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77화: 손가락 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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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7화: 손가락 위의 무게

신호등 앞에서 준호가 무너졌다. 이마가 핸들에 닿은 상태로, 그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민준은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노인가, 절망인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실망인가.

“형…”

민준이 다시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준호의 등에 손을 얹었다. 옷감 너머로 척추를 느꼈다. 단단하면서도 떨리고 있었다.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신호등의 초록 불빛이 그의 얼굴을 밝혔다. 그의 눈은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민준이 아닌 곳을. 아마도 자신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뭘 한 거야?”

준호가 다시 물었다. 목소리는 더 이상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한 질문이었다. 자신에게 묻는 질문. 누군가의 대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에 구멍을 낸 질문.

“뭘 잘못한 거 없어요, 형.”

민준이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넌 촬영장에서 손을 놨어. 내 손을. 그게 뭐야? 넌 뭘 깨달은 거야?”

준호가 차에서 내렸다. 갑자기. 신호등은 여전히 초록색이었고, 뒤의 차들이 경적을 울렸지만, 준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민준도 따라 내렸다.

그들은 강남역 근처 도로변에 섰다. 오후 4시 22분. 강남의 오후는 언제나 바쁘다. 택시들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발걸음음, 빌딩 위의 새들의 울음. 하지만 그 모든 소리는 마치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넌 내가 뭔지 알아?”

준호가 물었다.

“형이 누구예요?”

“내가 뭔지 물어봤어. 누구가 아니라.”

준호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보통의 손. 피부는 건강했다. 손톱은 깨끗했다. 하지만 그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뭔지 알아? 나는 배우야. 배우는 무엇을 하는 거 같아? 배우는 거짓말을 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타인의 감정을 흉내 내고,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는 거야. 그게 배우야.”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어. 4년 동안. 넌 그걸 봤어. 그리고 계속했어. 왜?”

“모르겠어요.”

“거짓말.”

준호가 한 발 물러섰다. 차도와 보도 사이의 경계에 섰다. 마치 자신이 어느 쪽도 아닌 상태에 있는 것처럼.

“넌 알아. 너는 정확히 알아. 왜 계속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 하지만 그걸 말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넌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니까. 진실이 되니까. 그리고 진실은 배우가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것이야.”

민준은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을 봤다. 34세의 배우. 8년의 경력. 주연을 꿈꾸는 배우.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모두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마치 그가 지금 무언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형, 촬영장에서 손을 놓은 건…”

“내가 묻지 말라고 했어?”

준호가 손을 들었다. 멈추라는 신호. 마치 PD가 배우에게 하는 신호처럼.

“내가 뭘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봤어. 넌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모르겠어요.”

“정확해. 넌 알 수 없어. 아무도 알 수 없어. 나 자신도 모를 수도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뭘 해야 하는지, 뭘 해서는 안 되는지. 모든 게 회색이야.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회색.”

준호가 다시 차로 돌아갔다. 민준도 따라 탔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고, 차가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빠르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또는 어디로든 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차는 강남역 부근의 작은 카페 골목으로 들어갔다. 서울의 카페들은 어디에나 있다. 마치 종교처럼. 모든 거리의 모서리에, 모든 건물의 지하에.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카페 다섯 개가 한 골목에 있었다. 모두 비슷한 외관. 흰색 벽, 큰 창문, 검은 글씨로 쓰인 메뉴판. 그 어느 것도 눈에 띄지 않는 곳들.

준호는 그 중 한 곳에 들어갔다. 가장 안쪽에 있는 카페. “카페 무인(無人)”이라는 이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직설적인 이름이었다. 무인 카페. 사람이 없는 카페.

하지만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30대 여성 점원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준호를 본 순간, 눈이 커졌다. 인식했다는 뜻.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한 손을 들어 인사했다. 배우에게 하는 인사가 아니라, 단순한 인간으로서의 인사.

준호는 한쪽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창밖을 보는 자리. 민준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서 만날 사람이 있어?”

민준이 물었다.

“아니. 그냥 여기가 조용해서.”

준호가 대답했다.

점원이 와서 두 잔의 커피를 놓았다. 준호가 시킨 적도 없는데. 그녀는 이미 그의 습관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메리카노 두 잔. 설탕 없음. 우유 없음.

민준은 커피잔을 들었다. 따뜻했다. 너무 따뜻했다. 마치 화상을 입을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맞는 온도였다. 감각을 되찾기 위해서는, 작은 고통이 필요했다.

준호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단지 잔을 들고, 그 안의 검은 액체를 봤다. 마치 그것이 거울인 것처럼.

“넌 왜 연기를 하는 거야?”

준호가 물었다. 갑자기.

“이미 물어봤잖아요.”

“다시 물어봐. 이번엔 진짜로.”

