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99화: 돌아올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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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9화: 돌아올 수 없는 것들

서울역 광장은 밤 11시 30분이었다. 세아는 거기 서 있었다. 강리우가 간 지 한 시간 후. 도현이가 병실 문을 닫은 지 45분 후. 하늘이가 “가만 있어, 내가 뭔가 사줄게”라고 말하고 떠난 지 20분 후. 혼자. 사람들 속에서. 가장 혼로운 방식으로.

밤 공기가 목을 쓸었다. 찬바람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중성의 공기였다. 따뜻함도 차가움도 없는. 그냥 있는 것. 숨을 쉬면 들어오는 것. 이 공기 속에서 세아는 자신이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볼 수 있을까. 이 조명 아래에서. 이 수백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저 여자, 저 여자 봤어?”라고 물을까. 아니면 세아는 이미 사라진 걸까.

휴대폰이 울렸다. 하늘이였다.

“어디야? 편의점 앞에 있는데.”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귀에서 떨어뜨렸다. 그러면 하늘이가 계속 말할 것이다. 자신이 뭔가 사 왔으니까. 라면인지 김밥인지 또는 그냥 캔 커피. 세아가 먹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사 오는 것. 그게 하늘이의 방식이었다.

“세아? 세아! 어디야, 진짜로.”

하늘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치 세아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또는 신호가 약해지는 것처럼. 또는 세아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휴대폰을 끊었다. 아주 천천히. 정확하게 빨간 버튼 위의 손가락을 옮기고. 누르고. 일초 정도 누르고. 놓았다. 그러면 끝이 난다. 이 연결. 이 음성. 이 하늘이라는 사람과의 이 특정한 순간. 끝난다.

어머니가 깨어날 때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강리우는 아버지의 서류들을 찾으러 간다고 했다. 강민준의 집으로. 강남. 펜트하우스일 거다. 아니면 대저택. 세아는 강민준을 본 적이 없었다. 강리우가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왔을 때 강민준의 이름을 들었지만,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었다. 강리우의 오빠 버전. 더 늙고. 더 차갑고. 더 세계적인 악수를 하는 그런 버전.

그의 서류들 속에서 무엇을 찾을까. 세아의 아버지의 이름. 아니면 그 이상. 아니면 답이 아니라 더 큰 질문. 그런 것들이 서류 속에 있을까.

세아는 휴대폰을 다시 켰다. 화면을 켰다. 카톡 목록이 보였다.

하늘이: “세아 진짜 어딘데. 라면 다 식어가.”

하늘이: “응답해. 제발.”

하늘이: “뭐 또 한 거야.”

하늘이: “강리우 때문이지? 다시?”

하늘이: “미쳤어. 진짜로 미쳤어. 저 남자는 뭐하는 거야.”

도현: “누나 잠깐만. 엄마 모니터 수치 올라갔대. 간호사가 와서 뭐라고 했는데 나 못 들었어. 누나 와.”

어머니. 모니터. 수치가 올라갔다는 것은 뭘까. 좋은 신호일까. 나쁜 신호일까. 세아는 의학 용어를 몰랐다. 자신이 알아야 할 언어들이 너무 많았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지나갔다.

세아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구체적인 목표 없이.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명령과는 무관하게. 자동으로.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그녀를 지나갔다. 여행객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누군가를 마중하러 온 사람들. 소풍을 가려는 가족들. 모두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었다. 기차표를 들고 있었다. 또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세아는 손을 봤다. 자신의 손. 가늘고 창백한. 손톱이 짧았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 자주 깨져서. 손가락이 가늘었다. 가늘지만 강했다. 그것이 역설이었다. 보이기에는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견디고 있는 것.

누군가 그 손을 잡을까. 다시. 강리우처럼. 아니면 다른 누군가. 아니면 세아는 영원히 이 손으로 무언가를 잡지 않을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도현이였다.

“누나. 엄마가.”

도현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들었다. 떨림. 두려움.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더 큰 것.

“엄마가 뭐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깨어날 것 같아. 간호사가 반응이 있다고 했어. 눈이 조금씩 떨리는 것 같다고. 누나 와. 지금.”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아니, 낮춰놨다. 팔을 내렸다. 휴대폰이 귀에서 떨어졌다. 도현이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들렸다. 모든 긴급한 것들이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들린다.

