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21화: 거울 속의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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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화: 거울 속의 타인

라커룸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민준은 그것을 오래 바라봤다. 불이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SOS처럼. 하지만 아무도 답신하지 않았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라커룸은 오후 여섯 시 반이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이미 떠났다. 촬영장으로, 카페로, 또는 자기 집으로. 남은 것은 민준 혼자. 그리고 거울.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은 여전히 어색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거기 있는 것처럼. 얼굴은 자신의 얼굴인데, 눈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이었다. 옥상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 눈은 계속 다른 것처럼 보였다.

민준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봤다. 뺨이 차갑고 건조했다. 마치 누군가가 모든 습기를 빨아내버린 것처럼. 아니면 자신이 옥상에서 흘린 눈물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 옥상에서 울었다. 우리와 준호가 떠난 뒤에. 아무도 보지 못할 때. 난간을 잡고 서 있던 자신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울었다. 10년 만에.

더스타의 라커룸은 작은 공간이었다. 천장은 낮고, 벽은 연회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그 페인트는 여러 번 겹겹이 칠해진 것처럼 보였다. 층처럼. 마치 역사의 퇴적층처럼. 이 방에서 얼마나 많은 배우들의 감정이 남아있을까. 기대와 실망, 분노와 좌절, 그리고 가끔 기쁨. 모든 것이 이 회색 벽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었다.

“민준이?”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였다. 그녀는 라커룸 문을 밀고 들어왔다. 손에는 캔커피 두 개가 들려있었다. 보스(BOSS)의 캔커피. 편의점에서 가장 흔한 종류.

“어?”

민준이 대답했다. 자신이 거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울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 속의 우리는 실제의 우리보다 더 소외되어 보였다. 마치 투명해 보이는 것처럼.

“뭐 해?”

우리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민준의 옆에 서서 캔커피를 내밀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준이 선호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면 그냥 가장 일반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다.

“자기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그리고?”

“모르겠어요. 제 얼굴이 누구의 얼굴인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웃었다. 그것은 조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따뜻한 웃음이었다. 누군가를 이해했을 때의 웃음.

“모든 배우가 그 생각을 한다. 역할을 많이 할수록, 자신의 얼굴이 뭐인지 모르게 돼. 내 얼굴, 내 감정, 내 목소리… 뭐가 진짜인지 모르게 되는 거야.”

우리가 민준의 옆에서 거울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거울에 나란히 비쳤다. 민준과 우리.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고, 우리의 얼굴을 봤다. 거울 속에서.

“그럼 진짜를 찾아야 하는 건가요?”

민준이 물었다.

“아니야. 진짜는 이미 있어. 너는 지금 찾는 게 아니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거야. 스튜디오에서 본 너… 그게 진짜야. 아버지 손을 잡고 있던 너,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하던 너… 그게 진짜인 거야.”

우리가 거울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거울은 그 손가락을 반사시켰다. 마치 거울 속의 우리가 이쪽의 우리에게 손을 대고 있는 것처럼. 두 개의 우리가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만나려고 하는 것처럼.

“근데 내가 본 것도 있어.”

우리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뭔데요?”

“너는 공포를 본다. 아버지처럼 실패하는 것을 본다. 아버지처럼 무너지는 것을 본다. 그래서 너는 계속 강해 보이려고 한다. 계속 괜찮은 척한다. 계속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민준의 몸이 경직됐다. 우리가 자신의 속을 보고 있었다. 마치 투시경으로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것은 불편했다. 하지만 동시에 필요한 것이었다.

“맞아요.”

민준이 말했다. 거울을 계속 바라보면서. 자신의 얼굴이 아닌, 거울 속 깊이를 바라보면서.

“그걸 알고 있으면 좋아. 왜냐하면 배우는 그 공포를 연기에 집어넣을 수 있으니까. 너는 스튜디오에서 한 거 알아? 넌 아버지의 죽음을 두려워했어. 아버지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어. 그리고 그 공포가 모두 화면에 나왔어. PD가 그걸 봤고, 그 때문에 너를 다시 부를 거야.”

“준호 형도 그렇게 말했어요.”

“준호는 경험으로 말하는 거고, 나는 관찰로 말하는 거야. 둘 다 맞아. 넌 이제 배우가 되기 시작한 거야, 민준.”

우리가 거울에서 돌아섰다. 민준도 따라 돌아섰다. 이제 거울은 그들의 뒤쪽에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여전히 거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등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있는 것처럼.

