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1화: 손가락의 진실
세아가 폴더를 내려놓은 순간, 손이 떨렸다.
의사가 어머니를 검사하는 동안 복도의 소파는 세아만의 공간이 되었다. 밤 5시 47분. 새벽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색이었지만, 이제 그 색 속에 노란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밤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밤이라면 이 모든 것이 꿈일 수 있으니까.
검은 폴더는 소파의 왼쪽 끝에 놓여 있었다. 강리우가 건넨 폴더. 그 안에 들어 있던 것들: 사진들, 문서들, 그리고 지금 세아가 해석해야 할 진실들.
세아의 손가락이 다시 떨렸다.
이것은 강리우의 손가락처럼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강리우의 떨림은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신경계의 반응. 또는 트라우마의 신체적 표현. 하지만 세아의 떨림은 다았다. 세아의 떨림은 자신을 억누르려다 실패하는 것이었다. 감정이 신체를 뚫고 나가려고 하는 그 순간의 떨림.
세아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폴더를 집어 들 수 없었다. 아직. 아직은.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아주 잠깐. 0.3초 정도. 하지만 그 순간 세아는 어둠을 느꼈다. 완전한 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이 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공간에 떠 있는 자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움켜쥐어야 하는데, 손가락이 떨리고 있는 자신.
형광등이 다시 켜졌다.
세아는 호흡을 했다. 깊게. 천천히. 의도적으로. 어머니처럼. 아니, 어머니가 하던 대로. 제주도 바다에서 해녀들이 하는 방식으로. 들숨. 멈춤. 날숨. 그리고 다시.
병실의 문이 열렸다.
간호사가 나왔다. 야간 담당 간호사. 30대 여성.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눈에는 뭔가가 떠있었다. 안도감. 또는 경이로움.
“어머니 검사가 끝났어요. 기본적으로 의식은 명확하신 것 같고, 신경 반응도 정상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아직 몇 가지 더 확인하고 싶으시다고 하셨는데, 일단은 매우 좋은 신호네요.”
간호사가 말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마치 어머니가 14일 동안 침묵 속에 있었던 것처럼, 세아도 지금 침묵 속에 있었다.
“혹시 어머니 분께 알레르기 있으신 거 있어요? 아니면 복용하던 약이 있으신지?”
간호사가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어머니에 대해 뭘 모르는지를.
“아마… 모르겠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낯설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간호사는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피곤하지만 따뜻한 미소.
“일단 어머니 분이 의식이 돌아오셨다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나머지는 천천히 확인하면 됩니다. 이제 편히 쉬셔도 괜찮아요. 의료진이 계속 모니터링할 테니까.”
간호사가 떠났다. 복도는 다시 세아만의 공간이 되었다.
세아는 폴더를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손이 덜 떨렸다. 결정을 한 것처럼. 이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처럼.
폴더 안의 사진들을 다시 봤다.
첫 번째: 세아 자신. 세 살. 완전히 다른 사람. 그 사진 속의 세아는 웃고 있었다. 순수하게. 무언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얼굴로. 지금의 세아와 다른 사람이었다.
두 번째: 강리우. 열 살 정도. 강남역 근처로 보이는 피아노 학원 앞. 차가운 표정.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 있는 무언가. 깨져 있는 무언가. 또는 이미 포기해버린 무언가.
세아는 강리우의 얼굴을 봤다. 자신의 얼굴과 비교했다. 같은 코. 같은 턱선. 같은 눈의 색. 그리고 같은 것 하나 더. 같은 절망. 사진 속 강리우의 눈에는 10살의 절망이 있었다. 그리고 세아의 눈에는 24살의 절망이 있었다.
세아는 사진을 내려놓고 문서들을 봤다.
출생신고서. 강리우의 출생신고서. 기록된 정보:
– 이름: 강리우
– 출생일: 1996년 3월 14일
– 어머니: 나○○○
– 아버지: 강민준
세아의 어머니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강민준. 강민준이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더 많은 문서들이 있었다. 호적 관련 서류. 그것도 여러 장. 어떤 것은 수정액으로 지워져 있었고, 어떤 것은 새로 추가되어 있었다. 호적이 여러 번 바뀌었다는 의미였다. 누군가 지워졌고, 누군가 추가되었다.
