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89화: 어머니의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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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9화: 어머니의 파편들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기대했는지 깨달았다. 어머니가 일어나 앉아 있을 것. 명확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 것. 그리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할 것.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침대 위의 어머니는 반쯤 누워 있었고, 그 눈빛은 초점을 잃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통해 보려는 것처럼. 또는 무언가에서 도망치려는 것처럼.

“엄마.”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눈이 천천히 세아 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이 초점을 맞추는 데는 오래 걸렸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세상에서, 어머니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세아…”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입술이 떨렸다. 약간의 타액이 입가에 맺혔다. 도현이 얼른 휴지로 닦아주었다.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도현이 이 작은 일을 수없이 반복해온 것처럼 보였다.

세아는 침대 옆에 앉았다. 어머니의 반대쪽. 그렇게 어머니는 둘 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엄마, 내가 왔어. 지금 내가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떤 확신도 주지 못했다. 마치 따뜻함이 무언가를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어머니가 세아의 손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마치 자신이 알던 손이 아닌 것처럼. 마치 이 손이 누구의 손인지 알아내려고 하는 것처럼.

“손가락…”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엄마?”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의 눈이 다시 초점을 잃었다. 하지만 입술은 계속 움직였다. 마치 목소리가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또는 무언가를 거부하는 것처럼.

하늘이가 병실의 문턱에 서 있었다. 들어올 준비가 되어 있지만, 들어오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 거리는 적절했다. 이것은 세아와 도현, 그리고 어머니만의 순간이었다.

“엄마, 뭐라고 했어? 어제?”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가 반복했던 것들. 아버지. 자신의 이름. 그리고 무언가 더.

도현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하기 전에, 어머니가 다시 움직였다. 손이. 세아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마치 깨어나가는 순간인 것처럼.

“강민준…”

어머니가 말했다.

그 이름은 공기 중에서 떠다녔다. 무거웠다. 마치 그것이 수십 년 동안 어머니의 가슴에 누적된 무게를 모두 담고 있는 것처럼.

세아의 손가락이 다시 떨렸다. 강민준. 그것은 강리우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강리우가 여러 번 말했던 이름. 마치 그것이 자신의 불행의 모든 원인인 것처럼.

“엄마, 강민준이가 뭐?”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떨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눈이 다시 초점을 맞췄다. 이번에는 더 오래 유지되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마지막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고 있는 것처럼.

“너를… 두려워했어…”

어머니가 말했다. 한 단어씩. 마치 그것들이 각각 독립적인 문장인 것처럼.

“뭐?”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전 병원 방문에서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명확했다. 더 직접적이었다.

“너의… 목소리…”

어머니가 계속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병실의 모니터는 계속 비프음을 냈지만, 그 소리마저 멀게 들렸다.

도현이 중얼거렸다.

“엄마, 그게 뭔 소리야. 누나 목소리가 뭐 어때…”

하지만 어머니는 도현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의 말을 완성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아는 것처럼.

“강민준이가… 그걸…”

어머니의 호흡이 가빠졌다. 모니터의 숫자가 변했다. 의료진이 들어올 것처럼 보였지만, 어머니는 손을 들어 멈추라고 신호했다. 아니, 신호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팔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두려워했어… 처음부터…”

어머니가 계속했다.

“뭐가? 내 목소리가 뭐가 무서워?”

세아가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오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것을 묻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존재. 자신이 왜 항상 조용해야 했는지.

“그게…”

어머니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처럼. 과거를 보는 것처럼.

“그게 모든 걸… 바꿨어…”

어머니가 말했다.

도현이 일어났다. 마치 이 대화가 자신이 들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걸 아는 것처럼. 하늘이가 도현을 본 것 같았다. 왜냐하면 도현이 병실 밖으로 나가자, 하늘이도 따라갔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것이 미리 정해진 것처럼.

이제 병실에는 세아와 어머니만 남았다.

“내 목소리가… 뭘 바꿨어?”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어머니의 목이 그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마치 그 말이 너무 크거나, 또는 너무 무거워서.

세아는 어머니의 얼굴에 더 가까이 갔다. 어머니의 입술을 읽으려고. 마치 입술 읽기가 의료 기술인 것처럼.

“…강민준이가… 너를 만들었어… 미안해…”

어머니가 속삭였다. 아니, 입술로만 말했다.

“뭐가 미안해?”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눈을 감았다. 마치 그 말을 한 것이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킨 것처럼.

모니터의 비프음이 더 빨라졌다. 간호사를 눌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손을 계속 잡았다. 따뜻함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지 않기 위해.

병실의 문이 열렸다. 간호사였다. 세아는 일어났다. 자동적으로.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배반하고 있는 것처럼. 간호사는 어머니를 확인했다. 활력 징후를 체크했다. 그리고 세아를 보고 말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하세요. 좀 더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실 것 같아요. 이건 좋은 신호예요.”

간호사가 말했다. 전문가다운 톤으로.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끄덕이고 있는지 몰랐다. 그 말이 정말 좋은 소식인지, 아니면 더 많은 거짓이 올 신호인지.

