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10화: 손을 놓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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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화: 손을 놓지 않으면

준호의 손이 민준의 팔을 잡고 있었다. 따뜻한 손. 하지만 그 온기마저도 민준에게는 버거웠다. 그는 천천히 팔을 빼냈다. 준호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거절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얼굴에는 드러내지 않았다. 34세 배우의 프로페셔널리즘.

“라커룸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 다른 배우들이 본다.”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민준과 우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처럼 들렸다. 마치 자신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일어섰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닦지 않았다. 뮤지컬 배우는 울지 않는다고 했지만, 눈물은 이미 흘렀다. 그녀는 그것을 그냥 둔 채로 민준을 바라봤다.

“나 연습 하러 갈게.”

그녀의 목소리는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부서지지 않았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무너지는 법을 배운다. 무너지면서도 정지된 상태를 유지하는 법.

라커룸을 나갈 때, 우리는 민준의 눈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주쳤다. 그 눈에는 무엇이 있었나. 거절? 아니면 그 거절 뒤에 숨겨진 다른 감정?

라커룸 문이 닫혔다.

준호는 벤치에 앉았다. 그는 민준에게 옆자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민준은 앉지 않았다. 서 있는 것이 더 편했다. 누군가의 시선을 피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의 질문을 피할 수 있으니까.

“넷플릭스 오디션이 몇 일 남았지?”

“2일입니다.”

“2일. 그리고 지금 이 상태?”

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깊은 한숨. 마치 누군가의 무게를 내려놓는 것 같은 한숨.

“민준이. 너는 왜 자꾸만 혼자 하려고 해?”

민준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준호의 얼굴을 봤다. 34세의 배우는 여전히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남편 역, 친구 역, 라이벌 역 등 다양하게 소비될 수 있는 그런 얼굴. 하지만 그 얼굴 아래에는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댐이 터지려고 하는 것처럼.

“나도 그래. 다 혼자 했어. 처음에는 그게 강함이라고 생각했다. 약함을 보이지 않는 게 강함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강함이 아니라 그냥… 외로움이야.”

준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하지만 그 낮은 톤 안에는 무언가가 울렸다. 마치 누군가가 현을 튕기는 것처럼.

“나는 8년을 혼자 했다. 이 회사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 다른 배우들과 친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건 다 연기였다. 무대 위와 무대 아래의 차이 같은 거. 그리고 지금 깨달았어. 그 8년은 뭐였나 싶어. 내가 얻은 게 뭐지? 드라마에서 2번 주인공 자리? 영화상 후보? 그런 것들?”

준호가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봤다. 34세 배우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일이면 넷플릭스 오디션 결과가 나올 텐데, 나는 지금 더 두렵다는 거야. 주연 역을 받을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누구와도 그 기쁨을 나눌 수 없을 것 같아. 누구와도 그 슬픔을 나눌 수 없을 것 같아.”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것을 깨달기 시작했다. 준호는 멘토가 아니었다. 그냥 같은 배우였다. 같은 외로움을 가진 한 인간이었다.

“형…”

민준이 입을 열었다.

“형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형을 봤고, 형의 연기를 느꼈어요. 나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아직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민준의 말은 멈췄다. 그 다음 말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뭐야?”

“그런데 증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혀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했습니다.”

준호가 일어섰다. 그는 민준에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팔을 잡지 않았다. 대신 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팔이 아니라 어깨에.

“민준이. 넌 충분해. 이미.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가짐이 바로 좋은 배우의 조건이야. 하지만 지금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봐. 적어도 그 두 명 앞에서는.”

준호가 라커룸을 나갔다. 그가 문을 닫기 전에, 민준은 그의 뒷모습을 봤다. 34세 배우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마치 여러 배역의 무게를 모두 들고 있는 것처럼.

라커룸에는 민준만 남았다.

그는 라커룸의 거울로 걸어갔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27세 배우의 얼굴. 아직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얼굴. 하지만 그 얼굴 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민준은 거의 반사적으로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더스타 엔터테인먼트 민준 배우 맞으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넷플릭스 프로덕션 담당자 이준영입니다. 최종 오디션 일정을 변경하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민준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일정 변경?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은 취소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다른 역할로 변경된다는 뜻인가.

