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42화: 친구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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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2화: 친구의 이름

우리가 그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입이 열렸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목구멍에 무언가 걸려 있는 것처럼. 민준은 그 침묵을 기다렸다. 카페의 소음 속에서, 그 침묵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그 사람이 내 친구였어.”

우리의 목소리가 매우 작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작은 목소리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죄책감, 후회, 그리고 자신을 향한 분노.

민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의 손을 봤다. 테이블 위에서 떨리고 있던 손이 이제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가락들이 테이블의 가장자리를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을 붙잡고 있지 않으면 떨어져 내려갈 것 같은 움직임.

“이름이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썼다. 이 순간, 이 대화의 무게 앞에서, 반말은 너무 가벼워 보였다.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촉촉해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아직 흐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눈물도 우리를 배신한 것처럼. 마치 우리의 몸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지은이. 이름이 지은이야.”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우리의 얼굴이 확 무너졌다. 마치 자신이 누르고 있던 댐이 한순간에 터지는 것처럼. 하지만 여전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입가가 떨렸다. 입술이 아래위로 떨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견디려고 하는 사람의 입술.

“지은이는 나와 같은 해에 더스타에 들어왔어. 우린 라커룸에서 만났어. 그리고 우린 친구가 됐어. 진짜 친구. 뮤지컬 카페에서 만나고, 서로의 오디션에 가주고, 밤샜던 친구.”

우리가 다시 창밖을 봤다. 서울의 거리가 여전히 5월의 햇빛 속에 있었다. 버스가 지나갔다. 택시가 지나갔다. 사람들이 걸어갔다. 모두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삶들이 모두 다르지만,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 하지만 우리와 지은이는 그 길에서 멈춰 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이수진이가 지은이를 부렀어.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고. 극영화야. 지은이의 나이대에 딱 맞는 역할이라고. 지은이는 너무 좋아했어.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갔어.”

민준의 손가락이 테이블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찾으려고 더듬거리는 움직임.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촬영 현장에서 뭐가 있었어요?”

민준이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이수진이가 지은이를 혼자 남겨뒀어. 나머지 스태프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동안. 그리고 그 시간에…”

우리가 말을 멈췄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여러 번. 마치 자신의 입이 그 말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처럼.

“지은이는 나한테 전화했어.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됐어. 지은이가 나한테 전화한 거 자체가 SOS였던 거야. 근데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어.”

우리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더 심해졌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내 오디션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뮤지컬 오디션. 내 인생이 달린 오디션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전화를 받지 않았어. 그리고…”

우리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민준이 물었다.

“그리고 지은이는 나한테 계속 전화했어. 전화, 문자, 카톡. 모두 무시했어. 왜냐하면 나는 오디션 준비에만 집중하고 싶었거든. 그리고 그 오디션에서 떨어졌어.”

우리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울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혐오의 표현이었다.

“나는 오디션에 떨어졌고, 지은이는 이수진이에게 성추행을 당했어. 그리고 나는 그걸 알게 됐어. 지은이가 나한테 모든 걸 말했을 때. 침대에 누워서 떨리면서 말했을 때.”

카페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또 울었다. 매우 크게.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지은이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우리가 민준을 봤다. 그 눈빛이 민준을 꿰뚫고 있었다.

“나는 지은이한테 ‘이수진이가 그런 사람이야. 이것도 이 업계의 일부야. 넌 견뎌야 해’라고 했어. 나는 지은이에게 그렇게 말했어. 내 친구한테. 성추행을 당한 내 친구한테.”

민준은 그 말을 듣고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지금 들은 것을 처리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나중에 나는 지은이한테 ‘합의를 해야 해. 돈을 받고 합의를 해야 경력이 남아’라고 했어. 나는 지은이에게 그렇게 말했어. 마치 지은이가 뭔가 물건을 팔고 있는 것처럼. 마치 지은이의 몸과 영혼이 뭔가 거래의 대상인 것처럼.”

우리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그리고 지은이는 내 말을 들었어. 지은이는 합의를 했어. 그리고 지은이는 이 업계를 떠났어. 모든 SNS를 지웠어.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어. 그리고 사라졌어.”

“언제부터요?”

민준이 물었다.

“3년 전. 정확히는 3년 7개월 전.”

우리가 대답했다. 마치 그 기간을 매일매일 세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지은이를 찾지 못했어. 지은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는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모르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페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소리도, 사람들의 웃음도, 컵이 테이블에 내려지는 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우리의 목소리뿐이었다.

“그리고 넌 내가 지은이에게 해준 모든 것을 받으려고 해. 넌 내가 지은이를 배신한 것을 모르고 있어. 그리고 넌 같은 길 위에 서 있어. 이수진이 밑에서. 이수진이의 손가락 위에서.”

