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16화: 자신을 던지는 법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Prev16 / 50Next

# 제16화: 자신을 던지는 법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는 너무 조용했다.

민준과 우리, 준호 세 사람이 탄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층수를 표시하는 숫자들이 차례대로 사라졌다. 5층, 4층, 3층. 거울 같은 엘리베이터 벽에는 세 사람의 모습이 반복되어 비쳤다. 거기는 마치 무한으로 연결된 또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현실의 세 명이 있고, 거울 속의 세 명이 있고, 그 거울 속 거울 속의 또 다른 세 명이 있고…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은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세한 떨림이었지만, 자신은 느낄 수 있었다. 신경이 자신의 손가락 끝까지 도달해 있었다. 마치 고주파 신호처럼. 아버지와의 장면. 그 말이 자꾸만 반복되었다.

시나리오에는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다루는 장면.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는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말하는 장면.

“숨을 쉬어.”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민준의 옆에 서 있었다. 어떤 때문인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의 존재는 매우 크게 느껴졌다. 마치 그녀가 실제보다 더 큰 사람이었던 것처럼.

“숨을 깊게 쉬어. 코로 들이마셔. 그리고 입으로 내쉬어. 천천히.”

민준은 따라했다. 코로 들이마셨다. 엘리베이터 안의 냄새가 들어왔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냄새, 그리고 어딘가 소독약 냄새. 그리고 우리의 향수. 라일락 향이었나.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세세한 감각이 아니라, 현실의 냄새였다.

“그 장면을 생각해 봐. 시나리오를 읽을 때 넌 뭘 느꼈어?”

우리가 물었다. 그 질문에는 여러 가지 함정이 있었다. 첫째, 그것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명령이었다. 둘째, 그것은 민준이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도록 강요했다. 셋째, 그것은 민준이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두려움.”

민준이 대답했다. 목소리는 작았다.

“뭐 때문에 두려워?”

“아버지가… 진짜처럼 느껴질까봐. 그 장면을 하는 동안 아버지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봐.”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민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척추를 따라 손가락을 훑고 내려간 것처럼. 이것이 바로 준호와 우리가 원했던 것인가.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 약함을 드러내는 것.

“그 두려움을 가져가.”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엘리베이터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아니, 신의 목소리는 이렇게 부드러웠을까.

“그 두려움이 너의 무기야. 넷플릭스에서 그 두려움을 보면, 그들은 알 거야. 너는 진짜구나. 너는 자신의 가장 깊은 것까지 털어내는 배우구나. 그걸 알 거야.”

지하 2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렸다. 주차장의 냄새가 들어왔다. 차량 기름, 콘크리트의 습기, 그리고 어딘가 금속 냄새. 준호의 차는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검은색 제네시스. 배우들이 타고 다니는 차의 전형적인 모델이었다.

“타.”

준호가 명령했다. 민준과 우리는 차에 탔다. 시간은 오후 2시 47분이었다. 13분이 남았다.

차 안에서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운전만 했다. 강남로를 빠져나와 테헤란로로 진입했다. 밤처럼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 불빛이 연속으로 지나갔다. 깜빡, 깜빡, 깜빡. 마치 신호등 같은 리듬으로.

“민준.”

우리가 뒷좌석에서 민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 안에서 매우 명확했다.

“응?”

“나한테 미안한 거 말아.”

그 말이 나왔을 때, 민준은 자신의 가슴이 다시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미안함. 그것은 자신이 가장 많이 느끼고 있던 감정이었다. 우리를 상처 입힌 것, 준호를 외롭게 한 것, 자신을 고립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

“나한테 미안하면 안 돼. 넌 넷플릭스에 가서 그 무대에 올라가. 그리고 넌 아버지를 만난다고 생각해. 그리고 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해. 그게 나한테 하는 사과야. 이해해?”

민준은 말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눈이 다시 젖었다. 차 유리에 서울의 야경이 반사되고 있었다.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네온사인이 켜지고, 사람들이 다시 밤거리로 나온다. 그것이 서울의 리듬이었다. 낮과 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리듬.

강남 테헤란로의 넷플릭스 빌딩 건물이 보였다. 유리로 된 거대한 건물. 그 안에는 수백 개의 창문이 있었고, 각 창문 뒤에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었다. 프로듀서, 감독, 캐스팅 디렉터들. 그리고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민준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민준이 아니라 민준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1분 남았다.”