서울역에서 병원까지는 택시로 15분.

세아는 택시를 잡지 않았다. 대신 지하철 입구로 걸어갔다. 계단을 내려갔다. 형광등. 지하의 형광등. 그것이 세아를 비췄다. 형광등 아래에서 세아의 얼굴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누군가 매우 피곤한. 누군가 매우 창백한. 누군가 거의 투명한.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기차가 떠나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 빨간 불빛. 누군가의 노래. 아니, 기계음. 안내 방송. 다음 기차는 3분 후.

3분. 세아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을까.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서 있을 수 있을까.

벤치에 앉았다. 옆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나이가 40대 정도. 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신발 쇼핑백. 백화점 로고.

“힘들어 보이네.”

그 여자가 말했다. 세아를 바라보지 않으면서.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그래. 요즘.”

여자가 계속했다.

“뭐가?”

세아가 물었다. 자신도 놀랐다. 자신이 물었다는 것에.

“모든 게. 아이들. 남편. 직장. 이 도시. 그냥 모든 게.”

여자가 신발 쇼핑백을 봤다. 마치 그것이 모든 것의 증거인 것처럼.

“근데 살아가잖아. 뭐하겠어.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여자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들었지만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아는 자신이 정말로 살아가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니면 이것이 어떤 형태의 무호흡인지.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움직이고 있는지.

기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세아는 일어섰다. 여자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신발 쇼핑백을 들고.

“화이팅.”

여자가 세아를 향해 말했다.

세아는 답하지 않고 기차에 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12시 15분. 세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중환자실이 있는 층. 아니, 어제는 중환자실이었고, 오늘은 일반 병실이라고 도현이가 말했다.

병실 앞에서 멈췄다. 문을 열지 않고. 단지 그곳에 서 있었다. 문이 투명한 것처럼 보였다. 안을 볼 수 있었다. 침대. 어머니. 그리고.

그리고 강리우.

강리우가 어머니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세아가 본 지 몇 시간 후. 아버지의 서류를 찾으러 간다고 했는데, 여기 있었다. 강리우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부드럽게. 마치 그것이 가장 깨지기 쉬운 물질인 것처럼.

세아의 심장이 무언가를 했다. 멈추거나 빠르게 뛰거나. 어느 쪽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강리우가 여기 있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도현이가 옆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 세아가 온 것을 눈으로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앉아 있었다. 혼자.

세아는 문을 열었다. 천천히. 아무도 깜짝 놀라지 않도록.

강리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세아를 봤다. 그 순간, 세아는 강리우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봤다. 안도에서. 또는 무언가 다른 것으로. 혼란인지, 죄책감인지, 또는 그것들의 혼합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서류를 못 찾았어?”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를 봤다. 그리고 다시 세아를 봤다.

“아버지가 집에 있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 말이 병실을 채웠다. 모니터의 비프음도 그것을 주변으로만 울렸다.

“뭐?”

도현이가 물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었어. 깨어 있었어. 그리고…”

강리우가 멈췄다. 그의 손이 어머니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그리고 뭐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자신이 너한테 뭔가를 해야 한다고 했어. 너를 찾아야 한다고. 이제. 지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리우가 천천히 말했다. 마치 매 단어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뭘 해야 한다고?”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에서 일어섰다. 어머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그리고 세아를 바라봤다. 직접적으로. 눈에서 눈으로.

“아버지가 너를 데려가려고 한대. 오늘 밤.”

도현이가 갑자기 말했다. 세아가 아무도 준비하지 못한 목소리로.

“뭐라고?”

세아가 물었다.

“강민준이가 너를 데려가려고 한대. 강리우가 말했어. 아버지가 집에서 그렇게 말했대. 지금 바로. 밤중에. 너를.”

도현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분노. 또는 절망. 또는 둘 다.

“왜?”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왜야, 강리우?”

세아가 더 크게 물었다.

“엄마의 상태 때문이야. 아버지가 말했어. 엄마가 깨어날 때 너를 여기서 보면 안 된대. 엄마한테 너무 위험하대. 엄마의 충격이 치명적일 수 있대.”

강리우가 마침내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그게 말이 돼?”

