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94화: 끊어진 신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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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4화: 끊어진 신호음

강리우의 호흡이 멈췄다.

세아는 그것을 들었다. 전화선 너머에서 —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 것을 멈춘 순간. 마치 누군가 물속에 빠져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된 것처럼. 그리고 그 침묵이 세아를 채웠다. 불안감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 죄책감. 또는 인식. 자신이 방금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했다는 인식.

“강리우?”

세아가 다시 말했다.

“나 있어.”

강리우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전과 다른 목소리였다. 무언가가 깨진 것처럼 들렸다. 세아는 전화선 너머의 택시 소음 속에서 무언가를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손가락이 뭔가를 누르는 소리. 또는 주먹이 무언가를 쥐어지는 소리. 신체의 반응.

“아버지한테 뭐라고 했어? 정확하게.”

강리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다시 조절되었다. 마치 그가 방금 자신을 재조립한 것처럼. 로봇처럼. 감정을 전부 치워버린 것처럼.

“엄마가 너한테 한 말을 내가 다 할 수는 없어. 그냥… 내 목소리가 그에게 뭔가였어. 두렵게 만드는 거 또는…”

세아가 말을 흐렸다. 자신도 정확히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몰랐다. 엄마의 단편적인 말들. 강민준. 목소리. 불. 이 모든 것들이 세아 안에서 명확한 그림을 이루지 않았다. 마치 퍼즐의 조각들이 섞여 있는 것처럼.

“아. 그래. 내가 알겠어.”

강리우가 말했다.

“뭘 알아?”

세아가 물었다.

복도에서 하늘이가 더 가까이 걸어왔다. 세아의 팔을 들었다. 가볍게. 하지만 분명하게. 전화를 끝내라는 신호였다. 세아는 하늘이를 피했다. 고개를 돌려서.

“내가 엄마한테 가기 전에 뭔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그 전에.”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결정력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이미 결정을 내린 것처럼. 그리고 이제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는 것처럼.

“뭐?”

세아가 물었다.

“집에 있는 서류들. 아버지 서류들. 내가 찾아야 할 게 있어.”

“지금?”

“응.”

“병원도 가야 되고…”

“나중에.”

강리우가 끝냈다. 마치 그것이 최종 결정인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그 목소리 속에 무언가를 들었다. 두려움. 또는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 절망.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것. 인정. 자신이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계속 외면해왔다는 인정.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인정.

“강리우. 뭐 하는 거야?”

세아가 물었다. 그 질문은 표면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더 깊은 질문이 있었다. 너는 누군가? 너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의 관계가 뭐였는가?

“내가 알아야 할 걸 찾는 거야. 이미 늦었지만.”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강리우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택시의 소음만 전화선을 채웠다. 밤의 서울. 불빛. 신호등. 그리고 두 사람의 호흡. 분리된 호흡. 같은 선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있는.

“내가 너한테 연락할게. 뭔가 알면.”

강리우가 말했다.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응?”

“엄마를 무섭게 하지 마. 제발.”

세아의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복도의 형광등 아래에서, 수백 명의 환자들이 자고 있는 병원 깊숙한 곳에서.

강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초가 지났다. 그리고 그 침묵이 세아를 채웠다. 수락인가? 거부인가? 아니면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한 침묵인가?

“내가 그럴 리가.”

강리우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전화가 끝났다.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병실은 따뜻했다. 복도도 따뜻했다. 이것은 신경의 떨림이었다. 뼈의 떨림. 또는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오는 떨림.

하늘이가 세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뭐 한 거야?”

하늘이가 물었다. 질문이 아니라 진단이었다.

“뭐라고?”

세아가 물었다.

“강리우. 병원에 오려고 했지?”

하늘이가 말했다.

“응.”

세아가 인정했다. 거짓말을 할 에너지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엄마 얘기해서…”

세아가 말했다.

“그래서?”

하늘이가 재촉했다.

“지금 안 온대. 다른 곳에 가야 할 게 있대.”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아는 하늘이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한숨 같은 침묵이었다. 포기 같은 침묵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침묵.

“나 병실로 돌아가야 해.”

세아가 말했다.

“응. 가자.”

하늘이가 말했다.

