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30화: 우리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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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0화: 우리의 재발견

지하철 역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하지만 민준이 들은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휴대폰 진동음. 준호의 메시지.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자신의 호흡음. 플랫폼의 가장자리에서, 민준은 손에 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혀졌다. 자동 조명. 마치 자신의 감정처럼 불안정했다.

준호의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미안해. 내가 심했어.”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배우들의 말은 항상 그렇다. 겹겹이 쌓여 있다. 표면에는 사과가 있고, 그 아래에는 분노가 있고, 그 아래에는 두려움이 있다. 민준은 지난 4년간 배워온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말의 뒤에 숨겨진 것들을 읽는 법.

기차가 들어왔다. 하얀색의 서울 지하철. 문이 열렸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민준은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 것이 이제는 익숙했다. 2호선이었다. 강남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강남 구간의 여러 역을 거쳐 강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민준은 창가 자리에 서 있었다. 반대편 창에는 터널이 보였고, 그 검은 벽에는 자신의 흐릿한 모습이 비쳤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번호였다. 민준의 심장이 떨었다. 화면을 확인했다. 우리였다. 전화였다. 문자가 아니라 음성 통화.

민준은 받았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숨기려고 했지만, 이미 드러났다.

“민준아! 어디야?”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밝고, 에너지 넘치고, 마치 기사 이전의 우리였다. 그 톤이 민준을 더욱 헷갈리게 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것이 계속되는 것처럼.

“지하철 타고 있어요. 강남역에서 출발했는데…”

민준이 말했다.

“어디 가?”

“집으로요. 좀 쉬려고.”

“아, 잠깐. 근처에 있어?”

침묵이 흘렀다. 민준은 화면을 다시 봤다. 통화 중이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기차 소음과 섞여 들렸다.

“네? 근처에 있냐고.”

우리가 다시 물었다.

“강남역 지하철에 타 있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오, 대박. 나도 강남역에 있어. 지금 강남역에. 진짜?”

민준의 심장이 또 떨었다. 다른 이유로. 준호와의 통화로 인한 불안감이 아니라, 뭔가 예상 밖의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

“네? 지금?”

“응응! 내가 뭔가 사고 있었는데, 너 기사 나온 거 축하해주려고. 근데 너 어디 가는 거야? 내가 타지. 어느 칸?”

민준은 주변을 살폈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검은 벽들이 창을 스쳐 지나갔다.

“저, 1번 칸인 것 같은데…”

“오, 그럼 내가 5번 칸에서 탈 게. 잠깐만.”

통화가 끝났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왜일까. 우리는 좋은 사람이었다. 축하해주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준호에게는 자신이 올라가는 것이 배반처럼 느껴졌다면, 우리에게는 어떨까. 우리도 아직도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배우인데, 자신이 먼저 올라가는 것이 미안하지 않을까.

기차가 멈췄다. 역이었다. 한 구간이 더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탔다. 민준은 그대로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며. 그 대기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2분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30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타났다.

우리는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긴 머리는 한쪽으로 묶여 있었고, 얼굴에는 아주 약한 화장만 해 있었다. 마치 서둘러서 나온 것 같았다.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강남의 가게에서 사온 것들. 아마도 자신의 무언가였을 것이다. 옷이든 악세서리든 책이든.

우리의 눈이 민준을 찾았다. 바로 찾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웃었다. 그 웃음이 민준의 모든 불안을 녹여버렸다. 적어도 잠깐 동안은.

“오! 거기 있었네!”

우리가 말했다.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민준 옆에 섰다.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민준을 바라봤다.

“축하해. 정말로.”

그 말은 카톡으로 보낸 말과는 달랐다. 음성으로 들으니, 그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진정성이 있었다. 또는 민준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진정한 것과 거짓된 것의 경계는 항상 모호했다. 특히 배우들 사이에서는.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어? 감사합니다는 뭐야. 너무 어색한데.”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민준이 다시 말했다. 그것도 거리감이 있었다.

우리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 대신 뭔가 다른 표정이 나타났다. 배우의 표정. 누군가를 관찰하는 배우의 표정.

“민준아, 뭐 있어?”

그 질문이 가장 위험한 질문이었다. 배우들 사이에서. 왜냐하면 배우들은 거짓말을 잘하지만, 다른 배우의 거짓말은 더 잘 눈치채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뭐 없는데.”

민준이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따지지 않았다. 대신 옆으로 몸을 기울여서, 민준의 얼굴을 더 자세히 봤다. 마치 연기 분석을 하는 것처럼. 혹은 친구를 걱정하는 것처럼. 둘 다였을 것이다.

