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9화: 문이 열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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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화: 문이 열리는 순간

아침 햇빛이 라커룸의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왔을 때, 민준은 우리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화가 아니었다. 화는 더 쉬웠을 것이다. 화라면 말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눈에 떠 있는 것은 무언가 더 복잡한 감정이었다. 실망. 그리고 그 실망 아래에 숨겨진 작은 희망.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을 헤치고 들어왔을 때의 그 어색함.

“나도 밤 1시까지 있었어. 지하 연습실에.”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호흡이 변했음을 느꼈다. 얕아졌다가 깊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우리가 밤 1시까지 지하 연습실에 있었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메시지였다. “나도 너와 함께 있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넌 왜 나를 거절했어?”

“왜…”

민준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그것은 무엇에 대한 질문인가. 우리가 밤 1시까지 있었던 이유를 묻는 건가. 아니면 자신이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건가. 두 가지 모두 명확하지 않았다.

우리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넌 자꾸 나를 멀리해. 왜 그래?”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낮은 목소리 안에는 무언가가 진동하고 있었다. 뮤지컬 배우의 목소리. 표현을 위해 단련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지금 표현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상처.

민준은 우리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어제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눈 아래의 검은 자국이 더 진했다. 머리카락은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묶여 있었고, 그녀의 검은 운동복도 어제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어제 밤 집에 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라커룸이나 연습실에서 밤을 샜다는 뜻. 그리고 아침이 되자마자 여기서 자신을 기다렸다는 뜻.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민준이 그렇게 말했을 때, 우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표정. 배우들은 얼굴로 말한다. 특히 상처를 입었을 때 더하다.

“죄송합니다? 진짜 그 말만 하네. 오빠, 난 너한테 뭔가를 원해. 사과가 아니라. 너 자신을 원해. 너의 진짜 마음을 원해.”

우리가 벤치에 다시 앉았다. 마치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민준은 그 옆에 앉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몸을 굽혀서 우리와 눈 높이를 맞췄다. 배우가 하는 기술. 상대방과의 거리를 줄이는 방식.

“나는…”

민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우리의 눈에 물이 맺혔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뮤지컬 배우는 울음을 참는 법을 안다. 눈물은 흘릴 수 있지만,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 것.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 그것이 무대 위에서의 전문성이다.

“폐?”

“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 도움을 받는 것, 그것이 두렵습니다.”

민준은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았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진실은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민준을 바라봤다.

“폐를 끼친다는 게 뭐야? 나는 너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 그게 폐야?”

“네.”

“이상해. 너한테 도움을 주는 게 내가 원하는 건데, 그게 너한테는 폐가 되는 거야?”

우리의 논리는 명확했다. 하지만 민준은 그것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감정의 문제였다. 그리고 감정은 이성적이지 않다.

라커룸의 문이 열렸다.

준호가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34세의 배우는 신인 배우들의 갈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보였다. 마치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으로 들어온 것처럼.

“민준이, 너 괜찮아?”

준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 안에는 진정한 걱정이 있었다. 멘토의 걱정. 아니, 선배의 걱정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걱정.

민준은 일어섰다.

“네,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밤새 연락을 안 받더니 뭐가 괜찮아.”

준호가 민준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민준은 그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붙잡을 때의 그 감각. 그것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던 감각이었다. 아버지의 손. 그 손이 언제쯤 자신을 놓게 될지 알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형.”

민준이 말했다.

“내가 최종 오디션에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준호가 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 안에는 여러 감정이 떠 있었다. 놀라움, 안타까움, 그리고 무언가 다른 것.

“넌 왜 그런 생각을 해?”

“이수진 대표님이 말씀했습니다. 내가 배역을 이해하지만 소유하지 못한다고. 그것이 내 약점이라고.”

민준이 그 말을 하자,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빨랐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그건 거짓이야.”

우리가 말했다.

“넌 충분히 소유하고 있어. 내가 봤거든. 어제 밤에 너는 배역을 완전하게 소유하고 있었어.”

“우리는 어제 밤에 뭘 했어?”

준호가 물었다.

“지하 연습실에서 민준이 연기를 봤어요. 그리고 그것은… 진짜 미쳤어요.”

우리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진심 안에는 피로도 있었다. 밤을 새운 피로.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또 다른 피로.

준호는 민준을 다시 바라봤다.

“넌 어제 밤에 그렇게까지 했어?”

“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이 모양이고?”

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조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이해했을 때의 웃음이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고독함을 이해했을 때의 그 웃음.

“너는 지금 뭘 하고 있어? 왜 나랑 우리를 밀어내?”

