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불탄 소녀 – 제125화: 불을 옮기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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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5화: 불을 옮기는 손

타투샵의 반지하는 깊은 동굴처럼 느껴졌다. 형광등의 불빛이 천장에 부딪혀 흔들리고, 그 그림자가 벽 위에서 춤을 춘다. 세아는 대기 소파에 앉아 있었고, 해늘은 젊은 남자의 팔뚝에 바늘을 내려찍고 있었다. 웅웅거리는 기계음. 그것은 마치 벌떼의 날갯짓 같기도 하고, 멀리서 들리는 엔진음 같기도 했다.

세아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오래 이 공간에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처음 해늘이 타투를 해준 날 이후로, 세아는 이곳을 자신의 두 번째 고시원처럼 생각해왔다. 더 따뜻한 곳. 더 살아있는 곳. 형광등이 울렁거리는 편의점과 달리, 여기의 불빛은 안정적이었다. 의도적이었다. 누군가가 선택한 밝기.

“이제 3주야.”

해늘이 말했다. 바늘을 멈추지 않으면서. 그녀의 목소리는 집중의 목소리였다. 타투를 하는 동안의 해늘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의 손이 가장 정확해지는 순간. 그녀의 마음이 가장 고요해지는 순간.

“응.”

세아가 대답했다.

“법정에서 뭐 할 거야?”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해늘의 손을 봤다. 타투 기계를 들고 있는 그 손. 그 손가락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각도. 완벽한 속도. 해늘은 자신의 손으로 이미 수백 개의 문신을 새겨넣었다. 각각의 타투는 누군가의 결정이었다. 누군가의 영구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해늘은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실행했다.

“진술할 거야.”

세아가 말했다.

“진술?”

해늘이 물었다. 바늘을 멈추고 세아를 봤다. 처음으로 집중을 끊고.

“응. 내가 뭔가를 본 거 있어. 병원에서. 강리우가… 자신의 손가락들을 왜 못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세아가 천천히 말했다.

해늘은 다시 바늘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웅웅거림. 그녀의 집중이 돌아왔다.

“뭐 본 거야?”

“포기했다는 걸. 정말로 포기한 거야. 자신을 억제하는 거 말고, 진짜로 포기한 거.”

세아의 목소리는 낮았다. 마치 자신에게만 말하는 것처럼.

“그게… 좋은 거야?”

해늘이 물었다.

“모르겠어. 근데 그것을 법정에서 말해야 할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왜?”

“왜냐하면… 그게 진실이니까.”

타투 기계의 웅웅거림이 계속되었다. 세아는 그 소리에 몸을 맡겼다. 마치 그 소리가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 소리 속에서 세아는 강리우의 손을 다시 보았다. 병원 침대 위의 손. 떨리고 있던 손.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저항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복의 떨림이었다. 자신이 이미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떨림.

“세아.”

해늘이 다시 말했다.

“응.”

“너 혼자 그걸 견뎌내려고 하지 마. 알았지?”

해늘이 말했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타투 기계를 잠시 내려놓고.

“응.”

세아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약했다.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단순한 긍정이었다. 시간을 벌기 위한 긍정.

해늘은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바늘을 다시 들었다. 웅웅거림. 타투 기계의 노래. 그것은 고통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변화의 노래였다.

시간이 흘렀다. 몇 시간이었는지 세아는 몰랐다. 편의점에서 온 이후로 시간의 감각이 다시 흐릿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편의점에서의 시간은 죽음의 시간이었지만, 여기서의 시간은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웅웅거리는 기계음. 해늘의 숨소리. 누군가의 고통. 그것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서 한 곡의 교향곡을 만들고 있었다.

젊은 남자가 일어났다. 그의 팔뚝에는 새로운 타투가 생겼다. 까만 잉크로 그려진 무언가. 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웠다. 그 남자가 얼굴을 들었을 때, 눈에 물이 맺혀 있었다. 고통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감정. 아마도 안도감. 아마도 확인. 자신이 살아있다는 확인.

남자가 나간 후, 해늘은 의자에 몸을 쓰러뜨렸다.

“피곤해?”

세아가 물었다.

“응. 근데 피곤한 게 좋아. 이렇게 피곤하면 잠을 잘 수 있거든.”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해늘을 봤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얼굴 위에 흰 가루처럼 피로가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밝았다. 누군가를 도와줄 준비가 된 눈.

“너는?”

해늘이 물었다.

“나는?”

“응. 피곤해?”

“응.”

