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0화: 구원의 대가
세아는 국수 가게를 나왔을 때 하늘을 볼 수 없었다. 홍대 골목의 낮은 건물들이 하늘을 가두고 있었고, 그 사이로 보이는 것은 회색뿐이었다. 오후 6시 42분. 도현이는 학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세아는 따라가지 않았다. 그 대신 골목을 헤맸다. 방향 없이. 목적지 없이. 마치 자신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처럼.
엄마의 말이 자신의 뼈 속에 박혀 있었다. “누나가 지금 누군가를 구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누나 자신을 구하지 못해서 누군가를 구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그 말은 정확했다. 너무나 정확해서 피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순간에 들리는 목소리처럼. 세아는 자신이 강리우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의 변호사비를 내고, 그의 병실을 방문하고, 그의 떨리는 손을 잡고… 그 모든 것이 그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세아는 깨달았다. 자신이 한 모든 것이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강리우가 없다면 자신은 뭔가? 누구인가? 그 질문이 세아를 무너뜨렸다. 왜냐하면 그것의 대답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세아는 아무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남은 것은 불타는 것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서.
골목의 벽에는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다. 밴드의 포스터들. 공연의 광고들. 누군가의 전화번호. 누군가의 꿈. 그 모든 것들이 벽에 쌓여 있었고, 비가 오면 벗겨지고, 햇빛에 타들어갔다. 마치 세아의 꿈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강리우였다. 3시간 만에 처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어제 저녁 이후로 처음이었다. 세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면의 진동만 느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후 침묵.
문자가 왔다.
“세아. 너 지금 뭐 해?”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마치 강리우가 이미 세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그 톤이 그랬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발걸음을 더 빨리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홍대 입구 역 방향이었다. 지하철 표지판이 보였다. 녹색. 하얀 글씨. 번호 2. 그것이 마치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아는 계단을 내려갔다. 음악이 들렸다. 지하철역의 그 음악. 누군가 누군가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 젊은 남자. 얼굴이 검게 탄 그 남자. 관객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3-4명.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그 남자의 음악은 좋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하지만 그것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직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음악으로 무언가를 구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연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도,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라.
세아는 가만히 앉았다. 벤치에. 그 음악을 들으면서. 3곡이 지나갔다. 그 사이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왔다.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서울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지하철역의 이 작은 공간에서는, 이 음악이 있는 한, 시간이 조금은 느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강리우의 문자가 또 왔다.
“세아. 제발 답장만 해. 너한테 뭔가 말해야 할 게 있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일 수 있는가? 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강리우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자신이 강리우를 위해서 뭔가를 했으니, 이제 강리우가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해줄 차례라는 것. 그것이 거래처럼 느껴져서 세아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왔다. 다시 거리로.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이 시간에 서울은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밤으로. 어둠으로. 그리고 세아는 그 어둠이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휴대폰이 또 울렸다. 이번에는 문자가 아니라 전화였다. 강리우였다. 세아는 받았다.
“여기 어디야?”
강리우의 첫 마디였다. 질문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정직하게.
“어딘가로 나가 있지? 지금 어딜 나가 있는 거야?”
“강리우.”
세아가 말했다. “난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전화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길었다. 마치 강리우가 자신이 뭘 할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너한테 해준 게 뭐라고 생각해?”
강리우가 천천히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무언가 깨진 것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유리잔을 집어던진 후의 그 음성처럼.
“변호사비. 병원비. 그 모든 것.”
세아가 대답했다.
“그뿐이야? 그뿐이라고 생각해?”
“뭘 더 원하는데?”
세아가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가는 순간, 자신이 뭘 물어본 것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뭘 더 원하는데”가 아니라, “뭘 더 받아야 하는데”라는 뜻이었다.
“내가 너를 구했어. 넌 혼자 할 수 없었을 거야. 판결. 변호사. 그 모든 것. 내가 없었으면 넌 어떻게 했을 거 같아?”
강리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넌 감사해야 해. 내가 한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해.”
세아는 전화기를 내려놨다. 귀에서. 하지만 끊지는 않았다. 강리우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작아지긴 했지만.
“세아? 세아?! 너 뭐 하는 거야? 나 말 들어!”
그 음성은 점점 높아졌다. 절망적으로. 세아는 그것을 들으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강리우를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전화기를 다시 귀에 대면서.
