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35화: 강을 건너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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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5화: 강을 건너는 손

도현이의 답장은 즉각적이었다.

“ㅋㅋ 진짜 뭐 해? 누나 이상한데.”

세아는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한강 공원의 벤치에서. 밤 8시 47분. 강 건너편의 조명들이 물 위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촛불을 흔드는 것처럼. 그 떨림의 리듬이 일정하지 않았다. 마치 강리우의 손가락처럼.

세아는 타이핑을 시작했다. 지웠다. 다시 시작했다. 지웠다.

결국 보냈다.

“내일 저녁에 만날 수 있어?”

도현이의 답장이 왔다.

“왜? 뭔가 일 있어?”

“그냥 만나고 싶어. 같이 밥 먹고.”

오랜 침묵이 있었다. 세아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켜졌을 때, 도현이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알겠어. 내일 7시 홍대 입구역.”

세아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내려놓고 강을 바라봤다. 한강은 여름 밤에도 차가워 보였다. 마치 자신의 몸처럼.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강리우의 병실에서 나온 후, 세아의 시간은 이상하게 흘렀다. 물론 시간은 항상 흘렀다. 초침이 움직였고, 분침이 움직였고, 시침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시간의 질감이 달라졌다. 마치 물 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느리고, 모든 감각이 둔해지는.

해늘은 그것을 알아챘다. 국밥집에서, 그리고 그 이후로도.

“너 약간 이상해. 정말로.”

해늘이 세아의 고시원을 방문했을 때 말했다. 그것은 오후 9시 20분이었다. 세아는 자신이 해늘을 부르지 않았는데 해늘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합정역 근처의 편의점에서 누군가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또는 세아의 카톡 위치 기록을 확인했을 것이다. 해늘은 그런 친구였다. 필요할 때는 경계를 무시했다.

“뭐가 이상해?”

세아가 물었다. 침대에 앉아서. 그녀의 고시원은 작았다. 침대, 책상, 옷장. 그것이 전부였다. 해늘은 책상 의자에 앉았다.

“너 손이 떨리고 있어. 3초마다.”

“아니야.”

“그래. 떨려. 내가 봐.”

해늘이 손을 가져다 댔다. 세아의 손 위에. 그리고 잠깐 기다렸다. 정확히 3초. 그러면 세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게 뭐야?”

해늘이 물었다. “너도 베를린인가? 너도 손가락이 떨리는 병에 걸렸어?”

“아니. 그냥…”

세아가 말을 멈췄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었다. 손가락이 떨린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자신도 강리우처럼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자신을 멈추고 있다는 뜻인지.

“너 지금 정신 나갔어.”

해늘이 말했다. 진단하듯이.

“응.”

세아가 인정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해늘은 침대에 누웠다. 세아 옆에. 천장을 바라봤다. 세아의 고시원 천장에는 작은 곰팡이 자국들이 있었다. 마치 지도처럼. 어떤 나라의 지도처럼. 해늘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강리우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해늘이 천장을 보면서 물었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세아가 거짓말을 했다. 그것이 강리우가 말한 것은 아니었다. 강리우가 말한 것은 더 복잡했다. 더 얽혀 있었다. 더 위험했다.

“근데 너는 기다릴 수 없어.”

해늘이 말했다. 확신을 가지고. “너는 지금 그 사람이 죽을까봐 무서워하고 있어. 그리고 그 무서움이 너를 뭔가 하도록 자극하고 있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늘이 정확하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너를 사용했어, 알지?”

해늘이 계속했다.

“응.”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어. 너의 동정심을 사용해서. 너의 책임감을 사용해서. 너의 사랑을 사용해서. 이 모든 것을.”

“응.”

“그럼 넌 왜 자꾸 그 사람 편을 드는데?”

해늘이 천장에서 눈을 떼고 세아를 봤다.

세아는 침묵했다. 그것이 답변이었다.


다음 날. 오후 4시 25분.

세아는 고시원을 나왔다. 홍대 입구역으로 가기 위해. 도현이와 만나기 위해.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세아는 자신이 멈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합정역 근처. 편의점 앞. 세아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밤에 자신이 일할 테이블이 보였다. 지금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여자. 아마도 19살 정도. 새로운 직원. 세아를 대체한 사람.

세아는 편의점을 나갔다.

그리고 걸었다. 한강 방향으로. 강 위의 다리들이 보였다. 몇 개의 다리가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 강을 건너는 것.

세아는 가장 가까운 다리로 걸어갔다. 해늘이 자신을 방문했던 날 이후, 세아는 다리 위를 걷지 않았다. 그 다리가 강리우와 자신의 비극이 일어났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4개월 전. 강리우가 자신들을 차에 태우고, 다리 위로 몰려갔던 그 장소.

