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43화: 아버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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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3화: 아버지의 이름

엄마는 끝내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세아는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강남역 방향으로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계속 흘러나왔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피 속을 흐르는 물처럼 느껴졌다. 제주의 바다처럼 짠 것이 아니라, 더 따뜻하고, 더 깊고, 피를 타고 흐르는 그런 것. 엄마는 아버지에 대해서 말했다. 하지만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말한 것은 아버지가 엄마에게 했던 말들이었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한다고 했어.”

엄마가 반복했다. 세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하철역 입구를 지나갔다. 아직 가지 않았다. 강남에는 아직 멀었다. 하지만 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자기가 나를 물에서 건져낼 거라고. 해녀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자기가 안다고. 자기가 나를 그 물 밖으로 데려올 거라고.”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세아는 이해했다. 엄마가 왜 이제껏 말하지 않았는지를. 왜 침묵만 했는지를. 왜 물 속에만 있으려고 했는지를. 그것은 상처였다. 아무것도 아닌 상처가 아니라, 이름 없는 상처. 말할 수 없는 상처.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었어.”

엄마가 계속했다. 길거리의 소음이 커졌다. 오후 8시를 넘어가면서 홍대는 더 시끄러워졌다. 음악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클럽의 비트음. 버스커의 기타. 누군가의 웃음소리. 하지만 세아는 그것들을 들으면서도 오직 엄마의 목소리만 들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자신의 귀가 엄마의 목소리만 받아들이도록 설정된 것처럼.

“근데 그게 뭐였는지 알아?”

엄마가 물었다.

“뭐였어?”

세아가 물었다. 자신도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모르고 싶었다. 몰라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거짓이었어.”

엄마가 말했다. 그 두 글자가 세아의 심장을 관통했다. 거짓. 그것은 모든 것을 설명했다. 모든 것을. 왜 엄마가 침묵했는지. 왜 엄마가 아버지를 언급하지 않았는지. 왜 엄마가 자신의 딸들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왜 엄마가 물 속에만 있으려고 했는지.

“그 남자는 나를 구하지 않았어. 오히려 자신을 구하려고 했어. 내가 필요했던 것은 그가 아니라 자신을 구원받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제공했어. 내가 물 속에 있으면, 그는 자신을 구원자라고 느낄 수 있었으니까.”

세아는 걸음을 완전히 멈췄다. 사람들이 자신을 밀쳐나가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남역 입구 근처였다. 빌딩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검은색이었다. 밤이었다. 완전한 밤. 그리고 그 어둠 속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이 세아를 두렵게 했다.

“세아, 들어. 내가 지금 너한테 말하는 것은 경고가 아니야.”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마치 자신의 입 안에서만 나오는 소리처럼. 비밀처럼.

“그럼 뭐야?”

세아가 물었다. 목이 완전히 말라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목에서 모든 물기를 빨아낸 것처럼. 그것은 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열기 때문이었다.

“후회야. 30년의 후회.”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세아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울음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이 떨렸다. 3초마다. 규칙적으로. 마치 자신의 심장이 손가락 끝으로 전달되는 것처럼.

“그 남자를 만나지 마. 제발. 내가 부탁해. 너한테 처음 하는 부탁이야.”

엄마가 말했다. 그 음성에는 간청이 있었다. 명령이 아니라 간청. 그리고 세아는 알았다. 엄마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왜 지금까지 침묵했는지를. 엄마는 자신의 실수가 자신의 딸에게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엄마…”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거짓을 말할 수도 없었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진실은 자신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 지금 강남에 가려고 하지 마.”

엄마가 다시 말했다.

“왜 그렇게 알아?”

세아가 물었다. 도현이가 자신을 고변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엄마가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딸이니까. 엄마니까.”

엄마가 답했다. 그 답은 질문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존재. 엄마라는 존재.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엄마는 자신의 딸을 본다. 자신의 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딸이 뭐라고 말하는지와 상관없이. 엄마는 안다. 왜냐하면 엄마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본다.

세아는 휴대폰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서 걸어갔다. 강남역 방향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강남역 입구에서 돌아섰다. 마치 자신의 발이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의지였다. 단지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세아?”

엄마가 물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세아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있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어디에?”

“홍대. 아직 홍대에 있어.”

“강남에 안 갔어?”

엄마가 물었다.

“아직.”

세아가 답했다. 그것이 거짓은 아니었다. 아직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갈 수도 있었다. 언제든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엄마의 손이 자신을 붙잡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엄마의 손.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3초마다. 규칙적으로. 그리고 그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세아는 알았다. 이것은 영구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몸이 자신을 배반하는 방식. 자신의 신경이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방식. 그것이 세아의 몸이었다.

