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76화: 손을 놓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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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6화: 손을 놓는 법

촬영장의 조명이 꺼지는 데는 7분이 걸렸다.

민준은 그 시간을 세었다. 한 번에 하나씩, 조명팀이 거대한 기구들을 내려갔다. 삐걱거리는 소리. 케이블이 감기는 소리. 누군가가 “조명 완료” 하고 외치는 소리. 그 모든 것이 민준의 귀에 들어왔지만, 뇌에는 닿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물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수면 위의 소리들은 희미하고, 멀고, 현실과 무관한 것처럼 들렸다.

준호의 손이 여전히 자신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것은 촬영이 끝난 지 3분 후였다. 박미라 PD가 “좋아, 점심시간. 한 시간 뒤에 다시” 하고 말했을 때부터, 준호의 손은 민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생명줄인 것처럼. 또는 자신이 민준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처럼.

민준은 그 손의 압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민준아.”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속삭이는 수준. 세트 주변에 여전히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술팀, 소품팀, PD 어시스턴트들. 아무도 그들을 보고 있지 않지만, 모두가 볼 수 있는 상황.

“응.”

민준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여기서 나가자. 지금.”

“근데 점심시간이라고…”

“상관없어. 나가자.”

준호는 민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민준도 함께 일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손이 빠져나올 것 같았다. 또는 자신이 그 자리에 남겨질 것 같았다.

그들은 촬영장을 떠났다.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준호의 차는 검은색 K5였다. 깨끗하고, 냄새가 없고, 너무 조용했다. 마치 박물관의 전시물 같은 차. 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한 차. 창밖으로 서울의 오후가 흘러갔다. 강남의 빌딩들, 가로수, 신호등. 모든 것이 노출된 색상이었다. 초록, 파랑, 빨강. 그렇지만 민준의 눈에는 모두 회색으로 보였다.

“촬영 어땠어?”

준호가 물었다.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다.

“괜찮았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거짓말하지 마.”

준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거짓 안 했어요. 그냥 촬영했어요.”

“그게 뭐하는 소린데? 넌 뭘 했어? 그냥 서 있었어? 말했어? 울었어? 뭘 했는데?”

준호는 신호등에서 멈췄다. 차가 멈추자, 그는 핸들을 양손으로 잡았다. 마치 자신을 붙잡기 위해. 또는 자신을 쪼개지 않기 위해.

민준은 준호를 보았다. 그의 옆모습. 턱이 조여 있었다. 목에 힘줄이 팽팽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안쪽을 짜내고 있는 것처럼.

“형이 뭐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뭐 하는 게 아니라, 넌 뭐 했냐니까! 너는 그 장면에서 뭘 했어? 박미라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 이유가 뭐야?”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준호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가 빠르게 움직였다.

“내가 알아요. 형이 뭘 하려는 건지.”

민준이 말했다.

“뭘 알아?”

“나한테 뭔가를 강요하려고 해요. 촬영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뭔가를 깨달으라고 강요하려고 해요.”

“그게 맞아. 그게 맞다니까.”

준호가 차선을 바꿨다. 한 대의 택시를 재빨리 추월했다.

“근데 나는 뭘 깨달아야 돼요? 나는 그냥 촬영했어요. PD님이 시킨 대로. 배우들의 연기를 봤어요.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다예요.”

“그게 다가 아니야! 넌…”

준호가 말을 멈췄다. 차가 신호등 앞에서 다시 멈췄다. 이번엔 빨간색이었다. 준호는 차를 완전히 멈추고, 핸들에 이마를 기대었다. 마치 자신이 깨어져 버릴 것 같아서. 또는 자신이 뭔가를 외칠 것 같아서.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민준은 준호를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무너진 모습으로. 이렇게 통제 불능의 모습으로.

“형…”

민준이 손을 들었다. 준호의 등을 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멈췄다. 손이 공중에서 흔들렸다. 만지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이 준호를 깨뜨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민준과 만났다. 그 눈에는 무언가 깨진 것이 있었다. 아니, 깨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현재진행형으로.

“내가 뭘 한 거야?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배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냥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무너진 사람의 목소리.

