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48화: 손가락 위의 진실
도현이는 정수기 앞에서 멈췄다. 컵을 들었다가 놨다. 다시 들었다. 손이 떨렸다. 병실로 돌아가는 복도를 바라봤을 때, 그는 자신이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지금은. 아직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했다. 아직 누나가 어머니의 뺨을 만지는 장면을 보지 않아야 했다. 그것을 보는 것은 자신의 무언가를 깨뜨릴 것 같았다. 오래전에 깨진 것을 더욱 깨뜨릴 것 같았다.
도현이는 복도를 걸었다. 병실들을 지나갔다. 어떤 방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렸고, 어떤 방에서는 침묵만 있었다. 그 침묵 안에 어떤 것이 숨어 있는지 도현이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침묵 안에는 항상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꺼낼 때까지는 아무도 편할 수 없다는 것을.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도현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도현이.”
그것은 낮은 목소리였다. 남자의 목소리. 도현이는 돌아봤다. 강리우가 복도의 끝에 서 있었다. 검은색 옷. 하얀색 얼굴.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종이 봉투 같은 것. 병원 카페에서 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강리우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이 들고 있는 봉투가 마치 무거운 짐인 것처럼.
도현이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돌아섰다. 강리우를 봤다. 완전히. 그 떨리는 손을 봤다. 그 창백한 얼굴을 봤다. 그리고 그 얼굴에 있는 것을 봤다. 절망. 깊은 절망. 도현이는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거울에서 본 표정이었다.
“형아가 왔어요?”
도현이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의 확인.
강리우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천천히. 마치 각 발걸음이 큰 결정인 것처럼.
“네. 왔어요.”
그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현이는 들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안에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들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누나를 사랑한다.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누나를 구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다른 것이었다. 사랑과 구원은 다른 것이었다. 도현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누나를 구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지금 어머니랑 있어요.”
도현이가 말했다. 그것도 정보 전달이 아니었다. 경고였다. 경계였다.
강리우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마치 그 말을 듣고 자신의 혈액이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그 사람이… 깼어요?”
“네.”
도현이가 대답했다.
“어떻게 됐어요?”
강리우가 물었다. 봉투가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졌다. 종이 봉투가 바닥에 부딪쳤을 때, 그 안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작은 종이. 아니, 그것은 종이가 아니었다. 사진이었다.
도현이는 그 사진을 봤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사진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한 개의 얼굴은 어렸을 때의 강리우였다. 그리고 다른 한 개의 얼굴은 도현이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것은 도현이가 아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것은 더 젊은 어머니였다. 그것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였다. 깊은 물 속에서 나온 사람처럼 환기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진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였다.
그리고 강리우는 그 옛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전 생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도현이의 눈이 뜨여졌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리우는 도현이의 눈을 봤을 때, 자신이 말해야 할 모든 것을 이해했던 것 같았다.
“내가 그 사람의 아들이에요.”
강리우가 말했다.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면서.
“당신의 어머니의 아들이에요.”
침묵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음. 그것이 모든 것이었다. 그 버튼음이 시간을 세고 있었다. 한 초. 두 초. 세 초. 도현이는 그 버튼음을 세면서, 자신의 세계가 다시 한 번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누나는 모르고 있어요?”
도현이가 물었다.
“네.”
강리우가 대답했다.
“어머니는요?”
“아직도.”
강리우의 손이 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더 심했다. 마치 그 손 자체가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그 손은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손이었을까? 도현이는 그것을 궁금해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신의 누나를 만나기 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
“내가 너한테 뭘 해야 할까?”
강리우가 물었다. 그것은 도현이를 향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향한 질문.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할까? 내가 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야 할까? 내가 살아 있어야 할까?
도현이는 그 질문의 무게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에 대답할 수 없었다. 17살 소년이 어떻게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누나한테 말해야 해요.”
도현이가 말했다. 그것은 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었다.
강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그 한 번의 끄덕임에는 수천 개의 죽음이 들어 있었다.
병실로 돌아왔을 때, 세아는 여전히 어머니 곁에 서 있었다. 손을 잡고 있었다. 아니,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익사 중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이었다. 마지막 생명줄. 마지막 확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의 마지막 증거.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만지고 있었다. 그 손을 읽으려고 하는 것처럼. 점자처럼. 그 손가락에는 무엇이 써 있을까? 어머니는 그것을 알고 싶어 했다.
