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32화: 병실의 문을 닫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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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2화: 병실의 문을 닫을 때

세아가 병실을 나온 지 3시간이 지났을 때, 해늘로부터 첫 번째 카톡이 들어왔다.

“어디야?”

세아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온 후, 강남역 지하의 카페에 앉아 있었다. 차를 주문했지만 마시지 않았다. 단지 손을 컵에 감싸고 있었다. 따뜻함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손이 할 일을 필요로 했다. 무언가를 쥐고 있지 않으면 자신이 산산조각날 것 같았다.

두 번째 카톡은 20분 후였다.

“강리우 병원 갔지?”

세아는 여전히 답장을 하지 않았다. 해늘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묻는 그 어조에서, 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투명한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자신의 행동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누군가는 항상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카페의 조명은 황색이었다. 저녁 5시 반, 강남의 지하는 낮과 밤의 경계를 모르고 있었다. 위층에서는 이미 저녁이 시작되고 있었을 텐데, 여기서는 항상 같은 시간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곳. 마치 자신이 멈춘 곳.

세아는 컵을 내려놓았다. 차는 식고 있었다. 표면에 얇은 막이 생겼다. 마시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마셨다면 그 막을 삼켰을 것이고, 그것은 자신을 더욱 불완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휴대폰을 들었다. 세 번째 메시지가 와 있었다.

“답장해. 진짜로.”

이번에는 해늘의 어조가 달랐다. 걱정에서 분노로 변했다. 아니, 정확히는 걱정이 분노로 표현되는 방식. 세아가 잘 아는 해늘의 방식.

세아는 타이핑을 시작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자신이 강리우의 병실에서 들은 것들을 말해야 할까. 베를린에서의 자살. 친구의 손목. 자신의 손이 그것을 막지 못했던 죄책감. 그리고 그 죄책감이 자신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를.

아니,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말하는 순간, 세아는 강리우에 대한 동정심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정심은 위험했다. 동정심은 자신을 다시 그의 곁으로 끌어당기는 밧줄이었다.

세아는 카톡을 지웠다. 새로 시작했다.

“응. 밥 먹으러 갈래.”

그것은 거짓이었다. 세아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무언가를 더 집어넣고 싶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너무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강리우의 말들, 그의 떨리는 손, 그의 눈빛.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내부를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늘에게는 그렇게 말해야 했다. 평범하게.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자신이 여전히 자신인 것처럼.

해늘의 답장은 즉각적이었다.

“5분만에 올게. 강남역 5번 출구.”

세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컵을 다시 들었다. 이제 차는 완전히 차가워져 있었다. 세아는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자신의 목을 내려갔다. 그것은 위에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내부에 구멍이 생긴 것처럼.


강남역 5번 출구는 항상 혼잡했다. 저녁 시간, 퇴근 인파가 흐르고 있었다. 세아는 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손은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자신의 손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마치 자신이 좀비가 된 것처럼.

해늘이 나타났을 때, 세아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해늘의 눈은 항상 자신을 찾았다.

“병원에서 뭐 들었어?”

해늘이 물었다. 인사말도 없이. 직설적으로.

“아무것도 안 들었어.”

세아가 대답했다.

“거짓말하지 마.”

해늘이 말했다. “너 얼굴에 다 나와 있어.”

세아는 해늘을 따라 걸었다. 지하철역에서 빠져나가는 방향으로. 그들은 강남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 지역은 세아의 지역이 아니었다. 홍대, 합정동, 그리고 제주. 세아의 세계는 그것으로 끝났다. 강남은 다른 나라였다. 다른 언어를 쓰는 곳. 다른 법칙을 가진 곳.

“밥이 뭐야?”

해늘이 물었다. 작은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지나가며.

“뭐든 괜찮아.”

세아가 말했다.

“너 진짜 이상해. 이 정도면 뭔가 큰 일이 있는 거야.”

해늘이 말했다. 그들은 한 음식점 앞에서 멈췄다. 삼계탕 전문점. 창밖으로 보이는 내부는 밝고 따뜻했다.

“들어가자.”

해늘이 말했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테이블에 앉았을 때, 세아는 해늘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타투이스트의 손. 피부에 잉크를 새기는 일을 하는 손. 그 손들이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세아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일을 하는 손이었다. 둘 다 무언가를 만드는 손이었다.

“강리우가 뭐라고 했어?”

해늘이 물었다. 삼계탕의 김이 피어올랐다. 닭 뼈의 냄새. 인삼의 냄새. 따뜻함의 냄새.

