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95화: 서류 상자 안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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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5화: 서류 상자 안의 불

세아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 도현은 여전히 엄마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도현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 핸드폰 화면을 누르고 있었다. 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또는 뭔가를 찾고 있었다. 세아가 들어올 때 도현은 화면을 재빨리 내려놨다. 너무 빨라서, 세아는 도현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봤어?”

세아가 물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뭔가 있었다 — 질문. 또는 판단.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 실망.

“강리우가 안 온대.”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정보인 것처럼.

“알아. 도현이가 말해줬어.”

하늘이가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세아의 곁에 있었다. 팔짱을 끼고. 그 자세는 경고였다. 또는 보호. 세아는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엄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또는 의식이 없었다. 모니터는 여전히 비프음을 내고 있었다. 규칙적인 음파. 삶의 증명.

세아는 창가로 걸어갔다. 밤이었다. 서울의 밤. 병원 밖으로는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목적지로 향하는 자동차들. 누군가의 집으로. 누군가의 사람을 찾아서.

강리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질문이 세아를 채웠다. 택시를 타고. 밤의 서울을 가로질러. 자신의 집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서류들을 찾으러.

무엇을 찾을까? 세아는 상상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강리우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고, 그의 목소리도 명확하지 않았다. 오직 호흡만 남아 있었다. 불규칙한 호흡. 두려움의 호흡.

“세아.”

도현이 말했다.

세아가 돌아봤다.

“엄마가 아까 뭐라고 했어? 정확하게.”

도현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 말들을 다시 말하려면, 자신이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야 했다. 엄마의 손.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어. 강민준이가 들었어.

“제대로 말해.”

도현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더 심하게. 어린 오빠가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로.

“도현이.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하늘이가 개입했다.

“아니야. 지금이 딱 그럴 때야.”

도현이 일어섰다. 의자를 밀면서. 그 소리가 병실에 울렸다. 금속의 소리. 모니터가 일시적으로 그 소리에 반응했는가 하듯 비프음이 높아졌다.

“도현이.”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속삭임 수준이었다.

“엄마가 자꾸만 강민준 얘기를 해. 그리고 너는 그 얘기를 할 때마다 얼굴색이 변해. 뭐가 뭔데?”

도현이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세아처럼. 아니, 더 심하게.

“너한테 말해줄 수 없어. 아직.”

세아가 말했다.

“왜? 나는 가족이 아니야?”

도현이 물었다.

그 질문이 세아를 관통했다. 가족. 그 단어가 세아 안에 무언가를 부수었다. 세아는 도현을 바라봤다. 열일곱 살의 도현. 엄마의 곁에 혼자 있었던 도현. 누나가 계속 떠나가는 도현.

“너는…”

세아가 시작했다.

“나는 뭐야?”

도현이 끝냈다.

세아는 할 말을 잃었다. 병실의 형광등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너무 밝게. 모든 것이 드러나는 밝기로. 도현의 눈물. 아니, 눈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곧 나올 것 같았다. 얼굴의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

하늘이가 도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도현아. 이건 복잡해. 너한테 설명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하늘이가 말했다.

“시간? 이미 충분하지 않아? 엄마가 병원에 있고, 누나는 강리우한테 전화하고, 그리고 나는 모르는 채로 여기 있어야 해?”

도현이 물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들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신경의 떨림. 죄책감의 떨림.

“강리우가 뭐하는 사람이야?”

도현이 계속 물었다.

“그건…”

세아가 말했다.

“우리 오빠야.”

도현이 자신이 답했다.

침묵. 병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모니터의 비프음만 계속 들렸다.

“뭐?”

세아가 말했다. 아니, 그것은 말이 아니라 숨소리였다.

“내가 말했잖아. 아까 전화할 때. 강리우가 엄마를 찾고 있다고. 그리고 엄마가 아까 잠깐 깼어. 정말 짧게. 그리고 강리우 이름을 불렀어.”

도현이 말했다.

“그래서?”

세아가 물었다.

