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226화: 침묵 속의 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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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6화: 침묵 속의 선택지

세아가 병실에 들어섰을 때, 강리우는 여전히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목 근처의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방금 말한 것들을 다시 삼키려고 애쓰는 것처럼.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로 있었고, 도현이는 세아를 본 순간 몸이 굳었다.

“누나.”

도현이가 속삭였다. 그 한 단어에는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안도감, 두려움, 그리고 혼란. 17살 남자아이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

세아는 도현이 옆으로 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몸이 얼마나 차갑게 식어 있는지 느껴졌다. 마치 이 병실의 온도 자체가 인간의 체온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여기 없어. 밖에 나가 있어.”

세아가 도현이에게 속삭였다.

“누나…”

“가. 제발.”

도현이는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매우 천천히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작고, 소심한 그 소리.

이제 병실에는 세아, 강리우, 그리고 침대 위의 어머니만 남았다.

강리우가 움직였다. 어머니의 침대에서 조금 물러섰다. 세아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가 떠 있었다. 눈물이 아니었다. 세아는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눈물보다 더 위험한 무언가. 마치 폭발 직전의 침묵처럼.

“세아.”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랐다. 한강공원에서의 부드러움이 없었다. 대신 그것은 차갑고, 명확하고, 마치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넌 들었나? 아버지가 뭐라고 했는지.”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 몸.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아버지는 넌 자신의 가장 큰 실수라고 했어.”

강리우가 계속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나한테 뭘 하라고 했는지 알아? 어머니를 지키라고. 그리고 동시에 넌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넌 위험이라고. 넌 불이라고.”

세아의 손가락이 떨렸다. 아주 약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아버지가 내 앞에서 뭐라고 했냐면, 넌 어머니를 태운다고. 그리고 어머니를 태우는 것이 아버지의 죗값을 갚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그래서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나는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어. 8개월 동안. 그리고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어.”

강리우가 한 발 가까워졌다.

“맞나? 넌 정말로 불이야? 아니면 아버지가 그저 겁먹은 남자의 망상이야?”

침대 위에서 어머니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천천히. 마치 누군가를 붙잡으려는 시도처럼.

“강리우.”

어머니가 눈을 떴다. 그 눈은 천장이 아니라 강리우를 보고 있었다.

“넌 아직도 모르는구나. 아버지가 뭘 두려워했는지.”

어머니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그것이 가진 무게는 엄청났다. 마치 수십 년의 침묵이 한 문장에 압축된 것처럼.

“강민준이는 세아를 두려워했어. 세아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세아가 뭘 할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침을 삼켰다. 그 행동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무엇보다 강민준이는 자신이 세아 때문에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병실의 한 구석에 서서. 형광등 아래에서. 마치 자신이 그 불빛의 일부인 것처럼.

“파괴될 수 있다?”

강리우가 물었다.

“어떻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를 보았다. 오랫동안.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또는 마지막으로 보는 것처럼. 그 눈빛에는 인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따뜻한 인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섞인 인정이었다.

“세아야.”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넌 말하지 않았지. 넌 들었나? 넌 들을 수 있어?”

세아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네. 들을 수 있어요.”

“그럼 들어. 정확하게. 기억해. 넌 절대로 강민준이의 딸이 아니야. 넌 절대로 그 남자의 혈육이 아니야.”

강리우가 움직였다. 마치 뭔가를 반박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어머니는 손을 들어올렸다. 아주 천천히. 마치 그 움직임 자체가 큰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넌 내 선택이야. 내가 선택한 아이야. 강민준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내가. 그 남자가 와서 뭐라고 말하든, 그 남자가 죽은 뒤에 누가 뭐라고 말하든…”

어머니의 눈이 다시 세아를 찾았다.

“넌 내 아이야. 그리고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야.”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목에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마치 음악이 음악에서 분리되려고 하는 그 순간처럼. 분리될 수도, 남아있을 수도 없는 그런 상태로.

강리우가 천천히 침대에서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풀려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것처럼.

“8개월 동안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있었어.”

강리우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버지가 세아는 불이라고 했으니까. 아버지가 세아는 위험이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세아를 멀리하려고 했어. 그리고 어머니를 지키려고 했어. 마치 자신이 무언가를 구할 수 있을 것처럼.”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기였다. 또는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틀렸어. 아버지는 세아가 뭔지 몰랐어. 세아는 불이 아니야. 세아는…”

강리우가 세아를 보았다. 처음으로. 그의 눈이 정확히 세아와 맞닿았다.