간호사가 나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은 천천히, 깊게 나가고 들어왔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세아는 다시 침대 옆에 앉았다.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았다. 따뜻함이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일지 몰랐다.

“강민준이가 날 왜 만들었어?”

세아가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들을 수 있는지 없는지 상관없이.

“그리고 엄마는 왜 날 두려워해?”

또 다른 질문.

“내 목소리가… 정말 뭘 바꿨어?”

마지막 질문.

병실의 침묵이 깊어졌다. 형광등의 불빛은 여전히 차갑게 내려앉았고, 모니터는 여전히 비프음을 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마치 세아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병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도현이었다. 혼자였다. 하늘이는 복도에 있는 것 같았다.

“누나…”

도현이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도현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강민준이.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의 존재를 미안해했다는 사실. 이것들을 도현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거짓말했다.

도현이 그 거짓말을 믿었는지, 아니면 믿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침대 반대쪽에 앉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다른 손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는 다시 둘 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지 세아는 모르겠다. 하지만 창밖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새벽이었다. 그 새벽은 마치 모든 거짓이 끝나는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세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배터리는 이미 꺼진 지 오래였지만, 어딘가에서 전원을 공급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것은 꿈이었을 수도 있다.

화면에는 ‘강리우’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세아는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어머니의 손에서 뭔가가 떠올랐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는 것처럼.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엄마,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은 여기 있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어딘가 다른 곳에 있었다. 강민준이의 그림자 속에. 강리우의 손아귀 속에.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을 바꿨는지를 알려고 하는 악몽 속에.

도현이 자신을 봤다. 세아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병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아는 자신이 이미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리우도, 어머니도, 강민준이도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아니, 자신 자신에 의해.

모니터의 비프음이 계속됐다. 병원의 밤은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 목소리의 무게

## 1부: 질문들

병실의 침묵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세아는 그것을 깨달았다. 침묵은 살아 있는 무언가였고, 그것은 천천히 그녀의 목을 졸라오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정말 뭘 바꿨어?”

세아의 목소리는 작았다. 마치 그 말을 꺼내기 위해 자신의 영혼 일부를 태워야 했던 것처럼. 어머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알았다. 어머니가 들었다는 것을. 그 두 손가락이 움찔했으니까.

“다른 질문.”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는 아주 가늘었다. 마치 종이를 구부릴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가늘기.

“엄마, 제발.”

세아는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더 크게. 자신의 목소리가 가지는 무게를 느끼면서. 한 마디 한 마디가 공기 중에 떨어져 내려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그런 무게. 강리우가 자신에게 준 목소리. 강민준이의 피를 받아 만들어진 목소리.

“마지막 질문.”

어머니가 눈을 떴다. 그 눈은 마치 수십 년을 살아낸 어떤 오래된 우물처럼 보였다. 바닥까지 도달할 수 없는 어둠. 세아는 자신이 그 우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병실의 형광등이 여전히 그 차가운 백색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세아는 그 빛이 싫었다. 그 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더 선명하게 보였고, 모든 것이 더 절망적이었다. 벽은 흰색이었고, 침대도 흰색이었고, 심지어 어머니의 얼굴까지도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다.

“—”

세아의 입이 떨렸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묻고 싶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대답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 어머니가 자신의 존재를 후회한다는 것. 강민준이 때문에.

모니터가 비프음을 냈다. 규칙적인 비프음. 어머니의 심박수를 나타내는 그 음. 세아는 그 음을 들을 때마다 불안해졌다. 마치 자신이 그 심장을 죽이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아버지 때문에?”

세아가 겨우 말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작은 움직임이 세아에게는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것이 ‘예’라는 대답이었다. 가장 무서운 형태의 ‘예’.

“아니면…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번에는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더 깊게. 마치 세상을 완전히 닫아버리려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이 강리우의 손이었을 때는 안 떨렸다. 그 손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었을 때는 안 떨렸다. 하지만 지금, 그저 자신의 손일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있을 때 떨렸다.

“엄마…”

세아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죽었다. 공기 중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2부: 도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세아는 모르겠다. 분이었을 수도 있고,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병실 안에서는 의미를 잃어버렸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침묵과 비프음뿐이었다.

병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소리가 났다. 문이 여닫히는 소리. 그것은 마치 세아의 가슴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같았다. 누군가가 들어왔다. 세아는 눈을 들었다.

도현이었다. 혼자였다.

그는 입장하면서 마치 자신이 거룩한 공간에 들어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걸었다. 발소리도 최소한으로 죽였다. 손도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그 모든 움직임이 어머니를 깨울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복도의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의사나 간호사와 대화 중인 것 같았다.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분명했다.

“누나…”

도현이 말했다. 세아를 봤다. 정확히는 세아의 얼굴을 봤다. 세아의 눈 속을 들여다봤다. 마치 거기에 답이 있을 것처럼.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가… 뭐라고 했어?”

