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60화: 침묵의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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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0화: 침묵의 상속

도현이가 엘리베이터로 향했을 때, 세아는 여전히 복도에 서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다리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도현이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17살의 등이. 그 등이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세아는 혼자 남겨졌다.

병원의 복도는 여전히 밝았다. 그 밝음이 세아를 압도했다. 형광등 아래에서 세아는 자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반사되는 빛 속에 자신의 윤곽이 희미했다. 마치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마치 이미 사라진 것처럼.

아버지가 너 안에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여전히 귀를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일종의 저주였다. 또는 진실. 세아는 그 둘의 차이를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저주와 진실은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세아는 계단을 찾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자신과 함께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투명한 존재가 아니라, 어떤 괴물인 것처럼 보일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병원의 1층은 조용했다. 밤 10시를 지났을 무렵이었다. 로비의 형광등만이 켜져 있었다. 세아는 자판기 앞에 섰다. 음료를 마실 필요는 없었다. 단지 멈춰 있을 필요가 있었다. 어딘가에서 멈춰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자신이 계속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지나가면서 물었다. 그 목소리는 관심이 아니라 일상의 배려였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자동으로 나오는 그런 말.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세아의 손이 떨렸다. 아버지의 손처럼. 강리우의 손처럼. 이 가족의 모든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유전자의 일부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운명의 일부인 것처럼.

병원 밖으로 나갔을 때, 밤공기가 세아를 감쌌다. 서울의 밤공기. 그것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단지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세아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마치 그 손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세아는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서. 다리가 움직이는 대로. 병원 근처의 거리를 따라. 밤 11시의 서울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택시들이 지나갔다. 편의점의 불이 켜져 있었다. 어딘가의 호프집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는 한 편의점 앞에 멈췄다. GS25였다.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곳과 비슷한 곳.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그 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생 같은 사람. 아주머니. 회사원 같은 사람. 그들은 모두 평범했다. 모두 정상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들이 아니었다.

세아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유 없이. 단지 그 밝은 공간 안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정상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착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냉장고 앞에 섰다. 음료들이 줄지어 있었다. 사이다. 스프라이트. 맥주. 막걸리. 세아의 손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따뜻한 음료였다. 핫초콜릿. 그것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안녕하세요.”

계산원이 말했다. 젊은 여자였다. 아마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일 것 같았다. 그녀의 이름표에는 ‘지은’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은. 세아는 그 이름을 반복했다. 입 안에서만. 대소리로 나내지 않고. 마치 그 이름을 자신의 입 속에 숨겨두고 싶은 것처럼.

“3500원입니다.”

지은이 말했다.

세아는 돈을 냈다.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기계가 카드를 읽었다. 비프음이 났다. 그 소리. 그것은 세상이 세아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신호였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감사합니다.”

지은이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진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의 일부였다. 하지만 세아에게는 그 거짓된 미소가 더 따뜻해 보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의점 밖으로 나갔을 때, 세아는 핫초콜릿을 마셨다. 따뜻했다. 혀를 약간 데었다. 그 통증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뭔가를 느낄 수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해늘이었다.

“세아. 어디야?”

해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안에 불안이 숨어 있었다. 마치 깊은 물 속에 숨어 있는 그런 불안.

“괜찮아?”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말하면, 해늘이 또 다른 걱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미 엄마의 걱정이 충분했다. 이미 도현이의 분노가 충분했다.

“세아?”

해늘이 다시 불렀다.

“응. 나 괜찮아.”

거짓이었다. 명백한 거짓이었다. 하지만 세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병원에서 나왔어?”

“응. 이제 나왔어.”

“엄마는?”

“괜찮아. 의사가 말하기로는 안정화되고 있대.”

또 다른 거짓이었다. 세아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치 호흡하듯이. 마치 생존의 방법처럼.

“세아, 솔직해봐. 넌 지금 어디야?”

해늘의 목소리가 더 날카로워졌다. 그것은 해늘이 세아를 알아차렸다는 뜻이었다. 해늘은 항상 그렇다. 세아가 거짓말을 할 때, 해늘은 그것을 느낀다. 마치 사냥개가 냄새를 맡는 것처럼.

“한강공원. 합정역 근처.”

세아가 말했다. 거짓이었다. 세아는 여전히 병원 근처의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이 거짓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 해늘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거짓이었다. 해늘이 자신을 혼자 두고 가기를 바라는 거짓이었다.

