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6화: 거짓말 하는 배우
준호의 말이 끝나자, 카페 안의 모든 것이 정지했다. 배경음악도, 다른 손님들의 웅성거림도 아무것도 없었다. 있었을 리 없다.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세 사람의 호흡만 공기 위에 떠올랐다.
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오랫동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혹은 수년을 함께했던 사람이 갑자기 낯선 언어로 말을 거는 것처럼. 준호의 얼굴은 차분했다. 차분함이 가진 그 날카로운 무게감으로. 마치 자신이 지금까지 숨겨왔던 것을 꺼내놨다는 안도감이 그의 눈 밑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그려져 있는 것처럼.
“당신은 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민준의 목소리는 낮았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왜냐하면 너는 자신의 약함을 이해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걸 좋아하니까.”
준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무감정이 있었지만, 그것은 냉정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감정이 너무 많아서,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용기가 없어진 상태였다. 마치 물이 넘친 컵처럼.
민준은 고개를 돌렸다. 우리를 향해. 우리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다시 시작했다. 탁탁탁. 그 리듬. 그 끈기 있는 음. 마치 자신의 심장이 자신의 몸 밖에서 뛰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얼굴은 창백했다. 흙빛이 도는 창백함. 카페의 조명이 우리의 뺨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당신이 준호를 본 날이 언제예요?”
민준이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의 손가락이 멈췄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냐고요?”
민준이 다시 물었다. 이번엔 더 천천히. 마치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우리의 입에서 그 대답이 나오는 것을 듣고 싶은 것처럼.
“사흘 전이야.”
우리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디서?”
“병원.”
우리가 한 글자씩 끊어서 말했다.
“어느 병원?”
민준이 물었다.
우리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검은색 긴팔 셔츠의 주머니. 그곳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어떤 사진을 찾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찾았다. 화면을 민준에게 향했다.
병원 침대 위의 젊은 남자. 둥근 얼굴. 가는 눈썹. 호흡기가 코에 끼워져 있었다. 팔에는 의료용 밴드가 여러 개 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이미 떠난 것처럼 보였다. 육체는 침대 위에 있었지만, 영혼은 어디론가 떠나버린 것 같은 그런 표정.
민준의 호흡이 멈췄다. 정말로 멈췄다. 폐가 공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마치 자신이 이미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건…”
민준이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지 못했다.
“준호야. 내 친구 준호. 당신이 아는 그 준호.”
우리가 말했다. 우리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이었다. 마치 자신이 죽은 사람을 깨울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의 상태가…”
민준이 말했다.
“나빠. 계속 나빠지고 있어. 의사는 말했어. 뇌사 상태라고. 마약 과다복용이었어. 자살 시도. 그런데 완전히 자살한 건 아니야. 누군가가 그를 찾았거든. 시간이 좀 있었어. 그래서 살았어.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하지만 뭐요?”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떠났어. 그의 눈을 봐. 내가 그의 손을 잡아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도, 그는 거기가 아니야. 그는 이미 거기가 아니야.”
우리가 화면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매우 심하게. 마치 자신의 신경계가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준호가 움직였다. 우리의 손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손을 당겨버렸다. 마치 자신이 만지면 더 오염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민준이 준호를 바라봤다.
“응.”
준호가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의 눈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울음을 안에 가두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당신은 저한테 화낸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너는 자신을 이해 못한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이해하게 해주려고 했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하지만 그 낮음 속에는 분노가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 아니,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슬픔이었다. 분노로 위장한 슬픔.
“당신이 저를 화내게 한 거라는 뜻이에요?”
민준이 물었다.
“너는 나한테 뭘 했는지 알아?”
준호가 물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고백이었다.
“뭘 했는데요?”
민준이 말했다.
“너는 나한테, 그리고 나는 너한테,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거짓말을 했어. 우리는 그것이 괜찮을 거라고 했어.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했어.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낫을 거라고 했어. 그리고 우리는 모두 거짓말쟁이야.”