“뭐가 미안해?”
“내가 너를 구할 수 없다는 게.”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너를 구할 수 없고, 그래서 넌 계속 나를 구하려고 하고, 그리고 난 그것에 의존해 있었어. 근데 그건 우리 둘 다를 파괴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더 이상 너한테 기대고 싶지 않아.”
세아가 말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를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영혼에서 무언가를 떼어내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해야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타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리우도 함께 타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아.”
강리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아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목에 손을 올려놓은 것처럼.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어?”
세아가 물었다.
“판결이 뭐가 중요해?”
“그 후에 나랑 헤어지자는 뜻이야.”
세아가 말했다. 정직하게. “판결이 나오고, 너의 형벌이 정해지고, 그 후에 우리는 끝내자는 뜻이야.”
전화 너머로 또 침묵이 들렸다. 이번엔 다른 침묵이었다. 마치 누군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후의 그 공허함.
“넌 날 버렸어.”
강리우가 말했다. 아주 조용하게.
“아니야.”
세아가 대답했다. “난 날 찾은 거야.”
전화가 끊겼다. 강리우가 끊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강리우가 전화기를 떨어뜨린 것일지도 모른다.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침묵만 들렸다.
홍대 거리로 돌아왔을 때, 세아의 손이 떨렸다. 도현이가 예언했던 대로. 3초마다. 정확하게. 마치 기계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떨림이었다.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라, 해방의 떨림.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혼합이었다. 둘 다. 동시에.
가게의 문이 열렸다. 낡은 카페의 문. 이름은 “Matches”였다. 성냥이라는 뜻. 세아는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마치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고 끌어가는 것처럼.
카페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오후 7시 남짓. 이 시간에 사람들은 가고 있었다. 집으로. 누군가에게로. 하지만 세아는 여기 있었다. 이 낡은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보였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사람. 나이는 아마도 30대 중후반. 손이 커서, 세아는 그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피. 아니, 그것보다 더. 이야기. 기억. 그런 것들을.
“뭘 드릴까요?”
바리스타가 물었다.
“에스프레소.”
세아가 대답했다. “더블. 설탕 없이.”
그것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강리우와 함께 마신 커피의 종류였다. 강리우는 설탕을 많이 넣었었다. 자신의 쓸음을 감추려고. 마치 자신의 삶을 감추려고.
커피가 나왔다. 검은색. 단순하게. 아름답게.
세아는 커피를 들었다. 그리고 마셨다. 천천히. 한 모금. 그 후 또 한 모금. 매 순간이 느껴졌다. 쓴맛. 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작은 진실.
휴대폰이 울렸다. 하늘이었다. 세아의 절친. 타투 가게를 운영하는 그 친구.
“너 지금 뭐 해? 너 너무 한 달 동안 안 봤어.”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밝게. 하지만 그 밝음 아래에는 걱정이 있었다.
“카페에 있어.”
세아가 대답했다.
“어느 카페? 내가 가줄까?”
“Matches. 홍대에.”
“20분이면 도착해. 기다려.”
전화가 끊겼다. 하늘은 항상 이랬다. 질문을 하지 않고, 단지 나타나는 사람이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면, 그냥 나타나는 사람이었다.
세아는 커피를 계속 마셨다. 하늘을 기다리면서. 그 사이 바리스타는 다른 고객들을 대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모두 혼자였다. 모두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는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20분이 지났을 때, 하늘이 들어왔다. 타투 가게의 냄새를 몸에 풍기면서. 잉크. 소독약. 그리고 뭔가 다른 것. 현실의 냄새.
“너 지금 뭐야?”
하늘이 앉으면서 말했다. 혼란스럽게. “너 얼굴이 없어. 진짜.”
“응.”
세아가 대답했다.
“강리우?”
“응.”
“헤어졌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그 후에.
하늘은 세아의 손을 잡았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거기에는 거래가 없었다. 기대가 없었다. 단지 손을 잡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너 정말 혼자라고 생각했어?”
하늘이 천천히 물었다. “넌 항상 혼자 같은데, 사실 넌 혼자가 아니야. 나도 있고, 도현이도 있고, 엄마도 있고. 그리고 이제 넌 너 자신도 있어. 너도 있는 거야.”
