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78화: 손가락이 기억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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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8화: 손가락이 기억하는 것들

하늘이의 침묵은 깊었다. 세아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을 읽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하늘이가 세아의 각 세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강리우를 믿느냐는 질문.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의 판단력을 테스트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세아가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결국 말했다. 한강의 물소리가 그 말을 실어 나갔다.

하늘이는 손으로 세아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부드러운 동작. 타투이스트의 손. 정밀하고, 섬세하고, 그러나 무언가 강렬한 것이 담겨 있는 손. 세아는 그 손을 느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다시 만드는 과정인 것처럼.

“넌 아직도 불태우고 있어.”

하늘이가 말했다.

“뭘?”

세아가 물었다.

“자신을.”

하늘이가 답했다.

침묵이 다시 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깊은 이해가 담긴 침묵. 마치 둘 다 같은 것을 보고 있는 침묵. 한강의 밤은 계속 흘렀고, 불빛은 계속 물에 부서졌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니, 항상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분노였다. 자신의 신체가 자신의 마음보다 먼저 반응하는 분노였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하늘이가 물었다. 질문을 바꿔서 물었다. 마치 세아가 강리우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인 것처럼.

“뭔가 많이 말했어. 근데 다 이해 못 했어. 아버지가 자신을 두려워했다고. 자신의 목소리가… 뭔가.”

세아가 말했다. 문장이 불완전했다. 마치 자신도 엄마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목소리가?”

하늘이가 되묻했다.

세아는 침묵했다. 목소리가 무엇이었는가. 엄마는 정확히 무엇을 말했는가. 세아는 병실에서 나온 이후로 그 말들을 반복해서 생각했지만, 마치 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말들은 계속 흩어졌다.

“아빠가… 자신의 목소리를 두려워했대. 엄마가 말한 건 그것뿐이야. 근데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엄마의 눈에 뭔가 있었어. 마치 자신이 뭔가를 놓친 것 같은… 후회 같은.”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하늘이는 세아의 얼굴을 봤다. 깊게 봤다. 마치 세아의 얼굴에 쓰여 있는 모든 것을 읽으려고 하는 것처럼.

“너도 뭔가 알고 있지?”

하늘이가 물었다.

“뭘?”

세아가 되물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아니면…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하늘이가 스스로 깨달은 무언가였다. 마치 하늘이가 세아를 봐오면서, 세아가 자신도 모르는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제주도에 있을 때… 엄마한테 물어봤어. 아버지가… 왜 자신을 버렸는지. 그럼 엄마가 말했어. ‘아빠가 너를 버린 게 아니라, 너를 보호한 거야’라고.”

세아가 말했다.

“보호한 거?”

하늘이가 반복했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어. 엄마의 말투가. 마치 자신이 무언가 위험한 사람처럼 말하는 것 같았어.”

세아가 말했다.

한강의 바람이 세아의 머리를 흔들었다. 서울의 밤은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9시쯤이었을 것이다. 주말 밤. 한강 공원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세아가 앉은 벤치 근처는 조용했다. 마치 어두운 물이 그들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너 혹시… 노래를 부른 적 있어?”

하늘이가 갑자기 물었다.

세아는 놀랐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노래.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 적이 있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너 자신을 위해서.”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생각했다. 자신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가. 물론 있다. Club Underscore에서. 편의점 일을 하기 전에. 하지만 그것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다. 손님들을 위한 것. 음악을 위한 것. 누군가의 꿈을 담기 위한 것.

그런데 자신을 위해서 부른 적이 있는가.

“없는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하늘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실망의 한숨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해와 동정의 한숨이었다.

“그럼 부르고 싶어?”

하늘이가 물었다.

“지금?”

세아가 물었다. 한강 공원의 밤.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부끄러움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가 드러날까봐. 자신이 얼마나 부서져 있는지가 드러날까봐.

“언제든.”

하늘이가 말했다.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초대하고 있었다.

세아는 한강을 봤다. 밤의 물은 검었다. 그러나 그 위에 떨어진 불빛들이 마치 누군가의 눈물처럼, 또는 누군가의 기억처럼 떠 있었다. 각각의 불빛이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행복. 누군가의 슬픔. 누군가의 절망.

그리고 자신도 그 중 하나였다. 마치 한강 위의 불빛처럼, 자신도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 떨어져 있는 작은 빛일 뿐이었다.

“세아.”

하늘이가 다시 세아의 이름을 불렀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넌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해 불태웠어. 엄마를 위해. 도현이를 위해. 강리우를 위해. 그리고 사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계속 태웠어. 근데 알아? 그게 사랑이 아니야. 그건 그냥… 죽음이야.”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하늘이의 얼굴을 봤다. 어둠 속에서도 하늘이의 눈은 명확했다. 마치 불이 타고 있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를 향한 분노나 사랑이 하늘이의 눈에 불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럼 뭐를 해야 해?”