준호의 질문은 직접적이었다. 배우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질문. 그것은 민준의 마음 한 가운데를 때렸다.

“나는…”

민준이 입을 열었다.

“나는 혼자라는 게 편합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라커룸에는 침묵이 떨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것처럼. 준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민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민준은 자신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혼자가 편하다는 건… 너는 누군가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누군가가 자신을 버릴까봐 두렵다는 뜻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정확했다. 마치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처럼. 그것은 준호가 32번의 드라마, 그 안에서 마주친 수백 명의 캐릭터를 통해 얻은 통찰이었다.

민준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틀렸어?”

준호가 다시 물었다.

“아니요.”

민준이 그렇게 말했을 때,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내려왔다. 배우는 눈물을 흘린다. 특히 자신의 진실이 드러났을 때 더하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완전한 항복이었다.

우리가 민준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마치 불을 다루듯이. 그녀는 민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다. 준호의 손과는 다른 따뜻함. 동료의 손, 친구의 손,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무언가의 손.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말했다.

“내가 여기 있어. 그리고 형도 여기 있어. 우리는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약속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금은. 지금은 우리 셋이 함께 있는 거야.”

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거짓이라면,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그것이 들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에는 거짓이 없었다. 피로가 있었고, 불안이 있었고, 하지만 거짓은 없었다.

“나는…”

민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아버지가 자살을 했습니다.”

라커룸에 또 다른 침묵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을 드러냈을 때의 침묵. 그것은 경외의 침묵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아버지는 영화 미술감독이었어요. 하지만 일이 없었어. 경제 위기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는 우울했어. 정말 깊은 우울 속에 빠져있었어. 나는 그것을 몰랐어. 아니, 몰라주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보지 않았어. 아버지를 대면하지 않았어.”

민준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약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의 목소리였다. 배우가 연기하지 않을 때의 목소리.

“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 사라졌어. 그리고 경찰이 집에 왔어. 그 이후로…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 장례식도 기억이 안 나. 그저 공백이 있었어. 깊은 공백.”

준호는 민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는 민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을 두려워했어. 왜냐하면 그 사람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혼자 버티는 것이었어. 아무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럼 누군가가 사라져도 상관없을 거라고.”

민준이 말을 멈췄다. 라커룸의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 햇빛 속에서 민준의 얼굴은 투명해 보였다.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투명하고, 깨지기 쉽고,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보이는.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격려했거든. 아버지는 자신이 실패했지만, 내가 성공하기를 원했어. 그래서 나는… 나는 배우가 되기로 했어. 하지만 성공하고 싶은 마음과 성공이 두려운 마음이 함께 있었어. 왜냐하면 성공하면, 나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 아버지처럼.”

우리는 민준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가 아니야.”

우리가 말했다.

“너는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너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너는 성공할 거야. 그리고 그 성공 속에서도 혼자가 아닐 거야. 왜냐하면 나와 형이 있으니까.”

“우리가 있으니까.”

준호가 그 말을 반복했다.

민준은 그 말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들이 자신의 마음 한 가운데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돌이 고요한 물에 떨어질 때처럼. 파문이 생겼다. 그 파문은 천천히 퍼져나갔다. 자신의 심장 전체를 덮을 때까지.

라커룸의 시계가 오전 8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최종 오디션까지는 이제 불과 하루 반이 남았다. 하지만 이 순간,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문이 열렸다는 것이었다. 민준이 자신의 마음이라는 그 문이 드디어 열렸다는 것이었다.

“우리, 형.”

민준이 말했다.

“나는… 감사합니다.”

그것은 여전히 형식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 형식 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정성. 그리고 그것은 처음이었다. 민준이 진정성 있게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이제 팀이야. 한 팀. 그리고 팀원들은 감사를 하지 않아. 대신 함께 싸워. 함께 이기고, 함께 진다.”

“함께.”

우리가 그 말을 반복했다.

“우리는 함께야.”

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이 자신의 삶을 완전하게 바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함께라는 말이.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아버지가 혼자였기에 실패했다면, 자신은 혼자가 아니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배우에게는 순진함도 필요하다. 무대 위에서 자신을 완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날 오후, 민준은 지하 연습실에 혼자 가지 않았다. 우리와 준호가 함께 갔다. 그들은 민준의 연기를 봤다. 최종 오디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다듬어야 할 장면들을. 그리고 그들은 조언을 했다. 기술적인 조언이 아니라, 감정적인 조언. 배우가 배우에게, 그리고 친구가 친구에게 하는 조언.

“너는 배신한 남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남자를 연기해야 해.”

우리가 말했다.

“그 남자는 친구를 배신했지만, 그것도 사랑 때문이야. 자신이 사랑받고 싶어서,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기를 원해서.”