세아는 날짜를 봤다. 강리우가 태어난 지 2년 후. 강리우가 정확히 2살일 때, 호적에서 아버지 이름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 2년 후. 강리우가 4살일 때, 새로운 남자의 이름이 아버지로 추가되었다. 강○○○. 이름은 흐릿했다. 마치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인쇄된 것처럼.
강리우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야 했던 것이다. 아니, 알았다가 모르게 되어야 했던 것이다. 호적에서 지워졌으니까.
세아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실에서 나온 도현이. 세아는 도현이가 자신을 보는 것을 알았다. 도현이는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 알 것이다. 검은 폴더. 그 안의 사진들.
“뭐.”
세아가 말했다. 폴더를 닫지 않았다.
“엄마가 깨어났어. 의사 선생님이 검사는 다 끝났대. 이제 쉬면 된대.”
도현이가 말했다.
“그럼 됐네.”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세아 옆에 앉았다. 소파가 작았다. 세아의 어깨가 도현이의 어깨와 닿았다. 17살의 어깨. 하지만 그 어깨에는 이미 많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누나. 그 사진들. 뭐야?”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폴더를 도현이에게 건넸다. 아무 말 없이.
도현이가 폴더를 받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도현이의 손가락도 떨렸다.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떨림은 유전된다는 것을. 아니, 떨림은 공포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을.
도현이가 폴더를 열었다. 천천히. 마치 그 안에 뱀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걱정으로.
첫 번째 사진을 봤다. 세아. 세 살. 웃고 있는 세아.
“이게 누나야?”
도현이가 물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누나가 이렇게 웃은 적이 있어?”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이라면. 하지만 지금의 세아는 자신이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웃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도현이가 다음 사진을 봤다. 강리우. 열 살.
“이건?”
“우리 형.”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두 사진을 나란히 비교했다. 세아와 강리우의 얼굴. 같은 것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도현이도 같은 것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럼… 강리우 형이 정말 우리 형이네?”
도현이가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폴더를 다시 들었다. 더 깊이 들어갔다. 출생신고서. 호적 서류. 그리고 더 아래에 있는 것들.
세아는 도현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았다. 더 많은 사진들. 강민준. 강민준과 어머니. 강민준과 강리우. 강민준이 웃고 있는 사진들. 강민준이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
“아버지가 여기 있어.”
도현이가 말했다. 그것도 확인이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아버지… 이름이 강민준?”
도현이가 물었다. 이번엔 질문이었다.
“호적에는 그렇게 되어 있어.”
세아가 말했다.
“그럼 우리 아버지는?”
도현이가 물었다.
그것이 진짜 질문이었다. 세아가 대답해야 할 질문. 하지만 세아도 모르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누구인가. 호적에 기록된 남자인가. 아니면 강민준인가. 아니면 둘 다 아닌가.
“아직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가장 정직한 대답.
도현이는 폴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세아를 봤다. 세아의 얼굴을 봤다. 오래 봤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누나.”
도현이가 말했다.
“뭐.”
“우리 아버지가 누구든, 우린 여전히 형제자매야. 맞지?”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의 가슴이 무언가로 찼다. 호흡이 얕아졌다.
“응. 그래.”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는 다시 폴더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천천히, 각 사진을 하나하나 봤다. 마치 기억하려는 것처럼. 마치 이것들이 자신의 가족의 역사라는 것을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17살의 남자아이. 이 밤으로 인해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그리고 계속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
“우리 엄마도 봤어?”
도현이가 물었다.
“응. 이미.”
세아가 말했다. 거짓이었다. 어머니는 이 폴더를 본 적이 없었다. 강리우가 세아에게만 건넨 것이었다.
“그럼 엄마는 뭐래?”
도현이가 물었다.
“아직 물어보지 않았어.”
세아가 말했다. 이번엔 진실이었다.
도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폴더를 다시 세아에게 건넸다.
“이건 누나가 봐야 할 거 같아.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는 폴더를 받았다. 무거웠다. 더 무거워진 것처럼. 도현이의 손이 폴더를 만졌기 때문일까.