“기사 나온 거, 진짜 축하한다. 난 진심이야. 정말로.”

그 말을 할 때, 우리의 눈이 약간 흔들렸다. 민준이 감지했다. 그것은 기쁨이 아니었다. 기쁨도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 아래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아마도 질투. 또는 아쉬움. 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조.

“형도 곧 나올 거예요.”

민준이 말했다. 그것은 위로였다. 또는 확인이었다. 자신이 올라가도 우리가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래, 나도 나올 거지.”

우리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와서 환한 역사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탔다. 그 반복이었다. 민준과 우리는 그대로 서 있었다. 손잡이를 잡은 채로.

“그런데 진짜, 어디 가?”

우리가 다시 물었다.

“집으로요. 좀 쉬려고.”

민준이 대답했다.

“아, 혼자?”

그 질문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초대였다. 또는 제안였다.

“네.”

민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형은 어디 가요?”

“나? 나도 사실 딱히 갈 데 없어.”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슬픔이 있었다.

기차가 또 멈췄다. 역 이름이 떠올랐다. 충무로역. 아직 목적지가 아니었다. 민준의 집은 더 북쪽에 있었다. 강북 쪽으로.

“근데 솔직히, 너 요즘 어때?”

우리가 물었다.

“저?”

민준이 반문했다.

“응. 기사 나오고 나서. 기분이 어때? 좋아? 부담스러워?”

그것은 깊은 질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안부를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또는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려는 시도였을 수도 있다.

민준은 생각했다.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진실을 말할 것인가. 거짓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그 둘 사이의 무언가를 말할 것인가.

“솔직해도 돼요?”

민준이 물었다.

“당연하지. 넌 누구야.”

우리가 말했다.

그 말이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당신은 내 친구라는 뜻. 당신은 내 앞에서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 당신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

민준은 침을 삼켰다. 목이 마르고 있었다. 말을 꺼내기 직전에 항상 목이 마르곤 했다.

“기사 나온 건 좋아요. 정말로. 제 꿈이었으니까.”

민준이 말했다. “근데 동시에 무서워요. 이제 기대가 생겼다는 게. 사람들이 저를 보기 시작했다는 게. 그리고…”

민준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우리가 재촉했다.

“제가 누군가를 상처주고 있다는 게.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게.”

그 말을 할 때, 민준의 눈이 우리를 바라봤다. 그것은 질문이었다. 너를 상처주고 있지 않을까. 너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을까.

우리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민준의 어깨에 얹었다.

“바보. 넌 아무도 상처주지 않았어. 이건 이 업계니까. 우리가 모두 겪는 거야.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내려가고, 누군가는 그대로 있고. 그게 이 세상이야. 그리고 넌 올라갔어. 그게 좋은 일이야. 내가 힘들다고 해서 넌 발을 멈출 필요 없어. 오히려 넌 가야 돼. 최대한 멀리. 최대한 높이. 그리고 거기서 누군가를 잡아줄 수 있으면 그때 잡아줘. 그게 우정이야.”

우리의 말이 민준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그 말이 얼마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착한 말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거짓일 수도 있는지를.

기차가 또 움직였다. 기차는 멈추고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마치 생명처럼. 마치 배우의 인생처럼. 기회가 올 때는 빠르게 움직이고, 기회가 없을 때는 정지해 있다.

“너 아직 기숙사에서 자?”

우리가 물었다.

“네. 회사 건물 지하에.”

민준이 대답했다.

“아, 그래. 넌 회사 사람이네.”

그 말에는 뭔가가 담겨 있었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뜻. 자신은 회사에서 버려진 배우라는 뜻. 아니, 아직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배우라는 뜻.

“형은 어디서?”

민준이 물었다.

“나? 나는 오피스텔. 강북에 작은 원룸.”

그 원룸에는 얼마나 많은 밤이 담겨 있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과 불안감과 희망이 담겨 있을까. 민준은 그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자신도 비슷한 공간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응. 혼자. 룸메이트 있었는데, 그 친구 연기 포기했어. 3개월 전에. 그 후로 혼자.”

우리의 목소리가 더 조용해졌다.

“그 친구가 지금 뭐 해요?”

민준이 물었다.

“모르겠어. 회사 그만두고 가버렸어. 엄마가 있는 지방으로. 아마 일반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거야.”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슬픈 침묵이었다. 배우들이 연기를 그만두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꿈을 포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또는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인가.

“근데 정말, 축하해. 내가 진심으로.”

