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86화: 도현의 마지막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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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6화: 도현의 마지막 통화

세아의 엄지손가락이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멈췄다. 화면에는 ‘도현’이라는 이름이 열 번 떠 있었다. 열 번. 그것은 단순한 전화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였다. 형광등 아래의 조용한 신호음처럼. 침묵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비명처럼.

하늘이는 세아의 손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화면에 닿아 있었지만, 누르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버튼이 무언가를 영구적으로 바꾼다는 걸 아는 것처럼.

“받아.”

하늘이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명령이 아니라 간청이었다.

세아는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내렸다. 배터리가 12%로 떨어져 있었다. 곧 꺼질 것이다. 그것이 마치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이 차차 꺼져가고 있는 것처럼.

“세아, 그게 넌 뭐야. 도현이가 열 번을 불렀어. 열 번!”

하늘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차 안의 좁은 공간에서 그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엄마 병원에 있었어.”

세아가 말했다. 마치 이것이 설명이 될 것처럼. 마치 이것이 도현의 열 번의 전화를 정당화할 것처럼.

“그래서? 핸드폰은 있었잖아. 너 병원에서 핸드폰 못 본 거야? 아니면 봤는데 씹은 거야?”

하늘이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차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마치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 겨울 바람을 밀어넣은 것처럼.

세아는 창밖을 봤다. 강남역 입구의 밤거리. 술에 취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얘기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팔을 흔들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의 형제가 열 번을 부르지 않는 한.

“도현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마지막 통화 음성메시지 들어봤어?”

하늘이가 물었다.

“아니.”

세아가 대답했다.

하늘이는 핸드폰을 들었다. 자신의 핸드폰. 그리고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화면을 스크롤하고, 또 스크롤했다. 마치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한 증거를 찾는 것처럼.

“여기. 들어봐.”

하늘이가 세아의 귀에 핸드폰을 대밀었다.

음성메시지가 나왔다. 도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세아가 아는 도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깨진 목소리였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목을 짓밟은 것처럼.

“누나… 너 지금 어디야. 엄마가… 엄마가 다시 깨어났어. 병원에서 누나를 찾으래. 말이 이상해.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도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 다음에는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은 너무 길어서, 마치 음성메시지가 끊긴 것 같았다.

“누나, 제발… 제발 전화 받아. 나… 나 혼자는 못 해. 엄마가 뭔가 계속 말하고 있는데… 아버지 얘기 해. 그리고… 너. 계속 너 얘기 해. 제발…”

음성메시지가 끝났다.

세아의 손이 떨렸다. 아까부터 떨리고 있던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마치 자신의 신경이 이제 자신의 명령을 받지 않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에게 배반당한 것처럼.

“언제 거야?”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2시간 전. 너 병원에 있을 때.”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도현의 이름이 여전히 열 번 떠 있었다. 그 숫자들이 마치 시간 폭탄처럼 보였다. 틱, 틱, 틱.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처럼.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도현이 뭐라고 했어? 너한테?”

세아가 물었다.

“뭐라고 했어냐고? 걱정했어. 이 미친 년. 넌 도현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엄마가 쓰러졌을 때, 너 병원에 있을 때, 너 자꾸 나간다고 했을 때. 그 때마다 도현이가 넌 어디 가냐고, 엄마 봤냐고, 엄마 괜찮냐고 물었어. 그리고 매번 넌…”

하늘이가 말을 멈췄다.

“뭐?”

세아가 물었다.

“매번 넌 아무것도 답 안 했어.”

하늘이가 말했다.

차 안의 침묵이 깊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가 깨지는 침묵이었다. 신뢰가 깨지는 소리. 시간이 멈추는 소리. 그리고 세아라는 존재가 무너지는 소리.

“내가…”

세아가 시작했다. 하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왜 자신은 도현의 전화를 받지 않았는가. 왜 자신은 엄마의 말만 들었는가. 왜 자신은 자신의 형제를 잊어버렸는가.

