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47화: 구원과 파괴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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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7화: 구원과 파괴의 경계

강리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완전히. 더 이상의 움직임도 떨림도 없이. 마치 누군가 그의 신경을 끊어버린 것처럼.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세아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남자가 자신을 해쳤던 모든 이유들이 실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그것들은 전부 그 자신을 향해 있었다는 것. 베를린에 남겨두고 온 그 친구에게 향해 있었다는 것.

“난 너를 구하려고 했어.”

강리우가 겨우 말했다. 목소리는 부서져 있었다. 깨진 악기 같은 목소리.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상자에서 나오는 그런 음성. 세아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강리우를 바라봤다. 진짜로. 지금까지 자신이 본 것은 가해자였다.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이었다. 법정에서 판사 앞에 서 있던 죄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카페의 형광등 아래에서 테이블에 기대어 앉아 있는 이 남자는 달랐다.

이 남자는 피해자였다. 자신의 손에 의해. 자신의 죄책감에 의해. 자신이 구할 수 없었던 사람에 의해.

“그게 구원이 아니라고 해도…”

강리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세아와 마주쳤다. 그리고 세아는 그 눈 안에서 자신의 얼굴을 봤다. 하지만 그것은 거울 같은 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투영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의 얼굴 위에 그려낸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 베를린의 그 친구의 모습. 또는 그 친구의 환영.

“…적어도 난 너를 놓고 싶지 않았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세아는 자신이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깨달았다. 법정에서는 듣지 못한 말. 변호사의 지시를 받은 답변이 아닌, 강리우의 진짜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세아가 느낀 것은 승리가 아니었다. 한국 드라마처럼 가해자의 고백에 화해가 오는 그런 감정도 아니었다. 세아가 느낀 것은 지쳐버린 슬픔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는 슬픔.

“알아.”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 두 음절이 가장 잔인한 말이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알아”라는 말은 “이해해”가 아니라 “인정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정은 용서가 아니었다.

강리우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마치 누군가 카페의 형광등을 조금씩 어둡게 하는 것처럼.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아는 그가 무엇을 말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미안해.” 또는 “사랑해.” 또는 “돌아와.” 그리고 그 말들은 모두 자신이 이미 들었던 말들이었다. 이미 거절했던 말들이었다. 이미 충분히 상처를 준 말들이었다.

세아는 일어났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카페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강리우를 다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를 다시 보면, 또 다시 같은 감정에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민. 죄책감. 그리고 자신이 그를 구할 수 있다는 착각. 엄마가 30년을 후회했던 것처럼, 자신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세아.”

강리우가 뒤에서 목소리를 낸 건 그때였다. 그것은 부르짖음이 아니었다. 단지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호출. 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아무도 그를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는 것. 그의 이름이 누군가에게 중요했던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자신을 떠나고 있다는 것.

세아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걸어갔다. 카페의 문을 밀고 나갔다. 서울의 밤공기가 자신을 감쌌다. 강남의 차가운 밤공기. 아무도 거닐지 않는 골목의 공기.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세아는 처음으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진짜로. 자신을 위한 숨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위한 숨.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 소리였다. 강남역 근처 편의점에서 세아는 그 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손가락이 화면을 켰다. 메시지는 하늘이로부터였다.

“야 미쳤나? 뭐 하는 거야? 도현이가 하루종일 너한테 전화했대. 엄마도. 나한테 너 어디냐고 물었는데 난 몰라. 지금 어디야?”

세아는 회신하지 않았다. 대신 그냥 화면을 켜진 채로 두었다. 편의점의 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마치 자신의 모든 색깔이 빠져나간 것처럼. 3시간 전에는 서울에 있었고, 지금도 서울에 있지만, 자신은 이미 어디론가 떠난 것 같은 기분. 몸은 강남역 근처의 편의점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그런 기분.

