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24화: 문을 나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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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화: 문을 나서는 법

대표실을 나가는 순간, 민준의 다리가 떨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복도에서 준호가 물었다.

“어땠어?”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마치 자신의 손가락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인 것처럼, 통제 불능인 것처럼. 엘리베이터 버튼 위의 숫자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12, 11, 10. 천천히. 마치 시간이 늘어나는 것처럼.

“대표님이 뭐라고 했냐고.”

준호가 다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불안한 것이 섞여 있었다. 민준은 그제야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의 눈에는 기대가 있었다. 마치 민준이 좋은 뉴스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처럼. 하지만 동시에, 그 기대 뒤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

“성공할 수도 있다고 했어.”

민준이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낮고, 차갑고, 거의 감정이 없는.

“’할 수도 있다’고? 그게 뭐하는 말이야?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지. ‘할 수도 있다’는 게 뭐야?”

준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로비의 다른 배우들이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들이 민준과 준호에게 닿았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기본 규칙 위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로비에서는.

“조용히 해.”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하지만 무언가 끝내려는 뉘앙스가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대표님이 뭐라고 했어? 정확하게.”

준호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면서 물었다. 민준도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이제 두 사람만 남았다.

“이 드라마가 성공하면, 새로운 기회들이 생길 거라고 했어. 광고, 다른 드라마, 영화도 가능할 거라고. 근데 드라마 자체가 성공해야 한다고 했어. 내 연기만으로는 안 된다고. 전체 작품이 좋아야 한다고. 그리고…”

민준이 말을 멈췄다. 준호의 눈이 자신에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성준이가 있다고 했어. 같은 기수인데, 벌써 유명해졌고, CF도 많이 하고, 계약금도 훨씬 크다고. 그래서 나는 아직 미지수라고. 가능성은 있지만, 증명되지 않았다고.”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도착했다. 주차장. 냉기와 모터음이 섞인 공기가 들어왔다.

“그 여자… 뭔가 잘못 이해한 거 아냐?”

준호가 말했다. “넌 어제 모든 걸 보여줬잖아. 이수진이는…”

“이수진이?”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대표의 성이었다. 하지만 준호가 그것을 사용한 것은 이상했다. 마치 친구처럼. 또는 동료처럼. 깊은 관계의 신호.

“아, 미안. 대표님이라고 해야지. 어쨌든, 대표님은 보수적인 스타일이야. 한 번의 성공으로 누군가를 확신하지 않아. 그게 이 회사의 전략이야.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 그래서 넌 계속 기회를 받을 거야. 하지만 당신이 성공을 완전히 증명할 때까지는.”

준호가 로비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민준은 주차장에 머물렀다. 차들 사이의 어두운 공간에서.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라커룸의 그것처럼. 또 다른 SOS.

“형, 그럼 나한테 기회가 있다는 건가요?”

민준이 물었다.

“당연하지. 왜 없어? 대표님이 너한테 직접 얘기한 것도 기회고, 이 드라마가 성공했을 때 다른 역할들도 올 거야. 너는 이제 투명한 배우가 아니야. 누군가가 봤어. PD가 봤고, 대표님도 봤고, 곧 시청자들도 볼 거야.”

준호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축하보다는 구속감. 마치 자신이 민준을 이제부터 책임져야 한다는 느낌처럼.

“그 드라마가 망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민준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더 낮은 목소리로. 주차장의 어둠 속으로.

“그럼… 다시 기다려야지.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해. 그리고 배우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 이 업계에서 살려면, 기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준호가 손을 올려 민준의 어깨에 얹었다. 그것은 위로였을까, 아니면 무게였을까. 민준은 확실하지 않았다.

오피스텔로 돌아간 것은 오후 두 시였다. 민준은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장을 보면서. 천장은 흰색이었다. 아주 평범한 흰색. 마치 하얀 종이처럼. 그리고 민준은 그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려고 했다.

드라마가 성공한다. 시청률이 올라간다. SNS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그 배우 누구야?” “민준이라고 하더라. 신인이래. 진짜 잘 했더라.” 광고 제안이 온다. 작은 광고부터. 편의점 라면 광고. 휴대폰 요금제. 그 다음에는 더 큰 광고. 자동차. 화장품. 유명한 배우들과 함께하는 광고.