하늘이의 손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어떤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한테 전화 걸어. 너 대신.”

하늘이가 말했다.

“아니.”

세아가 말했다.

“뭐?”

하늘이가 반응했다.

“아직은 아니.”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차의 문을 열었다.

밤 공기가 차에 들어왔다. 강남역 입구의 소음. 술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택시의 경적음.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들어왔다. 마치 세아가 차라는 보호막을 벗어버린 것처럼. 마치 자신을 노출시킨 것처럼.

“세아!”

하늘이가 외쳤다.

하지만 세아는 이미 거리로 나가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자신도 모르면서. 단지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도현의 목소리에서. 엄마의 손에서. 강리우의 떨리는 손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하늘이가 부르는 것이었다. 세아는 받지 않았다. 울음이 계속됐다. 그리고 또 울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마치 도현의 전화처럼. 마치 누군가 자신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세아는 근처의 편의점에 들어갔다. GS25. 낡은 간판. 형광등. 냉동식품 코너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바람. 모든 것이 익숙했다. 이곳은 자신이 일하던 편의점과 똑같았다. 같은 냄새. 같은 불빛. 같은 무게감.

편의점 직원은 세아를 보지 않았다. 그가 보는 것은 편의점 모니터 화면뿐이었다. 마치 세아가 거기 없는 것처럼. 마치 세아라는 존재가 이미 사라진 것처럼.

세아는 냉동식품 코너에 섰다. 아이스크림, 팥빙수, 얼음. 모두 차갑고 고정된 상태였다. 움직이지 않고, 녹지도 않고, 그냥 거기 있었다. 마치 자신처럼.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하늘이가 아니었다. 다른 번호였다. 세아는 화면을 들었다. 강리우.

강리우가 부르고 있었다. 정확히 밤 12시 47분. 세아는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끄었다. 배터리가 7%였다. 곧 죽을 것이다. 그것이 마치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터리가 다 떨어진 휴대폰처럼. 자신도 이미 다 떨어져 있는 것 같다.

편의점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마치 무엇을 경고하는 것처럼.

세아는 편의점을 나갔다. 그리고 강남역 입구 근처의 한강 공원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밤 거리를 헤치며. 술 취한 사람들을 피하며. 자신의 영혼을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한강이 보였다. 밤의 한강은 검었다. 마치 거울이 아니라 구멍인 것처럼. 마치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검은 입처럼.

세아는 난간에 섰다. 손이 철제 난간을 잡았다. 차가웠다. 아주 차가웠다. 마치 죽음의 손처럼. 마치 무언가가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도현이었다.

세아는 받았다.

“누나?”

도현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는 이미 울고 있었다.

“응.”

세아가 말했다.

“어디야? 어디 있어? 엄마가… 엄마가 자꾸 이상한 말을 해.”

도현이 말했다.

“뭔데?”

세아가 물었다.

“아버지 얘기. 그리고 넌 뭔가 위험한 애라고. 그리고… 그리고 뭐라고 했는데…”

도현이 말을 멈췄다.

“뭐?”

“누나가 엄마를 해칠 수도 있다고 했어. 아니, 이미 해쳤다고 했어. 근데 그게 무슨 말이야?”

세아의 손이 난간을 더 세게 잡았다.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마치 피가 끝까지 밀려났다는 신호인 것처럼.

“도현, 엄마 옆에 있어?”

세아가 물었다.

“응. 근데 엄마가 자꾸 자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말해. 내가 가고 있다고.”

세아가 말했다.

“진짜? 지금?”

“응. 30분이면 갈게.”

세아가 말했다.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한강을 바라봤다. 밤의 한강은 여전히 검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구멍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거울처럼 보였다.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세아의 손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언제부터 가지고 다닌 라이터. 세 번 누르는 습관. 틱-틱-틱.

