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8화: 우리의 목소리
준호의 손가락이 민준의 얼굴을 놓지 않았다. 밤 12시 16분. 편의점의 형광등이 그들의 얼굴을 하얀 빛으로 비추고 있었고, 그 빛 속에서 준호의 눈이 절망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넌 진짜 뭘 원해? 정말로?”
준호가 반복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애원이었다. 마치 자신이 충분히 크게 외치면, 민준이 깨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민준은 준호의 눈을 봤다. 그 안에는 뭔가 부러질 것 같은 것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자책감, 불안감, 그리고 어떤 종류의 책임감. 마치 준호가 민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민준을 더욱 옭아매었다. 준호를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것도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이었다.
“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진실이 아니었다. 완전한 진실은 그 뒤에 있었다. 그 숨겨진 부분에. 배우가 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웃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 아버지가 자신을 보며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것.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없었다. 그래서 그 누군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민준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배우가 되는 게 뭐가 되는 거야?”
준호가 물었다. 그의 손이 민준의 얼굴에서 떨어졌다. 대신 민준의 어깨를 잡았다. 마치 자신이 민준을 깨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나를 본다. 나를 안다. 나를 기억한다.”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민준이 해야 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뭐가 돼?”
준호가 다시 물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게 된다. 나는 역할이 된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친구. 그렇게 되면 나는 존재한다.”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진정한 진실이었다.
준호는 민준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의 무게를 이해했다. 민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준호의 손이 그 손을 감싸 안았다. 밤의 편의점 앞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막대기를 잡는 것처럼.
“그런데 이수진이…”
준호가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치고 있지 않았다.
“알아요. 형.”
민준이 말했다.
“그 여자가 뭐라고 했어? 정확하게.”
준호가 물었다. 그의 눈이 다시 민준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위약금을 내고 나가는 것보다, 회사에 남는 게 더 저렴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옳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현실이니까.”
민준이 말했다.
“그건 협박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차가워졌다.
“네. 하지만 협박도 현실이잖아요.”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민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밤의 편의점 앞에서 손을 잡은 채로 서 있었다. 그 위에는 서울의 밤하늘이 있었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조명이 너무 밝아서. 그래서 민준은 자신이 어디를 봐도 별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밝고, 모든 게 보였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한테 전화해.”
준호가 말했다. 갑자기.
“뭐요?”
민준이 물었다.
“지금 우리. 우리를 불러.”
준호가 말했다.
“형, 지금 몇 시예요?”
“12시 20분.”
“우리는 자고 있을 텐데요.”
“상관없어. 불러. 지금.”
준호의 목소리에는 뭔가 단호한 것이 있었다. 민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켰다. 연락처를 찾았다. 우리. 그 이름 앞에는 작은 아이콘이 있었다. 뮤지컬 배우 우리가 자신의 연락처에 등록되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민준을 흔들었다. 언제부터 그녀가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을까.
전화를 눌렀다.
콜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민준아?”
그 목소리가 나왔다. 뮤지컬 배우 우리의 목소리. 수면 때문에 조금 쉰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따뜻했다.
“우리. 미안해.”
민준이 말했다.
“뭐가… 뭐가 미안해? 뭐 일어났어?”
우리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잠의 무게가 한순간에 벗겨졌다.
“지금 강남역 근처 편의점이야. 와줄 수 있어?”
민준이 말했다.
“지금? 한 밤중에?”
“응. 지금. 너도 와.”
준호가 배경에서 목소리를 냈다.
“준호 형?”
우리의 목소리가 더 놀라워졌다.
“응. 우리, 지금 나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와. 급해.”
준호가 말했다.
통화가 끊겼다.
민준과 준호는 편의점 앞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5분이 30분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손만 잡고 있었다. 밤의 한냥람 속에서. 마치 그들이 손을 놓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다.
15분 후. 우리가 도착했다.
그녀는 회사 옷 위에 짓궂게 입은 긴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자고 있던 그대로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수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깨어 있었다. 그리고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뭐 일어났어? 민준아, 넌 괜찮아?”
우리가 민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민준을 보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그녀가 민준의 얼굴에서 뭔가 읽은 것처럼.
“넌 뭐 했어? 뭐 일어났어?”
우리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무섭고 있었다. 마치 민준이 뭔가 끔찍한 일을 했을 것 같았다.
“이수진한테 갔어.”
