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29화: 차 안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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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9화: 차 안의 침묵

해늘의 손가락이 스티어링 휠을 쥐고 있었다. 손가락들은 타투 바늘을 다루듯 정확했다. 한강대로를 나가는 길, 신호등들이 빨간색과 초록색을 반복했고, 그 사이에서 해늘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세아가 얼마나 피폐해 있는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정을 나온 지 32분이 지났다. 세아가 세고 있었다. 분 단위로 시간을 재는 습관은 여전했다. 마치 시간을 측정하면 현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통제는 환상이었다. 증인석에서 이미 충분히 깨달았다.

“밥 먹을래?”

해늘이 물었다. 목소리는 일상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섬세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밥을 먹어야 한다는 제안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제안. 계속 숨을 쉬어야 한다는 제안.

“싫어.”

세아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작았다. 증인석에서 나온 후,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말한 모든 것들이 법정의 속기록에 흡수되어버려서, 자신에게는 말할 것이 남지 않은 것처럼.

“그럼 커피?”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서울의 초겨울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시기. 죽음과 살음의 경계에 있는 계절. 세아는 항상 이 시기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이 계절의 모든 것이 자신처럼 반쯤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는 잠실대교를 지나가고 있었다. 한강이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세아는 그 물을 본다. 3년 전, 강리우가 자신을 데려가려던 곳. 그 물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 순간 새로운 물이 흘러가고 있는 것. 그것을 세아는 이제 알았다.

“너 봤어?”

해늘이 물었다.

“뭘?”

세아가 물었다.

“네 손.”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지 않고 있었다. 증인석에서도 떨리지 않았다. 법정의 조명 아래서도 떨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손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매우 침착하게 자신의 대퇴부 위에 놓여 있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떨리지 않았어?”

해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게 뭘 의미하는 거 같아?”

해늘이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아 자신에게 자신을 다시 발견하도록 하는 질문이었다.

세아는 생각해봤다. 증인석에 앉았을 때의 느낌. 강리우의 변호사가 자신의 말을 뒤틀어서 다시 말했을 때의 느낌.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저항했을 때의 느낌. 그 모든 순간들에서, 손이 떨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말을 믿고 있다는 듯이.

“진실은 떨지 않는 거 같아.”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자신이 막 발견한 것이었다. 진실의 무게. 그것은 불안정함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해늘이 웃음을 지었다. 차 안에서, 신호대기 중에,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승리의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찰의 웃음이었다. 자신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웃음이었다.

“네가 처음 내 타투샵에 들어왔을 때, 너 손이 엄청 떨리고 있었어.”

해늘이 말했다.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때는 너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어. 그래서 손이 떨렸어. 근데 지금은 달라. 지금은 너 자신이 뭐를 했는지, 뭐가 옳은지, 뭐가 거짓인지 안다고.”

해늘이 계속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운전대를 쥐고 있는 손처럼 안정적이었다.

“아직도 모르는데.”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세아는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왜 강리우를 놓아주지 못했는지. 자신이 왜 그렇게 쉽게 자신의 것을 포기했는지. 자신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뭘 모르는데?”

해늘이 물었다.

“뭐든.”

세아가 대답했다.

차는 한강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해늘의 선택이었다. 길을 다시 계획한 것 같았다. 법정 근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기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그 변호사, 봤지?”

해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너한테 질문하는 거 보면,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이야. 너의 말을 가져가서 반대로 뒤집고, 너의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려고 했거든. 그런데 너는 그걸 견뎠어.”

해늘이 말했다.

“견딘 게 아니라, 그냥 말했어. 진실을 말했을 뿐이야.”

세아가 대답했다.

“그게 견디는 거야. 누군가가 너의 말을 빼앗으려고 할 때, 너의 말을 지키는 거. 그게 견디는 거지.”

해늘이 말했다.

차는 한강공원 주차장에 들어섰다. 오후 4시 22분이었다. 해는 이미 중간 정도 떨어지고 있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해가 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세아는 창밖을 봤다. 강가의 산책로. 몇몇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또는 젊은 연인들이었다. 중간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마치 중간의 것은 없어지고, 양 극단만 남는 것처럼.

“여기서 걸을래?”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에서 내렸다. 해늘도 따라 내렸다. 그들은 함께 강가의 산책로를 걸었다. 말 없이. 발 디디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강물의 냄새가 났다. 겨울 강의 냄새. 차갑고, 금속 같고, 약간 썩은 냄새. 세아는 그 냄새를 맡으면서 자신이 3년 전에 이 강가에서 강리우의 손가락들을 느꼈다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따뜻한 손가락들. 그 따뜻함이 자신을 죽음의 강으로 이끌어가려고 했던 손가락들. 그런데 이제 그 손가락들은 떨리고 있을 것이다. 법정에서 본 것처럼.