“그리고 그 후회는 진짜여야 해.”

준호가 덧붙였다.

“기술적인 후회가 아니라, 인간적인 후회. 너는 아버지의 후회를 알아. 그것을 이 캐릭터 안에 녹여 내.”

민준은 그 말들을 들었다. 그리고 이해했다. 이해할 뿐만 아니라, 느꼈다. 그 이해와 그 감정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마치 유리벽이 사라진 것처럼. 이제 자신과 배역 사이에는 장애물이 없었다.

밤이 되었을 때, 세 명은 라커룸에서 밤식사를 했다. 편의점에서 산 김밥과 라면. 배우들이 주로 먹는 음식. 저렴하고, 빠르고, 맛은 그럴 듯한. 민준은 그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오래 이런 것을 혼자 먹었는지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의 맛은 다르다. 같은 음식이지만, 함께 먹을 때는 맛이 배 이상으로 느껴진다.

“내일 오디션 어때?”

준호가 물었다.

“떨려요.”

민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처음이었다. 자신의 두려움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떨려야 맞아.”

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떨리지 않으면 그건 배우가 아니야. 떨림은 너의 몸이 자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야.”

“그리고 넌 충분히 준비했어.”

우리가 말했다.

“너는 그 역할을 소유하고 있어. 내가 봤거든. 첫 날부터. 너는 그냥 자신을 믿기만 하면 돼.”

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충분히 준비했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 생각 자체가, 그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이전의 자신에게는 없던 것이었다.

라커룸의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켰을 때, 세 명은 일어섰다.

“내일 최고의 연기를 하자.”

준호가 말했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너 자신을 위해서.”

“우리 셋을 위해서.”

우리가 그 말을 덧붙였다.

민준은 그들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 아래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희망. 처음으로 느껴본 진정한 희망.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

“네. 함께하겠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라커룸을 나가면서, 민준은 뒤를 돌아봤다. 그 공간은 여전히 낡아 보였다. 오래된 로커들, 낡은 벤치, 작은 거울. 하지만 이제 그 공간은 다르게 보였다. 마치 그곳이 자신의 성채(城砦)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성채 안에는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와 준호가 함께 있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이기고, 필요하면 함께 질 준비가 되어있는.

밤거리를 걸어가면서, 민준은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앱을 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은 어제의 얼굴과는 달라 보였다. 더 이상 유리벽 너머의 얼굴이 아니었다. 실재하는 얼굴. 그리고 그 실재가 내일 무대 위에서 빛날 것이라는 느낌.

최종 오디션까지는 불과 18시간이 남았다.

# 유리벽을 깨뜨리다

민준은 배역에 대해 이해했다.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온몸을 통해 스며드는 깊은 감각의 영역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피부 아래로 들어가 그들의 심장 박동을 듣는 것처럼, 그는 이제 그 인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와 감정 사이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을 그 자신도 감지했다. 마치 오랫동안 가로막혀 있던 유리벽이 소리 없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니, 부서진 것이 아니라 녹아버렸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았다. 그 벽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몇 년에 걸쳐, 매일의 거절과 무시와 의심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견고하게 쌓여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없었다. 자신과 배역 사이에는 장애물이 없었다. 민준은 그 역할을 입는 게 아니라 그 역할이 되었다. 순간순간 그 인물이 보는 세상이 자신의 눈으로 들어오고, 그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자신의 가슴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것이 배우가 꿈꾸는 경지라는 것을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곳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쁜 것이었다.

밤이 내려앉았을 때, 세 명은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연습실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그 작은 공간은 이제 그들의 아지트처럼 느껴졌다. 벽면의 페인트가 벗겨져 있고, 천장의 형광등 중 하나가 깜박거리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편의점 봉지를 들고 온 준호가 벤치에 음식들을 늘어놓았다. 김밥 한 줄, 라면 세 개, 계란 몇 개, 그리고 캔커피. 배우들이 주로 먹는 음식들이었다. 저렴하고, 빠르고, 맛은 그럴듯한. 영양가는 둘째 치고, 배를 채우는 데만 집중한 음식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도 이것보다 맛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민준은 김밥을 한 입 깨물면서 자신이 얼마나 오래 이런 음식을 혼자 먹었는지 생각했다. 서울에 올라온 지 4년. 그 4년을 대부분 혼자였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을 혼자 먹고, 점심에 라면을 혼자 끓여 먹고, 저녁에는 굶기도 했다. 누군가와 식사하는 것은 사치였다.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낭비였다. 모든 시간을 배우 일에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의 맛은 정말로 달랐다. 같은 음식, 같은 라면, 같은 김밥이지만, 함께 먹을 때는 맛이 배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음식 자체의 맛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섞여드는 것 같았다. 우리가 웃고, 준호가 농담을 던지고, 자신도 그것에 응하는 그 순간순간이 모두 음식의 일부가 되었다.