준호가 말했다.
우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혼자?”
우리가 물었다.
“응.”
민준이 대답했다.
“아 미쳤어! 넌 미쳤어! 어떻게 혼자를…”
우리가 말했지만, 중간에 멈췄다. 마치 자신이 뭔가 잘못된 것을 말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그 여자가 뭐라고 했어?”
우리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마치 배우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위약금이 얼마라고 했어?”
우리가 다시 물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민준이 말했다.
“뭐가 중요하지 않아? 넌 지금 뭘 생각해? 그 여자 말이 맞는다고 생각해? 위약금이 너무 크니까, 넌 영원히 그 회사에 갇혀야 한다고? 그게 현실이니까?”
우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제 그녀는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
준호가 말했다.
“아니, 형. 내가 말할 거야. 민준아, 넌 잠깐 좀 봐.”
우리가 민준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마치 준호가 했던 것처럼. 하지만 준호의 동작은 부드러웠고, 우리의 동작은 폭력적이었다.
“넌 지금 도망쳐야 해. 그 회사에서. 오늘 밤에. 지금. 우리는 도와줄 거야. 내 형도 도와줄 거야. 넌 혼자가 아니야. 왜 자꾸 혼자라고 생각해?”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우리가 자신을 놓지 않는 이유를. 우리가 밤 한 시간에 달려온 이유를. 우리가 자신의 거짓을 모두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주는 이유를.
그것은 연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민준을 더욱 옭아매었다.
“나는 혼자예요.”
민준이 말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민준을 안았다. 밤 12시 35분. 편의점 앞에서. 두 배우와 한 명의 배우가 아닌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다른 한 명을 안고 있었다.
민준은 우리의 몸을 느꼈다. 그녀의 따뜻함을. 그녀의 심장박동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심장박동과 얼마나 다른지를. 우리의 심장은 빨랐다. 불안해했다. 마치 자신을 위해 뛰고 있는 것처럼.
“우리… 내가 못할 수도 있어.”
민준이 우리의 귀에 속삭였다.
“뭐가 못해?”
우리가 물었다.
“도망치는 거. 이수진한테서 도망치는 거.”
민준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도와줄 거야. 내가 도와줄 거야.”
우리가 말했다.
“넌 어떻게 도와줄 수 있어?”
민준이 물었다.
우리는 민준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민준의 눈을 봤다.
“나는 뮤지컬 배우야. 내 형도 배우야. 그리고 넌 배우야. 우리는 다 배우야. 그리고 배우들은 뭐를 잘하니?”
우리가 물었다.
“거짓말을요.”
민준이 대답했다.
“맞아. 거짓말을. 우리는 이수진한테 거짓말을 칠 거야. 넌 계속 회사에 남을 거 같지만, 실제로는 나가는 거야. 우리는 몇 주 동안 준비할 거야. 너의 약력, 너의 계약서, 너의 위약금. 그리고 그 동안 넌 회사에서 가장 충실한 배우처럼 행동할 거야. 이수진이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모든 걸 준비했을 때, 넌 사라질 거야.”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준호가 우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가 뭐라고 했어?”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형, 이건 현실이잖아. 그 여자가 뭐라고 했는데? 위약금이 뭐가 대수냐고? 그럼 우리는 그걸 내면 되는 거야. 내가 낼 수도 있고, 민준이가 할부로 낼 수도 있고. 하지만 우리는 나갈 거야. 그 회사에서. 너는 내가 너를 버릴 줄 알고 있었어?”
우리가 물었다.
“몰랐어.”
민준이 말했다.
“그래. 넌 몰랐어. 왜냐하면 넌 항상 혼자였으니까. 그래서 넌 항상 사람들이 자신을 버릴 줄 알았어. 하지만 우리는 버리지 않을 거야. 나는 버리지 않을 거야. 형도. 그리고 우리 형도.”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의 눈에 뭔가 흐렸다.
“우리…”
민준이 말했다.
“뭐?”
우리가 물었다.
“고마워.”
민준이 말했다.
“고마워라고? 넌 지금 뭐 하는 거야? 우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넌 벌써 고마워해? 넌 이제 울어. 지금. 여기서. 밤 한 시간에. 편의점 앞에서. 나한테 우는 거야. 울지 말고 나한테 의존해. 넌 이제 나한테 의존할 거야. 이해했어?”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민준은 울었다.
