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2막 – 제6화: 밤새 연습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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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화: 밤새 연습한 것들

최종 오디션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을 때, 민준은 더스타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연습실에 살고 있었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허락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밤 11시 이후에 지하실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곳은 신인 배우들의 무덤이자, 동시에 그들의 성채(城砦)였다.

지하실의 조명은 형광등이었다. 오래되고 깜빡이는 형광등. 그것은 민준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고, 마치 유령처럼 보이게 했다. 거울 앞에서 그는 자신을 보지 않았다. 대신 ‘준’을 봤다. 배신한 남자. 후회하는 남자. 혼자 남겨진 남자.

“너는 누구야?”

그 대사를 벌써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알 수 없었다. 100번? 1,000번?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 대사의 의미는 점점 사라졌다. 소리만 남았다. 의미 없는 소리. 마치 앵무새가 반복하는 단어처럼.

민준은 한 발 물러섰다. 거울 앞의 공간이 더 넓어졌다. 시나리오의 다음 씬은 ‘준’이 방 안을 배회하는 장면이었다. 친구 하준이에게 자신의 배신이 들켜졌고, 이제 그것을 어떻게 할지 몰라 헤매는 장면. 민준은 걸었다. 앞으로 두 걸음. 뒤로 두 걸음. 옆으로 한 걸음.

손가락이 떨렸다. 시나리오를 들고 있는 손가락이.

“미안해. 미안해.”

그 대사는 시나리오에 없었다. 민준이 임의로 추가한 것이었다. 배우는 때때로 그렇게 한다. 주어진 텍스트 너머로 무언가를 더하려고 한다. 그것을 ‘서브텍스트’라고 부른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말한 것만큼 중요하다는 뜻.

“미안해.”

다시. 이번에는 더 작은 목소리로. 마치 자신에게만 말하는 것처럼.

시계가 밤 1시 47분을 가리켰다.

민준은 거울에서 물러났다. 벤치에 앉았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낡은 나무 벤치. 이 벤치 위에서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울었을까. 이 벤치 위에서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했을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밤 1시 47분에.

화면에는 우리의 이름이 떴다.

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화면을 본 채로 있었다. 우리는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했을까.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아니면 단순히 자신을 확인하려는 것일까.

전화는 울다가 끝났다. 곧이어 카톡 메시지가 왔다.

오빠 자고 있어? 내일 오전 10시에 만나자. 라커룸. 뭔가 도와주고 싶어.

민준은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뭔가 도와주고 싶어’라는 문장을 특히 자주 읽었다. 도움. 그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자신의 연기를 봐준다는 뜻일까. 아니면 더 깊은 무언가일까.

그는 답장을 했다.

네. 감사합니다.

차갑고 정중한 답장. 배우가 하는 인사말처럼.


아침 10시. 라커룸은 조용했다.

우리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앉아있었다. 라커룸의 차가운 타일 바닥에. 검은색 요가 매트를 깔고. 그녀의 옆에는 노트북이 있었다. 화면에는 무언가가 떴다. 영상. 민준이 오디션 당일 촬영한 자신의 영상.

“어제 밤에 못 잤어?”

우리가 물었다. 그녀의 눈 아래에는 검은 자국이 있었다. 메이크업으로도 가릴 수 없는 깊은 자국.

“나도 못 잤어.”

우리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조금 미쳐 보이는 웃음이었다.

“왜요?”

“너의 영상을 봤어. 넷플릭스에서 준 영상. 오디션 당일 촬영한 거. 준호 형이 너한테 주라고 해서.”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호흡이 얕아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영상을 봤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이 얼마나 서툰지를 확인했다는 뜻일까.

“봤어?”

“응. 미쳤어. 진짜. 너는 뭘 한 거야?”

우리가 일어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빨랐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뮤지컬 배우는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너는 누구야’라고 했는데, 그 순간 너는… 너는 민준이 아니라 그 남자가 돼 있어. 정확하게. 완전하게. 마치 처음부터 그 사람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민준의 앞에 섰다. 그녀의 눈은 진심으로 가득했다. 불안감도 섞여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진실한 감탄이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을 여섯 번 봤어. 여섯 번. 매번 느껴지는 게 달라. 첫 번째에는 불안했고, 두 번째에는 감동했고, 세 번째에는… 뭔가 무서웠어.”