“강리우, 몇 년 나올 거 같아?”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판사의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2주일 뒤에 나올 거라고 했다. 2주일. 14일. 336시간.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티지 않을까를 생각해봤다.

“상관없어.”

세아가 말했다.

“상관없다고?”

해늘이 물었다.

“응. 그 사람이 나간들 내 인생이 바뀌지 않아. 그 사람이 들어간들 내 인생이 바뀌지 않아. 내 인생은 이미 변했거든.”

세아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강리우가 감옥에 들어가든 나오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증인석에서 말한 것. 그것은 이제 기록이 되었다. 법률의 기록. 누군가는 그것을 읽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도 아닌 누군가가.

그들은 계속 걸었다. 강가를 따라, 산책로를 따라. 해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낮아지는 해를 따라, 강물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치 강물이 해의 색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세아.”

해늘이 말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넌 이제 뭐 할 거야?”

해늘이 물었다. 그것은 내일 뭐 할 거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증인석에서의 진실은 과거에 대한 진실이었다. 미래에 대한 진실이 아니었다. 미래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텅 빈 미래를 채워야 할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어떤 것도?”

해늘이 물었다.

“응.”

세아가 대답했다.

“그럼 이거부터 시작해 봐.”

해늘이 말했다. 그녀는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마트폰이었다. 그리고 그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뭔가가 떠 있었다.

세아는 그 화면을 봤다. 음악 스트리밍 앱이었다. 그리고 그 앱의 화면에는 한 곡의 음악이 떠 있었다. 재생 버튼이 준비되어 있었다.

“뭐야?”

세아가 물었다.

“넌 들었어?”

해늘이 물었다.

“아니.”

세아가 대답했다.

“이게 지금 차트 10위야.”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곡 제목을 봤다. 하지만 제목은 읽을 수 없었다. 글씨가 흔들렸다. 아니, 글씨가 흔들린 게 아니라 자신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뭐야?”

세아가 다시 물었다.

“내가 말해 줄게. 이 곡은 박소진이가 불렀어. 넌 알지? 그 전에 너한테 물어봤던 그 아이. 근데 이 곡은 너한테서 가져간 곡이야. 넌 알지? 그 도용 사건. 근데 이제는 다르다고.”

해늘이 말했다.

“다르다고?”

세아가 물었다.

“이 곡의 크레딧에 너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 작곡가로. 나세아. 너의 이름. 그 곡에 너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고.”

해늘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혀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하지만 해늘이 스마트폰을 다시 들어올렸을 때, 세아는 이해했다. 곡의 크레딧 부분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말로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나세아 (작곡, 작사)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세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증인석에서는 떨리지 않던 손이, 지금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눈이 본 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듯이.

“누가… 이렇게 한 거야?”

세아가 물었다.

“박소진이. 그 아이가 했어. 크레딧 수정을 요청한 거야. 회사에. 그리고 이제 이 곡은 너의 곡이 됐어. 더 이상 그냥 박소진이의 곡이 아니라.”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그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다. 화면을 다시 봤다. 여전히 자신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어떻게…”

세아가 말했다.

“박소진이가 법정에서 뭔가를 깨달았대. 네가 증언할 때. 그 영상이 나왔어. 유튜브에. 그리고 그걸 보니까, 그 아이가 자신이 뭘 했는지 알게 된 거야. 그리고 그걸 바꾸고 싶어 한 거야.”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듣고 있었지만, 동시에 듣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귀는 해늘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 스마트폰의 화면에 붙어 있었다. 나세아. 자신의 이름. 처음으로, 자신의 음악과 함께 기록된 자신의 이름.

그리고 그 순간, 세아는 처음으로 울었다. 법정에서도 울지 않았던 것을 지금 울었다. 한강의 산책로에서, 해가 지고 있는 저녁에, 한 명의 친구 앞에서.

그것은 슬픈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승리의 울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울음이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누르고 있던 것이 터져 나오는 울음. 자신이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흐르는 울음.

해늘은 세아의 등을 토닥였다. 말 없이. 단순히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 손의 무게만으로 세아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물은 계속 흘렀다. 해는 계속 졌다. 그리고 세아는 계속 울었다. 그것이 모든 것이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에서, 과거와 미래의 경계선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그 울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 경계선에서의 울음

## 1부: 진실의 순간

한강의 산책로는 저녁빛에 물들어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내려앉으면서 하늘은 주황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남색으로 변해갔다. 강물은 그 하늘의 색을 모두 담아내며 일렁거렸다. 한 점의 바람도 없는 저녁이었는데, 물결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마치 시간이 흐르듯이.