“리우가 넌 뭔지 알아?”
어머니가 갑자기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이 세아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어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엄마, 누워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 사람이 뭔지 알아?”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세아를 보지 않고.
“아니요.”
세아가 대답했다.
어머니가 세아를 봤다. 완전히. 처음으로. 그 반쯤 떠 있던 눈이 이제 완전히 떠져 있었다. 그리고 그 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깊고, 어두운 것. 바다의 바닥처럼 깊은 것.
“그 사람은 내 아들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그 순간, 세아의 세계가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형광등의 울렁거림도 멈췄다. 심장 박동도 멈췄다. 모든 것이 멈췄다.
“뭐라고요?”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미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첫 번째 아들이야. 넌 알지 못했던. 내가 절대로 말하지 않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약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깊은 물 속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목소리. 마지막 숨결.
세아는 자신의 어머니를 봤다. 그리고 그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 침묵 안에 숨겨진 것. 그리고 이제 그 침묵이 깨졌다.
“어머니가 왜 지금…”
세아가 말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내가 그 사람을 못 본 지 20년이 넘었어. 그 사람이 너를 만났을 때, 난 그것을 느꼈어. 마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내 과거가 돌아온 것처럼.”
어머니가 계속했다. 세아를 보면서. 그리고 그 시선 안에는 사과가 있었다. 깊은 사과. 20년을 초과한 사과.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그 사람은 나한테서 왔어. 내 피를 가지고 왔어. 그리고 그 사람이 너를 만났을 때, 난 무섭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난 무서웠어. 너한테 그것이 전해질까봐. 내 죄가. 내 비밀이. 내 무게가.”
침묵이 방을 채웠다. 형광등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지구 자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그 호흡과 함께, 세아의 세계가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어머니가 만졌던 손. 그 손가락에는 이제 무언가가 써 있었다. 새로운 무언가. 이전까지 몰랐던 무언가.
“강리우가 뭔가를 원했어요?”
세아가 물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더 낮은. 더 차가운. 더 깊은.
“그 사람은 날 구하고 싶어 했어. 물 속에서. 하지만 난 물 속에 있는 게 편했어.”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날 안을 때, 난 처음으로 깨달았어. 내 죄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짊어질 수 있다는 걸. 그 사람은 나한테 미안해하고 있었어. 나한테서 왔다는 것에 대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 그 사람의 미안함만으로도.”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 안에서, 자신이 이미 깨달았던 것을 확인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강리우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강리우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존재가 자신의 죄를 대신 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누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어머니가 물었다. 세아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을 읽으려고 하는 것처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분노하고 있는 것인지, 슬퍼하고 있는 것인지, 절망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모두였다. 동시에. 한 번에.
병실의 문이 열렸다. 도현이가 들어왔다. 뒤에는 강리우가 있었다. 그 강리우의 얼굴을 세아가 봤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손가락 위의 진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형광등이 다시 울렁거렸다. 밝아지고,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지고. 그 리듬 안에서, 네 개의 손가락이 만났다. 세아의 손가락. 어머니의 손가락. 도현이의 손가락. 그리고 강리우의 손가락.
그들은 서로를 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느꼈다. 같은 혈액 안에서. 같은 침묵 안에서. 같은 불타는 불꽃 안에서.
세아는 그 순간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지만,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세계를 영원히 바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형광등이 한 번 더 울렁거렸다.
그리고 침묵이 모든 것을 덮었다.
# 피의 무게
## 1부: 인정
병실의 공기는 너무 뜨거웠다. 세아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자신의 팔뚝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 열은 마치 누군가가 천천히 자신을 태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어머니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어머니가 깨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호흡의 패턴이 달랐기 때문이다. 자는 사람의 호흡은 더 깊고, 더 규칙적이다. 어머니의 호흡은 얕고, 자주 끊겼다. 마치 물에 잠긴 사람이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애쓰는 것처럼.