민준은 생각했다. 그 질문에 대해. 왜 자신이 연기를 하는지. 4년을 엑스트라로 버티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왜 계속하는지.

“모르겠어요.”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로 몰라요. 처음에는 알았어요. 처음에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게 뭐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있었어요. 하지만 4년이 지나면서, 그게 사라졌어요. 아니면 내가 그걸 잃어버렸어요.”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그리고 지금은?”

준호가 물었다.

“지금은… 모르겠어요. 촬영장에서 손을 놨을 때, 난 형이 뭘 하려는 건지 몰랐어요. 형이 뭘 원하는 건지 몰랐어요. 그리고 그 순간, 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형이 내 손을 잡고 있었는데, 나는 형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형이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근데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물어보면 모든 게 깨질 것 같았어요.”

준호가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그것이 전부였다.

“내가 원하는 게 뭘 것 같아?”

준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넌 나를 구원해 주는 거야.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넌 모를 거야, 하지만 그게 맞아.”

민준은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을. 그 얼굴에는 무언가 깊은 상처가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누군가가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고, 그것이 아직도 아픈 것처럼.

“내가 어떻게 형을 구원할 수 있어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래.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게 맞아.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여기 있어. 내 앞에. 너의 얼굴을 보고, 너의 목소리를 듣고, 너가 호흡하는 것을 보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해.”

준호가 테이블을 넘어 손을 내밀었다. 민준의 손을 다시 잡으려는 움직임. 하지만 멈췄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흔들렸다. 마치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몰라서.

“형…”

민준이 자신의 손을 들었다. 준호의 손과 만났다.

그 순간, 카페의 문이 열렸다.

우리가 들어왔다.

그 사람은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즉시 인식했다. 이전에 봤던 그 옷. 밤 12시 38분의 편의점에서 봤던 옷. 우리는 준호와 민준을 봤다. 테이블에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우리의 표정이 변했다. 놀람? 질문? 아니면 확인?

“이렇게 되는 거구나.”

우리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마치 자신과 대화하는 것처럼.

준호가 민준의 손을 놓았다. 신속하게. 마치 그것이 뜨거운 숯인 것처럼.

“우리.”

준호가 일어났다.

“뭐 하는 거야? 여기서?”

우리가 테이블에 앉았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마치 자신이 여기 있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너희 둘이 이렇게 만나는 거 처음이야?”

우리가 물었다.

“그게 뭐하는 질문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우리는 민준을 봤다. 아니, 민준을 관찰했다. 마치 그가 어떤 종류의 생물인지 파악하려는 과학자처럼.

“우리, 뭐 있어?”

민준이 물었다.

“있어. 아주 있어. 그리고 이 얘기는 넷이 함께 해야 할 것 같아.”

우리가 휴대폰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동작.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전화음만 계속 울렸다.

“응답이 없네.”

우리가 중얼거렸다.

“누구 거는 거야?”

준호가 물었다.

“성준. 그 녀석을 찾아야 해. 왜냐하면…”

우리가 말을 멈췄다. 창밖을 봤다. 강남역 골목의 오후.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모두가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민준이 물었다.

“왜냐하면 그 녀석이 너를 죽이려고 하거든.”

우리가 마침내 말했다. 가장 자연스러운 톤으로. 마치 날씨 얘기를 하는 것처럼.

민준은 숨을 참았다. 그의 손가락들이 테이블을 움켜잡았다. 하얀 관절들이 불거져 나왔다.

“뭐?”

준호가 일어섰다.

“네가 들은 그대로. 성준이가 민준이를 죽이려고 해. 아니, 정확하게는, 성준이가 민준이가 죽도록 만들려고 해. 그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

우리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이번엔 카메라를 켰다. 사진들이 떴다. 여러 장의 사진. 성준. 그의 얼굴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성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한 성준이었다. 파괴적인 성준이었다.

“이게 뭐야?”

민준이 물었다.

“증거. 아주 명확한 증거. 그리고 넌 이제 이걸 봤어. 그래서 넌 이제 실수를 해야 해. 넌 이제 결정을 해야 해. 성준이를 신고할 거야, 아니면 계속 침묵할 거야?”

우리의 눈이 민준과 만났다. 그 눈에는 무언가 절박함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처럼.

준호가 우리를 봤다. 그리고 민준을 봤다. 그리고 다시 우리를 봤다.

“뭔가 빠진 게 있지?”

준호가 말했다.

“뭐?”

우리가 물었다.

“넌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물었어. 그리고 우리가 뭐하고 있었는지 봤어. 손 잡고 있었어. 그런데 그 다음에 바로 성준 얘기를 했어. 그 사이에 뭔가 있지? 넌 우리가 뭘 하고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 아니면…”

준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아니면 넌 우리를 설득하러 온 거야? 성준이를 신고하도록? 우리를 이용하려고?”