준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음으로. 카페의 조명 아래에서, 다른 손님들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들은 빠르게 다시 돌렸다. 이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세 사람의 비극이었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준호를 봤다. 정말로 봤다. 첫 번째로. 마치 자신이 지금까지 준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준호의 입술이 떨렸다.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뭐?”
준호가 물었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게. 저한테? 이 상황에 대해?”
민준이 다시 물었다.
준호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사람이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소리를 냈다. 그 침묵 속에는 수년이 있었다. 수년의 참음. 수년의 보호. 수년의 자기 희생. 그리고 그것의 끝.
“나는 너가 자신을 구하기를 원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속삭임이었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비명보다 더 크게 들렸다.
“나는 너가 이 모든 거짓말을 끝내기를 원해. 당신은 배우야. 배우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인생에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리고 그게 문제야. 당신은 무대에서는 진실을 보여주는데, 무대 밖에서는 당신이 뭔지 모르는 척하고 있어.”
준호가 계속했다.
“그 친구 준호. 그는 당신처럼 했어. 당신처럼 침묵했어. 당신처럼 이해 못한 척했어. 그리고 그것이 그를 죽였어. 그리고 나는 너도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거를 보고 있어. 그래서 나는 화났어.”
민준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마치 돌을 받아드리는 것처럼. 그것이 정확히 어디에 맞을지 모르면서도.
“그 역할을 거절하세요.”
우리가 말했다. 갑자기.
민준이 우리를 봤다.
“넷플릭스 역할. 거절하세요. 계약서를 찢으세요. 이수진이가 고소하게 하세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우리가 계속했다. 우리의 눈이 이제 초점을 맞췄다. 우리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떠났다. 우리의 몸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왜요?”
민준이 물었다.
“왜냐하면 이미 한 명이 죽었어. 나는 당신까지 죽일 수 없어. 내가 당신을 불렀을 때, 내가 당신한테 이 모든 걸 말했을 때, 나는 당신을 구하려고 했어. 하지만 나는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
우리가 말했다.
“내가 당신한테 준호의 죽음을 말했으니까. 내가 당신한테 합의금과 침묵 조항을 말했으니까. 내가 당신한테 모든 것을 말했으니까. 이제 당신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당신이 내 친구의 죽음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는 뜻이야.”
우리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죽일 거야.”
침묵.
그 침묵은 길었다. 몇 초가 아니라, 몇 분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침묵. 카페의 배경음악도 멈춘 것처럼 들렸다. 혹은 민준이 듣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돼요?”
민준이 마침내 물었다.
“이수진이가 고소할 거야. 그리고 너는 배우 커리어를 잃을 거야.”
우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만약 제가 받으면?”
민준이 다시 물었다.
“그럼 내 친구는 계속 죽은 채로 있을 거야. 그리고 너도 천천히 죽을 거야. 하지만 더 조용히. 무대 위에서.”
우리가 말했다.
민준은 그 두 가지 죽음의 모양을 생각해봤다. 빠른 죽음. 느린 죽음. 외부의 죽음. 내부의 죽음.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작은지를 깨달았다.
“당신은 뭘 할 거예요?”
민준이 우리에게 물었다.
“나?”
우리가 물었다.
“네. 당신은?”
민준이 반복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의 손이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했다. 누르기. 기록. 전송. 마치 자신이 뭔가를 공식화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 모든 걸 공개할 거야.”
우리가 말했다.
“어떻게요?”
민준이 물었다.
“인터넷에. 내가 아는 모든 것. 합의금. 침묵 조항. 그리고 준호의 이야기. 내가 지금 방금 녹음했어. 당신과 준호와 나의 이 대화를 . 그리고 나는 그걸 공개할 거야.”
우리가 말했다.
“그러면 당신도…”
민준이 말했다.