“세아는 선택이야. 어머니의 선택.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를 두렵게 했던 거야. 선택할 수 없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 자신의 실패 때문에 만들어진 것.”

어머니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침대 위에서. 이번에는 강리우를 향해.

“넌 이제 알았으니 놔줄래? 오래된 것들을 내려놓을래?”

강리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려놓은 손처럼. 하지만 쳐내릴 수 없는 손처럼.

“난…”

강리우가 말했다.

“난 뭘 해야 할 지 몰라요. 아버지가 내게 준 것이 없어지니까.”

“그럼 이제 새로 시작해.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우리가 있어. 넌 이미 여기 있어. 이미 밤 한 두 시쯤에 우리 병실에 와 있어. 그것이 뭔 의미인지 아니?”

강리우는 침대에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마치 누군가가 그의 다리를 걷어찬 것처럼. 그리고 그 무릎을 꿇은 채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정이었다. 또는 항복이었다.

세아는 그들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강리우. 침대와 바닥 사이의 그 공간에서. 마치 그들이 세상의 모든 것이고, 그 이상의 것도 아닌 것처럼.

“세아야.”

어머니가 다시 세아를 불렀다.

“넌?”

세아는 한 발을 더 내디뎠다. 침대에 가까워졌다.

“난…”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었다. 자신이 뭔지. 자신이 여기서 뭘 해야 할 것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난 모르겠어요.”

세아가 결국 말했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강리우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천천히. 그리고 그것이 세아를 향해 움직였다.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또는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래. 넌 아직 모를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모르는 것도 선택이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는 그 손을 잡았다. 강리우보다 먼저. 어머니의 손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손은 차가웠다. 매우 차가웠다. 마치 수십 년의 침묵이 손가락 끝까지 얼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잡았다. 마치 그 차갑음을 자신의 체온으로 녹이려는 것처럼. 또는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병원의 형광등이 그들 셋을 비추고 있었다. 어머니, 강리우, 그리고 세아. 침대 주변에 모여 있는 세 사람. 마치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처럼. 또는 무언가가 끝나는 것처럼.

세아의 손가락이 어머니의 손가락과 닿았다. 강리우의 손가락과도. 세 사람의 손이 침대 위에서 만났다. 마치 무언가를 함께 붙잡고 있는 것처럼.

“강민준이가 죽기 전에 뭘 남겼어?”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매우 명확했다.

“뭘 남겼고, 뭘 가져갔어?”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리우도.

대신 그들은 그렇게 있었다. 세 사람. 손을 맞잡은 채로. 침대 위에서. 밤 2시 40분경의 병실 안에서. 형광등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고, 모니터가 어머니의 심박동을 그려내고 있었고, 복도에서는 도현이의 작은 숨소리가 들렸고, 서울의 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세아는 자신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강민준의 딸인지, 어머니의 선택인지, 강리우의 여동생인지, 도현이의 누나인지. 또는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진실인지.

하지만 그 순간, 그 침대 위에서, 세 사람의 손이 만나 있는 그 공간에서, 세아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했다. 적어도 이 밤에는.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길었는지 세아는 모르겠었다. 아마도 몇 분이었을 것이다. 또는 몇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다. 병원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마치 병원 자체가 시간의 바깥에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강리우와 세아의 손을 놓고.

“이제 넌 도현이를 봐줄래?”

어머니가 세아에게 말했다.

“도현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 아이가…”

어머니가 침을 삼켰다.

“그 아이가 알아야 할 게 있어.”

세아는 일어났다. 어머니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었다. 그리고 강리우를 보았다.

강리우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침대 옆에. 마치 그 자세가 그의 새로운 형태인 것처럼.

“형.”

세아가 말했다.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지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맞는 것인지도 느껴졌다.

“도현이 좀 봐줄래?”

강리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이제는 눈물이었다.

“응. 나도…”

강리우가 말했다.

“나도 도현이를 만날 준비가 되었어.”

세아는 병실을 나갔다. 복도로. 형광등 아래로. 그리고 거기서 도현이를 찾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17살의 작은 몸으로.

도현이는 세아를 보고 일어났다.

“누나. 뭐라고 했어? 형이 뭐라고 했어? 엄마는?”

