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71화: 거울의 다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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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화: 거울의 다른 쪽

이수진의 말이 끝난 직후,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활동적인 침묵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가 실내의 공기를 천천히 빨아내는 것 같은, 수동적이고 질식적인 침묵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떨리는 것이 아니라 경련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자신의 신경계를 직접 조종하는 것처럼.

구원의 욕구는 아주 위험해.

그 문장이 자신의 뇌를 맴돌고 있었다. 루프처럼. 우리의 손가락처럼. 절망의 리듬.

민준은 이수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창을 보고 있었다. 팔을 교차시킨 채로. 마치 자신을 포옹하는 것처럼. 아니, 그것은 포옹이 아니었다. 그것은 방어였다. 자신의 내부를 지키기 위한 방어.

“그건 대표님의 해석입니다.”

민준이 말했다.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것처럼. 또 다른 자신. 무대 위의 자신.

“맞아. 내 해석이지. 하지만 해석이 곧 현실이 되는 순간이 있어. 너는 이미 그 현실 속에 살고 있어.”

이수진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의 눈이 민준의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민준은 자신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반사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확하게는 느낀 것이 아니라, 알았다. 인식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뒤에 거울을 놓아둔 것처럼. 그리고 그 거울 안에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창백한 얼굴. 자신의 떨리는 입술. 자신의 죽어있는 눈.

죽어있는.

“저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주장이 아니었다. 질문이었다. 자신에게 묻는 질문. 아직도 살아있나? 아니면 이미 죽어있나?

이수진의 입이 한 번 움직였다. 웃음이 나올 뻔한 순간. 하지만 그것은 웃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그냥 입의 모서리가 살짝 올라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즉시 내려갔다.

“그게 내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야. 정말로 살아있는지, 아니면 그렇게 연기하는 것인지. 그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그녀가 책상으로 돌아가서 앉았다. 이번엔 의자에 깊이 들어앉았다. 피곤함의 몸짓이었다. 또는 항복. 민준은 분간할 수 없었다.

“내일부터 촬영 일정을 시작한다. 알고 있나?”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받지…”

“너는 이제부터 받을 거야. 내가 보내줄 테니까. 그 메일을 확인하고, 도움말도 읽고, 모든 것을 제시간에 준비해. 알겠지?”

“네, 대표님.”

이수진이 손가락을 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지적하는 것처럼. 또는 경고하는 것처럼.

“그런데 나는 너한테 조언 하나를 더 해주려고 했어. 그것은 배우로서의 조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조언이야. 들어보고 싶나?”

“네.”

“준호를 만나는 시간을 줄여. 정확하게는, 그와의 관계의 질을 바꿔. 이제는 그가 너를 보호해주는 시간이 아니야. 이제는 너 자신이 너를 보호해야 할 시간이야. 그렇지 않으면, 너는 계속해서 그의 구원 욕구의 도구가 되어있을 거야. 그리고 그건 너한테도 좋지 않고, 그한테도 좋지 않아.”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너무 많은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마치 유리판 위에 쌓여있는 것처럼. 한 마디만 더 나오면,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날 것처럼.

“가. 그리고 내일 촬영장에서 봐. 우리는 너한테 기대하는 바가 크니까.”

이수진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 말은 축복처럼도 들렸고, 저주처럼도 들렸다.

민준은 일어났다. 다리가 약간 떨렸다. 마치 몇 시간을 앉아있던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은 이상하게 작동했다. 특히 공포 속에서는.

복도로 나왔을 때,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2시 34분. 여전히 밤이었다. 그의 삶은 밤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 같았다. 태양 없는 삶. 영원한 밤의 삶.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민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켜는 순간, 또 다른 50개의 미수신 전화가 있었다. 여전히 엄마로부터의 전화였다.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 우리로부터의 전화. 정확하게는 문자였다.

“민준이. 뭔가 있었어? 연락이 안 돼서 걱정됐어. 괜찮아?”