“그럼 여기 누워. 소파 길어.”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소파에 누웠다. 그것은 실제로는 길지 않은 소파였지만, 지금 세아에게는 침대처럼 느껴졌다. 가장 편한 침대. 고시원의 좁은 침대가 아니라, 누군가가 “여기 누워”라고 말해준 소파.

형광등의 불빛이 천장에 흔들렸다. 웅웅거리는 기계음은 멈췄고, 대신 해늘의 청소음이 들렸다. 타투 바늘을 씻는 소리. 그 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무언가를 정결하게 하는 소리. 다음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소리.

“해늘.”

세아가 말했다.

“응.”

“고마워.”

“뭐가?”

“이렇게 해줘서. 그냥… 여기 있어주는 것도.”

세아가 말했다.

해늘은 손을 멈추고 세아를 봤다. 세아의 얼굴은 소파 위에서 더 작아 보였다. 마치 13살의 어린 세아처럼. 제주에서 해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처럼.

“세아. 넌 왜 자꾸 고맙다고 말해?”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 지금 뭐라고 생각해? 내가 너한테 뭔가를 해주고 있다고? 날 도와줘서 고마운 거야?”

해늘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세아가 말했다.

“그럼 뭐야?”

해늘이 물었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누군가 인정해줬다는 게… 고마운 거야.”

세아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해늘은 그 침묵을 채우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타투 기계를 닦고, 의자를 닦고, 바닥에 떨어진 잉크를 제거했다. 그 모든 움직임이 세아에게는 하나의 춤처럼 보였다. 일상의 춤. 살아가는 춤.

밤이 깊어졌다. 타투샵의 반지하는 더욱 깊은 동굴이 되었다. 바깥의 밤거리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합정-홍대 구간의 밤은 이렇게 찾아온다. 서서히. 소리 없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 찾아온다.

해늘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편의점 커피. 세아도 한 잔을 받았다. 따뜻했다. 너무 따뜻해서 입술을 데일 정도였다.

“강리우 얘기 하나 더 할 거 있어?”

해늘이 물었다.

“뭐?”

“그 사람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아?”

“몰라.”

“병원에만 있어? 출소된 거 아니야?”

“아. 그건 아직이야. 법정이 있어야 출소될지 말지가 결정되니까.”

“그럼 지금은?”

“격리 중. 보호 감시 상태.”

세아가 말했다.

해늘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반지하 창. 그곳은 거리의 발목 높이 정도만 보였다. 누군가의 신발. 누군가의 바지. 그것이 전부였다.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해늘이 물었다.

“모르겠어.”

세아가 대답했다.

“진짜로?”

“응. 진짜로 몰라. 나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부숴진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세아가 말했다.

“부숴진 사람?”

“응. 자기 자신으로 부숴진 사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 같아. 마치 자기가 제어 불가능한 것처럼 움직였어.”

세아가 말했다.

해늘은 그것을 들으면서 자신의 타투 바늘을 생각했다. 그것은 정확히 제어 가능한 것이었다. 그녀의 손과 정신이 완전히 동기화되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은 어떻게 제어하는가? 누가 사람을 제어하는가? 아니면 사람은 제어 불가능한 것인가?

“너는?”

해늘이 물었다.

“나는?”

“너도 제어 불가능한 거야?”

세아가 그 질문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작은 웃음.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응. 나도 제어 불가능한 것 같아. 근데 강리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걸 몰랐던 것 같고, 나는… 뭘 해야 하는지 알지만 할 수 없는 것 같아.”

세아가 말했다.

“뭘 할 수 없어?”

“그냥… 살아가는 거? 정상적으로?”

세아가 말했다.

해늘은 그 말을 들으면서 세아의 손을 봤다. 세아의 손가락들. 얇고 마디가 굵은 손. 피아니스트의 손처럼 보이는 손. 하지만 세아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세아의 손은 뭐하는 손인가? 편의점에서 라면을 정렬하는 손? 강리우의 손을 잡았다가 놓는 손? 아니면 뭔가를 쓰는 손?

“세아. 넌 음악을 해야 해.”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커피잔을 내려놨다.

“왜?”

“왜냐하면 그게 너인 것 같아서. 다른 거 할 때는 넌 투명해져.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근데 음악을 할 때는… 넌 살아있어.”

해늘이 말했다.

“근데 난…”

세아가 말했다.

“뭐?”

“난 노래하는 거 못해. 목소리가…”

“목소리가 뭐가 됐어?”

해늘이 물었다.

“없어졌어.”

