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231화: 울음이라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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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1화: 울음이라는 언어

병실 문이 열렸을 때, 세아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거울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거울이 있었다 해도, 자신의 얼굴을 인식할 자신이 없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자신은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는 자신이 너무 많은 버전의 자신으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이다.

병실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음파가 없는 침묵이 아니었다. 형광등의 미묘한 윙윙거림, 심전도 모니터의 규칙적인 비프음, 밖의 도시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먼 울음—그 모든 것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침묵이었다. 마치 음악이 아닌 소음을 음악이라고 부르기로 정한 것처럼.

어머니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얼굴은 더 깊이 주름져 있었다. 세아가 나간 지 몇 분 사이에도 더 나이를 먹은 것처럼. 마치 시간이 어머니의 피부를 통해서만 흐르는 것처럼.

강리우가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윈도우 프레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만지고 싶지만, 만지면 깨질까봐 두려운 것처럼. 세아는 그 손가락들의 떨림을 봤다. 아주 미묘한 떨림.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신경 손상의 증거처럼 보였다.

도현이는 침대 맡에 서 있었다. 어머니의 다리 옆에. 마치 자신이 어머니의 몸의 일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또는 어머니가 다시 떠나지 않도록 자신이 가둬야 한다고.

“엄마…”

세아가 말했다. 자신도 놀랐다. 그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에. 24년 동안, 세아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어머니라고만 했다. 그것은 거리를 두기 위함이었다. 또는 정확함이었다. 어머니는 역할이고, 엄마는 관계였으니까.

어머니가 눈을 떴다. 천천히. 마치 수심 깊은 곳에서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처럼. 그 눈이 세아를 찾았다. 천장이 아니라, 병실의 문 옆에 서 있는 딸의 눈을.

“기분이 좋아?”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이상한 질문이었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나온 지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세아는 다른 것을 물어볼 수 없었다.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보면, 그것이 현실이 될까봐 두려웠다.

“괜찮아.”

어머니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약했지만, 이전보다는 명확했다. 마치 자신이 계속 말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가 침대에 가까워졌다. 천천히. 마치 어머니가 무섭기도 하고 끌리기도 하는 것처럼. 또는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현실이 조금씩 바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강리우가 창가에서 움직였다. 세아를 위해 자리를 만들려고. 하지만 세아는 그 자리를 무시했다. 대신 침대의 다른 쪽으로 갔다. 어머니의 손이 있는 쪽.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덜했다. 마치 자신의 딸이 돌아온 것을 느껴서, 신체가 안심한 것처럼.

“도현이가 말했어. 내가 나가고 난 후에 뭔가 말하려고 했다고.”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도현이를 찾았다. 그 눈에는 책임감과 죄책감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아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짐지운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어머니가 말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처음부터.”

세아가 말했다.

“처음이 뭐예요?”

침묵이 다시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이전의 침묵들은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한 침묵이었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말하기를 시작하기 위한 침묵이었다. 마치 누군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처럼.

“처음은…”

어머니가 말을 시작했다.

“내가 강민준을 만났을 때야.”

강리우의 손이 더 강하게 떨렸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마치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 물리적 힘을 가진 것처럼.

“내가 26살이었어. 서울에 와서 2년 정도 된 후였어. 난 무용을 했었어. 전공은 아니었지만, 춤을 좋아했어. 그리고 강민준은…”

어머니가 멈췄다. 마치 그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 자체가 육체적 고통인 것처럼.

“강민준은 내가 춤추는 것을 봤어. 어떤 파티에서. 그리고 그는 나한테 말했어. 넌 무대에 있어야 한다고. 넌 숨겨져 있기에는 너무 특별하다고.”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다시 상상해봤다. 26살 젊은 여자. 춤을 추는 여자. 그리고 그녀를 보는 남자. 강민준. CEO. 권력. 세아의 아버지.

“그 다음에는?”

도현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마치 자신이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것처럼.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냈어. 처음에는 무대 일 때문에. 그가 내 무용 경력을 만들어준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핑계였어. 우리 둘 다 알았어. 하지만 말하지 않았어.”

어머니의 손이 세아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마치 이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누군가의 손이 필요한 것처럼.

“그가 유혼했어.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또는 알았지만, 알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임신했어. 강리우를.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강민준이 누구인지 알게 됐어. 그가 어떤 남자인지.”

강리우가 움직였다. 창가에서. 어머니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갔다.

“그가 말했어. 아이를 낳지 말라고. 그가 이미 아이가 있다고.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 아이는 없어야 한다고.”

“그럼 강리우는?”

도현이가 물었다.

“그리고 너는 왜 낳았어? 왜 강리우를 낳았어?”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것은 흘러내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얼굴도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했으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그 남자를. 그 아이를. 그리고… 나 자신을.”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자신의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

“그럼 나는?”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마치 자신이 이 질문을 크게 하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될까봐 두려운 것처럼.