세아가 물었다.

“자신을 위해 불태워.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음악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침묵했다. 그 말은 이해가 되지만, 동시에 불가능해 보였다.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 자신을 위해 노래한다는 것. 자신을 위해 불탄다는 것. 그것은 너무 낯선 것이었다. 마치 다른 언어로 쓰여진 지도를 보고 있는 것처럼.

폰이 울렸다. 도현이였다. 세 번째 전화. 아니, 더 많았을 것이다. 세아는 전화를 받았다.

“누나! 어디야? 엄마가… 엄마가 자꾸 너한테 물어봐. 어디 있냐고.”

도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린 목소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목소리.

“나 지금 한강에 있어. 곧 갈게.”

세아가 말했다.

“엄마가… 뭔가 중요한 걸 말해야 한대. 너한테. 나도 들었는데… 엄마가 말한 게 뭔지…”

도현이가 말했지만,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 마치 도현이도 자신이 들은 것을 정리할 수 없는 것처럼.

“알았어. 내가 간다. 30분 만에.”

세아가 말했다.

전화를 끊었다. 세아는 하늘이를 봤다.

“가야 해?”

하늘이가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하늘이는 세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함께 일어섰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인 것처럼.

한강 공원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손은 혼자가 아니었다. 하늘이의 손이 그것을 잡고 있었다. 따뜻한 손. 영원할 것 같은 손.

택시를 잡았다. 세아는 뒷좌석에 앉았고, 하늘이도 옆에 앉았다. 병원의 주소를 말했다. 택시가 한강을 떠나 도시의 밤길로 들어섰다. 빌딩들이 스쳐 지나갔다. 신호등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서울의 밤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고 있고, 누군가는 깨어 있고, 누군가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택시 안에 앉아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단지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만 알면서.

15분 후, 택시가 병원 앞에 멈췄다. 세아는 내렸다. 병원의 입구는 여전히 밝았다. 형광등. 마치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는 빛. 세아는 그 빛 속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5층. 병실. 문을 열었다.

엄마는 깨어 있었다. 침대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은 명확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세아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세아.”

엄마가 세아의 이름을 불렀다.

세아는 다가갔다. 그리고 엄마를 봤다. 병실의 형광등 아래서. 엄마의 얼굴에는 많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세월. 고통. 후회. 그리고 무엇보다 — 사랑.

“엄마.”

세아가 말했다. 한 음절. 호흡 같은 것. 그러나 그것이 세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너한테 말해야 할 것들이 있어. 진짜로. 넌 알아야 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침대 옆에 앉았다. 하늘이는 문 근처에 서 있었다. 마치 세아와 엄마의 시간을 존중하려고 하는 것처럼. 마치 이것이 혈연의 시간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내가… 너를 낳았을 때, 강미준은 자신의 아이를 원하지 않았어. 특히… 자신의 딸을 원하지 않았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침묵했다.

“강미준은… 음악 산업에 있어. 그리고 음악이란… 목소리야. 목소리가 전부야. 그리고 그는… 자신의 딸의 목소리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마치 그것이 저주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위험한 것인 것처럼.”

엄마가 계속했다.

세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가. 자신의 목소리는 단지 음성일 뿐이었다. 주파수와 음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데려왔어. 너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너는… 자신을 감춰야 했어. 자신의 목소리를 감춰야 했어.”

엄마가 말했다.

“어떻게… 감춘다는 건데요?”

세아가 물었다. 처음으로 존댓말을 썼다. 마치 엄마가 갑자기 낯선 사람이 된 것처럼.

“침묵. 음악이 아닌 음악. 누군가를 위한 노래. 자신을 위한 노래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노래.”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깨달았다.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왜 자신은 항상 다른 누군가를 위해 노래했는지. 왜 자신의 목소리를 숨겨야만 했는지.

그리고 이제 알았다. 엄마의 후회가 무엇인지도.


병실의 형광등은 계속 밝았다. 세아와 엄마는 침묵했다. 하늘이는 문 근처에서 그들을 봤다. 마치 이것이 세아의 인생을 바꾸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것이 세아가 누구인지 알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한강 위의 불빛들은 계속 떨어졌다. 밤의 물 위에. 마치 누군가의 기억처럼. 누군가의 노래처럼.

# 침묵의 언어

## 1부: 깨어남

병실의 형광등은 무자비한 흰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빛 아래서 모든 것이 사실처럼 보였다. 죽음도, 생명도, 그 사이의 회색 지대도.

세아는 복도를 걸으면서 자신의 발소리를 의식했다. 신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옷감이 스스로 스르르 거리는 소리, 숨을 고르려고 애쓰는 호흡음. 모든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마치 자신이 만드는 음파 하나하나가 세상을 흔들 수 있을 것처럼.

