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70화: 그 질문의 무게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70 / 218Next

# 제70화: 그 질문의 무게

“너는 무언가를 찾고 있지 않니?”

이수진의 질문이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던진 화살처럼. 그것은 민준의 가슴팍을 관통했지만, 즉시 피가 나지는 않았다. 처음엔 통증조차 없었다. 단지 충격만 있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내부를 헤집고 들어왔다는 충격.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이 모르고 있었으니까.

이수진은 그의 침묵을 읽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다시 책상 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앉지는 않았다. 대신 책상의 모서리에 기대앉았다. 마치 교사가 학생 앞에서 하는 그런 자세. 권력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권력을 유지하는 자세.

“내가 너를 뽑은 이유를 말해줄까?”

그녀가 물었다. 이번엔 앞의 질문과 달리, 이것은 진정한 질문이었다. 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 마치 자신이 이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결정한 것처럼.

“나는 배우를 보는 눈이 있어. 20년 이상 이 업계에 있으면서 터득한 눈. 그 눈으로 보면, 대부분의 신인 배우들은 뭔가를 원하고 있어.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 또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 그것들이 그들의 눈에 반짝인다. 마치 광고판처럼.”

이수진은 민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호기심이었다. 마치 과학자가 현미경 아래의 세포를 관찰하는 것처럼.

“하지만 너는 달랐어. 너의 눈에는 아무것도 반짝이지 않았다. 그것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왜일까?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 하지만 떨리고 있었다.

“너는 뭔가를 잃어버렸어. 이미. 아직 20대인데, 너는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찾던 것이었어. 배우로서 너는 평범할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으로서 너는 특별했다. 왜냐하면 넌 이미 죽어있었으니까.”

침묵. 그 단어들이 공기 중에서 천천히 침전되었다. 이미 죽어있었다. 민준은 그 문장을 되짚어 생각했다. 자신이 죽어 있다고?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이 행동들은 뭔가? 호흡은? 심장박동은? 생각은?

“나는 그런 배우가 필요했어. 우리 드라마에서. 왜냐하면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죽음. 상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직도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 너는 그것을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어. 아니,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그것을 이미 살고 있으니까.”

민준의 입이 열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턱을 아래로 밀어내는 것처럼.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올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너를 이용하려고 했다.”

이수진이 계속했다. 마치 자신이 자백하는 것처럼. 진지한 목소리로.

“내가 왜 그랬을까? 그건 내가 알아야 할 질문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모른다. 아마도 나도 너처럼,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창으로 돌아갔다. 다시 강남의 야경을 내려다봤다. 야경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불빛들. 여전히 같은 거리. 여전히 같은 사람들.

“너는 준호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이수진이 갑자기 물었다. 주제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민준은 이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선으로. 실로. 거미줄처럼.

“그건… 복잡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복잡하다. 그래. 모든 것이 복잡하지.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이 다를 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두려워하는 사람이 같을 때. 그때가 가장 복잡하다.”

이수진은 창에 손을 대고 있었다. 유리는 차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준호는 좋은 선배다. 정말로. 나도 알고, 회사도 알고, 모두가 안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넌 눈치채지 못했나?”

“뭘요?”

“자신의 두려움. 그 두려움이 너를 통해 표현되고 있어. 다시 말해, 그는 너를 돌봄으로써 자신을 구하려고 하는 거야. 그것이 사랑인가?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욕구다. 그리고 구원의 욕구는 아주 위험해.”

민준의 손가락이 더 떨리기 시작했다. 이수진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민준을 더 두렵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해줄 때, 그것은 더 이상 추측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너한테 묻고 싶어. 너는 준호를 사랑하고 있나? 아니면 그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걸까?”

이수진이 창에서 돌아서서 민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검었다. 하지만 이제 그 안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혹은 동정. 혹은 이해. 아니면 그냥 관찰.

민준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은 준호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은가? 그의 존재가 자신의 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인가?

하지만 동시에, 자신은 준호를 원하고 있는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자신은 단지 누군가의 구원 대상이 되고 싶을 뿐인가?

“모르겠습니다.”

민준이 마침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마치 자신도 그 말을 들을 수 없을 것처럼.

“그래. 그렇게 답해야 정직한 거야.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면서 확신한다고 말하니까.”

이수진은 다시 책상 쪽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의자에 앉았다. 민준과 마주보는 책상 너머에서.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하나 있어. 너는 지금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많은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원하고 있다.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작동할 때,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시간을 줄 거야.”

“시간을요?”