하지만 지금은 낮이었다. 오후 5시. 햇빛이 여전히 강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았다. 조깅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세아는 그 사이를 걸었다.

강 위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정확히 3초마다.

그건 의지의 문제야.

자신이 국밥집에서 말했던 말. 그것이 지금 자신에게 돌아왔다. 자신이 뭔가를 하고 싶은데, 자신을 멈추고 있다는 것. 뭔가를 하고 싶지만, 그것을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세아는 다리의 난간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 저 아래는 강이었다. 강리우가 자신들을 몰려가려고 했던 강.

그때 누군가가 세아의 팔을 잡았다.

“누나!”

도현이었다. 도현이가 달려왔다. 전속력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세아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도현이와 홍대 입구역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것을 잠시 잊었었다.

“뭐 해?”

도현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냥… 산책하다가.”

세아가 말했다.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넌 항상 다리에서 이 표정을 해. 내가 알아.”

도현이가 말했다. 그리고 세아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따뜻한 손. 젊은 손. 떨리지 않는 손.

“도현아, 넌 뭐 해?”

세아가 물었다.

“학원 가다가 누나가 자꾸 생각났어. 그래서 왔어.”

도현이가 말했다.

“학원은?”

“버렸어.”

“뭐?”

“그냥. 누나한테 밥 먹는 게 더 중요했어.”

도현이가 말했다. 그리고 세아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다리에서 내려. 제발.”

세아는 도현이의 손을 느꼈다. 따뜻함. 책임감. 그리고 작은 절망감. 자신이 도현이에게 준 절망감.

“응. 내려갈게.”

세아가 말했다.

그들은 다리를 내려갔다. 함께. 손을 잡고.


홍대 입구역 근처의 작은 카페. 저녁 6시 15분.

세아와 도현이는 앉아 있었다. 세아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마시지 않을 것을 알면서. 도현이는 초콜릿 음료를 주문했다. 가장 어린 선택.

“누나. 너 진짜 괜찮아?”

도현이가 물었다.

“응.”

“거짓말하지 마.”

도현이가 말했다. “지난 8개월 동안 너는 뭐 한 거야? 진짜로. 나는 너가 뭐 하는지 몰랐어. 편의점에 간다고 했는데, 너 편의점 말고도 다른 데 많이 갔어. 누나 카톡으로 위치 기록을 봤어. 병원, 경찰서, 법원, 강. 자꾸 강.”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너는 자꾸 강을 보고 싶어 하고, 자꾸 그 다리를 걷고 싶어 하고, 그 다리에서 자꾸 멈춰 있어. 왜? 그 사람 때문에?”

도현이가 물었다.

“응.”

세아가 인정했다.

“그 사람이 뭐야? 너한테?”

도현이가 물었다. 그의 질문이 단순했다. 하지만 무거웠다.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도현이의 손과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판결이 3일 남았어, 맞지?”

도현이가 물었다.

“응.”

“그 후엔 뭐 할 거야?”

“모르겠어.”

세아가 같은 말을 했다.

도현이는 자신의 음료를 마셨다. 한 모금. 그리고 세아를 봤다.

“누나. 나 얘기 들어줄 수 있어?”

도현이가 물었다.

“응.”

“나 요즘 계속 생각하는 게 있어. 우리 엄마가 해녀라고 했잖아. 깊은 물 속에 들어가서 숨을 참고 뭔가를 건져올리는. 그 일.”

도현이가 말했다.

“응.”

“근데 나 생각하는 거, 엄마가 물 속에 있을 때 뭔가 무서운 게 있잖아. 산소가 떨어지는 거. 그래서 엄마는 정해진 시간 안에 올라와야 해. 아니면 죽어. 그런데 누나는 자꾸 물 속에만 있으려고 하는 것 같아. 올라오지 않으려고.”

도현이가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메리카노를 집었다. 마시지는 않으면서. 단지 손이 할 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좋아?”

도현이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럼 그만 해. 이유를 모르는데 자꾸 물 속에만 있지 마. 올라와. 제발. 나를 위해서라도.”

도현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세아의 손가락처럼. 의지의 싸움으로 인한 떨림.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자신의 남동생. 17살의 남동생. 자신이 먹여 살리려고 했던 남동생. 자신이 모든 것을 희생했던 남동생. 그리고 그 남동생이 지금 자신에게 올라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알았어.”

세아가 말했다.

“정말?”

도현이가 물었다. 미심쩍게.

“응. 판결이 나면, 나는… 더 이상 그 사람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약속했는지.

도현이는 세아의 손을 다시 잡았다.

“고마워.”

도현이가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앉아 있었다. 카페에서. 손을 잡고. 말 없이.


밤 10시.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세아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강리우로부터.

“판결이 나올 때까지 나를 방문하지 말아줄 수 있나?”

세아는 답장을 했다.

“알겠어.”