“뭐가요?”

민준이 물었다.

“너를. 내가 너를 뭐라고 했어? 함께 있다고 했지? 구원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럼 충분하지 않아? 그래도 너는 뭔가가 빠진 것처럼 봐. 마치 내가 뭔가를 빼먹은 것처럼. 마치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처럼.”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알겠다. 나는 뭘 할 수가 없네. 나는 뭘 할 수 없는 거야, 민준아?”

준호가 손을 들었다. 핸들에서 떼고. 그 손이 민준의 얼굴을 향했다. 마치 자신이 민준을 만질까봐 두려운 것처럼. 그래서 공중에 멈췄다.

“나는…”

민준이 말했다.

“뭐?”

“나는 형을 알아야 해요. 그런데 형이 날 안 보여줘요.”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매일 형을 봐요. 형이 나를 봐주는 모습을 봐요. 형이 나를 지켜주는 모습을 봐요. 근데 형이 뭘 하는지, 형이 뭘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전혀 몰라요.”

준호는 손을 내렸다. 다시 핸들을 잡았다. 그의 손이 흔들렸다.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차하고 있습니다. 신호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경고했다.

준호는 차를 길 옆으로 세웠다. 완전히 세웠다. 그리고 엔진을 껐다. 침묵이 흘렀다. 엔진음도, 에어컨음도, 네비게이션음도 없는 침묵.

“내가…”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쉬었다.

“내가 너한테 뭘 해줘야 하는데?”

“뭘 해줄 필요는 없어요. 형이 뭘 하고 있는 건지만… 알고 싶어요.”

“날 알아? 정말?”

준호가 고개를 돌렸다. 완전히 민준을 바라봤다.

“응.”

“그럼 알아도 돼? 정말? 날 알게 되면… 넌 나를 다시 봐야 돼. 지금처럼 봐야 돼. 그래도 괜찮아?”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손을 들었다. 준호의 얼굴을 향해.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손이 준호의 뺨에 닿았다. 따뜻했다. 그리고 젖어 있었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카페는 강남역 지하 B2층에 있었다.

준호는 어떤 대화도 없이 운전했다. 그냥 음악만 흘렀다. 클래식.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그 음악 속에서 민준은 준호의 모습을 봤다. 핸들을 쥔 손. 앞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그 모든 것 뒤에 있는 무언가.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

카페 안은 한적했다. 오후 3시 30분. 점심을 먹은 후, 저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펼친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만 마시는 사람들.

준호와 민준은 구석의 테이블에 앉았다. 창문 없는 곳. 누군가가 자신들을 볼 수 없는 곳.

“커피 마실래?”

준호가 물었다.

“뭐든 괜찮아요.”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이 카페에 몇 번이나 와본 것처럼.

커피가 나왔을 때, 준호는 한 잔을 마시지 않고 그냥 봤다.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봤다. 마치 그 커피 속에 자신의 대답이 있을 것처럼.

“넌 내가 뭘 하는 사람인 줄 알아?”

준호가 물었다.

“배우예요.”

민준이 말했다.

“그게 다야?”

“형이 다른 걸 해요?”

“아니야. 그게 다야. 나는 배우야. 그리고 나는 배우로 너무 오래 살았어.”

준호가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그리고 또 한 모금.

“34살이면, 이 업계에서 뭐야? 과거야. 나는 이미 내 최고의 시간을 지나갔어. 너 같은 애가 올라오는 걸 봐야 하는 입장이야.”

“형이 그렇게 생각해요?”

“그건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업계가 생각하는 거야. 30대 중반 남배우는… 아버지 역할이거나, 악역이거나, 아니면 사라져야 돼. 그게 규칙이야.”

준호의 손이 커피잔을 계속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그래서 뭘 하고 있어요?”

민준이 물었다.

“아, 그게 뭐냐니까.”

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명이었다. 웃음 모양의 비명.

“난 필사적이야. 너처럼 젊지 않으니까. 너는 아직 시간이 있어. 너는 5년, 10년을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나는? 나는 지금 당장 성공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사라져버려.”

