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59화: 손가락이 멈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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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9화: 손가락이 멈출 때

우리가 들어왔을 때, 카페의 공기가 변했다.

민준은 그것을 감각으로 느꼈다. 온도가 아니라, 기압이 아니라, 뭔가 더 깊은 것. 마치 누군가가 방의 한쪽 모서리에 무거운 물건을 놓아둔 것처럼. 자동문이 열렸고, 민준은 입구를 보지 않았지만, 준호의 몸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깨의 긴장. 호흡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 속에 담긴 것—책임감이 더욱 짙어지는 것.

민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카페 입구에 서 있었다.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검은색 스웨트팬츠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화장이 없었다. 어두운 눈동자. 그리고 손—손가락이 자신의 옆구리 근처에서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리듬을 치고 있었다. 마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어폰은 없었다.

우리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천천히. 마치 자신이 이 공간에 온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계속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 움직임이 민준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준호가 일어났다. 자연스럽지만, 명확한 신호였다. 이제 시작이라는 신호. 민준도 따라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떨렸다. 마치 자신의 몸이 이 순간을 거절하고 있는 것처럼.

“안녕.”

우리가 말했다. 매우 작은 목소리로. 인사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민준과 준호도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앉아.”

준호가 말했다. 명령이 아니라, 제안이었지만, 그 속에는 누군가의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앉아야 한다는 필요. 아니,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앉아야 다음 말을 할 수 있다는 필요.

우리가 테이블 쪽으로 움직였다. 민준의 맞은편이 아니라, 준호의 옆—마치 자신이 준호에게 더 가까워야 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그리고 앉았다. 손가락의 리듬은 멈추지 않았다. 테이블 위로 옮겨졌다. 탁탁탁. 그 소리.

민준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이전에 들었던 비슷한 리듬을 떠올렸다. 연습실에서. 무대 대기실에서.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손가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손가락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치는 리듬. 불안함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

“위약금 이야기는 들었어?”

준호가 물었다. 우리를 보면서.

“응.”

우리가 대답했다. 손가락의 리듬은 계속됐다.

“그게 전부야?”

준호가 물었다.

“민준이 말한 게 전부라면, 그게 전부야.”

우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뭔가를 감추고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이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의 거짓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는 우리의 거짓을 볼 수 있었다.

“더 있어?”

민준이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것은 작은 변화였지만, 카페의 모든 에너지가 그 멈춤에 집중됐다. 손가락이 멈춘다는 것은, 뭔가가 시작되려고 한다는 신호였다. 마치 음악이 쉼표를 만나기 직전처럼.

“민준이, 내가 너한테 한 말 기억해?”

우리가 물었다. 민준을 보면서. 처음으로 직접 눈을 맞추면서.

“어떤 말이요?”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질문의 의도가 뭔지를.

“넷플릭스 역할 이야기.”

우리가 말했다.

“응.”

민준이 대답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우리가 물었다.

민준은 기억했다. 카페에서. 창밖의 강남역이 보이는 그 테이블에서. 우리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기사. “전직 배우 이수진, 신인 배우를 상대로 한 성희롱 혐의 합의”라는 헤드라인. 그리고 그 다음의 대화들. 우리의 친구. 합의금. 그 모든 것.

“응, 기억해요.”

민준이 말했다.

“그런데 내가 그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우리가 말했다.

“뭔데요?”

민준이 물었다.

우리는 한 번 숨을 깊게 쉬었다. 마치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기 전처럼.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우리가 말했다.

“네?”

민준이 물었다.

“이수진이 성희롱을 한 상대. 그 신인 배우. 그게 누구였는지.”

우리가 다시 말했다.

카페의 모든 소리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배경음악도, 사람들의 수다도, 카운터의 에스프레소 머신도. 세상 전체가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알고 싶어요.”

민준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떨렸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 전체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손목을 잡고 흔들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은 나였어.”

우리가 말했다.

민준의 세상이 멈췄다. 정말로. 마치 누군가가 시간을 멈춰버린 것처럼. 호흡도, 심장도, 모든 것이.

“뭐라고?”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귀가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내가 이수진의 피해자야.”

우리가 말했다.

준호가 민준의 쪽을 봤다. 확인하는 표정으로. 민준의 반응이 어떻게 될지를 예상하는 것처럼. 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럼… 그럼 회사는?”

민준이 물었다.

“합의했어. 정식으로. 돈으로. 그리고 비밀유지계약서로.”

우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민준이 물었다.