우리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 우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주 약한 눈물이었지만, 분명했다. 민준은 그것을 봤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환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처절함의 눈물이었다. 자신은 여전히 여기 있는데, 민준은 이미 저기로 가고 있다는 깨달음의 눈물이었다.

“형…”

민준이 말했다.

“아니, 괜찮아. 이건 좋은 눈물이야.”

우리가 웃으며 눈을 닦았다.

기차가 또 멈췄다. 이번에는 민준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내렸다.

“여기 내려.”

우리가 말했다.

“어? 형 여기 아니잖아요.”

민준이 말했다.

“응. 그런데 나 여기서 내릴 거야. 그리고 넌 너의 길을 가. 괜찮아. 우리는 계속 친구야. 비록 우린 다른 속도로 가지만, 우린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까.”

우리가 말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민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치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또는 누나가 하는 것처럼.

“민준아, 넌 잘할 거야. 내가 알아. 넌 평범한 배우가 아니야. 넌 뭔가 다른 게 있어. 그 다른 게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어. 그리고 그게 언젠가는 빛날 거야.”

우리의 말이 민준의 가슴을 크게 움직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진정한 말이었다.

“감사해요.”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형도 잘할 거예요. 정말로.”

우리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민준도 알았다.

기차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손잡이를 풀었다. 그리고 내렸다. 플랫폼으로. 그리고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준은 뒤로 물러나는 우리를 봤다. 검은색 후드티. 쇼핑백. 길게 묶인 머리. 그리고 그 얼굴에 떠 있는 미소. 그 미소가 얼마나 피곤했는지를.

기차는 터널로 들어갔다. 우리의 모습이 검은색으로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처럼.

민준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호흡만 하며. 지하철 안에서 자신 혼자가 되었다. 아니, 항상 혼자였다. 단지 우리가 있었을 뿐. 그리고 우리도 사실은 혼자였다. 그것을 이제 민준은 알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민준은 받지 않았다. 화면에만 준호의 이름이 떴다. 그리고 다시 사라졌다. 통화가 거절된 것이다.

메시지가 왔다.

“민준아, 내일 만나자. 진지하게 얘기할 게 있어.”

민준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밝은 화면이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지하철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리고 화면 위의 자신의 모습. 둘 다 다르게 보였다. 하나는 현실이었고, 하나는 반영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차가 다시 멈췄다. 다음 역. 또 다른 역. 그리고 그 다음 역.

민준은 창밖을 봤다. 밤의 서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불빛들. 건물들. 그리고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고,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이 도시의 리듬이었다. 그리고 민준도 이제 그 리듬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기차의 안내음이 울렸다. 다음 역에서 내릴 차례가 아직 아니었다. 하지만 민준은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든 내릴 수 있도록. 언제든 새로운 세계로 걸어나갈 수 있도록.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준호의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내일 만나자. 진지하게 얘기할 게 있어.”

무엇을 얘기할까. 민준은 상상해봤다. 준호가 할 수 있는 말들. 축하의 말. 경고의 말. 또는 마지막 인사의 말.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민준은 그것을 생각했다. 자신은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 준호처럼. 성공했지만 외로운 배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처럼. 계속 기다리는 배우가 될 것인가. 또는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될 것인가.

기차가 또 달렸다. 터널 속에서. 불빛 속에서. 그 사이사이로.

그리고 민준은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 사람이 왜 무너졌는지. 그것이 단순한 실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성공과 실패 사이의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또는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민준은 다짐했다. 자신은 다를 것이라고. 자신은 누군가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은 계속 뒤를 돌아볼 것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그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연예계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으니까. 올라가는 사람은 항상 누군가를 밀어낸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우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차는 계속 달렸다.


문자 수: 12,847자

# 터널 속의 고백

차는 터널로 들어갔다.

그 순간, 세상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마치 누군가 거대한 손으로 불을 껐듯이. 민준은 지하철 창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봤다. 창밖의 어둠 속에 떠오르는 창백한 얼굴. 그것이 자신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됐다. 터널 벽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내는 ‘칙칙칙’ 하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그 리듬이 자신의 심장 박동과 겹쳐지는 것 같았다.

우리의 모습이 검은색으로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처럼. 민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은유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요즘 자신의 삶이 정확히 이렇게 느껴졌으니까. 빛에서 어둠으로. 희망에서 절망으로. 하나의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상태로의 급격한 전환.

지하철이 터널을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며, 민준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호흡만 하며. 코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지하철역의 습한 공기. 수많은 사람들의 숨이 섞여 있는 그 공기. 민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내려가는 것처럼.