“그럼 지금 뭐를 하고 있어요?”

“뭘 한다는 게?”

“형이 필사적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주연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다른 회사로 옮기려고 해요? 뭘 하는 거예요?”

준호는 민준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무언가 타는 것이 있었다. 아니, 타고 있었다. 현재진행형으로.

“나는…”

준호가 말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나는 너를 본 거야. 촬영장에서. 그리고 나는 그걸 깨달았어. 넌 이미 가지고 있어. 뭔가를. 나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그게 뭔지 알아?”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넌 진정성이 있어. 넌 거짓말을 하지 않아. 넌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해.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해. 박미라가 그걸 봤어. 그래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 거야. 그건 ‘너는 이미 충분하다’는 의미야.”

“형도 충분해요.”

민준이 말했다.

“아니야. 나는 충분하지 않아. 나는 충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뭔가를 더 얹어야 돼. 감정, 표정, 톤. 모든 게 계산되어야 돼. 그게 내 연기야. 그리고 그건… 지쳐.”

준호가 커피잔을 들었다. 하지만 마시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마치 자신이 뭔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나는 왜…”

민준이 말했다.

“왜 뭐?”

“왜 형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해요? 왜 형이 이렇게 무너져 있어요? 촬영장에서 형은 멀쩡했었는데. 형은 날 봐주고 있었는데.”

“맞아. 나는 너를 봐줬어. 그리고 그게…”

준호가 커피를 마셨다. 남은 모든 것을. 한 번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나는 뭘 해줄 수 없어. 나는 너한테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주인공이 아니니까. 나는 너한테 성공한다고 약속할 수 없어. 나는 나 자신이 성공할 수 없으니까. 나는 너한테 뭘 할 수 없어, 민준아. 나는 정말 뭘 할 수 없어.”

민준은 준호의 손을 집어들었다. 테이블 위에서. 공개적으로. 카페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형이 날 봐주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민준이 말했다.

“그게 뭐하는 소린데?”

“정말이에요. 형이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형이 나를 지켜주는 것만으로. 형이 나를 봐주는 것만으로.”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민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럼 내가 뭘 해? 나는 어떻게 살아? 30대 후반에 나는 어떻게…”

“모르겠어요.”

민준이 말했다.

“나도 몰라요. 형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 있잖아요. 형도, 나도. 그게 충분하지 않아요?”

준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 번 호흡했다. 길게. 아주 길게. 마치 자신이 지금까지 숨을 쉬지 않았던 것처럼.

“촬영장으로 돌아가야 돼.”

준호가 눈을 떴다.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알아. 그래도 돌아가자. 그리고 넌 뭘 하든 뭘 하지 않든, 나는 옆에 있을 거야. 그게 약속이야. 네가 뭘 하든 상관없이.”

민준은 준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준호는 차 안에서 노래를 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마치 자신이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처럼.

“…그래도 기다려봐, 사랑해, 곁에 있어줄게…”

그것이 뭔 노래인지, 민준은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불완전한 약속.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약속. 하지만 현재를 지켜주는 약속.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 45분이었다. 촬영은 오후 5시에 시작되었다. 민준은 세트로 들어갔다. 준호는 세트 옆에 섰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민준은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배우의 진정한 기술이라는 것을.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캐릭터에 담는 것. 그것이 배우의 일이라는 것.

그리고 민준은 깨달았다. 준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준호는 계산된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산 뒤에는 절망이 있었다. 그리고 절망 뒤에는 사랑이 있었다.

준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민준은 자신의 대사를 말했다. 이번엔 다르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인 것처럼.

박미라가 “컷”이라고 말했을 때, 민준은 준호를 봤다.

그리고 준호는 민준을 봤다.

그 눈은 더 이상 깨지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의 단단한 기초를 찾은 것처럼.

촬영이 끝나고, 민준과 준호가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떴다: 우리.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준호가 물었다.

“받아.”

“지금은 괜찮아요.”

“받아.”

민준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민준이 말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민준아. 뉴스 봤어?”

“뭐요?”

“이수진이. 이수진이가 경찰에 자진해서 출두했대. 그리고 뭔가를 자백했대.”

