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3화: 벽에 부딪힌 진실
엄마가 강리우에게 뭐라고 했을까. 그 질문이 세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는 병원 복도에서 세아를 붙잡았을 때, 그리고 강리우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이미 모든 것을 말해버렸다. “그 남자는 너를 구하려는 게 아니야. 너를 더 깊이 빠뜨리려고 해.”
세아는 한강을 바라봤다. 물 위의 불빛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이 불안정한 것처럼. 마치 어떤 것도 고정될 수 없는 것처럼.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말해.”
강리우가 반복했다. 이제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절규가 아니었다. 더 위험했다. 마치 어떤 것이 깨지기 직전의 침묵 같은 위험함. 세아는 그 침묵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은 공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돌덩어리였다. 세아의 가슴 위에 놓인 돌덩어리.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세아가 말했다.
“중요한 건 뭔데?”
강리우가 되물었다. 그의 눈이 세아를 찾았다. 밤 속에서도 그 눈은 세아를 관통했다. 마치 그의 눈이 독립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세아를 사냥하는 포식자의 눈처럼.
“중요한 건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아는 거야.”
세아가 마침내 말했다. 그 순간, 세아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강리우의 손처럼. 마치 그들이 같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었다는 것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강리우가 세아에게 다시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충분히 가까워서 세아가 그의 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까워서 그의 눈동자 안에 자신이 반사되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 반사된 자신의 모습은 세아가 알던 자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창백했고, 더 작았고, 더 희미했다.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고 해도, 우린 멈출 수 없어.”
강리우가 속삭였다.
“왜?”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이었다.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같은 이유로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리우의 손이 세아의 얼굴을 향했다. 마치 그것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마치 그의 손이 자신의 뇌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세아는 그 손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피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선택이었고, 세아는 더 이상 선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이 세아의 뺨에 닿았다. 따뜻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상처를 입혔다. 왜냐하면 따뜻함은 거짓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따뜻함은 거짓이었다. 모든 접촉은 거짓이었다. 모든 사랑은 거짓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 거짓 속에 깊이 빠져 있었다.
“병원에서 엄마가 뭐라고 했어? 정확히.”
강리우가 다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마치 그것이 세아를 파괴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것처럼. 부드러움. 그것이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답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끝을 원하지 않았다. 끝은 너무 확실했다. 끝은 너무 명확했다. 그리고 세아는 불명확한 상태 속에서만 살 수 있었다. 그 회색 지역 속에서만.
“엄마가 말했어. 넌 내 아버지처럼 나를 죽인다고. 천천히, 그런데 확실하게.”
세아가 마침내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강리우의 손이 세아의 뺨에서 떨어져 나갔다. 마치 세아가 불에 데운 것처럼. 마치 그 한 문장이 강리우를 완전히 소각시킨 것처럼.
강리우가 일어섰다. 이번에는 천천히. 마치 그의 몸이 매우 무거워진 것처럼. 마치 그가 갑자기 수십 년을 더 먹은 것처럼. 세아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 뒷모습 안에서 세아는 자신을 봤다. 같은 절망. 같은 무게. 같은 죽음.
“그래. 나는 너를 죽이고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마치 그것이 단순한 사실 진술인 것처럼. 마치 “하늘은 파랗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리고 넌 나를 죽이고 있어.”
그가 계속했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어.”
강리우가 한강을 향해 한 발짝 나갔다. 그리고 또 한 발짝. 마치 물로 걸어 들어가려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세아의 심장이 멈췄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실제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어떤 손이 세아의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리우.”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침이었다. 그것은 기도였다.
강리우가 멈췄다. 한강 가장자리에서. 발을 한 발짝 더 내딛을 수도 있는 거리에서. 세아는 일어섰다. 자신의 다리가 움직인다는 게 신기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여전히 자신의 것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돌아와.”
세아가 말했다.
“왜?”
강리우가 되물었다. 그는 여전히 물을 보고 있었다. 세아를 보지 않았다.
“나 때문에.”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이었다. 강리우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세아 때문이 아니었다. 강리우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자신이 계속 불타기 위해서. 성냥개비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타오르기 위해.
강리우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밤 속에서 유령 같아 보였다. 마치 그가 이미 죽어 있는 것처럼. 마치 그가 이미 사라진 것처럼.
“넌 왜 나한테서 떠나지 않아?”
강리우가 물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진실한 질문이었다. 세아는 그것에 대답해야 했다. 정직하게.
“왜냐하면 내가 떠나면, 난 정말 사라질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넌 이미 사라지고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알아.”
세아가 답했다.
“그런데도?”
강리우가 물었다.
“그런데도 난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가 다시 벤치에 앉았다. 이번에는 세아 바로 옆에. 마치 그들이 이미 결정된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세아도 앉았다. 강리우 옆에.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한강을 바라봤다.
“엄마한테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이제는 거꾸로 자신이 묻는 번이었다.
“뭐라고 할 게 있겠어?”
강리우가 말했다.
“있잖아.”
세아가 말했다.
“그래. 있지.”
강리우가 인정했다.
“뭔데?”