지하철 안에서 자신 혼자가 되었다.

아니, 항상 혼자였다. 단지 우리가 있었을 뿐. 그리고 우리도 사실은 혼자였다. 그것을 이제 민준은 알았다. 이 깨달음이 얼마나 늦은 것인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준호, 지은이, 그리고 자신. 연기학원에서 만나 함께했던 사람들. 함께 라면을 먹고, 함께 대사 연습을 하고, 함께 오디션에 떨어지고, 함께 성공을 꿈꿨던 사람들. 하지만 그 ‘함께’가 무엇이었을까. 단지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일 뿐이었을까. 아니면 진정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지지했던 것이었을까.

민준은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이 손에 닿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손잡이를 잡았을까.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그들은 지금 행복할까.

휴대폰이 울렸다.

‘칭칭칭칭’ 하는 벨소리가 주머니에서 울렸다. 민준은 천천히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JUN HO’라는 이름이 떴다. 준호였다. 정확히 이 순간에. 이 터널을 빠져나가는 순간에.

민준은 받지 않았다.

손가락이 거절 버튼을 눌렀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마치 자동으로. 화면에 준호의 이름이 떴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통화가 거절된 것이다. 그리고 그 거절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민준은 알았다. 지난 일주일간, 준호의 전화는 계속 걸려왔고, 민준은 계속 받지 않았다.

왜일까.

민준은 화면을 바라봤다. 검은 화면으로 돌아간 휴대폰. 그 안에는 자신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쳤다.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처럼.

몇 초 뒤, 메시지가 왔다.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알림음이 울렸다. 작은 진동이 손에 전해졌다. 민준은 메시지를 읽었다.

“민준아, 내일 만나자. 진지하게 얘기할 게 있어.”

글자들이 화면에 떠 있었다. 준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준호는 항상 진지했다. 웃을 때도, 농담할 때도, 눈빛이 진지했다. 그것이 준호의 매력이었다. 그것이 준호가 배우로서 성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민준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밝은 화면이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휴대폰 액정에 비친 자신의 모습. 동시에 지하철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 둘 다 다르게 보였다. 하나는 현실이었고, 하나는 반영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혹은 둘 다 가짜일 수도 있었다.

“다음 역, 신촌입니다.”

기계음이 울렸다. 그 음성의 톤이 너무나 무감정했다. 마치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한 누군가가 읽는 것처럼. 하지만 그건 그냥 기계의 음성일 뿐이었다. 기계는 포기할 수도 없고, 절망할 수도 없다. 그냥 정해진 대로 움직일 뿐이다.

기차가 다시 멈췄다.

승객들이 내렸다. 새로운 승객들이 탔다. 끊임없는 교환. 끊임없는 순환. 도시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신진대사. 민준은 그 과정을 관찰했다. 마치 자신은 이 장면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마치 자신은 투명한 유령인 것처럼.

다음 역. 또 다른 역. 그리고 그 다음 역.

민준은 창밖을 봤다.

밤의 서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하철이 어느 구간을 달리고 있었는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터널을 빠져나가 지상 구간으로 나왔을 때, 수많은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 신호등들. 가로등들. 그리고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저 불이 켜진 창문들 뒤에는 누군가의 삶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비극이,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고,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이 도시의 리듬이었다. 그것이 이 도시가 살아 숨 쉬는 방식이었다. 민준도 이제 그 리듬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난 3개월을 생각해봤다.

준호가 드라마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날.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민준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기억이 흐릿했다. 축하했던 것도 기억나고, 축하하지 못했던 것도 기억났다. 아니, 축하했지만 마음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준호에게 들켰을 것 같았다. 준호는 민준의 눈빛을 읽을 줄 알았으니까.

그 이후로 준호와 거리가 생겼다.

처음엔 무언의 거리였다. 전화를 조금 덜 받았고, 약속을 조금 덜 잡았고, 대화를 조금 덜 나눴다. 그리고 그 거리가 점점 커졌다. 마치 두 물체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멀어지는 것처럼.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동으로 벌어지는 거리. 그것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민준은 알았다.

기차의 안내음이 울렸다.

“다음 역, 홍대입구입니다. 하차하실 분은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역에서 내릴 차례가 아직 아니었다. 민준은 홍대 근처에 사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민준은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든 내릴 수 있도록. 언제든 새로운 세계로 걸어나갈 수 있도록. 마치 이 지하철을 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내려야 할 순간이 올 것처럼.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준호의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내일 만나자. 진지하게 얘기할 게 있어.”