세아가 조용히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깊은 침묵. 타투샵의 반지하를 가득 채우는 침묵. 해늘은 그것을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봤다. 타투 바늘을 들었던 손. 그 손가락들은 여전히 떨리지 않았다. 완벽하게 제어되는 손. 하지만 그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피부에 무늬를 새길 뿐이다. 무늬를 새기는 것. 그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넌 법정에서 진술할 때 뭘 할 거야?”

해늘이 물었다.

“말할 거야. 강리우가 뭘 했는지.”

“그건 아니고. 넌 어떻게 말할 거야?”

“그냥… 진실을 말할 거야.”

“진실을? 침묵으로?”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해늘을 봤다. 해늘의 눈은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세아가 이미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은 것을 드러내라는 요구.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세아가 물었다.

“넌 노래해야 해. 진술을 노래해야 해.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이 듣는 거야.”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목을 만졌다. 거기서 뭔가가 움직였다. 작은 움직임. 마치 새가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밤이 더 깊어졌다. 타투샵의 형광등은 여전히 울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아는 그것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불빛이 꺼질 때까지의 시간. 그 시간 동안 자신이 뭘 할 수 있을 것인가. 편의점에서 라면을 정렬하는가? 고시원의 천장을 보는가? 아니면 뭔가를 노래하는가?

“해늘.”

세아가 말했다.

“응.”

“혹시 녹음기 있어?”

해늘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보는 미소였다. 그것은 승리의 미소였다.

“응. 있어.”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천천히 일어났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움직임은 마치 누군가가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것처럼 느렸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몸무게일 뿐이었다. 자신의 무게. 자신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질량.

타투샵의 가장 구석진 곳에 해늘은 오래된 노트북을 꺼냈다. 그것은 음악 제작용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었다. 오디오 트랙. 파형. 비트.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넌 언제부터 이런 걸 했어?”

세아가 물었다.

“한 달 전? 타투만 해가지고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음악을 배우고 싶었어. 그런데…”

해늘이 말했다.

“그런데?”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누군가 나한테 곡을 주기를.”

해늘이 말했다.

세아는 노트북을 봤다. 그 화면 위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음악의 시작. 소리의 공백. 누군가가 채워야 할 빈 공간.

“내가 뭘 부를지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럼 넌 뭘 알아?”

해늘이 물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자신이 뭘 아는가? 법정에서 진술해야 한다는 것. 강리우가 자신을 어떻게 했는지. 그 손이 어떤 감촉이었는지. 그 목소리가 어떤 음역대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어떻게 대항했는지.

세아는 입을 열었다. 음성이 나왔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다.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음성이었다. 세아의 음성.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 음성이.

해늘은 녹음을 시작했다.

그리고 세아는 노래했다.

법정에서 할 진술을 음악으로. 자신이 강리우에게 당한 모든 것을 음악으로. 그 음악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것은 거칠고, 불안정하고, 때로는 음정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타투샵의 반지하는 그 음악으로 가득 찬다. 밤이 깊어지면서, 세아의 노래는 점점 더 커져 간다. 마치 불이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불꽃을 다시 점화하는 것처럼.

해늘은 화면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세아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세아의 목소리가 가져야 할 형태라는 것을. 고통. 분노.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명.

밤은 계속되었고,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5권의 마지막 불빛이 켜졌다.

# 증거의 목소리

## 1부: 침묵의 무게

타투샵의 반지하실은 오후의 희미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창문 위쪽으로만 세상이 보였다. 사람들의 다리. 바뀌는 계절의 색깔. 그러나 여기, 이 좁은 공간에서는 시간이 달라지게 흘렀다.

세아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까만 천으로 된 낡은 소파. 소파의 가장자리는 테이프로 감싸져 있었고, 한쪽 팔에는 솜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청바지의 무릎 부분을 계속 뜯어내고 있었다. 신경증적인 습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

해늘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팔을 가슴에 모으고. 타투 바늘이 진동하는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는 듯했다. 오늘 하루 종일 그 소리를 들었으니까.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소리. 클라이언트들의 작은 신음소리.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흐르던 음악. 라디오에서 나오는 누군가의 노래.

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다. 마치 자신의 말이 이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할까봐 조심하는 듯한 톤이었다.

“해늘.”

단 한 글자였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방식에 질문이 가득했다. ‘넌 뭘 하고 있어?’ ‘왜 나한테 물어봐?’ ‘우리가 여기서 뭘 하려고 하는 거야?’

해늘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검었고, 그 검은색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그 안에 별들이 숨어있는 것처럼.

“응.”

짧은 대답. 하지만 그 안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내 말을 들어.’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아둬.’ ‘이건 중요해.’