세아는 하늘의 손을 꼭 잡았다. 마치 자신이 익사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밧줄을 던져준 것처럼.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뭐가 미안해? 사랑이야, 너한테. 그냥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하늘의 말이 세아의 가슴을 뚫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강리우의 어떤 말보다도 진실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카페의 벽에는 오래된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성냥을 그린 포스터들. 불을 그린 포스터들. 누군가는 이 카페를 만들 때, 불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아는 지금 그것을 이해했다.
불은 두 가지였다. 자신을 태우는 불. 그리고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불. 지금까지 세아는 첫 번째의 불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 순간에, 하늘의 손을 잡으면서, 세아는 두 번째의 불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불. 자신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빛나게 하는 불.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는 것이었다.
오후 7시 45분. 서울은 밤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도 함께 변해가고 있었다. 아직도 타들어가고 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더 좋은 이유로. 자신을 위해서.
챕터 끝
# 전화가 끊긴 후
전화가 끊겼다.
세아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통화 시간 23분 47초. 하늘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지금 어디야? 카페 있어?”라는 그 간단한 질문 하나로 전부였다. 대답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 하늘이는 언제나 그렇게 나타났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의무인 양, 아니 그보다는 당연한 사랑인 양.
세아는 커피잔을 다시 들었다. 온기가 거의 식어가고 있었다. 입술에 닿은 따뜻함도 이제는 미지근했다. 마시고 또 마셨다.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다. 하늘이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카페 안은 오후의 그늘진 분위기로 가득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거리가 보였다.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걸어가고, 모두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카페 안에는 정체가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
바리스타는 다른 고객들을 대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모두 혼자였다. 세아는 그들을 관찰했다. 스튜디오 카메라로 찍힌 배우처럼,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역할을 하고 있었다. 라떼를 마시는 여자. 노트북을 치는 남자. 휴대폰 화면만 보는 청년. 모두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는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세아는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바리스타가 새로운 손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뭘 드릴까요?” 그 목소리는 기계적이었지만 친절했다. 서툰 미소. 하지만 그 미소 안에는 작은 배려가 있었다. 아마도 그 바리스타도 혼자일 것이다. 아마도 그 바리스타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아는 시계를 확인했다. 3시 22분. 전화를 끊은 지 8분이 지났다. 하늘이는 어디쯤일까. 타투 가게는 여기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였다. 걸어가면 15분쯤. 지하철을 탄다면 10분. 택시를 탄다면 5분.
세아는 계산을 멈췄다. 이런 계산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창밖의 햇빛이 각도를 바꾸었다. 오후 중반의 햇빛은 투명했다. 거의 흰색에 가까운 투명함. 세아의 얼굴에도 그 빛이 닿았다. 자신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추는 창문을 통해, 세아는 자신을 봤다.
창백한 얼굴. 눈 아래 거무튀튀한 자국. 입술은 거의 피가 빠진 듯했다. 너무 오래 웃지 않은 얼굴. 너무 오래 혼자인 얼굴.
그렇다. 하늘이가 나타나자마자 하겠지. “너 지금 뭐야?” 그럴 것이다.
세아는 커피를 다시 마셨다. 이미 식은 커피는 쓰고 텁텁했다.
—
20분이 지났을 때, 문이 열렸다.
하늘이가 들어왔다. 그 순간 카페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마치 누군가 창문을 열어 외부의 바람을 들인 것처럼.
하늘이는 타투 가게의 냄새를 몸에 풍기고 있었다. 잉크의 매운 냄새. 소독약의 따끔한 냄새. 그리고 뭔가 다른 것 – 현실의 냄새. 손톱 아래 묻은 먹물. 옷소매에 밴 알코올. 하늘이가 살아가는 세계의 냄새였다.
하늘이는 세아의 테이블로 곧장 다가왔다. 인사를 기다리지 않았다. 확인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냥 앉았다. 세아의 맞은편에, 마치 오래 약속된 자리처럼.
하늘이의 눈이 세아를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듯이.
“너 지금 뭐야?”
하늘이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럽지만, 절대로 판단적이지 않았다.
“너 얼굴이 없어. 진짜.”
세아는 대답을 준비했다. 변명. 설명. 그런 것들. 하지만 입을 열었을 때는 단 한 마디만 나왔다.
“응.”
그것이 전부였다. 하늘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강리우?”
“응.”