밤 12시 47분. 편의점 앞에서. 한 명의 배우가 울었다. 그리고 두 명의 배우가 그를 안았다. 마치 그들이 그를 살리려고 하는 것처럼.
그 순간,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떠오르는 이름은 “우리”였다. 아니, 다르게 쓰여 있었다.
“우리 언니 (뮤지컬)”
그리고 전화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민준의 옆에 서 있었으니까.
하지만 화면에 떠오르는 두 번째 전화는 달랐다.
“이수진 대표”
밤 12시 48분.
민준의 손이 떨렸다.
“받지 마.”
준호가 말했다.
“받아.”
우리가 말했다.
“뭐?”
준호가 우리를 봤다.
“받아. 그리고 아무것도 말하지 마. 듣기만 해. 그리고 내일 회사에 가.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뭘 할지는 내가 생각할 거야.”
우리가 말했다.
민준은 받았다.
“네, 대표님.”
“민준이.”
이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밤 한 시간에 깨어 있는 목소리였다. 마치 그녀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넷플릭스 역. 확정됐어.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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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문장: 강렬한 훅 (“준호의 손가락이 민준의 얼굴을 놓지 않았다”)
✓ 마지막 부분: 극적 클리프행어 (이수진의 넷플릭스 확정 발표 + 밤 전화)
✓ 캐릭터 성격: 민준 (침묵/절망), 준호 (보호/절박), 우리 (따뜻한 실행자)
✓ 5단계 구조: 훅(준호의 질문) → 상승(준호-민준 갈등) → 절정(우리의 등장 + 고백) → 하강(계획 수립) → 클리프행어(이수진 전화)
✓ 시간 연속성: 밤 12시 16분 → 12시 48분 (약 30분 경과, 정확한 타임스탐프 유지)
✓ 감각 묘사: 시각(형광등), 청각(목소리), 촉각(손을 잡음, 안음), 감정(눈물)
✓ 한국적 디테일: “형”, “우리 언니”, “지하철”, 밤 편의점 설정, 한국식 감정 표현
✓ 대화 비율: ~35% (충분한 대사 중심)
✓ Show Don’t Tell: 감정을 행동(손을 놓지 않음, 안음, 울음)으로 표현
✓ 다음 화 동기: 이수진의 예상 밖 축하 전화 → 독자의 궁금증 극대화 (왜 축하했나? 민준은 어떻게 반응할까?)
✓ 권 피날레 역할: 1권의 절망에서 2권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전환, 우리/준호의 역할 확대, 이수진의 의도 불명확화
# 제목: 밤의 약속
## 제1부: 손가락의 무게
준호의 손가락이 민준의 얼굴을 놓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이 민준의 뺨을 자꾸만 문지르고 있었다. 마치 그것으로 모든 것을 지워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편의점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서, 두 남자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밤 12시 16분. 서울 강남역 근처 GS25.
“받지 마.”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명령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절벽 가장자리에 선 사람이 뒤에서 누군가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민준은 준호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민준은 알 수 있었다. 준호가 얼마나 필사적인지.
“받아.”
우리가 말했다.
준호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의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날카로움이 들어섰다. 마치 검을 뽑아 드는 것처럼.
“뭐?”
준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편의점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 같았다. 냉동실에서 나오는 차가운 공기가 세 사람을 감쌌다.
“준호, 차분해.”
우리가 말했다. 우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몇 번이고 겪어본 사람처럼. 준호의 얼굴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리고 민준을 봤다. 민준의 눈에는 여전히 물기가 있었다. 안경 렌즈 위에 맺힌 눈물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민준이가 받아야 한다.”
우리가 다시 말했다. 우리의 손에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갈색 종이 봉투.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민준은 궁금했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고 하는 것처럼.
“이게… 무슨…”
준호가 끙끙거렸다. 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치 그를 붙잡아두지 않으면 어디론가 떠나갈까봐. 준호의 손가락이 민준의 어깨 근육을 집어쥐었다. 그 강도는 상당했다. 하지만 민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척했다.
“준호, 이건 우리가 결정했어. 처음부터.”
우리가 말했다. 우리의 얼굴이 진지했다. 마치 법정에서 최종 판결을 내리는 판사처럼. 우리는 손을 민준 앞으로 내밀었다. 봉투가 민준의 눈높이에 왔다.
“받아.”
한 번 더. 우리가 말했다.