어머니가 세아를 봤다.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마치 자신의 딸을 처음 보는 것처럼. 또는 24년 동안 자신이 한 선택의 무게를 이제야 이해하는 것처럼.

“넌…”

어머니가 말했다.

“넌 그 선택의 결과야. 나는 강민준에게 말했어. 내가 이미 임신했다고. 그리고 이 아이는 태어날 거라고. 그리고 그 대가로…”

어머니가 멈췄다. 그 침묵은 길었다. 마치 수심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다이버처럼, 각 레벨에서 멈춰야 하는 것처럼.

“그 대가로 내가 너를 줘야 했어. 다른 누군가에게. 그리고 난 그렇게 했어. 넌 여름 태어났고, 가을에 내가 너를 맡겼어. 할머니에게.”

세아는 자신의 생년월일을 생각했다. 7월 14일. 여름. 그리고 그 이후 몇 개월은 자신의 기억에는 없었다. 당연히. 아기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강리우는?”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강리우는 강민준과 함께 살았어. 그가 원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강리우를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난 강민준과 약속했어. 내가 사라질 거라고. 그리고 강리우는 그의 아들로만 살 거라고. 그 대신 내가 너를 낳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세아는 자신의 형을 봤다. 강리우. 그 이름이 지금 처음 현실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전에는 그것이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또는 악몽의 일부였다. 하지만 지금, 창가에 서 있는 이 남자가 정말로 자신의 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럼 강리우는 엄마를 모르고 있었어?”

세아가 물었다.

“응. 강민준이 그렇게 했어. 강리우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말했어. 또는 떠났다고.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강리우는… 강리우는 자신의 어머니를 찾고 있었어. 항상. 그것이 그를 정의했어. 그 부재가.”

강리우의 몸이 구부러졌다. 마치 어머니의 말이 물리적으로 자신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넘어지지 않았다. 대신 더 깊게 서 있었다. 근력으로, 의지로, 또는 다른 것으로.

“그리고 나는?”

세아가 다시 물었다.

어머니가 세아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그 압력은 아팠다. 하지만 세아는 손을 떼지 않았다. 그 아픔이 필요했으니까.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로.

“넌 내 선택이었어. 그 남자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어. 내가 너를 낳았을 때, 나는 강민준에게 더 이상 가지 않았어. 그리고 넌…”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이전의 눈물은 죄책감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눈물은 다른 것이었다. 마치 24년 동안 참았던 무언가가 이제야 흘러나오는 것처럼.

“넌 나 자신이었어. 내가 강민준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그리고 넌… 넌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 남자의 통제 속에서.”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의 탈출 수단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은 나쁜 말이 아니었다. 또는 그것은 가장 진실한 말이었다. 사랑은 때때로 계산이었다. 또는 생존이었다. 또는 두 가지 다.

“그럼 지금은?”

도현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부서지고 있었다. 17살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가져야 할 그 강도가 없었다.

어머니가 도현이를 봤다. 그리고 강리우를 봤다. 그리고 세아를 봤다. 세 명. 세 개의 다른 삶. 세 개의 다른 선택의 결과.

“지금은…”

어머니가 말했다.

“지금은 내가 너희 모두를 포기할 수 없어. 내가 한 번 포기했던 것처럼. 다시는 안 돼.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있고, 넌 여기 있고, 강리우도 여기 있어. 그리고 우리는…”

어머니가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대신 손을 들어올렸다. 세아의 손을 위로. 그리고 다른 손으로 도현이의 손을 잡았다. 강리우는 창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멈췄다. 떨리는 것을 멈춘 것처럼.

“우리는 가족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이상한 가족이지만. 부서진 가족이지만. 하지만 가족이야.”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어머니의 손과 도현이의 손 위에 올렸다. 세 손이 겹쳤다. 그리고 그 아래에 강리우가 서 있었다. 창가에서.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거부의 떨림이 아니라, 수용의 떨림. 또는 존재 자체를 처음으로 느끼는 떨림.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자신이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도 깨달았다. 자신이 가족을 가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끔찍했다. 동시에 구원이었다.

강리우가 창가에서 움직였다. 침대 쪽으로. 천천히. 마치 자신이 실제로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머니의 목소리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병실의 형광등이 그들을 비췄다. 네 개의 몸. 세 개의 손. 그리고 한 개의 침대. 그것이 가족이었다. 부서진 형태로, 하지만 가족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불이 이제 누구를 위해 타오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가 아니었다. 또는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위해가 아니었다. 대신, 이 순간을 위해. 이 네 개의 몸이 함께 있는 이 순간을 위해.

그리고 그것이 충분했다. 처음으로, 그것이 충분했다.