“한강? 이 시간에?”

“응. 그냥 산책하고 있어.”

“세아, 진짜…”

해늘이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그것은 포기의 한숨이었다. 마치 해늘이 세아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처럼.

“내일 봐. 내 가게에 와.”

“응.”

“진심으로. 내일. 오전 10시.”

“알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밤의 서울은 점점 더 조용해지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세아는 걷기를 계속했다. 목적지 없이. 방향 없이. 단지 움직이기 위해서. 마치 움직임 자체가 어떤 증거인 것처럼.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세아는 자신의 반사상을 보았다. 가게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 그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것이 정말로 자신인가. 그 가늘어진 어깨를 가진 사람이. 그 텅 빈 눈을 가진 사람이. 정말로 자신인가.

세아는 계속 걸었다. 자신의 반사상을 남기고. 마치 그것을 버리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또 다른 세아라는 것을 깨닫고.

너는 아버지를 피하면서 동시에 아버지를 찾고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것은 공중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치 병원에서 나온 이후로 계속 따라다니는 유령처럼.

너는 자신의 목소리를 없애려고 하고 있어.

그 말이 맞았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그것이 중력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숨을 참는 본능인 것처럼.

세아는 어느 찻집 앞에 멈췄다. 아직도 문이 열려 있었다. 밤 11시 40분. 그 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는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아는 그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세아가 찻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 구석에 앉았다. 그 자리는 창가였다. 밤의 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뭘 드릴까요?”

웨이터가 물었다.

“핫초콜릿.”

세아가 말했다. 아직 따뜻한 상태의 음료를 마시고 있었는데.

웨이터가 사라졌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발걸음. 그들의 방향. 그들의 목적지. 세아는 그들이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는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자신이 거기로 가고 있는지.

세아의 손이 다시 떨렸다. 그 떨림을 관찰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마치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손인 것처럼. 아버지의 손. 강리우의 손. 엄마의 손. 도현이의 손. 이 가족의 모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엄마가 말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버지가 너 안에 있어. 그것은 아버지의 DNA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세아에게 준 유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침묵이었다. 그것은 자학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없애려는 욕망이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계속하고 있었다.

웨이터가 핫초콜릿을 가져왔다. 세아는 마셨다. 다시 혀를 살짝 데었다. 그 통증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여전히 뭔가를 느낄 수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도현이였다. 이번에는 전화가 아니라 메시지였다.

“누나. 엄마가 너를 찾아. 병실에서 자꾸만 ‘세아, 세아’라고 부르고 있어. 너 어디야?”

세아는 그 메시지를 읽고 화면을 끄었다. 마치 그것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인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자신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과 관계가 있었다. 엄마의 고통. 도현이의 분노. 강리우의 떨림. 해늘의 걱정.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아니면, 적어도 자신이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해석이 가능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 자신이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자신이 이미 너무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세아는 찻집을 나갔다. 다시 밤의 거리로. 자정을 지나고 있는 밤으로. 더 이상의 음료는 필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따뜻함도 필요하지 않았다.

세아가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 걸어야 했다. 밤의 거리를 따라. 형광등을 따라.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 아버지의 목소리를 따라.

마치 그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밤은 계속되었다. 세아는 계속 걸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자동 검토 대기 중]

# 확장된 장면: 밤의 거리에서

세아는 핫초콜릿을 마시고 있었다. 따뜻한 액체가 입안에 퍼지면서 혀 끝을 살짝 데었다. 그 순간의 통증은 예상했던 것이었다. 마치 습관처럼. 마치 의식적으로 자신을 태우는 의식처럼.

찻집은 자정이 다가오면서 조용해지고 있었다. 카페인 냄새와 버터 향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세아는 한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창가의 자리였다. 밖을 볼 수 있는 자리. 하지만 안을 볼 수 없는 자리. 거리의 사람들은 이 카페 안의 세아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유리창에 비친 밤의 조명과 그림자 속에서, 세아는 단지 또 다른 어둠일 뿐이었다.

웨이터가 조용히 접근해왔다. 검은색 조끼를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얼굴은 지쳐 있었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을 버티려는 피로감이 얼굴에 묻어났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아의 잔이 비어가는지 확인했다.