도현이가 소리쳤다. 병실에서.

“도현아.”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엄마가 깨어나면, 아버지가 모든 걸 설명하겠대. 너한테도. 나한테도. 세아한테도.”

강리우가 계속했다.

“그게 뭔 말이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정말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강리우는 세아에게 걸어갔다. 천천히. 한 발씩. 마치 지뢰밭을 지나가는 것처럼.

“아버지가 너의 어머니를 알고 있어. 오래전부터. 정말 오래전부터.”

강리우가 말했다.

“뭐?”

“그리고 자신이 너를 떠나보냈다고 말했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지금은 너를 데려갈 수 있다고.”

강리우가 계속했다.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건데.”

세아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강리우가 멈췄다. 세아의 앞에서.

“그리고?”

“아버지가 너한테 직접 말하고 싶다고. 아래에서. 로비에서. 지금.”

강리우가 가리켰다. 문을 가리켰다. 아니, 병실 아래를 가리켰다. 아래 어딘가.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리고 도현이를 봤다. 그리고 침대에 있는 어머니를 봤다.

침대에 있는 어머니의 눈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움직였다. 문을 향해. 빠르게. 거의 뛸 정도로.

“세아!”

도현이가 소리쳤다. 하지만 세아는 계속 움직였다.

엘리베이터.

1층.

로비.

형광등.

그리고.

강민준.

그는 거기 서 있었다. 세아가 본 적 없는 사람.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강리우의 모든 것이 이 사람 안에 있었다. 눈. 광대뼈. 입술. 그리고 그것 이상의 것. 권력. 통제. 두려움.

“안녕, 세아.”

강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거짓 따뜻함이었다.

“당신이…”

세아가 시작했다. 하지만 멈췄다.

“나는 너의 아버지야. 그리고 이제 너에게 말해주려고 한다. 모든 것을.”

강민준이 말했다.

“너를 낳은 여자. 그리고 왜 내가 너를 떠나보냈는지. 그리고 왜 지금 너를 데려가야 하는지.”

강민준이가 한 발 가까워졌다.

“너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너의 목소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강민준이가 세아의 얼굴을 봤다. 마치 그것이 책이고, 자신이 그것을 읽고 있는 것처럼.

“너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너를 지키기 위해. 너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강민준이가 말했다.

형광등이 세아 위에서 울렸다. 또는 세아가 형광등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서 나가는 유일한 길은 위로, 또는 그 이상으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당신이 날 데려가기 전에, 내가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는 순간.

“뭐?”

강민준이가 물었다.

“내가 당신의 딸이 아니라는 거.”

세아가 말했다.

그 순간, 형광등이 깜빡였다. 또는 세상이 깜빡였다.

세아는 알았다. 자신이 아직도 불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불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8권 피날레]

# 병실의 선택

## 첫 번째 부: 균열

강리우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세아는 즉시 그의 표정을 읽어냈다. 뭔가 심각한 일이 있다는 것을.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 입술 주변의 긴장감, 그리고 무엇보다 눈동자의 떨림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아.” 강리우가 침대 옆에 멈췄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신중했다. 마치 폭탄을 다루듯이 각 단어를 조심스럽게 배치하고 있었다.

세아는 책을 내려놓았다. 읽던 장면이 무엇이었는지는 이미 잊혀버렸다. 그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강리우의 얼굴뿐이었다.

침대 위의 어머니, 이준희도 움직였다. 몸 전체가 긴장으로 경직되는 것을 세아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침대 시트가 어머니의 손가락 아래에서 구겨지는 소리—아, 실제로는 들리지 않지만, 세아는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무서울 때, 걱정할 때, 무언가를 감추려고 할 때.

“뭐… 뭐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들었다. “뭔가 있어?”

강리우가 문을 다시 열었다. 뒤에서 도현이가 들어왔다. 도현이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누군가 그의 얼굴에서 모든 혈색을 빨아낸 것처럼. 그는 세아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뭔가 정말 심한 일이 있는 거다.’

세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병실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았다. 형광등의 하얀 빛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고, 산소 호흡기의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숨소리처럼 들렸다—빠르고, 불규칙하고, 공포에 찬.