세아는 해늘을 바라봤다. 둘이 만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정확히 세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간보다는 그 시간 동안 일어난 것들이 중요했다. 대화의 깊이. 침묵의 질. 그리고 점차 커지는 신뢰감.

“혹시 녹음기 있어?”

세아의 질문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마치 누군가가 그 말을 도청하지 않을까봐 조심하는 듯이. 하지만 왜? 이 지하실에는 자신들 둘뿐이었다. 문은 잠겨 있었고, 바깥의 음악 소리—아마도 카페에서 나오는 배경음악—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해늘의 얼굴이 변했다.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세아가 처음으로 보는 미소였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으로 보는 그런 종류의 미소였다. 승리의 미소. 기다림이 끝났을 때의 그 표정. 마치 오래도록 준비한 계획이 드디어 실행되려고 할 때의 그 느낌.

“응. 있어.”

해늘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세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소파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마치 물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공기를 헤치며. 자신의 몸이 이렇게나 무거운 적이 있었나? 물론이지. 지난 몇 달간 내내 그랬다.

그 움직임은 누군가가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자신의 몸무게일 뿐이었다. 자신의 무게. 자신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질량. 그동안 자신은 자신의 몸을 타인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강리우의 것. 법정의 것. 신문기자들의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다시 자신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해늘이 타투샵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선반이 있었고, 선반 뒤에는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손으로 먼지를 쓸어내자, 오래된 노트북이 나타났다.

그 노트북을 꺼내면서 해늘은 중얼거렸다. “여기 있었지.”

노트북을 켤 때의 팬 음. 시동 소리. 그리고 화면이 밝아지면서 나타나는 프로그램. 음악 제작용 소프트웨어. 그래픽 인터페이스 위에는 여러 개의 트랙이 있었다. 오디오 트랙. 파형. 비트. 드럼. 베이스. 그리고 텅 빈 보컬 트랙.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세아는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녀는 음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기다림. 공간. 누군가가 채워야 할 빈 공간.

“넌 언제부터 이런 걸 했어?”

세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감정도 있었다. 호기심. 그리고 어쩌면 기대감.

해늘은 노트북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마우스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마치 악기를 다루는 뮤지션처럼.

“한 달 전? 타투만 해가지고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 손으로 피부에 무언가를 새기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 그 사람의 몸에, 영원히 남을 무언가를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뭔가 빠진 게 있었어. 더 큰 것. 더 깊은 것.”

해늘이 말했다. 그녀의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음악을 배우기로 했어. 처음엔 온라인 강좌를 몇 개 들었어. 유튜브에서 튜토리얼도 봤고. 그 과정에서 이 소프트웨어를 발견했지. 처음엔 너무 복잡했어. 모든 버튼과 슬라이더가 의미를 알 수 없었고.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까… 뭔가 느껴지기 시작했어. 음악이 갖는 힘. 소리가 만드는 감정.”

세아는 해늘의 말을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해늘은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치 오래도록 누르고 있던 것을 드디어 놓는 것처럼.

“그런데?”

세아가 물었다. 그녀는 해늘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그런데” 앞에 있는 뭔가가.

해늘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이 조금 변했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누군가 나한테 곡을 주기를.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주길 원하는 사람이.”

해늘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오래도록 품어온 계획이 담겨 있었다.

세아는 노트북을 봤다. 그 화면 위에 있는 것은 음악의 시작이었다. 소리의 공백. 누군가가 채워야 할 빈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아의 심장이 빨라졌다. 맥박이 귓가에서 울렸다. 자신이 뭘 해야 한다는 건가? 노래를 한다고? 자신은 가수가 아니었다. 음악 경험도 거의 없었다. 학교 음악 시간도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었다.

“내가 뭘 부를지 모르겠어.”

세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불안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해늘은 고개를 돌려 세아를 바라봤다. 그 검은 눈동자가 다시 한 번 세아를 관통했다.

“그럼 넌 뭘 알아?”

단순하지만, 무거운 질문이었다.

세아는 생각했다. 자신이 뭘 아는가? 법정에서 진술해야 한다는 것. 강리우가 자신을 어떻게 했는지. 그 손이 어떤 감촉이었는지. 그 목소리가 어떤 음역대였는지. 그 눈빛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어떻게 대항했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많은 세부 사항들.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해본 적 없는 것들. 법정에서는 “당신은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그때 어떤 말을 했습니까?”라는 식의 질문만 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감각, 감정, 내면의 과정—은 그 질문들에 담길 수 없었다.

