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217화: 강민준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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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7화: 강민준의 침묵

도현이 들어왔을 때,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고 있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다시. 왼손. 한, 둘, 셋, 넷, 다섯. 이 행동은 더 이상 의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호흡하는 것처럼, 자동으로 반복되는 것이 되어 있었다. 손가락을 세는 것. 자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병실 문이 닫혔다. 도현이가 들어오는 소리. 발걸음이 빠르고 불규칙했다. 세아는 손가락 세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도현이의 얼굴이 창백했다. 17살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치 밤새 깨어 있었던 것처럼. 아니, 아마도 깨어 있었던 것이 맞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깨어난 뒤로 도현이는 한 번도 충분히 잔 것 같지 않았다.

“누나.”

도현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강리우가 있던 자리. 그는 몇십 분 전에 나갔다. 어머니의 손을 놓고, 천천히, 마치 자신이 산산이 부서질까봐 조심스럽게.

도현이가 앉았다. 그는 세아를 바라봤다. 그 눈 안에는 뭔가가 있었다. 질문. 분노. 또는 두려움. 아마도 그 모든 것이 섞여 있을 것이었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도현이가 물었다.

“모든 것.”

세아가 대답했다.

침묵이 들어왔다. 형광등이 그것을 비추고 있었다. 병실 안의 모든 것을 중립적이고 무정하게. 세아는 어머니를 봤다.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마치 천장 위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강민준이?”

도현이가 물었다.

“응.”

“그게… 우리 아버지 이름이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도현이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어머니가 말하기 전에 알고 있었다. 이 며칠 동안 도현이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뭔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JYA 대표?”

“응.”

“그리고 강리우가…”

도현이가 말을 멈췄다. 마치 그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세상을 부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처럼.

“우리 형이야.”

세아가 대신 완성했다.

도현이의 몸이 의자에 쓰러졌다. 마치 누군가 그를 밀어낸 것처럼. 그는 천장을 바라봤다. 어머니와 같은 방향으로. 마치 그것이 유일한 피난처인 것처럼.

“얼마나… 오래?”

도현이가 물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만날 때부터.”

세아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응.”

도현이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천장을 봤다. 세아는 자신의 남동생을 봤다. 그의 얼굴에서 아직 소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흔적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또는 누군가가 그것들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엄마는?”

도현이가 물었다.

“뭐가?”

“강민준을 아직도…”

도현이가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세아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질문이었다. 어머니가 강민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사랑인지, 증오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아니면 그 둘 다가 아닌 다른 무언가인지.

병실의 모니터가 울렸다. 어머니의 혈압이 올라갔다는 뜻이었다. 세아와 도현이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천장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건반을 치려고 하는 것처럼. 또는 무언가를 누르려고 하는 것처럼.

“강리우는?”

도현이가 물었다.

“나갔어. 조금 전에.”

“어디로?”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강리우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도현이가 일어났다. 의자를 밀면서. 그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나도 나가야겠어.”

도현이가 말했다.

“어디로?”

“학원. 아니, 학교. 아니, 그냥… 나가야겠어.”

도현이의 목소리가 부서지고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남동생의 등을 봤다. 문으로 향하는 등. 그리고 그 등이 떨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현아.”

세아가 불렀다.

도현이가 멈췄다. 손잡이를 쥐고.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나는…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나가지 않았다. 단지 열어두었다. 복도의 소리가 들어왔다. 누군가의 발걸음. 누군가의 목소리. 평범한 병원의 평범한 아침.

“누나도 미안한 거야?”

도현이가 물었다. 여전히 돌아보지 않으면서.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냥 나한테 말하는 거야?”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둘 다.”

세아가 대답했다.

도현이가 문을 닫았다. 천천히. 마치 무언가를 해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나갔다. 복도로. 계단으로. 병원 밖으로. 세상 밖으로.

세아는 자신의 남동생이 가는 것을 듣지는 못했지만, 느꼈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나가는 것처럼. 또는 자신이 더 깨지는 것처럼.

어머니가 움직였다. 침대 위에서. 마치 도현이의 떠남을 느낀 것처럼.

“세아.”

어머니가 말했다. 처음으로 세아의 이름을 불렀다.

세아가 어머니를 봤다.

“난 너한테 뭔가를 해줄 게 있어.”

어머니가 말했다.