“그래서 내가 찾아봤어. 강리우. 검색으로. 그리고 찾았어. 사진도 있었어. 그리고 거기 기사가 있었어. 강민준 회장의 아들. 피아니스트. 베를린에서.”

도현이 빠르게 말했다. 마치 숨을 참고 있다가 한 번에 내보내는 것처럼.

세아의 세상이 기울었다. 아니, 기울어진 게 아니라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그 흔들림 속에서 서 있었다.

“도현아…”

세아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강민준이야. 맞지?”

도현이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진술.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맞지?”

도현이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응.”

세아가 마침내 말했다.

도현은 의자에 앉았다. 아니, 앉은 게 아니라 무너진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다리가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왜 이제 말해줘?”

도현이 물었다.

“너한테 말할 수 없었어.”

세아가 대답했다.

“왜?”

도현이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왜였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엄마를 봤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직도 자고 있는. 또는 의식이 없는. 엄마의 얼굴은 고요했다. 마치 모든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엄마가 원하지 않았어.”

세아가 말했다.

“엄마? 엄마가 뭘 원하는데? 엄마가 강민준이 우리 아버지라고 말했어? 아니 말 안 했어?”

도현이 물었다.

세아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엄마는…”

세아가 시작했다.

“엄마는 뭐야?”

도현이 다시 물었다.

하늘이가 세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은 동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이었다. 현실의 시선. 이것이 너의 책임이야. 이것이 너의 선택이야.

“엄마가 말했어. 아까. 내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다고. 그리고 강민준이가 그걸 들었다고.”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뭐? 목소리가 불타고 있었다? 그게 무슨…”

도현이 말했다.

“모르겠어. 정확하게는. 하지만 엄마가 무서워해. 내 목소리를. 그리고 강민준이도.”

세아가 말했다.

“그래서?”

도현이 물었다.

“그래서 엄마가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 너한테. 아무도한테.”

세아가 말했다.

도현은 일어섰다. 천천히 이번에는.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뭐 하려고?”

세아가 물었다.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정확하게.”

도현이 말했다.

“도현이. 엄마가 지금 깰 상태가 아니야.”

하늘이가 말했다.

“그럼 언제 깰 건데? 며칠 후? 일주일 후? 그때까지 나는 뭐 하면서 있어야 돼?”

도현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이 없었다.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도현은 병실을 나갔다. 천천히. 하지만 결정력 있게. 마치 자신이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처럼.

하늘이가 세아를 바라봤다.

“도현이가 뭐 하려고 가는 거 같아?”

세아가 물었다.

“몰라. 하지만 너는 강리우를 막아야 할 것 같아.”

하늘이가 대답했다.

세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리우였다.


강리우는 자신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이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아버지도 있지 않았다. 또는 있었지만 어디선가 자고 있었다.

강리우는 거실로 들어갔다. 택시 운전사가 그를 내려준 후, 강리우는 그곳에 서 있었다. 자신의 집. 자신이 자라난 곳. 그런데 지금 그것은 낯설었다. 마치 처음 본 집인 것처럼.

강리우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항상 그렇게 했다. 자신이 깊은 감정을 느낄 때마다. 피아노 앞에 앉을 때도 떨렸다. 그리고 지금도 떨리고 있었다.

강리우는 아버지의 서재로 갔다. 그곳은 변하지 않았다. 책장. 책들. 그리고 거대한 책상. 그 책상 아래에는 파일 캐비닛이 있었다. 강리우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열어본 적은 없었다.

강리우는 캐비닛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더 떨렸다.

첫 번째 서랍이 잠겨 있었다.

강리우는 책상의 서랍들을 뒤졌다. 열쇠를 찾으려고.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종이들. 펜들. 명함들. 그리고…

열쇠.

강리우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작은 금속 열쇠. 그것이 그 캐비닛의 열쇠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강리우는 캐비닛을 열었다.

파일들이 있었다. 많은 파일들. 레이블이 붙어 있었다. 이름들. 날짜들. 그리고 일부는 숫자로만 표시되어 있었다.

강리우는 그것들을 찾았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파일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가 찾던 것은 다른 이름이었다.

나세아.