“네… 무슨 일이신가요?”

“원래 내일 오후 3시였는데, 오늘 저녁 6시로 앞당기고 싶습니다. 가능하실까요?”

오늘. 저녁 6시. 그것은 5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네,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혹시 이 역할에 대해 본인만의 해석이나 관점이 있으신가요? 단순히 시나리오대로가 아니라, 당신이 생각하는 그 캐릭터는 누구인지.”

민준은 그 질문을 받으면서 지난 밤을 떠올렸다. 지하 연습실에서 혼자 반복했던 것들. 배신한 사람의 움직임. 배신한 사람의 목소리. 배신한 사람의 심장.

“그 캐릭터는… 자신을 구원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하려는 사람?”

“네. 배신하는 것은 결과이고, 그 배신 뒤에는 자신을 구원하려는 절박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싶어서 배신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배신합니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에요.”

전화 너머에서 침묵이 흘렀다. 몇 초간의 침묵. 하지만 그 침묵은 길게 느껴졌다.

“좋습니다. 오늘 저녁 6시에 뵙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민준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 6시.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니, 시간이 아니었다.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자신이 부족했다.

민준은 라커룸을 나갔다.

1층 카페로 내려갔다. 더스타 엔터테인먼트 건물 1층에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커피가 형편없기로 유명한 카페였지만, 대기실로는 괜찮았다. 그곳에서 민준은 우리를 찾았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 앞의 아메리카노는 거의 식은 상태였다. 그녀는 그것을 마시지 않고 있었다. 대신 그녀는 거울 역할을 하는 카페 창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배우가 하는 행동.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는 행동.

“우리.”

민준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우리는 창문에서 눈을 떼었다. 천천히 민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차분했다. 뮤지컬 배우의 컨트롤. 감정이 있어도 표정은 평온하게 유지하는 법.

“너 온 거야?”

“네.”

“뭐 하러?”

“이야기를 하려고.”

우리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메리카노를 들었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한 모금 안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거절감.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견디려는 노력.

“뭘 말해. 다 알아. 넌 나를 멀리하고 싶어. 처음부터 그랬어. 나는 자꾸 너한테 가려고 하지만, 넌 자꾸 물러서. 그게 뭐하는 거야?”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너무 정확해서 민준은 반박할 수 없었다.

“아니.”

“아니?”

“나는 당신을 멀리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낮은 목소리 안에는 무언가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제 막 깨어난 감정의 진동.

“나는 당신 때문에 당신을 밀어냈습니다. 당신이 나한테 너무 가까워지니까. 당신이 나를 보려고 하니까.”

우리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넌 뭐야. 당신이 날 본다는 게 싫어?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게 그렇게 두려워?”

“네. 매우 두렵습니다.”

민준이 대답했다. 자신의 말에 놀라면서도, 계속 말했다.

“당신이 나를 보면, 당신은 나를 알게 됩니다. 당신이 나를 알면, 당신은 나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떠나갑니다. 내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카페의 소음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소음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민준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마치 자신이 한 말이 세상을 멈춘 것처럼.

우리의 눈이 변했다. 그 변화는 매우 미묘했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을 봤다. 배우가 보는 것. 상대방의 감정이 얼굴로 표현되는 방식.

“너 아버지…”

“1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치 자신의 가슴 깊숙이 파묻혀 있는 흙을 파내려고 하면, 썩은 냄새가 올라오는 것처럼.

우리가 손을 뻗었다. 테이블 위에서. 민준의 손을 향해.

“그래서 나도 떠날 거라고 생각해?”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낮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가 아니었다. 슬픔이었다.

“모릅니다.”

“넌 날 몰라?”

“당신이 떠나갈 이유를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가 떠나갔으니까, 당신도 떠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손을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 민준의 손을 닿지는 않았다. 마치 자신의 손이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넌 배우가 아니야. 무대 위에서 역할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너와 함께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밤 1시까지 연습실에 있었고. 그래서 오늘 아침도 너를 기다렸어.”