두 사람은 복도를 걸었다. 형광등이 계속 그들을 비추었다. 그 밝기 속에서, 세아는 자신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밤의 끝무렵, 형광등은 모든 그림자를 길게 늘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또는 자신이 자신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병실로 들어갔을 때, 도현이는 침대 옆의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머리가 떨어지려고 했다가 깨어나고, 다시 졸고, 깨어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보고 자신의 가슴이 무언가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슬픔인가? 죄책감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인가?

엄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또는 의식이 없었다.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엄마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하게 고통이 없는 순간인 것처럼.

세아는 의자에 앉았다. 도현이 옆. 하늘이는 다른 의자에 앉았다. 병실에는 세 사람과 한 명의 환자, 그리고 모니터의 규칙적인 신호음만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몇 분인지 몇 시간인지 알 수 없게.

세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카톡. 강리우였다.

아버지 서류 찾았어. 그리고 엄마 이름이 있어. 서류에.

그 다음 메시지.

엄마가 아버지한테 뭔가를 했어. 내가 몇 년을 안 건데…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이제 알 것 같아.

그리고 세 번째 메시지.

내가 엄마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아. 근데 그게… 엄마를 더 아프게 할까봐.

세아는 화면을 봤다. 그 메시지들을 읽었다. 그리고 읽을수록, 자신이 무언가 매우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 강민준. 강리우.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세아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하늘이가 세아를 봤다. 그 시선은 날카로웠다. 뭔가 알고 있다는 시선이었다. 또는 알고 싶지 않다는 시선이었다.

“뭐야?”

하늘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자신의 과거. 자신의 부모.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엄마의 모니터가 계속 신호음을 냈다. 규칙적으로. 마치 계속 살아있다는 증거를 주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비밀들이 엄마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


강리우는 차에 앉아 있었다.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딘가의 골목에 정차된 상태로. 밤의 서울은 계속 움직였지만, 강리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신경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배신하는 것처럼.

그는 다시 서류를 봤다. 아버지의 서류. 오래된 계약서들. 그 중 하나에는 엄마의 이름이 있었다. 세아의 엄마 이름. 그리고 그 옆에는 강민준의 서명이 있었다.

강민준.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서류의 날짜는 23년 전이었다.

강리우는 그 날짜를 봤다. 23년 전. 그것은 정확하게 세아가 태어난 해였다.

그의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이것이 뭔가? 강리우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것은 뭐냐?

하지만 그도 모르는 답을 자신에게 물을 수 없었다. 단지, 손가락만 계속 떨렸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이 알아야 할 진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병실에서, 도현이가 깨어났다.

그 아이는 세아를 봤다. 세아가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도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무엇인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아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침묵이었다.

하늘이는 계속 앉아 있었다. 의자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 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엄마는 계속 자고 있었다.

또는 도망치고 있었다.

병원의 밤은 계속되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곳에서. 그리고 모든 것이 숨겨지는 곳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떨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떨림.

자신이 원래 누구였는지를 모른다는 떨림.

그리고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떨림.


To be continued…

# 진실의 무게

## 제1부: 눈빛

병실의 불빛은 너무 밝았다. 세아는 그 밝음이 싫었다. 형광등이 내뿜는 차가운 백색광은 모든 것을 드러내 버렸다. 엄마의 창백한 얼굴도, 기계에 연결된 팔도, 가슴 위아래로 움직이는 호흡도. 마치 이 병실 자체가 거대한 심문실인 것처럼,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하늘이의 눈빛이 세아를 찾았다.

날카로웠다. 마치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르게 느껴졌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시선. 또는 알고 싶지 않다는 눈빛. 그 두 감정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세아는 그 눈빛 아래에서 몸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뭐야?”

세아가 먼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물음표였다.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하늘이가 자신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마치 자신이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뭐라고 생각해?”

하늘이가 되물었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시험이었다. 시험하는 목소리. 상대를 재는 목소리.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자신의 과거.

자신의 부모.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세아의 손가락들이 서로를 비비고 있었다. 작은 마찰음. 그것이 자신의 불안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입술을 깨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더 약해 보일 것 같았다. 손가락을 비비는 것이 최소한 자신만 알 수 있는 신호였다.

“엄마가 깨어나면 뭐라고 할 거야?”

하늘이의 음성이 실내에 떨어졌다. 마치 돌을 던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물속에 가라앉으며 만드는 파문이 세아의 가슴까지 퍼졌다.

“왜 그래?”

세아가 반문했다.