하지만 그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상상이었다. 민준은 알고 있었다. 드라마는 망할 수도 있다. 시청률이 3%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럼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름. 그의 얼굴. 그것이 연예계의 논리였다. 한 번의 실패는 용서받지 않는다.

휴대폰이 울렸다. 우리였다. 카톡. 이모지가 가득했다. 별, 하트, 박수.

“민준이!! 축하해!! 대표님이 너 불렀대? 좋은 거 아니야?? 왜 답이 없어??”

민준은 답장을 치지 않았다. 다시 천장을 봤다. 하얀 종이는 여전히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저녁 여섯 시, 우리와 준호가 민준이를 찾으러 왔다. 오피스텔 앞에서. 그들은 민준의 부재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문을 두드렸다. 여러 번. 민준은 문을 열었다. 자신이 무엇을 입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뭐 해? 왜 연락이 없어?”

우리가 물었다. 그녀는 민준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마치 그의 얼굴에 뭔가 쓰여 있는 것을 읽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냥… 쉬고 있었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거짓이지. 넌 뭔가 고민 중이야. 내가 안다. 넌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넌 지금 아주 많이 생각하고 있어.”

우리가 민준의 방에 들어섰다. 준호도 따라왔다. 방은 어둠이 가득했다. 불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준호가 불을 켰다. 천장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또 그 깜빡임.

“대표님이 뭐라고 했어?”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톤이었다. 마치 자신이 민준의 생각을 모두 읽었다는 것처럼.

“성공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근데 증명해야 한다고 했어요. 이 드라마가 성공해야 한다고. 내 연기만으로는 안 된다고. 전체 작품이 좋아야 한다고.”

민준이 말했다. 이번에는 천장을 보지 않고, 우리와 준호의 얼굴을 봤다.

“그게 맞아. 그래서 우리가 왔어.”

우리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있었다. “넌 지금 기로에 서 있어. 선택할 수 있는 시점이야. 계속 기다릴 거야, 아니면 지금 움직일 거야? 대표님이 그 말을 하는 건 너한테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 아니야. 앞으로의 드라마 하나가 너의 전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민준은 우리의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예계의 진실. 한 번의 성공이 모든 것을 바꾼다. 그리고 한 번의 실패도 모든 것을 잃게 한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데요?”

민준이 물었다.

“연기를 해야지. 지금까지처럼 그런 식으로 말고. 너는 어제 스튜디오에서 뭘 했어? 네 감정을 드러냈어. 네 공포를 드러냈어. 아버지의 죽음을 다루면서, 넌 정말로 그것을 살았어. 그리고 그게 화면에 나왔어. 그게 바로 배우가 해야 하는 거야. 숨기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거야.”

우리가 침대에 앉았다. 민준도 앉았다. 준호는 벽에 기대어 섰다. 마치 이 대화의 증인이 되려는 것처럼.

“근데 그게 계속될까요? 어제는… 어제는 특별했어요. 나는 정말로 깨졌어요. 내 아버지를 생각했고, 내 공포를 생각했고, 그것을 그대로 연기했어요. 근데 그게 항상 가능할까요?”

민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 금지된 것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처럼.

“그걸 배우는 거지. 그게 배우의 직업이야. 매 번 너의 가장 깊은 부분을 꺼내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리고 그것을 카메라 앞에서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거야. 넌 이미 할 수 있어. 어제가 증명했어.”

우리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작은 제스처였지만, 민준에게는 매우 큰 것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고 있다. 실제로, 물리적으로. 마치 자신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리고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나도 같은 길을 가고 있고, 형도 이미 걸어왔고. 우리는 모두 같은 공포를 가지고 있어. 실패의 공포. 잊혀질 공포. 무의미할 공포. 근데 우리는 계속 가. 왜냐하면 다른 길이 없으니까.”

준호가 입을 열었다.