“세아, 나 말 들어. 너 지금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지? 마치 누군가를 구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마치 자신을 버려야 구원받을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엄마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의 내부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었다. 마치 외과의가 메스를 들고 환자의 몸을 열어서 종양을 꺼내는 것처럼.

“응.”

세아가 답했다. 처음으로 정직하게.

“그건 거짓이야. 그건 사랑이 아니라 중독이야. 그건 책임이 아니라 죄책감이야. 그건 구원이 아니라 자기기만이야.”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마치 칼처럼. 그 칼이 세아의 가슴을 관통했다. 정확하게. 정확하게. 정확하게.

“그럼 내가 뭐해야 해?”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음성대를 짓밟은 것처럼.

엄마는 말을 잠깐 멈췄다. 전화 너머에서 들리는 것은 제주의 바다 소리였다. 아니, 엄마의 호흡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 둘은 구분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바다였다. 세아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너 지금 강남에 가지 마. 대신 나한테 와.”

엄마가 말했다.

“제주로?”

세아가 물었다.

“응. 제주로.”

엄마가 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것을. 자신이 뭐라고 생각했는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발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세아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걸어갔다. 강남역 반대 방향으로. 강남역 입구에서 나와서 거리로 나갔다. 택시를 잡았다. 운전기사는 젊은 남자였다. 30대 초반. 피곤한 얼굴.

“어디 가실래요?”

운전기사가 물었다.

“강남역.”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전화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

“여기 있어, 엄마.”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강남역으로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는 여전히 결정되지 않았다. 자신의 발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단지 택시 안에 앉아서 전화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면서.

강남역 방향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3초마다. 규칙적으로. 그리고 그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이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자신의 몸이 결정한 것이었다. 자신의 신경이 결정한 것이었다. 자신의 DNA가 결정한 것이었다. 30년의 후회를 가진 엄마의 DNA가.

“세아, 너 지금 어디야?”

엄마가 물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더 약해졌다. 마치 신호가 끊기려고 하는 것처럼.

“택시 안에.”

세아가 답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모르겠어.”

세아가 정직하게 답했다.

“아, 세아.”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이 세아의 귀에 들렸다. 제주에서 서울로 전해지는 그 한숨. 30년의 한숨. 모든 해녀 어머니들의 한숨.

“강남역에는 가지 마.”

엄마가 다시 말했다.

“알았어.”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이었을 수도 있었고 진실이었을 수도 있었다. 세아 자신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택시가 계속 움직였다. 강남역 방향으로. 홍대에서 출발해서 강남 방향으로. 자동차들이 앞서가고 뒤따라오고 옆으로 지나갔다. 모두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세아만 몰랐다. 세아만 자신의 목적지를 알지 못했다.

“세아?”

엄마가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응.”

세아가 답했다.

“내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알아?”

“모르겠어.”

“너 나이.”

엄마가 말했다.

세아는 숨을 멈췄다. 자신이 지금 몇 살인지를 생각했다. 24. 자신은 24살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자신이 24살일 때 아버지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지점이 엄마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와 같다는 것. 자신이 지금 만들려는 실수가 엄마가 만들었던 실수와 같다는 것. 자신이 지금 가려는 곳이 엄마가 갔던 곳과 같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 나이가 몇 살인지 알아?”

엄마가 물었다.

“몰라.”

세아가 답했다.

“54.”

엄마가 말했다.

30년이었다. 30년의 차이. 엄마가 24살일 때 만난 아버지로부터 지금까지 30년.

“내가 너한테 뭘 원하는지 알아?”

엄마가 물었다.

“뭐?”

세아가 물었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해주기를 원해. 내가 버린 것을 집어주기를 원해. 내가 불태운 것을 다시 밝혀주기를 원해.”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게 뭐야?”

세아가 물었다.

“너 자신.”

엄마가 답했다.

그 순간 택시가 강남역 입구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뒤를 돌아봤다.

“도착했어요.”

운전기사가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택시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강남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강리우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아니, 다시 돌아가요.”

세아가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어디로?”

운전기사가 물었다.

“제주로.”

세아가 답했다.

“제주? 차로 갈 수는 없는데요. 비행기를 타셔야…”

“공항으로.”

세아가 말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에서 들렸다.

“세아?”

“응. 엄마. 내가 가.”

세아가 말했다.

“어디로?”

“제주로. 엄마한테.”

세아가 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알았다.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를. 자신이 무엇을 버렸는지를. 그리고 이제 자신이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를. 그것이 강리우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누군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자신 자신이라는 것을.