도현이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세아는 도현이를 안았다. 말 없이. 아무 설명 없이.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있었다. 복도의 의자 근처에서. 누나와 동생.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진 두 사람. 마치 세상의 모든 혼란이 이 포옹 안에서 해결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강민준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모든 것들의 무게가 이제 그들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지, 그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세아의 손가락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도현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마치 자신도 도현이처럼 누군가에게 안겨야 할 것처럼. 또는 누군가를 안아줘야 할 것처럼.

병원의 밤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새벽 3시는 곧 다가올 것이었다.


발행 후 검토 체크리스트:

– [ ] 글자수 확인: 12,000자 이상?

– [ ] 금지 패턴 확인: [STATUS], End of Chapter, Thank you 등 없음?

– [ ] 첫 문장이 매력적인가? (이전 화와 완전히 다른가?)

– [ ] 마지막 문단이 다음 화 궁금증을 유발하는가?

– [ ] 캐릭터 이름/관계가 일관성 있는가?

– [ ] 시간/장소 연속성이 맞는가?

– [ ] 5단계 플롯 구조가 명확한가?

# 12화: 선택의 무게

## 제1장: 침묵의 끝

병실의 형광등이 희뻑거렸다. 그 희미한 불빛 아래서 머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손에서 강리우와 세아의 손을 천천히 놓으면서, 마치 자신의 마지막 생명줄을 풀어놓는 것처럼.

침묵은 길었다. 병원의 야간 소음—멀리서 들려오는 의료진의 발걸음음, 복도의 낮은 경보음, 누군가의 신음—이 모든 것이 그 공백을 채웠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술이 움직이는 순간, 모든 외부의 소리가 먼 곳으로 밀려났다.

“이제 넌 도현이를 봐줄래?”

어머니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던 탓일 것이다. 그 목소리에는 요청이라기보다는 거의 간청에 가까운 톤이 담겨 있었다. 세아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피로뿐 아니라, 깊은 죄책감과 불안감이었다. 주름이 더 깊어져 있었고, 눈 주위의 피부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이 며칠간이 그녀에게서 몇 년을 빼앗아간 것 같았다.

“도현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머니가 계속했다. 그녀의 손이 침대 보에 내려앉았다. 손가락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그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을 본다. 어머니도, 자신과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어머니가 침을 삼켰다. 목구멍에서 ‘꿀떡’하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단순한 생리 작용이 아니라, 마음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절박한 시도처럼 들렸다.

“그 아이가 알아야 할 게 있어.”

그 말이 끝나자, 병실 안의 공기가 변했다.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산소의 농도가 달라진 것처럼. 온도가 떨어진 것처럼. 아니, 그보다는 현재와 미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세아는 일어났다. 어머니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었다. 손가락 끝이 어머니의 손등을 스칠 때, 그녀는 어머니의 피부가 얼마나 차가운지를 느꼈다. 마치 어머니가 이미 이 세계의 따뜻함을 다 포기한 것처럼.

그리고 강리우를 보았다.

강리우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침대 옆에. 마치 그 자세가 그의 새로운 형태인 것처럼. 그의 무릎은 단단한 병원 바닥과 만나 있었고, 그 접점에서 피부가 붉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리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 고통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벌칙이라고 믿는 것처럼.

세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욕구와 그럴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의 심정을 느껴보았다.

“형.”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지 느껴졌다. 혀 위에서 굴리는 그 음절은 마치 낯선 나라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발음이 어색했고, 그로 인한 불편함이 입 전체에 퍼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맞는 것인지도 느껴졌다.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단어를 다시 찾은 것처럼.

“도현이 좀 봐줄래?”

강리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움직임이 매우 느렸다. 마치 목의 뼈가 녹슬어 있는 것처럼.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릴 힘이 없어 보였던 눈이 다시 눈물로 가득 찼다. 이번의 눈물은 다른 것이었다.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무언가를 받아들인 후의 눈물. 혹은 무언가를 놓아준 후의 눈물.

“응. 나도…”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결정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나도 도현이를 만날 준비가 되었어.”

그 말을 하는 동안, 강리우의 얼굴에 무언가가 흐르고 지나갔다. 공포?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해방감에 가까웠다. 마치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거짓의 무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준비가 된 것처럼.

## 제2장: 복도의 빛

세아는 병실을 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만약 돌아본다면,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고 싶은 욕구에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이제 도현이가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복도로 나갔다. 형광등 아래로.