민준은 그 손을 봤다. 뮤지컬 배우의 손. 무대 위에서 무수히 뻗어졌을 그 손.

그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테이블 위에서. 그 손과 만날 때까지.

손이 닿았다.

따뜻했다. 민준은 그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손. 자신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손.

“당신이 떠나갈 리 없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왜?”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놓지 않을 테니까.”

우리의 눈에 다시 물이 맺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처로 인한 눈물이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눈물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을 열었을 때의 그 눈물.

그들은 카페에서 1시간을 더 앉아 있었다. 손을 잡은 채로.

민준은 넷플릭스 오디션이 오늘 저녁 6시로 앞당겨졌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아직 아닐 것 같았다. 아직 이 순간을 깨뜨릴 시간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다. 1층 카페의 시계는 계속 움직였다. 오후 1시에서 2시로. 2시에서 3시로.

오후 3시가 되었을 때, 민준은 우리의 손을 놓았다.

“나 가야 합니다.”

“어디?”

“회사 일.”

민준이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말할 수 없었다. 당신에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당신이 이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으니까.

우리가 일어섰다.

“오빠. 오늘 저녁에 만나?”

민준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우리를 안았다. 카페 안에서.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뮤지컬 배우는 처음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자신을 안고 있는 민준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들은 그렇게 몇 초를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들만이 존재하는 시간. 배우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시간.

민준이 먼저 손을 놓았다.

“오빠…”

“나 가야 해. 미안해.”

그는 카페를 나갔다.

거리는 오후 햇빛으로 가득했다. 서울의 강남역 일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회사원, 학생, 관광객들. 모두가 자신들의 길로 가고 있었다.

민준은 택시를 잡았다.

“넷플릭스 스튜디오, 강남구 테헤란로.”

“넷플릭스요? 배우신가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아니, 그냥… 일이 있어서.”

민준은 창밖을 봤다. 서울의 도로. 자신이 4년간 엑스트라로 다닌 이 도로들. 4년 전에는 자신을 주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없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그것이 바뀔 수도 있다. 혹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민준은 자신의 손을 봤다. 아직도 우리의 손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넷플릭스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30분이었다. 30분이 남았다.

민준은 스튜디오 앞에 서 있었다. 유리 건물. 그 안에는 무수한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꿈이 현실이 되는 곳. 또는 누군가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는 곳.

그는 깊게 숨을 쉬었다.

지난 밤 지하 연습실에서 했던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배신한 사람의 움직임. 배신한 사람의 목소리. 배신한 사람이 자신을 구원하려는 절박함.

그리고 이제 깨달았다. 그 배신한 사람은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자신이 자신을 배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자신을 누군가의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서.

민준은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민준입니다.”

리셉션의 직원이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아, 오셨군요. 대기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민준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복도는 길었다. 그 복도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승리? 패배? 아니면 그 둘 다?

그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손을 놓지 않는 누군가가.

복도의 문이 열렸다.


12,847자

#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

“나?”

민준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우리를 안았다. 카페 안에서.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음악이 흐르는 카페의 배경음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민준은 그것을 듣지 못했다. 귀는 오직 자신의 심장소리만 들었다. 쿵, 쿵, 쿵. 불규칙한 박자로 가슴을 두드리는 그 소리. 마치 탈출을 꿈꾸는 새처럼.

뮤지컬 배우는 처음에 깜짝 놀랐다. 손가락이 경직되었고, 호흡이 얕아졌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카페의 여러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어올리는 손도 보였다. 소셜 미디어는 이런 순간을 사랑한다.

배우로서의 본능이 작동했다. 분장을 한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떤 각도가 가장 아름다운지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 모든 계산이 무너졌다. 민준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 순간, 모든 공식적인 감정이 녹아내렸다.

따뜻함이었다. 그것이 첫 번째 감각이었다. 민준의 어깨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겨울 오후, 햇빛을 받은 벽돌 건물처럼 따뜻한 온기. 그 온기가 자신의 목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피부와 피부의 직접적인 접촉. 옷깃 안으로 스며드는 따뜻함.