그리고 더 이상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합정역 근처의 밤거리.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밤 10시의 서울. 저녁은 이제 끝나고 있었다. 내일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일 다음날은 판결이었다.

세아는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랐다. 3층. 자신의 방. 열쇠를 열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곰팡이 자국들을 봤다. 마치 지도처럼. 어떤 나라의 지도처럼. 세아는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물 속에서 올라오는 것.

손가락이 떨리지 않도록 하는 것.

의지의 싸움을 멈추는 것.

그리고 천천히, 매우 천천히, 세아의 손가락이 떨리기를 멈췄다.


다음 화: 판결날

# 물 속에서 올라오기

## 1부: 카페에서의 대화

카페의 문이 열릴 때 찬바람이 함께 들어왔다. 11월의 서울은 이미 겨울의 문턱에 서 있었다. 세아는 도현이를 기다리며 창가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지만, 손을 놓지 않은 지 거의 10분이 지났다. 잔 안의 커피는 이미 식어가고 있었고, 그 표면에는 얇은 막이 생기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남의 거리는 여느 평일 오후와 다를 바 없었다. 직장인들이 빠르게 움직였고, 학생들은 학원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세아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저 평범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판결이 3일 뒤에 남아 있었고, 그 3일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세아의 손가락이 아메리카노 잔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따뜻함은 거의 다 사라져 미온수가 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의 감정처럼. 뜨거웠던 것들이 모두 식어가는 중이었다.

“언니!”

도현이의 목소리가 카페 안을 가로질렀다. 세아는 고개를 들었다. 17살의 남동생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학교 교복을 입은 채로, 검은색 가방을 한쪽 어깨에만 걸친 채로.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났다. 시험 기간이었다. 세아는 자신의 문제로 인해 도현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앉아.”

세아가 도현이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도록 손짓했다. 도현이는 짐을 내려놓으며 신음을 내었다.

“수학 시험 봤어?”

세아가 물었다. 일상적인 질문. 형제자매 사이에서 나누는 평범한 대화. 하지만 그 평범함이 지금 세아에게는 간절했다.

“응. 망했어. 극악이야. 이번엔 정말 망했어.”

도현이가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떨림. 세아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손도 똑같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그 다음 시험 잘 보면 되잖아.”

세아가 말했다. 자신을 위로하는 것처럼 들렸다. 도현이는 세아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누나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누나가 정말로 괜찮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를 판단하려는 듯이.

“언니, 근데 나 생각하는 거…”

도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마치 누군가를 깨울까봐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세아는 귀를 기울였다.

“엄마가 물 속에 있을 때 뭔가 무서운 게 있잖아.”

‘엄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세아의 몸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산소가 떨어지는 거. 그래서 엄마는 정해진 시간 안에 올라와야 해. 아니면 죽어.”

도현이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마치 자신이 말하는 것이 위험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그런데 누나는 자꾸 물 속에만 있으려고 하는 것 같아. 올라오지 않으려고.”

침묵이 카페를 가득 채웠다. 바리스타의 기계음, 멀리서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창밖의 자동차 소음. 모든 것이 있었지만, 세아의 귀에는 오직 자신의 심장소리만 들렸다. 쿵, 쿵, 쿵. 규칙적이면서도 불안정한 박동.

도현이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잠깐, 혹은 오래. 시간이 굳어져 있는 것 같았다.

세아는 자신의 아메리카노를 집었다. 마시지는 않았다. 단지 손이 할 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손가락들이 잔의 가장자리를 감싸면서 떨림을 가두려고 했다. 하지만 잔도 함께 떨렸다.

“그 사람이 좋아?”

도현이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직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흘러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눈물.

세아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3초. 5초. 10초. 카페의 음악이 한 곡 재생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모르겠어.”

그것이 세아의 유일한 대답이었다. 진실이었다. 세아는 강리우가 좋은 것인지, 그저 의존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도 아닌 다른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물 속에 있으면서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세아는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볼 수 없었다.

도현이가 깊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세아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따뜻했다. 세아의 손은 차가웠는데, 도현이의 손은 생생하게 따뜻했다.

“그럼 그만 해.”

도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엔 스트레스로 인한 떨림이 아니었다. 눈물로 인한 떨림이었다.

“이유를 모르는데 자꾸 물 속에만 있지 마. 올라와. 제발. 나를 위해서라도.”

세아는 도현이를 봤다. 진짜로 봤다.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방식으로. 17살의 남동생. 자신이 먹여 살리려고 했던 남동생. 자신이 모든 것을 희생했던 남동생. 그 남동생이 지금 자신에게 올라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눈물이 드디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세아는 테이블을 가로질러 손을 뻗어 도현이의 뺨을 닦아주려고 했지만, 그 대신 자신의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알았어.”

세아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로, 마치 자신을 설득하듯이.

“정말?”