“뭐가?”

세아가 물었다.

“너를 놓아줄 거야.”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 말이 공기 중에서 떠 있었다. 놓아준다. 세아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머니가 자신을 놓아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인가, 포기인가.

“넌 강민준한테 가야 해.”

어머니가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강민준한테. 그리고 그한테 물어봐야 해. 왜 날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왜 넌… 있으면서 없었는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약해지고 있었다. 마치 그 말들을 꺼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썼던 것처럼.

“엄마…”

세아가 말했다.

“난 더 이상 말할 수 없어. 난 너한테 모든 것을 말했어. 이제 넌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해.”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천천히. 마치 그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살아 있다는 증거. 하지만 그 손 안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과 고통이 담겨 있었는가. 세아는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과거의 어딘가에. 강남역 지하의 클럽에서. 무대 위에서. 목소리로 세상을 울리던 곳에.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세아는 강리우를 찾지 않았다. 대신 병원 지하의 카페로 내려갔다. 그곳은 항상 사람이 적었다. 오전 11시경의 병원 카페는 특히 그러했다. 누군가는 위에 있고, 누군가는 나가 있고, 누군가는 더 깊은 곳에 있었다. 세아는 카페의 한 구석에 앉았다. 창문이 지하라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에.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물을 마셨다. 미지근한 물. 아무 맛도 없는 물. 그것이 좋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물.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세아는 처음에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두 번 울렸다. 그리고 세 번.

“여보세요?”

세아가 받았다.

“나세아씨?”

남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명확하고, 힘이 있었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강민준입니다.”

그 남자가 말했다.

세아의 손가락이 떨렸다. 물잔을 놨다. 물이 조금 흘렀다. 누군가의 음성이 그녀의 귀를 통해 들어왔다.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남자. 하지만 아버지가 아닌 남자.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도.

“뭐…”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너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서 깨어났다고.”

강민준이 말했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강민준이 말했다.

“네.”

세아가 다시 대답했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가?”

강민준이 물었다.

“병원이에요.”

세아가 대답했다.

“내가 가도 되겠는가?”

강민준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강민준이 와도 되는가.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어머니? 강리우? 자신?

“내가 가겠다.”

강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다시. 왼손. 한, 둘, 셋, 넷, 다섯.

카페의 다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세아와 카운터 뒤의 직원뿐이었다. 그 직원은 세아를 보지 않았다. 또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누군가의 붕괴를 목격하는 것은 불편했으니까.

세아는 물을 다시 마셨다. 미지근한 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물.


강민준은 40분 뒤에 도착했다.

세아는 카페를 나와 병원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이 있었다. 11월의 햇빛. 따뜻하지 않지만, 있었다. 세아는 그 햇빛을 느끼고 있었다. 피부에. 마치 그것이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처럼.

검은색 차가 들어왔다. 고급 차였다. 세아는 그 차의 번호판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남자는 봤다.

그는 50대 초반이었다. 키가 크고, 몸이 탄탄했고, 옷이 비쌌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세아는 그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봤다. 강리우의 얼굴. 강리우의 눈. 강리우의 입술. 모든 것이 같았다. 단지 시간만 다르게 했을 뿐.

강민준이 세아에게 다가왔다.

“나세아.”

그가 말했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너는 나를 닮지 않았다.”

강민준이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너의 어머니를 닮았다. 그것이 다행이다.”

강민준이 말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아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이다. 그 단어. 무엇이 다행인가.

“들어가자.”

강민준이 말했다.

세아는 따라갔다. 병원 안으로. 엘리베이터로. 병실이 있는 층으로.


어머니의 병실 문 앞에서, 강민준이 멈췄다.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단지 그것을 바라봤다. 마치 그것이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인 것처럼.

“내가 그 여자를 만났을 때, 나는…”

강민준이 말하기 시작했다.

“뭐였어?”

세아가 물었다.

“미쳤었다.”

강민준이 대답했다.

그 말이 공기 중에서 떠 있었다. 미쳤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랑에 미쳤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미쳤다는 뜻인가.

강민준이 손잡이를 잡았다.

병실의 문이 열렸다.

어머니의 눈이 강민준을 봤다. 그리고 그 눈 안에는 14일간의 침묵도, 24년간의 비밀도, 지금 이 순간도 모두 있었다.