“무서웠어요?”

“응. 너의 눈이. 그 눈이 뭔가를 말하고 있는데,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마치 너의 영혼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돌렸다. 그렇게 직접적인 칭찬을 받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사기꾼인 것 같은 기분. 누군가 자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이제 우리가 도와줄 거야.”

우리가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는 시나리오가 떴다. 넷플릭스 드라마 전체 대본. 첫 에피소드부터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너는 ‘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우리가 물었다.

“아뇨.”

“극 초반에는 주인공의 친구고, 극 중반에는 주인공의 배신자고, 극 후반에는… 주인공의 유령이야. 없는데 있는, 있는데 없는 그런 존재가 돼. 그 캐릭터가 얼마나 복잡한지, 얼마나 깊은지 알아?”

민준은 알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최종 오디션에서 그들이 뭘 보려고 할 것 같아?”

우리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켜고, 시나리오의 특정 장면으로 스크롤했다.

“이 장면. 극 후반부. ‘준’이 주인공을 다시 만나려고 하는 장면. 이 장면에서 너는 뭘 표현할 거야? 사랑? 미안함? 절망?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섞인 뭔가?”

라커룸은 조용해졌다. 오직 노트북의 냉각팬 소리만 들렸다.

“그건… 알 수 없는 거 아닐까요?”

민준이 천천히 말했다.

“맞아. 그래서 너는 그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 거야? 그게 너의 선택이고, 그게 너의 배우로서의 정체성이야.”

우리는 거울로 돌아갔다. 지하실의 거울. 그것은 마치 무대의 경계선처럼 보였다.

“이 장면을 해봐. ‘준’이 하준이 앞에 나타난 거야. 5년 만에. 그 순간부터 시작해.”

민준은 준비 없이 움직였다. 그것은 이상했다. 보통 그는 준비를 해야만 움직였다. 마음 속으로 ‘준’이 되기 위해 몇 초를 할애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달랐다. 마치 우리를 보면서 자동으로 그 인물이 되는 것 같았다.

그의 걸음이 느려졌다. 마치 물 속을 걷는 것처럼.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두려움. 또는 그 이상의 무언가.

“너…”

그 한 단어가 나왔다. 시나리오에는 없는 단어. 우리가 만든 장면에는 없는 단어. 하지만 ‘준’이라는 남자라면 그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불완전하게. 절반만.

“너는 날… 아직도…”

그 문장은 끝나지 않았다. 끝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준’은 그 대답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봤다. 배우가 다른 배우를 보는 방식으로. 인정의 눈빛으로.

“좋아. 멈춰.”

우리가 손을 들었다.

“그게 뭐야?”

“뭐가 뭐예요?”

“너의 그 눈이. 그 움직임. 그 불완전함. 그게 진짜야. 절대 그걸 없애지 마. 최종 오디션에서도.”

민준은 우리를 봤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자신의 연기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이 여자가 처음이라는 생각.

“우리가 도와줄 거야.”

우리가 다시 말했다.

“어떻게요?”

“오디션 전까지 매일 만나서 이 장면들을 해. 넷플릭스가 주는 시나리오 전부. 특히 후반부. 너는 ‘준’이 되는 거고, 나는… 하준이가 되는 거야. 그래서 너는 진짜를 경험하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마주보면서.”

그 말이 나왔을 때, 민준은 자신의 심장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고마워요.”

그 말이 전부였다.


다음 날부터 라커룸은 작은 무대가 되었다.

매일 아침 10시. 우리가 도착했다. 그녀는 항상 커피를 들고 왔다. 따뜻한 커피. 민준이 마실 수 있는 온도의.

“오늘은 이 장면. 극 중반. 너는 하준이를 처음 배신하는 순간.”