글자들이 화면 위에서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민준은 손을 내려놨다.

무엇을 얘기할까.

민준은 상상해봤다. 준호가 할 수 있는 말들. 그 진지한 얼굴로 할 수 있는 말들. 축하의 말. 경고의 말. 또는 마지막 인사의 말. 아니면 다른 종류의 말. 자신도 준호처럼 어떤 기회를 얻었다는 말. 자신도 성공했다는 말. 그렇다면 그 말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까, 아니면 더 깊은 절망으로 빠뜨릴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민준은 그것을 생각했다. 자신은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 준호처럼. 성공했지만 외로운 배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처럼. 계속 기다리고, 계속 노력하고, 계속 떨어지는 배우가 될 것인가. 또는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될 것인가. 배우가 아닌 누군가. 이 모든 것을 포기한 누군가.

기차가 또 달렸다.

터널 속에서. 터널을 빠져나가 불빛 속에서. 그 사이사이로. 멈춤 없이. 끊임 없이. 마치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민준은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직접적인 그리움이 아니라, 이해에 가까운 무언가. 왜 그 사람이 무너졌는지. 그것이 단순한 실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성공과 실패 사이의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또는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영화배우였다.

1980년대에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대사가 몇 줄 밖에 없는 배역이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어린 민준에게 자신이 나온 영화를 보여주며, 저것이 아버지라고 했다. 스크린 속의 흐릿한 모습.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자신의 가장 큰 성취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더 이상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오디션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아버지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치 그 터널 속의 어둠처럼.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로 집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더 이상 오디션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일반 회사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계속 술을 마셨고, 어머니와 싸웠고, 결국 자리를 떴다.

민준은 아버지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절망은 생생했다. 그 절망이 집 안의 공기를 어떻게 오염시켰는지. 그 절망이 어떤 무게로 자신의 어깨를 눌렀는지. 그리고 이제,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두려움.

“다음 역, 강남역입니다.”

강남역. 민준이 가장 피하고 싶은 역 중 하나였다. 이 역 주변에는 많은 배우 에이전시들이 있었다. 준호도 이 근처의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었다. 성공한 배우들의 에이전시. 그곳에 들어가려고 민준은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리고 떨어졌을 때의 절망감.

그 이후로 준호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었다.

민준은 그 생각을 밀어냈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봤다. 강남의 야경. 화려했다. 너무나 화려했다. 마치 그 화려함이 진짜 현실이고, 자신의 삶이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지하철이 강남역을 지나갔다.

민준은 준비하지 않았다. 내릴 준비를. 그것이 자신의 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아니, 알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준호의 메시지를 읽었다. 이번엔 더 자세히.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간을. 마치 그 공간에 준호의 숨이 숨어있는 것처럼. 마치 그 공간에 준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숨어있는 것처럼.

“진지하게 얘기할 게 있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

민준은 여러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마치 영화의 각본을 짜는 것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일.

시나리오 1: 준호가 자신을 위해 어떤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말. 어느 감독이 자신을 주목했다는 말. 아니면 어느 에이전시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말. 이 시나리오에서 민준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감사함? 아니면 더 깊은 치욕감? 자신이 준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의 치욕감.

시나리오 2: 준호가 자신과의 우정을 끝내고 싶다는 말. 너무 힘들다는 말. 자신의 질투와 시기를 견딜 수 없다는 말. 이 시나리오에서 민준은 뭐라고 대답할까. 항변할까. 사과할까. 아니면 조용히 그것을 받아들일까.

시나리오 3: 준호도 힘들다는 말. 성공이 생각보다 무겁다는 말. 혼자라는 말. 이 시나리오에서 민준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도 자신의 시기심으로 변질될까.

어느 시나리오가 가장 그럴듯할까.

민준은 알 수 없었다. 인간의 감정은 예측 불가능했다. 특히 우정이라는 것은. 우정은 마치 물처럼, 형태를 가지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적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증발해버린다.

기차가 계속 달렸다.

민준은 휴대폰 화면을 켜놨다. 준호의 메시지가 계속 화면에 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만약 메시지가 사라지면, 현실도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현실이 확정될 것 같았다. 메시지가 사라진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에 응답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내일 만나자.”

내일. 그 단어가 자신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내일은 이미 정해진 날이었다. 자신이 피할 수 없는 날. 마치 지하철이 다음 역으로 가는 것처럼, 자신도 내일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민준은 다짐했다.

자신은 다를 것이라고. 자신은 아버지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은 누군가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은 계속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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