도현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절박했다. 세아는 알았다. 도현도 알고 있다는 것을. 뭔가 크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강민준이라는 남자의 존재. 그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남자의 존재 때문에 자신을 미안해했다는 것을.

강민준이.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세아의 피부에 오한이 일었다. 그 남자는 누구였는가. 그 남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했는가. 그 남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렸는가.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거짓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거짓말을 느꼈다. 그것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을 느꼈다. 거짓말은 실제로 물질이었다. 그것은 뭔가 검은색이었고, 끈기 있었고, 냄새가 났다. 부패한 것의 냄새.

도현이 그 거짓말을 믿었는지 알 수 없었다. 또는 믿고 싶었는지.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형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단순히 자신도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대신 도현은 어머니의 침대 반대쪽으로 가서 앉았다. 세아와는 반대편. 그리고 어머니의 다른 손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는 다시 둘 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세아는 그 장면을 봤다. 어머니는 가운데 누워 있고, 양쪽에 자식들이 있다. 마치 어떤 종교 의식의 일부인 것처럼. 마치 그들이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는 의식을 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여전히 무언가 말하려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입술이 떨렸다. 아주 약하게. 마치 그것은 세아의 환각일 수도 있었다.

“엄마?”

세아가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 3부: 새벽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지 세아는 몰랐다. 시계가 있었지만, 그것을 보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어머니가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창밖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새벽이었다.

세아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새벽은 다른 시간이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그 중간의 시간. 모든 거짓이 끝나는 시간. 또는 모든 거짓이 시작되는 시간.

“누나…”

도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약했다. 마치 그것도 곧 사라져 버릴 것처럼.

“응.”

세아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정말…?”

도현이 물었다. 완전한 문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아는 알았다. 그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하늘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 전체가 색깔을 바꾸고 있는 것처럼.

“엄마가 미안해했어.”

세아가 마침내 말했다.

도현이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가 엄마를 아프게 했다는 게.”

세아가 계속했다.

“누나…”

도현이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다시 거짓말했다.

그 순간, 세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소리가 났다. 휴대폰 울음.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세아의 심장을 불러내는 것 같았다. 전화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들렸다.

세아는 핸드폰을 봤다. 배터리는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분명히 그것을 알았다. 아침에 병원에 올 때 이미 배터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화면이 켜져 있었다. 어딘가에서 전원을 공급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것은 꿈이었을 수도 있다.

화면에는 이름이 떠 있었다.

‘강리우’

그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아의 몸은 경직되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심장만이 계속 뛰었다.

강리우.

그 이름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것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

도현이 세아를 봤다.

세아는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내렸다. 전화를 끊었다. 마치 그 통화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전화가 끊겼다.

그 순간, 어머니의 손에서 뭔가가 떠올랐다.

세아는 그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약해졌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는 것처럼. 마치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려는 것처럼.

“아니야!”

세아가 외쳤다.

세아는 어머니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그 손은 차가웠다. 얼음같이 차가웠다. 하지만 세아는 놓지 않았다.

“엄마,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렸다.

그리고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은 여기 있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어딘가 다른 곳에 있었다. 강민준이의 그림자 속에. 강리우의 손아귀 속에.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을 바꿨는지를 알려고 하는 악몽 속에.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났다. 세아는 두 개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신체. 다른 하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있는 신체.

“세아…”

도현이 말했다.

세아를 봤다. 세아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도 이미 그 끔찍한 진실을 받아들인 것처럼.

## 4부: 불

병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마치 세상이 깜빡이고 있는 것 같았다. 존재와 부재의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처럼.

세아는 자신이 이미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자신을 태웠는가. 강리우인가. 강민준이인가. 어머니인가.

아니다.

자신이 자신을 태웠다.

그 깨달음이 세아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선택. 자신의 손. 그 모든 것이 자신 자신을 파괴했다.

모니터의 비프음이 계속됐다.

규칙적이었다. 어머니의 심장이 계속 뛰고 있다는 증거. 하지만 그 음이 점점 더 느려지는 것 같았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떠졌다. 아주 조금. 마치 그것도 너무 힘든 작업인 것처럼.

그 눈 속에서 세아는 무엇을 봤는가.

미움을 봤는가. 아니면 사랑을 봤는가.

아니면 그것은 단순한 피로였는가.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피로.

“나…”

어머니가 말했다. 아주 약한 목소리로.

“나… 미안해. 세아.”

그 말을 들은 순간, 세아의 세상이 끝났다.

아니,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변했을 뿐이다.

병원의 밤은 끝나가고 있었다.

새벽의 빛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그 빛은 차갑지만 순수했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빛.

하지만 세아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끝나지 않을 밤이었다.

그 밤 속에서 세아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인지를 영원히 찾아헤맬 것이다.

강리우의 목소리. 강민준이의 그림자. 어머니의 사랑과 미움. 도현의 침묵.

그 모든 것이 섞여 있는 어둠 속에서.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깜빡였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어둠은 외부의 어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 내부의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었다.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도 곧 사라질 것이었다.

세아는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천천히. 조용히.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빨아먹고 있는 것처럼.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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