우리가 시나리오를 펼쳤다. 손가락으로 특정 부분을 가리켰다.

민준은 그 장면을 읽었다. 그것은 가장 어려운 장면이었다. 왜냐하면 이 장면에서 ‘준’은 아직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배신을 정당화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하준이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이 장면에서 니가 뭘 느껴야 할까?”

우리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래, 그게 맞아. 넌 몰라야 해. ‘준’은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틀린지 모르거든. 그래서 그게 가장 진짜 같은 거야.”

우리는 거울 앞에 섰다. 우리는 하준이가 되고, 민준은 준이 되었다.

“하준아, 나 좀 말이 있어.”

우리가 말했다. 하준이의 음성으로. 친구를 배신하려는 남자를 만나는 여자의 음성으로.

민준은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 나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뭔데?”

그 한 마디가 나왔다. 그리고 그 한 마디 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거짓. 두려움. 그리고 결정.

실제 오디션 날까지 사흘이 남았을 때, 민준은 다시 지하실의 거울 앞에 섰다. 혼자.

하지만 이번에는 거울 속의 사람이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더 이상 ‘민준’이 아니었고, ‘준’도 아니었다. 그것은 둘 다이자, 둘 다가 아닌 무언가였다. 배우라는 것의 본질. 자신이 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되는 것.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다.

민준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카톡을 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요. 정말.

우리의 답장은 3초 만에 왔다.

우리도 고마워. 너를 보면서 나도 배워. 다시.

민준은 그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시나리오를 들었다. 마지막 읽기. 최종 오디션 전의 마지막 읽기.

“너는 누구야?”

다시.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과 달랐다. 이번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시나리오에는 없는 답이었다. 하지만 배우의 내면 속에는 있었다. 그것이 서브텍스트였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라커룸의 문이 열렸다. 준호였다.

“이 시간에 뭐 하는 거야?”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놀람과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있었다.

“오디션 준비 중입니다.”

민준이 답했다.

준호는 한참을 민준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축하의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언제쯤 그렇게 준비했는지를 기억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잘해. 진짜. 나는 너 같은 후배를 가진 것 같아서 고마워.”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라커룸을 나갔다.

민준은 다시 거울을 봤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았다.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연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이었다.


최종 오디션 당일 아침, 민준은 처음으로 자신의 옷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그것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표현이었다.

그는 검은색 셔츠를 골랐다. 단순하고, 깨끗하고, 그리고 조금 슬픈 색깔. ‘준’이라는 남자에게 어울리는 색깔.

휴대폰에는 우리의 메시지가 떴다.

오빠. 화이팅. 넌 준이야. 기억해.

그리고 준호의 메시지도 떴다.

다녀와. 우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민준은 그 메시지들을 읽었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무엇을 하러 가는지. 단순히 역할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을 바꿀 것이었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 민준은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더 이상 떨리지 않고 있었다.

# 거울 속의 나, 무대 위의 나

새벽 3시. 라커룸의 형광등이 내려오는 불빛은 차갑고 무정했다. 민준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거울 속의 누군가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민준’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가 부르던, 따뜻한 음성의 ‘민준’도 아니었다. 친구들이 부르던 편한 ‘준’도 아니었다. 그것은 둘 다이자, 둘 다가 아닌 무언가였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낯설었다. 눈빛이 달랐다. 일반적인 배우 지망생의 그것이 아니었다. 절망도 희망도 섞여 있지 않은, 오직 ‘준’이라는 인물을 살아내려는 집중력만이 그곳에 있었다. 눈썹의 각도, 입가의 긴장감, 턱선의 미묘한 변화—모든 것이 어제의 민준과는 다르게 조율되었다.

배우라는 것의 본질. 그것은 자신이 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되는 것. 마치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 때처럼, 혹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반사되는 조명을 받을 때처럼, 둘은 구분되면서도 하나가 되었다. 민준은 여기 라커룸의 차가운 거울 앞에서, 그 이중성 속에 온몸이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울 속 ‘준’은 입을 벌렸다. 대사를 흐중거렸다. 아니, 흐중거리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정말로 속삭이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 속임 자체가 가장 진실한 표현이라는 모순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다. 그 숫자는 마치 채점표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시험받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 거울 속의 남자는 더욱 선명해 보였다.