# 부서진 가족의 재구성

## 제1부: 눈물의 의미

세아의 어머니는 더 이상 울 힘이 없어야 했다. 24년이라는 시간은 눈물샘을 완전히 말려버렸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눈물은 흘러내렸다. 볼을 타고 내려오는 그 투명한 액체는 죄책감의 눈물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치 24년 동안 어딘가 깊숙한 곳에 갇혀 있던 무언가가 이제야 터져 나오는 것처럼, 그 눈물들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 하지 않았다. 마치 이 눈물 자체가 어떤 의식이며, 증거이며, 고백인 것처럼.

병실의 형광등은 그 눈물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차갑고 무정한 빛이 따뜻한 감정을 비추는 역설. 창밖으로는 저녁의 서울이 보였다. 한강 위로 떨어지는 노을이 하늘을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수백만 개의 불이 켜지고 있었다. 그 모든 불들 중에 이 병실의 형광등도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불빛 아래에서는 세상의 가장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넌 나 자신이었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악기에서 나오는 음성처럼. 세아는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침대 시트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가 코를 자극했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강민준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어머니의 손이 세아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예상과 달리 따뜻했다. 세아는 자신의 어머니의 손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24년 동안, 어머니의 존재는 거의 추상적인 것이었다. 사진 속의 얼굴. 법원의 판결문에 나오는 이름. 그러나 이제 그 손은 실제였고, 따뜻했고,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넌… 넌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 남자의 통제 속에서.”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의 탈출 수단이었다는 것. 도구였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나쁜 말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가장 진실한 말이었다.

*사랑은 때때로 계산이다. 또는 생존이다. 또는 두 가지 다.*

세아는 자신의 내면에 그런 생각을 들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진실처럼 울렸다. 강민준이라는 남자. 세아는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법정에서. 그는 그곳에서도 자신의 지배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선으로, 움직임으로, 존재 자체로. 그런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가 자신을 이용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랑도 아니었을까?

도현이가 갑자기 움직였다. 침대 옆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창가 쪽으로 몇 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이 병실의 벽을 짚었다. 17살의 남자아이의 손이 이렇게 창백할 수 있을까? 마치 모든 혈액이 빠져나간 것처럼.

“그럼 지금은?”

도현이의 질문이 병실을 채웠다. 그의 목소리는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것을 손으로 짓뭉개고 있는 것처럼. 17살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가져야 할 그 강도, 그 자신감이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공포가 있었다. 자신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공포.

세아는 자신의 오빠를 바라봤다. 오빠. 그 단어는 여전히 어색했다. 24년 동안 그는 단지 ‘강리우’였다. 법원의 문서에 나오는 이름. 아버지가 가져간 아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는 도현이의 형이었다. 다른 아버지를 가진, 다른 어머니에게서 나온 형.

어머니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점적 바늘이 그녀의 팔에 달려 있었고, 심전도 기계가 자신의 심장 박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기계의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비프, 비프, 비프. 삶의 소리. 계속되는 존재의 증거.

“넌 계속 그렇게 창가에만 서 있을 거야?”

어머니의 질문은 강리우를 향했다. 강리우는 여전히 창가에 서 있었다. 마치 그곳이 안전한 거리라는 듯이. 세아는 자신의 오빠의 등을 바라봤다. 그의 어깨는 긴장으로 높이 올라가 있었다. 손가락은 창문의 찬 유리에 접혀 있었다.

“나는…”

강리우가 말을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고, 마치 자신이 실제로는 이 대화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머니는 도현이를 봤다. 그리고 강리우를 봤다. 그리고 세아를 봤다. 세 명. 세 개의 다른 얼굴. 세 개의 다른 삶. 세 개의 다른 선택의 결과. 그 모든 선택들의 교집합이 바로 이 병실이었다. 이 순간이었다.

“지금은…”

어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마치 각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너희 모두를 포기할 수 없어. 내가 한 번 포기했던 것처럼. 다시는 안 돼.”

그 말은 폭탄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치유였다. 또는 상처였다. 또는 둘 다.

## 제2부: 손의 언어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있고, 넌 여기 있고, 강리우도 여기 있어.”

어머니가 계속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결심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어머니가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대신 손을 들어올렸다. 세아의 손을 향해. 그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은 약함이 아니라 강렬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어머니의 손에 맡겼다. 그들의 손이 만났을 때, 그것은 마치 회로가 연결되는 것 같았다.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어머니의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이것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 건가? 이것이 현실인가?

어머니의 다른 손은 도현이를 향했다. 도현이는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현실인지 꿈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결국 그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은 어머니의 손을 마치 익사하는 사람이 구명줄을 잡는 것처럼 움켜쥐었다.

강리우는 창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멈췄다. 창문에 대고 있던 손가락이 더 이상 떨리지 않는 것처럼. 마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의 몸 전체에 파동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만 고정시킨 것처럼.