강리우와의 마지막 대화를 다시 생각했다. “알아”라고 말했을 때 그의 표정. 그리고 자신이 떠났을 때 뒤에서 들렸던 그의 목소리. 너무 작은 목소리였다. 마치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세아가 자신의 귀를 닫아버린 것이었다. 들리지 않는 척한 것이었다.

편의점의 냉동식품 코너 앞에서 세아는 한참을 서 있었다. 삼각김밥, 김밥, 도시락들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타올랐던 불꽃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전화 소리였다. 도현이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그냥 벨소리가 울리도록 두었다. 하나, 둘, 셋… 벨소리를 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처럼. 음, 나는 지금 여기에 있어. 문자를 받고, 전화를 받고, 숨을 쉬고 있어. 그런 식으로.

통화가 끊겼다. 그리고 3초 후 또 다시 울렸다. 도현이는 포기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한 번에 안 되면 또 한 번 건다. 한 번에 안 되면 또 한 번 건다. 자신처럼. 자신도 강리우에게 그렇게 했다. 한 번에 안 되면 또 한 번. 계속 돌아가고, 계속 묻고, 계속 붙잡으려고 했다.

이번에는 받기로 했다.

“누나!”

도현이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그것은 놀람이자 안도였다. 얼마나 많이 전화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가 그 한 마디 안에 담겨 있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가장 짧은 음절로.

“어디야? 지금 뭐 해? 왜 안 받았어? 엄마가 너 때문에 밤새 못 자고 있어. 내가 엄마 진정시키려고 했는데 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누나, 너 뭐야? 뭐 하는 거야?”

도현이의 말이 쏟아졌다. 세아는 그것을 들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엄마를 혼자 두고, 도현이에게 이런 짐을 지우고, 하늘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리고 강리우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웠다.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가족까지.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미안하다고? 누나, 이게 뭐 하는 말이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엄마가 뭘 잘못했는데? 왜 갑자기 사라지고, 왜 안 받고, 왜 미안하다고만 해?”

도현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화기를 통해서도 그의 감정이 전달되었다. 분노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그리고 버려졌다는 감정도 있었다.

“너 강리우 때문이야? 그 남자 때문에 또 사라진 거야? 누나, 그 남자는 나쁜 거야. 법정에서 판사가 말했잖아. 그 남자는 나쁜 사람이라고. 그리고 넌 왜 자꾸 그 남자한테 가? 왜 자꾸 돌아가?”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현이의 질문이 자신의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왜 자꾸 돌아가? 왜 자꾸 용서해주려고 해? 왜 자꾸 구하려고 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자신은 누구를 구하고 있는 건가? 강리우인가, 아니면 자신인가?

“누나, 제발. 돌아와. 엄마 옆으로 와. 나 옆으로 와. 그 남자 말고.”

도현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분노가 사라졌다. 남은 것은 간청이었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간청. 자신의 언니를 되돌려달라는 간청.

“가고 있어.”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자신은 지금 돌아가고 있었다. 카페에서 떠났고, 편의점에 들어갔고, 이제 택시를 부르려고 한다. 강남역 방향의 택시를. 그리고 그 택시를 타고 홍대로 간다. 하늘이에게 간다. 그 다음에는 엄마에게 간다. 그리고 도현이에게 간다.

“진짜?”

도현이가 물었다.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는 목소리.

“진짜.”

세아가 대답했다.


택시는 한강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밤 11시 반, 서울의 밤. 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강남의 야경은 너무 밝았다. 마치 낮과 밤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밝은 곳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어둠을 숨기고 있었다. 강리우처럼. 자신처럼. 모두가 밝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자신의 어둠을 감추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심야 음악 프로그램. 누군가의 보이스가 흘러나왔다. 여성 보컬. 슬픈 멜로디. 세아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마치 강리우처럼. 자신도 이제 그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떨림을. 같은 후유증을.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강리우의 손가락은 피아노를 치려다 멈춘 손가락이었다. 자신의 손가락은 아직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손가락이었다. 아직도 누군가를 붙잡을 수 있는 손가락이었다. 아직도 선택할 수 있는 손가락이었다.