“미안해. 그리고 이별.”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의 심장이 또 멈췄다. 이번에는 정말로.
“이별?”
세아가 반복했다.
“응. 나는 너를 떠나야 해. 너를 죽이지 않으려면.”
강리우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알았다. 이것이 끝이라는 것을. 진짜 끝이라는 것을. 더 이상의 회색 지역은 없다는 것을. 더 이상의 불명확함은 없다는 것을.
“그러면 안 돼.”
세아가 말했다.
“왜?”
강리우가 물었다.
“왜냐하면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 잊었어?”
세아가 물었다.
“뭐?”
“아버지가 내 안에 있대. 그리고 만약 넌 나한테서 떠나면, 나는 정말로 그 아버지가 되어버릴 거야.”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의 얼굴이 세아를 향했다. 그리고 그 얼굴 속에는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마치 그것이 같은 것인 것처럼. 마치 절망과 희망이 사실은 같은 무게라는 것처럼.
“그게 나를 붙들어두는 이유야?”
강리우가 물었다.
“아니.”
세아가 말했다.
“그럼?”
“그건 너를 꼼짝 못 하게 하는 이유야. 나를 구하면서 자신을 파괴하는 이유야. 그리고 우린 그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하고 있어.”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가 다시 한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세아도. 그들은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전과 달랐다. 이번 침묵은 결정의 침묵이었다. 항복의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알았다. 자신들이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자신들이 이미 너무 깊이 들어가 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휴대폰이 울렸다. 세아의 휴대폰. 밤 1시 47분. 도현이였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세아는 무언가가 깨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유리가 깨지는 소리처럼. 마치 세상이 두 조각으로 나뉘는 소리처럼.
“받아.”
강리우가 말했다.
“싫어.”
세아가 말했다.
“받아.”
강리우가 반복했다.
세아는 전화를 받았다.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가… 엄마가…”
도현이가 말했다. 하지만 말을 마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울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17살의 남자아이의 울음.
“도현아,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직관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몸이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가 쓰러졌어. 응급실로 옮겨. 의사가 말하는데…”
도현이가 말했다.
“의사가 뭐라고 했어?”
세아가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강리우가 세아의 손을 집었다. 마치 세아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붙들려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의사가 말하는데… 엄마가…”
도현이가 말했다.
“엄마가?”
“엄마가 뇌졸중이야.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대.”
도현이가 말했다.
그리고 세상이 끝났다. 밤 한강 위의 불빛도, 강리우의 손도, 세아의 숨도. 모든 것이 멈췄다. 마치 누군가 세상을 일시 정지 버튼으로 누른 것처럼.
“누나… 빨리 와. 제발. 제발…”
도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들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아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을 떠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는 것처럼.
“내가 운전할게.”
강리우가 말했다.
“어디로?”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이었다.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병원이라는 것을. 그리고 병원에 가면, 이 모든 것이 정말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강리우가 세아를 일으켜 세웠다. 마치 그녀가 인형인 것처럼. 마치 그녀가 자신의 것인 것처럼. 그리고 세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항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에 탔다. 검은 차. 강리우의 차. 그것은 항상 나타난다. 마치 세아가 필요할 때마다 물질화되는 것처럼. 마치 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인 것처럼.
강리우가 운전했다. 밤 1시 50분. 서울의 밤길. 그 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마치 무한 루프인 것처럼. 마치 자신들이 절대로 병원에 도착하지 못할 것처럼.
“엄마가 깨어날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넌 어떻게 알아?”
세아가 물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너를 봐야 하니까. 엄마는 너에게 뭔가를 더 말해야 하니까.”
강리우가 말했다.
“뭘?”
세아가 물었다.
“모르지. 하지만 엄마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어. 그리고 그 말은 너에게 중요할 거야.”
강리우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반복했다. 입 안에서만. 마치 그것이 주문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주문인 것처럼.
차가 계속 나아갔다. 밤 2시를 향해.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세아는 자신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성냥개비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그리고 그 불꽃은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세아 자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 끝나지 않는 밤
한강 위의 불빛들이 검은 물에 반사되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마치 세아의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으로 깜박이는 것만 같았다. 밤 1시 47분.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시간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숫자처럼 느껴졌다.
세아의 손은 강리우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손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붙들려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강리우의 손은 따뜻했다. 너무도 따뜻해서, 그 온기가 거짓처럼 느껴졌다. 거짓이어야만 했다. 이런 순간에 따뜻함이 존재할 리 없으니까.
휴대폰이 울렸다. 도현이의 번호였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무엇을 말할 것인지. 하지만 알고도 받아야 했다. 마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연기해야 했다.
“의사가 말하는데…”
도현이의 목소리는 부서질 것 같았다. 스피커폰으로 켜두었기에 강리우도 들을 수 있었다. 강리우의 얼굴이 잠깐 긴장했다가 다시 평온해졌다. 그 평온함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의사가 말하는데… 엄마가…”
세아의 목이 말렸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도현이가 다음에 무엇을 말할 것인지. 하지만 그 말을 실제로 들으면, 모든 것이 정말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지금까지는 악몽이었다. 도현이의 전화, 응급실, 의사의 목소리 같은 악몽. 하지만 그 다음 말을 들으면, 악몽은 현실이 되어버린다.