“그리고 난 계속 배우를 하고 있어. 이수진 밑에서. 매일 그 사람을 보면서. 촬영장에서, 회의실에서, 계단에서. 그리고 넌…”

우리가 말했다. 하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뭐요?”

민준이 물었다.

“넌 그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되려고 했어. 넷플릭스 역할을 받으면서.”

우리가 완성했다.

그 말이 민준의 몸을 관통했다. 마치 화살처럼. 자신이 받게 될 역할이, 자신이 원했던 기회가, 실제로는 자신을 이수진의 소유물로 만드는 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도, 이미 그 소유물 안에 있다는 것.

“그럼 우리가…”

민준이 말했다.

“응. 우리가 같은 사람 밑에 있게 되는 거야.”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게 왜…”

민준이 물었다.

“왜 중요한지? 왜냐하면…”

우리가 천천히 말했다.

“왜냐하면 이수진은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넘이 나를 도와주고, 내가 너를 도와주고, 이렇게 연결되는 것. 그걸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럴 때 사람들은…”

우리가 말했다.

“뭐해요?”

민준이 물었다.

“사람들은 쐐기를 박아. 사이사이에.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그걸 분리시켜.”

우리가 대답했다.

그 말이 민준의 가슴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 생활을 4년을 하면서 본 그 모든 것들. 선후배들이 갑자기 인사를 하지 않게 되는 일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거리를 두게 되는 일들. 그리고 그 뒤에는 항상, 항상 누군가가 있었다. 그 “누군가”가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권력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럼… 그럼 우리는 뭐해요?”

민준이 물었다.

우리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을 다시 들었다. 테이블 위에서. 리듬을 다시 쳤다. 탁탁탁. 하지만 이번에는 그 리듬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불안함이 아니라, 결단의 리듬이었다.

“넷플릭스 역할을 받지 마.”

우리가 말했다.

“뭐라고?”

민준이 물었다.

“받지 마. 거절해.”

우리가 다시 말했다.

“거절? 그런데…”

민준이 말했다.

“위약금?”

우리가 물었다.

“응.”

민준이 대답했다.

“그 위약금이 뭔지 알아? 그건 너를 가둬두기 위한 거야. 그 계약이 뭔지 알아? 그건 너를 통제하기 위한 거야.”

우리가 말했다.

“하지만…”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뭐? 돈? 성공? 유명함?”

우리가 물었다.

“전부다.”

민준이 대답했다.

“응. 전부다. 그런데 그 전부가 너를 행복하게 해줄까?”

우리가 물었다.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성공을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것인가. 두 가지는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계속 그 둘을 혼동하고 있었다.

준호가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볍게. 하지만 명확하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신호로.

“이수진이 너한테 뭘 했어?”

민준이 우리에게 물었다.

“뭐를? 성희롱이지.”

우리가 대답했다.

“어떻게?”

민준이 물었다.

우리는 한 번 더 숨을 깊게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촬영장에서. 조명 조정할 때. 아무도 없을 때. 그 사람이 내 몸을 만졌어. 그리고 말했어. 내가 배우가 되고 싶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게 바뀌는 과정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이 물었다.

“그리고 나는 받아들였어.”

우리가 대답했다.

그 순간, 민준은 우리를 정확하게 봤다. 처음으로. 그 뒤에 숨겨진 모든 것을. 회색 후드티 아래의 몸. 화장이 없는 얼굴. 어두운 눈동자. 그리고 손가락의 끝없는 리듬. 모두가, 모두가 그 수용의 흔적이었다.

“그럼 우리는…”

민준이 말했다.

“우리는 뭐든 할 수 있어. 왜냐하면 우린 이미 잃을 게 없으니까.”

우리가 말했다.

“잃을 게 없다고?”

민준이 물었다.

“응. 나는 이미 잃었어. 나의 몸. 나의 안전. 나의 존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주는 구조. 계약서. 돈. 그리고 침묵.”

우리가 말했다.

“그럼 넘이 뭐해?”

준호가 물었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는 준호를 봤다. 처음으로 직접 눈을 맞추면서.

“변호사를 찾아. 그리고 내 케이스를 다시 열어. 비밀유지계약서는 불법이거든. 특히 성희롱을 덮기 위한 것은.”

우리가 말했다.

“그럼 회사는?”

민준이 물었다.

“폭발할 거야. 당연히. 이수진도,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우리가 대답했다.

“그럼 우리는?”

민준이 물었다.

“우린 제대로 된 무대에 설 거야. 폭발 속에서. 그리고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가 될 거야.”

우리가 말했다.

카페의 배경음악이 다시 바뀌었다. 피아노 소나타. 강렬한 멜로디.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모든 절망을 건반에 쏟아내는 것처럼.