민준은 옆자리의 우리를 흘깃 봤다. 우리는 라면을 후루룩 마시면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자신처럼 내일의 오디션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준호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먹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항상 밝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도 배우로서의 능력일 거라고 민준은 생각했다. 절망과 희망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능력.

“내일 오디션 어때?”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함께 격려가 섞여 있었다.

민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런 질문에 자신이 어떻게 답해야 할지 생각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괜찮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준비됐습니다’. 배우라면 그런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순간, 이 사람들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떨려요.”

민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자신도 깜짝 놀랐다. 자신의 두려움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그것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몇 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 중에 자신의 진심을 나눈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손가락으로 꼽고도 남을 정도일 것 같았다.

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었다. 따뜻한, 이해하는 웃음이었다.

“떨려야 맞아.”

준호가 말했다. 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떨리지 않으면 그건 배우가 아니야. 떨림은 너의 몸이 자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야.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에너지야. 그 에너지를 무대로 옮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준호는 라면을 한 입 더 먹고 계속했다.

“그리고 넌 충분히 준비했어.”

이번엔 우리가 말했다. 우리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확신이 있었다.

“너는 그 역할을 소유하고 있어. 내가 봤거든. 첫 날부터. 너는 그냥 자신을 믿기만 하면 돼.”

민준은 그 말들을 들었다. 귀가 아니라 전신으로 들었다. 마치 그 말들이 자신의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리석지만,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충분히 준비했을 수도 있다고. 그 역할을 정말로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 생각 자체가, 그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이전의 자신에게는 없던 것이었다. 이전의 민준은 항상 부족했다. 항상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충분할 리 없었다. 완벽할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충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라커룸의 벽에 붙어 있는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켰을 때, 세 명은 일어섰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18시간? 17시간? 민준은 그 숫자를 세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시간을 세면 더 떨릴 것 같았다.

준호가 먼저 일어섰다. 그는 김밥 봉지를 치우면서 말했다.

“내일 최고의 연기를 하자.”

그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너 자신을 위해서.”

“우리 셋을 위해서.”

우리가 그 말을 덧붙였다. 세 명의 목소리가 라커룸의 낡은 벽에 울렸다. 그것은 마치 선서와도 같았다. 누군가에게 하는 선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하는 선서.

민준은 그들을 바라봤다. 준호의 밝은 얼굴, 우리의 조용하지만 확실한 표정. 그들은 이미 무대 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눈빛이 달랐다. 배우의 눈빛이었다.

자신의 얼굴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가슴이 철렁거렸다. 하지만 그 두려움 아래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희망. 처음으로 느껴본 진정한 희망.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 누군가를 등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희망.

“네. 함께하겠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라 결의의 떨림이었다.

라커룸을 나가면서, 민준은 뒤를 돌아봤다. 그 공간은 여전히 낡아 보였다. 오래된 로커들, 페인트가 벗겨진 벽, 낡은 벤치, 작은 거울. 형광등 하나는 여전히 깜박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공간은 다르게 보였다.

마치 그곳이 자신의 성채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의 기사들이 지켜내던 그 견고한 성채처럼. 그리고 그 성채 안에는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와 준호가 함께 있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이기고, 필요하면 함께 질 준비가 되어있는. 그 어떤 왕의 궁전보다도 값진 그 공간.

밤거리로 나갔을 때,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서울의 밤은 춥고 어두웠다. 하지만 그 추위와 어둠이 이제는 달갑게 느껴졌다. 이것이 배우가 걷는 밤이구나. 이것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준은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앱을 켰다. 거리의 가로등 아래에서 자신의 얼굴을 봤다. 화면 속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과는 달라 보였다. 더 이상 유리벽 너머의 얼굴이 아니었다. 실재하는 얼굴. 이 밤거리에 실재하는 얼굴. 그리고 그 실재가 내일 무대 위에서 빛날 것이라는 느낌.

민준은 화면을 내렸다.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밤 11시 47분.

최종 오디션까지는 불과 18시간이 남았다.

그는 그 숫자를 다시 한 번 읽었다. 18시간. 그것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시간 동안, 자신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밤거리를 걸어가면서, 민준은 내일을 상상했다. 무대 위에 서는 자신. 그 배역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자신. 그리고 객석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준호와 우리. 그들의 눈빛. 그들의 응원.

그 상상만으로도 충분했다.

18시간 후,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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