“나는 8년을 했다. 8년 동안 조연만 했어. 주인공이 될 줄 알았는데, 계속 2번 주인공이었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2번이야. 하지만 나는 여기 있어. 계속 여기 있어. 왜냐하면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는 1번이 될 수도 있으니까.”

준호의 목소리에는 뭔가 깨진 부분이 있었다. 마치 그 말들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반복하는 것처럼.

“그런데 형,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2번이… 계속 2번일 수도 있잖아요. 형도 알고 있잖아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조심성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필요한 말이었다.

준호는 웃었다. 그것은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모르겠지. 나는 그냥 계속 가. 내일도 촬영이 있고, 다음 주에도 오디션이 있고, 그 다음에도 뭔가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들을 반복하다 보면, 어쩌면 언젠가는…”

준호가 말을 마치지 않았다. 대신 천장을 봤다. 마치 민준처럼.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종이를 보면서.

밤 열 시, 우리와 준호가 떠나간 후, 민준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혼자였다. 침묵이 아니라, 무언가가 남아있는 상태의 혼자. 우리의 손의 따뜻함. 준호의 자조적인 웃음. 그들의 말들. 그것들이 방에 남아있었다.

민준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SNS를 검색했다. 성준이의 계정. 그는 금발로 염색했고, 새로운 사진을 올렸다. 스튜디오에서의 사진. 밝은 조명 아래에서. 웃고 있었다. 완벽한 웃음. 그리고 캡션: “새로운 시작. 새로운 나. 새로운 꿈. 감사합니다.”

댓글들이 가득했다.

“성준이 최고!”

“왜 이렇게 잘생겼어?”

“진짜 미쳤어. 연기도 좋고 외모도 좋고.”

민준은 스크롤을 했다. 댓글들이 계속 나왔다. 모두 같은 내용. 칭찬. 열광. 숭배.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 그는 받았다.

“안녕하세요, 민 배우님? 저는 영화사 ‘프레임’ 제작팀입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민 배우님과 관련해서 프로젝트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민준은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중력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또는 중력이 이중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민준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의 인생이 변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네, 괜찮습니다. 말씀해주세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내부는 폭풍우였다.


<다음 권에서 계속됩니다>

민준의 두 번째 막은 이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 위의 모든 것이 바뀔 준비가 되어 있었다.

# 2번에서 1번으로: 꿈의 무대

## 1부: 침묵 속의 대화

밤 아홉 시 오십분.

민준의 좁은 원룸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희미하게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것도 어쩌면 자신의 귀가 만들어낸 환청일지도 모른다. 몇 년을 이 같은 침묵 속에서 살다 보니, 소음과 고요함의 경계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민준은 천장을 바라봤다. 벽에 붙은 포스터들—영화, 드라마, 뮤지컬—이 희미한 빛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한 장의 포스터에는 성준이가 있었다. 반짝이는 눈, 완벽한 미소, 그리고 그 아래 큼지막한 글씨: ‘신인상 후보’.

‘신인상’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민준의 가슴에는 뭔가 날카로운 것이 박혔다.

그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민준아, 열어.”

형 준호의 목소리였다. 준호는 언제나 그렇게 들어왔다. 가는 길에 물어보지 않고, 그냥 문을 두드린 후 나머지는 민준이 해주기를 기다렸다. 마치 그것이 형의 특권인 양.

민준은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준호 형과 함께 누군가가 더 서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친구, 이름하여 ‘우리’라고 부르는 친구였다. 실명은 우리준이지만, 누구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냥 ‘우리’였다.

준호는 스물여섯 살의 배우였다. 작년에 케이블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연했고, 올해는 몇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나왔다. 항상 2번 역할이었다. 주인공의 친구, 주인공의 동료, 주인공의 라이벌의 친구. 항상 누군가의 곁에 있는 역할들이었다.

“뭐 해? 저녁 먹었어?”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형다운 걱정이 묻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도 피곤하다는 신호가 있었다. 눈 밑의 검은 반달이 그것을 증명했다.

“아, 형. 와줬네. 우리도 왔고.”