강리우가 가까워졌다. 세아의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세아가 물었다. 그의 침묵이 너무 길었다. 강리우는 세아를 오래 봤다. 마치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엄마가… 엄마 상태가 안 좋아?”

“아니야.” 강리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너한테 직접 말하고 싶다고. 아래에서. 로비에서. 지금.”

강리우가 문을 가리켰다. 아니, 더 정확히는 문 너머, 병실 아래를 가리켰다. 그 아래 어딘가. 세아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곳.

‘아버지.’

그 단어가 세아의 뇌에서 폭발했다. 아버지. 자신이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 사진으로만, 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사람. 그리고 지금, 이 병원의 로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니.

세아는 강리우를 봤다. 그리고 도현이를 봤다. 마지막으로 침대에 있는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의 눈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거울 앞에 놓은 물 한 잔처럼, 그 표면이 미세한 진동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입을 열려고 했다가, 다시 닫았다. 다시 열려고 했다가, 또 다시 닫았다.

“엄마?” 세아가 어머니를 향해 한 발 나아갔다.

“가.”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명령조였다. “너… 가.”

세아의 몸이 반응했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본능적으로. 세아는 움직였다. 문을 향해. 빠르게. 거의 뛸 정도로.

“세아!” 도현이가 소리쳤다.

하지만 세아는 계속 움직였다. 복도로 나갔다. 복도의 형광등들이 하나 하나 밝혀졌다. 또는 세아의 시야가 터널처럼 좁혀졌고, 오직 엘리베이터만 보였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손이 떨렸다.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로비가 펼쳐졌다.

로비.

형광등. 무수히 많은 형광등.

그리고.

강민준.

## 두 번째 부: 대면

그는 거기 서 있었다. 로비의 한복판에서, 마치 그 공간이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세아가 본 적 없는 사람.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강리우의 모든 것이 이 사람 안에 있었다. 눈—같은 모양, 같은 색깔의 눈. 광대뼈의 각도도, 입술의 형태도 모두 같았다. 하지만 그것 이상의 것들이 있었다.

권력.

통제.

그리고 두려움.

세아는 멈췄다.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그냥 거기 서 있었다. 호흡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강민준이 움직였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마치 사냥꾼이 먹이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따뜻한 미소.

거짓 따뜻함.

세아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 세아.” 강민준이 말했다. 목소리는 정말로 따뜻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드디어 만나는군.”

세아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당신이…” 세아가 시작했다. 하지만 멈췄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 강민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나는 너의 아버지야.” 강민준이 한 발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제 너에게 말해주려고 한다. 모든 것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아래에는 철이 있었다. 무언가 자신을 굽히지 않는 것. 자신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

“너를 낳은 여자.” 강민준이 계속했다. “너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내가 너를 떠나보냈는지. 왜 모든 이 시간을 기다렸는지.”

강민준이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너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너의 목소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세아의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목소리?’

강민준이가 세아의 얼굴을 봤다. 마치 그것이 책이고, 자신이 그것을 읽고 있는 것처럼. 그의 눈이 세아의 얼굴 이곳저곳을 훑었다. 이마, 눈, 코, 입, 턱. 마치 누군가 퍼즐을 맞추듯이, 각각의 조각을 자신의 예상과 비교하고 있었다.

“너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강민준이가 말했다. “너를 지키기 위해. 너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세아는 로비를 둘러봤다.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 환자들, 의료진. 모두가 자신과 강민준을 무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투명한 벽 뒤에 있는 것처럼. 마치 이것이 세아만의 현실이고, 다른 모든 것은 무의미한 배경인 것처럼.

형광등이 울렸다. 또는 세아가 형광등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아니다. 세아는 울지 않았다. 울지 못했다. 자신의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서 나가는 유일한 길은 위로, 또는 그 이상으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세아는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날 데려가기 전에,” 세아가 말했다. “내가 해야 할 말이 있어요.”

그 순간, 세아의 목소리가 변했다. 무언가 깊고, 강하고, 진짜인 것이 그 안에 울려 퍼졌다. 자신의 목소리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는 순간. 두려움도, 불안감도, 거짓됨도 없는, 순수한 자신의 목소리.

강민준의 얼굴이 변했다. 미소가 얼어붙었다.