“더 필요하신가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서둘러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웨이터는 곧 사라졌다. 빠르게, 마치 그것이 해방인 것처럼.

세아가 창밖을 바라봤을 때, 거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밤이 깊어도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택시들은 여전히 지나갔다. 편의점의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대학거리의 음식점들은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세아는 그들을 관찰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들의 발걸음을 관찰했다. 그들의 방향을 관찰했다. 그들의 목적지를 관찰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것이 세아의 주된 의문이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떤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고, 어떤 사람은 느린 발걸음으로 걸었다. 어떤 사람은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있었다. 각각의 방향이 다했다. 각각의 속도가 다했다. 각각의 목적이 다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을까?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자신이 거기로 가고 있는지.*

세아는 이것을 궁금해했다. 이것이 순진한 질문인 줄 알면서도, 세아는 계속 궁금해했다. 저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처럼, 그들도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보이지 않는 줄에 묶여 있듯이. 마치 자신의 운명에 이끌려가듯이.

세아의 손이 떨렸다. 따뜻한 핫초콜릿 잔을 들고 있는 손이 떨렸다. 그 떨림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떨림이었다. 마치 자신의 신체에 각인된 특성처럼. 마치 자신의 DNA에 새겨진 결함처럼.

세아는 그 떨림을 관찰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마치 그것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인 것처럼.

*아버지의 손이 이렇게 떨렸겠지.*

아버지. 강세아의 아버지. 강리우. 세아는 그의 사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는 병실에서만 만났다. 점점 더 야위어가는 모습으로. 점점 더 말이 없어지는 모습으로. 그리고 마침내 침대에 누워만 있는 모습으로.

하지만 그의 손은 기억했다. 세아는 이상하게도 그의 손을 기억했다. 어떻게 악수할 때 그의 손이 떨렸는지. 어떻게 세아의 머리를 쓸어줄 때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진동했는지. 그것은 약함의 신호였나? 아니면 두려움의 신호였나?

*그리고 엄마의 손도 떨린다.*

세아의 엄마. 강리우의 아내. 그녀의 손도 최근에는 떨리기 시작했다. 병실에서 남편의 손을 잡을 때. 세아를 안아줄 때. 도현이를 쓸어줄 때. 모두 떨렸다.

*강리우의 손. 엄마의 손. 그리고 내 손.*

세아는 자신의 떨리는 손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 잔에 담긴 갈색 액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마치 파동처럼 보였다. 마치 무언가 더 큰 것이 세아의 내부에서 울리고 있는 것처럼.

도현이. 세아의 남동생. 그의 손도 떨린다. 세아는 알고 있었다. 도현이가 펜을 들 때 손이 떨린다는 것을. 도현이가 엄마 앞에서 우려고 할 때 손이 떨린다는 것을. 도현이도 이 가족의 일부였다.

*이 가족의 모든 손이 떨리고 있다.*

세아는 이 생각에 도달했을 때, 마치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찾던 답을 발견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세아는 핫초콜릿을 다시 마셨다. 이번에도 혀를 살짝 데었다. 그 통증이 좋았다. 그 통증은 자신이 여전히 뭔가를 느낄 수 있다는 증거였다. 마취된 상태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죽은 상태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 순간, 세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이 밝혀졌다. 도현이였다. 세아는 한동안 그 화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전화는 울다가 끊겼다. 몇 초 후, 문자가 왔다.

세아는 그 문자를 천천히 읽었다.

“누나. 엄마가 너를 찾아. 병실에서 자꾸만 ‘세아, 세아’라고 부르고 있어. 너 어디야?”

세아는 그 문자를 읽었다. 다시 읽었다. 그리고 화면을 끄었다. 마치 그것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인 것처럼. 마치 그 문자가 다른 누군가에게 온 것인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자신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세아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문자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그 문자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 문자가 나를 죄책감으로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이 자신과 관계가 있었다.

엄마의 고통. 도현이의 분노. 강리우의 떨림. 해늘의 걱정. 모든 것. 모든 것이.

*그리고 모든 것이 내가 만든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자신이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시작한 것을 자신이 계속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만든 침묵을 자신이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심어놓은 두려움을 자신이 계속 키우고 있었다.

세아는 이전에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병원에서, 아버지가 이미 의식이 희미해진 후에, 엄마가 세아에게 말했던 말.