두 번째는 냄새였다. 민준의 옷에서 나는 세제의 향. 그 아래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그의 피부에서 나는 향. 카페의 커피 냄새도 사라지고, 주변 사람들의 향수 냄새도 차단되었다. 오직 그의 냄새만 남았다.

세 번째는 시간이 멈췄다는 감각이었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들 사이의 공간은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그렇게 몇 초를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들만이 존재하는 시간. 배우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시간. 무대 위의 조명도 없고, 대본도 없고, 감독의 지시도 없는. 그저 두 개의 심장이 만나는 시간.

배우는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을 기억하려고. 이 온기를, 이 냄새를, 이 침묵을. 미래의 어느 날, 무대 위에서 이런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를 위해. 혹은 더 간단하게, 앞으로의 외로운 밤들을 견디기 위해.

민준이 먼저 손을 놓았다.

그 순간은 벼락처럼 찾아왔다. 온기가 사라졌다. 공기가 차가워졌다. 마치 여름날 에어컨 바람이 갑자기 얼굴을 스칠 때처럼.

“오빠…”

배우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진정한 감정의 떨림. 마지막 순간을 붙잡으려는 손가락의 경련.

“나 가야 해. 미안해.”

민준의 목소리도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결정의 무게로 인한 떨림. 자신을 무자비하게 밀어내는 그 떨림.

배우는 손을 내렸다. 다시 공중에 떠도는 손. 붙잡을 것도, 만질 것도 없는 손.

민준은 카페를 나갔다. 그 움직임은 결정적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되돌아올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혹은 돌아올 유혹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거리는 오후 햇빛으로 가득했다. 서울의 강남역 일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회사원들은 정장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학원 가방을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관광객들은 카메라를 들고 건물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길로 가고 있었다.

민준은 그 흐름 속에서 택시를 잡았다. 노란 차의 문을 열고 몸을 날렸다. 가죽 시트는 예상과 달리 차가웠다. 에어컨이 강하게 나오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택시 기사의 목소리는 지친 톤이었다. 서울의 도로에서 하루 종일 손님을 태우고 내리운 그 목소리.

“넷플릭스 스튜디오, 강남구 테헤란로.”

민준은 주소를 말했다. 수백 번 연습한 이 주소. 마치 주문처럼 입에서 나왔다.

택시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서울의 거리가 흘러갔다. 고급 빌딩들, 명품 매장들, 카페들. 강남의 풍경은 항상 같았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거리. 늘 뭔가 부족해 보이는 거리.

“넷플릭스요? 배우신가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대화를 통해 긴장을 풀려는 시도였다.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냥… 일이 있어서.”

민준은 대답했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거짓이 아니었지만 거짓이었다. 일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인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택시 기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라디오를 틀었다. 가요. 어느 가수의 신곡. 가사는 사랑과 헤어짐에 관한 것이었다. 오직 사랑과 헤어짐에 관한 것이었다.

민준은 창밖을 봤다.

서울의 도로. 자신이 4년간 엑스트라로 다닌 이 도로들. 4년 전에는 자신을 주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촬영장의 배경이었다. 장면을 채우는 필수 요소였지만,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았다. 감독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제작진도 자신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했다. 자신은 군중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없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휴대폰, 그들의 약속, 그들의 내일. 자신은 여전히 배경이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그것이 바뀔 수도 있다.

혹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민준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손. 휴대폰을 꺼내는 손. 화면을 켜는 손.

배우의 마지막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직도 읽지 않은 메시지. 마지막 메시지 밑에 ‘읽음’이라고 표시하지 않은 메시지.

민준은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이 아니었다. 지금 읽으면, 모든 것이 흔들릴 것 같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봤다. 아직도 우리의 손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것은 환상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온기는 실제였다. 따뜻함은 거짓이 될 수 없었다.

“여기 넷플릭스입니다.”

택시 기사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현실로.

넷플릭스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30분이었다. 30분이 남았다.

민준은 스튜디오 앞에 서 있었다. 유리 건물. 그 안에는 무수한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꿈이 현실이 되는 곳. 또는 누군가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는 곳.

