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56화: 손가락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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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6화: 손가락의 언어

병실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세아는 그 깜빡임을 세고 있었다. 1초, 2초, 3초. 빛이 돌아온다. 또 깜빡인다. 이것이 자신의 유일한 집중력이 되어 있었다. 엄마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어서, 도현이의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

도현이는 여전히 서 있었다. 의자를 밀어낸 채로. 그의 어깨가 상하로 움직이고 있었다. 호흡을 조절하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분노가 차오르면, 그것을 다시 내려야 한다. 17살 남자아이가 이미 배워버린 기술. 감정을 누르는 법. 세아는 자신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세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없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미안하다는 말은 이미 도현이에게 들었다고 거부당했다. 설명이라도 하려고 할까. 하지만 자신은 설명할 수 없었다. 왜 자신이 강리우에게 자꾸만 끌려가는지, 왜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왜 자신은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지.

도현이가 움직였다. 병실 밖으로. 문을 열 때 그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의료진이 뭔가 물어볼 것 같은 그런 소리. 하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도현이는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다.

세아는 혼자 남겨졌다. 엄마와. 엄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아니면 깨어 있으면서 자인척하고 있었다. 세아는 엄마의 호흡을 봤다. 들숨, 날숨. 그것이 규칙적이었다.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심장 모니터는 가끔 그 규칙성을 깨뜨렸다. 작은 불규칙함. 스트레스성 부정맥. 의사가 그렇게 부르는 그것.

자신 때문에.

세아는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천천히. 마치 엄마를 깨울까봐 조심스럽게. 침대가 약간 내려앉았다. 그 움직임으로 엄마가 눈을 뜰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마도 이미 깨어 있었을 것이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도현이가 말한 것처럼. 강리우의 손처럼. 아니, 정확하게는 강리우의 손은 떨렸고, 자신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마치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마치 같은 무언가가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카페에서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새벽 1시. 강리우의 손. 그것이 자신의 손 위에 놓였을 때.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밀어낼 수 없었던 이유. 왜냐하면 그 손 안에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절망이라는 이름의 그것.

“엄마.”

세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호출이었다. 도현이처럼. 누군가의 존재를 확인하는.

엄마의 눈이 떠졌다. 천천히. 마치 물 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그 눈이 세아를 봤을 때, 세아는 엄마의 얼굴에 새로운 무언가를 봤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었다. 그것은 포기였다. 아주 깊은, 바닥까지 내려간 그런 포기.

“내가 잘못했어.”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엄마, 아니야.”

세아가 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세아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잘못 만들었어.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은 걸 지웠어. 너는 아직 아이였는데, 나는 너를 엄마로 만들었어. 그리고 지금 너는…”

엄마의 목소리가 끊겼다. 심장 모니터가 다시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비프비프, 비프비프비프. 불안정한 박동.

“엄마, 진정해.”

세아가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차갑고 작았다. 마치 자신의 손처럼.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손이 엄마의 손을 닮아 있었다. 모든 것이 물려받은 것이었다. 이 가족의 손가락들. 이 가족의 떨림. 이 가족의 절망.

“너는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라도 했어. 너는 충분했어. 항상 충분했어.”

엄마가 세아의 손을 쥐었다. 그 손이 떨렸다. 또는 세아의 손이 떨렸다. 어느 쪽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두 손이 겹쳐진 곳에서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왜 자꾸 불 속으로 가려고 해?”

엄마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호소였다.

“내가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자신은 몰랐다. 왜 자신이 강리우에게 자꾸만 끌려가는지. 왜 자신은 자신을 태우고 싶어 하는지. 왜 자신은 불 속에서만 자신을 느낄 수 있는지.

엄마는 세아의 얼굴을 봤다. 오랫동안.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아니, 이제야 제대로 보는 것처럼. 자신의 딸의 얼굴을 이제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처럼.

“내가 너한테 뭘 물려줬는지 알아? 어렸을 때 넌 나를 바라봤어. 나는 물 속에 들어갔고, 넌 물 위에서 나를 기다렸어. 그리고 나는 올라왔다. 이렇게. 숨을 쉬면서. 살아서.”