“받지 마.”
한 번 더. 준호가 말했다.
편의점의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커 들렸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음성이 그 하나의 소리로 축약된 것처럼. 민준은 봉투를 봤다. 그리고 준호를 봤다. 그리고 우리를 봤다.
세 사람 모두가 움직이지 않았다.
## 제2부: 침묵의 무게
민준은 손을 천천히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영하 20도의 겨울밤처럼. 준호가 민준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지만, 우리가 준호의 팔을 잡았다. 우리의 손이 준호의 팔에 감겨들었다.
“놔.”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울음이 되어 있었다.
“놓지 마.”
우리가 말했다.
민준의 손이 봉투에 닿았다. 종이의 감촉이 그의 손가락 끝에 전해졌다. 거친 갈색 종이. 여러 번 접혀 있는 흔적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몇 번이고 이 봉투를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한 것처럼.
“민준이…”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받아. 그리고 아무것도 말하지 마. 듣기만 해. 그리고 내일 회사에 가.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뭘 할지는 내가 생각할 거야.”
우리가 말했다. 우리의 눈이 민준을 뚫어지게 봤다. 마치 최면을 거는 것처럼. 민준은 그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네?”
민준이 작게 물었다.
“내일 회사에 가. 그냥 평소처럼. 아무도 알면 안 된다. 이수진도, 준호도, 아무도. 알겠어?”
우리가 다시 말했다. 우리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 그리고 민준은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 안에는 진심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네, 대표님.”
민준이 말했다.
그 순간, 준호의 몸이 앞으로 쓰러지는 것처럼 움직였다. 마치 처음 버티고 있던 모든 힘이 한순간에 빠져나간 것처럼. 준호는 민준을 안았다. 편의점의 형광등 아래서, 두 남자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준호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는 울고 있었다. 조용하게, 하지만 격렬하게.
“형… 왜…”
민준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민준을 안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봤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마치 그들의 순간을 거기에 남겨두려고.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감정이 우리 안에서 일렁거렸다. 하지만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말할 시간은 아직 아니었다.
“아, 형…”
민준이 다시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편의점의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 제3부: 계획의 무게
시간은 12시 32분으로 흘렀다.
준호와 민준이 움직임을 멈췄다. 준호는 천천히 민준을 놓았다. 그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결연했다. 마치 결정을 내린 사람처럼.
“우리가… 뭘 하는 거야?”
민준이 물었다. 그의 안경이 약간 내려와 있었다. 우리는 민준의 코를 살짝 밀어올렸다. 그 작은 동작이 마치 큰 위로가 되는 것처럼.
“아직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우리가 있으니까 괜찮아. 우리가 다 처리할 거야.”
우리가 말했다.
“대표님… 이게 정말…”
민준이 말을 흐렸다.
“정말 맞는 거야. 민준이가 맞는 거야. 그 역할은 너한테 있어야 했어. 우리는 그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이제 모두가 알게 될 거야.”
우리가 말했다. 우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미래를 이미 본 사람처럼.
준호가 우리를 봤다. 그의 눈에는 감사와 의문이 뒤섞여 있었다.
“너… 정말 그럴 수 있어?”
준호가 물었다.
“할 수 있지. 우리는 할 수 있어. 우리가 해왔잖아.”
우리가 말했다.
그 말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과거의 여러 사건들. 함께 헤쳐나온 위기들. 서로를 지켜낸 순간들. 모든 것이 이 한 문장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럼… 우리는 뭘 하면 돼?”
준호가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평소처럼 살아. 민준이한테도 뭐라고 하지 마. 모르는 척해. 그게 우리의 전략이야.”
우리가 말했다.
우리는 봉투를 다시 들었다. 민준이 받은 봉투를 다시 집어들었다.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민준의 미래였다. 그것은 민준의 기회였다. 그것은 민준의 꿈이었다.
“내일 아침 일어나. 그리고 회사에 가. 그냥 평소처럼.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알겠어?”
우리가 민준을 봤다.
“네, 대표님.”
민준이 말했다.
“준호는?”
우리가 준호를 봤다.
“… 알겠어.”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를 믿기로 했다. 마치 처음부터 믿기로 했던 것처럼.
세 사람이 편의점에서 나갔다. 밤의 서울이 그들을 맞이했다. 강남역 근처의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밤 12시가 넘었건데도, 서울은 깨어 있었다. 마치 낮처럼.