“엄마,”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들으니 더 화가 났다. 자신은 강해야 했다. 어머니 앞에서는 특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아니, 지난 몇 년간의 일들이 자신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 눈은 희미했다. 마치 물 속에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세아는 이 표현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머니는 항상 물에 대한 은유를 사용했다. 깊음, 익사, 구원. 이 모든 것들이 어머니의 삶에 얽혀있었다.
“강리우 씨가 왔었어,” 세아가 말을 계속했다. “지난주에. 아버지한테 뭔가를 말하고 싶다고 했어.”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과 어깨의 움직임이 경직되어 보였다. 마치 녹슨 기계의 부품처럼. 세아는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주름들이 더 깊어져 있었다. 입가의 선은 아래로 처져있었고, 이마의 주름은 마치 누군가가 펜으로 그어놓은 것처럼 선명했다.
“그 사람이 뭘 원했어?” 어머니가 물었다.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마치 큰 목소리를 내면 뭔가가 부서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세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병원의 정원이 보였다. 초봄의 정원. 아직도 겨울의 회색빛이 남아있지만, 곳곳에 초록색의 싹들이 나기 시작했다. 그 싹들을 보면서 세아는 생각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죽음과 삶의 경계? 아니면 단지 계절의 순환일 뿐?
“그 사람이… 아버지한테서 뭘 받았대,” 세아가 말했다. “어떤 서류를… 아, 어떤 편지를.”
“무슨 편지?”
세아는 깊게 숨을 쉬었다.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는 병원의 냄새—소독약, 약품, 그리고 무언가 썩어가는 냄새—가 가득했다. 이 냄새는 지난 3주간 세아의 코에 배어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세아가 어디를 가든, 이 냄새는 자신을 따라다녔다.
“강리우 씨가… 아버지를 찾아갔었대. 몇 년 전에. 그리고… 그 사람이 뭔가를 알고 싶어했대. 자신에 대해.”
어머니의 몸이 경직되었다. 세아는 그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침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어머니의 손가락들이 침대보를 집어쥐었다. 손가락의 뼈들이 하얀색으로 떠올랐다.
“그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했어?”
세아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침묵이 그들 사이를 흘렀다. 병실의 형광등이 미세하게 울렁거렸다. 그 울렁거림에 맞춰 세아의 심장이 뛰었다. 마치 자신의 심장과 건물의 전기가 같은 맥박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피를 가지고 왔어.”
세아가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마치 거기에 뭔가가 쓰여있는 것처럼.
“내 피를 가지고 왔어. 그리고 그 사람이 너를 만났을 때, 난 무섭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난 무서웠어.”
“뭐가 무서웠어?”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너한테 그것이 전해질까봐. 내 죄가. 내 비밀이. 내 무게가.”
침묵.
그 단어는 방 안에서 울렸다. 무게. 그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세아는 자신이 무언가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거대한 손이 자신의 가슴 위에 얹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손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 2부: 진실의 형태
형광등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밝아지고,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지고. 그 리듬은 마치 지구 자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아는 자신도 그 호흡에 맞춰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마치 자신이 이 방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그 호흡과 함께, 세아의 세계가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색깔이 다르게 보였다.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심지어 공기의 맛도 달라졌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어머니가 만졌던 손. 아니, 어머니가 만지지 않은 손. 하지만 무언가로 인해 표시된 손. 그 손가락들을 세아가 자세히 들여다봤다. 손가락의 주름들, 손톱의 곡선, 피부의 결.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마치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보는 것처럼.
어머니가 침묵 속에서 계속했다. 목소리가 더 약해졌다. 마치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이 말에 쏟아붓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가 뭔가를 원했어요.”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 낮은. 더 차가운. 더 깊은.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날 구하고 싶어 했어. 물 속에서. 하지만 난 물 속에 있는 게 편했어.”
이 말은 명백한 은유가 아니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아마도 마지막으로.
“엄마… 그게 무슨 뜻이야?”
어머니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은 이제 더 맑아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그 안의 안개를 걷어낸 것처럼.
“그 사람은 나한테 미안해하고 있었어. 나한테서 왔다는 것에 대해. 내 혈액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 그 사람의 미안함만으로도 충분했어. 누군가가 내 죄를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이었어.”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말들을 다시 읽고, 다시 읽었다. 마치 다른 언어로 된 텍스트를 해독하려고 하는 것처럼.