“뭐?” 강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내가 당신의 딸이 아니라는 거.” 세아가 말했다.

그 순간, 형광등이 깜빡였다.

또는 세상이 깜빡였다.

세아는 알았다.

자신이 아직도 불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불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 세 번째 부: 여파

강민준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의 턱이 조여졌다. 눈이 좁혀졌다. 마치 누군가 그의 얼굴에서 모든 따뜻함을 빨아내고, 그 자리에 돌을 채워 넣은 것처럼.

“뭐라고?” 강민준이 다시 물었다.

세아는 떨렸다. 자신의 다리가, 손이, 목소리가 모두 떨렸다. 하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세아는 강민준을 똑바로 봤다.

“내 어머니가 당신의 아내가 아니었어요.”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난… 난 당신의 딸이 아니에요.”

로비의 공기가 정지했다. 엘리베이터의 소리도 멈췄다. 형광등의 윙윙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강민준이 한 발 나아갔다.

“누가 너한테 말했어?” 그의 목소리가 낮았다. 속삭이는 것보다 더 위험한 톤이었다. “누가.”

“아무도 안 했어요.” 세아가 답했다. “난… 난 느꼈어요. 이 모든 시간. 뭔가 맞지 않는다는 걸. 당신을 본 순간부터.”

강민준이 멈췄다. 그의 얼굴이 변했다. 분노에서 뭔가 다른 감정으로. 실망? 아니면 경외?

“너는…” 강민준이 천천히 말했다. “정말로…”

병원의 문이 열렸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빠른 발걸음.

도현이가 나타났다. 그 뒤에 강리우가 있었다.

“세아!” 도현이가 소리쳤다.

강민준이 돌아서서 두 사람을 봤다. 그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그 차갑고 계산적인 표정으로. 마스크를 다시 쓴 것처럼.

“내 손자를 데려가려던 거냐?” 도현이가 강민준을 향해 다가갔다.

“아니다.” 강민준이 답했다. “단지 진실을 말해주려고 한 것뿐이다.”

“거짓 진실을.” 도현이가 말했다.

강리우가 세아를 향해 다가왔다. 세아는 강리우의 팔을 잡았다. 자신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다 괜찮아?” 강리우가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가자.” 도현이가 말했다. “위로.”

세아는 강리우의 팔을 더 꽉 잡았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세아!” 강민준이 소리쳤다.

세아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을 때, 세아는 자신의 심장이 여전히 불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자신을 위한 불이었다.

## 네 번째 부: 반향

병실로 돌아오는 길은 영원히 길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세아는 자신이 뭔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설명해야 한다고. 하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강리우와 도현이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침묵이 있었다. 무거운, 안도의 침묵.

복도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지 않았다. 언제부터 떨리지 않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세아를 봤다. 그리고 울었다.

“세아.” 어머니가 손을 뻗었다.

세아는 침대로 달려갔다.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고, 약했고, 사랑했다.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뭐 미안해?” 어머니가 물었다. “넌 잘했어. 정말로 잘했어.”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강리우가 창문 쪽으로 갔다. 도현이는 문 옆에 서 있었다.

“이제…” 세아가 천천히 물었다. “이제 뭐… 뭐가 될 거야?”

“모르겠다.” 도현이가 솔직하게 답했다. “하지만 넌 혼자가 아니야.”

“절대 혼자가 아니야.” 강리우가 덧붙였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의 도시가 저녁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건물들의 불빛이 하나 하나 켜졌다.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퍼즐을 맞추듯이. 마치 누군가가 세상을 다시 만들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그 광경을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아직도 불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 그 불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 다섯 번째 부: 밤

밤이 깊어졌다.

어머니가 잠이 들었다. 의료진이 주입한 진정제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모든 고통이 씻겨나간 것처럼.

세아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느린 맥박을 느끼고 있었다. 따뜻한 손을 느끼고 있었다.

강리우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도현이는 거실 쪽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낮았지만, 세아는 그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변호사? 경찰?

‘다 끝난 걸까?’

세아는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다.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강민준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권력이 있었고, 자원이 있었고, 무엇보다 자존심이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로비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세아는 이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위험.

세아의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위험.

어머니를 향한 위험.

강리우를 향한 위험.

도현이를 향한 위험.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자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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