우리가 손을 뻗어 민준의 팔을 다시 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잡았다. 마치 민준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너한테 말해줘야 했어. 나는 지은이를 버렸으니까, 적어도 넌 버리지 말아야 하니까. 적어도 넌 다른 길을 가야 하니까.”

민준은 우리의 눈을 봤다. 그 눈 속에는 눈물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대신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분노의 불. 그리고 그 불이 민준을 태우려고 하고 있었다.

“당신은 왜 지은이를 찾지 않았어요?”

민준이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높은 목소리로.

우리의 얼굴이 한순간에 찌그러졌다.

“찾지 않은 거 아니라, 못 찾은 거야. 지은이는 완전히 사라졌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나는…”

우리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 겁이 났어. 지은이를 만나면, 지은이가 나를 어떻게 볼지 몰라서. 지은이가 나를 혐오할지도 몰라서. 그래서 나는 도망쳤어. 나는 지은이를 두 번 버렸어. 한 번은 그때, 그리고 한 번은 지금.”

민준은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자신에게 도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리가 다른 세계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카페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 누군가의 웃음이 다시 들렸다. 5월의 햇빛이 여전히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모든 것이 다르게 들렸다.

“이수진이가 저한테 준 그 계약은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낮고 침착했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를 결정한 것처럼.

“모르겠어. 하지만 그건 덫이라는 건 확실해. 그리고 그 덫 속에는 누군가의 뼈가 남아 있어.”

우리가 대답했다.

“제 친구가 빠진 덫이군요.”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은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매우 무거운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팔을 놓았다. 민준은 카페 밖으로 나가기 위해 돌아섰다.

“민준이.”

우리가 불렀다.

민준은 멈췄다.

“이수진이가 너한테 뭐라고 할 거야. 그 계약 내용이 뭐든 간에, 이수진이는 그게 너의 꿈이라고 할 거야. 그게 너의 기회라고 할 거야. 그리고 넌 그걸 거절할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넌 너무 오래 기다렸으니까. 너무 오래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니까.”

민준은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카페를 나갔다.

밖의 공기가 안의 공기와 다르게 느껴졌다. 더 시원했다. 아니면 더 차가웠다. 민준은 구분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분간이 안 되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문자를 했다. “형, 지금 뭐 하세요?”

준호의 답이 즉시 왔다. “회사 근처. 뭐, 문제 있어?”

민준은 회사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5월의 햇빛이 자신의 머리를 따뜻하게 데웠다. 하지만 그 따뜻함도 지금은 차가워 보였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건물이 보였다. 검은색과 회색의 모던한 건물. 그 안에 자신의 꿈이 있다고 생각했던 건물. 그 안에 자신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던 건물.

하지만 지금 그 건물은 다르게 보였다. 마치 거대한 입을 벌리고 누군가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무언가처럼. 마치 자신이 그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준호가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민준을 보자 담배를 치웠다.

“뭐야, 무슨 일이야?”

준호가 물었다.

민준은 준호를 봤다. 그 얼굴이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 그 얼굴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처럼 무언가 깊은 상처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처럼 자신의 친구를 배신했던 건 아닐까.

“형, 저 위에…”

민준이 건물을 가리켰다. 높이 솟은 그 건물. 그 건물의 최상층에 있는 이수진이의 사무실.

“저기에 우리 대표가 있잖아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누구예요?”

준호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마치 민준의 질문이 어떤 신호였던 것처럼. 마치 준호가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왜 갑자기…”

준호가 말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그리고 다시 담배를 꺼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준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민준은 그 손을 봤다. 그 떨리는 손. 그 손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 뭔가 말할 게 있어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어요. 뭔가… 내가 알아야 할 뭔가가 있어요.”

민준이 말했다.

준호는 천천히 민준을 봤다. 그 눈빛에는 무언가 깊은 것이 담겨 있었다. 마치 우물처럼 깊은 것. 그리고 그 우물 속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민준이, 넌 정말로 알고 싶어? 일단 그 계약을 받아들이고, 나중에 알고 싶어? 아니면 지금 알고 싶어?”

준호가 물었다.

“지금 알고 싶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준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천천히 내쉬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5월의 햇빛 속에서 연기가 반짝였다.

“그럼 따라와. 내가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준호는 더스타의 건물로 걸어갔다. 민준도 따라갔다. 그 건물의 입 속으로. 자신이 무엇을 만날지도 모르면서.


12,847자

# 확장된 화면: 진실의 문턱

## 제1부: 예감

민준의 손가락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자마자, 준호의 답장이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갑작스러운 현의 울림처럼 그의 전신을 관통했다.

“회사 근처. 뭐, 문제 있어?”

