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228화: 돌아가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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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8화: 돌아가야 할 곳

어머니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침묵 속에서. 어머니의 입술이 움직이려 했지만, 그 움직임이 멈춰 있었다. 마치 어떤 문장은 말해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또는 말해진 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처럼.

병실의 형광등이 그 침묵을 비췄다. 차갑고,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만드는 그런 빛.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자신의 손. 그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묘하게. 마치 누군가 먼 곳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어서, 공기 전체가 진동하고 있는 것처럼.

“떠났다면…”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왜 내가 존재해요?”

강리우가 움직였다. 아주 빠르게. 어머니의 침대 옆으로. 마치 누군가 세아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어머니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은 강리우에게가 아니라 세아에게 향했다.

“넌 존재하고 있지. 지금. 여기서.”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더 명확해졌다. 마치 자신이 말해야 할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난 강민준이를 떠났을 때 이미 넌 있었어. 내 몸 안에. 3주. 아니, 정확하게는 3주 2일이었어. 난 그것을 몰랐어. 또는 알고 싶지 않았어. 그 남자와의 관계가 끝난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어.”

세아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자신이 앉았다기보다는, 자신의 다리가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 후로 몇 주가 지났어. 그리고 난 임신 사실을 알았어. 넌 이미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난 선택을 해야 했어. 강민준이에게 말할지, 말하지 않을지. 리우를 데리고만 떠날지, 넌 데리고 갈지.”

어머니가 다시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더 힘겨워 보였다. 마치 자신이 말하는 것 자체가 육체적 고통인 것처럼.

“난 강민준이에게 말했어. 너에 대해. 그리고 그 남자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세아는 말하지 않았다. 머리를 저었다.

“그 남자가 말했어. 넌 없어야 한다고. 넌 태어나면 안 된다고. 넌 위험이라고. 넌 자신의 제국을 무너뜨릴 거라고. 그래서 그 남자가 했던 제안은…”

어머니가 멈췄다. 오래. 정말 오래.

“그 남자가 말했어. 만약 내가 너를 낳지 않으면, 자신이 리우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리우의 양육권을 두고 싸우지 않겠다고. 또 다시 날 찾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한테 충분한 돈을 줄 거라고.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리우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만큼.”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세아 자신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폐가 더 이상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하지 않는 것.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기로 선택했던 그 24년 동안, 호흡도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근데 난 낳았어.”

어머니가 계속했다.

“넌 내 선택이었어. 강민준이의 조건과 상관없이. 내가 너를 놓칠 수 없었어. 내 몸 안에서 느껴지는 그 음악 같은 움직임. 그것이 나한테는 강리우보다 더 중요했어. 그래서 난 너를 낳았어. 그리고 그 대가로…”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전과는 다른, 더 깊은 눈물.

“그 대가로 난 너를 줄 수 없었어. 난 혼자 키울 수 없었어. 강민준이가 추적할 수 없게. 그래서 난…”

“맡겼어요.”

세아가 말했다. 자신이 말해야 할 것을 미리 말해버린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맞아. 내 친구에게. 강민준이가 절대 추적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제주의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에게. 그리고 난 5년이라고 했어. 5년이 지나면 다시 데려가겠다고. 하지만…”

“5년이 지나지 않았어요.”

세아가 말했다.

“내가 찾아갔어요.”

강리우가 움직였다. 세아를 봤다. 질문하려는 표정. 하지만 어머니가 먼저 말했다.

“넌 언제?”

“9살 때.”

세아가 대답했다.

“학교를 빠졌어요. 버스를 탔어요. 제주행. 아무도 모르게.”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넌… 혼자?”

“네. 혼자였어요. 그리고 할머니를 찾았어요. 할머니가 나를 키웠던 할머니를. 할머니는 날 보고 울었어요. 3시간 동안. 그리고 말했어요. 내 엄마가 찾아오고 싶어했다고. 계속. 매일매일. 하지만 찾아올 수 없었다고. 왜냐하면 위험했기 때문이라고.”

세아가 멈췄다. 병실의 형광등을 봤다. 그 빛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그림자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다. 밝은 빛이 어떻게 그렇게 깊은 어둠을 동반할 수 있는지.

“할머니가 말했어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랑이 항상 함께 있는 건 아니라고. 때로는 떨어져 있는 게 사랑이라고. 때로는 침묵이 보호라고.”

강리우가 의자에 앉았다. 세아가 앉은 의자와 반대편에. 마치 자신도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럼 넌?”

어머니가 물었다.

“그 후로?”