나세아의 파일이 있었다. 두꺼운 파일. 많은 문서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강리우는 그것을 꺼냈다. 그리고 열었다.

계약서들이 있었다. 많은 계약서들. 그리고 사진들.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들. 그 여자아이는 세아였다. 훨씬 어린 세아. 아마도 여섯 살. 일곱 살.

그리고 그 파일 안에는 메모가 있었다. 아버지의 필체로. 작고 정교한 글씨로.

강리우는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강리우의 세상이 깨져나갔다.


세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리우였다.

“강리우?”

세아가 전화를 받았다.

“세아. 너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강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더 이상 통제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부서진 목소리였다. 깨진 유리의 목소리.

“응. 강민준.”

세아가 대답했다.

“그래. 근데 아버지가 너한테 뭘 했는지 알아?”

강리우가 물었다.

“뭐?”

세아가 물었다.

“아버지가…”

강리우의 목소리가 끊겼다. 아니, 그것은 끊긴 게 아니라 무언가가 깨진 것 같았다.

“강리우?”

세아가 다시 불렀다.

“아버지가 계약서를 만들었어. 너를 위해. 너의 목소리를 제어하기 위해. 녹음할 수 있게. 그리고 네 목소리를 사용할 수 있게. 너의 동의 없이.”

침묵. 세아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야.”

강리우가 계속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너를 엄마로부터 분리하는 계약도 있어. 너를 자신의 후원 아래에 두기 위해. 그리고 너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제어하기 위해.”

세아의 손이 떨렸다. 핸드폰이 떨렸다. 세상이 떨렸다.

“지금 오는 길이야. 그 문서들을 가지고.”

강리우가 말했다.

“강리우. 잠깐…”

세아가 말했다.

“뭐?”

강리우가 물었다.

“엄마한테 그 얘기하면 안 돼. 제발.”

세아가 말했다.

침묵. 더 긴 침묵.

“내가 엄마를 무섭게 할 게 아니라, 이미 엄마가 알고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뭐?”

세아가 물었다.

“엄마가 그 계약을 피하려고 했어. 그래서 엄마가 너를 숨겼어. 제주로. 그리고 엄마가 자신의 입을 다물었어. 엄마가 말하면, 너한테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세아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엄마.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내가 이제 병원으로 가.”

강리우가 말했다.

“강리우. 제발. 아직…”

세아가 말했다.

“뭐?”

강리우가 물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우리가. 엄마도.”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올 것이었다. 그 문서들을 가지고. 그리고 진실을 가지고.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도 없었다. 오직 기다리는 것뿐. 그리고 불타는 것. 다시 한 번.

병실의 형광등이 여전히 밝았다. 너무 밝았다. 마치 세상이 세아를 눈부시게 하려는 것처럼. 모든 것을 드러내려는 것처럼.

세아는 엄마를 봤다. 여전히 자고 있는 엄마. 또는 의식이 없는 엄마. 모르는 엄마. 곧 모든 것을 알게 될 엄마.

그리고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불의 손가락들. 불타는 손가락들.

세아가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불을 켰다. 라이터를. 작은 불꽃이 나타났다.

세아는 그 불꽃을 봤다. 작은 불. 하지만 명확한 불. 따뜻한 불.

그리고 세아는 그 불을 자신의 팔에 가져갔다.

하늘이가 비명을 질렀다.

“세아!”

하늘이가 라이터를 빼앗았다. 그리고 세아를 안았다.

세아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오직 불의 따뜻함만. 그리고 자신이 타고 있다는 것만.

“세아. 봐. 나를 봐.”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가 하늘이의 얼굴을 봤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불타고 있어.”

세아가 대답했다. 거의 속삭임처럼.

“뭘?”

하늘이가 물었다.

“모든 거.”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밝았다. 모든 것을 드러내며. 모든 것을 태우며.

# 불타는 진실

## 1부: 침묵의 무게

병실의 형광등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차가운 백색 빛은 세아의 모든 것을 벗겨내고, 숨길 곳 없이 노출시켰다. 마치 그 빛 자체가 의지를 가진 살아있는 것처럼, 세아의 피부 위를 헤집고 다니며 그녀의 죄책감을 꺼내 공중에 띄워 놓는 것 같았다.