“엄마가… 강리우 씨를…”
“사랑했어?” 어머니가 끝을 맺었다. “네. 하지만 그것이 아니야.”
“그럼 뭐야?”
“존재 자체를 사랑했어. 그 사람의 존재가 내 죄를 증명해주고, 동시에 상쇄시켜준다는 것을. 그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모든 것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었어.”
세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새처럼 자신의 가슴 안에서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그 새는 탈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탈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날개짓을 했다. 무한히.
“누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어머니가 물었다. 그 목소리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바람 소리처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동시에.
분노. 그것은 자신의 배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뜨거운 불처럼.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아니, 어머니에 대한 분노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신이 놓친 것에 대한 분노. 자신이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분노. 자신의 가족이—아니,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실제로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
슬픔. 그것은 자신의 목구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이 그대로 올라오면 울 것이다. 하지만 세아는 울고 싶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만약 울기 시작하면, 자신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절망. 그것은 자신의 뼈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버지는? 도현이는? 자신은?
세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숨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어머니가 그것을 봤다.
“미안해, 누나.”
“뭐가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는 이제 얼음처럼 차가웠다. “엄마가 뭘 하고 있어? 내가 뭘 모르고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어. 그리고 난 그걸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이제 내가 알게 되는 거야. 엄마가 조금씩 다 털어놓으니까.”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세아는 어머니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말했다.
“강리우의 어머니는… 내 친구였어.”
세아가 움직였다. 침대의 모서리에 앉아있던 자신이 일어섰다.
“뭐?”
“내 친구였어. 정말 가까운 친구. 우린 모든 것을 함께했어. 옷도 함께 사고, 밥도 함께 먹고, 꿈도 함께 꿨어. 우리는 언제나 함께일 거라고 생각했어. 영원히.”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도 하지 않았다. 마치 움직이면 이 장면이 산산조각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나타났어. 너희 아버지. 그 사람은 정말 매력적이었어. 그리고 나는…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어.”
“그리고?” 세아가 속삭였다.
“그리고 내 친구도 그 사람을 사랑했어.”
침묵.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
## 3부: 손가락들의 만남
병실의 문이 열렸다. 도현이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 아래에는 검은 자국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검은 색연필로 그어놓은 것처럼. 그의 뒤에는 강리우가 있었다.
강리우를 보는 순간, 세아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 강리우의 얼굴에 비친 어머니의 얼굴. 그 강리우의 눈의 색깔. 그 강리우의 입술의 모양. 모든 것이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도. 아니, 아버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세아는 이제 확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것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강리우가 침대 옆에 섰다. 그의 얼굴은 조심스러웠다. 마치 자신이 깨질 수 있는 도자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어머니,” 강리우가 말했다.
그 단어. ‘어머니’. 그것은 공기 중에 떠있었다. 떨어지지 않고. 녹지 않고. 단지 떠있었다.
어머니가 눈을 떴다. 그리고 강리우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랑? 후회? 그 둘 다?
도현이가 침대의 반대편에 섰다. 그는 세아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강리우가… 너한테 뭘 했어?” 세아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처음에. 어렸을 때.”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이 날 찾아왔어. 너희 아버지 없이. 혼자서. 나한테 말했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세아는 강리우를 바라봤다. 강리우는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단지 존재하고 있었다.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너 뭐 해? 너 말해.”
강리우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닫았다. 다시 열었다.
“내 어머니는… 너희 어머니의 친구였어요. 그리고 내 아버지는…”
강리우가 말을 멈췄다.
“내 아버지가 아니에요. 저는… 나는…”
“너는 누구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정말로 자신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강리우가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희 어머니와 내 어머니의 친구—아니, 내 아버지가 되어야 했던 사람 사이의 아이예요.”
세아의 세계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큰 원의 중심에 서 있고, 그 원이 점점 빠르게 돌고 있는 것처럼. 그 회전과 함께,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명확해졌다. 동시에.
“그래서… 넌… 내 형이야?”
“네,” 강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너희는 나를 모르고 있었어요.”
세아는 앉아내렸다. 의자가 없었으므로, 자신은 바닥에 앉아내렸다. 병실의 바닥은 차갑고 딱딱했다. 그 차가움이 세아의 엉덩이를 통해 전달되었다. 하지만 세아는 신경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