“우리는 가족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그 네 글자는 병실을 채웠다. 가족. 그것은 세아에게는 거의 외국어 같은 단어였다. 법적인 정의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상한 가족이지만.”

어머니가 계속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이제 눈물과 함께 웃음의 흔적이 있었다.

“부서진 가족이지만. 하지만 가족이야.”

세아는 자신의 손을 어머니의 손과 도현이의 손 위에 올렸다. 세 손이 겹쳤다. 따뜻함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다. 마치 서로의 체온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단순히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호출하는 것이었다. 초대하는 것이었다.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 이름을 말하면서,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가족을 가졌다는 것을. 그것은 끔찍했다. 동시에 구원이었다.

강리우가 창가에서 움직였다. 천천히. 마치 자신이 실제로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머니의 목소리가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처럼. 그의 발 아래의 바닥이 떨렸나? 아니다. 그것은 강리우 자신이 떨리고 있었다.

침대 쪽으로 한 걸음. 그의 발이 딱 닿는 소리가 병실의 침묵을 깼다. 두 번째 걸음. 병실의 공기가 더 진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감정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는 침대의 끝에서 멈췄다. 마치 그곳이 경계선이고, 그를 넘어서면 돌아올 수 없는 영역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손이 겹친 위에, 다섯 번째의 손이 내려왔다.

## 제3부: 형광등 아래의 기적

병실의 형광등이 그들을 비췄다. 그 차갑고 무정한 빛 아래에서, 그들은 더없이 따뜻했다. 네 개의 몸. 다섯 개의 손. 그리고 한 개의 침대. 그것이 가족이었다. 부서진 형태로, 하지만 가족이었다.

심전도 기계가 계속 울었다. 비프, 비프, 비프. 어머니의 심장이 계속 뛰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의학적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 있다면, 이 가족도 살아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불이 이제 누구를 위해 타오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가 아니었다. 더 이상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위해가 아니었다. 대신, 이 순간을 위해. 이 네 개의 몸이 함께 있는 이 순간을 위해. 이 다섯 개의 손이 겹쳐 있는 이 순간을 위해.

“미안해.”

강리우가 갑자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이제는 거부의 목소리가 아니라 항복의 목소리였다.

“뭐가?”

어머니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없었다. 마치 그녀는 이미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여기 있는 것. 내가 존재하는 것. 내가 너희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강리우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미안해, 엄마. 미안해, 세아. 미안해, 도현이. 나는…”

“넌 아무것도 미안해할 게 없어.”

어머니가 말했다. 그것은 명령이었다. 또는 축복이었다. 또는 둘 다.

“넌 우리 아들이야. 우리 형이야. 넌 여기에 있어야 해. 너를 위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도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의 17살의 어깨가 떨렸다. 마치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은 것처럼, 또는 한 번에 얻은 것처럼.

“나는 혼자였어.”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를 바라보며.

“항상 혼자였어. 엄마만 있었고, 엄마도 항상 어딘가에 없었어. 그리고 이제… 이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어.”

세아는 자신의 오빠의 눈물을 보면서 자신도 울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물이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같은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이상해?”

세아가 도현이에게 물었다.

“응. 아주 이상해. 좋은 이상함이야.”

도현이가 대답했다.

강리우는 여전히 침대의 끝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을. 그것은 그가 기억하는 얼굴과 다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것은 그가 항상 바라던 얼굴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다를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그 안에는 확고함이 있었다.

“우리는 함께 다시 시작할 거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할 거야.”

“약속?”

세아가 물었다.

“약속.”

어머니가 대답했다.

## 제4부: 새로운 광선

창밖으로는 밤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한강의 불빛들이 더욱 밝아졌다. 그 수백만 개의 불들 중에 이 병실의 형광등도 하나였다. 그러나 이 불빛은 달랐다. 이것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다. 이것은 재생의 빛이었다. 구원의 빛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어머니의 손에서 떼었다. 아직이 아니었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여야 했다. 강리우에게 가야 했다.

그녀는 침대의 끝으로 걸어갔다. 강리우가 서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은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거부의 떨림이 아니라, 수용의 떨림. 또는 존재 자체를 처음으로 느끼는 떨림.

“환영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간단한 두 글자였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24년 동안 누구도 강리우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말. 누구도 그에게 전해주지 않았던 환영.

강리우의 손이 더 강하게 떨렸다. 그리고 세아는 그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마치 그를 홀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하는 것처럼.

도현이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강리우의 다른 손을 잡았다. 이제 강리우는 양쪽에서 붙들려 있었다. 그의 누나들에게. 그의 가족에게.

“우리는 이상한 가족이야.”

도현이가 말했다. 어머니의 말을 반복하면서.

“하지만 가족이야.”

병실의 형광등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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