민준은 우리의 손가락을 봤다. 여전히 테이블 위에서 리듬을 치고 있는 손가락. 하지만 이번에는 그 리듬이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안함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민준의 가슴도 흔들었다.

“난 어떻게 해야 돼요?”

민준이 물었다.

“넷플릭스 역할을 거절해. 그리고 회사를 나가. 그리고 나와 함께 변호사를 찾아.”

우리가 말했다.

“거절하면 위약금이…”

민준이 말했다.

“위약금 같은 건 없어. 너가 아직 계약을 안 했으니까. 이수진은 넷플릭스 역할을 미끼로 너를 잡으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아직 공식 계약은 안 된 상태야.”

우리가 말했다.

“확실해요?”

민준이 물었다.

“응. 나는 법적으로 확인했어. 변호사한테.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말했다.

“우리는?”

민준이 물었다.

“우리는 이미 준비됐어.”

우리가 대답했다.

그 순간, 준호는 테이블 아래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화면을 켰다. 메모장이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변호사의 연락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날짜가 있었다. 어제 날짜. 준호가 이미 모든 준비를 했다는 신호였다.

“형은 언제부터…”

민준이 물었다.

“우리가 카페에 온 순간부터.”

준호가 대답했다.

민준은 그 말을 처리했다. 자신이 준호와 우리와 함께 앉아서 불안해하고 있을 때, 준호는 이미 변호사를 찾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자신이 결정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이 준비돼 있었다는 것.

“그럼 지금은?”

민준이 물었다.

“지금은 결정해.”

우리가 말했다.

“뭐를?”

민준이 물었다.

“넷플릭스 역할을 받을 거냐, 안 받을 거냐. 이수진의 함정에 들어갈 거냐, 아니면 나올 거냐. 그리고 우리와 함께할 거냐, 혼자 할 거냐.”

우리가 말했다.

민준은 그 세 가지 질문을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질문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택하는 것. 지금까지처럼 혼자 버티는 사람인지,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싸우는 사람인지를.

“저는…”

민준이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카페의 자동문이 다시 열렸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바람만 들어왔다. 강남역의 한밤중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이 카페의 배경음악을 흔들었다.

민준은 그 바람을 느꼈다. 자신의 얼굴에. 그리고 그 감각이 자신에게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를 결정하라는 신호처럼.

“저는 거절할 거예요.”

민준이 말했다.

우리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번에는 영구적으로.

“넷플릭스 역할을요?”

준호가 물었다. 확인하는 목소리로.

“응. 그리고 더 이상 이수진 밑에서 일하지 않을 거예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럼…”

준호가 말했다.

“그럼 우리가 뭐하는지 알아요?”

민준이 물었다. 우리를 보면서.

“뭐?”

우리가 물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무대에 선다고 했잖아요. 폭발 속에서. 그럼 그 폭발이 뭔데요? 언제 터질 거 같아요?”

민준이 물었다.

우리는 천천히 웃었다. 처음으로. 그 웃음에는 뭔가 절망적이면서도 동시에 해방적인 것이 있었다.

“내일.”

우리가 대답했다.

“내일?”

민준이 물었다.

“응. 내일 아침에 변호사와 함께 회사에 갈 거야. 그리고 이수진을 만날 거야. 그리고 그 사람 앞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할 거야.”

우리가 말했다.

“그럼…”

민준이 말했다.

“그럼 우린 도움이 필요해.”

우리가 말했다.

“뭐?”

민준이 물었다.

“너의 증언. 넷플릭스 역할을 미끼로 너를 잡으려고 했던 증거. 그리고 너의 결정. 너도 나와 함께 변호사를 만나고, 너도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우리가 말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했다. 자신이 더 이상 지켜만 보는 배우가 아니라, 이 싸움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첫 주연 역할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좋아요.”

민준이 말했다.

“정말?”

우리가 물었다. 놀라운 목소리로.

“응.”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테이블 아래에서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변호사의 번호로 전화를 거는 것 같은 시늉을 했다. 실제로는 거지 않았지만, 그 시늉만으로도 모두가 이해했다.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정확하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

카페의 배경음악이 또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재즈였다. 슬픈 멜로디지만, 어딘가 희망적인 사운드.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는 손. 하지만 이번에는 떨리지 않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손목을 잡아주고 있는 것처럼. 아니, 정확하게는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가.

그리고 그 옆에는 준호도 있었다.

카페의 시계가 오전 10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44분 만에 일어났다. 민준의 세상을 완전하게 바꾸는 44분.