건물의 로비는 세련되었다. 최신 기술의 인테리어. 모니터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각각의 화면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재생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 누군가의 감정. 누군가의 삶.

그 모든 것이 이 건물에서 만들어진다.

민준은 깊게 숨을 쉬었다.

공기가 냉각기를 통해 차갑게 정제되었다. 자연스러운 호흡이 아니라, 기계적인 호흡. 마치 자신의 감정도 이렇게 정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지난 밤 지하 연습실에서 했던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배신한 사람의 움직임. 느린, 우아한 움직임. 마치 무용을 하듯이. 하지만 그 우아함 속에는 절망이 숨어있었다.

배신한 사람의 목소리. 떨리는 목소리. “왜 나를 버렸어?”라고 묻는 목소리. 하지만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그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

배신한 사람이 자신을 구원하려는 절박함. 그것도 연기였다. 연기 속의 연기. 배우가 배우를 연기하는. 혼란 속의 혼란.

그리고 이제 깨달았다.

그 배신한 사람은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자신이 자신을 배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자신을 누군가의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서.

사랑은 약함이었다. 감정은 약함이었다. 누군가를 원하는 것도 약함이었다. 그리고 배우는 약할 수 없었다. 배우는 완벽해야 했다. 늘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어떤 역할도 소화할 수 있어야 했다. 심지어 자신의 감정을 연기하는 역할도.

30분이 지났을 것이다. 민준은 시계를 보지 않았다.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민준입니다.”

로비의 직원이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었다. 직업적인 웃음. 서비스업의 웃음. 하지만 민준은 그것을 비난할 수 없었다. 자신도 같은 웃음을 수없이 해왔으니까.

“아, 오셨군요. 대기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은 일어섰다. 키 작은 여성이었다. 이름표에는 ‘김소연’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녀도 누군가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민준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복도는 길었다. 사실 그렇게 길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각각의 문 옆에는 제작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감독, 촬영감독, 음향감독. 누군가의 이름. 누군가의 정체성. 누군가의 증명.

그 복도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승리? 패배? 아니면 그 둘 다?

“여기입니다.”

직원이 문을 열었다. 대기실이었다. 소파, 테이블, 커피 머신. 기본적인 것들. 누군가의 꿈을 기다리게 하는 방.

민준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혼자였다.

혼자 앉아있는 그 순간, 현실이 다시 찾아왔다. 카페에서의 온기는 이미 사라졌다. 남은 것은 기억뿐이었다. 그리고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진다. 몇 달 뒤, 몇 년 뒤에는 그것이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도 의심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살아간다. 아름다운 것들을 잊으면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외면하면서.

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배우의 이름이 떴다. 그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멈췄다.

지금 전화를 받으면, 모든 것이 흔들릴 것 같았다.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이. 자신이 억누른 모든 감정이. 자신이 만든 모든 방어막이.

휴대폰은 울음을 멈췄다.

메시지가 왔다.

“오빠, 잘해. 넌 할 수 있어. 나 뒤에 있어. 언제나.”

눈이 흐려졌다. 하지만 민준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배우는 울 수 없었다. 아니, 배우는 울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은 배우여야 했고, 동시에 자신이어야 했다. 그 둘 사이의 불가능한 줄타기.

그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결정이 앞으로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인지.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손을 놓지 않는 누군가가. 설령 자신이 그 손을 놓아버렸다고 해도, 여전히 뒤에서 자신을 밀어주는 누군가가.

“민준님?”

복도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

민준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메시지는 아직도 화면에 떠있었지만, 그것을 보지 않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었다. 나중에.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

일어섰다. 다리가 약간 떨렸다.

그것을 느끼면서도, 민준은 걸어갔다.

복도를 따라. 자신의 인생을 따라.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

복도의 문이 열렸다.

스튜디오의 조명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밝은 빛. 모든 것을 드러내는 빛. 숨을 곳이 없는 빛.

하지만 그것이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내보이고,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다시 찾는 것. 그것이 무대였다. 그것이 삶이었다.

민준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걸어들어갔다.

**막**

**12,84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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