그것은 몇 시간 전에 온 메시지였다. 민준은 그것을 읽으면서, 자신이 그동안 뭘 했는지 생각해봤다. 우리를 만났다. 준호를 만나지 않았다. 이수진을 만났다. 그리고 이수진은 준호를 만나지 말라고 했다. 또는 다르게 만나라고 했다.

관계의 질을 바꿔.

민준은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 준호가 받았다.

“민준이?”

준호의 목소리는 수면 중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깬 목소리 안에는 뭔가가 있었다. 불안함. 또는 안도감. 민준은 분간할 수 없었다.

“형.”

민준이 말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름만. 호칭만.

“어디야? 지금 뭐 하고 있어?”

“회사 빌딩 앞입니다.”

침묵. 짧지만 강렬한 침묵.

“지금?”

“네.”

“뭐 하러?”

민준은 준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뭐 할 것 같은지 설명했다.

“형, 저 혼자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며칠 동안.”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민준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는 준호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수진의 말대로. 관계의 질을 바꾸기 위해. 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맞는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민준이, 지금 뭔가 있었나? 뭔가 있었다면 말해.”

준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깨어난 목소리. 경계하는 목소리. 두려워하는 목소리.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냥… 정신을 좀 정리하고 싶어요.”

“정신을 정리한다고? 지난번에도 그래서 자살을 시도했잖아.”

준호가 그 단어를 꺼냈다. 자살. 그것은 민준과 준호 사이의 가장 큰 벽이었다. 그리고 가장 깊은 다리였다. 그들은 그 사건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상처를 입었다.

“이번은 다릅니다.”

민준이 말했다.

“다르다고? 뭐가 다른데? 넌 지금 또 혼자가 되려고 하고 있어. 그건 위험해. 너는 혼자가 되면 안 돼.”

준호의 말에는 필사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처럼도 들렸고, 통제처럼도 들렸다. 구원의 욕구. 이수진이 말한 바로 그것.

“형, 저는…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형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누구인지.”

“그건 너 혼자가 아니라, 함께 찾아야 하는 거야.”

“함께 찾으면 형의 모습만 보일 것 같아요. 저의 모습이 아니라.”

그것은 최악의 말이었다. 민준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었으니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은.

준호는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민준은 전화 너머에서 준호의 호흡만 들을 수 있었다. 깊고 불규칙한 호흡.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뇌를 짓밟으려고 하는 것처럼.

“알았어. 가. 그런데…”

준호가 마침내 말했다.

“뭐요?”

“너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절대로. 넌 혼자가 아니야. 이 전화가 끝나도 넌 혼자가 아니야. 알겠지?”

“네.”

민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또는 부분적인 거짓이었다. 왜냐하면 민준은 그 순간, 자신이 정말로 혼자라고 느꼈으니까. 준호의 보호 아래에서도. 우리의 관심 아래에서도. 이수진의 관찰 아래에서도. 혼자였다. 절망적으로 혼자였다.

전화가 끝났다. 민준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건물을 나갔다. 거리로 나갔다.

강남역 주변은 새벽 1시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클럽에서 나오는 사람들. 편의점으로 가는 사람들.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방향이 있었다. 민준만 제외하고.

그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기 위해. 또는 밤을 보내기 위해. 그는 자신의 반지하 셋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천장의 곰팡이를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침낭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현실을 너무 명확하게 보여주었으니까.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한 여성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나이 먹은 여성. 아까 본 그 여성이었다.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전차 아니에요?”

그 여성이 민준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민준이 대답했다.

“나도 그렇고. 난 아들을 기다리고 있어. 밤샘 근무를 하는 아이인데, 이 전차를 타야 집에 가. 그런데 요즘엔 자주 안 와. 연락도 없고. 그래도 난 계속 기다려. 왜일까?”

그 여성이 민준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의 질문이 진정한 질문인 것처럼.

“사랑하니까요.”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슬픈 대답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랑. 그 말이 맞나? 나는 그게 사랑인지 의무인지 모르겠어. 어느 순간부터는 구분이 안 돼. 그냥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된 거 같아.”

여성이 벤치에 앉았다. 민준도 옆에 앉았다. 아까처럼.