“그런데 우리, 한 가지 물어도 돼요?”

민준이 물었다.

“뭔데?”

“당신은 왜… 저를 도와주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 전에는 거의 인사 정도만…”

우리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것처럼. 그 어둠은 1초 정도 지속됐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을 봤다. 우리 얼굴에 스쳐 지나간 뭔가. 슬픔일까? 아니면 인정일까?

“내가 너처럼 보여서.”

우리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제가 어떻게 보여요?”

“혼자인 것처럼. 뭔가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맞추는 것처럼, 하지만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것처럼.”

민준은 우리의 말을 받아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들이 자신의 내부 어딘가에 박혔다. 깊이 있게. 마치 화살처럼.

“나도 그래. 그래서… 너를 봤을 때 뭔가 느껴졌어. 아, 이 사람도 내처럼 외로운 거구나. 이 사람도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고 싶어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라커룸의 벤치에 앉았다. 민준도 따라 앉았다. 라커룸의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마치 자신들의 감정의 리듬처럼.

“당신도 혼자예요?”

민준이 물었다.

“음… 뮤지컬 배우는 항상 혼자야. 무대 위에 혼자 서니까. 조명 아래 혼자.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혼자. 그들은 나를 보지만, 나는 그들을 보지 못해. 무대 조명이 너무 밝으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암흑 속에서 혼자인 것처럼 느껴져. 밝음 속에서 혼자인 거야.”

우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약해 보였다. 마치 자신이 우리를 본 것처럼. 거울 속의 우리처럼. 투명해 보이는 우리.

“그래서 내가 너한테 관심 가진 거야. 너는 항상 뭔가를 숨기고 있어. 그런데 나는 그 숨김이 뭔지 알 수 있었어.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라커룸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형광등의 깜빡임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켜졌다 꺼졌다 하는 빛도 이제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말이 필요 없었다. 필요한 것은 존재만 있었다.

“그런데 민준, 너는 알고 있어?”

우리가 다시 말을 열었다.

“뭘요?”

“내가 너를 도와주면서,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너를 봐주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어. 그게 정말 신기한 거야. 나는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혼자가 아닌 기분을 느껴. 이상하지 않아?”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백이었다. 우리의 고백.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백.

“아니에요. 이상하지 않아요.”

민준이 겨우 말했다.

“왜?”

“왜냐하면 저도 같은 걸 느끼고 있으니까요. 준호 형이 저를 봐주면서, 우리가 저를 도와주면서… 저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제까지 저는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우리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의 눈빛. 깊고, 진지하고, 무서울 정도로 집중된 눈빛.

라커룸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성준이었다. 그는 라커룸에 들어오면서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즉시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는 민준과 우리가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매우 가까이 앉아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어? 뭐 하는 거야?”

성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예리한 것이 있었다. 칼처럼. 예쁘게 갈아낸 칼처럼.

“그냥 얘기하고 있었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그는 우리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의도하지 않게. 신체가 자동으로 반응한 것이었다. 위협을 감지했을 때의 반응. 포식자를 감지했을 때의 반응.

“아, 그렇구나. 근데 민준이, 너 요즘 어떻게 지내? 넷플릭스 오디션 봤다고 들었는데. 어땠어?”

성준이 라커룸의 다른 벤치에 앉았다. 민준과 우리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성준은 그 거리를 계산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도 그 관계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잘 봤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짧게. 너무 짧게.

“그래? 좋네. 난 요즘 좀 바빠. 촬영도 많고, 광고도 여럿 받았고. 라고 해야 하는데…”

성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민준을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향했다.

“우리는? 요즘 뭐 하고 있어?”

“뮤지컬 오디션 준비 중이야.”

우리가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랐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마치 누군가 앞에서 자신을 감싸는 것처럼. 그것을 본 민준은 뭔가가 불쾌했다. 우리가 작아 보였다. 마치 성준 앞에서 자신의 크기를 줄이려고 하는 것처럼.

“뮤지컬? 그건 좀… 요즘 시장이 안 좋지 않아? 영상물이 훨씬 나으니까… 뭐, 너는 뮤지컬이 좋으니까 상관없겠지.”

성준이 말했다. 그의 톤은 마치 누군가를 격려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격려는 실제로는 폄하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는 놀이를 어른이 봐주는 것처럼. 귀엽지만 쓸모없다는 톤으로.