민준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마치 장면이 끝나는 것처럼 그의 어깨가 조금 내려앉았다. 배우의 호흡이 일상인의 호흡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을 들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조금 떨리고 있었다.

카톡 앱을 켰다. 우리, 즉 자신을 늘 응원해주던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글자를 하나하나 입력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감사함으로 가득 차 있는지 깨달았다.

*고마워요. 정말.*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이 충분했다.

응답은 3초 만에 왔다. 그들은 아직도 깨어 있었나? 아니면 자신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도 고마워. 너를 보면서 나도 배워. 다시.*

그 메시지를 읽는 순간, 민준의 눈가가 따뜻해졌다. 그것이 감정이었다. 진짜 감정이었다. 배우가 극중 인물의 감정을 느끼듯이, 그가 느낀 것은 정말로 사람에 대한 감사였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화면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시나리오를 들었다. 인쇄된 종이는 손에 닿을 때 약간 뻣뻣했다. 마지막 읽기. 최종 오디션 전의 마지막 읽기.

목소리로 문장을 읽기 전에, 그는 눈으로 먼저 훑었다. 단어들이 눈앞을 지나갔다. 문장의 리듬이 서서히 그의 근육에 배어들었다. 성대에 신호가 전달되기 전에, 이미 그의 몸은 준비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야?”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였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올 때, 그것은 단순한 낭독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문이었다. 진짜 질문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다시.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과 달랐다. 새벽 2시 반의 민준과 새벽 3시의 준은 다르다.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무언가가 변했다. 이번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시나리오에는 없는 답이었다. 배우 시험의 채점표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의 내면 속에는 있었다. 무한한 깊이로. 그것이 서브텍스트였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것이 배우가 무대 위에서 관객과 나누는 보이지 않는 대화였다.

라커룸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준호였다. 배우 생활 5년차의 선배, 때론 멘토이고 때론 경쟁자인 그 남자.

“이 시간에 뭐 하는 거야?”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놀람과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있었다. 그것은 지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안에는 자신도 모르게 따뜻함이 묻어났다.

“오디션 준비 중입니다.”

민준이 답했다. 존댓말을 썼다. 그것은 선후배 관계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순간 ‘준’이라는 인물이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떨쳐낼 수 없었다.

준호는 한참을 민준을 봤다. 그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라커룸의 불빛 아래서, 민준의 몸짓을 읽고 있었다. 배우가 배우를 읽는 것처럼.

그리고 천천히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축하의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언제쯤 그렇게 준비했는지를 기억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몇 년 전, 자신도 이렇게 새벽 3시의 라커룸에서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았나. 그 시간의 길이를 아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잘해. 진짜.”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나는 너 같은 후배를 가진 것 같아서 고마워.”

그리고 준호는 라커룸을 나갔다. 문이 닫히면서, 새벽의 적막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적막은 전과 달랐다. 고독한 적막이 아니라, 무언의 응원이 가득한 적막이었다.

민준은 다시 거울을 봤다.

이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거울 속의 ‘준’을 보고, 그것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아니, 그것이 이미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 라커룸에서, 그 밤에, 누군가 자신의 옆에 있었다. 준호가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무대 객석의 암막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처럼.

그것은 연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적이 아니라, 함께 이 여정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것이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이었다. 고독함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는 것. 혼자라고 느껴지면서도, 영원히 혼자가 아닌 것.

## 최종 오디션 당일 아침

창문을 통해 첫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새벽 3시의 라커룸에서, 오디션 당일 아침으로. 시간은 계속 흘렀다.