강민준이 한 발 들어왔다. 그리고 멈췄다.

“안녕하세요.”

그가 말했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하듯.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었다. 침대 위에서. 세아가 이미 잡았던 손.

강민준이 그 손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마치 그 손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리고 다가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그 손이 깨질 수 있는 유리인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어머니의 손가락과 만났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 접촉. 24년 만의 접촉.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이 두 손이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없었을 것이었다. 이 두 손이 만났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다.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세아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그리고 세아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다시. 그 리듬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심장처럼. 마치 자신의 목소리처럼. 마치 자신의 불꽃처럼.

세아는 병실을 나갔다. 문을 닫으면서. 그 안에는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아버지가 있었다.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그들 안에는 자신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하지만 확실하게. 영원히.


병원의 복도는 길었다. 세아는 그것을 걸었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누군가를 찾지도 않고. 단지 걸었다.

강리우가 어디에 있는지, 세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도현이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도.

대신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다시.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또 다시.

# 병실의 문 앞에서

“들어가자.”

강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얇고 긴장되어 있었다. 마치 깨진 유리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사람처럼.

세아는 따라갔다. 병원 안으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들은 나란히 섰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문이 열렸을 때, 세아는 자신의 아버지—아니, 강민준을 슬쩍 바라봤다. 그의 턱이 팽팽하게 조여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3층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의 음성이 차갑게 울렸다.

세아의 심장이 작은 망치처럼 가슴을 두드렸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들을 세기 시작했다.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다시. 한, 둘, 셋, 넷, 다섯. 이 리듬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어린 시절부터? 아니면 더 오래전부터? 이 리듬이 그녀의 몸에 새겨진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몸이 이 리듬 위에 지어진 것인가?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갔다. 각 층마다 작은 ‘딩’ 소리가 났다. 마치 관이 못질되는 소리처럼. 아니, 그것은 무덤의 돌이 굴러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엄마가 계속 자고 있을까?”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단순한 음성 형태의 불안이었다.

강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손이 움직였다. 작고 무의미한 움직임이었다. 주머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 과정이 반복되었다.

“2년 동안…”

강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뭐요?”

“2년 동안 나는 그 여자를 피했다. 이 병원에 올 때마다. 다른 층에 환자들이 있었는데도 나는 3층을 피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아는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서 흔들림을 들었다. 강민준은 항상 안정적이었다. 마치 돌처럼. 마치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 움직일 수 없는 것.

“왜요?”

세아가 물었다.

“내가 그 여자를 만났을 때…”

강민준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왜곡되고, 흔들리고,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뭐였어?”

세아가 다시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 멈췄다. 그 사이에 강민준의 대답이 떠 있었다.

“미쳤었다.”

그의 목소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복도의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그것은 병원의 모든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마치 그들이 모두 고통 속에서 울고 있는 것처럼. 마치 그들도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그 소리에 집중했다. 윙윙거림. 그것이 그녀를 현실에 묶어두는 유일한 것 같았다. 만약 그 소리가 멈춘다면, 그녀도 멈출 것 같았다. 만약 그 소리가 계속된다면, 그녀도 계속될 것 같았다.

병실 번호 312.

강민준이 멈춰섰다. 문의 손잡이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금속이었다. 차갑고 무겁고, 누군가의 손이 만졌을 수도 있고, 만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것은 정확히 그것이었다. 다른 세상으로. 그의 과거로. 그의 비밀로. 그의 죄책감으로.

세아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돌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마치 파도 위의 잎처럼.

“내가 그 여자를 만났을 때, 나는…”

강민준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지하실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깊고, 어둡고, 공명하는.

세아는 대기했다. 그녀의 숨이 멈췄다. 그녀의 심장이 멈췄다.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 모든 것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였어?”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마치 누군가가 듣지 못하도록 의도한 것처럼.

“미쳤었다.”

강민준이 대답했다.

그 말이 공기 중에서 떠 있었다. 마치 해로운 가스처럼. 마치 독소처럼. 마치 진실처럼.

미쳤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랑에 미쳤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로맨틱한 표현이 될 수 있다. 흔한, 일상적인, 누구나 경험하는 그런 미침. 그러나 강민준의 목소리에는 그런 로맨틱함이 없었다. 그 대신에 있었던 것은 공포였다. 후회였다.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것. 뭔가 말하기 어려운 것.