민준의 손이 떨렸다.

“뭘 자백했어요?”

“아직 정확하지는 않아. 하지만 뉴스에는 ‘연예계 스캔들, CEO 자진 출두’라고 떠 있어.”

민준은 준호를 봤다.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형…”

민준이 속삭였다.

“알아. 들었어.”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는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END OF CHAPTER 76

# 약속의 무게

## 제76장 확장본

그것이 뭔 노래인지, 민준은 몰랐다.

누군가의 목에서 흘러나온 그 선율은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불분명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민준의 귀가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뇌는 촬영 일정, 카메라 앵글, 감정 표현의 방식 같은 수백 가지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분명했다. 준호였다. 준호가 부르고 있었다.

민준은 촬영장의 조명을 받으며 준호를 바라봤다. 세트 옆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그의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퍼져나갔다. 그것이 뭔 노래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민준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불완전한 약속.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약속. 그러나 현재를 지켜주는, 지금 이 순간을 붙들어두려는 절실한 노래였다. 민준은 그 음정 하나하나에서 준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어떤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민준의 손가락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옷깃을 만지고, 주머니를 확인하고, 다시 옷깃으로 돌아왔다. 불안함의 작은 제스처들. 그의 몸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성은 아직도 부정하고 싶었다.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 45분이었다.

민준이 자신의 차에서 내렸을 때, 그 초침들이 시간을 재고 있었다. 4시 45분. 촬영은 오후 5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정확히 15분. 화장실을 가거나 옷을 정렬하거나 마음을 정리할 시간. 하지만 민준은 그 중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세트로 곧장 들어갔다.

준호는 세트 옆에 섰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몇 시간 전에 자신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민준에게 무언가를 간절히 전달하려고 노래하지 않았던 것처럼.

준호의 표정은 평온했다. 배우로서의 준호가 온전히 그곳에 있었다. 스튜디오 조명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거의 조각상처럼 보였다. 움직이지 않는 근육, 통제된 호흡, 계산된 눈빛. 완벽한 배우. 완벽한 거짓말.

하지만 민준은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배우의 진정한 기술이라는 것을. 민준이 지난 10년간 배워온 모든 것, 수백 번의 촬영 현장, 수천 번의 감정 표현 연습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은 이것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캐릭터에 담는 것. 그것이 배우의 일이라는 것.

준호가 바로 그것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깨달았다. 준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준호는 계산된 연기를 하고 있었다. 맞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뻣뻣해 보였고, 때로는 그것이 너무 과장되어 보였고, 때로는 그것이 마치 역할을 강요당하는 연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민준이 깨닫지 못했던 것은, 그 계산 뒤에 무엇이 숨어 있었는지였다.

절망이 있었다.

사람이 자신의 모든 감정을 그것도 정확히 그 모양으로 전달해야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절망적인 행동인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정확히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켜야 할 때,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준호의 계산된 연기는 사실 절망의 또 다른 형태였다.

그리고 절망 뒤에는 사랑이 있었다.

왜냐하면 준호가 그 절망을 견디는 이유는, 그것이 민준에게 전달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불완전한 계산, 그 모든 어색한 움직임, 그 모든 강요된 표정 뒤에는 단 하나의 바람이 있었다: 민준이 이해하기를. 민준이 알기를. 민준이 받아주기를.

준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이것은 마치 벼락을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민준의 온몸에 전기가 흘렀다. 그의 심장이 박자를 놓쳤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의 호흡이 얕아졌다. 그의 손가락 끝이 저렸다.

박미라 감독이 “준비되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민준은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의 의식은 여전히 저 멀리 어딘가에 떠 있었다. 준호의 노래가 그의 귀에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불완전한 선율이, 그 떨리는 음정이, 그 간절함이.

“네. 준비됐습니다.”

민준이 자동으로 대답했다.

세트로 들어갔다. 조명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카메라가 그를 응시했다. 감독이 “액션!”이라고 외쳤다.

민준은 자신의 대사를 말했다.