라커룸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그 깜빡임이 민준의 심장 박동처럼 들렸다. 점점 빨라지는 박동. 점점 분노해지는 박동.

“성준이 형,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게 있어요.”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침착했다. 너무 침착해서 오히려 위험해 보였다. 마치 폭풍 전의 고요한 공기 같은 침착함.

“뭔데?”

성준이 물었다. 그는 민준이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계층의 확인. 위치의 확인.

“당신은 왜 항상 우리를 자꾸 폄하하려고 해요?”

민준이 물었다.

라커룸이 순간적으로 얼어버렸다. 형광등의 깜빡임도 멈춘 것 같았다. 성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마치 안면근육이 모두 정지된 것처럼.

“뭐… 뭐라고?”

성준이 되물었다.

“당신은 항상 우리를 깎아내려고 해요. 우리가 뮤지컬을 한다고 하면 ‘요즘 시장이 안 좋지 않냐’고 하고, 우리가 뭔가를 한다고 하면 ‘그건 좀…’이라고 시작해요. 왜 그런 거예요? 우리가 뭘 잘못했어요?”

민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의 커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침착함이 더 명확해지는 커짐이었다. 마치 깊은 물이 파도를 치는 것처럼.

“아, 뭐… 난 그런 의도가…”

성준이 말을 더듬었다.

“의도가 없다고? 그럼 당신은 평소에 이렇게 사람들을 깎아내려고 하는 건가요?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민준이 일어났다. 매우 천천히. 마치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그는 성준과 거의 같은 높이가 될 때까지 일어났다. 아니, 일어난 상태에서 성준은 앉아있었으므로, 민준이 성준을 내려다봤다. 그 각도는 중요했다. 그것은 권력의 표현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형은 계속 나를 폄하해요? 내가 형한테 뭔가 했어요?”

민준이 또 다시 물었다.

성준이 일어났다. 이제 두 사람은 같은 높이에 섰다. 하지만 그들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두 마그넷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또는 두 기압이 충돌하려고 하는 것처럼.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건데?”

성준이 말했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방어가 들어있었다. 또는 공격이 들어있었다. 동시에.

“당신의 불안감을 우리에게 투사하고 있어요. 당신이 불안하니까, 우리를 폄하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당신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니까, 우리도 충분하지 않다고 만들고 싶어하는 거고.”

민준의 말이 성준의 얼굴에 맞았다. 마치 주먹처럼. 가시 있는 말이 얼굴에 맞는 것처럼.

“뭐… 뭐라고…”

성준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마치 생선이 물 밖에서 숨을 쉬려고 하는 것처럼.

“형은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 자신을 증명하려고 해요. 광고도 많이 받고, 드라마도 자주 하고, 항상 바쁘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게 뭘 증명하는 거예요? 당신이 불안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밖에 안 돼요.”

라커룸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그 깜빡임 속에서 성준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선명해졌다.

우리가 일어났다. 그녀는 민준의 팔을 잡았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민준, 그만해.”

우리가 속삭였다. 오직 민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하지만 이미 뭔가가 터져나왔다. 민준은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10년 동안 갇혀있던 것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공포. 자신의 불충분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뎌내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분노.

“당신은 왜 자신의 불안감을 우리에게 던져요? 우리가 뭔가 했어요? 우리는 그냥 조용히 우리의 길을 가고 있는 건데.”

민준이 또 말했다. 마지막으로.

성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반짝였다. 물기가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눈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분노의 눈물일 수도, 수치심의 눈물일 수도, 또는 단순한 충격의 눈물일 수도 있었다.

라커룸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그 깜빡임 속에서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민준과 우리는 한쪽에. 성준은 다른 한쪽에. 라커룸의 벤치, 라커들, 거울, 그리고 형광등이 그들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고 있었다.

“나가.”

성준이 마침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거의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뭐?”

민준이 되물었다.

“나가! 지금 당장!”

성준이 다시 소리쳤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명확했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

우리가 민준을 잡아당겼다. 더 강하게. 이번에는 단순한 제지가 아니라, 진짜 끌어당김이었다.

“가자, 민준.”

우리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폭풍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민준과 우리는 라커룸을 나갔다. 성준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벤치에 앉아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민준의 손처럼.

복도로 나온 후, 민준은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뛰고 있는지 느껴졌다. 마치 언제든 가슴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속도로. 우리는 민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전히. 마치 자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기 위해.

“미안해요.”