“…친구가 자살했대.”

세아가 말했다. 마침내. 단, 짧게.

해늘의 손가락이 멈췄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은 채로.

“베를린에서?”

해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해늘이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또는 이미 추측하고 있던 것처럼.

“그래서 손이 떨린다고?”

해늘이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해늘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수프를 마셨다. 인삼의 맛이 입안에 퍼졌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입에서도 느껴졌다. 공감의 방식이 이것이었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냄새를 들이마시고, 같은 온기를 느끼는 것.

“그러면서 너한테 자신을 탓했다고?”

해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넌 그걸 들어줬어.”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을 마셨다. 따뜻한 것이 자신의 몸을 통과했다.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내부가 절대영도에 도달한 것처럼.

“세아야.”

해늘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변했다. 더 낮아졌다. 더 무거워졌다. “넌 지금 뭘 하고 있어?”

“밥을 먹고 있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해늘이 말했다. 그리고 멈췄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찾으려고. “넌 지금 자신을 없애고 있어. 그 남자 때문에. 다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판결이 사흘 남았어. 사흘이면 된다고. 그럼 모든 게 끝난다고.”

세아가 말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

해늘이 말했다. “판사가 유죄라고 판결해도, 판사가 무죄라고 판결해도, 넌 여전히 그 남자한테 묶여있을 거야. 왜냐하면 넌 자신을 풀지 못하고 있으니까.”

세아는 국그릇을 들었다. 국물을 마셨다. 그것이 말하는 것보다 쉬웠다.

“넌 뭐라고 생각해?”

해늘이 물었다. “강리우가 정말로 뉘우친다고 생각해? 아니면 그냥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한탄하는 거야? 그리고 그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병실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 그것이 진정한 뉘우침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자책이었을까. 뉘우침은 변화를 포함해야 했다. 자책은 단지 감정이었다.

“판결이 나와도, 넌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해.”

해늘이 계속했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히 뭔가는 있어. 병원에 가서 그 남자 손을 봐주는 게 아니라.”

세아는 해늘을 봤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눈물이 아니었다. 해늘의 눈물이었다. 세아를 위한 해늘의 눈물이었다.

“미안해.”

세아가 말했다.

“뭐가 미안해? 넌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

해늘이 말했다. “근데 넌 계속 자신을 미안해하고 있어. 그게 문제야.”

세아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자신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떨리지 않는다는 것은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사흘만 더 기다려. 그 다음에…”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못했다.

“그 다음에 뭐?”

해늘이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세아는 정말로 몰랐다. 사흘 후의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에 있을 것인지.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지.

해늘은 세아의 손을 잡았다. 타투이스트의 손이 세아의 손을 감싼 것이었다. 따뜻한 손. 떨리지 않는 손. 하지만 세아의 손과는 다르게, 해늘의 손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 따뜻함으로.

“넌 혼자가 아니야.”

해늘이 말했다. “기억해. 그게 뭐든, 판결이 뭐든, 넌 혼자가 아니야.”

세아는 해늘의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자신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것을.


강남역으로 돌아가는 길, 세아는 해늘에게 말했다.

“타투…”

세아가 시작했다.

“뭐?”

해늘이 물었다.

“그 손. 아래 손. 아직 안 했지?”

세아가 말했다.

“응. 아직.”

해늘이 대답했다.

“그거… 그릴 생각 있어?”

세아가 물었다.

해늘은 웃음을 지었다. 강남의 밤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뭘 잠깐. 넌 아직도 그 불꽃을 받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해늘이 물었다.

“아니…”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멈췄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생각했다. “그냥… 그 손이… 내 손이었으면 좋겠어.”

해늘은 다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승리의 웃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관찰의 웃음이었다. 자신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웃음이었다.

“좋아.”

해늘이 말했다. “그 다음에 할게. 사흘 후에.”

세아는 해늘을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사흘 후에도 살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결이 뭐든, 자신이 뭐든, 적어도 해늘과 함께라면.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준비였다. 무언가를 받기 위한 준비. 자신 자신을 받기 위한 준비.


카페로 돌아가는 길, 세아는 도현이에게 처음으로 답장을 했다.

“안녕. 미안해. 이따 전화할게.”

메시지를 보낸 후, 세아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것은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희망이었을까.

