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5화: 강민준의 손가락
세아의 어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의료진의 지시를 어기고. 마치 누워 있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그 몸을 곧게 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강리우가 다가가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세아는 그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강리우의 손이 아니라, 어머니의 몸을 지탱하려다 함께 떨리는 손.
“누워 있어요. 엄마.”
강리우가 말했다. 제일 처음으로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 단어가 공기 중에서 흔들렸다. 마치 처음 태어나는 단어처럼.
어머니는 강리우의 손을 보고, 그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세아는 그 두 손을 봤다. 강리우의 손—피아니스트의 손, 가늘고 음악 같은 손. 어머니의 손—해녀의 손, 소금기 가득하고 상처로 얼룩진 손. 그 두 손이 겹쳐졌다.
“넌 강민준의 아들이지?”
어머니가 물었다.
“응.”
강리우가 대답했다.
“그럼 넌 알겠지. 그 남자가 뭔지.”
어머니의 눈이 천장을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천장이 아니라 과거가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이해했다. 어머니의 눈이 보고 있는 것은 지금 여기가 아니었다.
“나는… 많은 걸 알아.”
강리우가 말했다. 목소리에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충분하진 않을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침묵이 들어왔다. 병실의 형광등이 그 침묵을 비추고 있었다. 세아는 시계를 봤다. 오전 7시 34분. 아침이 깊어지고 있었다. 밖에서는 누군가가 웃음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병원 복도에서. 누군가는 계속 살아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여기서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과거를 말하고 있었다.
“강민준이 내 곡을 뺏은 건 아니었어.”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내 곡이 아니었어. 강민준 것이었어. 애초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변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입고 있는 것처럼. 또는 자신의 목소리를 비로소 찾은 것처럼.
“나는 가사를 썼어. 멜로디는 강민준이 만들었어. 아니, 강민준이 만든다고 했어. 하지만 나중에 알았어. 그 멜로디는…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을.”
세아의 몸이 경직됐다. 그 단어들. 다른 곳에서. 표절. 훔쳐온 것.
“그래서?”
세아가 물었다.
“그래서 내가 무대에서 내려왔어. 강민준이 나를 내린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내려왔어. 나는 그걸 알았거든. 내가 부르고 있는 곡이 내 것도 아니고, 강민준 것도 아니라는 걸.”
어머니가 강리우의 손을 더 세게 눌렀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현실인 것처럼.
“그리고 나는… 도망쳤어.”
어머니가 말했다.
“어디로?”
강리우가 물었다.
“제주로. 다시. 해녀 엄마한테. 그리고 거기서… 너를 만났어.”
어머니의 눈이 강리우를 바라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또는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기 시작했다. 다시. 양손을 교대로. 이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했다. 어머니가 강민준의 아이를 낳았다. 강민준—JYA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음악을 상품으로 만드는 남자. 어머니의 목소리를 빼앗은 남자.
“넌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
강리우가 물었다.
“말할 수 없었어.”
어머니가 대답했다.
“왜?”
“강민준이 원하지 않았어. 그리고… 나도.”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내가 너를 낳았을 때, 강민준은 날 찾아왔어. 그리고 말했어. ‘이걸 없애든지, 아니면 결정해야 한다’고. 넌 내 아들이 될 수도 있고, 아무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하지만 둘 다 될 순 없다고.”
세아는 호흡을 멈췄다. 그 말이 들렸을 때. 남자가 여자에게—아이가 태어났을 때—말하는 그 말. 그것은 협박이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넌 뭘 선택했어?”
세아가 물었다.
“넌.”
어머니가 세아를 바라봤다. 그 눈 안에는 14일간의 침묵과 24년간의 비밀이 있었다.
“내가 넌 선택했어. 넌 내 아들이 되지 않기로. 그 대신… 잊혀지기로.”
강리우의 몸이 경직됐다.
“아버지는 너를 알지 못해. 너를 본 적 없어. 너의 이름도 모르고, 넌 그의 아이가 아니야. 공식적으로. 법적으로. 모든 방면에서. 단지… 생물학적으로만.”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내가 왜…”
강리우가 말을 꺼냈다가 멈췄다.
“왜 넌 이제야 알았는지? 왜 나는 이제야 말하는지?”
어머니가 강리우의 질문을 완성했다.
“응.”
강리우가 대답했다.