병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의사가 나왔다. 수련의. 50대 남자. 피곤해 보였지만 눈에는 뭔가가 떠있었다. 의학적 관심. 또는 의료적 기적에 대한 경이로움.
“어머니 분이 의식이 돌아오셨고, 기본적인 신경 반응은 모두 정상입니다. 장기적인 재활이 필요할 것 같지만, 일단은 매우 좋은 신호네요. 혹시 어머니 분과 말씀하고 싶으신 게 있으신가요? 너무 오래 대화하는 건 피하는 게 좋지만, 짧은 대화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세아와 도현이는 눈을 마주쳤다.
“감사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의사가 떠났다. 그리고 세아와 도현이는 병실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깨어 있었다. 눈을 뜨고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두려움. 또는 깨달음. 또는 후회.
세아가 어머니의 침대 옆에 앉았다.
“엄마.”
세아가 속삭였다.
어머니의 눈이 세아를 찾았다. 천천히. 마치 초점을 맺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세아.”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는 모래를 헤치는 소리 같았지만, 명확했다.
“응. 엄마. 나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의 손이 움직였다. 천천히. 세아의 손을 찾아서 잡았다.
“내가… 꿈을 꿨어.”
어머니가 말했다.
“응.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 엄마가 나의 목소리를 들었대.”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마치 세아를 보는 것이 고통인 것처럼.
“엄마. 뭐가 무서워?”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의 입이 움직였다. 마치 뭔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이 더 강하게 세아의 손을 잡았다.
“내가… 너를 해쳤어.”
어머니가 마침내 말했다.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뭐?”
세아가 물었다.
“너의… 목소리가 무서워. 너의 아버지가… 무서워했어. 그리고 나도… 무서워했어.”
어머니가 말했다. 단어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왔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너를… 지키려고 했어. 근데… 내가 한 일은… 너를 죽이는 것이었어.”
어머니가 말했다.
그 순간, 세아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은 어머니의 손을 통해 어머니의 몸으로 전달되었다.
그들은 함께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딸. 그들의 떨림은 하나가 되었다.
밖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0.3초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세아는 들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아주 작은 울음소리. 14일 동안 억눌렀던 울음소리가 마침내 터져 나오는 소리.
형광등이 다시 켜졌다. 그리고 새벽은 더 밝아졌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세아와 어머니의 상처도 함께 밝혀지고 있었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일까, 아니면 더 큰 상처의 시작일까.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침묵이 깨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침묵이 깨지면, 모든 것이 흘러내린다는 것이었다.
폐기되어야 할 비밀들, 숨겨진 진실들, 그리고 누군가 반드시 대답해야 할 질문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 침묵의 끝
## 1부: 깨어남
병실의 천장은 하얀 타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아는 그 천장을 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정확히 32개. 어제도 센 것, 그저께도 센 것. 천장의 타일 개수는 변하지 않았다. 이 병실의 모든 것이 그랬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뭔가 달랐다.
어머니의 눈이 떠져 있었다.
세아는 숨을 멈췄다. 14일 동안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눈을 떴다. 그 어두운 갈색 눈동자가 천장을 향해 열려 있었고, 마치 깊은 우물 같은 그 눈 속에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두려움. 또는 깨달음. 또는 후회. 세아는 그것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모두 섞여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심장이 빨라졌다. 세아의 가슴 속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14일 동안 멈춰 있던 시간이 갑자기 흐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엄마.”
세아는 속삭였다.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큰 소리가 어머니를 다시 잠으로 빨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침묵 속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14일이 시작될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수중에서처럼 둔하고 느렸다. 초점을 잃었던 눈이 다시 초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길었다. 세아는 그 과정을 숨을 참으며 지켜봤다. 일 초, 이 초, 삼 초… 마침내 어머니의 눈이 세아를 찾았다.
“세아.”
어머니의 목소리는 모래를 헤치는 소리 같았다. 거칠고, 갈라지고, 마치 수십 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악기에서 나오는 음성 같았다. 하지만 명확했다. 세아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명확했다.
“응. 엄마. 나 여기 있어.”