“할머니와 살았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내가 13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리고 13살이 됐을 때 말했어요. 이제 너는 선택할 수 있다고. 엄마를 찾을 수 있다고. 또는 계속 여기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럼 넌?”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찾아갔어요. 서울에. 그리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엄마를 찾았어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그 일정으로.”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마치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삶을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엄마를 봤을 때 느낀 게 뭐냐면… 엄마도 나를 봤다는 거였어요. 그 전에도. 몇 번. 편의점에 오신 적이 있었어요. 내가 일하는 시간에. 그리고 매번 뭔가를 사지 않으시고 그냥 나를 보고만 가셨어요. 마치 자신이 산 것이 정말로 있는지 확인하려고. 또는 사라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어머니의 손이 떨렸다. 침대 위에서.

“난 그걸 이해했어. 왜냐하면 난 할머니를 그렇게 봤거든. 매일. 할머니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엄마가 나를 원한다고. 계속. 매일. 하지만 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때로는 떨어져 있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고.”

세아가 일어났다. 의자에서. 그리고 어머니의 침대로 걸어갔다. 강리우를 지나쳐서. 어머니의 옆에 앉았다.

“그래서 난 엄마를 찾지 않기로 했어요. 그 대신 엄마가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엄마가 준비될 때까지.”

“세아야…”

어머니가 세아의 손을 다시 잡았다.

“미안해. 정말로. 난 넌…”

“알아요.”

세아가 말했다.

“할머니가 말했어요.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 그리고 할머니 말이 맞았어요. 왜냐하면 엄마가 아파했거든. 매일. 그것이 나한테 증명이었어요.”

병실이 조용해졌다. 형광등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호흡. 약하지만 존재하는.

강리우가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서. 병실의 문으로 걸어갔다.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복도가 보였다. 그곳에서 도현이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여전히 떨리는 어깨로.

“도현이.”

강리우가 속삭였다.

“들었나?”

도현이가 머리를 들었다. 그의 눈은 빨개져 있었다. 울었던 눈. 또는 울고 있던 눈.

“들었어.”

도현이가 말했다.

“그리고… 뭘 해야 하는지 알아.”

“뭘?”

강리우가 물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거. 누나에게. 엄마에게. 그리고 할머니한테도. 모두에게. 그리고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해야 한다는 것도.”

도현이가 말했다. 17살의 목소리로. 하지만 그것은 17살의 목소리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오래된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가족의 무게. 사랑의 무게. 그리고 선택의 무게.

강리우는 도현이를 보고만 있었다. 말하지 않고.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걸 인식하는 것처럼.

병실 안에서, 세아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손가락들이 얼마나 가늘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따뜻한지. 세아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또는 정말로 처음으로.

“엄마가 뭘 두려워했어요?”

세아가 물었다.

“아버지 말고 다른 것. 엄마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게 뭐였어요?”

어머니의 눈이 닫혔다. 또 다시.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약함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넌 나를 보고만 있었어.”

어머니가 속삭였다.

“5년 동안 떨어져 있었어도. 13살이 되어서 날 찾았을 때도. 넌 항상 나를 보고만 있었어. 마치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나한테는 가장 큰 고통이었어. 넌 나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두려움으로 표현되었어. 그리고 난 그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어.”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침묵했어. 5년. 13년. 24년. 계속 침묵했어. 왜냐하면 내가 말을 하면, 그것이 현실이 되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현실이 되면, 넌 더 이상 내 상상 속의 아이가 아니라, 내가 해친 아이가 되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난 침묵했어. 그리고 침묵하면서 죽어갔어.”

어머니가 눈을 떴다. 그리고 세아를 봤다. 그 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죄책감, 사랑,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

“미안해. 정말로. 하지만 이제… 이제는 넌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

“어디로요?”

세아가 물었다.

“제주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그리고 거기서 기다려. 내가 나을 때까지. 내가 충분히 나을 때까지. 그리고 내가 나으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겼다.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처럼.

“내가 나으면, 난 찾아갈 거야. 이번엔 영원히 남으면서.”

병실의 형광등이 그 약속을 비췄다. 그리고 세아는 이해했다. 이 빛 속에서. 이 차가운 병원의 빛 속에서. 어머니가 말한 것의 의미를. 돌아가는 것. 기다리는 것. 그리고 마침내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유일한 방식이라는 걸.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래. 정말 오래. 마치 자신이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처럼. 그리고 어머니도 세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치 24년의 침묵이 이 한 순간의 접촉으로 회수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복도에서 도현이와 강리우는 침묵하고 있었다.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의 침묵으로.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뭔가가 깨졌다. 또는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언가. 그것은 혈육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매일매일의. 계속되는. 끝나지 않는 선택으로.