“넌… 너무 커버렸어. 넌 스스로 찾아왔어. 너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너의 이름이 뭔지 찾기 위해.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힘이 없어졌어.”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 흘렀다. 14일 만에 깨어난 첫 눈물. 그리고 지금 흘리는 눈물. 그 눈물들이 모두 다른 시간에서 온 것 같았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창밖을 봤다. 서울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강남역 위로 자동차가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회사에 가고, 누군가는 학교에 가고, 누군가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아는?”
강리우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를 봤다. 오랫동안.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세아는… 내가 강민준으로부터 도망친 후에 만난 남자의 딸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도망친 후에?”
세아가 물었다.
“응. 제주에서 다시 일어났을 때, 나는 너를 낳았어. 너의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어. 아주 좋은 사람. 하지만 그는… 떠났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단조로워졌다.
“왜?”
“나 때문이야. 내 침묵 때문에. 내가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날 구하려고 했어. 날 말하게 하려고.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어.”
어머니가 천장을 봤다.
“그래서 아버지는 떠났어. 그리고 나는 너를 혼자 낳았어. 혼자 키웠어. 그리고… 침묵 속에서.”
세아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여자가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이 침묵이 자신의 침묵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이 상처가 자신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럼 강민준은?”
세아가 물었다.
“뭐?”
어머니가 물었다.
“아직도 살아 있어?”
침묵이 들어왔다. 긴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세아는 자신의 심장박동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호흡. 그리고 강리우의 손가락이 떨리는 소리.
“살아 있어. 그리고… 널 찾고 있어.”
어머니가 마침내 말했다.
“나를?”
세아가 물었다.
“아니. 너의 목소리를.”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의 목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목소리.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나? 자신의 목은? 자신의 노래는?
“왜?”
세아가 물었다.
“왜냐하면… 넌 나 같아.”
어머니가 말했다.
“너도 노래할 수 있어. 너도 무대에 설 수 있어. 그리고 강민준은… 그걸 알아. 그건 이미 알아 있었어. 네가 어릴 때부터.”
세아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봤다. 제주에서. 어머니와 함께. 노래했던 그 시간들.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지만, 들어주던 그 시간들.
“그래서 나는 너한테 말하지 않았어.”
어머니가 계속했다.
“너의 목소리에 대해. 너의 재능에 대해. 왜냐하면… 그것이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 나처럼. 너도 태워질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 세었던 손가락들. 몇 번이나 세었나. 몇 번이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세었나.
“어머니가…”
강리우가 말했다.
“강민준한테… 뭐라고 했어? 세아에 대해?”
“아무것도.”
어머니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 세아는 그냥… 내 딸이 되었어. 강민준의 딸이 아니라. 단지 내 딸.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
강리우의 손가락이 더 떨렸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오빠의 손가락. 아직도 오빠라는 단어가 어색했다. 그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럼 지금은?”
강리우가 물었다.
“왜 이제 말해?”
“왜냐하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거든. 저 침대에서. 그리고 그렇게 되면… 너도 세아도…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을 거였어.”
어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강리우가 말리지 않았다. 대신 도와줬다. 손으로 어머니의 등을 받쳐주면서.
어머니가 반쯤 일어났을 때, 세아는 그 여자의 얼굴을 봤다. 14일 만에 깨어난 얼굴. 마스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눈이 붓고 있었다. 그리고 입술이 창백했다. 하지만 그 눈은—그 눈은 살아 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강민준이 언제 찾아올 거 같아?”
세아가 물었다.
“모르겠어.”
어머니가 대답했다.
“하지만 올 거야. 넌 그의 딸이니까. 그리고… 넌 아직도 노래하고 있잖아.”
세아는 자신의 목을 만졌다. 자신의 목. 자신의 목소리. 그것이 이미 누군가의 것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해야 해?”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그 손 안에는 14년의 침묵과 24년의 비밀이 있었다.
“너는… 침묵하지 마.”
어머니가 마침내 말했다.
“뭘?”
“넌 침묵하지 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넌 말해. 넌 노래해. 넌 존재해.”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또 흘렀다. 이번에는 울음이 아니었다. 마치 축복인 것처럼. 또는 저주인 것처럼.
강리우는 여전히 어머니의 등을 받쳐주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형의 손가락.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손가락들.
병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아침 7시 47분. 외부의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강남역 위로. 한강 위로. 그리고 이 병실 안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아는 자신의 목을 다시 만졌다. 자신의 목소리. 아직도 자신의 것이었다. 아직은.
END OF CHAPTER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