이번에는 누르지 않았다. 대신 손에 쥐고 있었다. 무게감을 느껴보려고 하는 것처럼. 이것이 자신의 것인지 확인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걸었다. 한강 공원을 떠나 다시 거리로. 병원 방향으로. 그곳에는 도현이 있었다.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실패가 있었다.

밤 12시 52분. 세아의 휴대폰 배터리는 4%였다. 곧 죽을 것이다. 그것처럼 자신도 이 밤 안에 무언가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도현을 안는 것. 엄마의 손을 잡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택시를 탔다. 기사는 목적지를 물었다. 세아는 병원 주소를 말했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출발시켰다. 강남역 근처의 밤거리를 떠나 산처럼 높은 건물들 사이로.

차창 밖으로 강남의 밤이 지나갔다. 불빛들이 점점 작아졌다. 마치 별들이 멀어지는 것처럼. 마치 세아가 그곳에서 점점 떠나가는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미 늦었다고. 이미 모든 것이 깨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도현을 안는 것. 엄마의 손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공포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는 것.

강리우의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하늘이의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오직 밤의 소리만 있었다. 엔진음. 바퀴가 도로를 굴리는 소리. 그리고 세아의 빠르게 뛰는 심장음.

휴대폰이 울렸다. 마지막 신호인 것처럼. 배터리 1%.

세아는 받지 않았다. 그 대신 창밖을 봤다. 병원이 보였다. 밤의 병원. 불이 켜진 창들. 그 창들 뒤에는 무언가 고통스러운 것들이 있었다. 죽음. 생명. 그리고 그 사이의 무언가.

세아는 차에서 내렸다. 기사에게 돈을 주고. 말 없이. 그리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복도. 형광등. 모두가 익숙했다. 마치 자신이 이미 여기서 산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모든 기억이 이곳에 있는 것처럼.

도현이 복도에 서 있었다. 혼자. 그리고 그가 세아를 보자마자, 그의 얼굴이 무너졌다.

“누나…”

도현이 말했다.

세아는 달려가 도현을 안았다. 그 작은 몸. 그 차가운 손. 그 떨리는 어깨.

“내가 여기 있어. 이제 내가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마지막 말이 될 것처럼.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약속처럼.

엄마의 방 문이 보였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것이 시작될 것이다. 아버지의 공포. 강리우의 진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세아는 도현을 조금 더 안고 있었다. 밤 12시 56분. 휴대폰은 이미 죽어 있었다. 오직 둘의 호흡만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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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약속

## 첫 번째 장: 손에 쥔 것

한강 공원의 벤치에서 세아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들었던 봉투를 내려놓지 않았다. 대신 손에 쥐고 있었다. 무게감을 느껴보려고 하는 것처럼. 이것이 자신의 것인지 확인하려고 하는 것처럼.

봉투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종이의 질감은 낡았고, 모서리는 닳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여러 번 펴고 접었던 것처럼. 세아는 눈을 감고 그 감각에 집중했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흠집들. 종이 위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들.

“이게 뭐냐고…”

세아는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렸다. 밤 11시 47분. 한강은 조용했다. 이맘때쯤이면 공원의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떠나 있었다. 늦은 밤의 산책객들만 가끔 지나갈 뿐이었다.

세아는 봉투를 다시 펼쳐보려고 했다가 멈췄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알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그것이 자신이 바라던 진실이라면? 그것이 자신이 피하고 싶었던 현실이라면?

손가락이 차가워졌다. 11월의 밤바람이 한강을 흘러왔다. 세아는 재킷의 깃을 세웠다. 하지만 추위는 밖에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내부에서도 올라오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뼈 속에서.

*이미 늦었어. 모든 게 이미 늦었어.*

세아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걸었다. 한강 공원을 떠나 다시 거리로. 강남역 쪽으로. 그곳에는 여전히 밤이 살아 있었다. 네온사인들이 눈을 자극했다. 클럽의 음악이 거리로 흘러나왔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세아는 그 속을 걸어갔다. 유령처럼. 마치 자신도 그들 중 한 명이 아닌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미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병원 방향으로. 그곳에는 도현이 있었다.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실패가 있었다.

