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4화: 침묵의 무게
도현이는 여전히 엄마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세아가 병실로 돌아올 때 그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깊이 패여 있었다. 17살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오래된 나이의 누군가처럼 보였다. 누나를 걱정하는 시간이, 엄마를 간호하는 시간이 그의 얼굴에서 청소년의 때를 깎아내고 있었다.
“누나, 여기 와. 엄마가 자고 있어. 의사가 말했어. 스트레스 때문에 피로 호르몬이 높으니까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대.”
도현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자신이 성인이고 누나가 환자라도 되는 식으로. 세아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의 형제가 자신을 어떻게 봐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누나는 동시에 자신이 걱정해야 할 사람이면서도, 자신이 돌봐야 할 사람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정말로 자고 있었다. 입이 조금 벌어져 있고, 호흡이 얕아 보였다. 심장 모니터는 규칙적인 박동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 규칙성이 이상하게 슬펐다. 기계가 엄마의 생명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 마치 엄마의 심장이 자신의 몸 안에서 박동하지 않고 저 기계의 신호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세아는 의자를 당겨 도현이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바라봤다. 말이 없었다. 아마도 도현이도 자신도 이 순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밝힌 것들—아버지의 정체, 자신이 해녀의 딸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 뒤에 숨겨진 자책과 죄책감—이 이 작은 병실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누나.”
도현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그저 누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호출이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 한 글자가 자신의 입에서 나올 때 얼마나 무거운지를 느꼈다.
“엄마가 왜 이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왜 지금?”
도현이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리고 있었다. 불안감의 표현이었다. 세아는 그 손가락의 리듬을 봤다. 자신의 손가락도 같은 리듬으로 떨리고 있었다. 마치 같은 불안감을 공유하는 것처럼.
“모르겠어. 엄마가 돌아가실 거 같은 느낌이 든 건가? 엄마는 자신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세아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말 속에는 깊은 두려움이 있었다. 엄마가 아직 의식이 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자신의 딸들이 엄마의 진실을 알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오래된 침묵이 자신의 몸을 병들게 만든 것일까.
도현이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화면을 켰다가 다시 껐다. 그 반복을 몇 번 더 했다. 세아는 자신의 남동생이 무엇을 하려던 것인지 알았다.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주저하고 있었다.
“누나한테 말할 게 있어.”
도현이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것을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결심한 것처럼.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남동생의 얼굴에는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세아를 향한 분노는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은 더 큰 무언가를 향한 분노였다. 아마도 이 상황 전체를 향한 것이었을 것이다. 또는 자신들의 가족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향한 것이었을 것이다.
“뭐?”
세아가 물었다.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 누나한테 계속 전화했어. 기억해?”
세아의 얼굴이 굳었다. 기억했다. 3:47 AM의 전화. 그리고 그 전에 있었던 여러 번의 전화들. 자신이 받지 않았던 전화들. 자신이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전화들.
“응, 기억해.”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엄마는 누나를 찾아다녔어. 저녁부터. 누나가 다시 어디론가 간 거 같다고. 누나 친구 하늘이한테도 전화했어. 하늘이는 누나가 자기한테 안 왔다고 했고. 그러면서 누나가 다시 그 남자, 강리우를 만나러 간 거 아니냐고 물었어.”
도현이는 숨을 깊게 쉬었다. 마치 물 속에서 올라오는 사람처럼. 마치 엄마가 물 속에서 올라올 때 숨을 쉬는 것처럼.
“엄마는 밤새 누나를 찾아다녔어. 편의점에도 가봤고, 강리우가 나왔던 카페들도 다 찾아다녔다고. 하늘이가 말했어. 엄마가 새벽까지 다니면서 누나를 찾다가, 결국 체력이 다 떨어져서 쓰러진 거라고.”
세아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입이 굳어져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이 병실의 형광등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처럼.
“누나, 엄마가 왜 그렇게 필사적이었는지 알아?”
도현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왜?”
“강리우가 누나한테 뭔가 한 거 아니니까. 엄마가 그걸 알았으니까. 누나가 그 남자를 만나러 간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엄마는 누나를 막고 싶었어. 왜냐하면 엄마는 이미 한 번 자기 딸을 잃어본 거고, 다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도현이는 여기서 멈췄다. 그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17살 소년의 어깨가 누나의 죄책감을 짊어지고 떨리고 있었다.