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직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법정 계단에서 떨리지 않던 손. 병실에서 떨리지 않던 손. 그 손이 이제, 자신의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떨리고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진짜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손의 온기

## 첫 번째 장: 법정의 계단

법정 계단 앞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응시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마치 돌처럼 굳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떨려오던 손이 이제는 떨리지 않았다. 너무 오래 떨려서 마침내 멈춘 것일까, 아니면 모든 감정을 소진해서일까. 세아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손이 지금 이 순간 차갑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 손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세아.”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해늘이었다.

해늘은 세아의 옆에 섰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세아의 손을 감싸 들었다.

세아는 그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공기가 더 이상 흘러가지 않는 듯했고, 시간도 멈춘 듯했다. 오직 그 손—해늘의 손—이 세아의 손을 감싸는 그 감각만 남았다.

따뜻했다.

세아가 느낀 따뜻함은 단순한 체온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온기였다. 살아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세아의 손은 여전히 떨리지 않았지만, 해늘의 손은 달랐다. 해늘의 손은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증명하고 있었다. 그 따뜻함으로, 그 미묘한 압력으로, 그 부드러운 접촉으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회색 정장 위에 노출된 그 손이 해늘의 손에 싸여 있었다. 해늘의 손가락들이 세아의 손가락들을 감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처럼.

“넌 혼자가 아니야.”

해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아는 해늘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만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확신의 목소리였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기억해. 그게 뭐든, 판결이 뭐든, 넌 혼자가 아니야.”

세아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언제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조차 깨달았을 때는 이미 뺨에 그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는 그 눈물을 닦지 않았다. 닦을 수 없었다. 양손 중 한 손은 해늘의 손에 잡혀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다른 한 손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세아는 해늘의 손을 바라봤다. 완벽한 손이었다. 손톱도 깔끔했고, 손가락의 길이도 균형이 맞았다. 그리고 그 손 위에는 해늘이 그려 넣은 타투들이 있었다. 손목 아래쪽의 그 불꽃들. 그 불꽃 위로는 비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간.

그 순간, 처음으로 세아는 자신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법정에서 판결을 받고 나왔을 때도 그렇지 않았다. 병실에서 의사의 설명을 들었을 때도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해늘의 손에 자신의 손이 감싸여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뭔가 부족한 것 같았고, 여전히 무언가가 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으니까.

세아의 목이 메었다.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늘은 그것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 두 번째 장: 강남역으로 가는 길

강남역으로 돌아가는 길, 세아는 해늘의 옆을 걸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강남의 거리는 여전히 밝았다. 네온사인들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고, 사람들이 그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세아는 이 거리가 낯설었다. 마치 처음 보는 곳인 것처럼. 아니, 이전에는 이 거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자신의 눈이 이 거리를 보기를 거부했던 것일까.

“타투…”

세아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자신도 모르게,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입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뭐?”

해늘이 물었다. 해늘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이미 알고 있지만, 세아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 손. 아래 손. 아직 안 했지?”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작은지 깨달았다. 마치 숨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응. 아직.”

해늘이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해늘의 왼손이었다. 손목 아래쪽에는 세밀하게 그려진 불꽃들이 있었다. 그것은 불꽃이라기보다는 불의 혀 같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춤을 추고 있는 불의 혀.

“그거… 그릴 생각 있어?”

세아가 물었다. 목이 메인 상태였다. 하지만 말을 계속했다.

“누가 받을 거예요?”

세아의 질문에는 또 다른 질문이 숨어 있었다. 누가 그 불꽃을 받기에 충분한 사람일까. 누가 그 불꽃을 잡고 있을 자격이 있을까.

해늘은 웃음을 지었다.

강남의 밤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 어떤 관심도 받지 않으면서, 해늘은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작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깊은 웃음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의 웃음.

“뭘 잠깐. 넌 아직도 그 불꽃을 받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해늘이 물었다. 그 질문에는 비난이 없었다. 단지 호기심이 있었을 뿐이다. 마치 답을 이미 알고 있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깨닫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호기심.

“아니…”

세아가 말했다. 그리고 멈췄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주변의 소리들이 다시 들려 왔다. 자동차의 엔진음, 사람들의 목소리, 어딘가의 음악 소리.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배경음일 뿐이었다. 세아의 세계에는 오직 해늘의 목소리만 있었다.

“그냥… 그 손이… 내 손이었으면 좋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 말이 나온 순간, 세아는 자신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의 진정한 바람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이 그 불꽃을 받는 것. 자신이 그 불꽃의 일부가 되는 것.