“넌 뭘 숨기고 있어.”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단정문이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세아의 손이 멈췄다. 비비는 행동이 멈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세아는 깨달았다. 하늘이가 뭔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아니면, 알아차렸다는 것을.

“숨기고 있는 게 뭐냐고?”

세아의 음성이 약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물음이었다.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마치 칼날처럼. 그리고 세아는 그 칼날이 자신을 가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깊숙이.

모니터가 신호음을 냈다.

규칙적으로. 비프비프비프. 엄마의 심장박동을 알리는 음성. 마치 계속 살아있다는 증거를 주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는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비밀들이 엄마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독을 마시는 것처럼.

그리고 세아도 그 독을 마시고 있었다.

## 제2부: 밤의 골목

서울의 밤은 깊었다.

강리우는 차에 앉아 있었다.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딘가의 골목에 정차된 상태로. 강남역 뒤쪽의 좁은 골목.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장소였다. 밤 11시 45분. 주변 건물들은 모두 어두웠다. 편의점 하나만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 앞에서 노숙인 한 명이 캔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그 사람도 강리우처럼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밤의 서울은 계속 움직였지만, 강리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운전대 위에서. 조용한 떨림. 마치 작은 지진 같은. 그것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신경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배신하는 것처럼.

강리우의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에는 담배가 있었다. 점화되지 않은 담배.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빼곤 했다. 되풀이되는 동작. 신경을 진정시키려는 무의미한 행동.

조수석에는 서류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서류. 강민준의 것. 죽은 아버지가 남긴 문서들. 오래된 계약서들. 1990년대 인쇄된 종이. 색깔이 누렇게 변한 종이들.

그 중 하나에는 엄마의 이름이 있었다.

세아의 엄마 이름. 정확한 이름으로.

그리고 그 옆에는 강민준의 서명이 있었다.

강민준. 자신의 아버지.

아버지의 서명. 그것은 강리우가 알고 있는 서명이었다. 많은 계약서에서, 많은 문서에서 본 서명. 하지만 이 서명 옆의 문맥은 달랐다. 다른 시간대의, 다른 관계의 서명이었다.

그리고 서류의 날짜는 23년 전이었다.

강리우는 그 날짜를 봤다. 1999년 5월 15일.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23년 전. 그것은 정확하게 세아가 태어난 해였다. 강리우가 아는 한, 세아는 1999년 7월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이 계약서는 세아가 태어나기 2개월 전에 작성된 것이었다.

강리우는 계약서의 내용을 다시 읽었다. 법률용어가 가득했다. 이 나이에 법률용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법을 알아야 세상을 안다”고 말했다.

이 문서의 내용은 명확했다. 지원금. 의료비. 그리고 ‘비밀유지 서약’.

강리우의 입이 마말렸다.

비밀유지 서약.

그 문구가 눈에 자꾸만 들어왔다. 마치 그 문구가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마치 그 문구가 강리우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마치 전율이 지나가는 것처럼. 마치 뭔가가 깨어나는 것처럼.

이것이 뭔가? 강리우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것은 뭐냐?

하지만 그도 모르는 답을 자신에게 물을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손가락만 계속 떨렸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이 알아야 할 진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껐다. 그것을 반복했다. 엔진이 켜졌다가 꺼졌다. 꺼졌다가 켜졌다.

마치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 결정이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 제3부: 침묵의 언어

병실에서, 도현이가 깨어났다.

그 아이의 눈이 먼저 떠졌다. 천천히. 마치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듯이. 그리고 시야가 들어왔다. 천장. 창문. 모니터. 그리고 세아.

세아가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들었다. 화면을 켰다. 번호를 누르려다 만다. 놨다. 다시 들었다. 또 다시 반복했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부르면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까봐.

도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였지만, 도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침묵이 때로는 말보다 크다는 것을. 침묵이 때로는 칼보다 날카롭다는 것을.

도현이는 자신의 손을 움직여 보았다. 팔이 움직였다. 손가락도. 모두 멀쩡했다. 그렇다면 왜 입원했는가? 도현이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엄마의 목소리. 응급실의 밝은 불빛. 의사의 심각한 표정.

약물 과다복용.

그 단어가 떠올랐다.