세아는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었을 뿐이었다. 마치 물고기가 하는 것처럼. 그리고 잠깐의 침묵 후에, 음성이 나왔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다.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음성이었다. 세아의 음성.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음성이.

해늘은 즉시 반응했다. 노트북의 화면에 손을 가져갔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빨간 원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계속해. 멈추지 말고.”

해늘이 속삭였다.

그리고 세아는 노래했다.

처음에는 말이었다. 단순한 진술. “그날 아침 나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어.” 하지만 해늘이 준비한 음악—미니멀한 비트와 반복되는 현악기 사운드—과 함께하면서, 그 말은 점차 노래가 되어갔다.

세아의 목소리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때로는 음정을 벗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것들이었다.

“그가 들어왔어. 낡은 검은색 재킷을 입고. 나는 그가 누군지 알았어. 우리는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가까워질 줄은 몰랐어. 그렇게 손을 잡을 줄은. 그 손이 나를 끌어당길 줄은.”

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이크—노트북의 기본 마이크였지만—에 그 떨림이 고스란히 담겼다.

“뒷방으로 끌려갔어. 나는 저항했어. 소리를 질렀어. 하지만… 아무도 안 들었어. 아니, 들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누구도 오지 않았어.”

음악이 점차 커졌다. 비트가 더 강해졌고, 현악기의 음정이 높아졌다. 마치 해늘이 화면에서 조절하고 있는 것처럼. 세아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음악도 함께 커져갔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어. 그의 것이었어. 그의 손가락이. 그의 입이. 그의… 그의 모든 게 나를 차지하려고 했어.”

세아가 노래하면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었어. 내 정신은 내 것이었어. 내 의지는 내 것이었어. 내 음성은… 내 음성은 내 것이었어.”

그 순간, 타투샵의 반지하실이 완전히 변했다. 더 이상 낡은 소파와 타투 기계가 있는 평범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 거룩한 공간이 되어갔다. 음악이 벽을 울렸다. 바닥을 울렸다. 그리고 세아의 목소리가 모든 것을 관통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세아의 노래는 점점 더 커져 갔다. 마치 불이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불꽃을 다시 점화하는 것처럼.

그녀는 강간에 대해 노래했다. 그러나 그것은 피해자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자의 노래였다. 자신의 몸을 되찾으려고 하는 사람의 노래.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으려고 하는 사람의 노래.

“나는 너에게 저항했어. 나는 너에게 ‘아니’라고 말했어. 나는 너에게 ‘멈춰’라고 말했어. 그리고 너는 멈추지 않았지. 하지만 나는 여기 있어. 여전히 여기 있어. 넌 나를 죽일 수 없어. 넌 나를 부수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세아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작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폭발이었다. 음악과 함께 울려 퍼지는 절규였다.

해늘은 화면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세아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세아의 목소리가 가져야 할 형태라는 것을. 고통. 분노.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명.

법정의 진술은 객관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음악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음악은 주관적일 수 있었다. 음악은 감정의 형태를 취할 수 있었다. 음악은 진실을 다르게 말할 수 있었다.

“이게… 이게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세아가 한 곡을 마친 후 물었다. 그녀의 숨은 거칠었고,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마치 운동을 하고 난 후처럼.

“증거?”

해늘이 반복했다.

“법정에서… 이 노래가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내 진술보다 더 강한 증거로?”

세아의 질문에 해늘은 침묵했다. 법적 조언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해늘이 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법적 증거가 아니라도, 또 다른 종류의 증거가 있다는 것이었다. 심판관의 증거. 관중의 증거.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증거.

“계속해봐.”

해늘이 말했다.

그리고 밤은 계속되었다.

## 2부: 목소리의 재탄생

세아는 계속 노래했다. 한 곡 후 한 곡이, 그리고 또 다른 곡이 뒤따랐다.

두 번째 곡은 침묵에 관한 것이었다. 강리우가 자신을 침묵하게 만들려고 했던 방식들. 위협. 수치심.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이 느꼈던 것들.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 아니, 내가 말할 용기가 없었어. 내가 더 큰 목소리로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 마치 그게 내 잘못인 것처럼.”

세아가 낮은 음성으로 시작했다. 그 음성은 마치 지하실의 벽에 흡수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건 틀렸어.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 내가 할 말이 있었어. 내 말할 권리가 있었어. 그리고 지금… 지금 나는 말하고 있어.”

세 번째 곡은 신체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의 신체를 다시 인식하는 과정. 그 신체가 강리우의 손에 있었을 때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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