엄마가 세아의 손을 들었다. 세아의 손가락들을 봤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손가락이 아니라, 자신이 물 속에서 건져 올린 무언가인 것처럼.

“넌 날 기다리는 법을 배웠어. 그리고 기다리는 건, 타는 거야. 속으로 타는 거야. 그걸 아무도 못 보는데, 넌 계속 타고 있었어.”

“엄마.”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울음이 섞인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너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야. 넌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어. 그게 차이야.”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이 세아의 가슴에 박혔다. 정확하게. 자신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말처럼.

세아는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유일한 연결이었다. 자신이 가족과 연결된 유일한 끈.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의 그것. 혈액도 아니고, 이름도 아니고, 단지 손가락과 손가락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데?”

세아가 물었다. 이번에는 도현이에게가 아니라, 엄마에게.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마치 자신이 물 속에서 올라올 때 누군가의 손을 잡듯이. 마치 생명줄을 잡듯이.

“너는 먼저 여기에서 나가야 해.”

엄마가 말했다.

“병실에서?”

“아니야. 이 모든 것에서. 너는 지금 불 속에 있어. 그리고 그 불은 너를 태우고 있어. 넌 빠져나와야 해.”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마치 자신의 눈물도 통제하는 것처럼. 해녀처럼. 물 속에서 눈을 뜬 사람처럼.

“강리우에게서?”

세아가 물었다. 그것은 자신이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그 남자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아니면 자신은 영원히 그의 손 안에 남아 있을 것인가.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아의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놓았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곳에. 그곳에서 세아는 자신의 엄마의 심장이 얼마나 불규칙하게 뛰고 있는지를 느꼈다. 스트레스성 부정맥. 자신 때문에 망가진 그 심장.

“넌 아직 젊어. 아직 시간이 있어. 나는…”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끊겼다.

“엄마, 말하지 마.”

세아가 말했다.

“나는 시간이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넌 있어. 그 시간으로 뭘 할 건지는 넌데 결정하는 거야. 이 불 속에서 계속 타는 걸 선택할 건지, 아니면 빠져나올 건지.”

엄마가 세아의 손을 다시 눈 앞으로 가져왔다. 그 손을 자세히 봤다. 마치 손금을 읽는 것처럼. 아니, 자신이 물려준 것들을 읽는 것처럼.

“이 손은 나의 손이기도 하고, 너의 손이기도 해. 그리고 이 손은… 이 손은 누군가의 손이기도 해. 너는 모르겠지만, 이 손은 그 사람의 손기도 해. 너의 아버지의 손.”

세아는 엄마를 봤다. 엄마의 눈이 세아의 손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너는 그 손으로 뭘 할 거야? 계속 누군가를 위해서만 태울 거야? 아니면 너 자신을 위해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할 거야?”

병실의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1초, 2초, 3초. 빛이 돌아온다. 세아는 그 깜빡임이 자신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졌다. 불규칙하고, 불안정하고, 통제할 수 없는 그것.

엄마는 세아의 손을 놓았다. 천천히. 마치 물 속에서 무언가를 놓는 것처럼. 그것이 떠내려갈 때까지의 그 느낌으로.

“이제 나가. 도현이를 찾아가. 그 아이가 혼자가 되면 안 돼. 그리고 너…”

엄마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정도로 작아졌다.

“너도 혼자가 되면 안 돼. 하지만 혼자가 되는 것과 혼자인 것은 달라. 넌 지금 혼자가 되어야 해. 아무도 없이. 그 남자도 없이. 그 손도 없이. 단지 너 자신과 함께.”

세아는 일어났다. 침대에서 떨어져 나갔다. 엄마를 봤다.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니면 감은 척했다.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에게 이미 들었던 말이지만, 다시 말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심장 모니터가 대답했다. 비프비프비프. 규칙적인 박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천천히. 마치 자신도 어떤 결정에 도달하고 있는 것처럼.

복도로 나갔을 때, 세아는 도현이를 찾지 못했다. 어느 쪽으로 간 것일까. 아래층으로? 아니면 옥상으로? 세아는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현이는 아래로 갔을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가면 나갈 수 있으니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말대로, 이 손은 자신의 손이면서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손이었다. 그 누군가는 자신이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손가락들 안에 살아 있었다. 유전자처럼. 운명처럼.