“누나가 엄마 전화를 받지 않았어. 누나는 다른 데 있었어. 누나는 강리우를 만나고 있었어. 그리고 엄마는 계속 돌아다니다가 쓰러졌어.”
세아의 눈이 흐려졌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이 울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마치 눈물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도현이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었다. 또는 엄마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을 향한 말인지도.
도현이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누나를 봤다. 그의 눈에는 분노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연민이었다. 그리고 그 연민은 누나를 향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자신이 이렇게 누나를 판단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연민.
“엄마가 깨어나면 뭐 할 거야?”
도현이가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엄마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엄마가 자신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알았을 때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병실의 형광등이 다시 떨렸다. 아니, 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흐려져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세아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무엇이 움직이는 것인지. 자신인지, 아니면 세상인지. 자신의 감정인지, 아니면 자신의 몸이 반응하는 것인지.
“누나.”
도현이가 다시 말했다.
“응.”
“엄마가 말했잖아. 엄마가 너를 안 본 거라고. 근데 누나는 엄마를 본 적 있어?”
그 질문이 세아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마치 화살처럼. 아니, 화살이 아니라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세아는 엄마를 봤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여전히 자신의 딸로부터 버려진 것처럼 보였다.
세아가 본 것은 무엇인가. 엄마가 본 것은 무엇인가. 그 사이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무엇인가.
“누나, 답해 줄래?”
도현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분노가 섞여 있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간청이었다. 자신의 누나가 자신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청. 자신의 누나가 여전히 누나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간청.
세아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다시 사라져버린 것처럼. 또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또는 어디선가 깊은 곳에 박혀 있는데 자신이 손가락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처럼.
화면에 알림이 떠올랐다. 도현이의 휴대폰. 카톡 메시지. 하늘이로부터.
“엄마 어때? 세아는 어디야? 답 줄래? 진짜 걱정돼.”
도현이는 메시지를 읽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어떤 거짓말이 아니라면서도, 어떤 진실도 완전히 말할 수 없는 그런 말들을. 엄마가 깨어났다. 세아도 왔다. 아직 상황이 복잡하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
그것이 세아가 도현이가 쓸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병실의 시계는 계속 움직였다. 밤 10시. 11시. 자정. 세아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도현이는 엄마의 침대 옆에서 졸고 있었다. 그의 머리가 침대의 가장자리에 기대어 있었다. 불편해 보였지만, 아무도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불편함이 유일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세아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강리우의 손처럼. 아니, 이제는 자신의 손이 이렇게 떨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누군가의 손을 부셔버렸기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부셔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부셔버렸기 때문에.
엄마가 다시 눈을 떴다. 천천히. 마치 물 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그 눈이 먼저 천장을 봤고, 그 다음 자신의 아들을 봤고, 그 다음 자신의 딸을 봤다.
세아와 엄마의 눈이 만났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대화는 너무 단순한 단어였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확인이었다.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확인.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볼 수 있다는 확인. 그리고 그 확인 앞에서, 세아는 눈물을 흘렸다. 이번엔 자신의 눈물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 이것이 자신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면서.
“엄마, 미안해.”
세아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라는 증거처럼.
엄마는 손을 펼쳤다. 다시. 이번엔 세아가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세아가 손을 잡았을 때, 엄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 손을 끌어당겼다. 자신의 가슴으로. 자신의 심장으로.
그 순간, 심장 모니터가 규칙적인 박동을 그려냈다. 비프, 비프, 비프. 두 명의 사람이 한 명의 심장을 통해 같은 박동을 느끼는 것처럼.
세아는 엄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리고 울었다. 자신의 눈물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몸으로.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울었다.
도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엄마의 팔을 찾아서. 그리고 그것도 또 다른 형태의 신호였다.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신호. 우리가 여전히 함께 있다는 신호. 우리가 여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신호.
병실의 형광등은 계속 빛났다. 밤새. 그리고 그 빛 아래에서, 한 가족이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나누고 있었다. 말이 아닌 것으로. 만남으로. 접촉으로. 존재로.
세아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떨림이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책임이었다. 그것은 또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아직도. 여전히. 계속해서.
# 불완전한 진실들
## 1부: 메시지
휴대폰의 화면이 밝아졌다. 도현이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맴돌았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돌 위에 글을 새기는 것처럼 무거웠다.
*“어떤 진실도 완전히 말할 수 없는 그런 말들을.”*
그가 지우고 다시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20%까지 내려가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문장을 만들고 부쉈다.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설명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엄마가 쓰러졌다는 것? 그 이유가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 아니면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는 것?