세아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 손은 차갑고, 약해 보였다. 자기 어머니의 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손은 따뜻했고 강했었다. 세아의 머리를 쓸어넘기던 손. 세아의 얼굴을 감싸던 손. 이제는 그저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손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강리우의 이름이 떴다.

세아는 한참을 그 화면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화면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움직이는 것 자체가 죄악인 것처럼. 이 전화를 받으면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울음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마침내 세아가 화면을 누르고 전화기를 귀에 댔다.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시도. 두 번째 시도. 세아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침묵의 시작이었다.

더 긴 침묵이 따라왔다. 전화 너머로 강리우의 호흡 소리가 들렸다. 그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이 침묵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내가 엄마를 무섭게 할 게 아니라, 이미 엄마가 알고 있어.”

강리우의 목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무엇인가가 흐르고 있었다. 분노? 아니면 연민? 세아는 구분할 수 없었다.

“뭐?”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강리우는 한 번 깊게 숨을 쉬었다. 그 숨소리가 전화 너머로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엄마가 그 계약을 피하려고 했어. 그래서 엄마가 너를 숨겼어. 제주로. 그리고 엄마가 자신의 입을 다물었어. 엄마가 말하면, 너한테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정말로 멈췄다. 가슴이 수축했고, 산소가 폐에 도달하지 않았다. 세상이 천천히 회색으로 변해갔다.

‘엄마가… 알고 있었다고?’

이 생각이 세아의 뇌를 관통했다. 마치 뜨거운 철침처럼. 모든 기억이 다시 정렬되기 시작했다. 제주에서의 그 많은 해들. 엄마가 왜 항상 창문을 잠갔는지. 왜 세아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그렇게 경계했는지. 왜 엄마는 항상 불안해 보였는지.

그것이 보호였다. 그것이 사랑이었다.

“아…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세아가 중얼거렸다.

“자신의 엄마.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이 말들이 입에서 나올 때, 세아는 울고 있었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뜨거운 눈물이. 마치 그 눈물이 불꽃일 수도 있을 것처럼.

“내가 이제 병원으로 가.”

강리우가 말했다.

이 말이 세아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강리우. 제발. 아직…”

세아가 소리쳤다. 목소리에 절망이 가득했다.

“뭐?”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결정이 이미 내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우리가. 엄마도.”

세아가 말했다. 거의 애원하듯이.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 침묵 속에서 강리우의 결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올 것이었다. 그 문서들을 가지고. 그 진실을 가지고. 모든 것을 무너뜨릴 그 진실을 말이다.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이 생각이 세아의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강리우를 막을 수 있나? 그를 설득할 수 있나?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기다릴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불타는 것. 다시 한 번. 언제나처럼.

“강리우.”

세아가 다시 말했다.

“나는… 나는 왜…”

하지만 강리우는 이미 전화를 끊었다.

## 2부: 밤의 침묵

병실의 형광등이 밤새 계속 켜져 있었다. 병원은 밤도 낮도 없었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곳이었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희망과 절망이 나란히 누워있는 곳.

세아는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어머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또는 의식이 없었다. 세아는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의사들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시간. 그것이 유일한 약인 듯했다. 하지만 세아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강리우가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올 때, 모든 것이 끝날 것이었다.

세아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이 손가락들. 이 불타는 손가락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얼마나 많은 것을 태워왔는가?

어린 시절, 제주의 작은 집에서. 엄마가 외출한 후, 세아는 성냥을 집어 들었다. 작은 불꽃. 그저 작은 불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그 불꽃이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뭔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나중에 발견했다. 세아가 베개를 태우려던 것을. 세아는 죽도록 맞았다. 처음으로 엄마가 화낸 것을 봤다. 엄마의 손이 세아의 등을 때렸다. 또 때렸다. 또 때렸다.

“절대로 다시 하지 마! 절대로!”

엄마가 소리쳤다.