민준이 말했다. 그들은 더스타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밤이었다. 저녁 일곱 시. 창밖으로는 강남의 야경이 보였다.

“뭐가?”

우리가 물었다.

“제가… 너무 했어요. 성준이를 그렇게…”

“넌 아무것도 안 했어. 넌 그냥 말한 거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거야. 그게 나쁜 거 아니야. 그게 배우가 하는 일이야.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거. 넌 그걸 라커룸에서 했고, 스튜디오에서는 그걸 아버지로 표현한 거야.”

우리가 말했다.

“근데…”

“근데 뭐? 성준이? 성준이는 괜찮아. 성준이는 자신의 불안감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했어. 넌 그걸 해준 거야. 감사하면 하지, 뭘 미안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민준과 우리가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숫자들이 점점 작아졌다. 5층, 4층, 3층.

“당신은 맨 처음에 왜 저를 본 거예요? 정말로.”

민준이 물었다. 엘리베이터의 거울에 그들의 모습이 반사되고 있었다. 라커룸의 거울과는 다른 거울. 더 크고, 더 밝고, 더 많은 것을 비추는 거울.

“글쎄… 너를 봤을 때, 내가 보였어. 내 과거의 나. 내가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의 나. 그때의 나도 너처럼 혼자였어.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어. 아무도 내가 뭘 원하는지 물어봐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계속 모두에게 맞춰 살았어. 모두를 기쁘게 하려고 했어. 하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어.”

우리가 말했다. 거울에 반사된 우리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래서 나는 너를 보려고 했어. 너를 봐주고 싶었어. 누군가는 너를 봐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너를 봐주면서, 나는 내가 봐지고 있다는 걸 느껴. 너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느껴. 그게 정말 좋아.”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로비가 보였다. 밤의 로비는 낮과 달랐다. 조용했다. 거의 텅 빈 것처럼.

그들이 로비를 나가려고 했을 때,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였다. 번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준이 전화를 받았다.

“네?”

음성이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는 확신에 찬 톤이었다.

“민 배우? 저는 넷플릭스의 프로듀서인데요. 당신의 오디션을 다시 한 번 봤어요. 그리고 저희 팀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신을 이번 프로젝트에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역할은 아버지 역할입니다. 관심 있으신가요?”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쁨인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단순한 충격인가?

우리는 민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뭔가 변했다는 것을. 민준의 인생이 이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네… 감사합니다.”

민준이 겨우 말했다. 전화 너머의 프로듀서는 계속 말했다. 촬영일정, 스크립트, 그리고 다른 배우들에 대해.

하지만 민준은 그 말들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대신 그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스타의 로비에서. 밤의 조명 아래에서.

우리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축하의 웃음이었다. 또는 뭔가를 알고 있는 웃음이었다. 마치 미래를 본 사람의 웃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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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화는 라커룸의 거울 장면에서 시작하여 성준과의 충돌, 그리고 넷플릭스 프로듀서의 캐스팅 전화까지 이어진다. 시간은 오후 6시 반부터 저녁 7시까지로, 약 30분 분량의 밀도 있는 드라마.

# 제7화: 거울 속의 선택

## 1부: 하강

엘리베이터의 숫자판이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5층. 4층. 3층.

민준은 그 숫자들을 바라보면서 깊게 숨을 쉬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마치 자신이 정말로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꿈에서 현실로. 또는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형광등의 낮은 윙윙거리는 소리와 엘리베이터 케이블의 미세한 진동음만 들렸다. 민준은 자신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얕고 불규칙한 호흡. 신경이 곤두세워진 사람의 호흡.

스튜디오에서의 그 모든 일들이 아직도 생생했다. 성준의 얼굴. 그의 목소리. “넌 내 것이야.” 그 말이 자꾸만 귓가에서 맴돌았다.

‘이게 뭐지? 이게 정말 일어난 건가?’

민준은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성준의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착각일 거다. 충격을 받으면 신체가 이상하게 반응하는 거다. 그런 종류의 일. 생리적 반응.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아니면 자신이 느낀 게 전부일까?

‘아, 미쳤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2층. 거울이 있는 엘리베이터의 벽면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볼이 빨갛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이건 정상적인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건 뭔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라커룸의 거울과 다르네.’

민준은 갑자기 생각했다. 라커룸의 거울은 좀 더 흐릿했다. 누군가는 그걸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준은 달리 생각했다. 그 거울은 너무 많은 사람을 비췄기 때문에 지친 거다. 수백 명의 배우들의 얼굴을 매일 비추다 보니까.