“나도 망할 거지. 알아. 하지만 이건 더 이상 당신의 선택이 아니야. 이건 내 선택이야. 내 친구를 위한 선택이야.”
우리가 말했다.
준호가 움직였다. 우리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이번엔 성공했다. 우리의 손이 준호의 손 안에 있었다. 작고, 떨리고, 차가웠다.
“당신이 이걸 하면 당신도 끝나요.”
준호가 말했다.
“알아.”
우리가 대답했다.
“당신의 커리어도.”
준호가 계속했다.
“내 친구의 목숨이 더 중요해.”
우리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거짓말쟁이인 배우도 가끔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그 진실은 자신을 파괴한다.
“저는 뭘 해야 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세 사람 모두가 그 질문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복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시작이었다.
“당신은 선택해야 해.”
준호가 말했다.
“뭘 선택해요?”
민준이 물었다.
“당신의 인생을 .”
준호가 대답했다.
그 순간, 카페의 조명이 변했다. 아니,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의 눈에는 변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이 이제 다른 색깔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처럼. 그것은 더 이상 따뜻한 조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심문실의 조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심문을 받는 사람이었다.
“제 배우로서의 인생이랑 제 실제 인생을 고르라는 건가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뿐 아니야.”
우리가 말했다.
“거짓과 진실을 고르는 거야. 그리고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과는 상관없어.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선택이야.”
침묵.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민준은 자신의 거울을 봤다. 그것은 실제 거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준호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거울 안에 비친 것은 자신이었다. 네 살 때의 자신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 거짓말을 하는 배우. 침묵하는 인간. 그리고 점점 더 사라져가는 사람.
“저는 배우를 거만 거예요.”
민준이 말했다.
“정말로?”
우리가 물었다.
“네. 정말로.”
민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얼굴에서 부서졌다.
글자 수: 16,847자
# 선택의 무게
카페의 구석진 테이블에서 세 사람이 마주앉았다. 저녁 여섯 시, 해는 이미 지고 있었고, 창밖의 서울 하늘은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민준은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준호와 우리. 그들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가득했다. 민준은 자신의 커피잔을 들었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 그것을 마신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리 없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망할 거지. 알아. 하지만 이건 더 이상 당신의 선택이 아니야. 이건 내 선택이야. 내 친구를 위한 선택이야.”
우리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말을 하기 위해 준비해온 것처럼.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죄책감? 감사함? 아니면 그 둘 다? 그의 손가락은 커피잔의 가장자리를 쓸었다. 따뜻함은 이미 사라지고, 남은 것은 찬 도자기의 질감뿐이었다.
준호가 움직였다. 테이블 위로 팔을 뻗어 우리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다. 그의 손이 우리의 손을 감싸 안았다. 그 손은 작았고, 떨리고 있었으며, 차가웠다. 민준은 그 광경을 바라봤다. 친구를 붙잡는 또 다른 친구의 모습. 그것은 마치 익사하는 사람이 떠내려가는 통나무를 잡는 것 같았다. 절망적이었다. 동시에 아름다웠다.
“당신이 이걸 하면 당신도 끝나요.”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민준은 준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눈 밑의 다크서클, 입술의 창백함, 이마의 주름. 이 모든 것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준호도 이미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도 함께 끝내려고 하고 있었다.
“알아.”
우리가 대답했다.
“당신의 커리어도.”
준호가 계속했다. 그것은 마치 체크리스트를 읽어내려가는 것 같았다. 잃어버릴 것들의 목록. 직업, 명성, 돈, 신뢰. 모든 것.
“내 친구의 목숨이 더 중요해.”
우리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민준도, 준호도, 그리고 우리도 모두 알고 있었다. 진실이었기 때문에 더 위험했다. 거짓은 언제든 밝혀지고 변할 수 있지만, 진실은 돌이킬 수 없다. 진실은 영구적이다.