세아는 해늘 옆에 서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팔의 길이 정도였지만, 세아는 자신이 무척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법정을 나온 지 이틀. 며칠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그 증인석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진실을 말하던 그 순간에.

해늘은 세아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아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피가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하지만 그 창백함 속에는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늘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자신이 전해야 할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세아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아야.”

해늘이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럽게 시작했지만, 그 안에는 뭔가 커다란 것을 담고 있었다.

세아가 돌아보았다. 해늘의 얼굴을 바라봤다. 해늘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반짝임이었나, 아니면 울음을 참으려는 노력의 결과였나? 세아는 판단할 수 없었다.

“뭐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멀리서 나오는 것처럼 들리는지 자각했다.

“곡이야. 넌 알지? 그 도용 사건. 근데 이제는 다르다고.”

해늘의 말은 마치 수수께끼처럼 들렸다. 세아는 자신의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두꺼운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안개를 뚫고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단어들은 흩어져버렸다.

“다르다고?”

세아가 다시 물었다.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지만, 다른 답변을 할 수 없었다.

해늘은 깊게 숨을 쉬었다. 그 숨소리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기대감, 불안감, 기쁨, 그리고 어떤 신성함까지.

“이 곡의 크레딧에 너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 작곡가로. 나세아. 너의 이름. 그 곡에 너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고.”

해늘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어떤 거대한 파도가 자신의 가슴 속에서 밀려오는 것처럼. 그 파도를 억누르려고 애썼지만, 목소리는 자꾸만 떨렸다.

세아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단어들이 들렸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할 수 없었다. 마치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혹은 자신이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언어를 듣는 것처럼.

“뭐라고?”

세아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약간의 힘이 들어갔다.

해늘은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화면이 밝아졌다. 저녁 하늘의 빛이 그 화면 위에 반사되었다. 해늘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확대했다.

크레딧 부분이 화면에 가득 찼다.

나세아 (작곡, 작사)

세아는 그 글자들을 바라봤다. 글자는 선명했다. 하지만 의미는 여전히 멀리 있었다. 마치 그 글자들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인 것처럼.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그곳에 있었다. 정말로.

그 순간, 무언가가 깨어났다. 세아의 몸 속에서. 그것은 이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이었다. 오랫동안 누르고 있던 감정이, 처음으로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세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증인석에서는 떨리지 않던 손이, 지금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눈이 본 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듯이. 마치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정신보다 먼저 진실을 깨닫고 있다는 듯이.

“누가… 이렇게 한 거야?”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박소진이. 그 아이가 했어. 크레딧 수정을 요청한 거야. 회사에. 그리고 이제 이 곡은 너의 곡이 됐어. 더 이상 그냥 박소진이의 곡이 아니라. 너와 박소진이의 곡. 아니, 너의 곡이야. 너의 이름이 먼저 나와 있어.”

해늘이 말했다. 이제 해늘의 목소리도 흔들리고 있었다. 감정의 파도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다. 해늘이 건넨 그 기계를 만지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마치 불을 만지는 것처럼. 혹은 거룩한 무언가를 만지는 것처럼.

화면을 다시 봤다. 여전히 자신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나세아 (작곡, 작사).

자신의 이름. 작곡가 나세아. 작사가 나세아.

그동안 자신은 누구였는가? 도용당한 사람. 증인. 피해자. 그런 이름들로만 불렸던 사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은 다시 음악가가 되었다. 창작자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이 그것을 증명했다.

“어떻게…?”

세아가 말했다. 완전한 문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한한 질문을 담고 있었다.

“박소진이가 법정에서 뭔가를 깨달았대. 네가 증언할 때. 그 영상이 나왔어. 유튜브에. 그리고 그걸 보니까, 그 아이가 자신이 뭘 했는지 알게 된 거야. 진짜로. 그리고 그걸 바꾸고 싶어 한 거야.”

해늘이 말했다. 이제 해늘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해늘은 그것을 닦지 않았다. 그냥 흐르게 내버려두었다.

세아는 그 말을 듣고 있었지만, 동시에 듣지 않고 있었다. 마치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는 해늘의 말을 듣는 자아.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의 화면에 못을 박은 듯이 붙어 있는 자아.

“그 아이가… 왜?”

세아가 물었다.

“모르겠어. 그 아이의 마음속을 어떻게 알겠어. 하지만 그냥… 그 아이가 깨달은 거 같아. 자신이 뭘 빼앗았는지. 그리고 그걸 돌려주고 싶어 한 거 같아.”