자신은 강리우가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곡은요, 비교적 신인 아티스트가 부르고 있는데요, 작곡가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그 노래를 만듭니다. 두 개의 음성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이지요.”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노래들을 생각했다. 강리우와 함께 만들었던 그 곡들. 자신이 쓴 곡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던 그 곡들. 여전히 누군가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그 곡들. 그리고 그 곡들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 곡들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중요했을까?

택시가 홍대로 들어섰다. 밤이었지만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클럽의 음악 소리가 거리로 흘러나왔다. 술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 누군가의 기타 소리가 있었다. 클럽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

세아는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이 뭔지 깨달았다. 강리우가 아니라, 이 거리였다. 이 음악이었다. 자신의 음악이었다. 자신의 노래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고,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고,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순간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살아야 했다. 자신을 위해 노래해야 했다. 타인을 위해 타올랐던 불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타는 불꽃.

택시가 하늘이의 타투샵 근처에 멈췄다. 밤이었지만 가게의 불은 켜져 있었다. 하늘이는 항상 밤샘을 했다. 손님들이 저녁 시간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택시에서 내렸다. 돈을 내밀었다. 운전기사가 거스름돈을 줬다. 세아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자신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작은 선택이지만, 자신의 선택이었다.

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하늘이는 한 손님의 팔에 타투를 새기고 있었다. 성냥 모양의 타투.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하늘이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하늘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세아를 봤다.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한 번의 시선 교환. 그것으로 충분했다.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와. 넌 항상 미안해만 해.”

하늘이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찰이었다. 그리고 그 관찰 속에는 사랑이 있었다.

“이제 아닐 거야.”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강리우의 구원 대상이 아니라, 도현이의 누나도 아니라, 엄마의 딸도 아니라, 하늘이의 친구도 아니라. 그냥 나세아. 불타는 소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타올랐던 소녀.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위해 타는 소녀.

타투샵의 불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에서 세아는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작은 웃음. 하지만 진짜 웃음.

# 이름 없는 것들의 노래

## 1부: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그 노래를 만듭니다. 두 개의 음성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이지요.”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세아는 택시의 뒷좌석에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야경이 흘러가고 있었다. 빌딩들의 불빛이 마치 별처럼 떠 있었다. 그리고 그 별들 사이에서 세아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음악이라는 건 결국 그거예요. 혼자가 아닌 거죠.”

진행자는 계속 말했다. 마치 세아에게만 말하는 것처럼. 세아는 이어폰을 빼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뭔가 이 목소리가 자신에게 필요했다. 이 무심한 위로가.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펼쳤다. 그 손가락들로 만들어진 곡들을 생각했다. 강리우와 함께 만들었던 그 곡들—밤새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만들었던 멜로디들. 강리우가 음악을 만들 때의 집중력 있는 얼굴. 그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서 완성했던 곡들.

하지만 그 곡들 중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몇 개나 될까?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러면 더 잘 떠올랐다. 음악 차트에서 자신이 만들었던 곡들을 보는 것. 그런데 작곡자 이름에는 강리우의 이름만 있고,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자신은 그것을 원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강리우가 그렇게 하길 원했으니까. 아니, 강리우가 자신을 설득했으니까.

“너는 너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그것으로 충분해.”

강리우가 자신의 뺨을 만지며 말했었다. 그때 세아는 그 말을 믿었다. 강리우의 손길은 따뜻했고, 그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아는 그 순간, 자신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문이 생겼다.

내가 정말 행운인가? 아니면 내가 자신을 잃어버린 건가?

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가 솟아올랐다.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작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리우를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왜 자신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버렸을까? 왜 자신의 이름을 버렸을까?

“하지만 그것이 중요했을까?”