세아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강하게. 마치 자신이 물 속에서 무언가를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1층에 도착했을 때,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병원의 로비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밖에는 서울의 밤이 있었다. 불빛들. 차들. 그 모든 것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삶처럼.

세아는 도현이 옆에 앉았다. 말하지 않고. 그냥 옆에 있었다. 해녀의 딸처럼. 물 위에서 기다리는 것처럼.

“미안해.”

도현이가 말했다. 이번에는 도현이가 먼저 말했다.

“아니야. 너 말이 맞았어.”

세아가 말했다.

“그래도. 나가 너한테 쏟아붓고 나가지고. 나도 화풀이하는 거였어. 엄마가 쓰러진 건 내 잘못도 아닌데.”

도현이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자책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야. 너 말이 맞았어. 정말로.”

세아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손으로 도현이의 손을 잡았다. 엄마가 자신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같은 리듬으로. 같은 떨림으로.

도현이는 자신의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 손 안에 있었다. 마치 자신도 물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한테 전화 했어?”

도현이가 물었다.

“아니.”

세아가 말했다.

“앞으로도 안 할 거야?”

“모르겠어. 하지만…”

세아가 말을 멈췄다. 정말로 모르겠다. 자신이 강리우에게 전화를 안 할 수 있을까. 그 남자가 자신을 다시 부를 때, 그 손이 자신을 다시 잡을 때, 자신이 빠져나올 수 있을까.

“엄마는 넌 혼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어.”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혼자가 되는 건 무서워.”

도현이가 말했다.

“응. 나도 무서워.”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유일한 진실이었다. 자신은 정말로, 깊은 곳에서부터 무서워하고 있었다. 혼자가 되는 것이.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하지만 엄마의 심장이 자신 때문에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도현이가 자신 때문에 성인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강리우는 여전히 자신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손 안에 절망을 들고.

세아는 도현이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우리 엄마 병원에서 빠져나가자.”

도현이가 갑자기 말했다.

“뭐?”

“진짜로. 지금. 우리 엄마랑 셋이서. 제주로 가자.”

도현이의 목소리에는 절망도 있었지만, 동시에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 속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사람의 절박함이었다.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는 참고 있었는데, 이제는 흐르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여기서 죽으면 싫어. 그리고 누나가 계속 여기서 불 속에 있으면 싫어. 우리 다 사라져. 누나, 우리 정말로 다 사라져.”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손처럼. 도현이의 손처럼. 이 가족의 모든 손이 같은 리듬으로 떨리고 있었다.

병원의 로비는 밤 11시였다. 밖에는 서울의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 불빛들 사이에서,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리우를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무섭고, 아직도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엄마와 도현이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 손의 언어

밤 11시의 병원 로비는 불필요한 밝기로 가득 차 있었다. 형광등이 천장에서 무자비하게 빛을 쏟아내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세아는 도현이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정말로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같은 리듬으로. 같은 떨림으로. 같은 온기로.

세아의 손가락들이 도현이의 손 위에 얹혀 있었다. 아직 어린 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인 손. 세아는 그 손의 크기에 놀랐다. 언제부터 이렇게 자라버렸지? 손가락의 뼈가 튀어나와 있었고, 손등에는 아직도 아이의 부드러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의 힘은 이미 어른의 것이었다. 그것이 세아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도현이는 자신의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 손 안에 있었다. 마치 자신도 물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파도 위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건져낼 때까지. 그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놓지 않기를 바라면서.

병원 로비의 왼쪽 벽에는 큰 창문이 있었다. 그 창문을 통해 서울의 야경이 들어왔다. 밤의 서울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보였다. 수천 개의 불빛들이 깜박거리고 있었고, 각각의 불빛 뒤에는 누군가의 인생이 있었다. 누군가의 선택이 있었다. 누군가의 절망과 희망이 있었다.

세아는 그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 불빛들 뒤의 사람들도 자신처럼 무서워하고 있을까? 저 불빛들 뒤의 누군가도 자신을 버리고 싶을 만큼 절망하고 있을까?