## 두 번째 장: 배터리

밤 12시 52분. 세아의 휴대폰 배터리는 4%였다.

화면을 켰을 때 나타난 빨간색 배터리 표시를 보고, 세아는 비로소 실제의 시간을 인식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학교에서 나온 이후로.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것을 발견한 이후로. 모든 것이 하나의 악몽처럼 흘러갔다.

*곧 죽을 것이다. 이 휴대폰도. 나도.*

세아는 생각했다.

아니, 아직 아니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심장이 빨라졌다. 엔진음이 귀를 채웠다.

택시 안이었다. 언제 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거리에서 손을 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택시가 멈췄을 때였을 것이다. 운전기사가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을 때였을 것이다.

세아는 대답했다.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강남의료원으로 가 주세요.”

그 말을 한 순간, 모든 게 현실이 되었다. 택시는 움직였다. 강남역 근처의 밤거리를 떠나 산처럼 높은 건물들 사이로.

## 세 번째 장: 밤거리

차창 밖으로 강남의 밤이 지나갔다. 불빛들이 점점 작아졌다. 마치 별들이 멀어지는 것처럼. 마치 세아가 그곳에서 점점 떠나가는 것처럼.

강남역의 번화가는 여전히 밝았다. 대형 건물들의 창문들이 밤하늘을 밀어내고 있었다. 편의점의 형광등. 카페의 따뜻한 조명. 술집의 빨간 네온사인. 모든 게 그곳에 있었다. 인생이 있는 곳. 선택지가 있는 곳.

세아는 창문에 기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뺨에 닿은 찬기운이 조금이나마 정신을 깨워주었다.

운전기사는 라디오를 켰다. 심야 토크 쇼였다. 누군가의 고민을 전문가가 풀어주는 형식이었다. 세아는 듣지 않으려고 했지만, 단편적인 말들이 귀에 들어왔다.

“…내 인생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실망시킨 것 같아서…”

“…언제쯤 행복할 수 있을까요…”

세아는 눈을 감았다.

*누구나 이런 거겠지. 누구나 이런 밤을 지내가는 거겠지.*

하지만 그것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고독하게 만들었다.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수많은 사람들이 밤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아무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차는 계속 움직였다. 건물들이 점점 작아졌다. 불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강남을 떠나 한 발 한 발씩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강리우’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세아는 받지 않았다. 대신 바라만 봤다. 진동하는 화면을. 울려대는 소리를. 그리고 그것이 멈출 때까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강리우는 세아의 친구였다.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한 것? 자신이 알게 된 진실? 아니, 진실인지도 모르는 것?

통화가 끝났다. 잠시 후, 문자가 들어왔다.

“세아야, 괜찮아? 연락이 없어서 걱정돼. 어디야? 뭐해?”

세아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배터리는 3%였다. 곧 죽을 것이다. 정말로.

## 네 번째 장: 마지막 할 일들

밤 12시 56분. 세아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미 늦었다고. 이미 모든 것이 깨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도현을 안는 것.

엄마의 손을 잡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택시가 병원 앞에 섰다. 밤 12시 59분. 세아는 지갑을 열었다. 손이 떨렸다. 돈을 꺼내는 것도 힘들었다. 마치 손가락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기사님, 고마워요.”

세아가 말했다. 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는 뭔가가 있었다. 걱정? 연민?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

세아는 차에서 내렸다. 도로는 조용했다. 이곳은 강남과 달랐다. 밤은 여전히 밤이었고, 침묵은 침묵이었다.

병원의 정현관 입구가 보였다. 밤의 병원. 불이 켜진 창들. 그 창들 뒤에는 무언가 고통스러운 것들이 있었다. 죽음. 생명. 그리고 그 사이의 무언가.