해늘은 다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승리의 웃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관찰의 웃음이었다. 자신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웃음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이 드디어 나타났을 때의 그런 웃음.

“좋아.”

해늘이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확실했다. 마치 약속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그 다음에 할게. 사흘 후에.”

사흘.

세아는 그 숫자를 되뇌었다. 사흘이면… 사흘이면 자신이 정말로 사흘 후에도 살아있을까. 아니, 살아 있어야 할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해늘의 웃음을 보면서, 세아는 처음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사흘 후에도 살아있고 싶어.”

세아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작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생각이었다.

세아는 해늘을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사흘 후에도 살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결이 뭐든, 자신이 뭐든, 적어도 해늘과 함께라면. 해늘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면.

## 세 번째 장: 지하철역의 계단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약함이 아니었다. 세아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준비였다. 무언가를 받기 위한 준비. 자신 자신을 받기 위한 준비.

계단의 벽을 따라 내려갔다. 손잡이는 차가웠다. 플라스틱 손잡이가 세아의 손과 접촉했을 때, 세아는 해늘의 손의 따뜻함을 다시 생각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해늘의 말이 자꾸만 반복되어 들렸다. 마치 그 말이 세아의 귀에 계속 울려 퍼지는 것처럼.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내렸다. 세아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도 자신처럼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는 걸까. 저 사람들도 자신처럼 밤마다 떨리는 손을 붙들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제 세아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떨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떨림이 약함이 아니라 생명의 신호라면.

## 네 번째 장: 카페로 돌아가는 길

카페로 돌아가는 길, 세아는 도현이에게 처음으로 답장을 했다.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도현이의 메시지가 여러 개 남아 있었다. 얼마나 오래 전 메시지인지 세아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세아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글을 입력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움직였다.

“안녕. 미안해. 이따 전화할게.”

메시지를 보낸 후, 세아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그것은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희망이었을까.

세아는 그것을 즉시 분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살아 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이따 전화할게.”

세아가 쓴 그 말은 약속이었다. 도현이와의 약속이 아니었다.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자신이 이따 전화를 할 것이라는, 그래서 이따까지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그런 약속.

## 다섯 번째 장: 회상

법정 계단에서 떨리지 않던 손.

그 손은 판결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손이었다. 저항하지 않는 손.

병실에서 떨리지 않던 손.

그 손은 의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손이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 손.

하지만 지금, 자신의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떨리는 손.

그 손은 살아 있었다. 진정으로 살아 있었다.

세아는 그 떨림을 보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진짜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여섯 번째 장: 손의 언어

세아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은 더 이상 법정의 손이 아니었다. 더 이상 병실의 손도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와 손을 맞잡은 경험을 가진 손이었다. 누군가의 따뜻함을 느낀 손이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바라봤다. 손톱, 손금, 살짝 부어 있는 관절. 모두가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의 일부였다.

그리고 사흘 후, 그 손에는 새로운 타투가 그려질 것이다. 해늘의 손과 맞닿은 그 공간에. 그 불꽃들이 자신의 손으로 흘러내려 올 것이다.

세아는 그 장면을 상상했다.

타투이스트의 바늘이 자신의 피부를 꿰뚫고 들어올 때의 그 고통.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닐 것 같았다. 그것은 생명의 신호일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의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그 타투 위에 해늘의 불꽃들이 닿아 있을 것이다. 손과 손이 맞닿으면서, 불꽃과 불꽃이 만나면서, 무언가가 완성될 것이다.

세아는 그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사흘. 그것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세아에게는 충분했다. 충분히 길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사흘을 견딜 수 있다면, 그 다음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일곱 번째 장: 밤이 깊어가며

밤이 깊어갔다.

카페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세아는 카페의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식어 버린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세아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그 커피 잔을 들었을 때를 생각했다. 얼마나 오래 전이었을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세아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시간이 앞으로 흘러갈 것이니까. 뒤로 돌아갈 수 없이, 앞으로만 흘러갈 것이니까.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도현이의 메시지가 이미 와 있었다.

“언니. 정말 미안해. 나중에 봐. 사랑해.”

세아는 그 메시지를 읽으면서 눈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사랑해.”

그 두 글자가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자신이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세아는 답장을 했다.

“나도 사랑해. 사흘 후에 봐.”

그리고 보냈다.

사흘. 다시 한번 그 숫자가 떠올랐다. 사흘이면 타투를 받을 수 있고, 사흘이면 도현이를 만날 수 있고, 사흘이면 자신이 조금 더 완성될 것이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다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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