준호가 말했다. 자동차는 빌딩 앞의 주차장에 들어섰다. 회색 포장도로. 그 위에 흰색 주차 선이 그어져있었다. 민준은 자신이 그 선 안에 있는 자동차처럼 느껴졌다. 경계 안에 갇혀있는. 하지만 그 경계를 벗어날 수 없는.

“내려.”

준호가 말했다. 민준은 내렸다. 우리도 내렸다. 준호는 자동차 키를 맡겼다. 발렛 파킹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함께 빌딩 로비로 들어갔다. 로비는 매우 현대적이었다. 흰색 벽, 검은색 바닥, 그리고 거대한 넷플릭스 로고. 로비의 냄새는 새 건물의 냄새였다. 시멘트, 유리 클리너, 그리고 에어컨 냄새가 섞여있었다.

“이름이 뭐죠?”

입구의 보안요원이 물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질문이었다. 이 건물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에게 하는 질문.

“민준. 배우 민준입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떨림에는 무언가가 섞여있었다. 두려움만이 아니라, 결연함도.

보안요원은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3층입니다. 캐스팅 디렉터 오피스. 엘리베이터 타시고 3층을 누르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 다시 엘리베이터였다. 이 도시의 배우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인생을 올라가고 내려간다. 그 사이의 몇 초 동안 모든 것이 결정된다. 합격, 불합격. 성공, 실패. 삶, 죽음.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마치 자신의 손에 불을 붓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따뜻함이 민준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어깨에 도달했다. 그리고 가슴에 도달했다.

“너는 할 수 있어.”

우리가 속삭였다. 그 말은 매우 작은 목소리였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마치 외침처럼 들렸다.

문이 열렸다. 3층.

복도는 매우 깨끗했다. 양쪽에 문들이 있었다. 각 문마다 이름판이 붙어있었다. 프로듀서, 감독, 캐스팅 디렉터.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의 문 앞에 민준은 서 있었다.

“나 기다릴게.”

우리가 말했다. 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넌 들어가. 그리고 넌 자신을 던진다. 모든 것을 다.”

민준은 문을 두드렸다. 손가락이 나무 문을 세 번 두드렸다. 톡, 톡, 톡. 그 소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와 겹쳤다.

“들어오세요.”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캐스팅 디렉터였을 것이다.

민준은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세 명이 있었다. 여성 한 명(아마도 캐스팅 디렉터), 그리고 두 명의 남자(프로듀서와 감독으로 보였다). 그들은 모두 민준을 바라봤다. 그 시선은 매우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영혼을 저울에 달고 있는 것 같은 무게감.

“안녕하세요. 저는 더스타 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민준입니다.”

민준이 인사를 했다. 전형적인 오디션 인사였다. 수천 번 반복한 그 인사.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가 달랐다. 그 인사 뒤에 옥상이 있었다. 그리고 준호의 손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민준. 우리는 이 드라마의 캐스팅을 맡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아시겠죠?”

캐스팅 디렉터가 물었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와의 장면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다루는 장면.”

“맞습니다. 그 장면을 해주시겠어요?”

민준은 깊게 숨을 쉬었다. 그 숨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옥상의 바람, 준호의 손, 우리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민준의 눈이 방 안의 물체들을 보기를 멈췄다. 의자, 책상, 창문 같은 것들이 모두 희미해졌다. 대신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나타났다. 옥상의 난간, 거울 앞의 의자, 그리고 준호의 얼굴. 모두가 동시에 보였다. 그것은 마치 여러 개의 영화가 한 번에 상영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영화에서, 민준은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죽어있었다. 10년 전에 떠난 그대로.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민준 앞에 앉아있었다. 거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마치 그의 유령이 옥상의 차가운 철재 난간을 지나 여기까지 따라온 것처럼.

“아버지…”

민준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 젊은 목소리였다. 아니, 더 절박한 목소리였다.

“내가…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

민준의 몸이 앞으로 구부러졌다. 자신도 모르게.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척추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그 자세는 오디션 룸 안에서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감정의 자세였다. 거짓 감정이 아니라, 진정한 절망의 자세.