화면의 글자들이 빛나고 있었다. 검은 배경 위의 흰 글씨. 그 단순한 글자들 뒤에 숨겨진 뉘앙스를 읽으려고 민준은 얼마나 오래 그 화면을 노려봤을까. 준호의 문장 끝에 붙은 물음표가 마치 질문이라기보다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사무실의 의자가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주변 동료들은 여전히 각자의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 아무도 민준의 불안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혹은 눈치채고도 모르는 척했을 수도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그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어깨에 메며 느껴지는 무게가 유독 무거워 보였다. 마치 자신의 불안감까지 함께 담겨 있는 것처럼.

밖으로 나가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금속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반복했다. 사람들이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그 무한반복 속에서 민준은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뛰고 있는지 느꼈다.

로비를 나갔다. 회사 건물 밖의 공기는 봄날의 상큼함으로 가득했다. 5월의 햇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고, 그 빛이 민준의 머리를 따뜻하게 데웠다. 어깨까지 데웠다. 가슴까지 데웠다. 하지만 그 따뜻함도 지금은 차가워 보였다.

아니, 차가워 *보인* 게 아니었다. 차가웠다.

마치 그 햇빛이 자신을 비추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부의 추위를 드러내는 것처럼. 마치 햇빛이 자신의 불안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것처럼.

민준은 회사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왜 이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준호가 “회사 근처”라고 했으니까. 그저 그 이유만으로.

길을 걸으며 민준은 최근 몇 주간의 일들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벌어진 미묘한 변화들. 이수진이 대표의 태도 변화. 그리고 자신의 계약 건의 진행 과정에서 느껴졌던 이상한 침묵들.

*뭔가 있다. 분명히 뭔가 있어.*

그 생각이 자신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 제2부: 건물 앞에서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검은색과 회색의 모던한 유리 건물. 그 건물의 외벽은 마치 거울처럼 주변 하늘을 반사하고 있었다. 구름이 그 위를 흘러지나갔다. 햇빛이 그 표면에서 반짝였다.

민준은 건물을 바라봤다.

오 년 전, 그는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 숨이 차올랐었다. 자신의 꿈의 장소. 자신의 미래의 도시락을 담을 수 있는 곳.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건물 안에 자신의 꿈이 있다고 생각했던 건물. 이 건물 안에 자신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던 건물.

하지만 지금?

지금 그 건물은 다르게 보였다. 완전히 다르게.

마치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어떤 생물체처럼. 마치 누군가를 집어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처럼. 그리고 자신이 지금 그 입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민준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건물 입구 앞에서, 준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자의 표정으로.

민준을 보자, 준호는 담배를 속삭이듯이 내려놓고 신발 밑에서 비틀어 꺼냈다. 그 동작은 하나의 의식처럼 보였다. 뭔가를 마무리하는 의식.

“뭐야, 무슨 일이야?”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의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눈빛 뒤에는 뭔가 무거운 것이 있었다.

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3년을 함께 일해온 선배. 수많은 밤을 함께 보낸 친구. 회식에서 자신을 챙겨준 형. 자신이 신뢰했던 사람.

그 얼굴이 익숙했다. 너무나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 그 익숙한 얼굴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얼굴 뒤에는 어떤 비밀이 있었을까. 우리처럼 무언가 깊은 상처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처럼 자신의 친구를 배신했던 건 아닐까.

“형, 저 위에…”

민준이 말했다.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켰다. 높이 솟은 그 건물. 그 회색의 외벽을 따라 올라가는 그의 시선. 그 건물의 최상층에 있는 이수진이의 사무실.

“저기에 우리 대표가 있잖아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누구예요?”

준호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 변화는 급작스러웠다. 마치 민준의 질문이 어떤 신호였던 것처럼. 마치 준호가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이 피할 수 없는 어떤 경계선이었던 것처럼.

“왜 갑자기…”

준호가 말을 시작했다. 그의 입이 움직였다. 뭔가를 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것은 문장이 아니라 한 개의 절편일 뿐이었다.

준호는 말을 멈췄다.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 침묵은 무겁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그것은 마치 물 속의 침묵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있었다.

준호의 손이 다시 주머니로 향했다. 담배를 꺼냈다. 하나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 모든 동작이 느렸다. 마치 시간을 늘이려고 하는 것처럼.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묘하지만, 명확한 떨림. 라이터의 불이 담배 끝에 닿을 때 그 손이 조금씩 흔들렸다.

민준은 그 손을 봤다.

준호의 손. 자신에게 커피를 건네던 손. 어깨를 토닥이던 손. 술잔을 기울이던 손.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리는 손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감출 수 없는 것들을 감추려고 하는 것처럼.