“근데 넌 왜 깨어 있어? 이 시간에. 젊은이가.”

“몰라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왜 깨어 있는지, 왜 거리를 돌아다니는지, 왜 준호의 전화를 끊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야?”

여성이 물었다.

민준은 그 질문을 생각해봤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가? 또는 자신 안의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가?

“모르겠어요.”

민준이 다시 말했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마지막 전차를 기다렸다. 플랫폼의 시계는 오전 1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숫자들은 민준에게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움직인다. 너가 움직이지 않아도. 너가 선택하지 않아도.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마지막 전차다!”

여성이 소리쳤다. 그리고 일어났다. 민준도 일어났다.

플랫폼으로 진입하는 전차를 보면서, 민준은 자신의 손을 들었다. 그 손가락들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또는 이제는 춤을 추고 있었다. 절망의 리듬. 우리의 손가락처럼.

그는 전차에 탔다. 그리고 창을 통해 강남의 밤을 보았다. 그 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슬픈 부분이었다. 모든 것이 망가져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 모든 것을 잃어도, 태양은 여전히 뜬다는 것.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

전차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플랫폼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여성도 사라졌다. 민준은 그 여성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슬펐다. 무언가를 잠깐이라도 나누고 나면, 그것이 끝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슬펐다. 모든 만남은 영원한 헤어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우리로부터의 전화였다. 시간은 오전 2시 12분.

그는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는 것이 무서웠다. 왜냐하면 전화를 받는 순간, 자신이 다시 누군가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리고 지금 민준은 자신이 온전히 자신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배우가 아니라. 누군가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염려 대상이 아니라.

그저, 자신.

전차는 계속 달렸다. 밤의 터널을 통해. 그리고 민준은 창에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는 것을 봤다. 거울처럼. 다른 쪽의 거울. 거울의 반대편에 있는 자신. 그곳에서, 그 반대편에서, 다른 민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어있는 눈으로. 절망의 손가락으로. 그리고 그것이 가장 진정한 자신인 것 같았다.


12,847자

# 마지막 전차

## 1부: 벤치에서의 만남

밤의 지하철 플랫폼은 세상의 끝처럼 고요했다. 형광등이 내뿜는 창백한 빛이 회색 바닥에 떨어져 있고, 그 빛 속에서 먼지가 느릿느릿 춤을 추고 있었다. 민준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이곳에서는 의미를 잃었다. 밤의 지하철 역은 현실의 바깥에 있었고, 여기서는 분과 초가 흐르는 방식이 다른 것 같았다.

그때 한 여성이 플랫폼을 따라 걸어왔다. 민준은 처음에는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떤 것들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면, 우리의 눈이 그것들을 무시하는 법이 있다. 하지만 여성은 어느 순간 민준의 옆에 앉았고, 그때야 그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습관이 된 거 같아,” 여성이 갑자기 말했다.

민준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50대 중반쯤 보였다. 은색으로 흩어진 머리카락, 깊게 파인 얼굴 주름, 그리고 어딘가 자포자기한 듯한 눈빛. 그 눈빛은 민준이 거울에서 본 자신의 눈빛과 비슷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민준이 곧 가지게 될 눈빛이었다.

“밤이 되면 자꾸 이곳으로 와요. 이 플랫폼으로. 마지막 전차를 타려고. 아니면, 그냥 마지막 전차가 오는 것을 보려고. 뭐 그 정도의 차이는 없지만,” 여성이 계속 말했다. 그녀는 민준을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맞은편 벽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실수였어. 마지막 전차를 놓쳤거든. 그래서 다음 전차를 기다렸고, 그 다음 전차가 마지막 전차였어. 그 후로 계속 와. 이 시간에. 이 플랫폼에. 마지막 전차를 보기 위해.”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차가운 플랫폼의 공기가 그의 피부에 닿았고, 그 감각이 마치 자신이 실제로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처럼 느껴졌다. 손가락의 떨림. 맥박 같은 떨림. 절망의 리듬.

“근데 넌 왜 깨어 있어? 이 시간에. 젊은이가,” 여성이 물었다.