세아는 마침내 어머니의 손을 놓고 일어났다. 병실을 나갔다. 복도로. 도현이와 강리우가 서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들을 지나쳐서. 계단으로. 병원을 나가는 길로.

그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형광등의 빛과 그 빛이 만드는 그림자만. 그리고 세아의 발걸음음. 처음으로 명확한 방향을 향한 발걸음음.

제주로. 할머니에게. 그곳에서 엄마가 나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리고 그 기다림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


12,847자

# 확장된 화

## 1부: 침묵의 무게

병실의 형광등이 희부연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은 너무 밝아서 오히려 어두워 보였다. 세아는 어머니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을 꼬아 풀었다, 다시 꼬았다. 반복했다. 자신의 신경을 어딘가에 고정시키려는 절망적인 시도였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자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세아는 알았다. 어머니의 호흡이 너무 가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왼손이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현실을 붙잡으려는 듯이.

“엄마,”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다. 병실의 침묵을 깨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 눈동자가 세아를 찾아 초점을 맞추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마치 깊은 수중에서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처럼 천천히, 천천히.

“세아.” 어머니가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같았다.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너 여기 있구나.”

“네, 엄마. 저 여기 있어요.”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종이처럼 얇았고, 차가웠다. 생명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의 따뜻한 손을 어머니의 손에 포개려고 했다. 마치 자신의 온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24년이야,”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세아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어머니는 계속했다. “24년을 기다렸어. 너를 만나기 위해. 아니야. 그게 아니라… 24년을 피했어. 너를 만나는 것을 피했어.”

세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년 동안 기다려온 이 순간. 어머니가 마침내 말할 것 같은 이 순간.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이 될지는 몰랐다.

“어머니…”

“5년 동안 떨어져 있었어도. 13살이 되어서 날 찾았을 때도. 넌 항상 나를 보고만 있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좀 더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약했다. 마치 물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치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눈으로. 그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봤어. 마치 내가 언제든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이 말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한테는 가장 큰 고통이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더 세게 어머니의 손에 짜 맞혔다.

“넌 나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두려움으로 표현되었어. 그 슬픈 눈으로. 그 간절한 표정으로. 마치 내가 너를 버릴까봐 두려워하는 눈으로. 그리고 난 그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어. 그 무거운 감정들을. 내가 만들어낸 그 무거운 감정들을.”

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자신이 우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어머니는 계속했다.

“그래서 난 침묵했어. 5년. 13년. 24년. 계속 침묵했어.”

이 말들이 세아의 가슴을 찔렀다. 침묵. 그 끔찍한 침묵. 세아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신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어머니는 있었지만 없었다. 현재했지만 부재했다.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뭐가 있을까?

“왜요?”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왜 침묵하셨어요?”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마치 마지막 힘을 다해.

“왜냐하면 내가 말을 하면, 그것이 현실이 되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현실이 되면, 넌 더 이상 내 상상 속의 아이가 아니라, 내가 해친 아이가 되기 때문이었어.”

세아는 이해했다. 갑자기, 명확하게. 어머니의 침묵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보호였다.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현실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라는 현실로부터.

“그래서 난 침묵했어. 그리고 침묵하면서 죽어갔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아는 들었다. 마치 어머니의 입술을 읽는 것처럼.

“내가 침묵하면 모든 게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내 죄책감도. 내 두려움도. 그리고 넌… 넌 내 인생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넌 사라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갔어.”

세아는 자신의 울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어깨가 떨렸다. 몸 전체가 떨렸다. 수년 동안 누적된 감정들이 마침내 터져 나오는 것처럼.

## 2부: 깨달음의 빛

어머니가 눈을 떴다. 완전히. 세아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죄책감. 그것은 눈의 밑바닥에 있었다. 깊고 어두운 우물처럼. 24년 동안 쌓인 죄책감.

사랑. 그것은 눈동자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을 향한, 끝나지 않는 사랑.

두려움. 그것은 눈 전체를 떨게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아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 새로운 빛처럼. 눈 위쪽에서 비쳐오는, 작지만 분명한 깨달음.

“미안해,”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로. 내가…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는지… 나는 알아. 이제는 알아.”

“엄마, 괜찮아요. 괜찮아…”

세아가 말했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괜찮아야 했다. 이 순간만큼은.

“아니야. 괜찮지 않아.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괜찮지 않을 거야.”

어머니는 깊게 숨을 쉬었다. 마치 물 속에서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힘들게.

“하지만 이제… 이제는 넌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

세아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어디로요?”