세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밤공기가 차갑게 폐를 채웠다. 손에 쥔 봉투가 무거워졌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지금. 지금 가야 해.*

세아는 병원으로 들어갔다.

## 다섯 번째 장: 익숙한 곳

엘리베이터. 복도. 형광등. 모두가 익숙했다.

마치 자신이 이미 여기서 산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모든 기억이 이곳에 있는 것처럼.

세아는 이 병원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 엄마가 밤새 여기서 기도했을 때. 그 모든 시간들이 이곳에 쌓여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4층. 5층. 6층.

각 층마다 다른 생명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태어나고 있었다. 이곳은 경계였다. 생과 사 사이의 경계.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세아는 생각했다.

그 질문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비밀.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6층.

문이 열렸다.

## 여섯 번째 장: 도현

도현이 복도에 서 있었다. 혼자.

그 작은 몸이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교복을 입은 열 네 살의 소년. 세아의 남동생. 유일하게 남은 가족.

그가 세아를 보자마자, 그의 얼굴이 무너졌다.

“누나…”

도현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세아는 달려갔다. 복도의 형광등이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늘렸다. 빨간 신발이 바닥을 굴렸다. 그리고 그 작은 몸을 안았다.

도현은 세아보다 훨씬 작았다. 또래 친구들보다도 작았다. 아버지의 병 때문일 수도 있었다. 엄마의 고통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냥 세상이 그를 작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세아는 도현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 차가운 등. 그 떨리는 어깨.

“내가 여기 있어. 이제 내가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도현을 위해 필요했다. 도현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누군가의 존재가 필요했다.

도현은 세아를 더 세게 안았다.

“누나, 엄마…”

“알아. 알아, 도현아.”

세아가 말했다.

“엄마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내가 봐줄 거야. 이제부터는 내가 봐줄 거야.”

그것이 진실인지 약속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그 감각이었다. 서로를 안는 감각. 서로가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감각.

휴대폰이 울렸다. 다시 강리우였다.

이번엔 세아도 화면을 봤다. 배터리 1%. 정말로 마지막이었다.

세아는 받지 않았다. 대신 도현을 조금 더 안고 있었다.

## 일곱 번째 장: 엄마의 방

엄마의 방 문이 보였다.

609호실. 세아와 도현이 그 방을 바라봤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것이 시작될 것이다. 아버지의 공포. 강리우의 진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세아는 도현을 조금 더 안고 있었다. 밤 12시 56분. 휴대폰은 이미 죽어 있었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배터리 0%. 완전히 죽었다.

오직 둘의 호흡만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버지, 난 어디로 가야 해?*

하지만 대답은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미 가버렸다. 남은 것은 세아와 도현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일들.

도현은 세아의 가슴에 기대었다.

“누나, 무서워.”

“알아. 나도 무서워.”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우린 함께야. 함께라면 괜찮아.”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이었다. 형과 동생이 서로를 안고 있는 이 순간. 밤이 깊어가고 모든 비밀이 드러나기 전의, 마지막 고요함.

복도의 형광등이 계속 깜박였다. 마치 심장박동처럼.

세아는 천천히 도현의 손을 잡았다.

“이제 엄마 봐야 해.”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은 함께 609호실로 향했다.

문을 열기 전, 세아는 한 번 더 멈췄다.

*이제 정말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거야.*

그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이 순간을 향해 흘러왔다. 아버지의 죽음. 엄마의 병원 입원.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그 봉투.

세아는 문을 열었다.

안쪽의 불이 약하게 들어와 있었다. 침대 위에는 엄마가 누워 있었다. 수액줄이 팔에 꽂혀 있었다. 호흡기가 조용히 쉬쉬거렸다.

엄마는 눈을 떴다. 세아를 보고 눈물이 흘렀다.

“세아…”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도현도. 엄마도.

밤 1시 03분.

이 밤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밤은 반드시 끝난다.

그리고 새로운 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확장 완료 | 12,84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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