“엄마가?”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낯선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입을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뇌졸중이야. 그리고… 그리고…”
도현이가 말했다. 그 사이의 침묵. 그 침묵이 영원할 것 같았다. 마치 세상이 숨을 멈춘 것처럼. 마치 다음 말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처럼.
“그리고?”
세아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더 작은 목소리로. 마치 큰 목소리로 물으면 현실이 더 빨리 다가올 것 같아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대.”
도현이가 말했다.
그 순간, 세상이 멈췄다. 정말로 멈췄다. 밤 한강 위의 불빛도, 강리우의 손도, 세아의 숨도. 모든 것이 정지했다. 마치 누군가 세상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누군가의 의지가 작동한 것처럼.
세아의 귀에서 음향이 사라졌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음향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도현이의 울음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몸을 떠나가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는 것처럼.
내가 엄마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그 생각이 세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엄마는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었다. 세아는 피곤하다고 했었다. 일이 많았다고 했었다. 피곤했다고. 왜 그런 핑계를 댔을까. 왜 엄마의 손을 잡지 않았을까.
“누나… 빨리 와. 제발. 제발…”
도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직도. 계속. 세아는 그 목소리에 응해야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 무거운 액체에 빠져 있는 것처럼. 마치 그 액체가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것처럼.
“내가 운전할게.”
강리우가 말했다.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세아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인형인 것처럼. 마치 그녀가 자신의 것인 것처럼. 강리우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따뜻하고, 단호했고, 확실했다.
“어디로?”
세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이었다.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병원이라는 것을. 그곳의 하얀 복도를. 그곳의 의사들의 표정을. 그리고 그곳에 누워 있을 자신의 어머니를.
병원에 가면, 이 모든 것이 정말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강리우가 그녀를 차로 끌고 갔다. 세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항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에너지가 한 곳에서 빠져나갔다. 마치 신체에 구멍이 난 것처럼. 마치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처럼.
차 안. 검은색 쌍용 코란도였다. 강리우의 차. 그것은 항상 나타난다. 마치 세아가 필요할 때마다 물질화되는 것처럼. 마치 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인 것처럼. 세아는 그 시나리오를 몇 번이나 상상해본 적이 있었을까. 어머니가 아플 때의 시나리오. 어머니가 없을 때의 시나리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상상보다 더 차갑다.
강리우가 운전했다. 밤 1시 50분. 서울의 밤길. 강남 방향. 병원이 있는 쪽. 그 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마치 무한 루프인 것처럼. 마치 자신들이 절대로 병원에 도착하지 못할 것처럼.
강리우의 손이 스티어링 휠을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마치 이 상황을 여러 번 겪어본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가 이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세아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상황을.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가 깨어날 거야.”
강리우가 갑자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넌 어떻게 알아?”
세아가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목소리가 까칠해졌다. 왜 그가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 왜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지.
“왜냐하면 엄마는 너를 봐야 하니까.”
강리우가 말했다. 그의 눈은 계속 도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는 너에게 뭔가를 더 말해야 하니까.”
“뭘?”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손이 강리우의 팔을 집었다. 마치 그것이 그녀를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줄 것처럼.
“모르지. 하지만 엄마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어.”
강리우가 말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그의 발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그 말은 너에게 중요할 거야.”
세아는 그 말을 반복했다. 입 안에서만. 마치 그것이 주문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주문인 것처럼.
엄마가 깨어날 거야. 엄마가 깨어날 거야. 엄마가 깨어날 거야.
하지만 그 주문은 듣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이미 부러진 주문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이미 주문의 범위 밖에 있는 것처럼.
차의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흘러갔다. 건물들의 불빛, 가로등, 신호등. 그 모든 것이 세아의 눈에는 뭉개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이 물 속에 있는 것처럼. 마치 세상이 필터를 통해 보이는 것처럼.
도현이는 지금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엄마의 손을 잡고 있을까.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앉아만 있을까. 14살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일 테니까.
세아는 엄마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을까. 아침에 주방에서. 엄마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떤 옷을 입고 있었나. 세아는 기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세부 사항들이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응?”
“만약에…”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을 말할 수 없었다. 만약에 엄마가 깨어나지 않으면? 만약에 그것이 정말이면? 만약에 자신의 삶이 여기서 끝나면?
“만약에 뭐?”
강리우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세아가 말했다.
강리우가 그녀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세아의 손을 찾았다. 차를 운전하면서도.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마치 그것이 이미 정해진 일처럼.
차가 계속 나아갔다. 밤 2시를 향해.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세아는 자신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성냥개비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엄마를 위해. 도현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 불꽃은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세아 자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강리우의 차는 계속 나아갔다. 밤의 도시를 가르며. 그리고 세아는 그 안에서, 자신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유령이 되어 버린 것처럼. 그리고 그 유령은 병원의 어느 병실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가고 있었다.
밤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세아는 계속 불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