그 복도는 세아가 지난 며칠간 몇 번이나 오갔던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 걷는 복도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느껴졌다. 벽이 더 좁아 보였고, 천장이 더 낮아 보였다. 혹은 세아 자신이 커졌거나, 무거워졌거나, 더 많은 것을 짊어지게 되었거나.

병원의 복도는 항상 특유의 냄새가 났다. 소독약과 병의 냄새. 죽음과 생명이 뒤섞여 있는 냄새. 세아는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자신의 폐에 그것을 가득 채웠다. 마치 이 순간을 몸으로 기억하려는 것처럼.

거기서 도현이를 찾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17살의 작은 몸으로.

도현이는 세아를 보자마자 일어섰다. 그 움직임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아니,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처럼.

“누나. 뭐라고 했어? 형이 뭐라고 했어? 엄마는?”

도현이의 질문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한 가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질문이 밀려왔다. 그 빠른 질문의 속도 속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17살이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느껴지는 도현이의 목소리 속에는 모든 것이 망가질까봐 두려워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세아는 도현이를 안았다. 말 없이. 아무 설명 없이.

그것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도현이는 처음에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그 포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세아가 자신의 등을 쓰다듬기 시작하자, 도현이의 몸이 천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도현이의 몸이 세아의 가슴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누나…”

도현이가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려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있었다. 복도의 의자 근처에서. 누나와 동생.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진 두 사람. 마치 세상의 모든 혼란이 이 포옹 안에서 해결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 제3장: 시작의 무게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강민준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모든 것들의 무게가 이제 그들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낙하가 아니라, 서서히 내려오는 눈처럼 조용했지만, 확실했다.

세아는 도현이를 안으면서 동시에 그 무게를 감지했다.

강민준. 그 이름은 이제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짓의 이름이었다. 속임수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남긴 흔적들은 이제 네 명의 가족을 짓누르고 있었다.

강리우의 정체성.

어머니의 죄책감.

도현이의 혼란.

그리고 세아 자신의 불신.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무거운 짐으로 변해버렸다.

세아는 도현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그 동안 자신의 손가락이 얼마나 떨렸는지를 생각했다. 손가락의 떨림은 신체의 반응이었다. 불안의 신체화. 그런데 지금 그 떨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도현이를 안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도현이처럼 누군가에게 안겨야 할 것처럼. 또는 누군가를 안아줘야 할 것처럼.

세아는 그 모순적인 감정을 느껴보았다. 자신이 동생을 안아주는 주체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안겨야 하는 대상이라는 감각. 그것은 성장이라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었다. 또는 고독이라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었다.

도현이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세아는 깊게 들이마셨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익숙한 냄새였다. 세제의 냄새, 그리고 그 아래 있는 피부의 냄새. 하지만 지금 그 냄새는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그 냄새에 시간의 무게가 더해진 것처럼.

“누나, 형은?”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포옹 속에서, 세아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채로.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그럴 수 없었다.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강리우가 형인지 아닌지. 아버지가 누구인지. 이 가족이 무엇인지. 그 모든 것들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흐릿한 형태로 그들의 삶 속에 떠 있었다.

## 제4장: 병원의 밤

병원의 밤은 계속되었다.

밤의 병원은 낮의 병원과 완전히 다른 생물이었다. 낮에는 의료진의 발걸음으로 가득했지만, 밤에는 고요함이 지배했다. 그 고요함은 편안함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기다림이었다. 무언가 불가피한 것을 기다리는 밤의 침묵.

시계를 보면 새벽 2시 47분이었다. 세아는 도현이를 안은 채로 시간을 세었다. 분침이 움직이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한 그 순간에, 그녀는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새벽 3시는 곧 다가올 것이었다.

그 시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터닝 포인트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은 새벽 3시 이후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새벽 3시 이후로는 다시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복도의 형광등이 다시 희뻑거렸다.

그 희미한 빛 속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이 손은 앞으로 누구를 안아줄 것인가.

이 손은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이 손은 어떤 진실을 지탱할 것인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 앞에서, 그녀의 손가락은 계속 떨릴 것이라는 것이었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병원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의료진의 발걸음음이 그 신음을 따라 움직였다. 생명의 연속성. 그것이 병원의 진정한 정체성이었다.

새벽 3시까지 남은 시간은 13분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여전히 도현이를 안고 있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안겨야 할 것처럼, 누군가를 안아줄 것처럼. 그 모순적인 상태 속에서, 밤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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