민준은 밝게 인사했다. 하지만 그 밝음은 가면에 불과했다. 진짜 민준은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었다. 성준이의 포스터를 보고 있었다.

“응, 뭐 있는 거 같은데. 말하지 말고 일단 앉자.”

우리가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원룸의 좁은 공간에 어떻게든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였다. 낡은 것이었지만, 매일 밤 이곳에서 세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민준은 소파에 앉았고, 준호도 옆에 앉았다. 우리는 바닥에 앉았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순서대로.

“형, 오늘 어디 다녀왔어? 피곤해 보이는데.”

민준이 물었다.

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피곤한 한숨이 아니라, 자조적인 한숨이었다.

“촬영. 또 조연이지. 2번 역할. 주인공이 밥을 먹는 장면에서 옆에 앉아서 밥을 먹는 배우. 하루 종일 촬영했는데, 내 장면은 5초였어. 5초. 컷을 하고 나서 한 시간을 더 기다렸는데, 그건 또 다른 배우의 촬영 때문이었고.”

준호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오랫동안 참고 있던 것들이 모두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도 촬영이 있어. 또 조연. 또 몇 초. 그리고 다음 주에는 오디션이 있는데, 그것도 조연이야. 언제까지 이럴 거야, 민준아?”

준호의 목소리에는 좌절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것도 있었다. 희망? 아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희망을 향한 절망적인 집착이었다.

“형…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형은 충분히 잘하잖아. 다음 번에는 주역이 될 거야.”

민준이 위로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모두가 알았다.

“그럴 리가 없지. 너도 알아. 이 바닥이 어떤 곳인지. 한 번 2번 역할로 찍혀 버리면, 계속 2번이야.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준호가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은 천장으로 향했다.

“근데 왜 계속하는 거야? 그럼 다른 일을 하던가…”

우리가 물었다. 그것은 순진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준호는 웃었다. 그것은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비웃는 웃음. 마치 무언가가 목을 졸라오는 것 같은 그런 웃음이었다.

“어. 왜냐하면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거의 중얼거리는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는 1번이 될 수도 있으니까.”

## 2부: 깨진 희망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침묵이 방을 채웠다. 그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을 담은 침묵이었다. 포기의 침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침묵이었다.

민준은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무언가를 말해야 했다. 하지만 뭘 말해야 할지 몰랐다.

“형,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조심성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필요한 질문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2번이… 계속 2번일 수도 있잖아요. 형도 알고 있잖아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웃음이 나왔다. 더 깊은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모르겠지. 나는 그냥 계속 가. 내일도 촬영이 있고, 다음 주에도 오디션이 있고, 그 다음에도 뭔가가 있을 거야.”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깨진 부분이 있었다. 마치 그 말들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반복하는 것처럼. 자신을 최면에 걸리게 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들을 반복하다 보면, 어쩌면 언젠가는…”

준호가 말을 마치지 않았다. 대신 천장을 봤다. 마치 민준처럼.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종이를 보면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우리가 옆에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뭔가를 더할 수 없었다. 이것은 배우라는 꿈의 현실이었다. 아름다운 스크린의 뒤에 있는 어두운 현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민준은 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스물여섯 살의 얼굴이 갑자기 매우 늙어 보였다. 아니, 늙었다기보다는 지쳐 보였다. 삶에 지친 얼굴. 꿈에 지친 얼굴.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민준은 깨달았다.

‘나도 저렇게 될 거야.’

그 생각이 들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형, 근데 혹시… 그냥 그만두는 건?”

민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호는 웃음을 멈추고 민준을 바라봤다. 그 눈은 깊었다. 마치 바다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그만두고 뭐 해? 지금까지 뭘 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포기한 것들이 뭔데? 대학도 안 갔고, 직장도 안 잡았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다 이걸 위해서였어. 그런데 지금 그만두면? 그 모든 게 다 낭비가 되지 않아?”

준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처음 보는 감정이었다. 분노였다. 하지만 그것은 민준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그래서 나는 계속 간다. 2번이어도, 3번이어도, 엑스트라여도… 계속 간다. 왜냐하면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그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준호가 다시 천장을 봤다. 그리고 그 표정은 다시 자조적이 되었다.