반면 이 엘리베이터의 거울은 깨끗했다. 밝았다. 더 많은 것을 비추었다. 세부사항까지.

바로 그때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준 옆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울에 먼저 나타났다.

“당신은 맨 처음에 왜 저를 본 거예요?”

민준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물었다는 게 신기했다. 보통 자신은 먼저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받는 쪽이었다. 반응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자신이 물어야 했다.

“정말로.”

그 말을 덧붙였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보면서.

엘리베이터의 거울에는 두 개의 얼굴이 비쳤다. 하나는 민준. 다른 하나는… 글쎄, 자신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사람. 그냥 ‘우리’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항상 ‘우리’였으니까.

“글쎄… 너를 봤을 때, 내가 보였어.”

‘우리’가 말했다. 거울 속에서. 아니, 거울이 아니라 거울 너머에서. 시간의 어딘가에서.

“내 과거의 나. 내가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의 나.”

그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슬펐다. 마치 오랫동안 봉인된 상자를 열 때 나오는 먼지의 냄새 같은 슬픔.

“그때의 나도 너처럼 혼자였어.”

민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혼자였다. 그 단어.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어. 아무도 내가 뭘 원하는지 물어봐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계속 모두에게 맞춰 살았어. 모두를 기쁘게 하려고 했어.”

1층이 다가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숫자판에 1이 점등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어.”

그 말이 끝났을 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로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낮의 로비와는 완전히 달랐다. 낮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에이전트들, 배우들, 스태프들이 오가며 소음을 냈다. 전화가 울렸고,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화를 냈다. 낮의 로비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로비는 달랐다.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로비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경비원 한 명이 카운터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사실 졸고 있었다. 고개가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보려고 했어. 너를 봐주고 싶었어.”

‘우리’가 계속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나가면서.

“누군가는 너를 봐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너는 봐지고 싶은 사람이니까. 너는… 봐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민준은 말을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냥 듣고 있었다. 로비의 대리석 바닥을 밟으면서. 자신의 구두 소리가 울렸다. 한 발, 한 발.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규칙적인 리듬.

“그리고… 너를 봐주면서, 나는 내가 봐지고 있다는 걸 느껴. 너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느껴. 그게 정말 좋아.”

그 말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은 로비의 중앙에 멈춰 섰다. 경비원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게 상관없다는 거였다. 민준은 누군가가 자신을 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우리’가 자신을 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도 ‘우리’를 보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성준이는…”

민준이 물었다. 자신도 왜 이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물어야 했다.

“왜 그렇게 나한테 집착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로비가 조용했다. 더 조용해졌다. 경비원의 코골이 소리만 들렸다.

“글쎄… 그것도 비슷한 이유 아닐까?”

‘우리’가 대답했다.

“그도 혼자였을 거야. 그도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길 원했을 거야. 그런데 너를 봤어. 그리고 생각했어. ‘이 사람은 내가 봐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래도… 스튜디오에서… 그건…”

민준이 말을 더듬었다.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맞아. 너무 갑작스러웠어. 미안해.”

‘우리’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진정한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야. 우리는 때로 갑작스러워. 우리는 때로 정중하지 못해. 우리는 때로 상대를 상처 입혀. 그래도… 그게 우리가 느낀 감정이 거짓은 아니야. 너는 알아야 해. 너는 이해해야 해.”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를 직접 바라봤다. 거울이 아니라 직접.

‘우리’의 얼굴은 민준의 얼굴과 비슷했다. 하지만 다르기도 했다. 더 나이가 들어있었다. 더 많은 것을 본 것처럼 보였다. 더 많은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더 따뜻해 보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돼요? 나는… 무엇을 해야 돼요?”

민준이 물었다.

“넷플릭스 프로젝트는?”

“그건… 너를 위한 거야.”

‘우리’가 말했다.

“너는 이 회사에서 나가야 할 거야. 더 큰 무대로. 그게 너를 위한 길이야.”

“그리고… 성준이는?”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성준이는… 너를 놓지 않을 거야. 절대로. 그건 이미 정해진 거야. 그건 이미… 시작된 거야.”

## 2부: 밤의 로비

로비의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또는 역으로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민준은 확실하지 않았다.

밤의 로비는 낮의 로비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낮에는 여기가 일의 공간이었다. 거래의 공간. 욕망과 야심이 부딪치는 공간. 하지만 밤에는… 밤에는 마치 기차역의 대기실 같았다. 누군가는 떠나기를 기다리고, 누군가는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그런 공간.