*“아버지가 너 안에 있어.”*

그때는 세아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DNA를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다. 유전자를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다. 아버지의 신체적 특징들이 자신에게 전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다. 검은 머리. 길쭉한 얼굴. 날카로운 눈빛.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세아는 이제 깨달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아버지의 두려움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버지의 불안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버지의 절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것은 아버지가 세아에게 준 유산이었다.

그것은 침묵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는 침묵.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 침묵. 자신을 완전히 숨기는 침묵.

그것은 자학이었다. 자신의 손을 깨물기. 자신의 팔을 할퀴기. 자신의 마음을 때리기.

그것은 자신을 없애려는 욕망이었다. 천천히.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나는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세아는 이것을 깨달았을 때, 마치 자신이 매우 깊은 물 속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지나쳤다는 것을 느꼈다.

웨이터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새로운 음료를 들고 왔다.

“아, 죄송합니다. 이건 손님이 주문하신 것 같은데…”

웨이터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워했다.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주문하지 않았어요.”

“아,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웨이터는 물러났다. 하지만 그 핫초콜릿은 남겨져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바라봤다. 따뜻한 증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마시지 않은 음료. 누군가의 실수로 인한 음료.

세아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마셨다.

혀를 또 다시 데었다.

그 통증이 좋았다. 그 통증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 통증은 자신이 여전히 뭔가를 느낄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 통증은 자신이 여전히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도 도현이였다. 세아는 다시 받지 않았다. 전화는 울다가 끊겼다. 또 다른 문자가 왔다.

“누나. 제발 답장이라도 해줘. 엄마가 진짜 많이 힘들어해. 아빠도 이제… 아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대.”

세아는 이 문자를 읽었다. 느리게. 단어 하나하나를 씹어먹듯이.

*“아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대.”*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의사들이 말했다. 며칠이 남지 않았다고. 며칠 안에 끝날 것이라고.

하지만 이 문자를 읽으니, 그것이 현실처럼 느껴졌다. 마치 처음으로.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화면을 끄지 않았다. 문자들이 계속 쌓여있었다. 그 문자들을 보면서도 세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너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실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너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해석이 가능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 자신이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자신이 이미 너무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나는 모르는 게 아니다. 나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더 끔찍하다.*

세아는 눈을 떴다. 찻집의 조명이 따뜻했다. 따뜻했지만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마치 관의 불빛 같았다. 따뜻하지만 죽음의 냄새가 나는.

세아는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도현이에게 답장했다.

“나가 있어.”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더 이상의 설명도 없었다. 더 이상의 죄책감의 표현도 없었다.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찻집을 나갔다.

밤의 거리로.

밤공기가 얼굴에 와닿았다. 차가웠다. 마치 죽은 사람의 손처럼. 세아는 그 차가움을 느꼈다. 그것이 좋았다. 따뜻함은 거짓이었다. 따뜻함은 위로였다. 위로는 지금 필요하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편의점은 여전히 밝았다. 택시는 여전히 지나갔다. 하지만 인도는 점점 더 비어가고 있었다.

세아는 거리를 걸었다. 아무 방향도 정하지 않으면서. 아무 목적도 정하지 않으면서. 단지 걷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했다. 목표 없이 걷는 것. 방향 없이 움직이는 것. 그렇게 하면 실패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 없었다.

세아는 어느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 골목은 어둡고 조용했다. 상점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조명은 희미했다. 마치 도시의 뒷면처럼. 마치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는 부분처럼.

세아는 그곳을 좋아했다. 이런 어두운 곳들을. 이런 숨겨진 공간들. 이런 누구도 주의하지 않는 장소들.

*여기라면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세아는 이 생각을 했다. 엄마도. 도현이도. 아버지도. 아무도.

세아의 손이 또 떨렸다. 이번에는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이 가족의 저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세아는 그 손을 보았다. 깨물어뜯고 싶었다. 할퀴고 싶었다. 그 손을 벌칙으로 주고 싶었다. 그 손이 엄마를 안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손이 도현이를 붙잡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손이 아버지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하지만 세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아닌 것처럼.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는 무언가인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이 다시 돌아왔다. 밤의 거리에서. 어두운 골목에서. 혼자 있을 때.

세아는 대답을 원했다. 진짜 대답을. 하지만 대답은 오지 않았다. 대신 더 많은 질문들만 올라왔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세아는 거리를 계속 걸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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