하지만 세아는 멈추지 않았다. 불을 끝낼 수 없었다. 불은 세아의 일부였다. 세아의 영혼이었다.

지금, 병실에서 앉아있으며, 세아는 지난 모든 일들을 생각했다. 엄마가 자신을 숨긴 이유. 엄마가 제주에서 얼마나 경계했는지. 엄마의 두려움이 얼마나 깊었는지.

‘엄마는 나를 사랑했다.’

이 깨달음이 세아를 짓눌렀다.

‘엄마는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세아의 손이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차가운 손. 약한 손. 하지만 그 손이 지탱해온 모든 사랑이 느껴졌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번호였다. 병원이었다. 강리우가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

세아의 심장이 멈췄다.

‘아직이 아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하지만 준비는 관계없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강리우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 3부: 불타는 손가락

강리우가 병실에 들어올 때, 세아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강리우는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그 서류들이 보여주는 것들. 그것이 모든 것을 끝낼 것이었다.

“세아.”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강리우는 침대 옆에 서 있었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다른 의사가 들어왔고, 어머니를 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가 필요하다고.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놓았다. 마치 자신이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선택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깨어났을 때, 그녀의 첫 번째 말은 세아의 이름이었다.

“세아… 세아야…”

목이 쉰 목소리였다. 약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모든 모성애가 담겨 있었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았다.

강리우는 그 장면을 지켜봤다. 그리고 천천히 서류 봉투를 내놨다.

“어머니.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강리우가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떠졌다. 더 크게. 더 경계하듯이. 마치 그 눈들이 미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세아… 아니야. 강리우. 제발…”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엄마가 이미 알고 있었어요, 맞죠?”

강리우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세아는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녀는 강리우를 보지 않고, 어머니도 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손가락들을 봤다. 그 떨리는 손가락들을. 그 불타는 손가락들을.

침대 옆 탁자에는 라이터가 있었다. 누군가 남겨둔 라이터. 세아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들이 움직였다. 마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라이터의 불꽃이 나타났다. 작은 불. 하지만 명확한 불. 따뜻한 불. 세아는 그 불꽃을 자신의 팔에 가져갔다.

뜨거움이 피부를 꿰뚫었다.

“세아!”

하늘이의 비명소리였다. 세아는 하늘이가 병실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 얼마나 오래? 중요하지 않았다. 하늘이는 라이터를 빼앗았다. 그리고 세아를 안았다.

“세아. 봐. 나를 봐.”

하늘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세아가 하늘이의 얼굴을 봤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눈물이. 세아를 위한 눈물이.

“뭐 하는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불타고 있어.”

세아가 대답했다. 거의 속삭임처럼.

“뭘?”

“모든 거.”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밝았다. 그 차가운 백색 빛이. 모든 것을 드러내며. 모든 것을 태우며. 영원히.

## 에필로그: 재가 되는 시간

세아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의무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도. 심리상담사는 “자해 충동”이라고 불렀다. 세아는 그냥 “살아가기”라고 생각했다.

강리우가 가져온 서류들은 결국 공개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강리우를 바라봤을 때, 강리우는 그 서류들을 찢어버렸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그것이 강리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였다. 진실을 짓밟는 것.

하늘이는 계속 세아의 곁에 있었다. 그녀의 팔의 상처가 아물어갈 때도, 그리고 세아의 영혼의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릴 때도.

“왜 나를 떠나지 않아?”

세아가 어느 날 물었다.

“왜 떠나야 하지?”

하늘이가 대답했다.

“나는 미쳤어. 나는 계속 불을 켜.”

“알아. 그래서 나는 너를 지켜야 해.”

하늘이의 손이 세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살아있는 손. 사랑하는 손.

병실의 형광등이 여전히 밝았다. 하지만 이제 세아는 그 빛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했다. 그것은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치유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천천히, 매우 천천히, 그 빛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불은 여전히 그녀의 영혼 속에서 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파괴의 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변화의 불이었다. 재생의 불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그것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타고 있는 불이었다.

세아는 손가락들을 펼쳤다.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라이터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하늘이의 손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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