“너는 나한테 말해줄 수 없었어.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 왜 나한테 하나도 설명해주지 않고 떠났어?”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시나리오에 있던 대사가 아니었다. 민준이 즉흥적으로 만든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는 그 후로 계속 미안했어. 왜 내가 너를 구하지 못했는지. 왜 내가 너한테 충분하지 못했는지. 왜 나는 너를 돌릴 수 없었는지…”

민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연기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10년을 참아온 눈물이었다. 그 눈물이 자신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옆에서 캐스팅 디렉터는 자신의 펜을 놓았다. 감독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프로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민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왜… 왜 나한테 작별을 고하지 않았어?”

민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크기로. 마치 자신이 옥상의 난간 위에 있고, 준호와 우리와 세상 모두가 사라진 그런 외로움의 목소리로.

“내가… 내가 배우가 되고 싶었어. 넌 그걸 알았어. 넌 나한테 ‘해봐’라고 했어. ‘넌 다를 수 있어’라고 했어. 그런데 나는… 나는 할 수 없었어. 나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어. 그리고 난 계속 생각했어. 이게 내 탓인가. 내가 충분하지 못한 탓인가. 아니면… 아니면 넌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내가 실패할 거라는 걸.”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방 안의 세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민준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거기 앉아서, 자신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민준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옥상에서는 자신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의 확인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그것을 받지 못한 그 절망 때문에, 자신은 옥상에 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방 안에서, 자신은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준호가 밖에 있다. 우리가 밖에 있다.

그들이 자신을 본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상처 입어있는지.

민준은 눈을 들었다. 그리고 캐스팅 디렉터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캐스팅 디렉터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민준이 무언가 매우 중요한 것을 말한 것처럼.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우리입니다.”

캐스팅 디렉터가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옆의 프로듀서와 감독을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역할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감독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마치 영화에서 중요한 결말을 전하는 배우의 목소리처럼.

민준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떨어졌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자신이 붙었다는 의미인가.

“주연입니다. 이 드라마의 주연 역할. 당신이 하길 원합니다.”

프로듀서가 말했다.

그 순간, 민준의 세상이 흔들렸다.


문이 열렸을 때, 우리와 준호는 즉시 알아챘다. 오디션 룸의 문이 열렸을 때, 민준의 얼굴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기쁨인가, 충격인가, 아니면 무언가 완전히 다른 것인가.

민준은 복도에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의 눈물이 나왔다.

민준의 얼굴은 완전히 열려있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다. 두려움, 슬픔,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어떤 빛.

“어?”

민준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민준을 안았다. 그녀의 팔이 민준의 목을 감쌌다. 마치 자신이 민준을 놓치면 그가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절박함으로.

“축하해.”

준호가 민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무언가 따뜻한 것이 그 안에 있었다.

민준은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단지 우리의 팔 안에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깨어날 수 있는 꿈 속에 있는 것처럼.

“넷플릭스 주연이야, 민준.”

우리가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눈물 때문에 떨리고 있었다.

“너는 했어. 넌 했어, 민준.”

그 순간, 민준은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옥상의 난간에서 떠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순간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들이 지금 자신을 안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3층에서 1층으로. 로비로. 그리고 밖으로. 서울의 밤으로.

그 밤은 어제와 같은 밤이었지만, 민준의 눈에는 완전히 다른 밤으로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눈을 다시 열어준 것처럼.

# 그날 밤의 기적

## 1부: 오디션 룸

민준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손가락 끝부터 팔뚝까지 떨리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이런 순간을 겪었다. 오디션 룸에서의 침묵, 심사위원들의 표정,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거절의 말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캐스팅 디렉터의 얼굴을 바라봤을 때, 민준은 확실히 무언가를 감지했다. 그녀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는 여전히 불명확했지만, 최소한 무관심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민준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이 한 마디를 내뱉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는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힘을 써야 했는지를 아무도 모를 것이다.

캐스팅 디렉터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고, 입가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민준이 무언가 매우 중요한, 기대하지 않은 무언가를 말한 것처럼.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캐스팅 디렉터가 천천히 말했다. 그녀의 음성은 명확했고, 목소리 톤에는 진정성이 묻어났다.

“…우리입니다.”