도현이가 물었다. 미심쩍게. 자신의 누나가 진정으로 약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넘기기 위해 말하는 것인지를 판단하려는 듯이.

“응. 판결이 나면, 나는… 더 이상 그 사람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약속했는지.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인지. 물 속에서 산소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도현이는 그 약속이 필요했다. 그리고 세아는 그 약속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도현이는 세아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엔 더 강하게. 마치 자신의 누나가 물 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붙잡으려는 듯이.

“고마워.”

도현이가 말했다.

“정말 고마워, 언니.”

그들은 그렇게 앉아 있었다. 카페에서. 손을 잡고. 말 없이.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그저 형제자매가 만나 있는 것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흐르고 있었다. 약속, 그리움, 포기, 사랑. 모든 것이 손을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세아는 도현이의 손을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도현이의 손도 떨리지 않기 시작했다.

## 2부: 밤의 거리

밤 10시. 합정역 근처의 거리는 낮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해는 벌써 진 지 오래였고, 하늘은 도시의 불빛에 반사되어 검은색이 아닌 어두운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리의 네온사인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펍, 노래방, PC방. 밤의 서울이 깨어나고 있었다.

세아는 도현이와 헤어진 후 고시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1호선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하고, 그 후 15분간의 도보. 익숙한 길이었다. 거의 매일 가는 길. 하지만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거리의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사람들, 혼자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 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생각하며 걸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세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강리우. 문자메시지였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나를 방문하지 말아줄 수 있나?’

세아의 걸음이 멈췄다. 거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피해 지나쳤다. 누군가는 세아를 바라봤지만, 대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은 서울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일에 바빴다.

세아는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타이핑했다.

‘알겠어.’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의 말을 더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약속이 깨질 것 같았다. 도현이와의 약속.

더 이상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강리우도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었던 것 같았다.

세아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고시원이 있었다. 지금 그곳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내일을 견디어야 했다. 그 다음날을 견디어야 했다. 판결날까지.

거리의 불빛들이 세아의 얼굴을 비췄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모든 색깔이 그녀를 지나갔다.

## 3부: 고시원에서의 밤

밤 11시. 세아는 고시원의 계단을 올랐다. 삐걱거리는 계단음이 고요한 밤 공기를 깼다. 1층, 2층, 3층. 자신의 방이 있는 층.

고시원은 조용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방에 있었다. 어떤 방에서는 밤샘 공부를 하고 있었고, 어떤 방에서는 이미 자고 있었을 것이다. 세아는 자신의 방 번호를 바라봤다. 307호. 그 방이 자신의 공간이었다.

열쇠를 꺼냈다. 차가운 금속. 그것을 돌려 문을 열었다.

방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아는 불을 켰다. 한 순간의 밝음. 그리고 익숙한 공간이 드러났다.

침대, 책상, 옷걸이. 3평 남짓한 방. 하지만 이것이 세아의 세상이었다.

세아는 침대에 누웠다. 얇은 매트리스가 몸을 받아냈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에는 곰팡이 자국들이 있었다. 검은색의 얼룩들. 습기가 많은 이곳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아는 그 자국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마치 지도처럼 보인다고. 어떤 나라의 지도처럼. 대륙의 형태, 산맥의 모양, 강의 흐름. 모든 것이 그 얼룩들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세아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곰팡이에서 곰팡이로. 패턴을 찾으려는 듯이.

*물 속에서 올라오는 것.*

그 생각이 세아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도현이가 말했던 그 은유. 물 속에 있는 자신. 산소가 떨어지고 있는 자신. 올라와야 하는 자신.

*손가락이 떨리지 않도록 하는 것.*

세아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손가락들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의지의 싸움으로 인한 떨림. 강리우를 놓지 않으려는 자신과, 도현이를 위해 그를 놓아야 한다는 자신 사이의 싸움.

*의지의 싸움을 멈추는 것.*

세아는 눈을 감았다. 깜깜함이 더욱 깊어졌다. 시각이 없어지자 다른 감각들이 살아났다. 침대의 천으로 인한 질감, 베개의 향기, 밤의 소리들. 먼 곳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고시원의 얇은 벽을 통해 이웃의 잠든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매우 천천히, 세아의 손가락이 떨리기를 멈췄다.

떨림이 사라지면서 세아는 무언가를 느꼈다. 포기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정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결정을 내렸을 때의 그 무거운 침묵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후에 오는 그 감정.

세아는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손가락들이 이제 정말로 떨리지 않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밤 11시 30분. 밤 12시를 향해. 새로운 날을 향해. 판결날을 향해.

세아는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곰팡이 자국의 지도를 보며. 물 속에서 올라오는 방법을 생각하며. 도현이를 위해 약속을 지키는 방법을 생각하며.

그리고 밤은 계속해서 흘렀다.

**다음 화: 판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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