이번엔 다르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처럼. 마치 그 사랑이 자신의 생명 그 자체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인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아니, 정확히는 의도적으로 떨리도록 조절했다. 하지만 그것이 배우의 기술인지, 아니면 그것이 진정한 감정인지는 이제 구분되지 않았다. 아마도 둘이 합쳐진 것이었을 것이다.

민준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의 얼굴의 각도가 달라졌다. 그의 호흡의 리듬이 변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그의 몸을 점유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한 민준이었다.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민준이었다.

“컷!”

박미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민준은 마치 물에서 나온 것처럼 숨을 크게 쉬었다. 조명이 꺼졌다. 그 가짜의 세상이 사라졌다. 현실이 돌아왔다.

민준은 준호를 봤다.

그리고 준호는 민준을 봤다.

그 눈은 더 이상 깨지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의 단단한 기초를 찾은 것처럼. 마치 자신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게 된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봤다. 주변의 스태프들이 음료를 나누고, 조명을 정렬하고, 카메라를 옮기는 와중에도. 마치 그들 둘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촬영이 끝나고, 민준과 준호가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 소리는 진동음이 아니라 벨소리였다. 그것은 누군가가 그에게 연락하고 싶어 했다는 뜻이었다. 긴급하게.

화면에 떴다: **우리.**

그것을 보는 순간, 민준의 얼굴색이 변했다. 준호가 그것을 눈치챘다. 민준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받을 것인가, 받지 않을 것인가. 그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처럼 느껴졌다.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음을 멈췄다. 그것은 부재중 전화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것은 단지 시간을 벌었을 뿐이었다.

준호가 물었다.

“받아.”

그의 목소리는 명령조였다. 하지만 그것은 냉정한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준을 생각하는 명령이었다. 민준이 이것을 계속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지금은 괜찮아요.”

민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확신이 없었다. 마치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받아.”

준호가 다시 말했다.

민준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그의 목소리는 전문적이었다. 마치 낯선 사람과 통화하는 것처럼 정중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민준은 그 번호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마치 무언가를 간신히 참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민준아. 뉴스 봤어?”

“뭐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좋은 뉴스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알 수 있었다.

“이수진이. 이수진이가 경찰에 자진해서 출두했대. 그리고 뭔가를 자백했대.”

민준의 손이 떨렸다.

이수진. 그 이름은 마치 독처럼 작용했다. 민준의 온몸에 찬기운이 흘렀다. 이수진이 자진 출두했다? 그것은…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또는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뭘 자백했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아직 정확하지는 않아. 하지만 뉴스에는 ‘연예계 스캔들, CEO 자진 출두’라고 떠 있어. 그리고 몇몇 기사에서는 그게 너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어. 민준아, 뭔가 있는 거야?”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준호를 봤다.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마치 혈액이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마치 영혼이 몸을 떠난 것처럼. 민준은 준호의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움직이는 것을 봤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형…”

민준이 속삭였다.

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들었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조용했다. 마치 자신과 민준 사이의 거리가 수미터가 아니라 수킬로미터인 것처럼.

휴대폰의 저쪽에서 우리가 뭔가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민준은 통화를 끝냈다. 그것은 무례했다. 하지만 이 순간, 무례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민준과 준호는 주차장의 어두운 한구석에 서 있었다. 주변의 자동차들은 마치 거대한 짐승들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멀리서는 도시의 소음이 들렸다. 그러나 그들 둘 사이의 세상은 완전히 조용했다.

“형은… 미리 알고 있었어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은 뭘 했어요? 이수진한테 뭘 한 거예요?”

민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이 목소리로 변환된 것이었다.

“아무것도 안 했어. 난 아무것도…”

준호가 말하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리고 민준은 깨달았다. 모든 것이 이제 끝났다는 것을.

또는 모든 것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주차장의 어두운 곳에서, 두 남자는 침묵 속에 서 있었다. 그들의 미래는 이제 그들의 손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의 입에서 경찰로, 경찰에서 법정으로, 법정에서 뉴스로 나가고 있었다. 되돌릴 수 없는 기계가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민준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준호가 받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준호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아주 단단하게.

마치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처럼.

**제76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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