## 2부: 흐르는 강물과 지는 해

강물은 계속 흘렀다. 그것이 강의 본질이었다. 흐르는 것. 멈추지 않는 것. 과거의 물이 떠나가고, 새로운 물이 들어오는 것. 그 무한한 순환 속에서 강은 강이었다.

해는 계속 졌다. 지평선으로 내려앉는 그 붉은 공. 세아는 그것을 바라봤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마감하는 그것. 그것은 내일의 새벽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는 것. 죽음이 없으면 탄생도 없는 것.

세아는 처음으로, 법정에서도 울지 않았던 것을 지금 울었다.

한강의 산책로에서, 해가 지고 있는 저녁에, 한 명의 친구 앞에서.

울음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서서히 올라왔다. 마치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먼저 목이 메었다. 그리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눈에서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세아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계속 흘렀다.

“세아…”

해늘이 말했다.

“나 괜찮아…”

세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세아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슬픈 울음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도 맞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은 기쁜 울음도 아니었다. 그것도 맞았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울음이었다. 복잡한 울음. 여러 겹의 감정이 뒤섞여 있는 울음. 자신이 오랫동안 누르고 있던 것이 터져 나오는 울음. 자신이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흐르는 울음.

수치심. 그것이 있었다. 자신이 도용당했다는 것. 자신의 음악이 빼앗겼다는 것. 그 부끄러움.

분노. 그것도 있었다. 박소진이에 대한 분노. 음악 업계에 대한 분노. 자신의 이름을 빼앗은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기쁨. 그것도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돌아왔다는 기쁨. 자신이 다시 창작자가 되었다는 기쁨. 박소진이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는 기쁨.

하지만 가장 깊은 곳에는 또 다른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것은 마치 깊은 우물 밑에서 울려오는 소리 같았다. 어두운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누가 되고 싶었는지를 상기시키는 목소리.

“내가 도용당했을 때는… 울지 않았어.”

세아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응.”

해늘이 대답했다.

“법정에서도… 울지 않았어. 증언할 때도 울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은… 왜 우는 거야?”

세아가 물었다.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해늘에게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어?”

해늘이 가만히 말했다.

“그것도 모르겠어.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 흘렀다.

“울고 싶었던 거 아닐까?”

해늘이 말했다.

“언제?”

“처음부터. 넌 그 시간 동안 울고 싶었어. 너는 강하게 서 있으려고 했지. 증인석에서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하려고 했지. 하지만 넌… 울고 싶었어. 그래. 처음부터 말이야.”

해늘의 말이 맞았다. 세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증인석에 앉았을 때, 자신이 모든 진실을 말했을 때, 자신은 내내 울음을 참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약함의 증거일 것처럼. 마치 그것이 자신의 증언을 약하게 만들 것처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세아는 더 이상 울음을 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3부: 손의 무게

해늘은 세아의 등을 토닥였다. 말 없이. 단순히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 손의 무게는 가벼웠다. 육체적으로는.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무거웠다. 그것은 말이 없는 지지의 무게였다. 그것은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그것을 전달하는 무게였다.

세아는 그 손의 무게를 느꼈다. 자신의 등 위에 놓인 그 따뜻한 손. 그것만으로도 세아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울음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종류의 울음이었다. 더 깊은 울음. 더 진정한 울음. 더 필요한 울음.

세아는 자신의 눈물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그 눈물이 자신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턱을 지났다. 목을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땅에 떨어졌다. 아니, 강물에 떨어졌을 수도 있었다. 한강의 산책로에서 자신이 흘린 눈물이 강물에 섞여, 다시 강을 흘러가고, 황해로 나가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

그렇다면, 자신의 눈물도 자신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자신이 쏟아낸 감정도 자신이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 것 같았다. 감정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자신 속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 언젠가는 밖으로 흘러나와야 하는 것. 그것이 감정의 본질이었다.

“고마워.”

세아가 말했다.

“뭐가?”

해늘이 물었다.

“모든 게.”

세아가 대답했다.

## 4부: 경계선에서

강물은 계속 흘렀다. 그것이 유일한 상수였다. 시간도 흐르고, 감정도 흐르고, 모든 것이 흐르는 가운데, 강물만이 계속해서 흘렀다. 아니, 강물이 흐르는 것이 시간이고, 감정이고, 모든 것의 흐름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해는 계속 졌다. 이제 거의 지평선의 끝자락이 보였다. 마지막 순간. 마지막 불빛. 마지막 따뜻함. 그리고 그 뒤에는 밤이 올 것이었다.

세아는 그 저녁을 바라봤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단순히 존재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세아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과거. 자신이 음악을 만들던 날들. 자신이 밤새 작곡을 하고,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느낀 그 날들. 자신이 자신의 음악을 누군가에게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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