세아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택시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강남에서 홍대로 향하는 길. 세아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 길로 자신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 2부: 거리의 음악

택시가 홍대로 들어섰을 때, 세아는 창밖을 내다봤다. 밤이었지만 거리는 여전히 생동감 넘쳐 있었다. 거리의 곳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클럽의 베이스음이 지면을 울리고 있었다. 그 위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술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 웃음소리, 때로는 울음소리까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 누군가의 기타 소리가 있었다.

세아는 귀를 쫑긋 세웠다. 클럽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이었다. 어쩌면 누군가가 직접 만든 곡일지도 모른다. 아니,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곡일 것이다. 세아는 그것을 상상해봤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뮤지션.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 그리고 그 사람의 가슴 위에 새겨져 있을 자신의 이름.

“오늘 이 곡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누군가.

세아는 그것이 얼마나 간단하지만 또한 얼마나 복잡한 말인지를 이해했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드러냄이 바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택시 창밖에서 기타 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마치 세아의 심장 박동처럼. 그 소리는 세아의 몸을 타고 흘렀다. 자신의 목덜미에서부터 척추를 따라 내려가며 흘렀다. 그리고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이 뭔지.

그것은 강리우가 아니었다. 아니, 강리우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은 이 거리였다. 이 음악이었다. 이 밤이었다. 자신의 음악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고,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고,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순간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살아야 했다.

세아는 그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을 위해 노래해야 했다. 타인을 위해 타올랐던 불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타는 불꽃이 필요했다. 그 불꽃 없이는 자신의 음악도, 자신의 노래도, 자신의 존재도 없을 것이었다.

## 3부: 타투샵의 불빛

택시가 홍대의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여기는 조용한 곳이었다. 거리의 음악이 여기까지 도달하지는 않았다. 대신 작은 가게들의 불빛이 어두운 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카페, 술집, 그리고…

타투샵.

세아는 창밖에서 가게의 간판을 봤다. 그 간판 옆에는 작은 불빛이 켜져 있었다. 밤이었지만 가게의 불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세아의 심장이 철렁했다.

하늘이다.

운전기사가 “여기입니다”라고 말했다. 세아는 지갑을 열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선택일까? 하늘이가 자신을 받아들일까?

세아는 돈을 내밀었다. 운전기사가 거스름돈을 세어서 건넸다. 세아의 손가락이 그것을 받으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해졌다.

“괜찮습니다.”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조용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분명했다.

운전기사가 놀라 세아를 봤다. “정말요?”

“네.”

세아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자신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작은 선택이지만,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택.

세아는 택시를 내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자신의 얼굴을 스쳤다. 그것은 상큼했다. 마치 자신이 어떤 것에서 깨어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세아는 타투샵의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밀기 전에, 자신의 가슴을 한 번 어루만졌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가게 안은 따뜻했다. 벽에는 여러 개의 타투 디자인 샘플들이 붙어 있었다. 거울, 새, 꽃, 그리고… 성냥. 세아의 눈이 그것에 멈췄다.

성냥 모양의 타투.

하늘이는 한 손님의 팔에 바늘을 대고 있었다. 검은색 잉크가 그 사람의 피부에 침투하고 있었다. 마치 불을 그리는 것처럼. 성냥의 머리 부분이 빨간색으로 칠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자신의 이름—세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하늘이가 손님에게 뭔가 말했고, 손님이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하늘이가 고개를 들었다. 타투샵의 문 쪽으로. 그리고 세아를 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한 번의 시선 교환.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아는 하늘이의 눈을 읽었다. 거기에는 분노도, 실망도, 원망도 없었다. 단지 깊은 이해와 깊은 사랑만 있었다.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의 눈물이었다.

“와. 넌 항상 미안해만 해.”

하늘이가 손님에게 “잠깐만요”라고 말한 후, 바늘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세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늘이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냉소적인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찰이었다. 그리고 그 관찰 속에는 사랑이 있었다.