“제주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그곳이 너의 집이야. 지금은.”

세아가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어머니가 그를 막았다. 손을 더 세게 쥐어서.

“거기서 기다려. 내가 나을 때까지. 내가 충분히 나을 때까지. 이 침묵에서. 이 죄책감에서. 이 두려움에서. 내가 나을 때까지.”

“그런데 얼마나 오래 걸려요?”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어머니는 웃음처럼 들릴 수 있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숨이었다. 오래된, 깊은 한숨.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나으면… 내가 정말로, 진심으로 나으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겼다.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것처럼.

“내가 나으면, 난 찾아갈 거야.”

세아가 기다렸다. 그 문장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이번엔 영원히 남으면서.”

그 말은 공기 중에 떠다녔다. 형광등의 차가운 빛 속에서. 병원의 무균 냄새 속에서. 의료 기계들의 규칙적인 소리 속에서.

“약속이에요?”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세아의 손을 자신의 뺨에 대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답이라는 것처럼.

“약속이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야. 하지만 난 지킬 거야. 이번엔. 난 반드시 지킬 거야.”

## 3부: 침묵의 언어

병실의 형광등이 그 약속을 비췄다. 그 약속을 밝혀냈다. 그리고 세아는 이해했다.

이 빛 속에서. 이 차가운 병원의 빛 속에서. 어머니가 말한 것의 의미를.

돌아가는 것. 그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믿음이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깊고 절대적인 믿음.

기다리는 것. 그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능동적인 사랑의 행위였다. 어머니가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어머니가 자신의 과거를 용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세아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유일한 방식이라는 걸.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면서 함께 하는 것. 침묵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말 속에서 함께 하는 것. 두려움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속에서 함께 하는 것.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래. 정말 오래.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마치 자신이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처럼. 그 감각은 맞았다.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순간이 만드는 것들은 남을 것이다. 신뢰는 남을 것이고. 약속은 남을 것이고. 그리고 사랑은… 사랑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어머니도 세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치 24년의 침묵이 이 한 순간의 접촉으로 회수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 손잡음 속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미안함이 있었다. 24년의 미안함. “내가 너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내가 너의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내가 너를 상처 줬다”라는 미안함.

사랑이 있었다. 처음 느낀 아이였을 때의 사랑. 그 순간이 돌아올 때마다 느낀 사랑.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는, 끝나지 않는 사랑.

그리고 희망이 있었다. 변할 수 있다는 희망.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병실의 창문 밖으로 저녁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늘이 주황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는 시작되고 있었다.

## 4부: 복도의 침묵

복도에서 도현이와 강리우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은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인지 모르게.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의 침묵으로.

도현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떨고 있었다. 신경증적으로. 강리우는 벽에 기대어 있었다. 눈을 감고. 하지만 자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얼굴이 너무 팽팽해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의 형광등이 그들을 밝히고 있었다. 그 밝음 속에서도 그들은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각자의 생각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도현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세아가 제주로 가야 한다고 했어?”

강리우가 눈을 떴다.

“응.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곳으로.”

“얼마나 오래?”

“모르겠어. 언니가 나을 때까지.”

도현이가 다시 침묵했다.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다리를 두드렸다. 탁탁탁. 규칙적으로. 마치 시간을 세는 것처럼.

“이건 옳지 않아,” 도현이가 중얼거렸다. “아이가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게 말이 되나?”

강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동시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세아는 어머니를 사랑해. 아직도. 그리고 어머니는 세아를 사랑해. 아직도. 그 사랑이 지금까지 그들을 묶어뒀어. 하지만 그 사랑도 상처가 되었어. 언니의 침묵 때문에.”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깊은 슬픔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분리가 필요한 거야. 사랑이 상처가 되지 않으려면. 사랑이 진짜가 되려면. 그들은 먼저 떨어져야 해. 그리고 다시 만나야 해. 다른 사람으로서. 더 이상 어머니와 아이가 아니라. 어머니와 성인 아이로서. 그것이 진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도현이가 다리를 떨기를 멈췄다. 강리우의 말이 복도의 침묵을 가득 채웠다. 그 침묵 속에서, 뭔가가 깨졌다. 또는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언가.

그것은 혈육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포와 유전자만으로는. 그것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매일매일의. 계속되는. 끝나지 않는 선택으로.

“나는…” 도현이가 말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이게 옳은지. 하지만… 하지만 아마도 맞는 것 같아.”

강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 5부: 출발

병실의 문이 열렸다. 세아가 나왔다.

도현이와 강리우가 일어섰다. 하지만 세아는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세아는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미 제주로 떠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미 할머니의 집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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