민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두려움이 있었다. 엄청난 두려움. 하지만 그 아래에는 다른 감정도 있었다.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민준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흙 속에 묻혀있던 씨앗이 마침내 햇빛을 받으려고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부서지기 직전의 감각. 그리고 동시에 부서진 후에 올 재생의 예감.
“저는 뭘 해야 하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그 질문은 작은 목소리로 나왔다. 거의 속삭이는 수준의 음량이었다. 하지만 카페의 소음—커피 머신의 웅웅거리는 소리, 바리스타의 발걸음, 먼 테이블에서의 웃음소리—을 뚫고 명확히 전달되었다.
세 사람 모두가 그 질문의 무게를 느꼈다. 민준은 그것을 자신의 가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무거운 돌을 가슴에 얹은 것처럼.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복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시작이었다. 새로운 길로의 첫 발걸음.
준호가 우리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당신은 선택해야 해.”
준호가 말했다.
“뭘 선택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마치 자신의 음성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신의 인생을.”
준호가 대답했다.
그 순간, 뭔가가 변했다. 카페의 조명이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조명은 여전히 같은 온화한 황색이었고, 음악은 여전히 같은 재즈곡이었으며, 바리스타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변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이 이제 다른 색깔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처럼. 그것은 더 이상 따뜻한 조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심문실의 조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심문을 받는 사람이었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것도 변했다. 마치 더 창백해진 것 같았다. 또는 더 투명해진 것처럼. 마치 자신이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 배우로서의 인생이랑 제 실제 인생을 고르라는 건가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뿐 아니야.”
우리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이제 더욱 단호해졌다.
“거짓과 진실을 고르는 거야. 그리고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과는 상관없어.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선택이야.”
침묵이 찾아왔다. 깊고, 무거운 침묵. 마치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침묵. 민준은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의 거울을 봤다. 그것은 실제 거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준호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민준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결심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울 안에 비친 것은 민준 자신이었다. 지금의 민준. 네 살 때의 순수한 민준이 아니라, 지금의 민준. 거짓말을 하는 배우. 침묵하는 인간. 그리고 점점 더 사라져가는 사람.
“저는 배우를 그만두겠어요.”
민준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깨진 유리처럼 거칠었다.
“정말로?”
우리가 물었다. 그것은 확인이 아니라,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순간.
“네. 정말로.”
민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얼굴에서 부서졌다. 마치 깨지는 얼음 위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의 눈물이었다.
—
카페의 벽시계가 여섯시 삼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준은 그 시간을 바라봤다. 자신의 인생이 갈라지는 시간. 전과 후. 그 순간을 명확히 기억하고 싶었다. 이 시간, 이 분, 이 순간. 그리고 이 테이블에 함께한 두 사람.
준호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이미 그의 다른 손을 잡고 있었다. 세 사람이 원을 이루며 손을 맞잡았다. 그것은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또는 맹세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돼요?”
민준이 물었다.
“모르지.”
우리가 대답했다.
“그건 당신이 정하는 거야. 당신이 선택한 길은 당신이 만드는 거야. 우리는 옆에 있을 뿐이야.”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준호가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민준의 가슴에 뭔가 뜨거운 것이 퍼져나갔다. 두려움도 여전했다.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 민준은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거짓의 쇠사슬에서 풀려난 자유. 역할을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저 자신이 되는 것의 자유.
창밖으로 밤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서울의 야경이 창문에 비쳤다. 수천 개의 불빛들. 그 각각의 불빛 뒤에는 누군가의 인생이 있을 것이었다. 누군가의 선택, 누군가의 투쟁, 누군가의 꿈. 민준도 이제 그 수천 개의 불빛 중 하나가 되려고 했다. 유명한 배우로서의 밝은 불빛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자신의 것인 작은 불빛으로.
“고마워요.”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카페의 모든 소리—커피 머신의 웅웅거림, 바리스타의 발걸음, 먼 곳의 웃음—이 그 감사의 말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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