그리고 민준은 알고 있었다. 내일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것. 아니, 더 정확하게는 모든 것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

자신의 진정한 무대가.


[자동 검토 대기 중]

# 폭발 전야

카페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조명이 우리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후 10시, 서울 강남의 한 조용한 카페. 이곳은 우리가 선택한 장소였다. 아무도 우리를 찾지 못할 만큼 외진 곳. 하지만 동시에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곳. 증거가 남을 수 있는 장소.

민준이 마시던 아메리카노 잔이 테이블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준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게 훈련받았으니까.

“우리가 제대로 된 무대에 선다고 했잖아요.”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다섯 달간 쌓여온 분노와 두려움이 들어있었다. 테이블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나는 계속했다.

“폭발 속에서라고 했어요. 그럼 그 폭발이 뭔데요? 정확히 언제 터질 것 같아요?”

민준의 눈이 나를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는 검은 호수처럼 깊었다. 공포와 결의가 뒤섞인 표정. 그는 아직도 결정을 미루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이 모든 것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악몽이기를 바라고 있는 듯했다.

나는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는 카페의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턱선은 단단했다. 준호는 이미 결정을 내린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민준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매우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정말로 처음이었다. 이 모든 악몽 같은 시간 동안 내가 웃은 것은. 하지만 이 웃음에는 뭔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마치 절망의 맨 끝에 도달한 사람이 내는 웃음 같았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해방감 같기도 했다.

“내일.”

나는 대답했다. 단 한 단어. 하지만 그 한 단어에는 세상을 뒤집을 무게가 담겨있었다.

“내일?”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응. 내일 아침에 변호사와 함께 회사에 갈 거야. 그리고 이수진을 만날 거야.”

나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카페의 배경음악은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 같은, 그런 종류의 노래. 하지만 지금 이 공간에는 사랑이 아니라 전쟁의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 앞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할 거야. 지난 다섯 달 동안 일어난 모든 것들. 그 모든 거짓말들과 협박들과 약속들. 모든 것.”

나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 관절이 하얀색으로 드러났다.

“그럼…”

민준이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그럼 우린 도움이 필요해.”

나는 말했다. 이제 확신을 가지고.

“뭐?”

민준이 물었다.

“너의 증언. 그들이 넷플릭스 역할을 미끼로 너를 잡으려고 했던 증거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너의 결정. 너도 나와 함께 변호사를 만나고, 너도 그 이야기를 하는 것. 너도 이 싸움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내가 말을 마쳤을 때, 카페는 조용해졌다. 배경음악까지도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그런 조용함. 오직 우리 세 사람의 호흡 소리만 들렸다.

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정확하게 이해했다. 자신이 더 이상 지켜만 보는 배우가 아니라는 것. 이제 자신도 이 싸움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첫 주연 역할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아이러니했다. 그가 원하던 주연 역할은 이런 형태로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무대는 방송국이 아니라 법정이 될 것이고, 관객은 시청자가 아니라 판사와 변호사들이 될 것이다.

“좋아요.”

민준이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정말?”

내가 물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응.”

민준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더 크게.

준호가 움직였다. 테이블 아래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고 어떤 번호를 찾는 시늉을 했다. 변호사의 번호. 실제로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늉만으로도 우리 모두가 이해했다.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정확하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카페의 배경음악이 또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재즈였다. 색소폰의 슬픈 음색. 하지만 그 슬픔 속에는 어딘가 희망적인 것이 있었다. 마치 밤이 가장 깊을 때 새벽이 가장 가까워진다는 것처럼.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는 손. 하지만 이제는 떨리지 않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손목을 잡아주고 있는 것처럼. 아니, 정확하게는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였다.

나는 민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을 나의 손가락 사이로 끼웠다. 따뜻했다. 떨리고는 있었지만, 따뜻했다.

그리고 준호는 테이블 다른 쪽에서 우리 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세 개의 손. 한 개의 운명.

카페의 시계가 오전 10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지금은 밤 10시 47분이었다. 오후 10시 47분. 이 모든 것이 44분 만에 일어났다. 44분 만에 민준의 세상을 완전하게 바꾸는 결정이 내려졌다.

나는 시계를 바라봤다. 초침이 똑딱거렸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민준은 알고 있었다. 내일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아니, 더 정확하게는 모든 것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진정한 무대가.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을 것이다. 조명도 없을 것이고, 음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무대일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정말로 들릴 수 있는 무대.

카페의 시간은 계속 흘렀다.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밤은 계속 깊어졌다.

내일은 반드시 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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