“이제 아닐 거야.”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더 단호했다.

하늘이는 세아를 한 번 더 바라봤다. 마치 자신의 친구를 처음 보는 것처럼. 세아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이가 자신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 4부: 불타는 소녀

세아는 천천히 타투샵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게의 불빛이 자신의 얼굴을 밝혔다. 세아는 거울을 봤다. 그 거울 속의 자신을 처음 직시했다.

얼굴은 창백했다.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이 있었다. 입술은 약간 떨려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그것은 단단했다. 마치 누군가가 불을 켠 것처럼.

“넌 뭐 하고 있었어?”

하늘이가 물었다. 손님을 위해 타투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생각하고 있었어.”

세아가 대답했다.

“뭐를?”

“나는 누구인지.”

세아는 자신의 말을 천천히 이었다. “그리고 내가 뭘 원하는지.”

하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강리우의 뮤즈가 아니야. 도현이의 누나도 아니야. 엄마의 딸도 아니야. 너의 친구도… 아니, 너의 친구는 맞는데, 너의 연장이 아니야.”

세아는 자신의 손을 펼쳤다. 그 손가락들을 봤다. 그 손가락들로 만들어진 수천 개의 음표들을 생각했다.

“그냥 나 세아야. 불타는 소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타올랐던 소녀.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위해 타는 소녀.”

세아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하늘이의 손님도 그 말을 들었다. 손님은 타투를 받으면서도 세아를 흘낏 봤다.

“좋네. 진짜 좋아.”

하늘이가 말했다. 바늘을 손님의 팔 위에 다시 올려놓으며.

“근데 이건 몇 달 전부터 이미 알았어. 너만 모르고 있었어.”

세아는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작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웃음이었다. 자신의 영혼에서 나오는 웃음.

“나 타투 할 거야.”

세아가 갑자기 말했다.

“뭐?”

하늘이가 깜짝 놀랐다.

“성냥 타투. 너처럼.”

세아가 자신의 팔을 펼쳤다. 하늘이가 손님을 끝낸 후, 세아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세아는 그곳에 앉았다. 가게의 불빛이 자신의 팔을 밝혔다.

“근데 이름은?”

하늘이가 물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강리우의 이름을 쓸까? 아니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세아. 그냥 세아.”

세아가 대답했다.

하늘이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바늘을 들었다. 검은색 잉크가 준비되었다. 하늘이의 손이 세아의 팔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음악처럼. 마치 자신의 영혼이 춤을 추는 것처럼.

“아파?”

하늘이가 물었다.

“네.”

세아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통증은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증거였다.

## 5부: 웃음의 의미

타투 바늘이 세아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세아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강리우와 함께한 시간들. 그것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강리우의 것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 위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 자신은 자신의 음악을 만들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거의 다 됐어.”

하늘이가 말했다. 바늘의 속도가 느려졌다. 마지막 터치였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그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자신의 곡을 부르고 있는 자신. 마이크 앞에 서 있는 자신.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

“완성.”

하늘이가 말했다.

세아는 눈을 떴다. 거울을 봤다. 자신의 팔에는 이제 성냥이 있었다. 빨간색 머리를 가진 성냥.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자신의 이름—세아.

타투샵의 불빛이 그 이름을 밝혔다.

그리고 세아는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작은 웃음. 하지만 진짜 웃음. 자신의 영혼에서 나오는 웃음. 그 웃음이 가게 안에 울렸다. 하늘이가 그 웃음을 들었다. 그리고 함께 웃었다.

타투샵의 불빛은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성냥처럼. 그리고 세아는 그 불빛 아래에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강리우의 구원 대상이 아니라.

도현이의 누나도 아니라.

엄마의 딸도 아니라.

하늘이의 친구도 아니라.

그냥 나.

나 세아.

불타는 소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타올랐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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