“응. 넷플릭스 촬영은 한 달 뒤에 시작된다. 너는 그 한 달 동안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너는 뭘 원하고 있나? 너는 뭘 두려워하고 있나? 너는 뭘 이미 잃어버렸나?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나?”

민준은 책상 위에 있는 물잔을 봤다. 빈 물잔. 아무도 마시지 않은 물잔.

“그리고 준호에게도 너는 정직해야 해. 그가 너를 구원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면, 넌 그것을 받아주되, 동시에 그것을 거절해야 한다. 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너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 누군가가 너를 구원할 수는 없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뿐이야.”

이수진의 말이 끝났다. 그리고 그 후에는 침묵만 남았다.

민준은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미끄러졌다.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것은 제69화의 그 소리가 아니었다. 이것은 더 조용한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려고 하는 것처럼.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문 앞에서.

“가지 마. 아직 밤 12시도 안 됐어.”

이수진이 말했다.

민준이 다시 돌아섰다.

“너는 여기서 밤을 새워도 된다. 이 사무실에는 소파가 있다. 아래층에는 카페가 있다. 너는 이 밤을 자신과 함께 보낼 수 있다. 거울을 봐도 되고, 창을 봐도 되고, 아무것도 안 보고만 있어도 돼. 하지만 너는 혼자가 아니야. 이 빌딩에는 내가 있고, 아래층에는 야경이 있고, 그리고 누군가는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누가요?”

“그건 너가 알아야 할 답이다.”

민준은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이수진의 사무실에 있는 가죽 소파. 검은색. 마치 누군가의 무릎처럼 보였다. 그는 그곳에 누웠다. 편하지 않은 자세로. 하지만 누웠다.

그리고 이수진은 다시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화면을 켰다. 뭔가를 읽기 시작했다. 클릭. 클릭. 그 소리가 밤의 배경음이 되었다.

민준은 천장을 봤다. 천장은 흰색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흰색. 그리고 그 흰색은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보였다. 빈. 텅 빈. 하지만 그 텅 빈 것이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휴대폰이 울렸다. 밤 12시 7분. 발신자는 준호였다.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들었다. 울음벨이 울려 멈췄다. 그리고 몇 초 후,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괜찮아? 이수진한테 뭐 들었어? 물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난 그냥… 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민준은 문자를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답장을 썼다.

“이수진 사무실에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민준은 그 문자를 한 번 더 읽었다. 그 문자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는 정말로 괜찮았다. 아니, 괜찮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이전과는 달랐다.

보내기.

그리고 몇 초 후, 답장이 왔다.

“알겠어. 언제든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거 기억해.”

민준은 그 문자를 읽고 눈을 감았다. 천장의 흰색이 어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아직 명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뭔가가 있었다. 변화. 혹은 가능성. 혹은 단지 다음 날이 올 거라는 것.

이수진의 클릭 소리가 계속되었다. 밤 12시 15분. 그리고 민준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혼자가 아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사랑인지, 구원인지, 아니면 단지 함께함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밤은 계속 흘러갔다. 강남의 야경이 변하지 않으면서도 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고 있고, 누군가는 깨어 있고, 누군가는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민준도 그 흔들림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지금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 밤의 소리들

**오후 11시 47분**

“거울을 봐도 되고, 창을 봐도 되고, 아무것도 안 보고만 있어도 돼.”

이수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마치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실을 말하는 듯한 톤으로.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양손을 살펴봤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떨림이 시작된 것은.

“하지만 너는 혼자가 아니야.”

이 말이 박혔다. 마치 화살처럼. 민준은 눈을 깜빡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런 말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 엄마는 “넌 우리가 있잖아”라고 말했고, 준호는 “내가 있다”고 말했고, 심지어 정신과 의사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적힌 책자를 건넸었다. 하지만 말과 현실은 다르다. 밤 11시 47분, 강남의 어느 빌딩 27층에서, 민준은 여전히 혼자였다.

아니다. 지금은 다른가.

“이 빌딩에는 내가 있고, 아래층에는 야경이 있고, 그리고 누군가는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래층. 민준은 그 말을 반복했다. 아래층이라는 말이 자꾸 자꾸 떠올랐다. 아래층에는 뭐가 있을까. 강남의 밤. 네온 불빛들. 택시. 술 취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들. 그곳에는 민준이 없다. 그곳에는 자신을 찾지 않는 사람들만 있다.

“누가요?”

민준은 물었다. 목소리가 작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렇게 작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니, 신기한 게 아니다. 슬픈 것이다.

“그건 너가 알아야 할 답이다.”