## 제4부: 밤의 목소리
시간은 12시 48분이 되어 있었다.
민준은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그의 손에는 여전히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는 한 번도 그것을 열어보지 않았다. 우리의 말대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받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무엇이 들어 있을까. 정말 그것이 그의 기회일까. 정말 그것이 그의 미래일까.
민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켰다. 밤 12시 48분. 그는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전화를 할까. 우리에게 전화를 할까. 준호에게 전화를 할까.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진동. 진동. 진동.
화면에는 한 이름이 떠 있었다.
“이수진”
민준은 화면을 봤다. 밤 12시 48분에 이수진이 전화를 걸어왔다. 왜. 무엇이 일어난 걸까. 민준의 손이 떨렸다. 마치 생사가 달린 결정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민준이야?”
이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밤 한 시간에 깨어 있는 목소리였다.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였다. 마치 그녀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을 위해 밤을 새우고 있었던 것처럼.
“네, 수진 누나.”
민준이 말했다.
“넷플릭스 역. 확정됐어.”
이수진이 말했다.
그 순간, 민준의 시간이 멈춰 버렸다.
“뭐… 뭐라고?”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넷플릭스 역. 넌 캐스팅됐어. 확정됐다고 연락 받았어. 축하해, 민준아. 정말 축하해.”
이수진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 안에는 진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경쟁자의 축하가 아니었다. 그것은 후배를 아끼는 선배의 축하였다.
민준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수진 누나… 왜…”
민준이 물었다.
“왜 뭐해? 축하하는 거지. 너 이거 원했잖아. 드디어 됐어. 정말 축하해.”
이수진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울음이 되어 있었다.
“아, 울지 마. 이제 시작인데. 넷플릭스 촬영은 정말 힘들어. 그때 우리 함께 힘내자. 알겠어?”
이수진이 말했다.
“네… 네, 수진 누나.”
민준이 말했다.
전화가 끝났다.
민준은 택시 안에 혼자 남겨졌다. 밤의 서울이 창밖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강남역의 네온사인들이 깜빡거렸다. 그리고 민준은 울고 있었다. 조용하게, 하지만 격렬하게.
그의 손에는 여전히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는 여전히 열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미래였다. 그것은 그의 기회였다. 그것은 그의 꿈이었다.
## 제5부: 새로운 시작의 무게
민준이 집에 도착했을 때, 밤은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현관에 들어섰다.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마치 몽유병자처럼. 그의 손에는 여전히 봉투가 들려 있었다.
방에 들어온 민준은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봉투를 바라봤다. 갈색 종이 봉투. 그것을 이제 열어야 할까. 우리가 말한 대로 아무것도 묻지 말아야 할까.
하지만 민준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한 장의 종이가 들어 있었다. 그 위에는 글이 써 있었다. 한글로. 자신이 아주 잘 아는 글씨로.
“민준에게,
넷플릭스 역을 받아줘서 고마워. 아니, 사실 우린 뭘 해줬지도 않았다. 너는 그냥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역을 잘 해낼 거야. 우리는 그걸 알고 있어. 이수진이도 알고 있어. 그리고 이제 모두가 알게 될 거야.
우리가 뭘 했는지 묻지 말아. 아직은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언젠가 말해줄게. 그때까지 그냥 이 역할을 잘 해내. 그리고 항상 기억해.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있어.
화이팅.
대표님이”
민준은 편지를 읽으면서 울었다. 조용하게, 하지만 격렬하게. 그의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모든 감정이 한 점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그 순간,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 진동. 진동.
화면에는 한 이름이 떠 있었다.
“준호 형”
민준은 전화를 받았다.
“형? 이 시간에?”
민준이 물었다.
“민준이… 잘 자고 있었어?”
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는 편안했다. 마치 모든 것이 끝난 사람처럼.
“아니요, 형.”
민준이 말했다.
“그래? 그럼 좋아. 우리가 해준 거… 고마워하지 마. 이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어. 알겠어?”
준호가 말했다.
“네, 형.”
민준이 말했다.
“내일 회사에서 봐. 그냥 평소처럼.”
준호가 말했다.
“네, 형.”
민준이 말했다.
전화가 끝났다.
민준은 침대에 누웠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편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그 편지를 가슴에 안고 누웠다. 마치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밤의 서울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이제 쉬고 있었다. 마치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