우리가 일어났다.

“그게 아니야.”

우리가 말했다.

“그럼 뭐야?”

“너희 둘이 이 상황을 진짜로 이해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어. 그게 뭐야? 너희가 손을 잡고 있는 거. 그게 사랑인지, 의존인지, 아니면 단순한 두려움인지. 그걸 알고 싶었어.”

우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민준이 물었다.

“그리고 난 모르겠어. 너희가 그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창밖을 다시 봤다. 오후 4시 47분. 태양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저녁이 오고 있었다. 이 도시의 저녁은 항상 빨리 온다.

“성준이의 계획이 뭔데?”

준호가 물었다. 더 이상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영상이 떴다. 성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목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그의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녀석이 너한테 약을 먹일 거야. 정신을 흐리는 약. 그리고 나서 그 녀석이 너를 높은 곳으로 데려갈 거야. 건물 옥상. 또는 다리. 그리고 밀어낼 거야. 사고로 위장해서.”

우리가 말했다. 마치 이미 여러 번 이 말을 연습한 것처럼.

“왜?”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기도처럼 들렸다.

“왜냐하면 넌 그의 자리를 빼앗았거든. Netflix. 그 드라마. 성준이가 원하던 역할. 그리고 넌 그 역할에서 빛났어. 성준이는 그걸 견딜 수 없어. 그래서 넌 죽어야 해.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야. 그의 생각에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민준을 봤다.

“그리고 이제 넌 알았어. 이제 넌 선택을 해야 해. 달아날 거야, 아니면 맞설 거야?”

카페의 조명이 깜빡였다. 한 번. 마치 신호등처럼.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준호가 잡았던 손. 그것은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그 손가락 위에 전 세계가 올려져 있는 것처럼.

오후 4시 52분. 강남의 카페에서, 한 청년이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 죽음의 손길

카페의 공기가 갑자기 질식할 듯 답답해졌다.

준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민준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서 준호의 윤곽만 선명했고, 얼굴은 역광에 묻혀 있었다. 마치 그가 실체가 아닌 그림자인 것처럼. 민준의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가슴 안에서 작은 망치가 자신의 갈비뼈를 두드리는 느낌.

“넌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물었어.”

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다툼을 시작하기 전의 조용한 목소리. 가장 위험한 종류의 침묵이 그 단어들 사이사이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뭐하고 있었는지 봤어. 손 잡고 있었어.”

준호가 말할 때마다 민준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그들이 방금 전에 손을 잡고 있었다. 따뜻한 손. 연약한 손.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손. 그 손이 이제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자신들의 관계를 증명하는, 위험한 증거.

“그런데 그 다음에 바로 성준 얘기를 했어. 그 사이에 뭔가 있지? 넌 우리가 뭘 하고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

민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추운 겨울 아침에 깨어났을 때처럼. 하지만 카페의 온도계는 2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떨림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그 존재가 일어섰다.

민준이 처음으로 우리를 정확히 보았을 때, 그것은 충격이었다. 우리는 창문 근처에 앉아 있었다. 햇빛이 우리의 머리를 후광처럼 감싸고 있었다. 우리의 얼굴은 신비로웠다. 마치 천사처럼. 아니, 그보다는 악마처럼 보였다. 악마는 보통 천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면 넌 우리를 설득하러 온 거야? 성준이를 신고하도록? 우리를 이용하려고?”

준호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이기 시작했다. 가늘어진 목소리. 예민해진 톤. 민준은 준호를 본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게 아니야.”

우리의 목소리가 침착했다. 놀랍도록 침착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던 것처럼. 마치 이것이 계획의 일부였던 것처럼.

“그럼 뭐야?”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잔뜩 으스러워져 있었다. 준호가 한 걸음 더 다가갔기 때문이다. 준호는 이제 우리와 민준 사이에 서 있었다. 민준의 보호자처럼. 아니, 민준의 옭아매는 사슬처럼.

“너희 둘이 이 상황을 진짜로 이해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어. 그게 뭐야? 너희가 손을 잡고 있는 거. 그게 사랑인지, 의존인지, 아니면 단순한 두려움인지. 그걸 알고 싶었어.”

우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떨렸다. 민준은 그 떨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죄책감인가? 공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거짓인가?

“그리고?”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리고 난 모르겠어. 너희가 그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창밖을 다시 봤다. 민준도 따라 창밖을 보았다.

오후의 햇빛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강남역 위의 하늘은 파란색에서 조금씩 주황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늘의 색깔이 변할 때마다 세상이 다른 것으로 느껴졌다. 같은 하늘, 같은 도시, 같은 카페.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어 보였다. 마치 자신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것처럼.