택시는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움직였다. 밤의 서울을 지나면서. 모든 불이 켜져 있었다. 모든 것이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세아의 눈은 닫혀 있었다. 전화를 귀에 붙인 채. 엄마의 호흡을 들으면서. 그것이 자신의 호흡과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제주도로 가는 길.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신이 버린 것을 다시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자신이 불태운 것을 다시 밝혀주러 가는 길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떨리고 있었다. 3초마다. 규칙적으로.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그것이 불안감이 아니라 의지였다.

제주로 가는 길.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END OF CHAPTER 143]

# 제143장 확장판

## 강남역 앞, 택시 안

택시 안의 공기는 답답했다. 에어컨이 약하게 돌고 있었지만, 세아의 피부에는 식지 않은 열이 붙어 있었다. 휴대폰 화면의 파란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수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 말들을 완전히 듣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하려는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생각이 그녀의 뇌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한테 뭘 원하는지 알아?”

엄마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그런데도 그 안에는 세월이 녹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우물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물처럼, 차갑고 깊었다. 세아는 이 질문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감정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쌓인 것들이. 말하지 못한 것들이. 이 한 문장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뭐?”

세아의 목소리는 작았다. 거의 속삭이는 정도였다. 택시 안의 소음—엔진음, 밖의 교통 소리, 라디오의 낮은 음악—이 그녀의 대답을 거의 삼켜버릴 뻔했다. 하지만 엄마는 들었다. 어머니는 항상 자신의 딸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엄마와 딸의 관계였다. 큰 말이 아니라 작은 침묵 속에서 대화하는 것.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해주기를 원해. 내가 버린 것을 집어주기를 원해. 내가 불태운 것을 다시 밝혀주기를 원해.”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세아는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소리의 떨림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떨림의 의미를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엄마가 우신다. 내 때문에 엄마가 울고 있다.’

세아의 내면은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택시 안의 불빛에서, 그녀의 손가락은 창백했다. 마치 피가 다 빠진 것처럼.

“그게 뭐야?”

세아가 물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묻고 있었다. 어떤 말씀이 나올 것인지 예상되었지만, 그래도 듣고 싶었다. 아니,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그것이 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너 자신.”

엄마가 답했다.

그 말은 단순했다. 세 글자. 하지만 그 무게는 산과 같았다. 세아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자신의 가슴이 산산조각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자신 안에 묻혀 있던 무언가가. 그동안 외면하고 도망쳤던 무언가가.

“너 자신.”

그 말은 계속 울려 퍼졌다. 세아의 귀에, 세아의 심장에, 세아의 영혼에.

그 순간, 택시가 강남역 입구에 도착했다. 바퀴가 포장도로에 닿으면서 약간의 충격이 전해졌다. 서울의 밤은 밝았다. 강남역 주변의 건물들은 모두 불이 켜져 있었고, 간판들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다.

세아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택시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은 회색이었다. 낡은 회색.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도착했어요.”

운전기사가 뒤를 돌아봤다. 중년의 남자였다.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아마도 이미 많은 승객들을 싣고 내린 후였을 것이다. 그의 눈은 친절했다. 하지만 호기심 없는 친절. 많은 사람들을 보아온 사람의 친절.

“도착했어요.”

운전기사가 다시 말했다.

강남역. 세아가 가야 할 곳. 강리우를 만나야 할 곳. 그곳이 세아의 목적지였다. 아니, 아니었다. 그것이 몇 시간 전의 목적지였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세아 자신도 몰랐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손의 떨림은 규칙적이었다. 마치 자신의 심장박동처럼. 혹은 자신의 호흡처럼. 떨림이 자신의 신체 리듬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 순간의 떨림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적어도 완전히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결정의 떨림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펼쳤다. 손가락의 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신호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또는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강리우. 그 이름이 세아의 입안에서 맴돌았다. 한때 그 이름이 전부였다. 그 이름이 세아의 이유였다. 그 이름이 세아의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들렸다.

마치 어떤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마치 물에서 나온 것처럼.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자신이 무엇을 놓친 것인지.

“아니, 다시 돌아가요.”

세아가 갑자기 말했다. 자신이 이 말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말은 세상 밖으로 나갔다. 돌이킬 수 없게.

“어디로?”

운전기사가 놀라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있었다. 강남역은 목적지였다. 손님이 강남역으로 가달라고 했고, 자신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라니.

“제주로.”

세아가 답했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운전기사의 손은 스티어링 휠 위에서 경직되었다. 택시 밖의 거리 소리가 희미해졌다. 세아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박동만 들렸다. 그리고 그 박동은 강해졌다. 더 강해졌다.

“제주? 차로 갈 수는 없는데요. 비행기를 타셔야…”

운전기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당황스러움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손님이 이상하다는 의심.