“헤어졌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답할 수 없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그 후에. 아직도 그들은 법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종이 위에는. 마음 속에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하늘이는 세아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갑작스러웠지만, 동시에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마치 그것이 이미 일어났을 일들 중의 하나인 양. 마치 이미 정해진 장면인 양.
“너 정말 혼자라고 생각했어?”
하늘이가 천천히 물었다. 하늘이의 손은 따뜻했다. 세아의 손은 차가웠다.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넌 항상 혼자 같은데.”
하늘이는 계속했다. 세아의 눈을 직접 보면서.
“사실 넌 혼자가 아니야. 나도 있고, 도현이도 있고, 엄마도 있고.”
엄마. 그 단어가 세아의 가슴을 쓸었다. 자신의 어머니. 자신이 피해왔던,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
“그리고 이제 넌 너 자신도 있어. 너도 있는 거야.”
하늘이의 말은 단순했다. 문학적이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세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자신도 모르게.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마음보다 먼저 반응한 것처럼.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뭐가 미안해?”
하늘이가 물었다. 그 질문 속에는 진정한 궁금증이 있었다. 책망이 아니라. 책망이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
“사랑이야, 너한테.”
하늘이가 계속했다.
“그냥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하늘이의 말이 세아의 가슴을 뚫었다. 마치 화살처럼. 아니, 화살이 아니라 빛처럼. 어두운 곳을 밝히는 빛처럼.
왜냐하면 그것이 강리우의 어떤 말보다도 진실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강리우의 말들은 항상 그럴듯했다. “사랑해”, “걱정하지 마”, “모든 게 잘될 거야”. 그 말들은 마치 배우가 연기하듯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처럼 나왔다. 하지만 그 말들 뒤에는 세아의 필요가 없었다. 그 말들 뒤에는 세아라는 개인이 없었다.
반면 하늘이는 다르게 말했다. “그냥 있어”.
무엇을 하지 말고, 누가 되지 말고, 단지 있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말.
세아는 하늘이의 손을 꼭 잡았다. 마치 자신이 익사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밧줄을 던져준 것처럼. 아니, 밧줄이 아니라 손이었다. 사람의 손. 따뜻한 손.
바리스타가 누군가의 주문을 받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기계적인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 속에도 작은 배려가 있었다. 모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이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이.
카페의 벽에는 오래된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성냥을 그린 포스터들. 불을 그린 포스터들. 누군가는 이 카페를 만들 때, 불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세아는 처음 이 카페에 왔을 때, 그 포스터들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하늘이의 손을 잡으면서, 세아는 그 포스터들을 제대로 봤다.
불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자신을 태우는 불. 자신을 소비하는 불. 자신을 없애는 불. 세아는 그 불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강리우라는 이름의 불. 자신의 기대라는 이름의 불. 자신의 갈망이라는 이름의 불.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불. 자신을 밝히는 불.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불.
지금까지 세아는 첫 번째의 불만 알고 있었다. 그 불 속에서 자신을 태워왔다. 마치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이제, 이 순간에, 하늘이의 손을 잡으면서, 세아는 두 번째의 불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불. 자신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빛나게 하는 불. 그것은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는 것이었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이었다.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뭐가 고마워?”
하늘이가 물었다.
“있어줘서.”
세아의 목소리는 이제 명확했다. 떨리지 않았다.
하늘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아름답지 않았다. 완벽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였다.
창밖의 햇빛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오후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세아는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오후 3시 47분.
아직도 하루의 반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세아는 그것을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보낼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 정확하게는, 자신과 함께 보낼 것이었다.
하늘이의 손을 잡으면서, 자신과 함께.
—
두 사람은 카페에 앉아있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단지 함께 있었다.
바리스타는 새로운 커피를 만들었다. “핸드드립 아메리카노 한잔!” 따뜻한 물이 갈색 분말 위에 천천히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그 과정은 마치 의식같았다. 마치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선물같았다.
그 커피는 세아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손님의 것이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과정이 필요하다. 커피도, 사랑도, 자신을 찾는 것도.
하늘이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저녁이 오고 있었다.
오후 7시 45분. 서울은 밤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었다.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세아도 함께 변해가고 있었다.
아직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더 좋은 이유로.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따뜻함은 남아있었다. 손과 손 사이의 따뜻함.
두 사람은 카페에 앉아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챕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