. 마치 그녀가 지금 민준을 해부하고 있는 것처럼.
“넌 어디를 봤어? 지난 2시간?”
그녀가 물었다.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목이 말라 있었다.
“선배가 뭔가 했지? 뭘 했어?”
박미라가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선 채로 있었다. 마치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처럼.
“상관없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박미라가 다시 민준을 봤다.
“넌 지금부터 울어야 해. 그게 전부야.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울어. 진짜로.”
## 3부: 숨
민준은 깊게 숨을 마셨다.
그것은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또는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또는 둘 다였다.
촬영장의 공기가 그의 폐로 들어왔다. 그것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조명의 열로 데워진 공기.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쉬고 들이마신 공기. 전기와 금속 냄새가 섞인 공기.
그의 코에서 그의 폐까지의 거리. 그것이 갑자기 무한해 보였다.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향해. 그의 눈을 향해. 그의 영혼을 향해.
카메라의 렌즈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검은 원형의 렌즈. 그 속에는 무한한 공간이 있었다. 그 렌즈가 그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이미지를 영원히 보존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세상의 모든 관심이. 모든 기대가. 모든 욕망이.
그리고 그는 씬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의 목이 그의 뇌와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자.”
박미라가 손을 들었다.
“다시.”
민준이 위치로 돌아갔다.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배우로서 그는 지난 10년간 수백 번을 울어왔다. 카메라 앞에서. 감독의 지시 아래에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 그는 울음의 기술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눈물을 짜내는지. 어떻게 목소리를 떨리게 하는지. 어떻게 자신의 몸을 경련시키는지.
그것은 기술이었다. 그것은 연기였다.
하지만 박미라가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진실은 그의 몸 어딘가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
박미라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었다.
다시. 다시. 다시.
## 4부: 폭발
테이크 5. 테이크 6. 테이크 7.
민준은 자신이 몇 테이크를 했는지 더 이상 세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목이 아팠다. 그의 눈이 따뜻했다.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물방울들. 그 다음에는 더 큰 방울들. 그 다음에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흐름.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더.”
박미라가 말했다.
“더 깊게. 더 진짜로.”
민준은 자신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 내려갔다.
그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여덟 살 때 자신의 아버지가 떠나가는 것을 봤다. 어머니의 울음소리. 어두운 집. 그 후의 해들.
그는 열여섯 살 때 자신이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이야기했다. 그의 어머니는 웃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돌아갔다.
그는 스물네 살 때 처음 카메라 앞에 섰다. 그의 손이 떨렸다. 감독은 그것을 좋다고 했다.
그는 스물아홉 살 때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그것이 좋은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가져올지는 몰랐다.
그리고 지금.
그는 서른 살의 배우였다. 그의 삶의 절반이 카메라 앞에서 보내졌다. 나머지 절반도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보내졌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것이 폭발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터졌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명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그의 몸을 통과해 나가는 어떤 거대한 힘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무릎이 꺾였다. 그의 몸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카메라가 여전히 돌고 있었다.
조명이 여전히 비추고 있었다.
박미라가 카메라를 통해 그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만족감? 승리감? 또는 그 이상의 뭔가?
“좋아. 계속.”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은 계속했다.
## 5부: 이후
오후 5시 32분. 촬영장. 테이크 7. 또는 테이크 23. 또는 그 이상.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모든 것이 동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의 세계는 이미 깨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씬 안에 있는지 씬 밖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입은 대사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무언가는 떠나버렸다.
그는 자신을 위에서 보고 있었다. 마치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처럼. 마치 그가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그 아래의 인물은 배우였다. 전문적인 배우. 완벽한 배우. 마치 로봇처럼 움직이는 배우.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민준이 아니었다.
준호가 촬영장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마치 그가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컷.”
박미라가 말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또는 그것이 시작이었다.
민준은 자신이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얼굴은 젖어 있었다. 그의 목은 쉬었다. 그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폭발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무서웠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해방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호가 말한 다른 것도.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 말이 이제야 비로소 의미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