이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했지만, 그것은 대답이 아니었다. 미로 같은 말. 거울 같은 말. 자신이 던진 질문이 그대로 돌아오는 느낌. 민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이 사무실 공간에 확산되었다. 따뜻한 숨이 찬 공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희미한 안개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분명히 일어나는 일.

**오후 11시 52분**

민준은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깔끔하게 정리된 사무실 바닥. 아마 오늘 아침에 청소를 했을 것이다. 그 위를 자신의 발이 더럽히고 있다. 민준은 그 생각에 잠깐 멈췄지만, 이수진은 상관없다는 듯이 자신의 업무를 계속했다.

이수진의 소파. 검은색 가죽 소파. 민준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봤다. 가죽의 질감. 손으로 만져보면 어떤 느낌일까. 차갑고 딱딱할까, 아니면 부드럽게 내려앉을까. 그는 조심스럽게 한손을 소파 등받이에 올렸다. 따뜻했다. 그것이 놀라웠다. 물체가 따뜻하다는 것. 누군가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는 누웠다. 편하지 않은 자세로.

가죽 소파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처음엔 따뜻하던 표면도, 자신의 몸무게가 눌리는 순간 차가운 심층을 드러냈다. 마치 누군가의 미소 뒤에 숨은 슬픔처럼. 민준은 몸을 더 깊숙이 소파에 묻었다. 왼쪽 팔을 옆으로 늘어뜨렸다. 손가락이 소파의 모서리를 스쳤다. 감촉. 현실감. 자신이 여기 있다는 증거.

천장을 봤다.

흰색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흰색. 오피스 천장의 흔한 흰색. 그런데 왜 그렇게 깊어 보였을까. 민준은 그 흰색을 바라봤다. 마치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흰색 안에 자신이 빨려들어갈 것 같은 느낌.

‘텅 비었다.’

자신의 생각이 들렸다. 내면의 목소리. 그것이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자신 안에 살고 있는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텅 빈 천장. 텅 빈 마음. 텅 빈 미래.’

그런데 잠깐.

텅 빈 것이 나쁜 건가. 다시 생각해보니, 텅 빈 것은 가능성 아닌가. 빈 캔버스. 빈 페이지. 누군가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다. 색칠할 수 있다.

자신이 그릴 수도 있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떴다. 천장은 여전히 흰색이었다.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시선은 변했다. 절망에서 기대로. 무의미함에서 의미의 가능성으로.

이것이 바뀐 건가. 이것이 변화인가.

**오전 12시 7분**

클릭. 클릭. 클릭.

이수진의 마우스 클릭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밤의 배경음. 사무실의 진혼곡. 민준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저 소리는 뭘 의미할까. 누군가의 삶의 일부. 업무. 책임. 또는 습관. 그리고 그 규칙적인 소리 속에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담겨 있다.

시간이 흐른다. 계속해서.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민준은 깜짝 놀랐다. 밤 12시 7분의 휴대폰 울음. 그것은 아무도 이 시간에 전화하지 않을 거라는 가정을 깨뜨렸다. 화면을 봤다.

준호.

그의 친구. 아니, 그냥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남겨진 몇 안 되는 연결고리 중 하나. 민준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의 불빛이 자신의 얼굴을 비췄을 것이다. 창백한 얼굴. 불안한 표정. 그래, 자신은 이렇게 보일 거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결정을 내리는 데는 반 초도 걸리지 않았다. 말할 것이 없었다. 아니, 말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말할 수 없었다. 울음벨이 울려 멈췄다. 침묵이 돌아왔다. 그 침묵 속에서 민준은 자신이 뭔가를 거절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준호의 목소리를 거절했다. 준호의 관심을 거절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누구인가. 사람을 거절하는 사람. 자신과 타인 사이의 거리를 점점 더 멀게 만드는 사람.

아니다. 지금은 다르다. 이수진이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했으니까.

그 말이 맞는 건가.

몇 초 후, 문자 메시지가 왔다. 화면의 알림 창이 떴다.

“괜찮아? 이수진한테 뭐 들었어? 물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난 그냥… 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민준은 그 문자를 읽었다. 한 번. 글자를 따라 읽었다. 두 번. 의미를 파악하려고 했다. 세 번. 감정을 느껴보려고 했다.

‘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이 말이 자꾸 반복되었다. 왜. 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가. 자신은 이미 사라진 사람 아닌가. 아니다. 준호는 아직도 자신을 찾고 있다. 이것이 뭘 의미하는가.

민준은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이수진 사무실에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손가락이 화면을 두드렸다. 자음. 모음. 단어. 문장.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 이것도 연결이다. 누군가와의 연결.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민준은 그 문자를 한 번 더 읽었다.