세아는 어머니의 침대에 더 가까이 앉았다. 침대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어머니의 피부는 창백했다. 14일간 햇빛을 보지 못한 피부는 투명해 보였고, 그 아래로 파란 혈관들이 보였다. 어머니가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어머니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물 속에서처럼. 그 손은 흰 침대보 위를 미끄러지며 세아를 찾았다. 세아는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세아의 손을 감싸 잡았다. 그 손은 차갑고, 약했지만, 분명히 세아를 놓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꿈을 꿨어.”
어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한 단어씩, 마치 언어를 새로 배우는 사람처럼.
“응.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 엄마가 나의 목소리를 들었대. 계속 말해 줬잖아. 엄마가 듣고 있다고.”
세아는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14일 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이 갑자기 올라오고 있었다. 두려움, 안도감, 그리고 무언가 더 복잡한 것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마치 세아를 보는 것이 고통인 것처럼. 마치 세아의 존재가 어떤 무거운 무언가를 상기시키는 것처럼.
“엄마. 뭐가 무서워?”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은 오래 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아버지가 세아의 목소리를 듣고 경련을 일으킨 그 날부터. 어머니가 자신을 향해 눈을 감은 그 순간부터.
어머니의 입이 움직였다. 마치 뭔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손가락이 더 강하게 세아의 손을 잡았다. 마치 손가락으로 말하려는 것처럼. 마치 손가락이 입 대신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너를 해쳤어.”
어머니가 마침내 말했다. 그 말은 병실의 공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심호흡 기계의 소리, 복도의 발걸음 소리, 원거리의 앰뷸런스 사이렌…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오직 어머니의 목소리만 남았다.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가슴이 움직이기를 멈췄다. 심장도 멈춘 것 같았다. 어머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아는 알았다.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뭐?”
세아가 다시 물었다. 마치 다시 묻으면 어머니의 말이 다르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눈을 떴다. 그 눈은 더 이상 천장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눈은 세아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 속에는 끝없는 미안함이 있었다.
“너의… 목소리가 무서워. 너의 아버지가… 무서워했어. 그리고 나도… 무서워했어.”
어머니가 말했다. 단어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왔다. 마치 각 단어를 입에서 꺼내는 것이 육체적 고통인 것처럼. 마치 진실을 말하는 행위 자체가 어머니를 살상하고 있는 것처럼.
“너의 목소리… 그것이… 우리를… 미치게 했어.”
어머니는 계속했다.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도 하지 않았다.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귀만 열려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미안했어. 너를 볼 때마다… 우리는… 죄책감을 느꼈어. 그리고 그 죄책감이… 두려움이 되었어. 두려움이… 분노가 되었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 약해졌다. 하지만 더 명확해졌다.
“너를… 지키려고 했어. 근데… 내가 한 일은… 너를 죽이는 것이었어.”
어머니가 말했다.
그 순간, 세아의 손가락이 떨렸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마치 전기 신호가 신경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 그 떨림은 빠르게 커졌다.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어머니의 손을 통해 어머니의 몸으로 전달되었다.
그들은 함께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딸. 그들의 떨림은 하나가 되었다. 마치 같은 신경계로 연결된 두 개의 신체인 것처럼.
## 2부: 침묵의 깨짐
밖의 복도에 있는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0.3초의 어둠. 그 짧은 어둠 속에서 세아는 들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아주 작은 울음소리. 마치 목구멍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신음 같은. 14일 동안 억눌렀던 울음소리가 마침내 터져 나오는 소리.
형광등이 다시 켜졌다. 그리고 새벽은 더 밝아졌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점점 노란색에서 주황색으로, 주황색에서 분홍색으로 변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세아와 어머니의 상처도 함께 밝혀지고 있었다.
세아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는 여전히 세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엄마…”
세아가 속삭였다.
“미안해. 내가 너를… 내가…”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말은 울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울음은 말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울음이 되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마치 그 손을 놓으면 어머니가 다시 깊은 수면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마치 그 손을 놓으면 모든 것이 다시 침묵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엄마가 뭘 했어?”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은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울었다.
병실의 벽에 붙어 있는 시계가 5시 4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5시 42분. 세아는 이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어머니가 깨어난 시간. 어머니가 처음으로 진실을 말한 시간. 침묵이 깨진 시간.