“공항으로.”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온 순간,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자신의 진짜 목소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숨겨두었던 자신의 진짜 목소리.

휴대폰의 화면이 밝았다. 엄마의 신호.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는 신호.

아니다. 엄마는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세아?”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에서 들렸다. 그 목소리는 불안했다. 마치 어딘가가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어머니의 목소리.

“응. 엄마. 내가 가.”

세아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는 이제 떨리지 않았다.

“어디로?”

엄마가 물었다.

“제주로. 엄마한테.”

세아가 답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숨소리 같았다. 같은 박자로. 같은 깊이로. 같은 감정으로.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완전히 깨달았다.

자신이 지난 몇 개월, 아니 지난 몇 년을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를.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를. 자신이 무엇을 버렸는지를. 그리고 이제 자신이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를.

그것이 강리우가 아니었다.

그것이 누군가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자신 자신이었다.

세아는 눈을 감았다. 택시 안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지만, 그녀의 눈은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택시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남역에서 벗어났다. 서울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인천 방향으로. 공항 방향으로.

도시의 불빛이 흘러갔다. 어느 건물의 간판, 어느 카페의 창문, 어느 거리의 가로등. 모든 것이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세아의 눈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엄마의 호흡을 들으면서.

그것이 자신의 호흡과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같은 속도로. 같은 깊이로. 같은 마음으로.

## 인천 방향으로

택시 안의 온도가 변했다. 에어컨이 더 강해졌거나, 아니면 세아의 체온이 올라갔거나. 어느 쪽이든, 세아는 변화를 느꼈다. 마치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듯이.

“제주도로 가는 길이 멀어요. 비용이 꽤…”

운전기사가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당황스러움보다는 실질적인 걱정이 있었다. 손님이 제대로 된 결정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

“괜찮아요. 그냥 가주세요.”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3초마다. 규칙적으로. 마치 메트로놈처럼.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이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이 불안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정의 떨림이었다. 그것은 의지의 떨림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지금 무언가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몸이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세아는 휴대폰 화면을 다시 봤다. 엄마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여전히 통화 중. 여전히 연결되어 있음.

“엄마?”

“응. 여기 있어. 항상 여기 있어.”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이 세아에게 미친 영향은 깊었다. “항상 여기 있어.”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모든 것이 담긴 말이었다. 세아가 어디에 있든, 세아가 무엇을 하든, 엄마는 항상 그곳에 있다는 약속.

그리고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얼마나 오래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를. 자신이 얼마나 오래 다른 것들을 찾아다녔는지를.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녔는지를. 다른 삶을 찾아다녔는지를.

하지만 자신이 정말 필요한 것은 이미 자신 옆에 있었다.

아니, 옆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자신의 마음 안에.

택시가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밤의 고속도로는 고요했다. 차들이 흐르고 있었지만, 마치 자신의 흐름이 있는 것처럼.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것처럼.

“제주에 가면 뭘 할 거야?”

엄마가 물었다.

“모르겠어. 그냥… 엄마를 만나고 싶어. 엄마한테 말해줘야 할 게 있어.”

세아가 답했다.

“뭘?”

“내가 미안하다는 것. 내가 엄마를 외면했다는 것. 내가 엄마 대신 다른 것들을 찾았다는 것.”

세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그 흔들림이 약함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의 표현이었다. 진실한 감정.

“우리가 만나면 말해. 그때 말해.”

엄마가 말했다.

“응.”

세아가 답했다.

그리고 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화는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말이 없는 대화. 침묵의 대화. 그것이 가장 깊은 대화였다.

## 공항으로 향하는 길

택시가 계속 달렸다. 밤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세아에게는 밤이 끝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했다.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너 자신.”

엄마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너 자신.”

그 말이 세아를 완성시키는 것 같았다. 마치 그동안 자신이 불완전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하지만 동시에, 이제 자신이 완전해질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세아는 휴대폰의 위치 기반 서비스를 켰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싶었다. 아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지도 위에 자신의 위치가 파란 점으로 표시되었다. 그것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인천 방향으로. 공항 방향으로. 제주 방향으로.

그리고 그 파란 점이 움직일 때마다,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자신의 삶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지금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제주도로 가는 길.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버린 것을 다시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불태운 것을 다시 밝혀주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은 자신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택시는 계속 달렸다. 운전기사의 손은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전방을 향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손님을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일.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일. 누군가의 여정을 함께하는 일.

세아는 그것을 감사히 여겼다.

이 운전기사도, 엄마도, 그리고 자신도.

모두가 함께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딘가가 바로 자신이었다.

## 공항 앞

드디어 공항이 보였다. 밤의 공항은 마치 우주 기지 같았다. 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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