병실의 형광등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 불빛 아래서 도현이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마치 병원의 벽처럼. 마치 환자복처럼. 마치 죽음처럼.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말했다.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말했다.
“엄마가 깨어났어.”
휴대폰 화면을 다시 봤다. 세아에게 보낼 메시지. 친구. 아니면 그 이상인 무언가. 그 정의는 이미 오래전에 깨져버렸다. 마치 강리우의 손처럼.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도현이의 몸이 움찔했다. 강리우.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계단. 비명. 그리고 그 이후의 침묵.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침묵.
도현이는 화면을 다시 봤다.
*“엄마가 깨어났다. 세아도 왔다. 아직 상황이 복잡하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완전한 거짓도 아니고, 완전한 진실도 아닌 말들. 모호함으로 가득 찬 언어. 침묵으로 채워진 문장들. 그것이 현대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송 버튼을 눌렀다.
메시지가 가 버렸다. 되돌릴 수 없게. 마치 모든 것처럼.
—
## 2부: 기다림
시간이 흘렀다.
병실의 벽시계가 계속 움직였다. 초침이 ‘딱딱딱’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이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깎아내리고, 또 깎아내리고, 계속해서.
밤 10시.
세아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병원 의자. 어떤 의자보다도 불편한 의자. 등받이가 너무 높고 좌석이 너무 딱딱하며, 무언가 묻어 있는 냄새가 나는 의자. 그 의자에서 수십 명, 수백 명이 밤을 새웠을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누군가가 나을 때까지. 또는 누군가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때까지.
세아의 등이 의자에 완전히 붙지 않았다. 언제든지 일어날 준비를 하는 자세. 엄마를 봐야 할 준비. 도현이를 봐야 할 준비. 무언가 일어날 준비.
밤 11시.
도현이는 엄마의 침대 옆에서 졸고 있었다. 머리가 침대의 가장자리에 기대어 있었다. 목이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었다. 아침이 되면 목이 아플 것이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일어나, 편하게 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불편함이 유일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만약 도현이가 편하게 잔다면, 이것은 일상이 될 것이다. 일상은 거짓이다. 일상은 우리가 외면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불편한 밤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도현이가 불편해하게 놔두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참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밤 자정.
병실의 심장 모니터가 규칙적으로 비프음을 냈다.
*비프. 비프. 비프.*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의 박동처럼 들렸다. 세상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 엄마가 계속 살아 있다는 증거.
세아는 그 소리를 세고 있었다. 한 박자, 두 박자, 세 박자. 100까지 세면 몇 분이 지나갈까? 1000까지 세면? 10000까지?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추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은 항상 춥다. 에어컨이 너무 강하게 나온다. 아니면 카페인 때문일까?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지 않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지금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손이 떨리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강리우.
그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마치 강리우의 손처럼. 마지막으로 그녀가 봤던 강리우의 손. 계단 아래에서. 그 손가락들이 어떻게 구부러져 있었는지. 그 손목이 어떤 각도로 꺾여 있었는지.
세아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불을 받으려고. 아니다. 그 손을 보려고. 그 손이 하얀지, 검은지, 얼마나 떨리는지.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추위에 떨리는 것처럼. 아니, 그것은 추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책감이었다.
그것은 책임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군가의 손을 부셔버렸다는 자각이었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눈을 닫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계단. 그 소리. 그 침묵. 모두가 자신의 선택의 결과였다. 도현이를 이용한 자신의 선택. 강리우를 도구로 삼은 자신의 선택.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은 고통받지 않았다. 엄마와 도현이가 대신 고통받았다.
불공평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공평한 일이었다.
그녀의 손은 계속 떨렸다.
—
## 3부: 눈 맞춤
밤 자정을 넘어서.
병실의 형광등이 계속 밝았다. 병원은 밤낮이 없다. 언제나 낮처럼 밝다. 어둠을 피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죽음의 어둠을 피하기 위해서일까?
엄마가 눈을 떴다.
천천히.
마치 물 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세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감각이 그 순간에 집중되었다. 눈동자가 움직인다. 깜박인다. 초점을 맞춘다. 산소 마스크 아래의 입술이 움직인다. 숨을 쉰다. 아직도 살아 있다. 아직도 여기에 있다.
엄마의 눈이 천천히 천장을 봤다. 하얀 천장. 형광등.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천장.