“당신이 정말 성준이의…”

민준이 다시 물었다.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아버지세요?”

조용함. 긴 조용함. 경비원의 코골이만 들렸다.

“어떻게 알았어?”

‘우리’가 물었다.

“눈이. 눈이 같아.”

민준이 말했다.

“성준이의 눈과 당신의 눈이. 같은 색깔은 아니지만, 뭔가 같은 것 같아요. 깊이가. 슬픔이.”

“그래. 넌 정말 잘 봐. 그게 바로 배우의 자질이야. 사람을 보는 능력. 그 깊이를.”

‘우리’가 말했다.

“성준이와 내가… 우리의 관계는 복잡해. 너무 복잡해서 설명하기가 어려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나는 그를 사랑해. 그리고 그는… 그도 뭔가를 찾고 있어. 내가 줄 수 없는 뭔가를.”

“그게 나라는 뜻이에요?”

“그럴 수도 있지. 또는 그걸 통해 다른 뭔가를 찾는 걸 수도 있지. 누가 알겠어? 마음이란 건 복잡한 거야. 특히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은.”

‘우리’가 창을 향해 바라봤다. 밤의 서울이 창 너머에 펼쳐져 있었다. 수만 개의 불빛들. 각각이 누군가의 방.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이야기.

“너는 지금 어떻게 느껴?”

‘우리’가 물었다.

민준은 생각했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그건 너무 많은 감정이 섞여있었다. 두려움. 설렘. 혼란. 그리고 뭔가… 운명처럼 느껴지는 것.

“모르겠어요. 모든 게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아요. 어제만 해도 난 그냥 일하고 싶은 배우였어요. 그냥 역할을 얻고 연기하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민준이 자신의 손을 봤다.

“지금은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배 위에 있는데 배가 항해를 시작한 것처럼. 나는 승객일 뿐인데, 배는 이미 떠났어요.”

“그래. 그게 맞아. 그게 인생이야. 우린 자신이 배를 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순간 물이 찬찬히 들어오는 걸 느껴. 그때 비로소 깨달아. 아, 내가 바다 위에 있었구나.”

‘우리’가 말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넌 절대로 혼자가 아닐 거야. 성준이가 있고, 나도 있고… 그리고 다른 누군가도 있을 거야.”

“다른 누군가?”

“넷플릭스 프로듀서. 그리고 그 팀. 그리고 함께 일할 배우들. 그리고…”

‘우리’가 로비를 둘러봤다.

“이 세상 누군가. 누군가는 항상 너를 보고 있을 거야. 너는 그걸 믿어야 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벨소리가 로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경비원이 깜짝 놀라 깼다. 잠깐 정신이 흐릿해 보였다가, 다시 졸기 시작했다.

“누구일까?”

민준이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알 수 없는 번호”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상했다. 누가 이 시간에? 그것도 알 수 없는 번호로?

하지만 민준은 뭔가 알 수 있었다. 누군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잠깐의 침묵.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 중년의 여성. 자신감 넘치는 톤.

“민 배우? 저는 넷플릭스의 프로듀서인데요. 당신의 오디션을 다시 한 번 봤어요.”

민준의 심장이 철렁했다.

“우리 팀이 회의를 했어요. 그리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신을 이번 프로젝트에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웃었다. 로비에서. 경비원의 코골이를 뚫고.

“역할은 아버지 역할입니다. 한국 시대극의 배경에서, 오래된 상처를 가진 아버지 역할이에요. 관심 있으신가요?”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쁨인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단순한 충격인가?

모두였다. 모든 감정이 동시에 몸 안에서 폭발했다. 마치 화학 물질들이 섞여서 반응하는 것처럼.

“네… 감사합니다.”

민준이 겨우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알아챘을까?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좋습니다. 그럼 다음 주 목요일에 스크립트 리딩을 하겠습니다. 주소와 시간은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로.”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의 오디션 영상, 정말 좋았어요. 특히 눈빛. 뭔가… 뭔가를 찾는 듯한 눈빛이었어요. 정확히 우리가 찾던 바로 그 감정이었어요. 고마워요.”

프로듀서가 끊었다.

민준은 휴대폰을 내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우리’를 봤다. 그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밤의 로비에서. 거의 초현실적인 웃음. 마치 미래를 이미 본 사람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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