## 3부: 밤의 침묵

밤 열 시.

우리와 준호가 떠나간 후, 민준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혼자였다. 침묵이 아니라, 무언가가 남아있는 상태의 혼자.

준호의 자조적인 웃음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가 나가면서 남긴 따뜻한 손길의 감촉이 팔에 남아있었다. 그들의 말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민준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SNS. 성준이의 계정. 자신도 왜 이렇게 자주 들어가는지 몰랐다. 하지만 들어갔다.

성준이는 금발로 염색했다. 새로운 스타일이었다. 확신 있는 스타일이었다.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신호였다.

새로운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스튜디오에서의 사진. 밝은 조명 아래에서. 웃고 있었다. 완벽한 웃음. 마치 무언가를 얻은 사람의 웃음. 아니,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의 웃음.

캡션을 읽었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나. 새로운 꿈. 감사합니다. #신인상 #주역 #영화 #행운”

민준의 손이 떨렸다.

‘주역?’

댓글 섹션을 열었다. 가득했다. 정말 가득했다.

“성준이 최고!”

“왜 이렇게 잘생겼어? 부러워 죽겠어.”

“진짜 미쳤어. 연기도 좋고 외모도 좋고. 이제 대박 나겠다.”

“성준이 화이팅!!! 꼭 주역 되어!!!”

“이렇게 좋은 소식이 있다니! 축하해요! 응원합니다!”

민준은 스크롤을 계속했다. 댓글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모두 같은 내용. 칭찬. 열광. 숭배.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민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자신의 SNS 계정을 열었다. 마지막 포스트는 한 달 전이었다.

“오늘도 화이팅!”

그 아래에는 5개의 좋아요가 있었다. 5개. 성준이의 포스트는 이미 3000개를 넘었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천장을 바라봤다. 희미한 형광등이 여전히 윙윙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어? 누구지?”

화면에 떴다: ‘알 수 없는 번호’

민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밤 열 시에 알 수 없는 번호?

일단 받았다.

“안녕하세요, 민 배우님?”

낮고 전문적인 목소리였다. 자신을 모르는 목소리였다.

“네… 누세요?”

민준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도 왜 떨리는지 몰랐다.

“저는 영화사 ‘프레임’ 제작팀의 캐스팅 디렉터입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민 배우님과 관련해서 프로젝트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세상이 멈췄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이 멈췄다.

‘프레임’은 유명한 영화사였다. 아니, ‘영화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로 큰 회사였다. 최근 개봉한 몇몇 대박 영화들이 모두 프레임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고?

“네, 네! 괜찮습니다. 말씀해주세요.”

민준이 대답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차분했다. 전문적이었다. 하지만 내부는 폭풍우였다.

“감사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희 사에서 준비 중인 영화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주제는… 음,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 작품의 주인공 역할을 맡을 배우를 찾고 있었어요.”

‘주인공’이라는 단어가 귀를 때렸다.

“저희가 몇몇 배우들을 보았는데, 당신의 영상 자료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찾던 그런 느낌이 당신에게서 났습니다.”

민준은 말할 수 없었다.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혹시… 저요? 주인공요?”

“네, 맞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계약 전에 미팅을 해야 하고, 테스트 촬영도 해야 하겠지만… 저는 당신이 이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따뜻한 웃음소리였다. 신뢰하는 웃음소리였다.

“내일 오후 2시에 저희 회사에 와 주실 수 있을까요?”

## 4부: 변화의 시작

전화가 끝났을 때, 민준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중력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또는 중력이 이중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위로 튕겨 올라가면서 동시에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느낌.

손가락이 떨렸다. 다리가 떨렸다.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민준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의 인생이 변했다는 것을. 이 순간, 이 전화 통화로. 그리고 그 변화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밤 열 시 십분.

민준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자신은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눈이 다른 것 같았다. 빛이 난 것 같았다.

휴대폰을 들었다. 성준이의 SNS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댓글을 달았다.

“축하해. 정말로.”

그리고 스크린을 닫았다. 성준이는 이제 자신의 경쟁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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