그게 말이 되나? 세아는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병실 문 앞에서 멈췄을 때,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한 박자, 두 박자, 그리고 그 사이의 긴 침묵. 음악처럼. 아니다. 음악과는 다른 것처럼. 음악은 규칙을 따르고, 이 심장박동은 아무 규칙도 따르지 않았다.

세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병원의 냄새를 마셨다. 강한 소독약, 약한 정도로 섞인 음식 냄새, 그리고 뭔가 말할 수 없는 것. 죽음 냄새? 아니면 생명 냄새? 세아는 분간할 수 없었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차갑고 매끄러웠다. 누군가의 손이 몇 번이나 이 문고리를 잡았을까? 몇 명의 사람들이 이 문을 통과했을까? 얼마나 많은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이 문 사이로 오갔을까?

문을 밀었다.

엄마는 깨어 있었다.

병상 위에 앉아 있었다. 두 개의 베개에 기대어, 하얀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은 천사처럼. 그러나 천사는 이렇게 창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사는 이렇게 약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눈은 명확했다.

세아는 그 눈을 보는 순간, 무언가가 가슴 깊숙이 흔들렸다. 그 눈은 사라지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 눈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마치 세아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세아.”

엄마가 세아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약했지만 확실했다. 마치 오직 세아만을 위해 예비해둔 목소리처럼. 마치 이 말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것처럼.

세아는 다가갔다. 한 발, 또 한 발. 바닥이 끼익거렸다. 그 소리가 너무 컸다. 자신의 발걸음이 너무 커 보였다.

엄마를 보았다.

병실의 형광등은 계속 밝았다. 그 빛 아래서 엄마의 얼굴이 낱낱이 드러났다. 세월이 새겨진 주름들. 이마의 깊은 골짜기들. 눈가의 미세한 흔적들. 그 모든 것이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많은 밤을 깨어 있었는가.

얼마나 많은 날을 고민했는가.

얼마나 많은 결정이 무거웠는가.

하지만 그 이상의 것도 보였다. 고통. 깊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 그것이 얼굴의 모든 선에 담겨 있었다. 엄마의 입가에는 후회가 맺혀 있었다. 눈빛에는 죄책감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그것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었다. 고통을 감싸고, 후회를 감싸고, 죄책감마저도 감싸고 있었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한 음절. 그것뿐이었다. 한 개의 음절. 마치 숨을 내쉬는 것처럼. 마치 생명을 놓아주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세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했다. 평생을 목소리로 살아온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 목소리를 잃었다.

침대 옆에 앉았다. 매트리스가 자신의 무게로 가라앉았다. 그 움직임으로 엄마의 손이 움직였고, 세아는 그 손을 들었다.

엄마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약했다. 뼈만 남은 것 같았다. 마치 살이 모두 녹아버린 것처럼. 마치 병이 엄마의 육체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집어삼키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너한테 말해야 할 것들이 있어. 진짜로. 넌 알아야 해.”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는 약했지만, 그 속에는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 말들을 하지 않으면 영영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세아의 목은 졸렸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듣기로 했다. 엄마의 말을 듣기로 했다.

하늘이는 문 근처에 서 있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처럼. 마치 이것이 세아와 엄마의 시간이라는 것을 존중하려고 하는 것처럼. 마치 혈연의 비밀이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내가… 너를 낳았을 때, 강미준은 자신의 아이를 원하지 않았어. 특히… 자신의 딸을 원하지 않았어.”

엄마가 말했다.

## 2부: 진실

세아의 심장이 멈췄다. 아니, 멈춘 게 아니라 빨라졌다. 펌프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위험을 감지한 동물처럼. 마치 자신이 무언가 큰 것을 들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강미준. 그 이름.

세아는 평생을 그 이름과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그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사진도 거의 없었다. 엄마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 마치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오염인 것처럼.

세아는 침묵했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강미준은… 음악 산업에 있어. 그리고 음악이란… 목소리야. 목소리가 전부야. 그리고 그는… 자신의 딸의 목소리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마치 그것이 저주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위험한 것인 것처럼.”

엄마가 계속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마치 수십 년을 숨겨온 것을 이제 내보내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처럼.

세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가? 자신의 목소리는 단지 음성일 뿐이었다. 주파수와 음정. 공기의 진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다. 세아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목소리는… 다른 것이었다.

평생을 그것을 느껴왔다.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 보이는 것. 자신이 노래할 때 사람들의 얼굴에 떨어지는 것. 그것이… 뭔가였다.

마력? 아니다. 그 단어는 너무 가볍다.

힘? 더 나을까?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다.

“어떻게… 감춘다는 건데요?”

세아가 물었다.