그녀가 드디어 민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깊은 호수 같았다. 그 호수에는 수많은 밤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민준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대답이 있었지만, 그것을 말할 언어가 없었다.

“몰라요,” 그가 결국 말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민준은 자신이 왜 깨어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몸이 반응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유는 아니었다. 심장이 뛴다고 해서 살아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여기 있었다. 이 플랫폼에, 이 밤에, 이 여성의 옆에.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 2부: 질문들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불편한 침묵이 아니었다. 오히려 필요한 침묵이었다. 마치 두 사람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플랫폼의 시계가 이를 증명했다. 오전 1시 32분.

“혹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야?” 여성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 질문은 민준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가? 민준은 그 질문을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가? 그도 아니면 자신 안의 다른 누군가, 자신의 다른 버전을 기다리고 있는가?

“모르겠어요,” 민준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대답이 전과 달랐다. 이번에는 그것이 단순한 무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고민의 결과였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라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민준은 그것을 지혜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절망일 뿐이었다.

여성은 민준의 대답을 듣고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슬펐다. 모든 밤의 웃음이 그렇듯이.

“나도 모르겠어,” 여성이 말했다. “처음엔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어. 구원이든, 어떤 신호든, 뭔가.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그냥 와. 습관처럼. 마치 내가 이 플랫폼의 일부인 것처럼. 아니, 이 플랫폼이 나의 일부인 것처럼.”

민준은 플랫폼을 바라봤다. 회색의 콘크리트, 노란 안전선, 멀리 터널의 어둠. 그곳이 정말로 누군가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어떤 장소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민준은 그것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성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그것이 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가능한 것처럼.

“시간 맞춰서 와요?” 민준이 물었다.

“아니. 거의 같은 시간에 와. 오전 1시쯤. 그러면 마지막 전차가 오는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돼.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는 뭘 하지? 생각하나? 아니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냥 여기 있어. 그게 전부야.”

그 말을 들으면서 민준은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떨림. 그것은 공포의 신호였을까, 아니면 생명의 신호였을까? 민준은 더 이상 그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 모든 신호가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아요,” 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자신도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이 전화해. 계속. 하지만 난 받지 않아.”

여성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받으면 안 돼,” 여성이 말했다. “받는 순간, 넌 누군가의 일부가 돼. 누군가의 책임이 돼. 누군가의 걱정이 돼. 그게 무서운 거 맞지?”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것이었다. 전화를 받는 것이 무서웠던 이유. 받는 순간, 자신이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을 멈출 것 같았다.

“근데 말이지,” 여성이 계속했다. “그게 정말 나쁜 걸까? 누군가의 일부가 되는 게? 누군가에게 필요해지는 게?”

그 질문에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 3부: 시간의 흐름

플랫폼의 시계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오전 1시 47분.

민준은 그 시간을 바라봤다. 1시 47분. 그 숫자들이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움직인다. 너가 움직이지 않아도. 너가 선택하지 않아도. 너가 기도해도, 저항해도, 포기해도.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시간의 유일한 약속이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확실성이었다.

“시간이 이상하지?” 여성이 말했다. “이 시간에 여기 있으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지만 시계를 보면 계속 움직이고 있어. 그 모순이… 그게 좋아.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니까.”

민준은 그 말을 이해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시간은 움직이고, 우리는 멈춘다. 또는 우리는 움직이고, 시간은 멈춘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아니, 실제로는 둘 다였다.

“마지막 전차가 언제 와요?” 민준이 물었다.

“오전 2시 50분쯤. 그 후로는 아침 첫 전차까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해. 하지만 나는 항상 마지막 전차를 타. 아침 첫 전차는 아무도 원하지 않지.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니까.”

시작이 아니라 끝. 그 말이 민준의 마음에 박혔다. 사람들은 언제나 시작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것을, 알려지지 않은 것을. 하지만 끝은? 끝은 어떨까? 끝도 똑같이 두려운 것 같았다. 아니, 더 두려울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끝은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 소리는 갑작스러웠고, 마치 이 침묵의 세계에 대한 폭력적인 침입처럼 느껴졌다. 여성은 화면을 확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누구였어요?” 민준이 물었다.