민준은 처음으로 자신의 옷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옷장의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여러 겹의 선택이 숨어 있었다. 검은색 셔츠, 흰색 티셔츠, 파란색 청바지, 회색 니트. 각각의 옷은 마치 다른 버전의 자신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그 질문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옷을 고르는 것은 마치 캐스팅 디렉터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검은색 셔츠를 집어들었다. 손가락이 직물을 만졌을 때의 감촉은 부드러웠다. 면 100퍼센트. 시간이 지나면서 살짝 바래진 검은색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슬픔을 많이 흡수한 것처럼.

단순하고, 깨끗하고, 그리고 조금 슬픈 색깔.

‘준’이라는 남자에게 어울리는 색깔.

거울 앞에서 셔츠를 입어보았다. 목선이 깔끔했다. 소매의 길이가 정확했다. 이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준’을 살려낼 옷이다.

휴대폰의 화면이 켜졌다. 알림이 들어오고 있었다.

친구들의 메시지가 떴다.

*오빠. 화이팅. 넌 준이야. 기억해.*

단 한 줄이었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오빠를 보며 배운 진심. 준이라는 역할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자신.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들.

그리고 준호의 메시지도 떴다.

*다녀와. 우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우리’라는 단어에 눈이 멎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느껴졌다.

민준은 그 메시지들을 읽었다. 화면의 글자들이 눈물로 번져 보였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배우로서, 감정을 느끼되 그것이 얼굴을 헝클지 않도록 조절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폐를 채웠다. 4초 동안. 그리고 천천히 입으로 내보냈다. 4초 동안. 배우가 무대에 나가기 전에 하는 호흡법이었다.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무엇을 하러 가는지. 단순히 역할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을 바꿀 것이었다.

## 지하철로 가는 길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 민준은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더 이상 떨리지 않고 있었다.

손을 펼쳤을 때, 다섯 개의 손가락이 펴졌다. 완벽하게. 마치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정확히 관찰하는 것처럼. 손톱의 흰색 반달, 손금의 미묘한 주름, 손가락 마디의 각도.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새벽 3시에 떨렸던 손.

그 손이 지금은 안정되어 있었다.

거리를 걸어가면서, 민준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다시 봤다. 아침의 서울이었다. 아직 해는 완전히 뜨지 않았지만, 하늘은 짙은 파란색에서 분홍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움직였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그들도 모두 자신과 같은 불안감을 안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만의 특별한 두려움이 있는 걸까?

민준은 그 생각을 멈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준’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그는 한 번 더 멈췄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하늘을 봤다. 점점 밝아지는 하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루는 자신의 삶을 바꿀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순간을 최선으로 살아내겠다는 다짐이었다. 어제의 민준이 아니라, 오늘의 준으로. 그 역할을 완벽하게 살아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철은 아직 한적했다. 승객들도 적었다. 대부분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었다. 회사로, 학교로, 꿈으로.

승차권을 사고,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먼저 왔다. 터널을 통해 전달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그 감각은 실재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라고 속삭였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현실은 현실이다.

기차의 문이 열렸다.

민준은 탔다. 창가 자리를 찾아 앉았다. 밖으로 보이는 터널의 벽이 검게 흘러갔다. 마치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처럼.

휴대폰을 들었다. 시나리오를 다시 열었다.

*너는 누구야?*

그 대사를 조용히 입술로 혼중거렸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만 만들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이상해할까봐.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휴대폰 화면만 본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 혹은 본다.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대사를 말하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진심인지, 누군가는 보고 있을 수도 있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준의 눈이 되기 위해.

## 오디션장 도착

오디션장은 빌딩 15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며, 민준은 자신의 심박을 느꼈다. 이제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조금 차갑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준비된 배우의 신체 반응이었다. 무대에 나가기 전의 아드레날린. 그것은 필요한 것이었다.

1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대기실이 보였다. 다른 지원자들이 있었다. 10명쯤 되어 보였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들. 혹은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시나리오를 계속 들었다. 어떤 사람은 거울을 들고 표정을 점검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앉아만 있었다.

민준은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네, 민준 님이시군요. 5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스태프가 말했다. 냉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것은 그저 절차였다.

대기실의 문을 통해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조명이 밝았다. 카메라가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감독과 프로듀서, 그리고 캐스팅 디렉터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평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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