처음으로 존댓말을 썼다. 마치 엄마가 갑자기 낯선 사람이 된 것처럼. 마치 자신이 알고 있던 엄마와 지금 말하는 엄마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침묵. 음악이 아닌 음악. 누군가를 위한 노래. 자신을 위한 노래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노래.”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세아는 깨달았다.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왜 자신은 항상 다른 누군가를 위해 노래했는지. 왜 자신의 목소리를 숨겨야만 했는지.

왜 자신의 노래는 항상 누군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달했는지. 왜 자신의 노래에는 세아의 자신이 없었는지. 왜 항상 비어있다고 느껴졌는지.

드라마의 배경음악처럼.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처럼.

“내가… 너를 데려왔어. 너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너는… 자신을 감춰야 했어. 자신의 목소리를 감춰야 했어.”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가 더 약해졌다. 마치 이 말들을 하면서 자신의 남은 생명을 모두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아는 그 말을 반복했다. 마음속으로. 큰 목소리로는 아니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딸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로부터? 아니면 자신의 딸의 목소리로 인해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강미준이… 뭔데요? 아버지인가요?”

세아가 물었다.

엄마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치 그 질문 자체가 고통인 것처럼.

“그래. 아버지야. 하지만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게 두려웠던 사람.”

엄마가 말했다.

“뭔가를 무너뜨린다니… 무슨 말이에요? 내 목소리가 어떻게…”

세아의 말이 중단되었다.

왜냐하면 엄마가 세아의 손을 꽉 잡았기 때문이다. 그 약한 손이 놀랍도록 강하게.

“너는 모르겠지만… 강미준의 대리인들이 몇 번이나 나타났어. 너를 찾으려고.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서. 너를 데뷔시키고 싶다면서.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어. 그들이 원한 건 너의 목소리가 아니라… 너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었어.”

엄마가 계속했다.

병실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세아는 호흡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목 주위에 끈을 감은 것처럼.

“뭔가를… 할 수 있다니요? 내 목소리로 뭔가를?”

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영향력. 권력. 돈. 그것들. 너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어. 그것을 보았거든. 어렸을 때도. 너는 울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울었어. 너는 웃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웃었어. 그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았어. 그것이… 뭔가였어.”

엄마가 말했다.

세아의 눈이 떨렸다.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 3부: 보호

“그래서… 내가 너를 데려왔어. 집으로. 강미준으로부터. 그의 음악 산업으로부터. 그의 대리인들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엄마가 계속했다.

“그리고 너는… 자신을 감춰야 했어. 자신의 목소리를 감춰야 했어. 침묵 속에서 살아야 했어. 다른 누군가의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노래는 부르지 않으면서.”

엄마의 목소리가 더 약해졌다. 마치 자신이 한 일의 무게에 눌려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나는… 너를 보호하려고 했어. 진짜로.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어. 너의 목소리를 빼앗은 게… 너를 보호한 건지, 아니면 너를 파괴한 건지…”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작은 울음이었다. 마치 더 이상 울 힘도 없는 것처럼. 마치 이미 모든 눈물을 흘려버린 것처럼.

세아는 엄마를 안았다. 자신의 어머니를 안았다. 약한 몸을 안았다. 떨리는 몸을 안았다. 후회로 가득한 몸을 안았다.

“엄마가… 잘못한 게 없어요.”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완전히 맞지는 않다.

엄마는 세아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세아의 자아를 감췄다. 세아가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는 세아를 보호했다. 무언가로부터. 무언가 크고 어두운 것으로부터.

세아는 이제 깨달았다. 엄마의 후회가 무엇인지도.

엄마는 자신의 딸을 보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딸을 감옥에 넣었다. 아름다운 감옥이었을지 모르지만, 감옥은 감옥이었다.

“내가… 너한테 너의 목소리를 돌려주고 싶었어. 진짜로. 하지만… 강미준은… 그리고 그 사람들은…”

엄마가 말했다.

“엄마, 이제… 괜찮아요.”

세아가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면서도.

병실의 형광등은 계속 밝았다. 무자비하게 밝았다. 모든 것을 드러냈다. 엄마의 눈물도, 세아의 혼란도, 하늘이가 문 근처에서 보이는 연민도.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분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었다.

엄마가 다시 말했다.

“너는… 이제 선택할 수 있어. 너의 목소리로. 너의 인생으로. 강미준을 찾을 수도 있고, 찾지 않을 수도 있어. 너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낼 수도 있고, 계속 숨길 수도 있어. 그것은… 너의 선택이야.”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느껴보았다. 자신의 성대 깊숙이. 자신의 폐 깊숙이. 자신의 심장 깊숙이.

그 목소리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억눌려 있었지만. 감춰져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엄마.”

세아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다른 어조로. 더 강한 어조로.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 4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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