그 말이 공중에 떠있는 동안, 민준의 심장이 한 박자를 건너뛰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건 전형적인 거절의 멘트가 아니었다. 거절할 때는 보통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같은 완곡한 표현으로 시작하는데…

캐스팅 디렉터는 옆의 프로듀서와 감독을 바라봤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사전에 협의된 움직임인 듯, 자연스럽고도 조율된 제스처였다.

“이 역할은…”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고, 신중했다. 마치 영화의 중요한 결말을 전하는 배우의 목소리처럼, 매 음절마다 무게감이 있었다.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민준의 뇌가 정지했다.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자신이 떨어졌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혹시?

아니다. 떨어졌을 거야. 항상 떨어져왔잖아.

지난 삼 년 동안 몇 십 번의 오디션을 봤는가. 그 중에 붙은 것은 몇 개나 되는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그마저도 대부분 단역이거나 조연이었다. 주연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던 매니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고 있었다.

“주연입니다.”

프로듀서가 갑자기 말했다. 민준의 생각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목소리로.

“이 드라마의 주연 역할입니다. 당신이 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요.”

민준은 프로듀서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봤지만, 그 말의 의미가 뇌에 도달하는 데는 몇 초가 더 걸렸다. 마치 음성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되고 있는 것처럼, 지연된 신호처럼.

주연. 넷플릭스 드라마의 주연.

그 순간, 민준의 세상이 완전히 흔들렸다.

오디션 룸의 벽이, 천장이, 바닥이 모두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니, 회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중심축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깊은 우물에 빠지면서 위아래의 개념을 잃어버리는 그런 느낌.

민준은 입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건조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아니 지난 몇 년 동안 견뎌온 모든 긴장, 모든 불안, 모든 절망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나왔다. 그건 자신의 목소리였지만, 마치 남의 것처럼 들렸다.

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믿기 시작해야겠네요.”

## 2부: 현관 밖

문이 열렸을 때, 세은과 준호는 즉시 뭔가를 감지했다.

오디션 룸의 문이 열리고 민준이 복도로 나오는 순간, 그의 얼굴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세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에 들고 있던 커피가 떨렸다.

무언가 다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다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기쁨인가? 충격인가? 좌절인가? 아니면 무언가 완전히 다른 것인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민준은 복도를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이 불규칙했다. 마치 중력을 잃어버린 우주 비행사처럼.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세은의 눈물이 나왔다.

“어?”

준호가 일어서며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완성되지 않았다.

민준의 얼굴은 완전히 열려있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다. 두려움, 슬픔,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어떤 빛. 마치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본 것처럼.

세은이 달려갔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본능적으로.

그녀의 팔이 민준의 목을 감쌌다. 마치 자신이 민준을 놓치면 그가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절박함으로. 마치 이 순간이 꿈이고, 손을 놓으면 깨어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축하해.”

준호가 민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무언가 따뜻한 것이 그 안에 흐르고 있었다. 오랜 친구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감정의 온도였다.

민준은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단지 세은의 팔 안에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깨어날 수 있는 꿈 속에 있는 것처럼. 꿈이 깨질까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넷플릭스 주연이야, 민준.”

세은이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눈물 때문에 떨리고 있었다.

목과 가슴을 통해 울음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울음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것들도 함께 울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모든 고생, 모든 거절, 모든 야밤의 눈물들.

“너는 했어. 넌 정말 했어, 민준.”

그 순간, 민준은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옥상의 난간에서 떠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이후 계속해서 오디션을 본 것도, 이 순간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지금 자신을 안고 있는 이 사람들이었다.

세은의 팔, 준호의 따뜻한 손길. 이것들이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다.

“고마워.”

민준이 겨우 속삭였다.

그 한 마디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 3부: 밤의 변화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3층에서 2층으로. 그리고 1층으로. 로비로. 그리고 마침내 밖으로.

서울의 밤이 그들을 맞이했다.

밤 11시. 거리는 여전히 밝았다. 네온사인들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고, 늦게까지 깨어있는 도시의 숨소리가 들렸다. 자동차들의 혼잡한 음성,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누군가의 웃음소리.

그 밤은 어제와 같은 밤이었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별들이 하늘에 떠있었다. 같은 콘크리트 위를 걷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의 눈에는 완전히 다른 밤으로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눈을 다시 열어준 것처럼.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거리의 불빛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나? 도시의 소음이 이렇게나 생동감 있었나?

“한숨 쉬자.”