도현이는 세아를 더 자세히 바라봤다. 그 누나는 정말 지쳐 보였다. 마치 자신이 도현이를 살리려고 모든 에너지를 쓴 것처럼. 마치 자신이 도현이의 죽음을 방지한 것 자체로 이미 죽어 버린 것처럼.

그리고 도현이는 무엇인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나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무엇인가.

그 방법은 말이 아니었다. 세아는 지금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누나는 지금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었다. 깊은 동굴 속에서,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그렇다면 방법은 침묵이었다.

도현이는 그냥 누나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보고만 있었다. 마치 누나의 무게를 함께 지려는 것처럼.

하늘이는 계속 앉아 있었다. 의자에. 팔걸이가 낡은 회색 의자에. 그 의자는 아마도 수백 명의 가족들이 앉아 있었을 의자였을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을 의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 된 지 오래였다. 엄마가 아팠을 때. 언니가 울었을 때. 도현이가 쓰러졌을 때.

언제나 하늘이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있는 자리에. 함께 있는 자리에.

그것을 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엄마는 계속 자고 있었다.

또는 도망치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었다. 또는 진실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세아는 엄마의 얼굴을 봤다. 잠든 얼굴. 그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모든 고통과 비밀이 사라진 것처럼. 마치 또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엄마는 뭘 알고 있는 거야?”

세아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마치 자신에게만 들리도록.

병원의 밤은 계속되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곳에서. 그리고 모든 것이 숨겨지는 곳에서. 병원은 역설의 장소였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 비밀이 벗겨지는 곳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비밀이 숨겨지는 곳.

의사들은 의료 비밀 준수를 약속한다. 간호사들은 환자의 사생활을 보호한다. 모두가 침묵할 것을 약속받은 곳.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곳.

또는, 거짓말을 하는 곳.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들이 작게 떨고 있었다. 마치 작은 새가 손바닥 위에서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떨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떨림.

자신이 원래 누구였는지를 모른다는 떨림.

그리고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떨림.

세아는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이번에는 놓지 않았다. 화면을 켰다. 연락처를 열었다. 그리고 한 이름을 찾았다.

강리우.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하지만 세아는 전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누군가 받았다.

“여보세요?”

강리우의 목소리였다. 떨리고 있었다. 마치 세아의 손처럼.

## 제4부: 진실의 경계

강리우는 전화를 받은 순간, 자신의 손가락이 멈췄다.

화면에 표시된 이름: ‘세아’.

그것이 뭔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강리우는 알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이 순간에, 세아가 전화를 한다는 것은.

“어… 세아?”

강리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도 모르게.

“언니?”

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목소리. 마치 어린 아이의 목소리처럼.

“응. 뭐야?”

강리우가 물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다. 뭔가 바뀌었다는 것을. 세아도 깨달았다는 것을.

“내… 내가 뭔가를 발견했어. 엄마의 물건 중에.”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의 가슴이 철렁했다.

“뭔데?”

“의료기록이야. 오래된 거. 엄마의 출산기록. 그런데…”

세아가 말을 멈췄다.

“그런데?”

“내가 거기 없어. 내 이름이 없어. 아니, 있기는 한데 다른 이름으로 되어 있어.”

강리우의 손가락이 다시 떨렸다.

“뭐라고?”

“’이세아’. 아니, 처음에는 ‘이세아’였던 거 같아. 그리고 나중에 ‘세아’로 바뀐 거 같은데… 언니, 이게 뭐야?”

전화 너머로 세아의 숨소리가 들렸다. 빨라진 숨소리.

강리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조수석의 서류를 봤다. 비밀유지 서약. 그 문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언니… 혹시 넌 알아?”

세아가 물었다.

“아니야. 나도 몰라.”

강리우가 거짓말을 했다. 아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강리우는 정말로 모르고 싶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언니…”

“응?”

“내가… 정말 누구야?”

그 질문 앞에서, 강리우는 침묵했다. 장시간의 침묵. 그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이 있었다. 모든 답이 있었다. 그 침묵 자체가 대답이었다.

“언니?”

세아가 다시 불렀다.

“세아… 넌 그냥 세아야. 뭐가 됐든.”

“그게 뭔 말이야?”

세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절망이 섞여 있었다.

“난 너를 모르니까. 너의 과거를 모르니까. 그냥… 내가 아는 건 지금의 너야.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해.”

강리우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나? 참말이었나? 강리우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엄마는? 엄마가 아는 뭔가가 있잖아.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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