“모르겠어. 그냥 누군가,” 여성이 대답했다. “요즘엔 다들 그래. 계속 전화해. 계속 메시지를 보내. 마치 우리가 사라질까봐 두려운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이미 사라졌지. 그들은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

사라졌다. 그 말이 민준의 가슴을 찌르듯이 지나갔다. 그는 이미 사라졌는가? 정말로? 자신이 아직도 여기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고,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여성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증거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민준의 휴대폰도 울렸다. 준호였다. 민준은 그것을 알았다. 특별한 신호음도 없이, 진동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준호가 전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절박함을. 그 걱정을.

민준은 전화를 끊었다.

“받지 않았네,” 여성이 말했다. 이번에는 그것이 칭찬처럼 들렸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좋은 거야. 정말로. 받지 않은 게 좋은 거야. 왜냐하면 받는 순간, 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건… 그건 자유가 아니라 감옥이거든.”

민준은 그 말을 곱씹었다. 자유와 감옥. 혼자와 함께. 그것들의 경계는 어디에 있었을까? 아니, 경계가 정말로 존재했을까? 아니면 그것은 모두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 4부: 반사

플랫폼의 시계는 오전 2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지막 전차까지 45분이 남아 있었다.

“이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돼,” 여성이 말했다. “곧 올 거야.”

그렇게 말한 후, 여성은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것은 기다리는 침묵이었다. 모든 밤의 침묵이 그렇듯이. 밤의 침묵은 낮의 침묵과는 다르다. 낮의 침묵은 소음이 잠깐 멈춘 것일 뿐이지만, 밤의 침묵은 세상이 실제로 멈췄다는 신호이다.

민준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플랫폼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천천히. 마치 자신이 이 장소의 유령이 되고 싶은 것처럼. 유령은 걸을 때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 민준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 플랫폼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맞은편 벽에 광고판이 있었다. 어떤 제품의 광고였다. 미소 짓는 사람들. 행복한 가족. 모두가 함께 있는 모습. 민준은 그것을 바라봤다. 그 광고 속의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할까? 아니면 그것도 연기일까? 모든 것이 연기인 것 같았다. 행복도, 슬픔도, 모든 감정이.

민준은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광고판의 반사에서도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떨림. 공포. 절망. 모든 것이 광고판의 뒤에 숨어 있었다.

“손가락이 떨려?” 여성이 물었다. 여성은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었지만, 민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게 죄책감이야, 아니면 공포야?”

민준은 그 질문을 생각해봤다. 죄책감? 공포? 둘 다? 아니면 그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모든 떨림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 아닐까? 모든 공포와 죄책감과 슬픔이?

“모르겠어요,” 민준이 말했다.

“그래. 그게 맞아. 몰라도 돼. 모르는 게 정상이야. 아무도 자신이 떨리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해. 우린 그냥… 떤다. 그게 전부야.”

여성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마치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위로해본 것 같은 목소리였다. 또는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위로받은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 두 가지는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민준은 벤치로 돌아와 다시 앉았다. 여성의 옆에. 그들은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번의 침묵은 처음의 침묵과는 달랐다. 이제는 신뢰가 있었다. 얇지만 확실한, 두 사람 사이의 신뢰.

## 5부: 마지막 전차

플랫폼의 시계는 오전 2시 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 2분만 더 기다리면 되었다.

여성이 일어났다. “마지막 전차가 온다,” 그녀가 말했다.

민준도 일어났다. 그들은 플랫폼의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터널 속의 어둠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동으로. 공기의 움직임으로. 밤이 마지막으로 숨을 쉬는 소리로.

“기다려봐,” 여성이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2분 후, 빛이 터널의 어둠을 뚫고 나왔다. 흰 빛. 따뜻한 빛. 그 빛은 마치 구원의 신호 같았다. 또는 심판의 신호였을 수도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

전차가 플랫폼에 진입했다. 그것은 정말로 마지막 전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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