세아는 그 말 안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했다. 만약 강민준이 미쳤다면,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인가? 미침의 산물인가? 광기의 증거인가? 아니면 그냥 실수인가?

“그 미침이… 나요?”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강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이 움직였다. 문의 손잡이를 향해. 천천히. 마치 그 손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것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들이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에 닿았다. 그 접촉 자체가 마치 충격이었다. 마치 전기였다. 마치 진실이었다.

“들어갈 준비됐어?”

강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의 선언.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 자체가 그녀의 목숨줄을 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민준이 손잡이를 잡았다.

병실의 문이 열렸다.

어머니—아니, 그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눈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아니면 마치 이미 포기한 것처럼.

하지만 강민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의 눈이 움직였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그 움직임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처럼.

그리고 그녀의 눈이 강민준을 봤다.

세아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그 순간 안에 있었던 모든 것. 14일간의 침묵. 24년간의 비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것 모두가 그 눈 안에 있었다. 마치 우주가 그 눈 안에 압축되어 있는 것처럼.

강민준이 한 발 들어왔다. 그리고 멈췄다.

“안녕하세요.”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인사하는 목소리였다. 정중했다. 거리감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매우 천천한 움직임. 마치 수중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의 손이 들렸다.

그것은 세아가 이미 잡았던 손이었다. 하얀 병원 침대 시트 위에서 창백해 보이는 손. 정맥이 보이는 손. 마치 그 손 안에 모든 인생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손.

강민준이 그 손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바라봤다. 마치 그 손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마치 그 손이 자신과 관계가 없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버지…”

세아가 속삭였다. 그것은 실수였다. 그 단어는 그녀의 입에서 나가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이미 나가버렸다. 공기 중에 떠 있었다. 되돌릴 수 없이.

강민준은 그것을 들었다. 그의 어깨가 떨렸다.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그리고 그는 다가갔다. 병상 쪽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그 손이 깨질 수 있는 유리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진짜가 아닌 것처럼. 마치 그것이 환영인 것처럼.

그의 손이 들렸다.

그의 손가락이 어머니의 손가락과 만났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 접촉. 그 단순한, 그러나 완전하지 않은 접촉. 24년 만의 접촉. 아니, 더 정확히는 처음의 접촉.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 손가락들이 서로를 찾으려고 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마치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깨달았다.

이 두 손. 이 두 손이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이 두 손이 만났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다. 이 두 손의 미침 때문에. 이 두 손의 광기 때문에. 이 두 손의 비극 때문에.

세아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정의하려고 했다.

축복인가? 아니다. 축복은 이렇게 무거운 것이 아니다.

저주인가? 아마도. 하지만 저주도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세아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영원히 모를 것 같았다.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윙윙거렸다. 그 소리가 마치 그들 모두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울음인 것처럼. 마치 기도인 것처럼.

세아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다시.

한, 둘, 셋, 넷, 다섯.

그 리듬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심장처럼. 마치 자신의 목소리처럼. 마치 자신의 불꽃처럼. 그것은 계속 뛸 것이고, 계속 울릴 것이고, 계속 타오를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니까.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니까.

세아는 병실을 나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뒤를 보면 안 되는 것처럼.

문을 닫으면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병실 안에는 그 여자와 강민준이 있었다. 여전히 손을 잡고 있었다. 마치 그 손을 놓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처럼.

그 안에는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아버지가 있었다.

법적으로는 아니었다. 호적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다른 관계가 있었다.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는 정확히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안에는 자신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하지만 확실하게. 영원히.

세아의 손이 문고리에서 떨어졌다.

문이 닫혔다.

병원의 복도는 길었다.

세아는 그것을 걸었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누군가를 찾지도 않고. 단지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복도에 울렸다. 그 소리가 다른 형광등을 깨우는 것처럼. 하나, 둘, 셋. 그것들이 모두 켜지면서 윙윙거렸다.

강리우가 어디에 있는지, 세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자신을 원하고 있는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도현이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지.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자신을 용서하고 있는지.

대신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었다.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다시.

한,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또 다시.

한, 둘, 셋, 넷, 다섯.

그 리듬이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것이 그녀 자신이었다.

복도의 끝에서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그것도 윙윙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것도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마치 그것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마치 그것도 살아 있는 것처럼.

세아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 둘, 셋, 넷,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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