“우리는… 너를 조용히 해 주려고 했어.”
어머니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너의 목소리. 그것이 우리를 미치게 했어.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는 말을 멈췄다.
“우리는 뭘 했어, 엄마?”
세아는 알아야 했다. 이제 알아야 했다.
“우리는 약을 줬어. 수면제. 너를 자게 하려고. 너를 조용하게 하려고.”
어머니가 말했다.
“얼마나?”
세아의 목소리는 더 이상 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증인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검사의 목소리였다.
“모르겠어. 아버지가… 아버지가 주었어.”
“언제부터?”
“너가… 5살 때부터.”
세아의 손이 떨렸다. 5살. 그것은 세아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보다 더 오래 전이었다. 세아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이미 약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매일?”
“거의.”
어머니가 말했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놓았다. 그 손이 침대 위에 떨어졌다. 마치 죽은 것처럼.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더 많은 약을 줬어. 너를 더 깊이 자게 하려고. 너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것을 멈추기 위해.”
어머니가 계속했다.
“그리고 어제… 어제 너의 아버지가…”
어머니는 말을 멈췄다.
“뭐? 어제 아버지가 뭐 했어?”
세아는 알고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아버지는 경련을 일으켰다. 세아의 목소리에 반응해서. 그리고 그 경련 이후로 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았다. 뇌손상. 심각한 뇌손상.
“그날… 너가 계속 말하고 있었어. 의사가 자극해서. 그러자 아버지가… 아버지가 깨어나려고 했어. 아버지가 일어나려고 했어.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겼다.
“아버지가 뭐 했어?”
“아버지가 너의 목을 조르려고 했어. 너를 조용히 하기 위해. 그리고 나는… 나는 가만히 있었어. 내가 멈추지 않았어. 내가 할 수 있었는데… 내가…”
어머니는 다시 울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더 깊게. 마치 영혼 자체에서 나오는 울음처럼.
세아는 일어섰다. 그 손이 어머니에게서 떨어졌다. 세아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의 형광등이 계속 깜빡였다. 0.3초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세아는 숨을 쉴 수 있었다.
## 3부: 흐름
새벽 6시경, 의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세아는 복도에 앉아 있었다. 병실 밖에서.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어머니를 볼 수는 없는 곳에.
“세아.”
의사가 말했다.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을 보지 않았다.
“어머니가 깨어나셨네요. 좋은 신호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게 있나요? 어머니가 뭔가 말씀하셨나요?”
의사가 물었다.
세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의사를 바라봤다. 의사의 얼굴에는 전문적인 관심이 있었다. 의학적 호기심이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관심은 없었다.
“네. 말씀하셨어요.”
세아가 말했다.
“뭐라고요?”
“진실을요.”
세아가 말했다.
의사의 표정이 변했다.
“어떤 진실이요?”
세아는 의사가 물어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어섰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하지만 울음은 더 이상 신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백의 울음이었다. 죄책감의 울음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더… 해방의 울음이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침대 옆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응.”
어머니가 대답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일까, 아니면 더 큰 상처의 시작일까. 세아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상처는 먼저 열려야 치유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상처는 14년 동안 닫혀 있었다.
14년.
세아는 그 숫자가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아가 의식 있는 인생의 대부분이 약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세아의 진정한 자아, 세아의 진정한 목소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약 아래에 잠자고 있었을까? 아니면 영원히 잃어버렸을까?
그것을 생각하는 순간, 세아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세아의 눈물을 보고 더 강하게 울었다.
그들은 함께 울었다. 아침 햇빛이 병실을 점점 더 밝게 비추는 동안.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동안.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동안.
## 4부: 질문들
오전 8시경, 경찰이 병실에 들어왔다. 의사가 신고했다. 아동 학대 의심. 약물 투여. 신체적 폭행.
그들은 어머니를 질문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히. 마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인 것처럼.
그들은 세아를 질문했다.
세아는 기억을 더듬었다. 약의 베일 뒤에 있는 기억들. 흐릿한 이미지들. 아버지의 손.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계속되는 어둠.
“얼마나 기억하세요?”
경찰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약이… 기억을 뺏었어요.”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뭔가는 기억하죠?”
“네. 손가락이… 목을.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