그리고 그 다음, 눈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아들을 봤다.
도현이. 여전히 자고 있는 도현이. 목이 이상하게 구부러진 채로. 얼굴에 피로가 가득한 도현이.
엄마의 눈이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왜 이 침대에 누워 있는지. 아들이 왜 옆에 있는지. 왜 모니터에서 비프음이 나는지.
그리고 그 다음, 눈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세아를 봤다.
그 순간,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엄마와 세아의 눈이 만났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대화는 너무 단순한 단어였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확인이었다.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확인.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볼 수 있다는 확인.
우리가 아직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확인.
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밤새 쌓여 있던 눈물이었다. 아침부터,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눈물이었다.
이번엔 자신의 눈물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자신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
세아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울었던 그녀가, 이제 엄마 앞에서 울었다.
“엄마, 미안해.”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라는 증거처럼. 그것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엄마는 반응이 느렸다. 약물의 영향 때문일까? 아니면 몸이 너무 약해진 때문일까? 하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엄마의 손이 움직였다. 의료용 팔찌가 달린 손. 링거 주사가 꽂힌 손. 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손.
손가락이 펼쳐졌다.
마치 세아를 부르는 것처럼.
다시.
이번엔 세아가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 손은 비어 있었다.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찬. 거기에는 모든 말이 담겨 있었다. 모든 용서가 담겨 있었다. 모든 사랑이 담겨 있었다.
세아가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엄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 손을 끌어당겼다.
자신의 가슴으로.
자신의 심장으로.
—
## 4부: 심장의 박동
그 순간, 심장 모니터가 반응했다.
*비프, 비프, 비프.*
그 음향이 더 크게 들렸다.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아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그 비프음으로 축약되어 있는 것처럼. 마치 두 명의 사람이 한 명의 심장을 통해 같은 박동을 느끼는 것처럼.
세아는 엄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 가슴은 상상했던 것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의료용 옷 때문일까? 아니면 약물 때문일까? 하지만 차갑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생명이 있었다. 엄마의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이 계속 뛰고 있었다.
세아는 울었다.
자신의 눈물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몸으로.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울었다.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그 떨림은 소리가 나지 않는 울음이었다. 마치 자신의 울음을 삼키려고 하는 것처럼. 도현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엄마가 피로해지지 않도록.
하지만 엄마의 손이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그 손이 그녀의 모든 죄를 닦아내려고 하는 것처럼.
세아는 그 감촉을 느꼈다. 그것은 치유가 아니었다. 치유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정이었다. 엄마의 인정. 나는 너를 본다. 나는 너를 안다.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
시간이 더 흘렀다.
도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엄마의 팔을 찾아서.
마치 꿈속에서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도 또 다른 형태의 신호였다.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신호.
우리가 여전히 함께 있다는 신호.
우리가 여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신호.
엄마의 손이 아들의 손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손들이 만났다. 침대 위에서. 밤의 어둠 속에서. 형광등의 밝은 빛 아래에서.
—
## 5부: 존재
병실의 형광등은 계속 빛났다.
밤새.
아침까지.
그리고 그 빛 아래에서, 한 가족이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나누고 있었다.
말이 아닌 것으로.
만남으로.
접촉으로.
존재로.
세아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떨림이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책임이었다.
그것은 또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아직도. 여전히. 계속해서.
병원 시계는 계속 움직였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 강리우의 손은 여전히 부러져 있을 것이다. 그의 인생은 여전히 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이 병실에서는 무언가가 복구되고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완전함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함께 있다.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세아는 엄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이 죄책감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강리우의 얼굴을 마주할 것인가?
답은 없었다.
하지만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질문한다는 것은, 계속 살아간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도현이가 잠깐 눈을 떴다. 그의 눈은 세아와 엄마가 얽혀 있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밤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계속될 것이었다.
불완전하게.
진실이 없이.
하지만 함께.
—
## 에필로그: 새벽
새벽 5시.
병실의 창문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밤이 물러나고 아침이 들어온다. 자연의 리듬. 시간의 흐름. 계속됨.
세아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깨어 있었다. 엄마의 가슴에서 나오는 따뜻한 숨을 느끼면서. 그 숨이 계속되기를 기원하면서.
엄마는 깊은 수면에 빠져 있었다. 약물이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고통 없이. 꿈 속에서. 아마도 더 좋은 시간들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도현이는 깨어났다.
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목이 아파 보였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