‘괜찮습니다.’

거짓이다. 자신은 괜찮지 않다. 밤 12시에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괜찮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 거짓은 이전의 거짓과는 다르다. 이전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을 말했다. 마치 호흡하듯이. 자동으로. 하지만 지금 이 거짓은 의식적이다. 자신이 준호를 지키기 위한 거짓. 준호를 더 이상 걱정하게 하지 않기 위한 거짓.

그렇다면 이것도 사랑의 한 형태일까.

‘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자신은 정말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천장을 보면서. 이수진의 클릭 소리를 들으면서. 준호의 문자를 읽으면서.

보내기.

손가락이 화면을 눌렀다. 전송음이 울렸다. 문자는 밤의 암흑을 통해 준호에게로 날아갔을 것이다. 신호를 타고.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몇 초 후, 답장이 왔다. 빠르다. 준호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자신을 기다리며.

“알겠어. 언제든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거 기억해.”

민준은 그 문자를 읽고 눈을 감았다.

**오전 12시 15분**

천장의 흰색이 어둠으로 바뀌었다. 눈을 감으면서.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아직 명확하지는 않았다. 마치 새벽 하늘처럼. 검은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닌, 그 사이의 무언가.

‘변화.’

그것이 뭘까. 자신이 변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은 여전히 동일한 몸을 가진 동일한 사람이다. 같은 걱정을 하고,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수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준호의 문자를 읽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거 기억해.”

그리고 지금, 낯선 사무실의 낯선 소파에 누워, 자신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약한 느낌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느낌.

클릭. 클릭.

이수진의 마우스 소리가 계속된다. 계속 일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좋다. 이것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자신을 위해 자신을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것. 그냥 옆에서 함께 있다는 것.

민준은 눈을 떴다. 천장은 여전히 흰색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절망처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다. 밤 12시 15분에서 밤 12시 16분으로.

민준은 그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 자신이 여기 있다는 증거.

**오전 12시 47분**

한 시간이 더 지났다.

민준은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 자세로 계속 있고 싶었다. 천장을 보면서. 이수진의 클릭 소리를 들으면서.

이수진은 한 번도 자신을 방해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가. 물을 마시고 싶으면 마. 누군가는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라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준호인가. 그럼 준호는 언제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마도 처음부터. 자신이 달라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자신이 말을 줄이고, 눈을 피하고, 세상에서 자꾸만 멀어져 가던 그 모든 순간들.

준호는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그 기다림을 느끼고 있다.

민준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소파의 표면을 스쳤다. 가죽의 질감. 차갑고 부드러운 표면. 자신이 실제로 여기 있다는 증거를 자신의 손가락에서 찾았다.

이수진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전화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건가.

“뭔가 필요해?”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음성으로 “아니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몇 시간 만에 처음 낸 목소리. 작지만 존재하는 목소리.

“그럼 편해.”

이수진은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이제 이 사무실에는 두 개의 호흡이 있다. 두 개의 존재. 두 개의 시간의 흐름.

민준은 눈을 감았다 떴다. 여러 번 반복했다. 마치 자신이 정말 깨어 있는지 확인하듯이.

**오전 1시 23분**

“말해 줄 거야?”

이수진이 물었다. 갑작스럽게. 민준은 깜짝 놀랐다.

“뭘요?”

“누가 너를 기다리고 있는지.”

민준은 한참 생각했다. 천장을 바라봤다. 그 흰색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모르겠어요.”

“정말?”

“네. 정말.”

이수진은 웃음을 흘렸다. 가볍고 따뜻한 웃음. 마치 누군가를 놀리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웃는 듯한.

“그럼 찾아봐. 천천히.”

‘찾아본다.’

민준은 자신의 안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뭐가 있을까. 절망인가. 공허인가. 아니다.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작고, 약하고, 거의 사라져 가는 뭔가. 하지만 분명히 있다.

생존의 의지. 혹은 관계의 의지.

**오전 2시 47분**

밤이 깊어진다.

민준은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몸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일어났다. 창문으로 갔다.

아래층. 강남의 야경. 여전히 밝다. 밤 2시가 넘었는데도 거리에는 불빛이 있다. 누군가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 밤 2시에도. 그리고 자신도 그 일부다.

“지금 뭐 해?”

이수진이 물었다.

“밤을 보고 있어요.”

“좋아?”

민준은 생각했다. 좋은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하다. 이 밤. 이 시간. 이 공간. 이수진의

70 / 218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