“강리우한테 전화 했어?”

도현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거의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 작은 목소리 속에 큰 두려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세아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거짓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반이 거짓이었다.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전화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전화를 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전화를 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도 안 할 거야?”

도현이가 다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작은 희망.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의 희망.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세아가 말을 멈췄다. 정말로 모르겠다. 자신이 강리우에게 전화를 안 할 수 있을까? 그 남자가 자신을 다시 부를 때, 그 남자가 자신을 다시 찾을 때, 그 손이 자신을 다시 잡을 때, 자신이 정말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강리우는 마약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강리우 자신이 마약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중독성 있었고, 그의 손길은 마취제처럼 작동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세아는 자신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마치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있으면서도 떠다니는 것처럼 느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그 감각을 놓을 수 없었다.

“엄마는 넌 혼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어.”

세아가 말했다. 도현이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설득하려는 듯이. 마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듯이.

그 말은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는 병실에서 세아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했었다. 엄마의 손은 파리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떨리고 있었다. 통증 때문이었을까?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딸을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혼자가 되는 건 무서워.”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아직 흘러내리지는 않았지만, 곧 그럴 것처럼 보였다.

“응. 나도 무서워.”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정말로 유일한 진실이었다. 자신은 정말로, 깊은 곳에서부터 무서워하고 있었다. 혼자가 되는 것이.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알아내는 것이.

세아는 도현이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손가락으로 도현이의 손등을 눌렀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도 누군가에게 눌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억압. 의무. 책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가슴에 내려앉아 있었다.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야?”

세아가 중얼거렸다. 그것은 도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밤의 서울에게 하는 말이었다. 저 불빛들을 켜고 있는 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심장이 자신 때문에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실에서 들었던 심전도 기계의 비프음. 그것이 불규칙하게 울리고 있었다. 의사는 그것이 정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엄마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도현이가 자신 때문에 성인이 되고 있었다. 너무 빨리. 너무 고통스럽게.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과정은 본래 이렇게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강리우는 여전히 자신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어떤 어두운 방에서. 그 손 안에 절망을 들고. 그 절망이 감염되기를 기다리면서.

세아는 그 생각들을 머리에서 떨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먼지처럼 자신의 주변을 떠다니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엄마 병원에서 빠져나가자.”

도현이가 갑자기 말했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그것은 간청이었다.

“뭐?”

세아가 되물었다. 자신의 귀가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진짜로. 지금. 우리 엄마랑 셋이서. 제주로 가자.”

도현이의 목소리에는 절망도 있었지만, 동시에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 속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사람의 절박함이었다. 산소를 필요로 하는 절박함. 살아나고 싶은 절박함.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는 참고 있었는데, 이제는 흐르고 있었다. 눈물은 뺨을 타고 내려갔고, 그다음 턱을 지나 목에 도달했다. 그것은 마치 강물처럼 흘렀다. 작은 강. 고통의 강.

“우리 엄마가 여기서 죽으면 싫어.”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처음으로 도현이가 성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여전히 아이였다. 자신의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떨고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누나가 계속 여기서 불 속에 있으면 싫어. 우리 다 사라져. 누나, 우리 정말로 다 사라져.”

도현이가 계속 말했다. 그의 말들이 세아의 마음에 하나하나 박혔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손처럼. 도현이의 손처럼. 이 가족의 모든 손이 같은 리듬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악기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손이 켜고 있는 악기. 그 누군가는 자신이었다.

병원의 로비는 밤 11시였다. 밖에는 서울의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 불빛들 사이에서,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리우를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구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무섭고, 아직도 불가능해 보였다. 마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려는 것처럼. 파도가 자신을 계속 밀어내릴 때. 다리가 무거워질 때. 물이 폐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하지만 엄마와 도현이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세아는 한 발짝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발짝. 그다음 한 발짝. 그렇게 천천히, 고통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세아는 도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도현이도 세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이 밤의 유일한 약속이었다. 유일한 계약이었다. 유일한 사랑이었다.

병원의 로비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서울의 불빛이 내려앉는 곳에서, 세아는 마침내 결정했다.

살아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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