“이 도시의 저녁은 항상 빨리 온다.”

우리가 중얼거렸다.

민준은 카페의 벽시계를 봤다. 오후 4시 47분. 시침과 분침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그들처럼. 마치 모든 것이 분열되고 있는 것처럼.

카페 안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 커피잔을 놓는 소리. 작은 웃음소리. 이 모든 일상적인 소리들이 이제 민준에게는 외계의 음성처럼 들렸다. 그들은 모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죽음이 없고, 배신이 없고, 거짓이 없는 그런 세상.

“성준이의 계획이 뭔데?”

준호가 물었다. 더 이상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실용적이 되었다. 감정을 거둬낸,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

우리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이 밝아졌다. 하얀 빛이 민준의 눈을 찌르고 지나갔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화면에 보인 것은 성준이었다.

민준은 성준을 알고 있었다. 같은 영화과 학생. 같은 나이. 같은 꿈을 가진 사람. 그들은 학교 축제에서 만났었다. 성준은 무대 위에서 에너지 넘치는 배우였다. 하지만 민준이 Netflix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을 때, 성준의 에너지는 사라졌다. 그 자리는 성준이 원하던 자리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화면 속의 성준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그의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입술의 움직임. 혀의 위치. 분노에 차 있는 얼굴. 결정의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 녀석이 너한테 약을 먹일 거야. 정신을 흐리는 약.”

우리가 말했다. 마치 이미 여러 번 이 말을 연습한 것처럼. 마치 이 문장을 수백 번 되풀이했던 것처럼.

“그리고 나서 그 녀석이 너를 높은 곳으로 데려갈 거야. 건물 옥상. 또는 다리. 그리고 밀어낼 거야. 사고로 위장해서.”

민준의 귀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명음. 마치 비행기 이착륙할 때 귀에 들리는 그 소리. 자신의 사망이 계획되어 있다는 사실은 추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말로 인해 그것은 구체적이 되었다. 약. 옥상. 다리. 밀어냄. 사고. 모두 실현 가능한 단어들이었다.

“왜?”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기도처럼 들렸다. 신에게 묻는 기도. 자신을 죽이려는 신에게.

“왜냐하면 넌 그의 자리를 빼앗았거든. Netflix. 그 드라마. 성준이가 원하던 역할. 그리고 넌 그 역할에서 빛났어.”

우리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마치 기계처럼. 마치 프로그래밍된 안내 음성처럼.

“성준이는 그걸 견딜 수 없어. 그래서 넌 죽어야 해.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야. 그의 생각에는.”

민준은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떨림이 심해졌다. 마치 자신의 손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남의 손. 죽어가는 사람의 손.

“그리고 이제 넌 알았어. 이제 넌 선택을 해야 해. 달아날 거야, 아니면 맞설 거야?”

우리가 마지막으로 민준을 봤다. 그 눈빛에는 연민이 있었는지, 아니면 재미가 있었는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카페의 조명이 깜빡였다. 한 번. 마치 신호등처럼. 마치 세상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준호가 잡았던 손. 그것은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그 손가락 위에 전 세계가 올려져 있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는 전 세계의 무게가 그 손 위에 있는 것처럼.

민준은 준호의 얼굴을 봤다. 준호는 여전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준호의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물음표. 또는 마침표. 또는 느낌표. 민준은 알 수 없었다.

“준호.”

민준이 속삭였다.

준호가 돌아봤다. 그의 눈빛이 민준을 찾았다.

“우리가… 정말로 뭐야?”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민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오후 4시 52분.

강남의 카페에서, 한 청년이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또 다른 청년은 자신의 사랑의 정의를 묻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존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민준의 머리 속에서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성준의 목소리: “넌 내 꿈을 빼앗았어.”

준호의 목소리: “난 널 놓지 않을 거야.”

우리의 목소리: “너희가 그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난 도망쳐야 해. 아니, 난 맞서야 해. 아니, 난…”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준호의 손. 자신의 손. 얽혀 있는 손가락들.

그는 아직도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카페의 조명이 다시 깜빡였다.

이번에는 꺼지지 않았다.

민준은 준호의 얼굴을 다시 봤다. 준호의 얼굴은 창밖의 저녁 햇빛에 물들어 있었다. 준호의 눈은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 눈 속에는 질문이 있었다. 또는 답변이 있었다.

“난 너를 사랑해.”

준호가 갑자기 말했다.

그 말은 이 상황 속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민준은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다.

“정말로?”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민준을 자신의 가슴으로 당겨 안았다.

카페는 여전히 일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이 순간이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은 멈추지 않은 채 계속 흘렀다.

오후 5시 3분.

강남의 카페에서, 한 청년이 자신의 죽음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의존인지, 아니면 단순한 두려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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