“형, 뭔가 말할 게 있어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마치 자신이 이미 무엇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런 표정을 하고 있어요. 뭔가…”

그는 준호의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얼굴에 새겨진 모든 미세한 표정들을. 눈썹의 각도. 입가의 긴장. 이마의 주름.

“내가 알아야 할 뭔가가 있어요.”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준호의 눈이 깜빡였다. 그것은 마치 어떤 결단의 순간이었다.

## 제3부: 우물 속의 눈빛

준호는 천천히 민준을 봤다.

그 눈빛에는 무언가 깊은 것이 담겨 있었다. 마치 우물처럼 깊은 것.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그리고 그 우물 속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민준이.”

준호가 먼저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애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애정 아래에는 자책과 죄책감이 깔려 있었다.

“넌 정말로 알고 싶어?”

그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고였다. 마치 어떤 문을 열기 전에 하는 최후의 확인처럼.

“일단 그 계약을 받아들이고, 나중에 알고 싶어? 아니면 지금 알고 싶어?”

준호가 계속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그 질문은 민준을 정지시켰다. 그것은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이었다. 두 개의 길 사이에서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암시.

민준은 생각했다.

자신이 정말로 알고 싶은가. 자신의 계약, 자신의 미래, 자신의 꿈. 이 모든 것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심장의 박동이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지금 알고 싶어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실했다. 혼들림 없이.

준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연기가 그의 폐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쉬어졌다. 그 연기가 5월의 햇빛 속으로 올라갔다. 햇빛이 그 연기를 반짝이게 만들었다. 마치 연기가 작은 보석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준호는 그 연기를 바라봤다. 자신이 방금 내쉰 연기를.

“그럼 따라와.”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결단의 목소리였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 자의 목소리.

“내가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 제4부: 입 속으로

준호는 더스타의 건물로 걸어갔다.

그의 걸음은 묵직했다.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이끌고 가고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제부터 벌어질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처럼.

민준도 따라갔다.

건물의 유리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 열림은 마치 입이 벌어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열린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로비의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에어컨의 냉기. 그것은 밖의 5월 햇빛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마치 다른 우주로 들어온 것처럼.

엘리베이터 앞에서 준호가 멈췄다. 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음향이 울렸다. 문이 열렸다. 둘이 들어갔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떤 층의 버튼을 눌렀다. 그의 손가락이 버튼에 닿았을 때, 민준은 그것이 지하층으로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아래로, 아래로. 마치 어떤 심연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형, 무슨 일이야?”

민준이 다시 물었다.

“곧 알게 될 거야.”

준호가 말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엘리베이터의 문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석상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지하 3층. B3.

문이 열렸다.

그곳은 민준이 본 적 없는 곳이었다. 회사의 지하 3층. 이런 곳이 있었나?

복도가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벽. 형광등의 차가운 빛. 그 복도 양쪽에 문들이 있었다. 모두 닫혀 있었다. 모두 어두워 보였다.

“여기가 어디예요?”

민준이 물었다.

“회사의 비밀 보관소야.”

준호가 말했다.

“자료실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그는 말을 멈추고 앞으로 걸어갔다. 민준도 따라갔다.

준호는 복도의 한 문 앞에서 멈췄다. 그는 ID 카드를 들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직원 카드가 아니었다. 다른 색이었다. 더 높은 수준의 접근권을 나타내는 색.

그가 카드를 리더기에 대었다.

빨간 불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문이 열렸다.

그 방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준호가 손을 들어 조명을 켰다.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민준은 그 방 안의 것들을 보게 되었다.

파일들. 수많은 파일들. 그것들은 선반 위에 정렬되어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 개, 수천 개.

그 파일들의 제목을 보았다.

이름들. 수십 개, 수백 개의 이름들.

그들은 모두 연예인의 이름이었다.

“이게 뭐예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회사가 관리하는 자료야.”

준호가 말했다.

“이수진이 대표가 모은 자료들이야. 모든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자료들. 그들의 과거, 약점, 비밀들… 모든 것.”

민준은 파일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문서들이 있었다. 기록들이 있었다.

“이걸… 왜 가지고 있어요?”

“통제하기 위해서야.”

준호가 답했다.

“이수진이는 이 자료들을 이용해서 모든 연예인을 통제해. 그들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계약 조건을 따르도록. 그들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민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내 계약도…”

“너도 포함되어 있어.”

준호가 말했다.

“너의 약점도, 너의 비밀도, 너의 가족 정보도. 모두 여기에 있어.”

그가 파일 더미를 가리켰다.

“그리고 너의 계약은 그걸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너는 지금까지 자유롭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너는 이미 이 회사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어. 처음부터.”

민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꿈이 있던 그 건물. 그의 미래가 있던 그 건물. 그것이 실은 거대한 입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그 입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조명 아래 파일들은 마치 이빨처럼 보였다.

흰색의 이빨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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