준호가 말했다. 그들은 빌딩을 나와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의 형광등 아래에서, 민준은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봤다.

얼굴이 부었다. 눈이 빨갛고, 코가 약간 나부끼고 있었다. 입술은 창백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슬픔과 고통을 견뎌낸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빛.

“뭘 봐?”

세은이 옆에서 물었다. 우유를 들고 있었다.

“그냥… 내 얼굴이.”

민준이 대답했다.

“뭐? 못생겼나?”

세은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야. 그냥…”

민준은 말을 맺지 못했다. 어떻게 설명할까? 이 얼굴이 옛날 자신의 얼굴과 어떻게 다른지, 그것을 어떻게 말할까?

옛날 자신의 얼굴은 죽어있었다. 아직 살아있지만, 마치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그런 얼굴. 눈동자에 어떤 목표도, 어떤 빛도 없었던 그런 얼굴.

하지만 지금의 이 얼굴은…

살아있었다.

“너 뭔가 달라졌어.”

준호가 옆에서 말했다. 그도 민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응?”

“모르겠는데, 뭔가 눈빛이 다르달까.”

그렇다. 그게 맞다. 눈빛이 다르다.

그 눈빛은 희망이었다.

## 4부: 복귀

그들은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밤의 한강은 조용했다. 낮의 북적거림은 사라졌고, 오직 물의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대신 불빛들이 물 위에 비쳐 반짝였다. 여의도의 불빛, 강남의 고층 빌딩들의 불빛, 그리고 멀리 도시의 불빛들.

민준은 한강의 난간에 기대앉았다.

옛날 그가 올라가려던 장소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지만, 민준의 마음 속에는 깊은 의미가 있었다.

“힘들었어?”

세은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응.”

민준이 대답했다.

“많이?”

“많이… 정말 많이.”

민준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세은은 민준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힘들 일이 줄어들 거야. 주연이잖아.”

“그것도 힘들 거야.”

민준이 말했다.

“맞아. 그것도 힘들 거야. 근데 적어도 혼자는 아니야.”

준호가 둘의 뒤에 서서 말했다.

민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동안의 모든 밤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방의 천장을 바라보며 울던 밤들.

오디션에서 떨어진 후 화장실에서 쭈그려 앉아있던 밤들.

매니저에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절망했던 밤들.

그리고 옥상의 난간에 서있던 그 밤.

그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얼마나 검은색이었는지, 얼마나 차가웠는지.

하지만 그 밤도 지나갔다.

이제 여름 밤이었다. 따뜻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한강의 물 냄새가 풍겨왔다. 그리고 옆에는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사해.”

민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세은이 물었다.

“모든 것.”

그 말은 세은과 준호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였다.

그 밤하늘의 별들에게, 자신의 심장이 계속 뛰게 해준 무언가에게, 그리고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을 이유를 찾게 해준 모든 것들에게.

## 5부: 새로운 시작

다음 날 아침, 민준은 눈을 떴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어제의 해는 아니었다. 어제의 해보다 더 밝고, 더 따뜻했다. 마치 새로운 날을 축하해주는 것처럼.

휴대폰을 집었다.

매니저로부터의 메시지들이 들어와 있었다.

“축하한다! 들었어. 정말 좋은 일이다!”

“계약서가 준비되었다. 내일 사무실로 와.”

“너는 정말 잘했어. 정말.”

그 다음은 영화사로부터의 메시지였다.

“축하합니다. 촬영 일정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다음 주 월요일 미팅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메시지.

세은으로부터: “좋은 아침!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그리고 축하해.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이미 했어. 이제부터는 너의 시간이야.”

민준은 그 메시지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의 눈물은 다른 종류였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것은 해방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희망의 눈물이었다.

민준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봤다.

여전히 피곤해 보였다. 여전히 깔린 자국이 있었다.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꿈이었다.

그것은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의 그 마법 같은 빛이었다.

민준은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피부를 데웠다. 그리고 마치 물이 지난 모든 고통을 씻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옷을 입었다. 거울 앞에 다시 섰다.

이번엔 조금 더 나았다. 적어도 눈빛이 살아있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세은에게 답장을 썼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리고… 너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 고마워.”

그리고 준호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 친구.”

그 다음, 민준은 자신의 매니저에게 전화

16 / 50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